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시를 쓰지 않는 시인

시를 쓰지 않는 시인

오퍼레이터 레코드브릿지

오그니스코로 돌아온 비비아나는 이곳에서 몇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녀는 자신과 오그니스코의 관계를 되짚으며, 진정으로 이곳과 작별해야만 했다.

등장 오퍼레이터: 비비아나


기술자

항해사님, 일어나세요!

항해사

지금 이 항로는 문제가 없다고 하지 않았나……

기술자

아셔야 할 게 있습니다, 항해사님. 방금 낯선 이동 섹터 하나가 관측됐습니다…… 원래대로라면 저희 항로 상에 다른 이동 섹터가 있어선 안 됩니다.

기술자

연락해 봤더니, 자신들을 '오그니스코'라고 하더군요.

항해사

오그니스코…… 거기는 고정 도시잖아?

항해사

그 이동 섹터의 콜사인은 확인해 봤어? 합법적인 거야?

기술자

네, 합법입니다, 항해사님. 확인해 보니 등기부상의 소유자는……

기술자

로즈 미디어 그룹의 맥키 씨입니다.


열정적인 주민

또 왔구나, 비비아나. 평소처럼 빵은 부드럽게, 소시지에 마저럼은 많이, 맞지?

비비아나

마지막으로 온 지 꽤 오래됐는데, 아직도 기억하시는군요.

비비아나

감사해요. 다음에 오그니스코에 올 때도 또 사 먹으러 올게요.

열정적인 주민

아……

열정적인 주민

하지만 이 가게는 곧 문을 닫을 거란다, 아마 다음 주쯤에 말이지. 미안하지만 다음에 올 때에는 다른 가게에서 사 먹어야겠구나,

비비아나

혹시 무슨 일 있으신 건가요……? 괜찮으시다면 저한테 말씀해 주세요.

열정적인 주민

별 건 아니고, 새로운 일거리를 찾았거든. 지금처럼 장사하는 거긴 한데, 조금 독특한 소공예품을 팔 생각이야. 자본금으로 내 돈을 들일 필요도 없어, 다른 사람이 돈을 투자하기로 했거든.

열정적인 주민

그러고 보니 이 일은 네게 고마워해야 하겠구나. 그때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고 널 찾아온 이후로, 오그니스코에 일자리가 많아졌으니 말이야.

열정적인 주민

답례할 만한 건 따로 없고, 오늘은 돈을 안 받는 게 어떨까?

비비아나

그럴 필요 없어요, 사장님은 제게 빚지신 게 없는걸요. 그보다도, 좀 묻고 싶은 게 있긴 한데요.

비비아나

이 거리의 이 가게처럼 솜씨 좋은 데가 있는지, 알고 계신가요? 저희 스승님께서 이 가게 음식을 엄청나게 좋아하시거든요.

열정적인 주민

정말 우리 가게 음식이 먹고 싶으면, 우리 집에 오면 되지.

열정적인 주민

네 스승님 얘길 꺼냈으니 말인데, 내가 더 걱정되는 건 그게 아니란다……

열정적인 주민

비비아나, 네 스승님 잘 좀 돌봐드리렴. 요즘 네 스승님이 우리에게 민폐를 꽤 끼치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녀에게 진짜로 나쁜 일이 생기는 건 아무도 원치 않거든.

열정적인 주민

어쨌든 우리 집 화로 대부분은 그 사람이 직접 만들어준 거니까 말이야.

비비아나

민폐를 끼쳐요?

열정적인 주민

별일 아니야, 그저 네 스승님이 늙고, 고집이 세고, 성질이 급하다 보니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했을 뿐이지.

비비아나

……응?!

열정적인 주민

비비아나?

비비아나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어쩐지 낯익은 사람을 본 것 같아서요.

비비아나

요즘 오그니스코에선 양복 입은 사람이 자주 보이나요?


비비아나

스승님, 저 돌아왔어요. 음식은 책상 위에 둘게요.

오비나

몇 번이나 말해, 그냥 오비나라고 부르라니까. 그렇게 예의 차리지 좀 말라고.

오비나

강철은 사 왔어? 음식은 아무래도 상관없고, 철이 더 급하다 했잖아.

비비아나

사 왔어요. 하지만 스승님이 식사를 먼저 하시고 나면, 그때 드릴 거예요.

비비아나

지금 스승님께서 화로를 켜시면, 아마 내일 아침까지도 식사를 하시지 않을 테니까요.

오비나

하! 난 아직 정정하다고.

비비아나

“꺾이지 않는 사람은 없다. 오직 부러지지 않는 강철만 있을 뿐.”, 바로 스승님께서 하신 말씀이죠.

오비나

나 참, 쓸데없는 말을 했군!

오비나

하지만 “대초원 최초의 장인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불을 받아 대지에서 탄생한 금속을 받들고, 아홉 밤낮 동안 망치를 들었다.”고도 말했을 텐데?

오비나

그에 비하면 나는 나태한 편이야. 그래서는 안 돼. 나태하게 굴면 화로 안의 불이 금방 꺼져버린다고.

오비나

부지깽이가 어딨더라? 좀 가져다줘.

비비아나

이런 식으로 대충 얼버무리며 넘어가려 하지 마세요.

비비아나

그나저나 오늘 유난히 활기차 보이시네요. 오랜만에 이렇게 말도 많이 하시고요. 실은 돌아오는 길에 스승님 걱정을 많이 했었거든요……

오비나

……내가 오늘 말이 많다고?

비비아나

평소에는 '부지깽이', 딱 이 네 글자만 말씀하시잖아요.

오비나

……

오비나

그렇군, 난……

오비나

난 그저 네가 언제 떠날지가 궁금했을 뿐이야.

비비아나

내일 아침 일찍이요. 그런 건 그냥 바로 물어보면 되잖아요.

오비나

더 머물진 않고?

오비나

며칠, 아니 보름 정도 더 머물지 그래?

오비나

이 공방을 네 명의로 바꿔줄 수도 있어, 그리고 우리는 평소처럼 쇠를 두드리는 거지. 천장을 높였으니 더는 네가 머리를 부딪칠 일도 없을 거야.

비비아나

제가 남는 걸…… 바라실 줄은 몰랐어요.


비비아나

그렇지만 스승님, 저는 가야만 해요.

오비나

흥! 그럼 가버리던가, 물건이나 두고 가지 마라.

비비아나

그럼 지금 작별 인사드릴게요. 내일 일찍 차를 타야 하니 깨우지 않고 그냥 갈게요.

오비나

꼭 아이가 외출하기 전에 엄마에게 이야기하는 것처럼 말하네. 따로 작별 인사할 필요 없으니, 네가 갈 길이나 신경 써. 네가 어딜 가든 나는 상관없으니 말이야.

오비나

설령 네가 대기사장이 되기 위해 간다고 하더라도, 굳이 나한테 말할 필요도 없고.

비비아나

스승님께서 그런 것들에 관심 없으신 거 잘 알아요.

비비아나

제가 누구이고 어디서 왔는지도 신경 쓰지 않으시는 것처럼 말이죠.

오비나

흥! 너는 너지, 그럼 달리 또 누구겠어.

비비아나

감사해요. 지금 그 말이 그동안 제가 들어 본 말 중 제일 좋은 평가네요.

오비나

뭐야? 칭찬한 거 아니거든?

오비나

그래도 너랑 쇠를 두드릴 땐 정말 좋았지. 손재주도 좋고, 성격도 차분한 게, 재능도 꽤 있었지.

오비나

네가 어디서 무얼 하든, 내가 신경 써봤자 무슨 소용 있겠어. 죽지만 않으면 됐지.

비비아나

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 스승님.

비비아나

나중에 또 찾아뵐게요.


다급한 기자

양초의 기사님, 어째서 오그니스코를 떠날 결심을 하신 겁니까? 이제 어디로 가실 거죠?

흥분한 기자

드로스테 씨, 노바 기사단에서 당신의 자리를 대신할 것으로 공인된 달빛의 기사가 봄 시즌에 펼친 활약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비비아나

여러분, 죄송한데 10분 후면 차가 출발을 하거든요…… 앞으로 갈 수 있게 부디 길 좀 터주세요.

흥분한 기자

드로스테 씨, 무슨 대답이라도 해주십시오……

다급한 기자

양초의 기사님, 잠시만요……

오비나

뭘 찍고 난리야?

오비나

사람 처음 보냐?!

오비나

너희가 말을 그렇게 잘해? 그럼 비비아나가 대체 남들과 뭐가 다른지 말해 봐.

오비나

비비아나가 어디로 가든, 그게 너희와 무슨 상관이냐니깐?! 다들 얼른 꺼져!

비비아나

……감사해요.


비비아나

제가 남는 걸…… 바라실 줄은 몰랐어요.

오비나

흥. 못 들은 걸로 해.

오비나

잠이 덜 깬 게 분명하군…… 난 이만 가봐야겠어.

비비아나

어디 가세요? 물건은 제가 다 사뒀어요.

오비나

신경 쓰지 마, 비비아나.

오비나

따라오지도 말고.

오비나

우선 화로에 불부터 지피고, 오늘은 네가 만들고 싶은 걸 마음껏 두드려봐. 내일 아침 일찍 조용히 떠나려면 떠나고.


비비아나

……맥키 선생님.

비비아나

여기엔 무슨 일이시죠?

맥키

방금 그 대장장이분이 떠나시는 걸 지켜봤습니다. 허리가 굽은 노인에게서, 마치 출정하는 기사와 같은 기세를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요.

맥키

유달리 고집이 셌던…… 또 당신에게 크나큰 영향을 준 그 사람이 자꾸만 생각이 나더군요.

비비아나

오비나 씨는 그저 평범한 대장장이이고, 그녀는 당신이 아는 그 누구와도 아무런 관련이 없어요. 깊게 파헤쳐볼 만한 가치도 없죠.

맥키

드로스테 씨…… 당신이 이렇게 강경한 모습을 보이는 건, 지난번 토너먼트에서 특별한 수단으로 빛의 기사에게 승리하기를 거부했을 때 이후 처음이군요.

맥키

당신이 '절차'에 따라 막 오그니스코로 가게 되었을 때, 저는 빛의 기사가 당신을 조금쯤은 챙겨주길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도 자신의 길을 가야 했으니, 당신을 실제로 찾아오기 어려웠겠죠.

맥키

당신이 오그니스코에서 자길 돌봐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났다는 것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저는 그저 기쁠 뿐입니다. 설령 그녀가 평범한 대장장이라 하더라도 말이죠.

비비아나

스승님은 빛의 기사와는 조금도 닮지 않았고, 그분이 저를 돌봐주는 것도 빛의 기사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일이에요.

비비아나

그렇지만 스승님께선 정말로 제가 느껴보지 못한…… 평온을 제게 주셨어요.

맥키

저도 당신이 이 평온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알 것 같습니다.

맥키

그래서 저는 더더욱 당신이 그 대장장이분과 오그니스코가 정말로 '깊게 파헤쳐볼 만한 가치'를 보여주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설령 당신이 속으로는 그렇게 여기고 싶어 하지 않는다 해도 말입니다.

비비아나

……최근 오그니스코에 생긴 변화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시죠?

맥키

현재 도시 외부에 정박 중인 몇 개의 소형 이동 플랫폼은 글로리어스 실드 공업의 소유이고, 오그니스코의 재건에 사용될 예정입니다.

비비아나

주택가의 화려한 조명, 나뭇가지 위의 플라스틱 조화, 심지어 거리의 무기 모형과 기사 엠블럼까지…… 이 모든 게 전부 글로리어스 실드의 작품이란 말인가요?

비비아나

또, 유리 진열장 뒤에서 고무망치를 들고 망치질 흉내를 내는 사람들…… 그들에게 지급되는 '급여'의 출처 역시 글로리어스 실드라는 말이죠?

맥키

글로리어스 실드의 파트너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맥키

노바 같은 대기사단은 이미 주요 기사들을 위해 키워드, 주제곡, 인터뷰 스타일, 작전 방식, 의상 디자인, 히스토리, 사상적 포지션을 커스터마이징 하는 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맥키

한 명의 스포츠 기사가 경기장에서 검을 휘두를 수 있는 시간은 너무 짧아서, 제아무리 프로 정신이 뛰어난 기사라 해도 팬들의 니즈를 충족시키기에는 부족하죠.

맥키

그렇지만 쇼케이스, 콘서트, 브이로그와 자서전 출판회라면 그걸 채워줄 수 있습니다.

비비아나

그러니까, 글로리어스 실드와 같은 무기 제조사가 그들의 제품에 성격과 이야기를 부여하여 “팬들의 부족한 니즈를 충족시키려고 한다.”…… 이 말인가요?

비비아나

그리고 오그니스코가 바로 그들이 선택한 배경지인 거고요?

맥키

고대의 숲과 장인의 도시, 야만의 시대에서부터 시작된 망치질의 전설을 계승한 오그니스코, 이보다 더 적합한 선택지가 어디 있겠습니까?

맥키

이곳은 거대한 스튜디오가 되고, 현지 주민은 배우가 됨으로써 전설적인 망치질의 스토리를 연출할 수 있게 됩니다.

맥키

장인들은 더 이상 화로 앞에서 허리를 숙이고 등을 구부리며 일하지 않아도 상당한 수입을 얻을 수 있게 될 테고, 글로리어스 실드도 전설에서나 나올 법한 '전설의 무기'를 얻을 수 있게 되겠죠.

맥키

……적어도 처음엔 그랬습니다.

비비아나

설마 스승님도…… 이 '연출'에 참여할 것을 강요당하신 건가요?

맥키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당신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고, 평생을 망치질 기술에 바친 노련한 대장장이라니…… 이보다 더 좋은 적임자가 있겠습니까?

비비아나

그 사람들이 스승님께…… 온건한 방법을 쓰진 않았을 것 같은데요.

맥키

만약 그 대장장이분이 제 생각처럼 고집이 세다면, 그녀는 이미 글로리어스 실드의 처리 방식대로 강력한 보복을 당했을 겁니다.

맥키

만약 정말 그랬다면 저도 화를 낼 수밖에요. 그건 글로리어스 실드가 상당히 경솔한 일 처리를 한다는 뜻이니까요.

비비아나

저, 스승님께 가봐야겠어요……!

맥키

잠시만요, 드로스테 씨……


근심하는 대장장이

오비나, 그만하면 됐어.

오비나

왜? 설마 너도 유리 진열장 안에 갇혀서 연기나 하고 싶은 거야?

글로리어스 실드 대변인

부인, 그런 짓은 무의미하다는 걸 아시잖아요. 오늘 부인께서 부순 유리 정도야 내일이면 다시 설치될 겁니다.

글로리어스 실드 대변인

부인께서 배상해야 할 금액은 이미 부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아무리 애를 써봐야 부서지는 건 결국 부인의 삶뿐이에요.

글로리어스 실드 대변인

부인이 끝내 이 합의서에 서명하지 않는다면, 이후 당신의 임금에서 배상금이 공제될 겁니다.

오비나

내가 내 삶을 부수는 거라고?

오비나

설마 나더러 이따위 *카시미어 욕설* '합의서'나 가져가서, 스스로 내 공방을 닫은 채 유리 진열장 안에서 고무망치로 망치질하는 척 연기나 해야 한다는 말이야?

근심하는 대장장이

오비나, 너도 알잖아, 몇몇 젊은 수습생들은 쇠 두드리는 걸 딱히 좋아하지도 않아.

근심하는 대장장이

게다가 이젠 우리 같은 늙은이들도 모두가 다 너처럼 정정한 건 아니라고. 당장 나만 해도 내가 언제까지 계속 쇠망치를 들 수 있을지 모르겠어.

근심하는 대장장이

그러니 우리도 어쨌든 살길을 찾아야지.

오비나

대초원에 아직 성이 없던 시절에도 오그니스코의 장인들은 이미 쇠망치를 들고 있었어.

오비나

너, '오그니스코'라는 이름이 무엇을 뜻하는지 잊어버린 거야?

근심하는 대장장이

'화로'잖아. 잊지 않았어, 오비나.

오비나

그럼 잘 알겠네, 망치질이 바로 우리의 길이라는 걸.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래야 해.

글로리어스 실드 대변인

두 분 말씀 중에 죄송하지만, 시청에선 현재 이 도시의 명칭 변경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글로리어스 실드 대변인

글로리어스 실드의 본부로부터 이미지 전문가팀이 도착하면, 이 도시는 시대에 맞는 새 이름을 갖게 될 겁니다.

오비나

네 녀석……!

글로리어스 실드 대변인

악……!

글로리어스 실드 대변인

콜록…… 카메라 감독님, 방금 장면 잘 찍었죠? 제 반응은 편집하고 오비나 씨가 제게 망치를 휘두르는 장면만 남겨주세요.

글로리어스 실드 대변인

부인, 합의서에 서명하실 경우 임금에서 배상금을 공제하는 것도 저희가 특혜를 봐드리는 것이지, 딱히 저희가 지켜야 할 의무는 아닙니다.

글로리어스 실드 대변인

즉시 경찰에 신고해, 가장 정당한 방식으로 처리할 수도 있죠.

글로리어스 실드 대변인

하지만 제 생각에 부인께선 감옥보다……

비비아나

말다툼은 그만 멈추시고, 오그니스코의 아름다운 풍경을 즐길 시간이나 갖는 게 나으실 것 같은데요…… 당신 회사의 정비 캐스터가 이 모든 걸 망가뜨리기 전에 말이에요.

비비아나

귀사의 분야별 전문가 팀이 도착하기 전에는, 당신이 무슨 노력을 해도 윗사람들 눈에 띄지 않을 거예요.

글로리어스 실드 대변인

드디어 나타났군요, 양초의 기사! 카메라 감독님, 클로즈업 부탁해요. 무대 담당님, 드론 두 대 띄워 주세요, 이 장면은 여러 각도로……

글로리어스 실드 대변인

“화면이 검다”니 무슨 소리죠? 렌즈캡은 뺐나요?

글로리어스 실드 대변인

설마 양초의 기사…… 당신의 오리지늄 아츠가……?

비비아나

예전에 귀사의 본부를 방문한 적이 있죠. 크고 작은 응접실에 모두 두꺼운 암막 커튼이 쳐져 있더군요.

비비아나

물론 당신이 저보다 더 잘 아시겠죠. 밝은 빛 아래 드러나 남들에게 감시당하고, 감상을 받아선 안 되는 공간도 존재한다는 걸요.

글로리어스 실드 대변인

양초의 기사, 부디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저는 우리 회사의 정당한 권익을 지키고 있는 것뿐이에요.

비비아나

귀사가 입은 손실에 대해선 합당한 배상이 이루어질 겁니다.

글로리어스 실드 대변인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면 우선 저희 회사의 계획을 한 번 들어보시는 게……

비비아나

다음에요, 대변인님.

비비아나

스승님, 이만 가시죠.

오비나

비비아나, 말했잖아……

오비나

따라오지 말라고……

비비아나

죄송해요. 스승님께선 그동안 한 번도 제 일에 과도하게 간섭하지 않으셨어요. 당연히 저도 스승님의 일에 지나치게 관심을 가져선 안 되겠죠.

비비아나

하지만, 지금 스승님의 처한 상황은 저와도 관련이 있어요.

오비나

……

비비아나

…… 이런, 다리가 풀리셨네요. 제가 부축해 드릴게요.

글로리어스 실드 대변인

다들 멍하니 뭐 하고 있는 겁니까? 예비 카메라도 없나요? 어서 따라가서 찍으라고요!

비비아나

오늘 얻은 소재만으로도 3~4일 분량의 헤드라인을 뽑기엔 충분하지 않나요?

비비아나

다들 멈추시죠.

비비아나

당신들 카메라 센서가 모조리 타버리기 전에요.


오비나

……

비비아나

이래서 제가 여기 남길 바랐던 거죠, 스승님?

비비아나

제가 이 공방을 지켜주길 바라시는 거잖아요.

오비나

불꽃이 내 입을 다 태워버렸으면 좋겠네. 비비아나, 너한테 남아 달라는 말을 해서도, 네가 떠나기도 전에 성급하게 놈들을 찾아가 행패를 부려서도 안 됐는데.

오비나

나도 이젠 너무 늙었나 봐. 과하게 달궈진 쇳덩이처럼 나약해져 버렸네.

비비아나

스승님을 도와 이 공방을 지키는 것도, 재료를 사드리는 것도 제겐 마찬가지예요.

비비아나

제게 솔직히 말씀하셔도 괜찮아요. 나약하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오비나

아니, 비비아나…… 원래는 네게 도움을 청할 생각이 전혀 없었어.

오비나

시도할 수 있는 건 다 해봤거든. 너도 봤잖아, 아무리 행패를 부려봐야 별 소용없다는 거.

오비나

거기에 고작 한 사람이 더 도와준들 뭐가 달라지겠어? 상대는 무려 수백, 수천 명이야.

오비나

그런데……

오비나

누군가 내게 그러더구나. 너는 귀족이고 기사니까, 네 말 한마디는 수백, 수천 명이 말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만약 네가 이 공방의 주인이 되면, 그 누구도 여길 건드리지 못할 거라고도 했지.

오비나

이제 정말 다른 방법이 없어. 미안한데, 비비아나.

오비나

나 좀 도와다오, 양초의 기사……

양초의 기사.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녀를 그렇게 불렀을까?

비비아나는 가늠할 수 없었다. 그녀는 이 호칭만 들으면 고개를 돌려 인사하고 대답했다. 마치 전등 스위치를 켜면 불이 들어오는 것처럼.

일종의 본능적인 무감각, 일종의 무감각적인 본능

하지만 방금, 오비나가 낮은 목소리로 이 호칭을 부른 순간 비비아나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오비나

이 이상 다른 사과의 말은 하지 않으마. 하지만 부디 이것만은 알아줘……

오비나

정말로 미안하구나.

비비아나

반드시 방법을 찾을게요. 약속드려요.

비비아나

다만, 이해가 잘 가지 않는 것이 있어요.

비비아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가 가지 않아요……

비비아나

대체 왜 스승님이 제게 미안해하시는 거죠? 친구나 사제 사이에서 서로의 직위를 빌려 일을 처리하는 건, 너무나도 흔한 일이잖아요.

비비아나

스승님이 이런 어려움을 겪으시는 건, 제게도 큰 책임이 있어요. 제가 이렇게 많은 관심을 오그니스코로 끌어들이지 않았더라면……

비비아나

스승님께선 좋은 마음으로 저를 제자로 받아주셨는데, 전 지금까지 거기에 보답도 못 했을뿐더러, 오히려 선생님께 이런 민폐만 끼쳤네요. 만약 우리 중 누군가 미안해해야 한다면, 그건 당연히 저일 거예요.

오비나

그건 다른 문제야, 비비아나.

오비나

하지만 상관없어. 네가 도와준다고 했으니, 그걸로 됐구나.

오비나

적어도 네가 다음에 돌아올 때까지는 이 공방이 남아 있을 거야…… 네가 다시 돌아올 이유가 있다면 말이지만.

비비아나

……화로에 불을 지필까요?

오비나

괜찮아. 오늘은 쇠를 두드리지 않을 거니까.

비비아나는 문득 오그니스코가 너무 조용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이 시간쯤이면 도시 전체에 강철의 교향곡이 울려 퍼졌고, 오비나도 망치질 리듬에 맞춰 별 의미 없는 노래를 맑은소리로 부르곤 했다. 그녀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던 그 시끌벅적한 소음들.

하지만 지금은 가끔 들리는 나뭇잎 부스럭거리는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거리의 장인들이 모두 공방을 폐쇄하는 것에 동의했기 때문일까? 그런데 왜 파울비스트조차 아무 소리를 내지 않는 걸까?

그 순간, 비비아나는 멀리서 나는 익숙한 목소리를 들었다, 아주 또렷하게……

“글로리어스 실드의 공산품, 당신을 도와 황야를 정복하고 재앙을 물리칩니다!”


비비아나

“존경하는 집행 책임자, 쟈이크 님, 오그니스코 재건 관련 건에 관해……”

맥키

당신은 그 대장장이분을 돕기로 약속하셨죠.

맥키

그럼, 당신에겐 누가 도움을 주기로 했습니까?

비비아나

……그게 무슨 말이죠?

맥키

예전에 '특별한 수단'을 사용해서 빛의 기사를 쓰러뜨리는 걸 거부했을 때만 해도, 당신은 지금처럼 근심이 가득해 보이진 않았습니다.

맥키

제가 아는 비비아나 드로스테는 사소한 반항을 결심하면 눈에서 반짝반짝 빛이 나죠.

비비아나

여전히 그런 미세한 감정 변화에도 민감하군요, 맥키 선생님.

비비아나

만약 로즈 미디어 그룹의 산하에 시에 관한 출판물이 하나라도 남아 있었다면, 당신은 정말로 시인이 될 수도 있었을 거예요.

맥키

과찬입니다. 시의 가치를 알게 해 주신 게 당신인데, 오히려 제가 감사하죠.

비비아나

그렇다면 저도 당신의 관심에 감사드려야겠네요.

비비아나

저는 괜찮아요. 다만 아직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좀 남았을 뿐이죠. 지금은 우선 이 편지부터 다 써야겠네요.

맥키

굳이 당신이 직접 나서서 그들을 상대할 필요가 없습니다…… 저희와 함께라면 공방을, 더 나아가 오그니스코 전체를 지켜낼 수 있습니다.

맥키

글로리어스 실드는 너무 단기적인 부분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얼마 가지 않아, 왜 신병이기의 이야기가 한 도시에서만 나오는지 사람들이 의문을 품을 것입니다.

맥키

그때가 되면 잠깐의 각광을 받고 나서, 이 도시는 미개발된 시골보다도 더 암울하고 더 가난해지게 되겠죠.

맥키

당신은 글로리어스 실드 조사관보다 더 오그니스코의 아름다움을 잘 이해하고 있죠, 아름다움은 오래간다는 걸…… 당신은 그 사실을 퍼트리기만 하면 됩니다.

맥키

그랜드 나이트 영지에선 시를 못 쓴다고 하셨지만, 이곳 오그니스코는 자유의 고향이자 시인의 땅 아닙니까?

맥키

당신이 오그니스코에 대한 시를 한 편 써내기만 한다면, 우리는 이곳이 다른 형태로 개발될 수 있도록 만들 수도 있습니다.

맥키

그렇게 되면 어느 누구도 삶의 방식을 억지로 바꿀 필요도 없고, 모두가 삶의 질을 높일 수 있겠죠.

비비아나

그런데 당신은 왜 그렇게 하려는 거죠? 당신은 이 도시에 온 지 고작 이틀밖에 안 됐는데요.

맥키

당신은 이 도시에서 진심으로 살면서, 전에 느껴보지 못한 평온을 찾지 않으셨습니까.

맥키

제겐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이유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비비아나

고작 이곳이 제 안식처라는 이유만으로요?

맥키

물론이죠, 드로스테 씨.

맥키

기사단에서 '절차'에 따라 외진 도시로 가게 되어 먼 도시에서 '휴양'을 보내게 된 대다수의 기사는, 그 도시에 일말의 애정도 갖지 않습니다.

맥키

그런데 당신은 몇 번이나 오그니스코에 다시 돌아왔죠. 이곳이 당신의 안식처이기 때문이지 않습니까. 아니면 설마 다른 이유가 있는 겁니까?

비비아나

'나의 안식처'……

'자유의 고향'.

근심하는 대장장이

그러니 우리도 어쨌든 살길을 찾아야지.

'시인의 땅'.

오비나

그럼 잘 알겠네, 망치질이 바로 우리의 길이라는 걸.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래야 해.

'비비아나의 안식처'.

오비나

이젠 정말 다른 방법이 없어. 나 좀 도와다오, 양초의 기사……

오비나

정말로 미안하구나.


비비아나

비비아나의 안식처에서 안식을 찾을 수 있는 건 비비아나뿐인가요?

비비아나

저는 그저 이곳의 숲과 새소리, 화롯불과 쇳가루를 좋아하고, 또……

비비아나

이곳 사람들이 제 출신이나 지위,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아서 좋아하는 것뿐이에요.

비비아나

이 점은 당신도, 스승님도 잘 알고 있죠.

비비아나

그래서 당신은 '저를 위해서' 오그니스코를 지키자 했고, 스승님은 제게 도움을 청하면서 그토록 미안해했던 거죠.

비비아나

스승님은 '양초의 기사'란 호칭을 부르는 것이, 혹여라도 제 안식처를 무너트리는 일이 될까 봐 두려워하고 계세요.

비비아나

그리고 자신의 무력함 때문에 제가 그분에게 가졌던 기대를 저버리게 되는 걸 부끄럽게 생각하시죠.

비비아나

정작 스승님이 직면한 문제가, 바로 저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해도요.

맥키

설령 당신이 이곳, 오그니스코에 오지 않았다 해도, 지금 여기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어차피 일어날 일이었습니다.

비비아나

맥키……

비비아나

당신의 마음은 감사해요.

비비아나

하지만 당신의 제안은 받아들일 수 없어요.

비비아나

스승님에게 생긴 변화는 오롯이 제 책임이니까요.

비비아나

스승님은 제게 단순히 도움을 청하는 것만으로도, 제 안에서 스승님의 가치가 사라지게 될 거라 생각하세요. 그게 부끄럽기 때문에,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괴롭히고 계시죠……

비비아나

……마치 본인이 제 스승이나 친구가 아닌, 그저 저를 평온하게 해 주기 위한 도구에 불과한 것처럼요.

비비아나

만약 그렇다면, 제 시가 글로리어스 실드의 스튜디오와 다를 게 뭐가 있을까요?

비비아나

맥키, 제 시가 그런 것이라면……

비비아나

저는 오그니스코를 위한 시를 쓰고 싶지 않아요.

비비아나

비비아나의 시는 이제부터 오직 저만의 것이에요.

맥키

당신이 이렇게까지 고집하실 줄은…… 정말로 미처 생각 못 했습니다.

맥키

몇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비로소 당신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됐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비비아나

당신은 이미 저를 이해하고 있어요, 맥키.

비비아나

당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건 스승님이에요. 저도 이제야 겨우, 늦게나마 스승님을 이해하기 시작했죠.

맥키

……흠. 당신의 생각도 변할 수 있겠죠.

맥키

제가 한 발짝 다가서면 당신이 한 발짝 뒤로 물러서는 게, 마치 평행선을 쫓는 듯하군요.

비비아나

제 생각은 너무 단순해서, 그렇게 쫓을 가치가 없어요. 그저 당신이 스승님이 했던 잘못을 반복할까 두려울 뿐이죠.

맥키

어쩌면 저는 어떤 '구원'을 바라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드로스테 씨. 로즈 미디어 그룹의 시가는 계속 오르고 있어도, 저는 늘 가라앉는 느낌을 받고 있거든요.

비비아나

만약 당신이 아직 제게서 '구원'이라 부를 만한 무언가를 바란다면…… 제게 당신의 이름을 빌려주세요.

맥키

제 이름을요?

비비아나

카시미어에 있는 제 대부분의 자산은 노바 기사단 명의로 동결되어 있거든요. 그걸 제외한 나머지 자산을 다 끌어모으면, 아마 작은 이동식 플랫폼 하나를 살 수 있을 거예요.

비비아나

당신이 도와줄 의향만 있다면, 당신 명의로 구매하는 게 더 안전할 것 같아요.

맥키

이동식 플랫폼은 왜 필요한 겁니까?

비비아나

오그니스코를, 정확하게는 오그니스코를 아직 '화로'로 남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데리고 가려고요.

맥키

……알겠습니다.

비비아나

그럼 이만 가죠. 대초원에서 태어난 '화로'는 다시 대초원으로 돌아가야 하니까요.


오비나

모두 모였나?

흥분한 대장장이

다 모였어, 더 이상 형편없는 연기를 하고 싶지 않은 사람, 계속 쇠를 두드리고 싶은 사람은 죄다 여기 모였다고.

오비나

좋아! 그럼 오그니스코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 대초원의 '화로'는 꺼지지 않았다고.

오비나

맥키 선생! 이제 곧 출항할 거야, 준비됐지?

맥키는 이동식 플랫폼 갑판에 서서 멀어지는 황야를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흔들리는 촛불 하나. 그 불빛 아래, 바람에 휘날리는 초록 망토를 걸친 비비아나는 마치 유령처럼 보였다.

적어도 그가 시를 쓴다면, 그렇게 묘사할 것이다.

맥키

결국 떠났군요.

오비나

비비아나는 돌아올 거야.

맥키

저 옷은……

오비나

비비아나가 오그니스코에 머물 때 내가 맞춰준 거야. 기사의 제복은 평소에 이곳에서 입기엔 적합하지 않으니까.

맥키

그녀가 오그니스코와 관련된 모든 것을 포기할 줄 알았습니다.

오비나

떠나기 전에 굳이 날 불러 묻더군. 우리가 함께 공방에서 쇠를 두드렸던 날들이 정말 즐거웠었느냐고.

오비나

물론 그렇다고 했어, 당연히 즐거웠다고.

오비나

비비아나가 답하길, 자신도 즐거웠고, 그거면 충분하다더군.

오비나

그리고는, 내게 그 옷을 꺼내어 입혀달라고 했어.

맥키

“비비아나의 시는 이제부터 오직 저만의 것이에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