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파울비스트 한 쌍

파울비스트 한 쌍

오퍼레이터 레코드브릿지

사일라흐는 친구들을 추모하기 위해 힐록 카운티에 위치한 폐허로 돌아온다. 그리고 사일라흐는, 뜻밖에도 아직 사람들이 그곳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등장 오퍼레이터: 사일라흐


사일라흐

사실 로도스 아일랜드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전 제가 마주할 일들에 대해서 어느 정도 예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실제로 마주하고 보니, 제가 했던 모든 준비들은 결국 무용지물에 불과했더군요.

사일라흐

군인으로서, 정말 보잘것없는 의장병으로서, 전 생명의 힘과 그것을 가볍게 빼앗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믿어 왔었습니다.

사일라흐

하지만 지난 일 년간 본함을 타고 사방을 누비며 많은 분들과 만났고……

사일라흐

많은 사람들은 마치 무심히 스쳐 가는 바람처럼, 그 존재를 미처 인식하기도 전에 홀연히 사라져 버리고 말더군요.

사일라흐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사일라흐

전 눈앞에서 사라져가는 생명을 기억하려고 노력했지만, 일 년이 지난 지금, 고작 1년 만에 모두 제 기억에서 사라졌습니다.

사일라흐

당신도 이 모든 일을 겪으셨겠죠?

사일라흐

……물론 당신은 제게 답을 주지 않으시겠지만요.

사일라흐

하아……

사일라흐

저도, 당신 앞에서 이야기를 잔뜩 늘어놓는 습관은 변하지 않았나 보네요.

사일라흐

오늘은 꽃다발을 가져왔어요. 이곳으로 오는 차량이 없어서 걸어왔더니, 꽃이 조금 시들긴 했네요.

사일라흐

(누군가가 있어……?)

사일라흐

죄송해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

너구나, 제인 윌로우.

???

네가 왜 여기에……

사일라흐

어떻게 내 이름을 아는 거지?

???

주, 죽이지 말아줘!

???

액톤! 액톤 코르세어야! 제5방위대 소속의, 힐록 카운티 주둔군 제6대대 사람이지. 네, 네가 아직 기억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우린 사실 몇 년 전에 만난 적이 있어!

사일라흐

액톤……

사일라흐

음, 생각났어. 확실히 당신을 본 기억이 있어. 하지만 왜 여기에 있지? 이곳에 주둔하던 군대는 진작에 철수한 거 아니었나?

부상 당한 병사

(소매를 걷는다)

부상 당한 병사

난……

사일라흐

그 팔은…… 설마 그때 17구역에서 탈출하지 못한 건가?

부상 당한 병사

더티밤이 떨어졌을 때, 우린 누구 하나 철수 지시를 듣지 못했어. 단순히 기계가 고장 난 건지, 다른 간부가 말하는 걸 잊어버린 건지, 아니면……

부상 당한 병사

하, 농촌의 상식이잖아. 잡초를 제거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희생되는 보리 싹들이 있다는 거.

사일라흐

……정말 미안해, 액톤.

부상 당한 병사

네, 네가 사과할 필요는 없어. 그런데 제인, 네가 왜 여기 있는 거야?

사일라흐

난…… 돌아가신 한 지인을 조문하기 위해서 왔어.

사일라흐

당신은? 이 폐허에 살고 있는 거야……?

부상 당한 병사

아니, 우리 캠프는 여기 섹터 밖 황야에 있어. 난 먹을 걸 찾으려고 폐허에 온 거고, 설마 여기서 널 만나게 될 줄은 몰랐어.

사일라흐

그러니까 당신 말고도 여기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소리야?

부상 당한 병사

그래, 남겨졌거나 운 좋게 살아남은 타라인들은 여기서 떠돌며 살고 있지.

부상 당한 병사

그 일이 있고 난 이후로, 군은 운 좋게 살아남은 감염자들을 관리하려고 했어. 그래서 여러 차례 탐색을 나오기도 했는데, 우린 다행히도 군을 피할 수 있었지.

부상 당한 병사

군은 이곳의 파괴와 오염 정도가 너무 심각하다고 판단한 건지, 이 블록 전체를 아예 버리기로 결정한 것 같아. 여기 사는 사람들도 그렇게 방치된 거고.

사일라흐

그럼…… 아까 뭐 찾은 거라도 있어?

부상 당한 병사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하하, 아무래도 며칠은 더 굶어야 할 것 같네.

사일라흐

식량이랑 약이라면 조금 가지고 있는데, 괜찮다면 받아줘.

부상 당한 병사

고마워, 제니.

사일라흐

혹시 여기에 발신 장치가 있을까? 가능하다면 동료들한테 연락하고 싶은데. 내 동료들이라면 너희들한테 물자를 보내줄지도 몰라.

부상 당한 병사

음, 폐허에서 본 적 있는 것 같은데.

사일라흐

그게 어디야?!

부상 당한 병사

그렇게 멀진 않은데, 그쪽은 타라인의 활동 영역이라…… 놈들이랑 마주치기라도 한다면 좀 골치 아플 거야.

부상 당한 병사

그놈들과는 적이긴 하지만 지금 같은 환경에선 양측 모두 더 이상의 충돌을 바라진 않지.

부상 당한 병사

그래서 평소엔 가능한 한…… 서로를 피하고 있어.

사일라흐

어느 방향인지 알려 줘, 액톤. 그래도 시도는 해 봐야지.


사일라흐

전방에 있는 구역의 활성 오리지늄 농도는 이미 안전 기준치를 넘어섰는데…… 설마 타라인들은 저런 환경에서 살고 있는 거야?

사일라흐

이렇게 걸었는데……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다니.

사일라흐

잠깐, 저건?!

사일라흐

거기 당신,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사일라흐

전 당신을 해칠 생각이 없습니다!

사일라흐

여기 구급약과 식량들이 있습니다. 이걸 드릴 테니, 혹시 제게 발신 장치가 어디 있는지 알려 줄 수 있으신가요?

깡마른 여인

당신……

깡마른 여인

방금 약이 있다고 하셨죠, 정말인가요?

사일라흐

정말이에요. 자, 이걸 보세요. 필요하다면 가져가셔도 좋아요.

깡마른 여인

따라오세요.


깡마른 여인

에이슬린, 나 왔어. 사람을 데려왔는데……

죽어가는 여자아이

너무 아파…… 도와줘.

깡마른 여인

제 딸입니다만, 혹시 그 약으로 딸을 치료할 수 있을까요?

사일라흐

이건…… 증상이 너무 심각한데. 이런 구급약으론 효과가 없을 거예요.

깡마른 여인

시도라도 해 볼 수 없을까요? 아직 7살도 안 됐어요……

사일라흐

알겠습니다…… 일단 최대한 노력해 보겠습니다.

사일라흐

에이슬린, 내 말 들리니?

사일라흐

(주사기를 아이의 몸에 찔러넣는다)

사일라흐

괜찮을 거야. 긴장하지 마.

깡마른 여인

어떻죠?!

사일라흐

죄송하지만, 이 약으론…… 소용이 없을 것 같습니다.

죽어가는 여자아이

……어두워…… 엄마, 나…… 무서워.

깡마른 여인

에이슬린, 에이슬린 무서워하지 말렴. 엄마가 네 옆에 있단다.

사일라흐

……죄송합니다.

사일라흐

이건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죽어가는 여자아이

추워……

깡마른 여인

(아이를 껴안는다)

사일라흐

저……

깡마른 여인

가세요. 이쪽으로 다시는 오지 마세요.

사일라흐

식량은 여기에 둘게요.

사일라흐

당분간은 계속 이 섹터 밖 황야에 머물 예정이니, 혹시 도움이 필요하다면 절 찾아오세요.

사일라흐

실례했습니다, 저는 최대한 빨리 여기서 떠나도록 할게요.

깡마른 여인

……당신이 찾는 장비는 저쪽 반대편 건물 안에 있으니, 알아서 가져가세요.

사일라흐

……고맙습니다.


부상 당한 병사

앗, 조심해!

사일라흐

휴우…… 당신들 캠프가 이렇게 멀리 있는지는 몰랐어.

부상 당한 병사

이렇게 커다란 걸 너 혼자 옮겨온 거야?

사일라흐

이 정도쯤이야. 액톤, 그렇게 보고만 있지 말고, 일단 이걸 쓸 수 있을지부터 확인해 보자.

부상 당한 병사

자, 여기 드라이버.

사일라흐

운이 좋네, 내부는 멀쩡해. 몇 가지만 조정하면 충분히 쓸 수 있겠어.

부상 당한 병사

기계 수리까지 할 줄 아는 거야? 신기하네…… 이런 건 도대체 언제 배운 거야?

사일라흐

그러게, 새로운 직장에서 많은 걸 배웠다는 말밖엔 할 말이 없네. 이제 다 됐어, 드라이버는 돌려줄게, 고마워.

부상 당한 병사

발전 장치를 연결해 볼게.

부상 당한 병사

어때? 불 들어왔어?

사일라흐

응, 잘 작동하고 있어.

부상 당한 병사

이 장비는 어떻게 찾은 거야? 타라인들과 부딪히진 않았어?

사일라흐

그냥 가지고 있던 물자로 거래했어.

부상 당한 병사

다행이야, 그나마 눈치는 있는 사람이었나 보네.

사일라흐

액톤……

부상 당한 병사

왜 그래?

사일라흐

물자가 올 때까지는, 시간이 꽤 많이 걸릴 거야.

사일라흐

그동안 난 자급자족을 위해 농사를 지을 밭을 개간하고 싶어. 이쪽이 섹터 수색보다는 안전하고 효율도 좋을 테니까.

부상 당한 병사

좋은 생각이긴 한데…… 지금은 캠프 상황도 안 좋고, 일할 수 있는 사람도 많지 않아.

사일라흐

그 떠돌아다닌다는 타라인들을 끌어들이면 좋을 것 같은데…… 식량이랑 깨끗한 식수를 제공한다면, 그 사람들도 거절하진 않겠지.

부상 당한 병사

그건 말도 안 돼. 놈들이 여기 오면 우릴 죽이려고 들 거야!

사일라흐

액톤, 나도 양쪽의 갈등이 심한 건 알고 있지만, 상황을 봐봐, 지금은 다른 선택지가 없잖아.

사일라흐

내가 일시적으론 너희를 도울 수 있지만, 앞으로는 너희 스스로 노력해야 해. 그리고 지금 너희와 함께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은, 같은 감염자인 타라인들밖에 없어.

사일라흐

그러니까 지금은 과거의 원한을 잊고 함께 살던가, 아니면 원한을 품은 채 같이 죽던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돼.

부상 당한 병사

생각 좀 해 볼게…… 다른 사람들이랑도 한번 얘기해 봐야겠어.

사일라흐

액톤, 아까 발신 장치를 찾다가 한 여자를 만났어…… 그 여자에게는 아픈 딸이 있었고, 내가 딸을 구하지 못했는데도 길을 알려 줬어.

부상 당한 병사

그 여자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사람 말하는 거야? 나도 알아. 어쩐지…… 요즘은 잘 안 보이더라고.

부상 당한 병사

하아, 그 여자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그 참사 때문에 남편도 부모도 형제자매까지 전부 잃었는데…… 이젠 딸까지 잃었다니.

사일라흐

그러니까 액톤, 한 번만 다시 생각해 줘. 그 사람들도 너희처럼 그냥 살아남고 싶은 사람일 뿐이야.


성질 급한 타라 남성

척, 넌 쟤네 말 믿어? 난 아무리 생각해도 이 녀석들이 우릴 습격하려고 그러는 것 같은데.

무덤덤한 타라 남성

잘 모르겠는데, 알고 싶지도 않고. 며칠째 밥을 못 먹었더니 지금은 먹을 거밖에 생각 안 나.

성질 급한 타라 남성

이건 무조건 함정일 거야. 그 병사놈들이 이렇게 착할 리가 없다니까?

무덤덤한 타라 남성

너도 말은 그렇게 하지만, 결국엔 이렇게 따라왔잖아.

성질 급한 타라 남성

흥…… 그 와이번이 광석병을 완화하는 약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온 것뿐이야. 요 며칠 광석병 때문에 너무 아팠거든.


부상 당한 병사

캠프 동쪽엔 간이 정수 장치가 있고, 남쪽엔 앞으로 개간할 밭이 있어. 환자는 북쪽에 있는 천막에서 치료를 받도록.

부상 당한 병사

매일 점심 저녁, 2회 지정 시간에 캠프 중앙에서 음식을 받아가면 돼.

부상 당한 병사

크흠…… 일단은 이 정도인데. 제니, 혹시 더 할 말 있어?

사일라흐

혹시 몸이 야위고 키가 작은 한 여성을 본 적 있습니까? 며칠 전에 딸을 떠나보낸 사람입니다만.

성질 급한 타라 남성

마리엘, 마리엘을 말하는 건가?

사일라흐

갈색 머리에, 눈 밑에 점이 있어요.

성질 급한 타라 남성

그래, 마리엘이 맞군. 근데 그 사람은 왜 찾는 거지? 뭐 잘못한 거라도 있나?

사일라흐

아뇨, 그냥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서요.

성질 급한 타라 남성

글쎄, 못 본 지 꽤 됐는데. 어쩌면 어딘가에서 죽어 버렸을지도.

사일라흐

……당신들은 서로의 사정을 잘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성질 급한 타라 남성

여기서?!

성질 급한 타라 남성

잘 들어, 와이번. 여기선 타인을 신경 쓸 틈 따윈 없어.

성질 급한 타라 남성

그런 눈으로 보지 마. 난…… 사실을 했을 뿐이니까.

사일라흐

아닙니다, 오는 길이 꽤 멀었을 텐데 오늘은 일찍 쉬도록 하죠. 내일은 할 일이 많을 겁니다.


부상 당한 병사

난 이해가 안 가, 제니. 먹을 것과 지낼 곳을 제공하다니,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야?

부상 당한 병사

저 녀석들이 우릴 좋게는 안 볼 거라곤 예상했었어. 하지만 적어도 시비는 안 걸어야 하는 거 아니야?

부상 당한 병사

근데 어제는 일하다가 싸움이 났다며! 그 일로 아직 누워 있는 녀석도 있다니까.

사일라흐

흠…… 열매가 너무 높은 곳에 있어서 그런가, 손이 안 닿네.

부상 당한 병사

제니, 제니! 내 말 듣고 있어?

사일라흐

응? 아, 그거. 나도 알아. 하지만 그건 네 쪽 사람이 먼저 무례하게 굴어서 싸움이 난 거야, 액톤.

부상 당한 병사

그거 누구한테 들었어?

사일라흐

싸움이 일어나자마자 내가 바로 현장으로 달려갔었어. 머리를 한 대 맞았다던 사람을 옮긴 것도 나고.

부상 당한 병사

그…… 전후 사정은 확실히 파악한 거야, 제니?

사일라흐

그래. 그러니까 우선 사과의 의미로 네가 이 과일을 줘 보는 건 어떨까?


아파하는 환자

너무 아파요…… 전 이렇게 죽는 건가요, 사일라흐 씨?

사일라흐

괜찮아. 진통제는 놓았으니까, 조금만 참으면 효과가 있을 거야.

아파하는 환자

……감사합니다, 콜록콜록.

사일라흐

어때, 조금 나아졌어?

아파하는 환자

너무 무서워요…… 혹시 아무 얘기라도 들려주실 수 없을까요?

사일라흐

무슨 이야기가 듣고 싶은데?

아파하는 환자

뭐든 좋아요…… 지금은 그냥,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고 싶을 뿐이에요.

사일라흐

좋아, 그럼 시는 어때?

아파하는 환자

부탁드립니다……

사일라흐

“다만 우리가 한 쌍의 하얀 파울 비스트가 되어, 저 파도의 끝에 나타나길 바랄 뿐이다.”

사일라흐

“시대는 우릴 잊을 것이고, 슬픔도 우릴 다시 찾지 않을 것이다……”

무덤덤한 타라 남성

사일라흐 씨……

사일라흐

쉿, 지금 잠들었어.

사일라흐

(척 씨, 저들을 돌봐줘서 고마워요.)

무덤덤한 타라 남성

(됐어. 과일 먹을래? 하나 가져다줄게.)

사일라흐

(과일? 직접 딴 거예요?)

무덤덤한 타라 남성

(아니, 어떤 풋내기 병사 한 놈이 준 거야. 맛은 괜찮더라고. 왜 갑자기 우리한테 잘해주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사일라흐

(아마 저번 일에 대한 사과일 거예요.)

무덤덤한 타라 남성

(글쎄……)

아파하는 환자

으윽…… 추워.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남자는 부드러운 손길로 환자에게 이불을 다시 덮어 주었다.

무덤덤한 타라 남성

(쳇, 잘 때도 얌전하지 못한 놈 같으니.)


사일라흐

액톤, 어서 일어나!

부상 당한 병사

무슨 일이야, 제니?

사일라흐

북쪽 환자용 천막에 누수가 너무 심해, 먼저 상황을 보러 갈 테니까 일손 좀 모아와!

부상 당한 병사

뭐?! 잠깐, 금방 갈게.

사일라흐

서둘러, 액톤!

부상 당한 병사

안에 있는 환자들은 어때? 무슨 계획이라도 있어? 빌어먹을, 비에 상처라도 젖으면 병세도 악화될 텐데 어쩌지?

사일라흐

타라인들이 먼저 움직여 줬어. 천막에 있던 사람들은 아마 이미 다른 천막으로 이동했을 거야.

부상 당한 병사

아?

사일라흐

그러니까, 타라인들이 이미 모든 환자들을 이동시켜 준 덕분에 다들 안전하다는 거야!

부상 당한 병사

우리 쪽 사람들도?

사일라흐

그래, 병사들도. 다만 내가 가져온 약들은 미처 옮기지 못해서 아마 물에 잠겼을 거야……

부상 당한 병사

괜찮아, 그건 내가 어떻게든 해 볼게.


사일라흐

같이 액톤을 찾아준다고 해서 고마워, 데이글런.

성질 급한 타라 남성

감사는 네 손에 있는 약한테 해.

사일라흐

사실 내 수중엔 약이 많지 않았어. 요 며칠 모두에게 나눠 주고 있는 약들은 사실, 액톤이 위험을 무릅쓰고 폐허 속에서 찾은 것들이야……

성질 급한 타라 남성

쳇, 귀찮아 죽겠네.

성질 급한 타라 남성

액톤! 이 망할 녀석은 대체 어딜 간 거야, 소리라도 내봐!

부상 당한 병사

여…… 여기야. 갇혀 버렸어.

사일라흐

다친 데는?

부상 당한 병사

다친 곳은 없어. 근데 나가는 길이 막혀 버려서……

성질 급한 타라 남성

이런 지하실엔 뭐 하러 온 거야?

부상 당한 병사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일단 꺼내 줘. 여기 다쳐서 의식을 잃은 여자가 있어.

사일라흐

알았어, 내가 당겨줄게.

성질 급한 타라 남성

마리엘이잖아…… 아직 살아 있었던 건가?


부상 당한 병사

스콘 먹을래?

성질 급한 타라 남성

스콘? 장난해? 그런 걸 만들 재료가 어디 있다고?

부상 당한 병사

제니가 만들었어. 어제 숲에서 뭘 따오더니만, 이런 걸 만들어 낼 줄이야.

성질 급한 타라 남성

정말? 그럼 나도 하나 줘봐.

부상 당한 병사

이런 곳에서 디저트 같은 걸 먹게 될 줄이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다녔는데.

성질 급한 타라 남성

그 녀석은 우릴 모아 황야를 개척한 데다 파울 비스트도 키워내고, 부상자들을 치료한 다음 오두막까지 수리하더니만, 이젠 디저트를 만들어 냈네.

부상 당한 병사

얼른 먹기나 해. 하나 더 먹을래?

성질 급한 타라 남성

아니, 마리엘한테 줘.

부상 당한 병사

마리엘은 좀 어때?

성질 급한 타라 남성

많이 좋아졌는데 여전히 아무 말도 안 해. 아이를 잃은 충격이 어지간히 컸던 모양이야.

부상 당한 병사

제니가 고생하네. 요 며칠 계속 마리엘 옆에 있었잖아.

성질 급한 타라 남성

하, 양반은 못 되는구먼.

사일라흐

액톤! 동료들로부터 답장이 왔어!

부상 당한 병사

다행이네, 제니.

사일라흐

후우…… 메시지에 따르면, 남쪽 사무소에서 일부 물자를 긴급 조달해 주겠대.

부상 당한 병사

물자는 언제 오는데?

사일라흐

순조롭다면, 아마 일주일 정도.

성질 급한 타라 남성

그렇게 빨리?

사일라흐

일단은 진정해. 동료 말로는 아무래도 수송팀에 무슨 문제가 생긴 모양이더라고, 그래서 지금 이쪽의 위치를 특정할 수 없대. 아무래도 전파 문제 같은데……

성질 급한 타라 남성

괜찮아, 좀 이따가 내가 전파 증폭 장치가 있는지 찾아보고 올게.

사일라흐

부탁할게. 그리고 한 가지 더. 캠프 중심에 표시용으로 꽂을 깃발이 하나 필요해. 이걸 위치 추적 장치랑 같이 사용하면 수송팀이 더 확실하게 우리의 위치를 알 수 있을 거야.

성질 급한 타라 남성

깃발? 별로 고민할 것도 없잖아. 어디 눈에 띄는 천 쪼가리 하나 주워서 걸어두면 되지.

부상 당한 병사

도안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는데.

성질 급한 타라 남성

도안이라면 예전에 쓰던 군 깃발이라도 하나 주워 오던가.

부상 당한 병사

뭐야, 아직도 자기가 힐록 카운티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성질 급한 타라 남성

흥, 싫으면 너희 주둔군의 깃발을 가져다 쓰든지. 섹터 어딘가에 있겠지.

부상 당한 병사

됐어…… 그런 건 이제 평생 보고 싶지 않아.

성질 급한 타라 남성

그럼…… 네가 아이디어라도 내 보든가.

부상 당한 병사

제니, 혹시 무슨 좋은 생각이라도 있어?

사일라흐

나도 잘 모르겠는데. 이건 모두의 의견을 들어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성질 급한 타라 남성

흥, 모두의 생각 따위, 네 생각이 가장 좋은 생각일 게 분명한데.

부상 당한 병사

으음…… 나도 그렇게 생각해.


사일라흐

미안해, 액톤. 이렇게 늦은 시간에 바느질을 도와달라고 해서.

부상 당한 병사

괜찮아, 나중에 내 실력 보고 뭐라고 하지나 마.

사일라흐

하아……

부상 당한 병사

왠지 고민이 많은 표정인데, 깃발 때문에 그런 건 아니지?

사일라흐

오늘 캠프를 한 바퀴 돌면서 깃발에 대한 의견을 물어봤는데, 다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나한테 정하라고 하더라고.

부상 당한 병사

그래, 다들 널 믿고 있으니까.

사일라흐

그게 어렵다는 거야. 모두가 만족할 만한 방안을 가져와야 하는데. 난 모두의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거든.

부상 당한 병사

제니, 사람들은 네가 설령 아무것도 없는 흰 깃발을 가져왔다고 해도 뭐라고 안 할 거야.

부상 당한 병사

넌 그동안 우리 모두를 위해서 바쁘게 움직여 줬잖아. 넌 날이 밝기도 전부터 사람들을 데리고 숲이나 섹터를 돌면서 식량을 찾아 줬어.

부상 당한 병사

캠프에 돌아와서도 쉬지 않고 온갖 잡다한 일까지 네가 전부 도맡아서 하고 있지.

부상 당한 병사

내 생각엔 모두 네게 깃발을 맡긴 건, 네가 이런 간단한 일을 하면서 조금이라도 쉬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을 거야.

사일라흐

그런가……?

부상 당한 병사

그래. 근데 네가 깃발 때문에 또 마음이 쓰이는 거라면, 그건 안될 일이지.

사일라흐

……고마워.

부상 당한 병사

그러니까 나머지 일은 나한테 맡기고, 제니 오늘은 가서 일찍 자.

사일라흐

촛불이…… 조금 어두워졌네. 달빛이 더 잘 들어오게 창문을 좀 더 열어야겠어.

사일라흐

……어라, 액톤. 혹시 이 노랫소리 들려?

부상 당한 병사

응?

사일라흐

바람이 세서 잘 안 들리긴 하는데, 한번 잘 들어 봐.

부상 당한 병사

아, 나도 들려. 어디서 들려오는 거지?

사일라흐

글쎄……

고독하고 가냘픈 노랫소리가 바람을 타고 울려 퍼졌다. 그 노랫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그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노랫소리가 선명해지는 반면, 바람 소리는 희미해져 갔다. 그리고 이내 노랫소리가 캠프 곳곳에 울려 퍼졌다.

......

♪눈 깜빡할 사이에 장미와 백합과 별의 먼지들은 침식과 멀어지게 될 거야♪

♪우린 파도 위를 거니는 한 쌍의 하얀 파울 비스트일 뿐♪

부상 당한 병사

……마리엘이야. 전에 돌봐줬을 때, 이 노래를 흥얼거리는 걸 들은 적이 있어.

사일라흐

듣기 좋네.


성질 급한 타라 남성

하암…… 졸려 죽겠다. 밖에 무슨 일이야, 도대체? 시끄럽게……

부상 당한 병사

데이글런! 이리로, 얼른!

성질 급한 타라 남성

무슨 일인데?!

부상 당한 병사

제니야! 제니!

성질 급한 타라 남성

뭐……?

남자는 몰려든 인파를 비집고 캠프의 공터를 바라보았다.

그곳엔 아침 이슬과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깃발과 함께 꼿꼿하게 서 있는 한 여자가 보였다.

그녀는 단정한 옷차림에, 머리카락 한 올조차 흐트러지지 않은 깔끔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손에는 말아 올려진 깃발이 있었다.

♪다만 우리가 한 쌍의 하얀 파울 비스트가 되어, 저 파도의 끝에 나타나길 바랄 뿐이야♪

♪시대는 우릴 잊을 것이고, 슬픔은 우릴 다시는 찾지 않겠지♪

♪눈 깜빡할 사이에 장미와 백합과 별의 먼지들은 침식과 멀어지게 될 거야♪

♪우린 파도 위를 거니는 한 쌍의 하얀 파울 비스트일 뿐♪

그녀는 노래를 부르며 줄을 당겼고, 깃발은 천천히 하늘을 향해 올라가더니, 바람을 타고는 쭉 펼쳐졌다.

한 쌍의 하얀 파울 비스트가, 깃발 위를 날아다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