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레퀴엠

레퀴엠

오퍼레이터 레코드브릿지

컬럼비아에서 로베르타는 불행하게도 죽은 친구의 장례식을 치르게 된다.

등장 오퍼레이터: 로베르타


시체 안치소 직원

여깁니다, 로베르타 씨. 부디 낙담하지 마시길.

로베르타

그 아이랑 만나도 괜찮을까?

시체 안치소 직원

물론입니다.

로베르타

……무척 평온해 보이네. 별로 고통스럽지 않아 보여.

시체 안치소 직원

병세가 이미 말기에 이르렀으니, 치료를 계속해도 의미가 없었습니다. 의사가 제안한 처방도 기껏해야 고통을 줄여주기 위한 것이었죠. 그러니……

시체 안치소 직원

진정제를 꽤 많이 사용했습니다.

로베르타

(눈물을 닦음)

로베르타

전에 얘가 편지에서 병에 걸렸다 해서, 나도 더 서둘러 병문안을 오려 했는데, 일이 바빠서 좀처럼 올 수가 없었어.

로베르타

드디어 휴가를 내서 병원에 왔을 때는 병상이 비어 있었고, 내 질문을 들은 간호사가 여기 주소를 알려줬지.

시체 안치소 직원

당신이 오늘 방문하신 건 행운이었습니다…… 만약 하루만 더 늦었으면, 마지막으로 한번 만나는 것조차 불가능했겠죠. 일정상, 돌아가신 분들은 밤에 화장을 하게 되어 있어서요.

로베르타

나도 좋은 타이밍에 올 수 있었다는 거네.

시체 안치소 직원

죄, 죄송합니다. 그런 의미로 한 말은……

로베르타

아니, 너를 탓하는 건 아냐. 그냥 조금 감상에 젖었을 뿐이지.

시체 안치소 직원

괜찮으신가요? 혹시 필요하시다면, 의자를 가져올까요?

로베르타

괜찮아…… 뭔가 얘가 남긴 물건이라도 있을까?

시체 안치소 직원

음, 생전에 살던 아파트에서 저희가 발견한 물건엔 많은 화장품이나 접착제, 점토, 안료, 가발 외에도 무서운 도구들과 장식들이 있었습니다.

로베르타

분명 그 방, 살인마의 소굴처럼 보였겠지.

시체 안치소 직원

그렇죠. 저희가 그 방을 청소하다 가짜 피가 여섯 캔이나 나왔고…… 가짜 다리나 안구 같은 건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로베르타

그 외에는?

시체 안치소 직원

맞다, 생전에 가지고 다니던 노트가 한 권 있었습니다.

로베르타

봐도 될까?

시체 안치소 직원

잠시만요. 지금 가져오겠습니다

시체 안치소 직원

이겁니다. 솔직히 말해서, 시체 안치소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데, 이건 제 인생에서 본 것 중에 가장 무서운 거예요.

로베르타

(페이지를 넘긴다)

로베르타

……얘는, 아직도 내 사진을 남겨놨네.

시체 안치소 직원

여기 찍힌 무서워하는 표정의 할머니가…… 당신인가요?

로베르타

맞아. 그때는 항상 서로가 서로의 연습 상대가 돼줬거든. 뒤에 있는 종기투성이 괴물이 얘야.

시체 안치소 직원

응? 그건 편지인가요?

로베르타

'베이커에게'

로베르타 베이커

안녕. 전에 너한테 비디오테이프 보낸 지 꽤 됐네. 이미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답장 보내줘. '개척지의 리빙 데드'의 흥행 성적은 처참했어. 나랑 마리오는 진작에 예상할 수 있었지만.

어쨌든 기한은 빡빡하고, 예산도 빡빡하고, 촬영이 끝날 때쯤에는 두피도 빡빡해지고, 빡빡하지 않았던 건, 나날이 느슨해져 가던 마리오랑 내 벨트 정도였어. 마리오는 다음 작품 촬영을 계속할 생각인가 본데, 투자자들이 많든 적든 마리오에 대한 악평을 들었다 보니, 다들 투자하고 싶어 하지 않아 해.

사실은 나도 퇴원해서 뭔가 도와주고 싶었는데, 의사 선생님이 난감한 표정으로 여기 있으라고 하는 바람에 남아있을 수밖에 없었어. 병원에서의 나날은 지루해. 게다가 한가해서 어쩔 수 없을 때는 문득 옛날 생각이 많이 나. 둘이 함께 몸을 기댔던 지하실, 그 하얀 거품이 난 차가운 맥주,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았던 영화……

나, 너무 무서워. 혼자 죽어가는 게 무서워. 만약 시간이 난다면, 만나러 와 줄 수 있을까?

널 꼭 만나고 싶어.

신시아 에디스

시체 안치소 직원

정말 죄송합니다. 이 편지를 발견하지 못한 건 저희 잘못이에요. 만약 그때 찾았다면, 제일 먼저 당신에게 알려드렸을 텐데요.

로베르타

신경 쓰지 마. 여기 찍힌 건 확실히 엄청 무서우니까. 페이지를 넘겨서 제대로 확인하라고 하는 것도 가혹한 일이란 건 아니까.

시체 안치소 직원

어쨌든 모두 저희의 실수입니다.

로베르타

그리고, 나한테 연락했다 해서 뭐 어쨌겠어? 단지 소식이 좀 더 빨라졌을 뿐이지……

시체 안치소 직원

하…… 죽은 분이 살아오지는 않지만 어쨌든 로베르타 씨가 찾아오셨다는 건, 화장 전 마지막 배웅에 동행하는 사람이 와 주셨다는 거죠.

로베르타

뭐 도와줄 거라도 있어?

시체 안치소 직원

도와주실 것까지는 없습니다. 어제 제가 몸을 깨끗이 씻겨놨고, 환자복도 평소 복장으로 갈아입혔습니다.

로베르타

고마워.

시체 안치소 직원

당연한 일입니다. 이다음엔 간단하게 메이크업을 하고 더 아름답게 해드려야죠.

로베르타

메이크업? 그런 과정도 있구나?

시체 안치소 직원

네, 실제로는 간단하게 색을 더하는 정도라, 기술이라 할 정도는 아니지만요.

로베르타

나한테…… 맡겨줄 수는 없을까?

시체 안치소 직원

그건……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은데요? 당신 정도 되는 분이……

로베르타

나는 이런 거 싫어하지 않아. 마침 도구도 가져왔고.

시체 안치소 직원

하지만……

로베르타

그냥 예전처럼, 한 번만 더 얘한테 메이크업을 시켜주고 싶어.

시체 안치소 직원

흠, 그렇군요. 당신이라면 저보다 훨씬 잘하실 테고요.

로베르타

그렇지 않아. 시신의 취급이라면 너야말로 프로잖아. 앞으로 너에게 배워야 할 부분도 분명 있을 거야.

시체 안치소 직원

아뇨, 그런……

로베르타

(시신의 얼굴을 닦는다)

로베르타

너는…… 사인이 뭔지 알아?

시체 안치소 직원

만성 중독입니다. 의사의 진단에 따르면, 싸구려 안료에 장기간 접촉한 게 원인이라고 합니다. 유품을 정리한 종업원도, 그건 냄새가 너무 독하다고 불평했죠.

시체 안치소 직원

놀라진 않으셨나 보네요.

로베르타

저예산 제작으로 어떻게든 돈을 벌려면, 섹시 여배우나 몇 명 고용하면 되지, 메이크업에 돈을 쓸 사람이 어디 있겠어? 예산은 분명 간당간당했을 테고.

로베르타

진작에 충고는 했지만……

로베르타

(고개를 들고 계속 눈을 깜빡거린다)

로베르타

정말, 이제 와서 이런 말 해봤자겠지?

로베르타

(브러시를 든다)

시체 안치소 직원

왜 갑자기 멈추신 건가요?

로베르타

죽은 사람한테 메이크업하는 건 처음이니까. 얘는 내 눈앞에 있으면서, 한마디도 해주질 않네. 이래서는 도대체 어떤 모습으로 헤어지는 게 얘 바람인지, 짐작도 못 하겠어.

시체 안치소 직원

사실 저희도 단지 고인의 체면 때문에 고인에게 메이크업을 해 드리는 건 아니거든요. 때로는 유족들이 원하는 모습에 따라 하는 경우도 있죠.

시체 안치소 직원

당신이 바라는 고인의 모습으로 메이크업해드리는 게 좋지 않을까요?

로베르타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시체 안치소 직원

네. 당신의 기억 속에 남은, 가장 아름다운 고인의 모습으로요.

로베르타

가장 아름다운 모습……


마른 장신의 여인

잠깐, 베이커. 베이커도 참! 무슨 생각이야?

로베르타

신시아, 나 벌써 한 시간이나 기다렸거든! 알고 있어?

마른 장신의 여인

미안하다니까. 이번엔 내가 쏠게.

로베르타

잠깐, 어디 가는 거야?

마른 장신의 여인

길거리에서 마리오를 만나서, 길게 얘기를 해버렸어. 그 사람, 또 어디에서 호구 하나 잡아서 투자를 받았나 봐. 다음 작품 촬영을 구상하기 시작한 것 같아.

로베르타

그 사람, 아직도 포기 안 했나 보네.

마른 장신의 여인

유감인데, 나도 아직 포기 안 했거든!

로베르타

알아. 그래도 너희들이 만든 그 공동 작품 몇 개는…… 솔직히 잘 안 팔렸잖아. 그 콧대 높은 평론가들이 뭐라고 했지? '박스 오피스 포이즌'이랬던가, '랭크우드의 종양'이랬던가.

마른 장신의 여인

흥, 15년 전에는 '슬래셔의 아버지', '호러 마스터'라고 했던 것도 똑같이 그놈들이었거든.

로베르타

신시아, 스플래터 영화는 이제 예전만큼 인기가 없다는 걸 우리도 인정해야 해. 마리오의 시대는 이제 끝났다는 걸 말이야.

마른 장신의 여인

기억나? 같이 지하실에 틀어박혀서 '살육의 금고'를 봤던 때 말이야. 우리가 영화계의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꿈꾸기 시작한 건 그 영화가 계기였어.

로베르타

그 기괴하고 섬뜩하지만 사실적으로 다가온 이미지에, 우리는 죽을 만큼 떨었어. 그리고 나서야 그건 그냥 라텍스와 안료로 만든 기적의 산물이라는 걸 알았지.

마른 장신의 여인

돌아오는 길에, 너는 네가 얼마나 떨렸는지 계속 쉴 새 없이 떠들었어. 정말 시끄러워서 어쩔 수가 없었지.

로베르타

그런 말 할 처치야? 너도 너무 놀라서 말도 못 하고 계속 날 무시했잖아.

마른 장신의 여인&로베르타

……아하하하.

마른 장신의 여인

아하핫…… 콜록콜록……

로베르타

(재빨리 물을 건넨다)

로베르타

괜찮아, 신시아?

마른 장신의 여인

꿀꺽꿀꺽…… 괜찮아 괜찮아. 그래, 오늘 왜 날 부른 거야? 베이커.

로베르타

어느 역사 영화 제작진이 빅토리아 귀족 여성 메이크업을 할 수 있는 아티스트가 필요하다 해서, 너를 추천하려고 해.

마른 장신의 여인

빅토리아 역사 영화인가…… 그 정교한 눈썹에, 일사불란한 헤어스타일 말이지. '재밌네'.

로베르타

그 영화는 빅토리아 공공 예산이 투입돼서 경비도 충분하고, 연출부터 배우까지 모두 우수한 사람들 뿐이야. 게다가 개런티가 좋은 건 둘째치고, 제일 중요한 건 인맥이지.

로베르타

너라면 충분히 그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거라고 믿어. 이번 공동 작품이 있으면, 다음 일 걱정할 필요도 없잖아.

마른 장신의 여인

이제…… 이제 됐어. 마리오랑 약속해버렸거든.

로베르타

신시아, 마리오의 권유는 뒤로 미뤄버려. 이게 더 좋은 찬스라니까.

마른 장신의 여인

베이커, 나보고 악취미라던가 힙스터라 해도 좋아. 하지만 내게 영감을 주는 건, 그 피투성이 광경뿐이야.

로베르타

그거, 살인마 대사처럼 들리는 거 알아?

마른 장신의 여인

괜찮네. 다른 살길로는 나쁘지 않은 것 같아.

로베르타

농담하는 거 아냐, 신시아. 자기 장래를 제대로 생각해야지.

마른 장신의 여인

베이커, 내가 제작에 참여한 저예산 영화가 엉망진창인 플롯에, 파탄투성이 영화들뿐이란 건 알아. 촬영 기법도 조잡하고, 기분 나쁘고, 관객들한테는 무시당하고, 평론가에게는 경멸받지.

마른 장신의 여인

근데 난 그런 거 신경 안 써. 내 눈에는, 전부 완전 쿨하고 스타일리시해 보이니까! 그 영화는 저런 주류 상업 영화들이 할 수 없는 걸 해내고, 흔한 양산형 영화가 하기 싫어하는 걸 해나가는 거야.

마른 장신의 여인

내겐 그 이상하고, 기묘하고, 허무맹랑한 스타일이 자유와, 속박에서의 해방을 보여주는 거야. 그리고 그게 내가 평생 꿈꿔왔던 거지.

로베르타

……하지만, 너 혼자뿐인 상황에서 어떻게 꿈을 좇는단 말이야?

마른 장신의 여인

베이커, 사람의 일생은 너무 짧아서 원하는 것이 많아질수록 얻을 수 있는 것은 오히려 적어져. 때로는 아무래도 좋은 일은 버리고, 정말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해야 할 때도 있는 거야.

마른 장신의 여인

가르쳐 줘, 베이커. 너는 정말 그 작품을 좋아해? 그 소위, '고급스럽고 고상한' 스타일이라는 게, 정말 네가 심혈을 기울일 가치가 있는 거야?

로베르타

나는…… 모르겠어. 그 작품들은 내게 그저 일에 불과하니까, 직무를 완수할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해.

마른 장신의 여인

그럼 네가 좋아하는 건? 넌 대체 어디에 그걸 두고 와버린 거야?

로베르타

……나, 나도 기회가 되면, 다시 한번 되찾을 생각이야.

마른 장신의 여인

하지만 난 못 기다려. 기다릴 수가 없다고!

마른 장신의 여인

멈추거나 타협하는 건 사양이야. 나는 지금 살아있는 하루하루를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보내고 싶어. 비록 그게 내게 고통밖에 주지 않는다 해도 말이야.


시체 안치소 직원

뭔가 생각할 거라도 있으신가요?

로베르타

얘가 전에 내게 이야기해 줬던 게 생각났어.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할 거라는 이야기.

로베르타

그날은 흐렸고, 쪼잔한 식당 주인이 불을 두 개 켜기도 아까워했지. 그래서 실내는 어두웠으니까 분명 보이지 않았을 텐데……

로베르타

하지만 그때 얘 표정은, 내 기억 속에서 이렇게나 분명하게, 선명히 남아있어.

눈앞에 있는 종이처럼 창백한 얼굴과, 기억 속의 결의와 희망에 찬 얼굴이 겹친다. 로베르타는 브러시를 들고 시신의 얼굴을 칠하기 시작했다.

파운데이션이 그녀의 브러시로 한 붓, 한 붓 펼쳐지며, 새파래진 얼굴에 혈색이 돌아오고 메마른 볼에도 활기가 넘쳐났다.

로베르타

(브러시를 놓는다)

시체 안치소 직원

……끝나셨나요?

로베르타

응, 끝났어.

시체 안치소 직원

마치 잠든 것 같네요. 훌륭한 솜씨입니다.

로베르타

……그런가?

로베르타

얘랑은 스타일리스트 업계에 막 들어왔을 때 알게 됐어.

로베르타

당시에는 주머니에 돈도 없었고 살 집도 없던 나를 얘가, 자기가 살던 지하실에 묵게 해줬지.

로베르타

그 뒤로는 둘이서 함께, 먹고 살 일자리를 찾으려 여러 제작팀을 전전했지.

로베르타

우수한 메이크업 아티스트였어. 훌륭한 기술로 누군가의 얼굴을 완전 다른 사람의 얼굴로 바꿀 수 있었지.

시체 안치소 직원

그 말을 들으니, 이분이라면 랭크우드에서 크게 성공할 수도 있었겠네요.

로베르타

거기에서 돈을 벌려면 재능만으로는 안 돼. 얘는 운도 안 좋았고, 너무 고집이 세서 항상 기회를 놓쳤어.

로베르타

7년, 우리가 안 지 7년이 됐어. 얘가 처음 왔을 때 의기양양한 모습이나, 밤새 창작할 때 악전고투했던 모습이나, 처음 일을 완수했을 때 떠들썩한 모습을, 나는 봐 왔지. 그리고 지금……

로베르타

시체 안치소에 누워있는 모습도.

로베르타

차갑고, 창백하고, 핏기 없는 모습.

시체 안치소 직원

하지만 당신 손으로 꾸며져서, 훨씬 아름다워지지 않았나요?

로베르타

아니, 이런 건 내가 원했던 게 아냐……

시체 안치소 직원

……그, 이걸로는 아직 부족한가요?

로베르타

왜냐면…… 만약 내가 제대로 했다면……

로베르타

왜 얘는 눈을 안 뜨는 거야. 왜 심장이 멈춘 채로 있는 거야. 왜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있는 거야……

로베르타

왜 그냥 누워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거야?

시체 안치소 직원

그건…… 이미 돌아가셨으니까요.

로베르타

……그래, 얘는 죽었어…… 죽었다고.

로베르타의 얼굴에 망설임이 번져간다. 어쩔 줄 모른 채, 마르고 키가 큰 그녀의 시신을 바라보았다.

마음의 방벽이 풀어진 그녀에게 괴로움이, 기회라는 듯이 무자비하게 덮쳐온다. 날카로운 통증이 그녀의 심장에서 신체 곳곳을 향해 빠르게 퍼져나갔다.

그녀는 마침내 서 있을 수 없게 되어, 쭈그리고 앉아 웅크렸다. 굽혀진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참지 못하고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로베르타

만약…… 내가 좀 더 굳게 결심했다면, 조금만 더 억지를 부렸으면, 얘도 이렇게 되지 않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시체 안치소 직원

그건…… 어째서 그런 말씀을?

로베르타

랭크우드라는 곳에서 대기업이 요구하는 것은 첫째, 순종적이어야 한다. 둘째, 기술이 있고 이상이나 취향 따위는 하찮은 것이다.

로베르타

내가 누구보다 잘 알 텐데, 그때 나는 얘를 계속해서 설득하지는 않았어. 그런 일은 할 수 없었어……

로베르타

왜냐면 나는…… 내심 얘가 틀리지 않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으니까.

로베르타

하지만 나는 내 마음속 외침을 무시했지. 얘처럼 의지를 관철할 수는 없었어.

로베르타

나는 오늘까지 계속, 배를 채우기 위해 고개를 숙여왔지.

로베르타

작품의 상업적 가치 때문에 여러 가지를 포기하고, 버리고 떠났지. 그래서 내 일은 순조로워졌어.

로베르타

그러는 동시에, 점점 지루해지기도 했지. 언젠가, 나는 이 일로 인해 완전히 비어 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예감이 들었어.

로베르타

하지만 얘가 업계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부터의 열정과 기쁨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

로베르타

……이대로는 어쩌면 정말로, 이 아이만의 세상이 찾아오는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했어.

로베르타

난 이런 희망에 매달리고 말았지. 얘만은 예외가 아닐까 하고, 예외였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그건 실수였어.

로베르타

미안해…… 미안해, 신시아.

시체 안치소 직원

로베르타 씨, 그건……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

로베르타

(큰 소리로 울음)

시체 안치소 직원

……

로베르타

미안, 아까는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였네.

시체 안치소 직원

아닙니다. 여기서 많은 사람들의 혼란스러운 모습을 봐왔으니까요. 당신 같은 사람은 무척 자제력이 강한 분입니다.

로베르타

솔직히 말해서…… 아까 네가 걔를 화장터에 보내는 순간, 메이크업을 지워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시체 안치소 직원

네?

로베르타

편히 잠자는 얼굴만으로, 그 아이의 일생을 해석할 수는 없지 않을까 생각했지.

로베르타

생전에 겪어온 모든 것을 메이크업으로 덮고 편안한 얼굴만 보이게 하다니…… 그게, 내가 버리고 간 것과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겠어?

시체 안치소 직원

하지만 당신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어째서죠?

로베르타

문득, 그 순간……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아니라, 잠시만이라도 좋으니까 진지한 장의사가 되고 싶다 생각해서일까.

로베르타

걔를 행복하게 보내줄 수 있다면, 거짓말이라도 상관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