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별사
그랜드 나이트 영지에서, 할아버지의 묘지를 찾아온 마가렛이 과거의 일을 묻는다. 황야에선 옛 친구와 작별한 무에나와 톨런드가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등장 오퍼레이터: 무에나, 니어 더 래디언트 나이트
마틴, 요즘 가게가 한산해진 것 같지 않아?
그런가? 아마 너희 말동무를 해 주던 마리아가 없어져서 그렇겠지.
듣고 보니 정말 그런 것 같네.
그 녀석도 이제 바깥으로 나갈 나이긴 하지. 언제 다시 카시미어에 돌아올지 모르는 게 문제지만.
너도 준비는 해 둬야겠네. 마리아가 돌아오면 공방을 그 아이한테 물려줘야 하잖아.
……이야 이거, 오랜만에 보는 손님이구먼.
모두들, 잘 지냈나.
우리 빛의 기사님도 드디어 쉴 시간이 생기셨나 보네?
눈앞의 일들이 조금씩이지만 해결되고 있고, 나도 서류 작업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말이지.
내가 말했잖아, 뭐든지 혼자 짊어지려고 하지 말라고. 조피아랑 마리아도 없는데, 너 혼자서 그걸 어떻게 다 감당하려고?
걱정해 줘서 고마워…… 확실히 아직은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것도 많지만, 나도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 보고 싶어.
아마 내가 카시미어를 너무 오래 떠나 있었던 탓이겠지. 아니면 과거의 내가 이 도시의 규칙을 너무 무시했다거나……
이제 와서 말하는 거지만, 이런 질서와 오랫동안 공존해 보니 나도 이해가 부족했다는 걸 깨달았어.
……요즘엔 내가 유배를 당하기 전, 카시미어에 대한 기억은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안전한 길 위에서 본 풍경뿐이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내가 이곳을 떠나 있던 지난 몇 년 동안,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모두에게 듣고 싶어.
이것 참 기가 막히는 우연이군. 또 이렇게 만나게 되네, 무에나 님.
바운티 헌터한테 의뢰를 부탁해놓고 행방불명이 되다니 이럼 블랙리스트에 오를 거야.
……무슨 일이지?
나야 이 마을에 용건이 있어서 왔지. 여기 주민들이 우리한테 의뢰를 보내서 도움을 요청했거든.
원래대로라면 오늘 여기서 시공팀이 공사를 시작해야 하는데, 듣자 하니 게일 공업이 조사를 받는 것 때문에 여기 토지 거래도 무효가 됐다는 모양이야.
……신문에서 봤다.
호오, 그렇다면 이 소식도 알고 있겠네……이번 조사에 많은 기업과 옛 귀족들이 연루됐어. 심지어는 이 일 때문에 국민원이 몇 년 전 있었던 또 다른 안건의 판결을 뒤집었다던데.
물론 그 당시에 죄를 저질렀던 놈들은 더 이상 찾을 수도, 그 일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도 얼마 없지만.
하지만 너라면 분명 뭐라도 기억하고 있겠지.
사람도 전부 없어진 마당에, 지금 내가 그 일로 기뻐하기라도 해야 한다는 건가?
하긴 뭐, 우리 고상하신 기사님이라면 그런 녀석들에겐 '복수'도 아까운 녀석들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네.
우리처럼 보잘것없는 바운티 헌터들은 단지 누군가가 손에 넘겨준 증거들을 다른 누군가에게 넘겨줬을 뿐이고, 딱히 네가 신경 쓸 건 없어.
그저 모든 일이 해결됐고, 끝이 났다는 거야…… 그래도 우리가 그동안 쌓아온 정이 있는데, 몇 가지 질문 정도는 괜찮겠지?
츠시보르에 대한 일이라면, 내가 해 줄 말은 없다.
흐음…… 우리 모두 조용히 있고픈 순간이 있기 마련이지. 네가 입을 열 생각이 없다면 나도 강요할 생각은 없어.
하지만 내가 어떻게 널 찾았는지 짐작은 가잖아.
……해 줄 말은 없다고 했다.
그렇게나 답을 알고 싶다면…… 자신의 생각에 사로잡힌 이가, 실현될 수 없는 기사의 이상에 대해 말했을 뿐이다. 그것이 녀석이 마지막으로 한 일이었다.
이에 대해 애도를 하려거든, 마음대로 하도록.
하, 듣고 보니 정말…… 잔혹한 이야기였군.
하지만 말 나온 김에, 얘기를 해 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네.
내가 전에 독학으로 의사가 된 사람과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 무기를 줍고는 전장에서 심한 부상을 입은 형제를 편히 보내 주더라고.
둘이서 어떤 얘기를 나눴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의사의 몸에는 피가 잔뜩 묻어 있었지. 상당히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어서, 난 그 사람이 처음에는 괴로워하는 줄 알았어.
그런데 그 사람이 뭐라고 말했는지 알아?
……
피가 너무 뜨겁대.
희망이나 신념이 곧 실현될 것이라고 믿는 순간에 죽을 수 있는 것도 꽤나 운이 좋은 일일지도 모르겠어.
안타깝지만 이제 와서 다시 이상에 대해서 얘기해 봤자, 편안하게 죽을 수는 없겠지. 차라리 딴 사람에게 화상을 입히는 정도면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화상? ……좌절과 분노 사이를 선택할 정도로 편협한 이상을 가졌던 자는, 아무리 안타까운 처지였다 해도 일말의 동정을 가질 가치도 없다.
녀석의 의문은 내가 최근 몇 년간 가졌던 의문보다 적다.
만약 네가…… 녀석이 이런 극단적인 수단을 쓴 이유가, 마음속에 괴로움이 있었기 때문에 또는 어떤 원대한 야망이 있었기 때문에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것이라면, 아마 실망할 것이다.
그래? ……그건 유감이네.
길을 잘못 드는 이들은 흔하지 않나?
몇 년 전에 우린, 이 부근에서 다른 헌터들이랑 작은 충돌을 빚은 적이 있었어. 그때 녀석이 우릴 도와준 적도 있었거든. 정확히 말하자면, 양쪽을 전부 도망가게 만든 거지만.
수시로 나서서 여러 곳을 순찰하는 출정 기사라…… 꽤 흥미롭지 않아? 적어도 그 그랜드 나이트 영지에서 출근하는 귀족님들보단 훨씬 낫지.
지금은 농담할 때가 아니다, 톨런드.
하, 그렇게 화내지 말고……
게다가 이번에 음모가 완전히 파헤쳐진 이후로, 일부 감염자 노동자들이 정치 싸움의 여파로부터 은밀하게 보호받았다 하더라고.
……그래서 그들을 따라왔더니 네가 있었어.
무에나, 넌 지금 어떻게 생각해?
이렇게 많은 해가 흘렀는데 말이야.
기사는 의문만을 품어선 안 된다. 기사에겐 스스로 확신할 수 있는 답이 있어야만 한다.
……내겐 답이 없다.
카시미어도 내 대답을 필요로 하지 않지.
……
난 단지 평범한 사람에 불과하다, 왜 내게 묻는 것이지?
너도 조금은…… 그랜드 나이트 영지로 돌아가 틀어박히는 것 말고 다른 생각도 가지고 있을 거 아냐.
네가 지금 이러고 있는 게 그 녀석의 죽음을 전부 네 탓으로 돌려버리기 위한 것이어선 안 되잖아. 그걸 갚기 위해서라면 더더욱 안 되고.
……실례합니다. 두 분께선 관광객이신가요?
여긴 맥주가 유명하답니다, 한번 마셔 보시겠어요? 바깥에 서서 드셔도 괜찮답니다.
괜찮아, 날도 추운데 무슨.
……그래도 아쉽네. 혼자서 술 마시는 건 재미도 없고, 안 그랬음 정말로 기분 전환이라도 하는 건데.
츠시보르 그 녀석이 며칠만 얌전히 있었어도 우리 모임도 좀 더 즐거웠을 텐데.
그러면 네가 이렇게 혼자 정신 멀쩡한 상태로 수수방관해도 아무도 뭐라 안 할 텐데 말이야.
……방관하겠다고 한 적은 없다, 톨런드.
다만 그 기사의 이상을 부정한 건 바로 나다. 난 그의 말을 마지막까지 듣고……
……그를 죽였다.
……
하지만 나도…… 그의 목숨을 존중한다. 난 그의 마지막 질문에 답해야만 했지.
사실 오늘 아침에 할아버지 묘에 다녀왔어.
거기 있으니까 생각이 많아지더군…… 전에 아쉬웠었던 일 생각도 나고, 지금 눈앞에 있는 일들에 대해서도 생각났지.
할아버지와 대화할 수 있다면, 이 얘기들을 전해 주고 싶어. 그리고 할아버지께 조언을 구했을 거야. 하지만 이렇게 늦어 버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작별을 고하는 것뿐이었지.
……심지어는 어젯밤 일을 끝마치고, 조심스럽게 펜을 내려놓으면서 갑자기 깨닫기도 했어. 할아버지는 이제 내 곁에 없으니, 할아버지가 깰까 봐 소리를 낮출 필요가 없다는걸.
에휴, 자책하지 마, 마가렛.
그때 네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도, 네가 돌아와선 안 된다는 것도 모두가 잘 알고 있었어.
그래도 할아버지 곁에 더 있지 못한 것을 아직도 후회하고 있어. 할아버지의 마지막 부탁을 듣지 못한 것도 아쉽고.
……마리아가 할아버지의 병이 위독할 때 전달자를 통해 날 찾았다던데, 맞아?
그래, 그런 일이 있었지.
그런데 키릴님이 전달자를 통해서도 네게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해서 오히려 안심이 됐지. 전달자조차 찾을 수 없는 사람이라면, 그 킬러들도 널 쉽게 찾을 수 없었을 테니까.
이건 네 할아버지가 우리한테 직접 얘기한 건데…… 할아버지는 네가 카시미어로 바로 돌아오기보다는 니어 가문의 아이들이 다른 곳에서 성장하길 바라셨지.
적어도 네 할아버지가 지금 네 모습을 봤으면 분명 만족할 거야.
고마워……
그럼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집안은 어땠어?
니어 가문을 노리는 자는 분명히 있었는데…… 널 찾으러 갔던 그 전달자가 화살에 맞아 부상을 입고 돌아왔더라고. 한동안 여기서 몸을 숨겼다가 떠났다니까.
쳇, 평소엔 숨어 있기나 하는 녀석들이 전달자한테 손을 대다니…… 만약 공공연히 니어 가문에 도전하는 녀석들이 있다면, 우리가 이렇게 손 놓고 있을 리 없잖아?
……그렇군.
이런 일이 늘 일어나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도 진작 알았어야 했어. 지금까지는 할아버지의 명성이 가문을 그 화살들로부터 지켜 주고 있었을 뿐이라는 걸 말이야.
사실 나도 최근에 위협을 받았어.
누가 감히 널 건드린 거야?!
아니, 나도 나중에서야 알게 됐어. 부상을 입은 건 내가 아니라, 공익 활동 중에 친구가 된 평범한 중학교 선생님이었지.
상인연합회 중 일부 사람들이 내 연설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던 모양이야. 그들은 익명의 편지를 보내, 내게 언사를 조심하라고 경고했지.
나도 알고 있어, 이건 연설이나 한마디 말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 사람들이 구실을 하나 찾아냈다는 말이 더 맞는 말이겠지.
이런 공격이 한 번에 그친다는 보장은 할 수 없어. 내가 그들 눈에 거슬리지 않을 때까지 끊임없이 날 압박하겠지.
물론 나도 당하고만 있을 순 없지. 나도 할 수 있는 데까지 내 사람들을 지켜낼 거야. 이 사실을 너희에게도 알려야 할 것 같았어.
마치 이전에 있었던 토너먼트처럼, 내가 이렇게 무탈하게 걸어올 수 있었던 건 많은 친구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야.
새삼스럽게 무슨 그런 소리를 하냐? 우리가 니어 가문을 돕는 건 당연한 일이잖아? 게다가 그렇게 찾아오는 녀석들 중에서, 제대로 싸울 줄 아는 녀석은 하나도 없다고.
일이 바쁘다고 우리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정말 고마워, 모두들……
하아, 우리 마가렛도 점점 니어 집안의 기사장다워지는구나.
아니. 지금은 카시미어에 돌아온 지 얼마 안 됐으니까, 아직 내가 짊어져야 할 책임에 대해서 잘 알고 있지는 못해……
아 참, 마가렛. 넌 로도스 아일랜드에서 카시미어 관련 업무를 맡았다고 했지. 로도스 아일랜드는 많은 감염자들을 보살펴 주고 있다고 했었나?
그 감염자들과 의료인들도, 네가 말한 그 일의 영향을 받고 있는 거야?
아, 그거라면 걱정 안 해도 돼. 로도스 아일랜드는 감염자 갈등이 심한 여러 지역에서 감염자들을 위해 구조 활동을 실시하고 있으니까. 사회의 다방면에서 나타나는 위기를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는, 아마 그 사람들이 우리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거야.
……하지만 감염자들이 치료에 협력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오히려 이게 가장 큰 문제지.
흐음…… 돈 때문이려나?
맞아, 로도스 아일랜드가 제공하는 긴급 지원도 결국은 일시적인 것에 불과해. 광석병의 진행을 막으려면 역시 장기적으로 시장에서 약을 구매해야 하지.
지금의 카시미어는 감염자에게 기사 이외의 살길을 내어 주지 않고 있어. 일부 사람들은 어떻게 발버둥 쳐도 지속적으로 지불해야 하는 치료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거지.
……게다가 아직 많은 이들이, 로도스 아일랜드 역시 단지 돈을 뜯어내려는 집단인 줄 알고 있어. 어쨌든 이건 치료가 불가능한 병이니까.
……미안, 감염자에 대해 얘기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쓸데없는 말을 해 버렸네.
여긴 네 집이니까 아무래도 좋지. 앞으로도 무슨 일 있으면 우리한테 얘기하지 않을래?
게다가 마가렛이 이런 것을 걱정하고 있다니, 이제 정말 어른이 다 됐구나.
하하…… 코발 스승님, 니어 가문 복도에 있는 우리 부모님의 젊은 시절 초상화 기억나?
내가 이제 이 두 사람과 거의 같은 나이로 보인다는 것을 어제 문득 깨달았어.
뭐? 듣고 보니 시간이 참 빠르기도 하네.
맞아, 나도 그런 생각을 하게 돼. 이것도 내가 이곳에 오고 싶어진 이유 중 하나야.
아직도 기억나. 부모님이 떠나실 때만 해도, 난 이제 소설 한 권을 막 읽을 줄 알게 된 어린아이에 불과했지.
그 당시의 난, 기사 전기 소설에 나오는 모든 여주인공의 삽화는 우리 어머니를 모티브로 그렸구나 생각했어.
……하지만 그분들은 대체 어떤 기사였을까? 부모님들이 떠나실 적의 난 훈련장에서 아버지가 차마 일격을 날리지 못하실 정도로 어렸어.
하지만 예전에 한 번 결투를 했을 때, 리암 아저씨가 나한테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고 하더라고……
스니츠 그 녀석이 말이지……
그땐 내가 아직 출정 기사였을 때였다. 그 녀석보다 천재라는 두 글자가 어울리는 녀석은 없었지.
키릴의 맏아들이기도 했고, 성격은 또 제멋대로였지. 그 녀석에 대한 이야기는 녀석이 견습 시절 때부터 소문이 자자해서……
미안, 전화가……
……감염자 진단 기술의 응용에 대한 상담? 알았어, 내가 보고한 다음 준비 하도록 하지.
아무래도 우리 빛의 기사님은 일이 바쁜 모양이네.
다들 정말 미안해, 좀 더 있고 싶었는데……
다녀와, 어차피 우리 늙은이들은 언제든지 여기 있을 테니.
……하아, 아직도 니어 집안 생각이 많이 나네. 스니츠에 대한 얘기를 듣는 건 정말 오랜만이야.
아쉬운 일이지. 그 녀석도 원래대로라면 키릴님만큼이나 카시미어 역사에 오래 기억될 영웅 대접을 받아야 하는 건데.
그렇지, 그 녀석처럼 기세등등하던 그 빛이, 전장에서만 잠깐 반짝하고 말 줄이야.
……네가 아직 기억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당시에 우리 전선 가장 동쪽에 요새가 있었지. 그때 어디서 왔는지도 모를 군대에 의해 우르수스 제1지원군의 발이 묶였었고.
하, 그걸 어떻게 잊어? 그때 난 정말로 그 형제 둘이 출정 기사의 리더로서 함께 전장에 나설 줄 알았어.
게다가 난 적어도 두 젊은 니어가 공훈을 세우는 걸 보고 퇴역해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했었는데……
우리가 전장을 떠나기도 전에 출정 기사의 무리에서 니어의 이름을 보지 못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
하아, 그래도 무에나 그 녀석은 스스로 떠난 거니까.
……그 녀석이 데리고 있던 건 진정한 기사단 같은 게 아니었고 말이지.
스니츠는 그 녀석들을 작전 계획에 포함시키고 싶어 했지만, 다른 기사단은 인정하지 않았지. 무에나도 자신의 동료들이 모욕받길 원하지 않았어.
……“단지 요새를 건너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을 뿐인 유랑민들을 어찌 기사와 동일시한단 말인가.”라고 했던가.
하아, 그러고 보니 그 녀석은 또 어디로 간 거야? 마가렛한테 물어봤어야 하는 건데.
마가렛이 말하지 않은 걸 보니, 아직 답신이 오지 않은 모양인데.
예전에도 1년 정도 집에 돌아오지 않았었잖아? 신경 쓰지 마. 니어 가문은 마가렛이 있으니까, 상황도 분명 점점 나아질 거야.
……너희들이 마지막에 무슨 말을 했는지 묻지 않을 생각이야.
그건 네가 결정한 거니까.
카시미어에 기사는 필요하지 않다고 얘기할 거라면, 나도 반대하진 않겠어.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고난을 무찌르는 기사들보단 잠시나마 고난을 잊게 해 줄 경기장의 배우들이 더 매력적이겠지.
그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활이 무너지는 걸 그리 원하지 않아. 괜히 힘만 들고, 게다가 발버둥 쳐 봤자 그렇게 좋은 결과도 못 얻을 거거든.
……녀석도 그것을 알고 있었을 거다.
그래, 알고 있었을 거야. 우리 모두 알고 있었어. 그 녀석은 단지…… 과거 속에서 죽기를 선택했을 뿐이지.
잘 된 거지, 말로는 조용히 지낸다고 하지만……
우리 모두 안정 같은 건 생각지도 않으니까.
파울비스트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그것은 월동 전에만 들을 수 있는 독특한 울음소리였다.
사람들은 수년 전의 눈 밟는 소리, 그리고 걸어 놓았던 무기 위에 쌓인 서리를 떠올릴 것이다.
눈꽃들이 깊은 계곡 사이로 조용히 떨어져 내렸고, 사람들은 북쪽에서 불어오는 겨울바람의 메아리를 오랫동안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가끔씩 그런 생각이 드네. 하, 나처럼 아무것도 아닌 녀석도 좋은 일을 할 수 있고, 사람 몇 명을 구할 수도 있다는 걸 말이야.
그렇다면 그 비난받아야 할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체 누굴까?
……
이렇게 보니 평범한 사람이 되는 것도 부끄러운 일은 아닌 것 같네.
게다가 그 녀석은 너한테 검을 돌려주기까지 했고.
……지금의 카시미어엔 이 정도로 예리한 무기가 쓰일 곳은 없다.
그도 일을 이렇게 복잡하게 만들 필요는 없었지.
돌려보내진 감염자 노동자는 묵묵히 마을 한구석에 위치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지나가는 길에는 이번 겨울을 나기 위한 물자들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 이웃 주민들을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이 대화를 나눌 때 내뿜는 하얀 입김과 밥 짓는 연기가 천천히 피어오른다.
그들은 이제, 공사팀이 와도 이번 겨울을 어디서 보내야 할지에 대해 다시는 고민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피누스 실베스트리스 기사단으로부터 초대장을 건네달라고 부탁받았었어.
……로도스 아일랜드에서 보낸 편지인가?
외부 기업이긴 하지만, 너도 이제 꽤 익숙해졌잖아.
나도 네가 로도스 아일랜드가 무슨 일을 하는지에 대해선 관심 없는 거 알지만…… 그래도 편지는 챙겨둬.
사실 이번에 출정 기사들로부터 저 라이타니엔 사람들을 빼앗아 오는 데 로도스 아일랜드가 확실히 도움이 됐거든.
피누스 실베스트리스 기사단의 젊은 놈들이 전투력 측면에서 얼마나 지원해 주었는지는 몰라도, 적어도 로도스 아일랜드의 통행 허가증을 빌려준 것만 해도 정말 큰 빚을 진 거나 마찬가지지.
너도 알다시피 지금도 난 널 제일 먼저 동료로 삼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넌 생각을 바꾸지 않을 것 같네. 차라리 이참에 빚을 갚는 게 낫겠어.
게다가 이건 내 생각인데, 그들의 '박사'가 네게 할 말이 있는 모양이야…… 아마 네 형과 형수에 관한 이야기일 거야.
대기사장을 대신해서 말을 전하는 걸까? 로시의 원래 목적은 마가렛에게 은근히 전달할 생각이었던 것 같은데, 결국 그 협상가가 너에게 알려주기로 결정한 것일 수도 있지.
추측이라 해도, 적당히 하도록.
하, 농담도 못 하나.
그럼 넌 앞으로도 계속 찾아다닐 생각이야? 여태까지 소식 하나 없는데?
……희망을 버릴 이유는 없다.
근거 없는 희망이라고 해도?
그걸로 충분하다.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그랜드 나이트 영지에서 내가 품었던 모든 희망을 더해도 이보다 많지는 않아.
오히려 누군가의 삶에 대해, 또는 이 시대에 대해……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해 희망이 넘친다는 것이야말로 유치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
뭐, 그것도 그렇지.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너도 그동안 마가렛한테 편지 한 통 안 썼겠네?
그럴 필요가 있나? 마가렛이 스스로 벌인 일인데, 설마 스스로 감당할 수 없기야 하겠어?
마가렛이 네가 걸어온 길을 똑같이 걷게 된다고 해도, 넌 연장자로서 의무를 다하지 않을 생각인 거야?
마가렛에게도 자신의 방식이 있어야 한다.
그럼 이제 어디로 갈 생각이야?
두 분, 실례합니다……
즈보넥는 어느 방향으로 가면 되나요? 이 방향이 맞나요?
아, 모르신다고요? 알겠습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이제 차 그만 타고 싶어……
이제 다 왔어. 얌전히 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아빠가 피리 사줄게, 알겠지?
라이타니엔의 수제 악기는 다른 도시에선 살 수 없으니까.
……
그는 거의 모든 길을 기억하고 있었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도시를 따라가기 위한 이정표는 하나도 없었다.
모든 길은 이미 목적지를 가리키고 있었지만, 그가 찾고 있는 것은 그 밖에 있다.
……단지 길을 모르는 방랑자에 불과한 이의 행방에, 관심을 기울일 가치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