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의 의지
로도스 아일랜드에게 고용된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스캐빈저는 임무 수행 중 자신을 함정에 빠뜨렸던 남자를 만나게 된다.
등장 오퍼레이터: 스캐빈저
우리 집 유리창을 깬 게 이 녀석이야?
음…… 불법 침임에다 절도까지면 부족 규정상 전 재산을 몰수하고 황무지에 던지는 게 당연하지만……
저장실에서 겨우 치즈 한 조각 훔쳤을 뿐이잖아. 얘, 너 이름이 뭐니?
하멜린…… 자, 이렇게 하자. 동전을 던져 너의 운명을 결정하지.
숫자가 나오면 부족에서 추방하고, 그림이 나오면 그냥 넘어가겠어. 어때?
……보고 한다.
이것으로…… 7일째다.
오늘 아침에 또 사망자가 처리되었다…… 건물 내부의 활성 오리지늄 입자 밀도는 매우 높아 보이며, 감염자들의 증상도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
지난 24시간 동안, 벽 그늘 이외의 구역에서 활동하는 공장 직원은 보지 못했다. 공장 정문으로 나온 사람도 없었고.
공장에 접근할수록 통신 전파의 간섭이 강렬해진다.
바깥쪽 벽은 고압 전류가 흐르고 있고, 통제실의 위치는 아직 확인할 수 없다.
벽 근처 경비의 교대 시간과 순찰 시간은 이미 파악했지만, 내부 경비 상황은 아직 알 수 없다.
빨리 끝내고 싶은 건 나도 마찬가지다. 그쪽에서 동의만 한다면 폭력적인 수단도 쓸 생각이다.
……흥, 로도스 아일랜드의 방식 말인가. 알고 있다.
대비책? 새벽 3시가 되면 공장 폐기물 차량이 지하층으로 들어간다. 그동안 하수관은 사용이 정지되고.
방독마스크를 쓰면 문제없이 지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아무튼 내가 할 일은 여기 보안 시스템을 다운시키는 것이다. 후속 서포트와 픽업은 나랑 상관없고. 맞지?
……알아. 상황에 따라 꼭 깔끔하게 처리할 필요는 없잖아. 어차피 그것 때문에 나한테 의뢰한 것 아닌가?
이상이다.
이 로도스 아일랜드라는 고용주는 설마 진짜로 감염자들을 구출할 생각인가……
운반 차량 출입구가 열리는 소리네…… 출발해야겠어.
으윽……
얌전히 자고 있어.
여기 보안은 감옥 못지않네…… 뭐, 원래 비슷한 곳이니까.
들키기 전에 빨리 제어실부터 찾아야겠다……
조심해!
응?
더 이상 앞으로 가면 경보가 자동으로 울릴 거야……
……!? 너는……
……툴리오.
훗, '스캐빈저', 설마 살아있을 줄이야……
너 같은 쥐새끼가 어떻게 여기까지 들어왔지? 손에 무기를 들고 있다는 건 어디 하수관을 통해 들어온 건가?
……
……잠깐, 일단 칼을 내려놓고 대화로 하자. 그렇지 않으면 경보를 울리겠어.
여기 보안 시스템은 경찰서와 연결돼 있어. 어떤 경보도 감염자 폭동으로 간주되지.
……너도 여기 경비원이야?
맞아, 하지만 날 믿어줘, 스캐빈저……
쳇, 너를 믿으라고?
우리의 목표는 같다고 생각해. 네가 그 경비를 기절시킨 걸 봤어. 너도 나가는 길을 찾고 있는 거지?
나도 나가고 싶어. 아니면 아까 너를 멈추지도 않았을 거야.
흥……
하아, 진짜야. 최근 몇 년 동안 나 진짜 변했다니까. 봐봐, 나도 지금 감염자야. 힘든 일을 수도 없이 겪어왔어. 난…… 너를 이해해.
이 공장에 잠입했다는 건, 너도 이곳의 상황을 알고 있다는 거겠지.
내가 경비원이긴 하지만, 여기 갇혀있는 사람들과 별 차이가 없어.
너는 분명 그들을 감시하고 있잖아.
이 공장이 듣기 좋은 말로 감염자들을 속여 데려온 건 너도 알잖아…… 나도 이러고 싶지 않지만,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이 더러운 일을 자처하는 수밖에 없어.
널 동정할 거란 기대는 하지 마.
잠깐, 이 말만 듣고 결정해도 돼…… 난 여기 보안 시스템을 잘 알아. 내가 없으면 여기 감시카메라를 뚫고 탈출한다는 건 불가능해.
공장 전체를 감시하는 통제실은 두 곳이 있어. 메인 전원을 차단한다고 감시카메라가 멈추는 게 아니야. 비상 전원으로 즉시 교체될 거니까.
너는 동료가 필요해. 물론, 나도 그렇고. 네가 나를 믿든 말든 지금 상황에서 협력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판단이다.
……난 나간다고 한 적이 없는데.
나를 경계하는 것도 알아. 그래도……
……여기 보안 시스템을 다운시킬 거다.
뭐?
내가 받은 의뢰가 그거야.
고용주의 의뢰를 남에게 대놓고 알려주는 용병이 어디 있어?
쓸데없는 소리는 하지 말고, 통제실의 위치나 알려줘. 얼른 끝내야 하니까.
……뭐, 좋아. 결국 협력하겠다는 얘기지? 그렇지?
스캐빈저, 네 속셈이 뭔지는 알아. 그러니까 모든 노선을 알려주지는 않을 거야.
이쪽이야. 벽에 붙어서 걸어. 감시 카메라의 사각지대를 알고 있거든.
공장 책임자는 여기 있어?
없어, 당연히 없지. 이미 새벽 3시가 넘었는데.
공장에는 가끔 얼굴이나 내비칠 정도야. 건강한 사람이 활성 오리지늄 입자 밀도가 이렇게 높은 곳에서 살 이유가 없지.
그럼 여긴 다 감염자야?
응. 너한테는 별 차이가 없겠지? 이미 감염됐으니까 몇 명 더 접촉해도 딱히 상관없잖아.
네 동료는? 방호 준비는 다 되어 있겠지?
원하는 게 뭐야? 공장에 돈 될만한 게 없는데. 오리지늄 제품의 정밀도도 높지 않고. 왜 굳이 이런 데서 도둑질하는지는 진짜 이해가 안가 .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거냐. 예전에 너랑 사업 얘기를 할 때는 이렇게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하긴, 예전 그대로였으면 너도 용병을 계속할 수 없었겠지.
쓸데없는 건 묻지 마, 말하지도 말고. 너 같은 놈이랑 어울리고 싶지 않아.
……쳇.
지금은 싫어도 어울려야 해. 여기서부터 따로 움직인다.
작업장을 지나면 바로 통제실이야.
그럼 10분 뒤에 각자 행동한다. 나중에 너를 찾으러 가겠어. 합류하면 종합통제실에 가서 모든 보안 시스템을 다운시킨다.
네가 정말로 마음을 고쳐먹었길 바라지.
사실 동전이 떨어지는 순간, 뭐가 나올지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자, 손 내밀어 봐. 내가 알려줄게. 이렇게……
괜찮아, 하멜린. 감염됐다고 그렇게까지 거리를 둘 필요는 없어.
그러게, 앞으로는 더 멀어지겠네…… 내일 아침이면 여길 떠나겠지?
미안…… 그 일은 나도 어쩔 수 없었어.
다들 네가 부족의 생존 물자를 위해 감염된 걸 알아. 그런데도 너를 남길 수 없다니…… 그래, 생존을 위해서라면 위험은 감수해야겠지. 늘 그래왔으니까.
이 동전, 기념으로 챙겨둬.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있어도…… 난 네가 무사히 살아있길 바랄게.
기지국 전파 방해 장치는 이미 껐어.
그리고, 고압 전류를…… 됐어. 전동문이…… 열렸다. 이제 메인 전원을……
후우……
다 됐어?
쳇……! 그럴 줄 알았어!
너! 또 뒤통수칠 셈이야?!
이런 짓을 해서 네게 무슨 이득이 되는 건데!
훗, 적어도 시도는 해봐야 하지 않겠어?
……설마 성공할 거라 생각했어? 나는 너 같은 놈에게 두 번이나 당하진 않아!
그럼 뭐? 얌전히 너한테 죽기를 기다리라는 거야?
이제 협조는 필요 없어졌지. 공장 문이 열렸으니 언제든지 빠져나갈 수 있어. 피해자가 되는 것보다 선수 치는 게 낫지.
널 죽인다고 한 적은 없는데.
당연히 면전에 대고 말하진 않겠지. 네가 날 그냥 보내줄 리가 없잖아?
나도 이젠 감염자야. 그때 네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날 얼마나 원망했는지도 알고.
……그러게, 얼굴까지 기억하게 만드는 의뢰인은 많지 않거든.
쳇, 자라크 주제에 힘이 이렇게 세다니……
말했잖아, 넌 안 된다고.
움직이지 마! 그렇지 않으면 벨 거야.
쳇……
상황이나 파악해. 너를 죽일지 말지는 이제 내 마음이야.
너…… 이 빌어먹을 광석병 때문에 나는 이렇게 쇠약해졌는데, 너는 어떻게 멀쩡할 수가 있지?
어떻게 한 거지…… 완전 딴사람이 됐어.
훗, 넌 당연히 내가 처음 용병이 되었을 때처럼 순진하고 속이기 쉽기를 바랐겠지.
아무도 하기 싫어하는 더러운 일을 했는데도 의뢰인으로부터 한 푼도 받지 못했어.
광석병이 발작해 통증으로 기절했다가 시궁창에서 깨어나 보니 얼마 남지 않은 재산도 모두 훔쳐 갔더라고.
그땐, 네가 오래 못 버틸 것 같아서 쓸모 있는 걸 최대한 활용하려 했을 뿐이야……
훗, 최대한 활용이라.
살얼음판을 걷는 사람들끼리 서로 이용하는 건 기본 아니야?
내가 뭘 할 수 있었겠어? 감염자가 죽는 걸 지켜보고, 그 시체에 나도 감염되길 기다려?
네가 살아남아서…… 게다가 지금까지 살아있을 줄은 누가 알았겠어?
……그렇네. 하지만, 살아주길 바란 사람은 있었을 거야.
깨어났을 때 옷 안감에 꿰매어 있던 동전이 남은 걸 보고, 그냥 살아남기로 결심했어.
이 쥐새끼. 목숨 하나는 끈질기네. 그딴 동전 한 닢으로 뭘 바꿀 수 있다는 거야?
아무것도 바꾸지 않았어.
그럼 어떻게……
네가 속아서 이 공장에 온 것과 마찬가지야. 여기서 안정적으로 살 수 있을 줄 알았겠지만, 결국 마주해야 하는 건 열악한 환경과 비인간적인 대우였지.
나도 비슷한 걸 겪었을 뿐이야. 물론 좀 더 나빴을 수 있어. 삶이란 원래 그런 거지.
뭐야, 그 말투는…… 너 같은 녀석이랑 같은 취급하지 말라고……
다들 똑같아.
……흥, 알았다. 너는 지금 내 모습을 조롱하고 싶은 거지? 그래서, 복수의 쾌감이라도 느꼈나? 어쩐지 화를 내지 않는다 했어.
쳇…… 망상도 참 대단하네.
그래, 내가 지금 이 꼴이 된 건 다 너 때문이야!
감염자 용병을 고용한 탓에 그 뒤로 나도 광석병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어. 애초에 감염자 따위를 가까이하는 게 아니었는데!
너, 적당히 좀 해. 감염자와 일반적인 접촉으로는 광석병에 감염되지 않는다고.
그 말을 믿을 것 같아?
네가 믿든 말든 관심 없어. 어쨌든 이건 지금 내 고용주의 입장이니까, 의견을 대신 전달했을 뿐이야.
……아하, 어쩐지 보복당하는 게 두려우면서도 왜 나를 '동료'로 받아들인 건지 알겠군.
나를 이용해 일단 탈출하고, 그 뒤에 나를 처리해 네가 상상해온 '복수'를 마친다. 네가 말한 '최대한 활용'이라는 거군.
흥, 너도 마찬가지잖아? 지금까지 협조한 건, 지금 이때를 위해서 아닌가?
이제 와서 무슨 말이 더 필요해? 이 공장이 죽은 감염자를 어떻게 처리하는 것까지 가르쳐줄까?
아니, 너와 협력한 건 단지 내 의뢰를 빨리 완수하기 위한 거야.
열악한 근무 환경은 참을 수 있어. 비열한 동료도 포함해서 말이야. 적어도 너처럼 이런저런 생각은 하지 않아.
게다가 이번 임무는 감염자 구출에 협조만 하는 거야. 마침 네가 감염자였을 뿐이고.
감염자를 구출한다고? 웃기고 있네……
……됐어, 고용주의 의견을 듣도록 하지.
……보고 한다.
공장 보안 시스템이 완전히 다운됐다. 하지만 책임자는 여기 없다.
아, 감염자를 어떻게 구출할지, 어디로 데려가는지는 관심 없다. 나는 내 임무가 끝났는지 확인하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공장의 경비원도 감염자인데 이런 사람도 구할 건가?
……그러니까, 알아서 처리해라 이건가?
알겠다. 최대한 빨리 지정된 장소로 이동하겠다.
이상이다.
흥…… 아무래도 정말 말한 대로 하려나 보네.
옛날 같았으면 믿을 만한 의뢰인이 절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감염자를 진심으로 돕고 싶은 녀석들이 있다는 건 더 믿을 수 없고……
……마치 그 여자의 소원이 이뤄질 수 없는 것처럼 말이야.
……그렇지만 너도 들었지? 내게 작은 선택권을 줬어.
……정말 고용주의 요구 말고는 아무 생각도 안 하는군.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동전을 던져 너의 운명을 결정해 볼까?
숫자가 나오면 너를 쓰레기로 처분할 거고, 그림이 나오면 그냥 넘어간다. 너도 다른 감염자처럼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어.
스캐빈저는 동전을 꺼내 공중으로 던졌다.
몇 번이고 그녀는 외롭고 방황할 때마다 눈을 감고 동전을 던져, 모든 걸 그 결과에 맡겼다.
“언젠가는, 생존을 위해 안간힘을 쓰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면, 너도 어디로 가야 할지 생각하게 될 거야.”
그녀는 자신과 같은 인간에게 그런 날이 올지 모른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녀는 동전의 결과를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