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브레이크 디 아이스

BI-6갈림길

사이드 스토리작전 후2022-06-30

라타토스는 엔시오데스를 비밀리에 만났으나, 그녀의 진짜 목적은 그와 함께 죽으려는 것이었다. 거센 불길 속에서, 두 가주는 서로의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등장 오퍼레이터: 데겐블레허, 샤프, 실버애쉬

내 사랑하는 동생아, 너는 내 모든 것을 부러워했지. 권력, 명예, 재산을.

하지만 나 또한 네가 가진 모든 것을 부러워했다는 건 모르는구나. 사랑, 자유, 그리고 미래를 말이야.

나는 불가능한 것을 알면서도 꿈꾸고는 했다. 우리 둘이 서로가 가진 것들을 교환할 수 있기를 말이야.

브라운테일을 네게 맡긴다면 곧, 가문은 파멸하고 말겠지.

네 생활을 내가 차지해 봤자, 처절한 실패가 예정되어 있는 것처럼.


라타토스

……

라타토스

역시 대담하네, 엔시오데스. 호위 하나만 데리고 약속 장소에 나오다니.

엔시오데스

싸우러 온 것이 아니니까 말이야. 아마 너 또한 그럴 생각은 아니었을 거라고 짐작한다만.

라타토스

흥, 나는 오히려 그러고 싶긴 한데.

라타토스

브라운테일 가문은 페일로쉬 가문처럼 병력이 넘쳐나는 게 아니거든.

라타토스

데겐블레허, 너도 들어올 셈인가?

데겐블레허

내가 들어가길 바라나?

라타토스

얼마든지.

엔시오데스

데겐블레허, 너는 밖에서 기다리도록.

데겐블레허

진심이야? 나야 상관없다만.

엔시오데스

나의…… 성의라고 해 두지.

라타토스

말은 참 그럴듯하게 하네, 엔시오데스.

라타토스

성의라고? 내가 뭘 하든 의미 없는 짓거리라고 확신하고 있는 것뿐이겠지.

엔시오데스

네가 의미 있는 행동을 하길 기대하고 있다…… 이렇게 생각해도 되겠지.

라타토스

그럼 기대하시던가. 자, 들어와.


엔시오데스

내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여기는 과거 에델바이스 가문의 땅이었던 것으로 아는데.

라타토스

그렇지. 어때, 괜찮은 건물 아냐?

엔시오데스

위치도 좋고 전망도 트였군. 괜찮은 저택이다.

라타토스

에델바이스 가문은 대대로 쉐라그의 문서들을 보관해 왔지. 세 가문과의 관계 또한 나쁘지 않았어. 이 건물도 옛적에 조부께서 지은 브라운테일의 별장이야.

엔시오데스

루카 브라운테일께선 건축 설계가 취미셨다고 들었지. 이 방을 보니 빅토리아의 저명한 건축가들도 한 수 접어 줄 수준이로군.

라타토스

하하하, 조부는 네게 받는 인정을 딱히 기뻐하시지 않을 것 같은데.

라타토스

그래도 뭐, 네가 원한다면야 당시의 설계도를 보여 줄 수도 있어.

엔시오데스

고마운 얘기군.

엔시오데스

라타토스, 이렇게 둘이서 얘기를 하다 보면, 어떤 때의 기억이 떠오르는지 아나?

라타토스

어느 때인데?

엔시오데스

칠 년 전.

라타토스

칠 년 전이라…… 그래, 칠 년 전.

라타토스

그때 빅토리아에서 갓 쉐라그로 돌아온 너는, 외지의 수많은 문물과 함께 네 영지를 발전시켰지.

라타토스

그리고, 삼족 의회에서 실버애쉬 가문의 지위를 되찾고 쉐라그의 문을 완전히 열고 싶었던 너는, 결국 나를 찾아왔었어.

라타토스

넌 내게 말했지. 문호를 개방하면 일자리가 늘어나는 건 물론 쉐라그인들이 더욱 풍족하고 따뜻하게 지낼 수 있을 거라고.

라타토스

그래서 우리 둘은 아크토즈와 대장로님을 설득해서 문호를 개방했지, 그때부터 외부와의 무역이 시작되었고 말이야.

라타토스

참 좋은 때였지.

따뜻한 치스티밀크를 홀짝이며 말하는 라타토스의 어조에는 그리움이 묻어 있었다.

그때는 참으로 좋은 나날이었다. 실버애쉬 가문과 브라운테일 가문이 서로 협력하고, 카란 무역회사는 쉐라그를 대표하여 대외 무역을 도맡던 시절.

기술, 자금과 인재들이 끝없이 쉐라그로 쏟아지던 그때는, 정말로 모든 것이 다 잘 될 것만 같았다.

엔시오데스

그리고 네가 그 호황을 끝내 버렸지.

엔시오데스

라타토스, 나는 한때 네가 훌륭한 사업 파트너라고 생각했다.

라타토스

너 또한 나를 실망시켰어, 엔시오데스.

라타토스

그건 네 호황이었지, 내 호황은 아니었어. 물론 아크토즈의 호황도 아니었고, 쉐라그 또한 아니었지.

라타토스

결국에 득을 본 건 카란 무역밖에 없는데, 그게 무슨 호황이야?

라타토스

뭐, 이렇게 말해 봤자 이미 늦었지만. 승부는 이미 갈렸고, 나는 실패했으니까.

라타토스

패자는 웅변을 토할 권력이 없는 법.

엔시오데스

스스로를 패자라고 부르는 패자는 없다, 라타토스.

엔시오데스

말해다오, 내 부모의 죽음에 관하여 뭘 알고 있지?

라타토스

엔시오데스, 너는 내 조부와 아크토즈의 부친이 손을 잡고, 네 부모를 살해했다 생각하고 있지 않아?

엔시오데스

……

엔시오데스

당시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내 부모는 노시스의 부모가 고의로 일으킨 열차 사고에 휘말린 것이었다.

엔시오데스

하지만 나는 믿지 않는다. 왜냐하면, 당시 삼족 의회의 루카 브라운테일과 아크토즈의 부친 또한 내 부모가 주도하던 산업화에 반대하고 있었기 때문이지.

엔시오데스

연관성이 없다는 건 믿기 어려워.

라타토스

그래? 그럼 진실을 알려 주지.

라타토스

네 부모님은 열차 사고로 죽은 게 맞아, 그저 내 조부가 에델바이스 가문에 누명을 씌웠을 뿐.

엔시오데스

……

라타토스

성급하기는, 아직 얘기가 안 끝났다고.

라타토스

조부께서는 진작부터 네 부모를 암살하려 하셨지.

라타토스

이 건물 또한 네 부모를 초대한 뒤 화재로 죽이려고 만든 거야.

라타토스

그저, 도착하기도 전에 사고를 당했을 뿐이지.

라타토스

그러니 그 두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이 건물도 그냥 이대로 남아 버린 거야.

라타토스

물론, 아크토즈의 아버지 또한 이 계획을 묵인했고.

라타토스

너도 알다시피, 네 부모가 죽고 몇 년 뒤 아크토즈의 아버지는 가주의 자리를 아크토즈에게 맡기고 어디론가 떠나 버렸지.

라타토스

지금은 생사조차 불명이고 말이야.

엔시오데스

자랑이나 하려고 나를 부른 게 아닐 텐데, 라타토스.

라타토스

그저 새삼스러울 뿐이야. 지금까지 할아버지의 흔적에는 손도 대지 않으려 했는데 말이지.

라타토스

어느새 할아버지가 네 부모를 암살하기 위해 만든 방이, 내가 너와 같이 죽을 용도로 쓰이게 되었다는 게.

엔시오데스

……아이러니하긴 하군.

라타토스

내 손의 카드 두 장으로 너 엔시오데스의 목숨을 가져갈 수 있다면, 나쁘지 않은 교환이지 않겠어?

라타토스가 오른쪽의 팔걸이를 비틀었다.

천장과 벽 뒤로부터 트랩이 작동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날카로운 비웃음처럼.


시우루스

……잠깐, 저긴 할아버지가 만든 트랩이 있는 방이잖아, 어째서 불이?!

시우루스

라타토스랑 엔시오데스는 아직 안에 있는 게 아니었나……?

시우루스

설마…… 엔시오데스와 함께 죽으려는 건 아니겠지?!

시우루스

라타토스! 야! 뭐 하는 짓이야, 빨리 나와!

시우루스

망할 년…… 젠장…… 이 문은 왜 이렇게 안 열리는 거야!

시우루스

라타토스! 라, 라타토스…… 언니!!

시우루스

젠장……!

데겐블레허

같이 죽을 생각이라…… 그렇군, 확실히 예상치 못한 수법이야.

데겐블레허

음? 너는…… 라타토스의 동생이군.

시우루스

누구야?!

시우루스

……너구나, 엔시오데스의 곁을 따라다니던 그……

데겐블레허

나를 막을 셈인가?

시우루스

잠깐! 누가 움직이랬어, 다들 멈춰!

데겐블레허

뭐, 나랑 수다라도 떨게?

시우루스

내가 너랑 할 얘기가 뭐가 있다고!

시우루스

됐고! 이것만 말해 줘. 이 문, 어떻게 열 방법 없어?!


[CG: 24_i06]
라타토스

콜록, 콜록.

라타토스

……밖이 참 시끄럽네.

라타토스

역시 할아버지의 트랩이야.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잘 작동하네.

엔시오데스

내가 한눈을 판 사이에 도망칠 줄 알았는데 말이지.

라타토스

내가 나갈 수 있다면, 너 또한 나갈 수 있다는 얘기지.

라타토스

이 방에는 탈출구가 없어. 작동되는 순간 안에 있는 사람을 기다리는 건 죽음뿐이지.

라타토스

밖에서 구하러 온다 하더라도 대비가 겹겹이 잘 되어 있거든.

라타토스

엔시오데스, 내 마지막 소원이라 치고 들어주지 않을래? 우리는 여기서 함께 죽는 거야, 가는 길 외롭지는 않게 해 줄 테니까 말이야.

엔시오데스

나도 질문 하나 해도 되겠나? 라타토스.

엔시오데스

무엇이 너로 하여금 이렇게 하면서까지 날 막게 하는 거지?

라타토스

모두가 나 라타토스를 루카 브라운테일처럼 계산적인 사람이라 말하지. 당연한 얘기야, 손수 가르친 손녀인데 닮지 않았을 리가.

라타토스

처음에는 대외 무역이 가져올 이익을 보고 너와 협력을 결심했지만, 네 회사가 그 이익을 독식했지.

라타토스

그러니 별수 있나, 대장로 쪽에 붙어서라도 카란 무역을 고꾸라뜨리는 수밖에. 그렇게만 된다면 너희들의 부를 가로챌 수 있을 테니 말이야.

라타토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할걸? 요 몇 년간 항상 내 주위를 맴돌던 소문이니까.

라타토스

너 또한 그리 생각할 테고.

엔시오데스

부정하지 않겠다.

라타토스

할아버지께서는 언제나 브라운테일을 쉐라그에서 가장 큰 가문으로 키워내고 싶어 했지.

라타토스

그게 나와 할아버지의 가장 큰 차이점이야.

라타토스

돌아가시기 전, 나를 불러 페일로쉬 가주의 나약함을 큰 소리로 비웃으셨어.

라타토스

그리고 실버애쉬와 페일로쉬 가문을 집어삼키라 말씀하셨지.

라타토스

오히려 나는, 아크토즈의 아버지 쪽이 할아버지보다는 더 사람답다고 생각했지만 말이야.

엔시오데스

동의한다.

라타토스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브라운테일이 쉐라그의 유일한 가문이 되더라도 쉐라그의 사람들은 자신을 브라운테일의 사람이라 칭하지는 않을 거라고.

라타토스

쉐라그가 쉐라그라고 불리는 이유는, 쉐라간드께서 이 땅에 쉐라그라는 이름을 붙였기 때문이야.

라타토스

우리는 같은 믿음을 가진 덕분에 이 땅에서 천 년이 넘도록 함께 살아올 수 있었지.

라타토스

하지만 지금을 봐, 세 가문이 자신들의 영지를 따로 관리하기 시작한 지 벌써 수백 년이 지났어.

라타토스

네가 돌아오기 전까지, 삼족 의회에서 매년 하던 거라곤 그저 각종 행사나 대전의 경비를 누가 더 많이 대야 할지와 같은 얘기뿐이었지.

라타토스

같은 땅을 밟고, 같은 말을 쓰고, 같은 음식을 먹으며, 같은 신을 섬기는데도……

라타토스

서로 다른 가문에 속해 있다는 이유만으로 갈수록 서로 멀어져 가고 있었어. 사실상, 이미 타인이나 다름없는 관계였다고.

라타토스

쉐라간드께서는 아직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 계시지만, 쉐라그라는 이름은 서서히 잊혀 가고 있었지.

라타토스

쉐라그로 돌아온 네가 문호를 개방하자는 얘기를 꺼냈을 때, 내가 얼마나 기뻐했는지 알아?

라타토스

네가 실버애쉬만의 무역이 아닌, 다른 두 가문도 함께하는 대외 무역을 얘기할 때 나는 우리가 비로소 다시 뭉칠 수 있을 줄만 알았어.

엔시오데스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에게 익숙한 사람들은 누구나 다 아는, 상대의 말을 경청하고 있다는 의미의 제스처였다.

엔시오데스

카란 무역회사가 실버애쉬 가문의 가족 기업으로서 대외 무역을 진행하는 것과 쉐라그를 대표하는 창구로서 대외 무역을 진행하는 것. 그 둘은 명백히 다르다.

엔시오데스

또한 내겐 우리 세 가문이 다시금 뭉칠 수 있게끔 만들 생각도 있었지.

라타토스

네가? ……콜록, 콜록.

라타토스

네가 하는 일들을 이해하기 위해, 나 또한 그 경제학이란 걸 꽤나 공부해야만 했지.

라타토스

세율을 낮추고, 각종 우대 조건으로 외국 자본을 끌어들이고.

라타토스

그 거대 자본들을 유치하기 위해 상대방과 각종의 불평등 계약을 맺기까지.

라타토스

그리고 너도 알겠지. 네가 암암리에 짓던 군수 공장과 양성한 병력을 내게서 완전히 숨기기란 불가능하단 것을.

라타토스

네가 버는 돈이 탐나서 등을 돌린 줄 알았어?

라타토스

겁이 나서였어.

라타토스

네가 세 가문을 다시 뭉치려 하기보다는, 쉐라그를 마치 네 것 혹은 그조차 아닌 다른 사람의 것으로 만들려는 것처럼 보였거든.

라타토스

만약 너와 대장로, 둘 중 한쪽을 선택해야만 한다면…… 나는 차라리 후자를 고르겠어.

엔시오데스

……

엔시오데스

인정해야겠군. 나는 너를 잘못 보고 있었다, 라타토스.

엔시오데스

네가 이토록 내게 솔직하게 말해 주었으니, 나 또한 그리하도록 하지.

엔시오데스

쉐라그는 각종 광물과 원자재가 꽤나 풍부한 편이지만, 우리에게는 핵심적인 쉐라그만의 기술들이 부족했다.

엔시오데스

그로 인해 기술 협약에서 항상 절대적인 을의 위치를 벗어나지 못했지.

엔시오데스

돈으로 살 수 있는 기술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기술도 있다.

엔시오데스

그게 뭘 뜻하는지 아나?

라타토스

……

엔시오데스

예를 하나 들지. 나는 성산을 지나는 무역로의 경영권을 넘기고, 그 대신 이전 세대의 철도 시스템과 구식 열차의 우선 구매권을 받아 왔다.

엔시오데스

그게 없었더라면, 내 부모님이 남겨 두신 낡은 선로와 구닥다리 열차로는 화물이든 여객이든 최소 수요조차 맞추지 못했겠지.

엔시오데스

다른 예를 들자면, 동부 광산 구역의 협동 채굴권으로는 림 빌리턴이 개발하고 지원하는 광물 제련 기법과 설비를 얻어 왔었다.

엔시오데스

그 기술이 우리가 쓰던 것에 비해 효율이 몇 배나 더 높은지 알고 있나?

라타토스

……네가 뭘 가져왔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엔시오데스. 중요한 건 네가 뭘 주었느냐야.

엔시오데스

라타토스, 우리에게 부족한 건 시간이다.

엔시오데스

빅토리아든, 미노스든, 컬럼비아든, 카시미어든.

엔시오데스

그들이 쉐라그에 눈독을 들이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 그저…… 지금 당장은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엔시오데스

먼 옛날, 이동도시가 발명되기 전. 재앙이 대륙을 휩쓸며 유랑민들을 몰고 다니던 때. 대륙 각지에 흩어진 문명들은 서로 이름이나 겨우 들어 볼 수 있는 수준에 불과했지.

엔시오데스

현대 국가는 아직 성립되지 않았고, 문명 간의 소통과 교류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지.

엔시오데스

이백 년 전, 개척 시대라 불리는 때에도 그저 각자의 발전만을 꾀했을 뿐, 서로 간의 접촉은 드물었지.

엔시오데스

하지만 최근 수십 년은, 각국 사이에 이미 마찰이나 연계가 생기기 시작했다.

엔시오데스

가울의 지지 하에 컬럼비아가 빅토리아로부터 독립했지.

엔시오데스

그로부터 겨우 십 년 뒤, 사황 전쟁으로 인해 가울이 멸망했고.

엔시오데스

컬럼비아와 라이타니엔은 볼리바르를 둘러싸고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엔시오데스

그뿐만이 아니다. 국가 간의 전쟁은 교류와 무엽 협정, 다국적 기업의 설립 등을 촉진시켰지.

엔시오데스

이로 인해 어느 한 국가도 홀로 존재할 수 없게 되었으니, 자연히 다른 국가들과 공존하는 법을 모색하는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엔시오데스

이 모든 일들이 벌어지는 와중, 쉐라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어.

엔시오데스

지금 위기가 눈앞까지 다가온 시점에서도, 우리는 아직도 전혀 자각하지 못하고 있지.

엔시오데스

빅토리아는 지금 제 앞가림만 하기에도 바쁘지만, 컬럼비아가 개척 중인 변방은 서서히 서쪽의 산맥에 가까워지고 있다.

엔시오데스

지난 오랜 기간 동안 쉐라그는 저들에게 있어 그저 가난한, 점령할 가치조차 없는 땅에 불과했지.

엔시오데스

하지만 만약 빅토리아가 내부의 문제를 해결했다면? 만약 컬럼비아가 빅토리아에 대해 다른 마음을 품는다면? 거기에 더해 카시미어가 남진을 꾀한다면?

엔시오데스

그때가 되어도, 쉐라그가 지금처럼 평온한 삶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나?

라타토스

……


시우루스

내가 지금 말하고 있잖아! 이봐, 듣고 있기는 한 거야?!

시우루스

부탁할게, 제발, 이렇게 부탁할 테니까! 이 문 좀 어떻게 해 줘!

데겐블레허

시끄럽군.

시우루스

뭐라고?!

데겐블레허

시끄럽다고. 그리고 옷이 망가지니까 좀 떨어져.

시우루스

지금 그게 중요해?!

자신의 옷자락을 붙잡은 시우루스를 밀어낸 데겐블레허는, 엔시오데스와 라타토스가 갇혀 있는 건물에 다가갔다.

건물의 모든 창문은 철판으로 막혀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앞을 가로막은 건 두터운 벽이었다.

데겐블레허

네 가문의 재산인데, 정말 괜찮나?

시우루스

괜찮으니까 빨리!

데겐블레허

……훗.

슬며시 미소를 보인 그녀는, 가볍게 참격을 그어 벽을 갈라냈다.

그리고 이를 가볍게 걷어차니, 방금까지만 해도 절대 부서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벽이 마치 두부처럼 무너져 내렸다.

벽이 무너지며 내는 굉음만이 그 무게를 짐작게 할 뿐이었다.

하지만, 데겐블레허는 그 결과가 딱히 만족스럽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

데겐블레허

……이럴 줄 알았다면 '그 녀석'을 창고에 박아 두는 게 아니었는데. 엔시오데스는 너무 눈에 띈다고 했었지만, 그 말을 듣는 게 아니었어.

데겐블레허

검으로 하려니 확실히 불편하군.

그렇게 말하며, 데겐블레허는 손에 든 검을 한쪽에 던져 버리곤 허리춤의 트윈 소드브레이커스를 뽑아 들었다.

굉음과 함께, 벽이 마치 종잇장이 찢어지듯 부서졌다.

[CG: 24_i06]

방을 모두 불살라 버린 화염은, 내부의 모든 것을 탐욕스럽게 집어삼키고 있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앉아 있는 두 사람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마치 불길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혹은 그들이 불길보다 더 뜨겁기라도 한 것처럼.

엔시오데스

인정하지, 네가 쉐라그에 대해 그런 생각을 품고 있을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

엔시오데스

오늘의 대화가 조금만 더 일찍 이루어졌다면, 우리 둘이 여기까지 올 일은 없었겠지.

엔시오데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이 또한 필연이라 할 수 있겠군.

엔시오데스

우리에겐 서로의 입장이란 것이 있으니. 이런 상황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속에 든 진심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을 수 있겠나.

라타토스

흥, 말은 잘 하네.

라타토스

필연이라.

라타토스

그래, 필연이겠지.

라타토스

이 모든 게 필연이라면, 같이 쉐라간드 신이나 뵈러 가자고.

라타토스는 자신이 조금씩 지쳐가는 것을 느꼈다. 그녀의 시야가 서서히 흐려지기 시작했다.

어렴풋이, 어릴 적 동생과 한 남자아이와 함께 놀던 시절이 눈앞에 스쳐 지나갔다.

철도와 공장에 신기해 마지않던 자신의 모습 또한 스쳐 지나갔다.

이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추억일 뿐이다. 그녀는 고개를 흔들었다. 맞은편에 앉은 엔시오데스는 여전히 방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그의 얼굴은 이제 흐릿해서 보이지 않았다.

이 남자는 이런 순간에서도 침착할 수 있구나.

뭐, 여기서 같이 죽을 신세긴 하지만, 하하.

자꾸만 흐려지던 의식이 완전히 가라앉으려던 찰나, '쾅' 하는 굉음이 그녀의 귀에 들려 왔다.

그리고, 그와 함께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시우루스

라타토스!!

데겐블레허

갈 시간이다, 엔시오데스.

라타토스

……으음.


시우루스

라타토스, 깨어났구나!

라타토스

……

라타토스

내가 살아있나!?

엔시오데스

데겐블레허가 있는 한, 죽을 일은 없다.

라타토스

……브라운테일이 자랑하는 트랩도 네게는 못 당하는 건가.

데겐블레허

벽 자체는 문제가 아니었지만, 너희들이 있는 방을 찾는 건 꽤 수고스럽더군.

라타토스

……

라타토스

어째서 날 구했지?

엔시오데스

나는 브라운테일 가문의 항복을 받으러 온 거지, 네가 죽는 모습을 보러 온 게 아니다.

라타토스

……그건 그저 널 불러들이기 위한 속임수였을 뿐이야. 내가 살아나온 이상, 브라운테일 가문을 네 뜻대로 쥐락펴락할 수는 없을걸.

쉐라그 시민 A

엔시오데스 님…… 정말로 엔시오데스 님이야!

쉐라그 시민 B

엔시오데스 님, 설마 저 불타는 건물 속에서 탈출하신 겁니까?

쉐라그 시민 A

라타토스…… 분명 그 여자의 짓이었겠죠! 퉷!

쉐라그 시민 B

라타토스는 됐고! 빨리 가서 걸쳐 드릴 옷이나 찾아봐!

쉐라그 귀족

여기 있습니다! 엔시오데스 님, 이걸 걸치시죠!

인파 속에서, 귀족 한 명이 자기 외투를 벗으며 엔시오데스에게 다가가 옷가지를 황송하다는 듯 걸쳐 주었다.

그러나 엔시오데스는 다시 외투를 벗어, 땅에 녹초가 되어 주저앉아 있는 라타토스에게 덮어 주었다.

그리고 그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몸을 일으켜 길가에서 대기 중인 차량에 올라탔다.

쉐라그 귀족

라타토스를 잡아들이지도 않고 오히려 외투까지 걸쳐 주시다니…… 역시 대인배시군.

쉐라그 시민 A

이봐, 어떻게 생각해? 이참에 라타토스를 잡아다가……

쉐라그 시민 B

엔시오데스 님이 그냥 넘어가셨는데, 좀 그렇지 않을까?

쉐라그 시민 A

아니지, 우리를 믿고 알아서 처리하라고 맡기신 거잖아!

시우루스

무슨 소리야 지금!

쉐라그 시민 A

하, 시우루스였나? 보채지 말라고, 너도 곧 같이 처리해 줄 테니까.

시우루스

꺼져! 다가오지 말란 말이야!

쉐라그 시민 A

쯧, 이 여자 미친 거 아냐?

시우루스

야, 라타토스.

라타토스

……

시우루스

라타토스!

시우루스

멍하니 있을 때가 아니야, 도망쳐야지!

라타토스

도망가? 어디로?

라타토스

아직도 모르겠어? 이 사람들 전부 우리 브라운테일 가문의 주민들이야.

라타토스

저 눈빛을 보고도 아직도 모르는 거야?

라타토스

나는 패배한 거야, 완전히.

시우루스

칫……

샤프

한발 늦었나 보군.

라타토스

너는…… 그때 나와 아크토즈를 도왔던 자군.

라타토스

너도 나를 비웃으러 왔나?

샤프

아니, 박사가 당신을 초대했다. 얘기나 한번 나눠 보자고 하더군.

라타토스

……

라타토스

나는……

라타토스

……아니다.

라타토스

이렇게 된 마당에, 가서 얘기 좀 한다고 더 나빠지기야 하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