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의 마음
생활이 안정된 후, 리드는 자신을 구하기 위해 모든 걸 희생한 산크타에 대해 알게 되었다.
힐록 카운티는 먼지와 돌 부스러기로 가득했고, 대지는 뜨거운 화염으로 뒤덮인 채였다.
무력한 붉은 용은 제 왕좌에 굳게 묶여있었다.
뼈를 뚫는 재봉실 때문에 그는 움직일 수 없었고
육체를 파고드는 오리지늄 때문에 상처는 아물지 않았으며
귓가를 맴도는 흐느낌 때문에 마음 편히 쉴 수가 없었다.
권력의 지팡이는 혀에 못을 박았고, 왕관은 머리를 옥죄었으며, 돌덩이는 척추를 부러뜨렸다.
그는 왕좌의 붉은 용이자 그림자의 꼭두각시였다.
반항도, 간청도, 도망도 용납되지 않았다.
연옥 안, 살아 있는 조각상은 울고 있었다.
눈가에서 흘러내린 눈물이 실을 타고 아물지 않은 상처로 떨어졌다.
수난과 복종은 침묵만 낳을 뿐이었다.
하늘에서 씁쓸한 우박이 내리기 시작했다……
……
……
더블린 사람들이 언제든 돌어올 수 있으니 어떻게든 차를 구해야 해야.
극정 말야. 우린 살아서 도망칠 수 있을 기야.
오리지늄 감염도 심하고, 상처도 깊은데…… 재앙의 영향일까요?
후, 우선 우리가 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하죠. 나머지는 이 여자분께 달린 것 같네요.
그럼 당신의 정보를 기록할게요.
아직 회복 중이니까 1인용 숙소로 준비해 드릴게요. 이상이 없다면 여기에 서명해 주세요.
……
리드는 침대에 앉아 멍하니 방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로도스 아일랜드의 표준 도어 패널은 제작 요건을 너무 완벽하게 충족하였기에, 문틈 사이로 불빛 한 점 들지 않았다.
방음성 또한 의심할 여지가 없었지만 하루의 생활이 시작되는 시간대인 탓일까, 리드의 귓가로 약간 북적이는 소리가 들렸다.
이건 그녀가 꿈에 그리던 생활이었다.
방문만 열고 나가면, 그녀는 로도스 아일랜드에 스며들어 찬란한 나날을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윽…… 아파……
오리지늄 결정이 말해줬고……
죄책감이 말해줬고……
그림자가 말해주고 있었다……
“네게는 자격이 없다”라고.
그녀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도 “더블린을 위하여”라고 외치며 많은 이들을 처형했다.
젊고 늙은 영혼들은 뒤섞여 언제나 그녀를 노려봤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힘없이 흔들리는 갈대처럼 그녀가 비틀거릴 때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죽은 자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복수 방법이었다.
회개를 통한 용서는 매정한 자들의 편법일 뿐, 진정한 용서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죽은 자는 말을 하거나 용서할 수 없었기에, 그들은 그저 고통만 줄 뿐이었다.
마치 그들이 고통받았던 것처럼.
이걸로…… 됐어……
이게 내가 받아야 하는 벌이야……
다시 침대에 누운 리드는 방문을 등지고 누웠다. 그러면 문밖에서 들리는 소란스러움을 무시하고 넘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건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그녀에게는 그럴 자격이 없었다.
그것이 그녀가 갈망하는 것이라 해도……
내가 있어야 할 곳은…… 감옥이야.
……
하지만 여전히 그녀는 이 어둠 속에서……
간혹 먹구름을 뚫고 나오던 빛을 기억하고 있었다.
태양처럼…… 이글거리던 둥근 빛……
그녀는 그 빛에 가닿기를 간절히 원했다……
……
리드 씨, 안에 계세요?
잠시만…… 지금 나갈게……
안녕하세요, 리드 씨. 정기 검진 때문에 찾아왔어요.
그건 박사가……
아~ 박사님과 약속하신 건 종합 정기 검진일 거예요. 오늘은 대형 기기로 채혈하는 게 아니라 간단하게 혈압과 심박수만 체크할 거예요.
리드 씨는 아직 환자라서 일부 데이터는 상시 체크해야 하거든요. 박사님도 늘 한가하신 건 아니라서요. 병세가 안정되면 저도 귀찮게 찾아오지 않을 거예요.
물론 지금도 원치 않으신다면 강요하진 않을게요.
……
고생이 많네…… 들어와.
그럼 우선 침대에 누워주세요.
응……
스위치가…… 이쯤에 있을 텐데…… 찾았다.
윽……
앗, 죄송해요! 조금 어둡게 조정해 드릴게요……
아니, 괜찮아. 이 정도는 괜찮아……
네, 네!
그럼 침대에 똑바로 누우시고, 나머지는 저한테 맡겨주세요.
응……
침대에 눕기 전, 리드는 타오르는 불꽃이 메딕 오퍼레이터의 업무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자신의 꼬리를 침대 반대편으로 치웠다.
특수한 소재로 제작된 침대 시트라 꼬리로 인해 방에 불이 날 걱정은 없었다.
리드는 메딕 오퍼레이터가 자신의 꼬리를 신기하게 쳐다보며 이것저것 물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그녀는 잡담할 생각이 없다는 듯 자신의 노트와 기기만 바라볼 뿐이었다.
그 모습에 리드는 반듯이 누워 천장을 바라봤고, 점차 천장에 있는 등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건 다 됐고…… 이제……
천장에 있는 등은 딱히 특별하지 않았다. 자세히 보니 덮개 안쪽으로 둥근 형태의 등이 비쳐 보였다.
그건 마치 산크타의 빛나는 광륜과 같았다……
혹시…… 날 구해준 산크타가 어디 있는지 알아?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리드 씨를 로도스 아일랜드로 데리고 온 건 빅토리아 와이번과 힐록 카운티로 임무를 떠났던 오퍼레이터들인데요. 그중에 산크타 오퍼레이터는 없었어요.
내 기억이 잘못된 걸까……
리드는 계속 천장등을 바라보았다. 기억이 틀렸을 리가 없었다. 그 산크타의 빛이 뇌리에 선명했으니까.
그런데 그 작전에서 희생된 정예 오퍼레이터가 있다고 들었어요……
정예 오퍼레이터……
아주 존경받는 분이세요. 의료부에 오시는 일은 통 없지만, 치료나 검진을 받으러 온 스나이퍼 오퍼레이터들이 늘 그분을 언급했거든요.
인내심이 강하고 리볼버 조준 실력이 굉장하다고 들었어요.
그러고 보니 그분이 산크타였던 것 같네요……
이름이…… 뭔데……?
다들…… 아웃캐스트 씨라고 불렀어요……
아웃캐스트……
대화가 끊기자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따금 의료기기에서 울리는 알림음만이 방안을 감돌 뿐이었다.
자, 이제 검사가 끝났어요. 축하드려요, 리드 씨. 대부분 수치가 지난번 검진 때보다 훨씬 좋아졌네요. 아마 병세도 곧 안정될 거예요……
응……
별일 없으신 거면 전 이만 가볼게요.
불 꺼드릴까요?
아니, 괜찮아……
그럼 쉬시는데 방해하지 않을게요, 리드 씨.
희생되었다니……
내 잘못이야……
리드는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녀는 아웃캐스트라는 사람과 접점이 없었다. 그 코드네임 역시 조금 전 처음 들은 것이었다.
그런데 상대는 자신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고?
아웃캐스트…… 아웃캐스트……
그녀는 자신을 위해 어둠의 장막을 걷어준 사람의 이름을 몇 번이고 되뇌었다.
……
경의든, 존경심이든, 호기심이든 그녀는 이 위대한 인물을 기억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여겼다.
물론 그 일을 마친 후 그녀는 다시 방으로 돌아와 계속 자신을 가둬둘 생각이었다.
리드는 갑자기 생기가 도는 것만 같은 현실이 너무나도 어색했다.
다정한 안부, 사소한 일로 인한 소란, 시간을 보내기 위한 잡담.
이 얼마나 오랜만에 보는 광경인가?
리드는 오른손으로 왼쪽 손목을 잡고,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최대한 꼬리를 숨긴 채 복도 벽에 붙어 걸었다.
당장이라도 이런 일상에 뛰어들어 만년필을 사거나 음료를 마시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에겐 용납되지 않는 일이었다.
어깨 위에 있는 과거의 원혼들이 아름다운 일상에 대한 그녀의 갈망을 짓밟았다.
안녕……
어? 안녕하세요, 리드 씨. 앉으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혹시…… 아웃캐스트는……
아…… 무슨 일로 찾으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그게……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아웃캐스트 씨의 사무실이 있어요. 몇 달 전에 인사이동이 있었거든요.
제가 지도를 보여드릴게요.
이 복도를 따라 쭉 가다가…… 여기서 꺾으시면 돼요.
고마워……
별말씀을요.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에요.
……
(나지막이) 저기, 아웃캐스트 씨 사무실은 이미……
(나지막이) 괜한 말 말고 네 일이나 해.
(나지막이) 내가 그것도 모르겠어? 그리워할 시간을 좀 주자는 거잖아?
아, 알겠어……
휴…… 정말 딱하다니까……
여기인 것 같은데……
안녕하세요. 어떤 일로……
여기가 아웃캐스트의 사무실이야?
아……
네, 전에는 그랬죠.
얼마 전에 이 사무실을 기록 보관실로 사용하기 위한 인수인계를 마쳤어요.
혹시 아웃캐스트 씨의……?
아니야…… 그냥 좀 둘러보려고.
둘러…… 아, 무슨 뜻인지 대충 이해했어요.
편하게 둘러보세요.
아웃캐스트가…… 남긴 물건은 없을까?
죄송하지만 개인 소지품이라면 인사부에 있는 오퍼레이터에게 문의하셔야 해요.
아아, 그럼 괜찮아……
그녀는 이곳에서 아웃캐스트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텅 빈 사무실과 낯선 사람 외에는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그녀는 로도스 아일랜드에 이 산크타와 관련이 있는 장소가 어딘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산크타…… 총…… 스나이퍼 오퍼레이터……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
말씀하세요.
사격 훈련장은 어디야?
훈련장에 도착한 리드는 아웃캐스트에 관한 어떤 정보라도 찾을 수 있기를 바랐다. 이곳에는 분명 그녀를 잘 아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넓은 사격 훈련장에 들어선 그녀가 느낀 건…… 두려움 뿐이었다.
불행한 이는 표적에 묶여 있었고, 눈이 먼 이들은 무기를 든 채 그녀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야…… 이러면 안 돼……
무슨 말을 하려 했든, 어떤 말을 내뱉든 상관없었다. 그녀의 말은 곧 명령이었다. 누군가는 방아쇠를 당겼고, 누군가는 화살에 맞아 죽었다.
훈련하러 온 오퍼레이터는 계속해서 장전과 조준, 발사를 반복했다.
표적도 파괴되어야 할 대상이었기에 대기와 피격, 반응을 반복했다.
희생자는 표적에 묶인 채 죽었다. 그들은 생명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리드의 만행을 규탄했다.
이곳은 훈련장이 아니라 그녀의 악행을 모아둔 전시관이었다.
안 돼……
조심해!
괜찮아~?
응…… 고마워……
6, 5, 4, 7, 8번 부스 임시 폐쇄하고 15분 동안 점검할 예정이니 훈련 중인 오퍼레이터는 모두 나오도록.
그리고, 6번 부스에 서 있는 녀석은 도망칠 생각 말고 관리실로 당장 튀어와!
아~ 폭탄을 가지고 훈련장에 오다니, 된통 혼나겠는데~
오! 안녕, 아드나키엘~
안녕하세요, 크루스 씨. 옆에 계신 분은 새로 사귄 친구 분인가요?
아니, 조금 전에 만난 사이야. 사격 훈련 체험을 하러 훈련장에 온 오퍼레이터 언니 같아.
긴 창을 들고 있으니 스나이퍼 오퍼레이터는 절대 아닐 거야~
……
안녕하세요, 전 아드나키엘이라고 해요.
그러고 보니 내 소개를 깜빡했네. 반가워, 난 크루스야~
리드라고…… 부르면 돼……
……
……
……?
그나저나 아드나키엘, 다음 테스트 준비는 잘 돼가?
네?
아, 네. 멜란사 씨가 계시니 문제없을 거예요.
근데 아까 훈련 위치에서 권총 쓰는 걸 봤는데~
하하, 보셨어요?
(총…… 산크타……)
총을 다룰 자격은 아직 갖고 있지 않지만, 라테라노 사람이라면 시도해 보고 싶은 게 당연하잖아요.
그래서 전에 아웃캐스트 선생님께 권총 사용법을 배웠죠.
그 권총, 블랙스틸이랑 같은 타입?
네.
선생님께선 총을 쥐는 동작이 반응 속도에 미치는 영향이나, 빠르게 총을 뽑아 쏘는 방법 같은 사격 비결을 많이 알려주셨죠.
사격 시연을 할 때는 총과 크로스보우를 번갈아가며 사용했어요. 어떤 동작은 서로 비슷하다고 말씀하시면서요.
시간 될 때 나한테도 알려줘. 나도 더 배우고 싶거든~
네, 그럴게요.
다만……
선생님께서 복귀하시면 제 학습 성과를 확인해 주신다고 하셨는데……
(아웃캐스트……)
총을 쏘는 건…… 어떤 느낌이야?
느낌……이요? 음…… 저도 뭐라고 설명을 해야할지 잘 모르겠네요.
자, 됐다. 저기 파티션이랑 경고판은 모두 치워도 돼.
훈련 부스가 다시 개방되었으니 가서 연습들 하라고.
직접 해보시면 알 거예요, 리드 씨.
직……접?
내가 할 수 있을까?
초보자를 위해 특별히 준비된 훈련용 권총이에요. 크로스보우만큼 다루기가 쉽죠.
그리고 우리가 있으니 별일 없을 거야~
난……
……
알겠어.
권총 쥐는 법은 절 따라 하시면 돼요.
이렇게……?
네, 손가락 위치도…… 정확해요.
이제 총을 들고 목표물을 향해 조준해서, 방아쇠를 당기면 돼~
목표물을 조준하고……
리드는 총을 꽉 움켜쥐었다.
가벼운 훈련용 총이었지만, 총을 든 그녀의 손은 쉴 새 없이 떨었다.
긴장하지 말고~ 심호흡~
응……
그녀는 자신의 상처와 원혼, 죄악의 작품을 조준한 후……
방아쇠를 당겼다……
맞았다! 조금 빗나가긴 했지만~
리드가 쏜 총알은 과녁을 맞히지 못한 채 종이 한 귀퉁이에 검은 점만 남겼다.
고마워……
리드가 총을 내려놓았다.
그만하려고?
이 정도면 충분해……
그녀가 총을 쐈을 때, 총은 강렬한 반응을 주었다.
이것이 바로 산크타의 무기였다. 방아쇠를 당기는 건 일종의 선언이자 짊어져야 할 책임이었다.
총알의 대가를 알고 있는 아웃캐스트는…… 주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 전 계속 훈련하러 가볼게요.
테스트를 마친 후 유품 보관실에 가서 선생님께 성과를 보고드릴 거예요.
유품 보관실?
응, 유품 보관실.
우리 곁을 떠난 좋은 선생님들이 남기신 물건이 모두 로도스 아일랜드의 유품 보관실에 있거든.
그 유품 보관실은…… 어디야?
유품 보관실 입구
종합 생체 처리실에서 모퉁이를 돌자 유품 보관실로 향하는 문이 보였다. 유품이라는 특수성 때문인지 보관실 앞으로 긴 복도가 이어졌다.
곧장 안으로 들어가려던 리드의 귀로 모퉁이에서 대화하는 오퍼레이터의 말소리가 들렸다.
그들이 언급한 이름은 다름 아닌……
(아웃캐스트……)
두 오퍼레이터는 아웃캐스트의 팀원인 듯했다.
그녀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척 모퉁이에 기대섰다.
그들이 아웃캐스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듣고 싶었다.
그래서 후회해? 그 사람이랑 같이 가지 않은 거 말이야.
……
보고서를 봤어. 힐록 카운티에서 일어난 모든 일은 전혀 통제할 수 없었을 거야.
그렇다 해도 살아 돌아오겠다는 의지만 있었다면 얼마든 살아 돌아왔겠지.
아웃캐스트잖아.
……미저리 씨가 가져온 탄창을 보니 여섯 발을 쐈더라.
그래서, 후회했을 것 같아?
리드는 숨을 참았다.
후회 같은 건 하지 않겠지, 절대로.
그럼 다시 한번 물을게. 넌 어때?
리드는 어떤 말이 이어질지 예상했기에 고개를 돌리고 애써 외면했다.
분노와 증오. 그녀에게 아주 익숙한 것들이었다.
내가 후회할 게 뭐가 있겠어.
(어?)
그 사람은 필요하다면 언제든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했어. 이번에 혼자 간 데에는 이유가 있겠지.
힐록 카운티에서 철수한 사람이 중상자를 한 명 데려왔다더라.
감염자야?
그래, 감염자.
그렇다면 틀림없이 그 사람이 만족할 만한 결과 중 하나였을 거야.
……
……
그럼 더는 아웃캐스트 씨를 방해하지 말자고. 늘 바쁜 사람이었으니 이젠 푹 쉬어야지.
아웃캐스트, 존경하는 우리의 벗. 부디 꿈에서라도 우리를 기억해 주기를.
또 보러 올게.
그녀가 구조될 수 있었던 건 우연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만큼은 확실했다.
아웃캐스트를 만났기에 구조되었다는 것.
상황이 어떻게 변하든 결과는 늘 같을 것이다.
리드는 긴 복도 끝에 있는 유품 보관실 입구를 바라봤다.
그 안에서 아웃캐스트가 그녀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유품들은 주인을 찾지 못한 다른 물건과 함께 종합 생체 처리실 창고에 쌓여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었다. 누군가 더 이상 찾지 않는다고 창고에 방치해 버린다면, 소중한 유품이 시간의 침식에 영향을 받게 된다는 것을.
그렇게 유품들은 맞춤 제작된 칸에 담겨 창고 끝에 있는 작은 방에 보관되었다.
이곳은 로도스 아일랜드가 임무 도중에 목숨을 잃은 오퍼레이터를 기리기 위해 만든 묘지였다.
하지만 이곳에는 꽃도, 묘비도 없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고인의 휴식에 방해가 되지 않게 목소리를 낮췄다.
그건 리드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자신의 화염이 이 고요함을 깨뜨리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했다.
모든 유품이 들어있는 칸마다 한 줄기 빛이 비쳤다. 리드는 빛을 따라 이곳에 잠든 이들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스카우트…… 화이트스미스……
아웃캐스트.
그녀의 유품이 바로 여기 있었다.
리드가 다가가자 마침 누군가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 ……
(나지막이) 박사……
- (고개를 끄덕인다)
이곳에선 침묵이 최고의 소통이었다.
간단하게 눈인사를 한 후, 두 사람은 서로를 스쳐 지나갔다.
그 순간, 리드는 박사가 추모하던 그 오퍼레이터의 코드네임을 봤다……
에이스.
그건 또 다른 구원자의 이야기일 것이며, 먼 훗날 누군가로부터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리드는 아웃캐스트의 유품 칸 앞으로 다가가 가볍게 묵례한 뒤 그녀가 이 대지에 남긴 물건을 바라봤다.
유품 칸에는 부서진 탄창이 놓여 있었고, 그 옆으로 아웃캐스트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평가가 적혀 있었다.
(“그녀는 험난한 순간에도 간사한 자들에게 고개를 숙인 적이 없었고, 그녀의 총구에서 나오는 불꽃은 마치 성난 태양과 같았으며, 그녀 머리 위의 고리는 언제나 대낮보다 환하게 빛났다.”)
(“우리의 벗 아웃캐스트, 이곳에 잠들다.”)
……
후……
(안녕, 아웃캐스트.)
(내게 기회를 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러 왔어.)
(난…… 리드라고 해. 해답을 찾기 위해 이곳에 왔지.)
(난 나의 생명의 은인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거든.)
(이제 알겠어.)
(난 지금껏 당신이 날 구한 데엔 목적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내가 틀렸어. 당신에겐 모든 생명이 평등했겠지.)
(고마워……)
(한때 난 언니의 꼭두각시로 여러 만행을 저질렀어. 그땐 이 대지가 마냥 어둡다고만 생각했는데.)
(당신 덕분에 이 대지에도 빛이 존재한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어.)
(재난의 불빛이 아니라…… 그보다 더 따뜻하고 반짝이는 빛……)
(내가 그러한 빛이 되어야 하는 걸까? 나도 당신처럼 될 수 있을까?)
빛이 아웃캐스트의 유품 칸과 리드의 몸을 비췄고 그 뒤로 자연스럽게 그림자가 생겨났다.
(난…… 나약해. 그래서 언니한테 반항하지 못했고, 당신처럼 자신의 꿈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도 없었어.)
(하지만…… 나도 해볼게…… 당신에게 보답할 길은 이것뿐이니까……)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해…… 내가 해야 할 일을 깨달아야 당신에게도, 이 인생에도 떳떳할 수 있을 거 같아.)
(불꽃은 언제나 그림자를 만들어내지만…… 이제부턴 이걸로 생명과 희망을 가져다주도록 노력해 볼게.)
(……그럼 안녕히, 아웃캐스트.)
빛 아래 서 있던 리드가 몸을 돌려 어둠 속으로 걸어갔다.
방을 나서는 길은 멀고도 캄캄했다. 어둠이 리드를 집어삼키자, 꼬리의 화염만 보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화염은 흔들림 없이 빛과 열을 발산하며 출구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붉은 용이 난생처음으로 포효했다.
어둡고 메마른 힐록 카운티에, 한 줄기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