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일
초대를 받고 다시 이베리아로 돌아가 마을의 재건을 돕게 된 쏜즈. 그는 현지 청년과 협력하여 이베리아에서 잊힌 기념일을 함께 축하하고자 한다.
등장 오퍼레이터: 쏜즈
어서 오세요!
앗, 너는……
세트 메뉴 하나, 포장으로.
돈은 여기 놔둔다.
그래, 딱 맞네. 거스름돈은 필요 없겠…… 잠깐!
네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그, 그 옷은…… 또 무슨 실험에 실패하기라도 한 거야?
성공했다.
다만 마지막에 사소한 문제가 조금 있었을 뿐.
이게 어딜 봐서 사소한 문제라는 거야. 너 같은 외부인들은 정말 모르겠다니까……
전에 말했잖아, 내가 너랑 펠리페한테 삼시 세끼를 보내준다고. 그런데 이렇게 와버리면……
……
그리 크지 않은 식당에서 두 사람을 향해 호의적이지만은 않은 시선이 모여들었다.
마을 사람들에게 친숙하지 않은 에기르인의 모습이 사람들의 시야에 드러나자, 시끌시끌하던 주위의 소리가 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순식간에 멈춰버렸고, 바늘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마저 들릴 것 같았다.
그리고 곧 수군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저 사람이야? 얼마 전에 무슨 협력을 한다며 찾아온 외부인 말이야.
별로 감정을 드러내지는 않는 걸 보니 아무래도 평범한 녀석 같네.
조용히 해.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저 사람은 에기르인이라고.
재판소에서 저들이 돌아와도 된다고 허락하지 않았나?
그게 진짜일지 알 게 뭐야? 난 안 믿어.
만약 무슨 문제라도 있는 녀석이라서…… 어느 날 정말 잡혀가기라도 한다면 괜히 엮이기 싫단 말이야.
최근 몇 년간은 괜찮았지만, 십여 년 전에 재판소에서 사람을 잡아들이던 시절을 잊었어?
그, 그걸 잊을 리가. 그땐 나도 젊었는데, 검문을 한참이나 받았어. 하마터면 잡혀갈 뻔했거든.
네 말이 맞아. 조심하는 게 좋겠어. 아무튼 에기르인이니까……
……
시끄럽네.
에기르인은 무심하게 테이블에 놓인 술잔을 집어 들었다.
그의 손가락이 느슨하게 풀리자 잔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날카로운 소음을 만들어냈다.
식당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히익! 설마 우리 대화를 들은 건 아니겠지?
그, 그럴지도 몰라. 아무튼 입 다물어.
너……
잔은 배상할게.
상관없어……
그래. 신경 쓰지 마.
이상하네. 그건 내가 해야 하는 말이잖아. 시, 신경 쓰지 마.
다들 나쁜 사람은 아니야. 그냥 어쩔 수 없어서……
괜찮아. 언젠가는 익숙해져야 하니까.
하지만…… 슬프지 않아?
이장님한테 들었어. 너와 네 친구들은 우리를 도와주러 온 거라며?
우리가 협력을 요청했으면서 너희가 이런 대우를 받게 하다니……
응? 잠깐. 뭔가 오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지 상관없다. 그리고 방금 내 말은 이베리아인이 익숙해져야 한다는 얘기였고.
……응?
재판소에서는 이미 결정을 내렸다.
이베리아인도 외부와 소통을 시작했잖아. 나처럼 쫓겨났다가 돌아올 수 있게 된 에기르인도 점점 많아질 거다.
도움을 받기로 했으면 길에서 우리와 마주치는 것도 익숙해져야 할 거고.
……그래서 매일 마을을 산책하는 거야?
산책이 아니라 측량이다. 길의 너비를 알아야 하니까.
놀랍게도 이곳은 수십 년 동안 시간이 멈춘 것 같다. 수리해야 할 곳도 많고.
뭐가 달라…… 어차피 거리를 돌아다니는 건 마찬가지인데. 요즘 식당에 오는 손님들이 전부 네 얘기로 들떠있어.
상관없다.
풋…… 알았어. 네가 괜찮다면 괜찮은 거겠지.
그래서 너랑 펠리페는 준비를 모두 끝낸 거야?
설마 모두를 위한 서프라이즈를 준비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펠리페가 기념일을 축하하는 거라고 했는데…… 이 근래에 기념일이 있었나?
난 그냥 도와주는 것뿐이다. 펠리페의 아이디어는 훌륭해. 이제 마지막 조정만 마무리하면 돼.
기념일은 보면 알게 될 거다.
너희들…… 뭔가 엉뚱한 짓을 하려는 건 아니지?
예전에는 며칠 밤낮 동안 이어지던 기념일도 있었다고 들었어. 사방에 꽃과 환호성이 가득했고, 게다가 낮에도 불꽃놀이가 있을 정도였다고 하니…… 정말 상상이 안 가.
아쉽게도 이젠 그런 축제를 볼 수 없어.
지금도 늦지 않아.
펠리페는 모두가 참여하기를 바라더라. 예전의 이베리아처럼.
……걔는 아직도 그 책들을 읽어? 《알폰소 선장의 모험》, 《대해적과 황금의 제국》 같은 책 말이야.
나쁠 것도 없잖아.
황금기의 이베리아는 몹시 오만했지만, 간신히 연명하고 있는 이 나라에 비하면 그래도 칭찬할 부분도 많았지.
……
펠리페는 기계 쪽의 재능이 있지. 기회만 된다면 이곳을 떠나서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해보라고 하고 싶어.
더 넓은 세계……
정말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어.
여기 세트 메뉴 나왔어. 자, 가져가.
그리고…… 이건 펠리페의 몫이야. 이것도 부탁할게.
돈.
괜찮아.
그냥 다른 사람들을 대신해 감사를 표하는 거로 생각해 줘…… 사실 펠리페와 네가 준비하는 기념일 서프라이즈를 엄청 기대하고 있거든.
책 속의 그런 풍경을 볼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아.
……
알았어.
어? 뭘 알아? 그게 무슨……
……가버렸잖아.
정말 이상한 사람이야……
펠리페, 기다려.
안 들려? 기다리라고.
……무슨 일이야?
내가 좀 바빠서, 별일 아니라면……
잠깐만,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는 거야?
설마 또 그 에기르인이랑 괴상한 걸 만드는 건 아니겠지?
……너희하고는 상관없는 일이잖아.
그리고 쏜즈 씨는 우리가 모셔 온 손님이니까, 최소한의 예의라도 갖춰주면 안 돼?
걔가 말썽을 부리지 않는다면 당연히 그러지. 하지만 그거랑 거리를 두는 건 별개야.
게다가 걔는 무슨 코드네임이랍시고 너한테 본명도 알려주지 않았잖아…… 대체 어떤 놈인지 알 게 뭐야? 어쩌면 강도였을지도 모르지!
쏜즈 씨는 로도스 아일랜드의 직원이라고 했어!
게다가 원래 이베리아인이었고. 무슨 사정 때문에 떠나게 된 거라고 했어……
로도스 아일랜드? 처음 들어 보는데?
거봐, 사정 때문에 여길 떠났다고 하잖아? 그 사정이 뭔데? 걔가 미친 에기르인들과 다르다고 장담할 수 있어?
만약 재판소에서 잡아가는 그런 녀석인데 단순히 잘 위장하고 있는 거라면……
그만 해!
윽……
그건 너희들의 억측이잖아. 아무런 근거도 없이!
내일이 무슨 날인지 몰라? 내일은……
내일이 뭐?
……내일 알려줄게.
아무튼 나는 재판소의 판단을 믿어. 또한 나도 쏜즈 씨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확신해.
……알았어, 펠리페. 우리가 너무 심했던 것 같다. 그 에기르인…… 쏜즈라고 했나? 그 녀석이 능력이 있을지도 몰라.
그리고 내일 대체 뭘 할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기다리고 있을게.
하지만 우리가 널 걱정하는 건 사실이야. 정신 똑바로 차리고 에기르인이랑 너무 엮이지 마!
……
내가 잘못한 걸까?
너 같은 이베리아인은 확실히 드물지도 모르지.
앗! 쏜즈 씨! ?
대체 언제부터……
“괴상한 걸 만드는 건 아니겠지?”부터.
자, 마틴 식당의 직원이 전해달라고 한 거다.
아, 고마워요……
아니, 아니지! 쏜즈 씨! 방금 일은 정말 죄송해요!
다들 나쁜 사람들은 아니에요. 그러니 너무 맘에 담아두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그냥, 그냥 다들 조금 불안해서 그래요. 오랫동안 외부인을 보지 못했으니까요.
……
쏜즈 씨? 왜 그래요?
머리가 아파.
사람들이 계속 내게 사과하는 게 싫어.
죄, 죄송합니다!
……
뜻밖의 방식으로 고향에 돌아온 에기르인은 아무 말 없이 한숨을 쉬었다.
과거는 이미 마음속 깊이 묻어 두었지만, 아무리 그가 아랑곳하지 않는 태도를 고집한다 해도, 이곳과 이곳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특별한 구석이 있기 마련이다.
그게 에기르인이 지금 이곳에 서 있는 이유기도 하다.
그에게는 그럴만한 능력이 있었기에, 자신의 마음을 따라 다시는 돌아올 일이 없을 거라 믿었던 이곳에 다시 돌아왔다.
사과할 건 없다.
하지만……
기계 조정은 끝났어? '자동 영구 설탕 분무기'를 만들고 싶어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저번 테스트에서는 지속 능력이 조금 부족했었지?
아, 그거 말인데요! 마침 얘기하려던 참이었어요. 효율과 지속 능력을 올리기 위한 대략적인 방향을 잡았거든요!
전부 쏜즈 씨가 주신 위디 씨의 메모 덕분이에요……
기회가 된다면 직접 감사 인사를 전해.
네, 꼭이요!
거기에 쏜즈 씨가 만들어주신 약제까지 있으니, 내일은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해줄 수 있을 거예요!
그래.
참, 이번에 쓸 약제 말인데 조금 더 개선해야 할 것 같다.
……펠리페, '미드데이 플레임' 본 적 있어?
쏘, 쏜즈 씨!
콜록, 콜록콜록……
쏜즈, 콜록, 씨! 괜찮아요?!
괜찮아.
배합에 실패했을 뿐이다.
아무리 봐도 괜찮아 보이지는 않는데요……
잠깐만요, 머리카락이, 쏜즈 씨, 머리카락이 타버렸어요!
응? 아……
잘라야겠다.
쏜즈 씨? 그 칼은 왜…… 자, 잠깐만요! 그렇게 칼로 자르지 마요……!!
제발 부탁이에요. 그, 제가 대신 자르게 해주세요!
……
그럼 부탁할게.
하, 하하, 아니에요……
자…… 이러면 괜찮을 거예요.
고맙다.
혹시 모르니 조금 멀리 떨어져 있는 편이 좋을 거야.
……쏜즈 씨의 실험은 항상 이렇게 위험한가요?
그놈들이 당신을 초대했으면서 이런 외진 곳에, 거기다 쓸만한 실험 설비도 없이……
괜찮다. 여긴 아주 편해.
기본적인 설비는 있으니 한동안은 충분해. 복잡하고 정교한 쪽은 신청해야겠지만.
신청이요……?
재판소에 말이야.
예전에 놈들이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을 잡아갈 때, 좋든 나쁘든 섬 주민들이 가져온 모든 걸 몰수해버렸지. 지금의 이베리아에서는 이미 사라져버린 기술도 재판소에서는 그리 드물지 않아.
이제 그것들을 다시 쓸 때가 온 것 같네.
……
저희 마을에 이제는 에기르인이 없는데.
예전에는 적지 않게 있었대요. 저희 부모님 때는 리베리든 에기르든 서로 허물없이 잘 지냈다던데……
징벌군이 마을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네. 징벌군이 나타나기 전까지는요.
많은 사람이 잡혀갔어요. 대부분이 에기르인이었죠. 게다가 그들과 가깝게 지냈던 다른 종족 사람들도 일부 잡혀갔고요.
남은 에기르인들은 그 이후에 잇달아 떠나버렸어요. 사람들은 그들이 스스로 떠났다고 하지만……
넌 동의하지 않구나.
모…… 모르겠어요. 직접 경험한 건 아니니까요.
쏜즈 씨, 당신은 아마 알고 있겠죠……
……
쏜즈는 알고 있었다.
이베리아가 바다의 위협을 눈치챈 순간부터, 재판소가 바다로부터 기어 나온 촉수들을 숙청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이베리아에 있는 에기르인들의 운명은 이미 결정되었다.
어떤 곳은 그나마 숨을 수 있었고, 어떤 곳은 숨을 곳도 없었다.
눈앞의 이 마을은 그저 공교롭게도 후자가 되었을 뿐이다.
억압에 대한 공포는 언제나 이베리아 상공을 맴돌고 있었다. 그들이 스스로 떠났든 아니면 쫓겨났든, 결과적으로 다를 게 없어.
황야로 향하든, 바다에 돌아가든, 어느 쪽이든 남는 것보다 나으니까.
……쏜즈 씨도 그래서 떠난 건가요?
그래.
그럼 어째서…… 어째서 지금 다시 돌아온 거죠?
밖은 넉넉하게 살 수 있잖아요. 그 정도는 저도 알아요.
이상한 질문이네.
이유가 필요해?
……네……?
어디로 갈지는 정했어?
어디든 상관없다.
이 나라를 떠나서 바깥세상을 둘러봐도 좋아.
눈빛이 매우 차분하구나.
같이 떠나자고 하지 않은 사람은 너뿐이야.
당신이라면 여기를 떠나지 않을 테니까.
……당신은 무고하지 않아.
하하.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지.
자, 이만 떠나거라. 너는 주장이 뚜렷하니까, 네가 하고 싶은 걸 해.
그리고 생각을 멈추지 마라. 우리는 우리의 생각에 따를 권리가 있어. 그게 우리를 어디로 이끌든.
……
기억할게.
선생님, 안녕.
깊이 생각할 필요는 없어.
이베리아는 기회를 줬고, 나와 다른 에기르인들은 그 조건을 받아들인 것뿐이다.
그런가요……
……내가 아는 한 바보는 이베리아가 반드시 변할 거라고 믿었어.
하지만 나는 어떻게 변하든 상관없어.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뿐이야.
쏜즈 씨는 언제든지 냉정하시네요.
……
이곳을 떠난 에기르인들, 우리의 형제였던 그 사람들도……
언젠가 돌아오지 않을까요?
네가 원한다면 그렇게 될지도 모르지.
펠리페, 너는 그날을 위해서 계속 준비해온 거 아니야?
……
뭐 하는 거냐, 펠리페!
길을 전부 막아버리다니…… 이 괴상한 기계는 또 뭐냐!
장난치지 말고 얼른 집에 돌아가!
파블로 아저씨, 난 오늘이 무슨 날인지 저는 알고 있어요.
옛날에 먼 곳에서 찾아온 친구들이 우리와 손을 잡고 황금의 시대를 일궈냈죠……
그리고 오늘은 원래 우리가 손을 잡는 날이어야 합니다.
그게 무슨 헛소리냐……
파블로 아저씨, 제가 정말 헛소리를 한 걸까요?
……
이미 오래전의 일이다. 지금은……
아무도 그런 말을 하지도 않고, 할 용기도 없겠지.
하지만 이베리아인이라면 당연히 기억해야 한다.
……오늘은 기념일이다.
기념일……? 그런 날이 있었나?
처음 들어봐……
……늦게 태어났으니 못 들어본 것도 당연하겠지.
내가 어렸을 땐 함께 축하했어. 밤낮으로 광장에서 축제를 벌였고, 서로 형제라고 불렀지.
에기르인은 신기한 것들을 잔뜩 만들어냈어. 육지에서 달리는 배, 자동으로 쏘는 폭죽, 그리고 불빛 색깔이 계속 바뀌는 등대……
하지만 왜 난 한 번도 못 들어봤지?
……더는 축하하지 않았으니까.
그 이후…… 그 무서운 일이 일어나고 나서는.
……
그럼…… 저들의 말이 사실이라는 거야?
우리에게 정말 그런 기념일이 있었다고?
당연히 사실이지.
쏜즈 씨, 부탁드릴게요!
좋아.
리베리와 에기르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사람들 사이에 섰다.
그들의 모습에 늙은 주민들은 눈시울이 붉어졌다. 기나긴 세월과 무언의 억압 속에서 기억은 퇴색되어 버렸다. 그들도 오래전에 비슷한 광경을 본 적이 있었을까?
모두가 두 사람을 지켜보는 가운데, 에기르인은 손을 들어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많은 사람들이 찬란했던 과거와 자신감으로 가득했던 시대를 떠올렸다.
불꽃놀이……?
정말 대낮에도 불꽃놀이를 볼 수 있었구나.
책에 적혀있던 게 진짜였다니……
어쩌면 오늘도 언젠가는 책에 기록될지도 모르겠네.
하하, 저도 대선장 알폰소처럼 이야기 속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요? 상상이 안 되네요.
그리고…… 쏜즈 씨, 쏜즈 씨!
음?
얼굴, 얼굴이요! 얼굴에 불꽃 가루가 묻었어요!
아……
뭐, 축하인 셈 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