질주하는 병나무
어느덧 동료가 되어버린 일행은, 그리닝 밸리에 가기 전에 먼저 이동 플랫폼에 들러 보급받기로 한다. 그러나 약혼 상대와 검문소 경비원에게 들킬까 봐 전전긍긍하던 겁쟁이 제리는 여기저기 도망치던 중 우연히 다른 사람과 함께 숨게 되고, 둘은 그렇게 특별한 감정이 싹트게 된다.
삶은 커다란 두려움 그 자체나 다름없다.
삶이 당신을 어느 곳으로 인도할지는 알 수 없다. 더 최악인 건, 때로는 서른 명의 형제자매와 백여 명의 친척들이 자신들의 결정으로 당신을 끌어들이기 위해 아우성을 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당신은 단지 운 나쁘게 사고를 당했을 뿐이다. 으윽, 마치…… 지금 내 모습처럼.
조언해 줄 사람도 없고, '절대 틀릴 일이 없는 절대다수의 관점' 같은 것도 없다. 그저 석궁을 쓸 줄 아는 강도, 그리고 차 안으로 들어오는 모래바람만이 있을 뿐.
……그리고 나는 내 운명을 받아들였다.
저기…… 큰바람 해변을 통과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일대는 재앙의 영역이나 다름없거든요. 매년 7만여 대의 수송차가 그 일대를 지나다 손상을 입거나 아예 완전히 파괴되죠……
참, 이 차는 이미 너덜너덜해진 상태였죠……
그, 그럼 이거 한번 보실래요? 재앙 외에도 차에 파손을 가져올 수 있는 여러 요인들이 있는데……
오리지늄 연료가 새거나, 구동 장치 고장으로 인해 2차 사고가 일어나거나, 채석장에 접근하다가 폭발에 휘말린다든지…… 그러니까 저희는 채석장을 멀리 피해서 가야 하는데……
저기, 제 말 듣고 있나요?
그래, 냄비 뚜껑. 여기로 올라가 저 나뭇가지를 잘라내. 그리고 펌프를 나무 꼭대기에 연결해!
전기톱이…… 너무 무거워……
괜찮아…… 라나 언니가 준 승주기도 꽉 묶었으니, 내가 트리 무스비스트라고 생각하자. 승주기로 나무를 꼭 붙든 다음 '슝'하고 올라가면 되는 거야……
……꼭 해내서 모두를 안심시켜 줘야지.
……어라? 갑자기 왜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지?
……야, 차량 강탈범! 도와달라고 한 적은 없는데!
응, 넌 아무 부탁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병나무에서 물을 채집해 본 경험이 있거든.
뭐, 너한테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는 건 인정할게. 하지만 도구는 냄비 뚜껑에게 돌려줬으면 좋겠어.
너 같은 차량 강탈범보단, 내 오랜 파트너가 더 믿음이 가니까.
헤헤……
게다가 우린 진짜로 이 녀석을 병나무 수액 전용 수송차로 삼을 생각도 없거든.
지금은 단지 이동 플랫폼에 들어가기 전에 이 차를 위장하는 것뿐이야. 다른 사람들에게 노선을 이탈한 수송차라고 들키면 곤란하잖아.
그리고 이왕 하는 김에…… 장식도 조금 붙일 거야. 보수용 철판을 붙이기 전까지는, 이 차가 구멍투성이라는 사실을 어떻게든 숨겨야 하니까.
냄비 뚜껑, 차량 강탈범한테 우리가 미리 짜둔 말이나 한 번 더 알려 줘.
네.
누가 물어보면 이렇게 말하세요. 우리는 지금 이 병나무를 운반하고 있고, 이 줄기 속의 수액을 통에 담아 공장까지 수송하는 중이라고. 차에 붙인 가지 장식은 생산대 대장의 취미라고 하면 돼요.
그렇지. 이 정도면 아마 문제없을 거야.
하하, 병나무가 재앙을 피해 노선을 이탈했을 때 목숨을 구해줬을 뿐만 아니라, 이럴 때도 도움이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
이런 외진 황야에 병나무를 심은 수송차 기사들이 정말 사랑스러워지네.
물론, 나 자신도 포함해서 말이야.
좋아, 난 운전석으로 간다!
……음, 혹시 제 말 듣고 있는 분 계세요? 저기, 알려 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매년 30만 명이 수송차에서 여러 원인으로 인해 골절 사고를 당하는데, 그중 수송차가 운반하는 병나무에서 추락해 골절당하는 사람은 만 오천여 명이나 됩니다.
헉……
신경 쓰지 마. 내가 펌프를 천천히 가동할게. 진동 때문에 나무에서 떨어질 걱정은 안 해도 돼.
하지만 사고는 언제나 갑자기 찾아오는……
가동한다! 꽉 잡아, 냄비 뚜껑!
매년…… 매년 천여 명은! 갑작스러운 강풍에…… 나뭇가지가 부러져서…… 목숨을 잃……
성공이에요. 라나 언니!
펌프가 '윙윙'거리면서 나무줄기에서 수액을 빨아들이기 시작했어요! 헤헤, 저는 이걸 구경하는 게 제일 좋아요!
훗, 내가 널 믿는 이유가 있다니까!
저기, 펌프도 사실은 폭발할 가능성이……
뭐야, 네 손에 무슨 사신의 명단이라도 있는 거야?
친구들이 재앙이나 광석병, 또는 사고에 휘말렸다는 소식은 나도 매년 한두 번씩 들어. 어떤 일이든 피할 수 없는 거야. 네 말대로라면 우린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해.
……아, 죄송합니다. 전 그냥 제가 가진 지식으로 당신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그러니까, 참고가 되었으면 해서요.
저, 저는…… 사실 보험 회사 영업 사원이거든요……
'보험'?
이건 제가 몇 년 동안 본 광고 제품 중에서도 최고로 좋은 상품입니다! 저도 여러 개 샀고, 이 컬럼비아 회사를 도와 이 상품을 더 널리 홍보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어요.
저…… 저는 겁이 많아서, 뭐든 두려워해요.
하지만 보험은 제가 두려워하는 걸 전부 알고 있어요. 제가 생각지 못한 위험까지도요.
보세요. 이건 제 업무 노트인데요…… 이 데이터들은 전부 저희 회사의 여러 광고에서 모아 온 것들이에요. 이것만 봐도 예상치 못하는 일상 속의 여러 위험을 알 수 있어요!
게다가 정말 안 좋은 일이 일어나면 그 사람들이 보상까지 약속해 주죠.
음, 그런데 죽으면 돈을 못 쓰잖아? 설마 죽어도 계속 돈 쓰는 법을 개발한 건 아니겠지?
음, 그건…… 불가능할 것 같은데요……
그렇다면 의미 없잖아.
그런 것보다 조금 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줄게. 나중에 가까운 이동 플랫폼에 들러서 내 옛 친구가 있는지 보고 올 테니까, 우선 수송차 꾸미는 거나 도와줘.
해마다 어떤 차가 어디서 재앙을 만난다고?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그리닝 밸리를 어떻게 가야 위험을 피할 수 있는지는 쟤한테 직접 물어보면 되니까.
……
……
하아……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 됐지?
원래는 그 꼬마가 얌전히 숨어 있을 거라 생각해서, 공구실에 함께 숨어 있으면 안전할 줄 알았는데……
……결국 그 꼬마는 알라나 씨랑 친구나 만나러 가고, 나 홀로 차에 남겨졌네.
나…… 혼자…… 이 강탈당한, 감염자도 숨겨 두고, 검문소도 강제로 돌파하고, 대장갑포에 구멍이 뚫린 수송차에 남겨졌다니……!
나나나나 혼자선 도저히 쫓아오는 사람들을 상대할 자신이 없다고!
누구라도 좋아. 당신이라도 상관없으니까, 저 혼자 내버려두진 말아주세요……
……
……이이이이건 제 지갑인데, 정말 이것밖에 없으니 부디 받아주세요!
다, 당신을 따라가기 싫다는 게 아니에요! 하지만 인질이 되기 싫은 건 당연하잖아요……
인질?
저, 저도 알아요. 당신은 차량 강탈범이고, 당신을 따라간다는 건 당연히 인질이 된다는 의미니까요. 방금 당신이 사람들을 구할 때 엄청 날렵하던데, 역시 강도답……
……죄송합니다! 대단하다는 얘기였어요!
……나?
네, 네……
그…… 화난 거 아니죠? 다행이에요.
저기,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데요. 알라나 씨가 당신한테 긴 여행에 필요한 물자를 사 오라고 했잖아요…… 혹시 강도질 말고 정상적으로 물건을 사 오면 안 될까요?
제 지갑도 지금 당신 손에 있고, 돈이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필요한 음식이랑 연료 정도는 충분히 살 수 있어요……
알겠어.
후우…… 그럼 됐어요.
맞다, 시, 실은 지금 불길한 예감이 드는데요. 아까 검문소에서 봤던 직원들의 시선이 뭔가 이상했거든요.
전문가의 눈으로 볼 때는 어땠어요? 저희 혹시…… 이미 의심받고 있는 건 아니겠죠?
그런데 난 인질이 필요하다고 말한 적 없어. 내리고 싶은 사람은 내려도 된다고 했고.
넌 안 도망가?
어…… 네? 그 대화는 이미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그리닝 밸리에 가는 건 너랑 상관없는 일이잖아.
거기로 가는 길은 매우 위험해. 그래서 내가 모두에게 차에서 내릴 기회를 줬던 거고.
넌 위험을 두려워하면서 왜 도망가지 않은 거야?
……
……다, 당신은 친절한 것 같은데, 괜찮다면 저와 함께 신문 가게까지 가줄 수 없을까요?
이유를 설명할게요……
없어…… 이 페이지에도 없어……
레이 씨, 제 얼굴이 신문에 잘 가려진 거 맞죠?
응.
네, 그럼 더 자세히 찾아봐야겠어요……
……하아, 다행이네요. 제 이름이 아직 실종자 공지란에 올라오진 않았네요.
음, 그러고 보니 정말로 실종자 공지를 냈다고 해도, 하루 만에 신문에 올라올 리는 없겠네요……
지명수배 쪽에는?
없어요……
아니, 아니,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에요!
저는 그저……
……약혼식에 불참했거든요.
어, 사실 도망치려 했던 건 아니에요. 이 차를 타고 다른 도시에 가서 약혼식을 올릴 계획이었는데, 마침 차가 강탈당하는 바람에……
그런데…… 오히려 너무 기뻤어요.
사실 별일 아닌데, 오히려 별일이 아니라서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 쑥스러워요……
당신의 가족이 몇 명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형제자매만 36명, 거기다 친척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아서…… 그래서 많은 일들이…… 뭐, 말해 봤자 이젠 의미도 없는데……
……아무래도 이해를 못 하시는 것 같네요. 저도 알아요. 일반적인 대가족도 이 정도로 큰 가정이 있지만,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요.
난, 잘 모르겠는데……
……잠시만요. 레이 씨, 저쪽에 제복 입은 사람들이 오고 있어요. 전에 봤던 검문소 사람들이랑 똑같은……
난 대가족이랑 함께 살아 본 적 없어.
대규모로 이어진 집들은 확실히 예쁘긴 했어. 하지만 나를 어디에 이어야 할지는 잘 모르겠더라.
……
그 자라크, 사라졌네.
으음, 혼자 도망갔나. 어차피 처음부터 이 차에 있을 사람은 아니었지.
안녕하세요. 아가씨, 뭐 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무서워 하지 마, 냄비 뚜껑. 벽에 걸려 있는 사진들이 무섭긴 하지만, 집주인한테 이상한 취미 같은 건 없으니까.
원시림에서 발견한 거대한 야수의 시체라든지, 탐험가의 해골 같은 걸 찍기는 하지만, 사람을 해치진 않으니까.
하하, 아마도 말이지.
……
오호, 냄비 뚜껑이라고 불러도 말대꾸 안 하네. 기운이 없어 보이는데, 설마 배고파?
차량 강탈범이 믿을만한지 모르겠네, 물건은 제대로 사 왔으면 좋겠는데. 이따가 태양광 패널로 토스트 굽는 거 보여줄게. 파울비스트 알 후라이도!
……
……지나간 일은 신경 쓰지 마.
나도 다 방법이 있어. 봐봐, 그 차량 강탈범이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 안 들어? 그러니까 조금…… 미친 것 같지 않아? 그래서 내가 이 친구를 만나러 온 거야. 상황을 조금 더 확실하게 파악하기 위해서.
산처럼 거대한 그림자? 말까지 한다고? 만약 림 빌리턴에 정말 그런 게 있다면 얘도 분명 들어 본 적이 있겠지.
만약 그 차량 강탈범이 그저 취했거나, 광산에서 안전모를 안 써서 머리를 맞았다거나 한 거라면…… 그땐 다른 방법을 생각해 봐야겠지만.
걱정 마. 나는 '황야의 알라나'니까. 어떻게든 방법이 있을 거야.
나가, 오늘은 면회 사절이야. 지금 여행기를 쓰느라 바빠 죽겠다고. 입구에 있는 간판 안 보여?
……아니지, 이 임시 작업실을 아는 사람이 몇 안 되는데. 너희는 어느 잡지사야? 어디서부터 따라왔어?
라나 언니…… 오랜 친구라고 하지 않았나요? 아무래도 이 사람은…… 언니를 모르는 것 같아요.
하하, 그게 있잖아…… 오랜 친구라는 게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다는 뜻이거든……
이봐, 그때 빅해머 채굴장 사건 기억 안 나? 어떤 맹글러비스트가 우릴 쫓아왔는데, 너는 그 녀석이 역대 발견된 가장 큰 맹글러비스트라고 했었잖아.
맞아, 바로 벽에 붙어 있는 이 사진이었어! 이 사진 찍을 때 그 차를 운전한 사람이 바로 나야.
어?
……뭐, 됐어. 네가 누구든 상관없어. 10분 준다. 그게 내 인내심의 한계야.
당신의 시간을 빼앗아서 미안하지만, 이 말 만큼은 꼭 하고 싶다. 오늘은 내가 살면서 겪은 가장 어두운 하루였다.
……물론 나도 '당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건 안다. 단지 난 어릴 적부터 어떤 가상의 대상에게 말을 거는 게 습관이 되었을 뿐이다. 집에서는 항상 수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얘기를 나눴지만, 난…… 그중에서 목소리가 가장 작은 사람이었으니까.
아무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차 밑은 정말 캄캄하단 것이다.
(참자, 5분만 더 참자. 저 가죽 구두가 사라질 때까지……)
(……4, 3, 2, 1……)
……콜록콜록…… 퉤!
으엑, 흙 좀 먹었다고 병원에 실려 가진 않겠지? 차 밑에 묻어 있는 메마른 모래이긴 하지만……
아, 찾았다. 여기가 동력실로 이어지는 점검구 같은데.
거리는 너무 무서워. 역시 차 안에서 얌전히 사람들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게 낫겠어……
……음, 레이 씨는 돌아올 수 있으려나…… 일부러 두고 온 건 아니지만, 엄청 미안하네.
하나, 둘……
좋아, 밸브가 열렸다!
……
……
그게, 저, 정말 죄송합니다! 차, 차를 잘못 탄 것 같아요!
이만 다시 돌아가 보겠습니다……
잠깐.
이 차 밑에서 소리가 났는데.
읍……
쉿……
(작은 목소리로) 조용히 해.
(작은 목소리로) 너 때문에 들키기라도 하면,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 더는 메탈 크랩이 정거장에 들어오게 놔둘 수 없어. 차에 알을 낳는 건 더더욱 안 되고! 저번엔 차를 세 대나 못 쓰게 만든 데다, 두 사람이나 다쳤다고!
손전등 이리 줘. 확인해 봐야겠다.
(절망한 듯 마구 손짓한다)
……
(작은 목소리로) 올라와.
……음, 이 쿠폰은 다른 사람에게 받은 건데, 난 여기 시장에 대해 잘 몰라.
그런데 시장조사 설문에는 왜 대답한 겁니까?!
너희가 물어봤으니까.
하아, 알겠습니다. 방금 그 기록은 삭제해야겠군! 실례했습니다, 아가씨.
천만에.
……'월간 할인 잡지. 쿠폰을 잘라내면 통조림 10% 할인'.
이런 건 대체 언제부터 생긴 거야……?
라나는 정말 대단하네. 주변의 새로운 일, 오래된 일을 전부 제대로 알고 있다니.
“금요일에 복슬복슬 꼬리 할아버지가 뜬 목도리를 가져가면 가게 주인집 딸이 할인해 준다.” 음, 하루 일정까지 기억하고 있다니. 대단하네.
이건 '쓰리밀리언 카트' 슈퍼마켓에서 쓸 수 있고, 그리고 이건……
네, 박사님. 사실 저도 기억이 확실하진 않아서요.
림 빌리턴은 항상 이랬던 것 같아요. 녹슨 공장 건물, 겹겹이 쌓인 철골, 잿빛 하늘과 지평선에 높이 솟은 오리지늄 결정들까지……
미안해, 아미야. 나도 네가 집에 가볼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네 부모님의 자료를 가지고 오랫동안 수소문했지만……
그때 공사팀이 습격당한 이후로, 네가 살았던 이동 플랫폼은 해체됐더라. 내가 찾은 플랫폼 중에는, 여기가 옛 섹터가 가장 많이 남은 플랫폼이야.
괜찮아요. 새비지 언니, 이것만으로도 충분해요. 고마워요.
이 녹슨 쇠, 기름, 그리고 용접봉 냄새만으로도 굉장히 친숙한 기분이 들어요.
마치…… 옛날로 돌아간 것 같아요.
아, 옛날은 아니지. 불과 몇 년 전이니까……
그냥…… 중장비 안에 앉아 엄마 아빠랑 그리고 공사팀 사람들과 함께 이동 플랫폼에서 출발을 기다리던 그 기분이 들더라고요.
- 공사팀도 함께?
대가족은 대부분 그래.
가족이 곧 공사팀이야. 공사팀이 아주 아주 먼 곳으로 일하러 가야 한다면, 노인과 아이도 데리고 함께 가기도 해.
물론, 대가족이라고 꼭 핏줄이 이어진 건 아니야. 때로는 같은 공장 구역에서 사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가족이 되는 경우가 있지.
- 그래서 그때……
아, 박사님, 신경 쓰실 필요 없어요…… 딱히 그때 사고가 떠오른 건 아니니까요.
게다가 림 빌리턴에 돌아오기 전에 이미 고민해 봤어요. 찾고 싶은 게 무엇인지에 대해서요.
맞다, 박사님, 저기 보세요! 저기 있는 큰 굴뚝이 예전엔……
어……
왜 그래, 아미야?
……예전에 다른 아이들과 함께 누가 더 깊게 들어가면서도 꼬리를 가장 깨끗하게 유지할 수 있는지 시합하곤 했었거든요……
- 그거 위험하지 않아?
- 재밌어 보이네, 나도 해 보고 싶어.
괜찮아요. 어른들한테 혼나지 않도록 다들 위험할 정도까진 들어가지 않았거든요.
어머, 아미야가 이런 얘길 하는 것도 정말 오랜만이네.
박사님은 안 될걸요. 꼬리가 없으시잖아요.
어머, 아미야가 이런 얘길 하는 것도 정말 오랜만이네.
저도 이젠 그 시절의 7, 8살 꼬마가 아닌걸요!
……하지만 결국은 이곳을 기억해 냈네요.
왜냐하면 여기는 림 빌리턴이니까.
여기서는 다 이렇게 집을 지어. 오래된 집이라도 쓰기 편하니까 허물지 않아도 돼. 새집을 원하면 그 위에 올려버리면 그만이고.
그래서 우린 어릴 때부터 어른들한테 이런 말을 들으면서 자랐어……
……“모험을 좋아하는 녀석들은 아무리 멀리 떠나도, 돌아올 땐 반드시 자기 집을 알아본다.”라고.
하지만 변한 게 너무 많아요.
예를 들면, 우리가 방금 이 자치주에서 본 감염자 관리법 같은 거요. 왠지 라이타니엔의 법률 이론과 빅토리아의 전문 용어를 따라 한 것 같지만요……
……
- 아미야.
- 누가 계속 이쪽을 보고 있어.
네, 저도 발견했어요.
……
- 아미야, 아는 사람이야?
처음 보는 얼굴이에요…… 게다가 예전에 저를 돌봐 주셨던 분들이라도 지금은 제 얼굴을 알아보기 어려울걸요.
괜찮아요 박사님. 계속 가요.
……쿠폰이랑 사야 할 물품 목록이 뒤섞인 것 같은데. 라나가 부탁한 게 뭐였더라……
자, 이게 결론이야. 큰바람 해변에서 그리닝 밸리까지, 이건 재앙정보전달자가 경험을 토대로 정리한 재앙 다발 지역이야. 나도 직접 가본 적이 있고.
오? 뭐 특별한 건 없어?
특별한 점은 그 지역의 생태 환경이……
생태 환경이……?
……파울비스트가 똥조차 안 쌀만큼 불모지라는 거야.
……
림 빌리턴의 지리적 환경이 전체적으로 척박한 건 사실이지만, 파울비스트가 똥조차 안 쌀 정도라니, 특별하지 않아?
가기 쉬운 길? 꿈 깨. 하늘에서 바위가 떨어져 길을 닦아준다면 또 모를까.
그리고 스릴 같은 건 꿈도 꾸지 마. 거기서 만날 수 있는 건 림 빌리턴 어디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언제라도 사람을 해칠 수 있는 위험한 것들뿐이니까.
그래. 똥을 안 싸는 파울비스트 말고 또 다른 특별한 동물은 없어?
다른 거? 아, 샌드비스트가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많아! 충고하는데, 샌드비스트는 무조건 피해. 귀찮아 죽을지도 모르니까!
음, 샌드비스트라, 이것도 특별할 건 없네……
그나저나, 혹시 '말을 한다거나', '몸이 반짝거린다거나', '엄청나게 거대한' 동물 같은 건 없어?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내가 무슨 전문적인 탐험가도 아니고. 신비한 생물 학자 같은 건 더더욱 아닌데.
잠깐잠깐, 진정해……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확인해 볼게.
'빛', '산처럼 거대한 그림자', '말할 줄 안다', 이 세 가지에 관해 뭔가 떠오르는 게 없어? 아무래도 없겠지?
……다시 한번 말해 봐.
빛, 산처럼 거대한 그림자, 말할 줄……
있어.
응?
하아, 성가셔 죽겠네. 설마 정말 떠오른 게 있을 줄이야.
(사르곤어) '베헤모스'.
'베헤모스'? 어느 나라 말이야?
사르곤어야. 물론 어딜 가든 이 단어를 알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음, 사르곤은 어디 있는데?
아니지, 사르곤이 어디 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지. 너의 귀중한 시간을 그 '베헤모스'가 무엇인지 설명하는 데나 써줘.
응? 방금 내가 한 말 못 들었어? 어딜 가든 이 단어를 알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니까?
그러니까, 나도 설명 못해 준다고. 그 베헤모스가 어떤 존재인지 밝혀낸 사람이 있다는 것도 들어 본 적이 없어. 이 개념 자체도 우연히 알게 됐을 뿐이야.
자, 이제부터 이 단어는 잊어버려. 어디 가서 함부로 말하지도 말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헛소문 때문에 허탕만 치는 건 너무나도 싫거든.
그래그래, 바로 잊어버릴게.
감사도 칭찬도 필요 없어, 10분 지났네. 문은 저쪽이야. 무슨 말인지 알지?
알았어.
……그래도 고맙다는 말은 하고 싶어. 네 덕분에 그런 게 정말로 존재한다는 걸 알았으니까,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흥.
'빛'? '산처럼 거대한 그림자'? '베헤모스'?
이런 바보 같은 소리를 누가 믿어?
정말이지, 전설이라는 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엉터리가 된다니까. 허풍쟁이 녀석, 나까지 속일 생각은 하지 말라고.
……
쳇……
……이 *림 빌리턴 욕설* 조사 보고서를 끝내고 다시 그리닝 밸리에 가 볼까.
너는 어떻게 생각해?
……
……만약 라나 언니가 간다면 저는 최선을 다해서 언니를 도울 거예요! 모험이나 고고학에 대해선 아는 게 별로 없지만, 그래도 분명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거예요!
응? 아니, 내 말은 정말로 딱 10분이 지나자마자 바로 쫓겨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넌 내가 친구랑 수다 떠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를까 봐 감시하려고 따라온 거 아니었어? 생각도 못 했지? 그 녀석 성격이라면 애초에 그럴 필요 자체가 없었던 거야.
아, 그렇네요…… 헤헤헤.
……
웃음이 나오지 않을 땐…… 굳이 그렇게 웃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돼. 잠깐이라도 좋으니까.
만약 지쳐서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다면 얼마든지 해. 사람들이 못 보게 내가 앞에서 가려줄 테니까.
……으아아아아! 드디어 숨을 만한 땅굴을 찾았다! 도와주세요!
어?
자, 빨리 들어가.
혹시나 해서 말해 두는데, 왼쪽은 린수 가공 공장의 하수도야. 나라면 반대쪽으로 갈 거야.
고마워요 알라나 씨!
……아, 안녕하세요 알라나 씨. 다, 당신일 줄은 몰랐어요.
(한쪽 눈썹을 치켜든다)
그게…… 빠르게 설명할게요……
아무래도 누군가가 우리의 위장을 간파하고 관문 근처에서 조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해서요. 레이 씨는 이미 들켰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레이 씨라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믿고 싶어요.
……잠깐, 지금 너를 쫓고 있는 사람들은 우리가 한 일 때문에 온 거야?
어, 그건 아니지 않을까 싶은데요……
아,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제가 잘못된 장소에 숨는 바람에, 여기 있는 키이라 씨의 일에 휘말리게 되어서……
로프 잡아, 제리!
아…… 네! 아하, 제가 로프를 저쪽으로 던지면 당신이 저쪽에서 저를 내려주세요!
………아무튼 이렇게 됐으니까, 알라나 씨…… 제 걱정은 하지 마세요! 저는 도망가야 합니다!
……저 녀석, 진짜로 무슨 일에 휘말린 거야, 아니면 그냥 남이 뛰니까 자기도 따라서 뛰는 거야?
그나저나 냄비 뚜껑, 저 옆에 있는 사람, 어디서 본 것 같지 않아?
삶이란 참으로 무섭고, 어떻게든 삶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 아니, 애초에 난 도망칠 생각이 없었다.
내가 원하는 건 내 36명이나 되는 형제자매와 30여만 명이나 되는 도시 주민들의 뒤를 따르면서 안전하게 지내고 싶은 것이다. 뭐니 뭐니 해도 다수의 선택이 가장 믿음직스러우니까.
하지만 난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했고, 약혼식에 불참하기로 했으며, 지금은 정말로 내 두 다리로 도망치고 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건, 이렇게 여러 일들로부터 쫓기면서도……
……결국엔 항상 문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후우, 후우…… 지금 상황이 나아졌나요. 아니면 더 나빠졌나요?
원칙대로라면, 하수도에서 메탈 크랩을 발견했을 때 빨리 경비원에게 신고해야 하는데요. '야생동물 주의'라는 간판 하단에 그렇게 쓰여 있거든요……
하지만 공교롭게도 우리는 그 경비원을 피해 여기까지 왔지.
하…… 하하하……
……벌써 숨이 차요……
멈추면 안 돼! 저 집게에 온몸이 너덜너덜해지고 싶지 않으면!
저, 저 달리기는 정말 못해서요……
나는 뭐 맨날 도망치는 상습범인 줄 알아? 나는 그냥……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가출했다고 생각하게 만들고 싶었을 뿐이야. 그래서 우리 집 철물점 트럭의 컨테이너에서 하루 종일 잤는데……
컨테이너가 출하되는 바람에 나도 남의 차에서 기어 나오게 된 거였어……
그래서 지금 이 상황이 된 것이고.
상습범이 아니에요? 다행이군요. 지명 수배란에서 당신의 얼굴을 봤다고 생각했는데요.
아, 그렇다고 당신이 흔한 얼굴이라는 말은 아니에요……
……오히려 내가 묻고 싶어. 당신, 확인도 안 하고 수배범이라 생각했던 사람을 도와준 거야?
저, 저는 그냥 선택지가 없다고 생각해서…… 애초에 그 사람들이 저를 쫓아오는 건지 아닌지도 모르겠어요……
……게다가 당신은 좋은 사람 같았어요. 저를 여기까지 데려온 그 사람들처럼 말이에요. 그 사람들도 사실 나쁜 사람들은 아니거든요……
윽……! 뭐야 이 소리……
잠깐만요. 여긴……
……제게 좋은 생각이 있어요!
……
……
……뭔데?
어, 제 목소리가 들리나요? 저, 적응이 잘 안되는데요……
……아무튼, 이 소리는 제련소의 폐기물 자동 여과 배출 장치의 소리예요. 전에 우리 회사 광고에서 봤는데, 어떤 사람이 그 위에서 떨어져 심하게 다쳤거든요……
……그러니까 제 말은, 사람이 위에서 떨어질 수 있다는 건 그 위로 올라갈 수도 있다는 얘기니까…… 어쩌면 저희도 위에 올라갈 수 있을지도 몰라요.
메탈 크랩이 높은 곳까지 올라올 수는 없을 거예요! 우리를 쫓아오는 사람들도 우리가 설마 공장을 통해 도망쳤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을 거고요! 자, 이쪽입니다!
이건…… 언제 뒤집힐지도 모를 플랫폼을 지나간다는 거야? 아무리 봐도 사람을 내팽개칠 쇳덩어리 같은데?
그래도 이 기계 팔의 움직임은 일정하니까,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에요. 제가 먼저 올라가서 제어실을 찾아볼게요. 수동으로 조작하면 위험하지 않을 겁니다!
……전에 알라나 씨가 수송차를 운전하는 걸 봤었는데, 아마 여기 있는 운전대도 수송차의 운전대랑 크게 다르지 않을 거예요……
시도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아니, 시도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저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난 당신을 믿어. 할 수 있으면 해 봐.
……저를 믿는다고요? 당신은…… 제 생각을 들어주는 것뿐만 아니라, 저를 믿어 주기까지 하겠다는 건가요? 세, 세상에…… 당신은 저의 36명의 형제자매랑 너무 다르군요……
그래도 저의 형제자매들처럼 똑똑하고 주견도 뚜렷하네요……
저기, 죄송해요. 키이라 씨…… 이 플랫폼이 생각보다 너무 높아서…… 저기까지 닿질 않는데…… 조금 밀어줄 수 없을까요?
밀어? 어딜 밀어달라는 거야…… 여기?
그, 그래도 돼요. 등이나 다리 쪽을 생각하긴 했는데……
오, 힘이 엄청나네요! 아무튼 이제 올라왔어요! 대단해요!
잘했어……
(작은 목소리로) 당신도 나에게 이래라저래라하는 어른들과는 많이 다르네.
즉, 우릴 주시하는 사람도, 우리의 차를 의심하는 사람도 없다는 거지?
너 정말 그 무기로 누군가를 때려눕히거나 하진 않았지?
응. 네가 준 물품 목록에 적힌 게 너무 많아서, 무기는 들 수 없었어.
……그래, 결과적으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거네.
하아, 나도 더 이상 트러블은 원치 않아. 검문소 사건 때문에 냄비 뚜껑이 얼마나 괴로워했는데.
그런데 그 겁쟁이는 대체 어디로 도망친 거야?
이제…… 후우, 안전해요. 진짜 해내게 될 줄이야.
고마워. 정말, 정말 고마워.
하하, 심장이 아직도 두근거려요…… 제, 제가 스스로 결단을 내렸다니. 게다가 이렇게 위험한 일을.
……가방으로 머리 좀 그만 때려.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쳐다보잖아.
아, 죄송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사람들이 시키는 대로만 해왔어요. 집안이 워낙 대가족이라……
알아, 사람 사는 게 다 똑같지. 혈연관계와 상관없이 다들 왁자지껄하게 모여 살아. 형제자매처럼.
내게 10년 전에 대지 여행을 다녀오겠다면서 떠난 여동생이 있는데, 아직도 수많은 형제자매들은 걔가 림 빌리턴에 있는지 없는지도 몰라.
아무튼, 잊히는 게 정상이야. 갑자기 20, 30명 가족에게 둘러싸여 맨날 같은 꾸지람 듣는 일도 정상이고.
아하하, 정말 공감되네요……
그거 알아요? 사실 저는 오늘 약혼식에 불참하고 여기까지 온 거예요. 그래서 잡혀갈까 봐 엄청 두려워했던 거고요.
음, 실은 작은 사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불참하게 됐지만…… 그래도 그 사고가 벌어지고 나서, 저는 기뻐하고 있는 저 자신을 발견하게 됐어요.
그래서 제가 그 약혼을 얼마나 싫어했는지 다시 깨닫게 된 거죠.
애초에 저는 약혼 상대가 누구인지조차 몰라요! 저는 그냥…… 가족의 현명한 사람들이 그렇게 하라니까 그게 맞는 건 줄 알았거든요!
맞아! 나도 엄청 공감돼! 우리 집도 어른들은 항상 이것저것 가르치려고 해. 나는 그게 싫어서 가출을 결심했어!
분명 나는 옛 공장 구역을 떠나서 아이언 캐럿 시티의 생산 라인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어른들이 그 좁은 수송차를 타고 일부러 나를 찾아와서, “약혼 상대가 결정됐다.”라고 했다니까.
만약 내가 어른들의 말을 들었다면, 오늘 너를 만나지 못했을 수도……
저기……
……아, 아니야. 먼저 말해.
저기…… 키이라 씨, 이건 제 생각인데요. 저랑 당신은 잘 통하는 것 같은데…… 그러니까, 저희 회사에서 최근에 새로운 보험 상품을 하나 개발했거든요. 보상 범위가 꽤 넓은데……
혹시 관심이 없으신가요? 어……
응? 보험……? 네 일에 도움이 되는 거라면 얼마든지. 오늘은 네가 정말 많이 도와줬으니까…… 그런데 보험이 뭐야……? 돈은 얼마나 내야 해?
아니아니아니, 오해입니다, 키이라 씨…… 당신이 돈을 낼 필요는 없어요. 제가 묻고 싶은 건……
……혹시 제 보험의 수혜자가 되어 주실 수 없나요?
……수혜자?
그, 그러니까, 혹시 저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회사가 당신한테 엄청난 돈을 주는 건데…… 구체적인 조건에 대해서는 시간이 날 때 자세히 설명해 드릴게요……
아무튼, 수혜자는 저한테 정말 중요한 사람이라는 뜻이에요……
맙소사, 내가 지금 무슨 말을! 또 내 멋대로 결단을 내리고 있네! 하지만 맹세코, 이건 분명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단입니다!
……
키이라 씨?
……너무 갑작스럽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저는 진심이에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말이 나와버렸어요……
예전의 저였다면 모든 걸 마음에 담아두고 어떻게 입을 떼야 할지 엄청 고민했을 거예요. 말을 한다고 해도 엄청 더듬었을 테고요. 어? 그런데 지금은 왠지 말을 안 더듬고 있네요?
아! 괜찮아요…… 당신이 거절한다고 해도 상관없어요…… 애초에 이렇게 성급하게 말해버려선 안 되는 건데…… 제가……
좋아.
어른들의 말을 듣는 것보단 이러는 편이 훨씬 내 성격에 맞으니까……
……네? 좋다고요? 그럼 받아주는 건가요? 맙소사! 이런 모습을 제 형제자매들에게 보여줘야 하는데! 모두의 결정을 따르기만 하는 것이 아닌 모습을……
알아. 항상 경험이니 뭐니 하면서 투덜거리지…… 우리 가족이 내 약혼자를 정했을 때도 아마 집안의 규칙을 따랐을 거야.
예를 들면, 다들 귀가 긴 카우투스를 좋아한다던가요.
잠깐, 카우투스……?
어, 네. 저는 집안에서 유일한 자라크거든요. 아마 제가 어렸을 때부터 지금의 대가족에게 맡겨졌던 것 같아요.
저도 이 사실을 자주 잊어버려요. 마치 평소에 저를 기억해 주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대가족이라면 다들 이렇게 합쳐진 거잖아요?
음, 게다가 다들 얘기할 때 또 목청은 어찌나 큰지.
우리 가족은 성격이 차분한 상대가 오히려 더 좋다고 하던데.
게다가 장사 수완이 좋은지도 보더라고요.
영업사원이 좋다고도 하고.
심지어는 외모도……
잠깐……
……
……당신, 방금 오늘 약혼식에 안 갔다고 했지?
라나 언니, 지금 출발하지 않으면 술통을 들고 병나무 수액을 받아 가려는 기사 아저씨들한테 둘러싸여 출발도 못 할 거예요……
하아, 나도 알지.
정말이지, 그 자라크, 분명 차에서 내리면 무서운 일이 있을 거라고 엄청 겁먹지 않았었나?
내가 그 녀석한테 다시 한번 강조하긴 했어. 내리고 싶은 사람은 내리라고, 손대지 않는다고.
아니, 그것보다 그 녀석은 약혼자에게 들키는 걸 더 두려워하는 것 같은데……
레이 씨! 알라나 씨! 빨리 당신들의 연락처 좀 알려 주세요!
어?
나중에 청첩장 보내 드릴게요! 결혼식이요!
……뭐?
주변을 둘러봤는데 앞쪽 길은 안전해. 대형 동물의 발자국도, 야수가 구덩이를 판 흔적도 없어.
하하, 어쩌면 그 자라크가 마지막으로 너한테 남긴 축복이 정말로 효과가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네.
“가는 길이 순조롭길 바랍니다.”, 그리고 “원하는 걸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베헤모스'라……
뭔가 엄청난 단어 같지? 애초에 네가 “우리는 베헤모스를 찾으러 간다.”라고 말했으면 널 의심하지도 않았을 거야.
그나저나, 네가 도로 상황까지 관측할 수 있는지는 몰랐네.
전문 지식이 있는 건 아니야. 파수꾼 같은 건 해 본 적도 없고.
그냥…… 망원경으로 먼 곳을 바라보는 느낌이 좋거든.
……이상하네.
동력 시스템 온도계가 조금 이상해.
차량 강탈범, 우리가 뭐 놓친 거라도 있어?
예를 들면, 길에 열기를 내뿜는 간헐천이 있다든가. 아니면 지표면의 활성 오리지늄이 작은 폭발을 일으켰다든가.
없었어.
자세하게 봤어.
……
냄비 뚜껑은?
……우리가 바깥을 보는 그 잠깐 사이에 대체 어딜 가버린 거야?
설마…… 동력실은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