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향수
퍼퓨머와 대화한 후 로프는 디퓨저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다.
미안해. 꽃 재배에 필요한 토양을 배합하느라 손님이 온 줄도 모르고 있다가, 너무 과하게 반응을 보였네……
정말 창피하게 참.
아, 아니야. 신경 쓰지 마. 내가 함부로 들어온 건데 뭐.
아니야. 로도스 아일랜드 사람들은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으니 괜찮아.
로프 씨도 참, 왔으면 바로 말을 하지 그랬어.
아니, 목이 터져라 불렀는데 반응이 없더라고……
어쨌든 위험한 일이 없어서 다행이야.
위험?
아, 아무것도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
음…… 어쨌든 관심 가져줘서 고마워~
그런데 요양정원은 위험한 곳이 아니야. 여기는 손님들이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곳이고, 안전도 보장해 주고 있지.
그러네. 선실 밖에도 보안 시스템이 있으니깐 외부인은 전혀 들어올 수 없고.
내 말이~
그러고 보니 로프 씨는 언제 들어온 거야? 이상하네. 문 앞에 딸랑이를 달았는데.
딸랑이? 아, 그 바닥에 설치된 밟으면 소리 나는 방울 말이야?
응. 벨처럼 쓰고 있거든.
내가 바쁠 때는 손님이 온 지도 모르니깐, 클로저 씨가 딸랑이를 달아줬어. 입구의 방울이 울리면 작업실에서도 알 수 있거든.
그런 거였구나.
헤헤~ 저 장치를 말하는 거라면 바로 뛰어넘었지.
어? 뛰어넘었다고??
정체불명의 장치니깐 함부로 밟을 수 없잖아! 걸어 다닐 때는 소리를 안 내고, 벽을 탈 때는 흔적을 안 남기는 것이 생존 스킬이거든.
클로저 씨가 절대로 들킬 일 없다면서, 저거 설치하는 데 한 시간이나 걸렸다고 그랬는데.
로프 씨, 대단하네!
에이, 이건 내 전문이잖아~
아, 잠깐, 퍼퓨머, 얼굴에!
어?
진흙 묻었어…… 여기, 여기.
아, 얼굴에?
여기……?
에이, 내가 해줄게.
됐어. 다 닦았어.
와, 고마워!
으응?
(어, 이 냄새 변화는…… )
왜 그래?
아, 아니야, 고마워.
(흠……)
(살짝이니깐 괜찮겠지?)
맞다, 로프 씨, 무슨 일로 온 거야?
평소에 이런 데 잘 안 오지 않나? 아, 혹시 조향에 관심이 생긴 거야? 그렇다면 언제든지 환영하지만~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럼?
그러니까……
맞다! 박사! 그래, 박사 때문에!
박사가 디퓨저를 가져오라고 했어. 그러니까…… 박사가 평소에 수면에 도움이 된다고 쓰던 그거.
어머, 박사 군, 또 잠을 잘 못 자고 있나 보네?
아마도? 이틀 전 임무에서도 정신 상태가 안 좋아 보이더라고.
(작은 목소리로) 그러면서 겨우겨우 팀을 이끌고 지원하러 왔더라고……
음? 방금 뭐라고 했어?
아니야! 잘못 들었을 거야!
?
아…… 그래? 알았어.
박사 군이 자주 쓰던 게 라벤더 향이었을 텐데, 알았어.
급하지 않으면 이것부터 끝내고 찾아줘도 될까? 손이 진흙투성이라 불편해서.
일단 온실 구경 좀 하고 있어. 금방 끝나니까!
괜찮아~ 나 여기 좀 둘러볼게!
(배합 중)
어라, 이 꽃, 작고 귀여운…… 데에에에에? 왜 이렇게 단번에 커지는 거야!?!?
(배합을 계속한다)
으악, 깜짝이야.
꽃 한 송이도 이렇게 위험하다니… 오, 온실은 내 상상을 뛰어넘는구나…
(배합을 계속한다) (웃음을 참는다) (다시 배합을 한다)
어? 이건…… 향료? 우와, 향기로워. 어?
에, 에, 에…… 취!
풉.
앗?
콜록콜록.
에취, 에취, 윽, 크윽……
로프 씨, 괜찮아?
괜, 괜찮에취!
무리하지 마. 그 꽃과 향료는 조향할 때 쓰는 재료야. 완제품보다 냄새가 더 자극적이라 별로일 거야……
그냥 자극적인 게 아닌데에에취!
코가 마비된 거 같아…… 이런 걸 매일 맡으면서 좋은 향으로 만들다니, 진짜 존경스럽다……
그건 과장이 좀 심한 거 같은데. 아, 저쪽 긴 의자에 녹색 병이 있어. 숨쉬기 힘들면 가서 좀 맡아봐, 훨씬 나아질 거야.
오……! 고마워!
어디 보자…… 녹색, 녹색이…… 에취! 여기 있네!
아, 향 진짜 좋다.
다행이네. 이제 좀 괜찮아?
응.
진짜 재채기를 안 하네.
완전 신기해! 대단한데!
하하, 평소에 디퓨저가 별로 쓸모없다고 생각했던 거 아니야? 심리적 작용일 뿐, 사치품이라고?
윽……
그, 그렇게 생각한 적은 없……
긴장하지 마. 괜찮으니까.
다른 사람들도 처음 조향과 디퓨저를 접했을 때 많이들 그런 오해를 했었는걸. 어차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니깐, 로프 씨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정상이지.
어떻게 해야 사람들에게 조향을 이해시킬 수 있을지는 내가 노력해야 할 부분이고.
음, 뭐랄까.
조향에 대해 잘 모르지만, 너의 직업도 아주 중요하다는 걸 알았어.
어쨌든 박사와 닥터 켈시가 좋다고 했으니깐 틀림없겠지.
박사 군이랑 닥터 켈시가……?
응. 그렇게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있어.
“레나의 디퓨저는 선도 치료와 회복 분야에서 아주 뛰어나지”…… 뭐, 대충 이런 식으로 말하던데.
사실 다른 오퍼레이터들도 여기 오는 걸 좋아하잖아. 아예 온실에서 자려고 안 가는 사람도 있다면서?
확실히 몇 명 있긴 하지……
그것 때문에 최근에 침대를 추가했는데도, 그래도 공간이 부족해.
계속 이러면, 닥터 켈시에게 온실 확장을 요청해야 할지도……
……거봐.
그 말은 많은 사람들이 조향의 장점을 알기 시작한다는 거잖아?
나는 잘 몰라. 모르는 것투성이야. 그런데 내가 모른다고 그게 쓸모없다고 하면 안 되잖아?
……
후훗……
갑자기 왜 웃어?
퍼퓨머 씨?
후훗, 미안해. 살짝 기뻐서.
??
신경 쓰지 마. 그리고, 괜찮다면, 그냥 레나라고 불러.
아, 그건……
그럼 나도 로프라고 부를까?
응??
물, 물론이지……
후후, 그럼 그렇게 하자.
(에에에에…… 이게 무슨 일이지?)
(퍼퓨머 씨가 이렇게 붙임성이 좋은 사람이었나?)
응.
저기…… 퍼퓨머 씨?
왜?
아, 레, 레나.
응. 무슨 일이야?
의외로 되게 세다는 소리 들어봤어?
아니.
진짜?
아니야. 됐어……
다 됐다. 이제 배양토는 완성됐을 거야.
손 좀 씻고 올게.
다 된 거야? 이 흙이 전이랑 뭐가 다른지 모르겠는데.
이건 꽃씨를 재배할 때 쓰는 흙이야. 성분 배합이 더 특별해.
꽃씨?
응. 글로리아의 치료가 새로운 단계에 이르렀어. 아주 특별한 꽃을 써야 하는데, 토양 조건이 의외로 까다롭거든.
으음……
사실 그동안 여러 번 키워보긴 했는데 잘 안 됐거든. 이번에는 새로운 배합을 시험해 보고, 흙의 비율과 영양에 문제가 없는지 보려고 하고 있어……
그래?
영양 문제라면 해결하기 쉽지. 하지만 어떤 식물들은 성장에 필요한 게 영양뿐이 아니라서 골치가 아파.
이번에는 성공했으면 좋겠다. 이번에는 왠지 느낌이 좋아.
듣고 보니 복잡하네. 난 조향이 뭔가 좀 더 우아한 느낌인 줄 알았는데.
몸에서 향기가 나고, 아름답고 고상한 느낌이랄까. 곱게 자란 아가씨가 하는 일인 줄 알았어.
어머, 지금 칭찬하는 거야?
음…… 이게 그렇게 되나?
고마워~ 하지만 난 곱게 자란 아가씨가 아니야.
그거야 진흙 묻은 얼굴을 봤을 때부터 알았지.
하하, 놀리지 마.
응, 박사님이 자주 쓰는 디퓨저를 찾아볼게……
여기에 둔 거 같은데. 라벤더, 라벤더…… 아, 있다.
맞아맞아! 그런 병이었어!
자, 가져가.
인기 많은 거야. 오퍼레이터들이 자기 전에 많이들 쓰거든.
아~ 고급스러운 포장에 효과까지 좋으니, 이거 왠지 고가품일 거 같은데?
그렇게 비싸진 않아. 이건 비매품이라서 지금은 로도스 아일랜드 사람들만 쓸 수 있어.
너도 한번 써볼래?
어? 뭘?
당연히 디퓨저지. 이렇게 희석된 디퓨저 아로마는 휴대하기도 편하고 긴장 완화 효과가 있어. 언제든지 사용할 수도 있고 말이야. 어쩌면 새로운 유행이 될지도?!
로프처럼 젊고 아름다운 여자한테 가장 잘 어울리지! 내가 추천하는 건……
자, 잠깐!
왜 그렇게 많이 꺼내!? 잠, 잠깐만!
레나??!
로프, 왜 물러서? 갈고리까지 꺼냈네?
그냥 추천만 해줄 뿐이야. 안 잡아먹는다구~
나, 나도 모르게 위험을 감지해서 그만……!
너무 깊게 생각한 거 아니야?
진짜……?
그럼.
난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 우와!
후우, 후우……
너무 좋다. 역시 향수가 잘 어울리네.
어디가 어울리지?
몸에 냄새가 남는 게 너무 별로야…… 여러모로 너무 이상한데.
그런가?
진짜 싫으면 강요하진 않을게.
하지만 진짜 잘 어울려……
……
아…… 알았어!
쓸게! 쓰면 되잖아!
!
왜 이렇게 됐지…… 하아……
알았어. 일단 박사 디퓨저부터 가져갈게.
아, 맞다!
하마터면 깜빡할 뻔했네.
씨앗 잘 챙겨 다녀. 또 잃어버리지 말고.
앗.
지금 돌려주려고? 생각보다 빠르네. 최소 이틀은 더 걸릴 줄 알았는데……
어? 잠깐, 무슨 말이야?
그 말투, 혹시 내가 가져간 걸 알고 있었어?
하하, 난 코가 아주 예민해서, 위치가 조금만 변해도 냄새가 나거든.
윽.
미, 미만해. 고의는 아니야!!
그놈의 나쁜 습관 때문에…… 으으으……
하하, 그러지 마. 뭐라 하려는 거 아니니까.
어?
음…… 사실 더 많이 준비하려고 했어.
어? 준비?
뭘 준비해? 신고하려고? 나 잡아가라고 신고하려고 했어? 으아아아아……
지, 진정해 로프!
흥분하지 마. 신고 안 해. 아무도 너 안 잡아가!
으으으, 진짜야?
진짜 진짜.
흑흑, 레나는 진짜 좋은 사람이야……
한참을 울었는데, 눈물이 한 방울도 안 나오네. 로프.
에잇, 들켰네.
지나간 일은 지나가자고! 그런데 방금 레나가 말한 준비는 무슨 뜻이야?
아, 이거.
로프 네가 가져간 꽃씨 말이야.
꽃씨?
응. 이 꽃씨에 적합한 토양을 준비할 생각이었어.
이 꽃씨는 아주 비싼 거야?
아니.
그럼 희귀한 거야?
보기 드문 것도 아니야.
흔히 볼 수 있고 평범하지만, 열심히 재배하면 아주 예쁜 꽃이 피거든. 조향에 아주 잘 어울리지.
어떤 씨앗이든 결국 흙으로 돌아간 다음에 예쁜 꽃이 필 수 있잖아.
……
원래는 네가 다음에 이 씨앗을 돌려주면, 직접 심어보라고 할 셈이었어.
내가 직접……?
응. 나중에 꽃이 피면 내가 이 꽃으로 디퓨저를 만들어줄게.
어? 날 위해? 디퓨저를 만든다고?
그런데, 왜?
꼭 이유가 있어야 해? 음…… 생각해 볼게.
예전부터 줄곧 로프한테 디퓨저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거야.
흠~ 흐흠~ 흠흐흐흠~
아침이슬, 민트, 스무디♪
아, 박사, 아직도 전투 보고 처리 중이야?
지난번 임무는 정말 고마웠어. 진짜 죽는 줄 알았는데, 박사가 미리 신경 써줄 줄은 몰랐어.
하지만 박사가 지원팀과 함께 올 필요는 없지 않나? 너무 위험하다고.
- 난 오퍼레이터의 안전을 지켜야 하니까.
알았어. 진짜 위급할 때는 박사랑 같이 도망칠게.
아, 맞다…… 이거, 박사가 쓰던 디퓨저 맞지?
이건, 음…… 퍼퓨머, 아니 레나가 전해달라고 한 거야!
- 기분이 아주 좋아 보이네.
- 뭔가 달라진 것 같은데.
헤헤, 그래 보여? 티 많이 나?
좋은 일이 있었거든~
살짝 말해줄게. 내가 직접 심은 씨앗이 조만간 꽃을 피울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