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미래의 흔적

미래의 흔적

오퍼레이터 레코드브릿지

케스트럴과 제자는 한 상인을 호송하며 국경으로 향하던 중, 도적들로부터 습격받게 된다. 케스트럴은 피의 대가를 치르며 제자에게 '이빨 자국'의 의미를 가르쳤지만, 이는 새로운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되는데……

등장 오퍼레이터: 케스트럴


건기의 태양이 독한 열기를 대지 위에 쏟아냈다. 생기 없는 지면은 영원히 끝이 보이지 않을 것처럼 펼쳐져 있었고, 주변엔 온통 메마른 황갈색뿐이었다.

하지만 이런 환경 속에서조차 여전히 삶을 위해 이 황야를 건너는 이들이 있었으니, 버든비스트가 끄는 덮개 마차는 지금 막 모래와 돌이 깔린 길을 따라 전진 중이었다.

케스트럴은 마차의 앞자리에 앉아 전방의 텅 빈 황야를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맞닥트린 문제래 봐야 그저 무더위뿐, 이 호송 임무도 어느덧 마지막 구간만 남겨둔 채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케스트럴

텔라라, 어떻게 돼가고 있어?

케스트럴

어제 내내 뒷자리에 앉아서, 점심도 대충 몇 입만 먹고 바로 돌아가서 연습했었잖아. 이제 좀 감을 잡았어?

케스트럴은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았다. 옆자리에 앉아 연습장과 씨름하고 있던 텔라라가 잠시 손을 멈추더니, 케스트럴을 향해 고개를 저었다.

텔라라

아직도 감이 안 잡혀, 케스트럴 언니…… 문양을 이해하는 게 너무 어려워……

텔라라

여기 이 몇 개 문양들만 봐도, 나는 도저히 차이점을 구별 못 하겠어. 그리고 매번 각 문양이 어떤 의미인지 헷갈려.

텔라라

완전한 '이빨 자국'을 그리려면 아직도 한참 걸릴 것 같아……

케스트럴

사실…… 그렇게 복잡하지 않아, 텔라라.

케스트럴

원래 '이빨 자국'은 전투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거고, 우리가 과거를 기록하는 방식이야. 그 사람들 말로는 뭐라더라?

텔라라

음…… 전승?

케스트럴

그래, 대충 그런 뜻이었어.

케스트럴

부족 사람들이 어떻게 싸우고, 명예를 어떻게 여기는지를 이해하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문양도 그릴 수 있게 될 거야.

케스트럴

배운 사람들처럼 모든 문양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외우라는 게 아니야, 중요한 건 그 느낌이니까.

텔라라

언니 말이 맞고, 그 원리도 알겠어. 근데 난 언니랑 달라, 애당초 난 그렇게 많은 전투를 겪어본 적이 없단 말이야.

텔라라

난 그냥 마을에서 안전히 평범하게 자란 아이일 뿐이고, 그 근위병 같은 사람들도 처음 봤어.

텔라라

그런 내가 어떻게 그 느낌을 알겠어……

케스트럴

그러니까 이번 호송 임무에 널 데리고 온 거야. 그게 아니었으면 진작에 널 사무소 동료에게 맡겼겠지.

케스트럴

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빨 자국'은 전사의 표식이기도 한데……

케스트럴

하지만 넌 실제로 싸워본 적이 없지. 어떻게 해야 네가 전사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으려나……

텔라라

그러고 보니 케스트럴 언니는 부족을 떠난 후에도 새 '이빨 자국'을 그렸다고 했지?

텔라라

그 문양들은 언니가 새로 구상한 거잖아. 그땐 어떤 생각이었어?

케스트럴

분명 내가 로도스 아일랜드에서 새로 '이빨 자국'들을 그렸긴 한데……

케스트럴

그때의 난 여전히 전사였고, 내 삶은 줄곧 변하지 않았거든. 그 문양들도 전투와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거였고……

케스트럴

난 단지 옛 방식을 따라 새로 문양을 만들어 낸 것뿐이었어.

텔라라

나도 언니가 알려준 대로 따라 했는데, 왜 이렇게 문양이 어색하게만 그려지는 걸까?

텔라라

내가 너무 멍청한 건가……

케스트럴은 그 말을 듣고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손을 뻗어 텔라라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케스트럴

자기 자신한테 멍청하다는 말 금지야, 텔라라!

케스트럴

그리고 설령 정말로 재능이 없다고 해도, 네가 배워낼 때까지 내가 가르쳐줄게.

케스트럴

비록 '이빨 자국'의 의미를 이해하는 게 그리 쉽진 않겠지만, 너라면 분명 해낼 수 있을 거야. 난 널 믿어.

케스트럴

네가 싸움을 못하더라도, 내가 이 황야의 온갖 전설들을 너에게 직접 보여줄게. 그러면 언젠가는 분명 진짜 '이빨 자국'을 그릴 수 있을 거야.

케스트럴은 그렇게 말하며 다시 앞을 바라봤다. 그녀의 시야 속 작열하는 태양 아래의 광활한 황야는 수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은 듯했다.

텔라라는 케스트럴이 헝클어뜨린 머리를 털며, 얼마 전에야 알게 된 자신의 스승을 새삼스럽게 바라봤다.

텔라라

케스트럴 언니, 사실 말하고 싶은 게 있는데, 언니는 다른 전사들이랑 정말 다른 것 같아.

케스트럴

갑자기?

텔라라

왜냐하면……

???

저기요, 케스트럴 씨! 앞쪽 상황은 어때요?

텔라라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카라반 안에서 한 쿠란타 남성이 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햇볕에 그을린 상인의 얼굴에는 연이은 여행의 피로가 묻어 있었고, 이를 드러낸 채 웃고 있는 얼굴은 꽤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케스트럴

걱정하지 마, 다 괜찮으니까. 우린 이제 곧 국경 쪽 시장에 도착할 거고, 거기만 지나면 사르곤을 떠났다고 볼 수 있지.

케스트럴

그때가 되면 그쪽은 짐을 챙겨서 북쪽으로 계속 가면 돼. 무슨 통행증 같은 것도 필요 없을 거야.

케스트럴

어때, 내가 처음에 말했던 대로지? 사실 이 길은 조금 황량해 보이는 것 말고는 위험하지 않아서, 이 길을 선택하는 카라반도 제법 적지 않거든.

여행 상인

하지만 그래도 조심하는 게 좋잖아요. 물론 아무 일도 없는 게 제일 좋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무슨 일이 생긴다면……

여행 상인

저는 사르곤에 와서 장사한 적이 몇 번 없다 보니, 제 물건들을 가지고 며칠이나 사람 한 명도 안 보이는 황야를 건너야 한다는 생각만 해도 겁이 나더라고요.

여행 상인

사람도 지역도 낯설고 해서, 로도스 아일랜드 사람들에게 의뢰하는 게 아무래도 훨씬 안전할 것 같았죠.

케스트럴

하하, 그쪽이 이렇게 조심스러운 줄은 생각도 못 했네. 하지만 걱정하지 마, 무슨 일이 생겨도 그쪽은 조금도 다치지 않도록 약속할게.

여행 상인

사람이 제일 중요한 게 아니라, 이 물건들만 아무 문제 없이 무사하면 좋겠어요. 여기까지 오는 게 얼마나 어려웠는데요.

케스트럴

사람이 제일 중요한 게 아니라고?

케스트럴

에휴, 굳이 그쪽 생각을 이해할 필요는 없지. 그냥 안에서 푹 쉬어. 국경 쪽 시장에 도착하면 내가 불러줄게.

여행 상인의 얼굴에는 또다시 그 부자연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상인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카라반 안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여행 상인

네, 말씀대로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릴……

상인의 말은 버든비스트 마차의 바퀴 소리에 묻혔다. 케스트럴과 텔라라는 서로 눈이 마주쳤고, 이내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케스트럴

텔라라, 너도 이만 뒤에 가서 앉아. 이제 곧 해가 가장 뜨거워질 시간이니까.

케스트럴

'이빨 자국'은 언젠가 분명 그릴 수 있을 거야. 계속 여기 앉아 햇볕을 쬔다고 해서 무슨 방법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나 혼자 길을 봐도 충분해.

케스트럴

어떻게 그릴지는, 시장에 도착하면 다시 생각해 보자.

텔라라

응!

케스트럴

빨리 가!


돌격의 뿔피리가 울려 퍼졌을 때, 버든비스트 마차의 앞좌석에서는 이미 국경 쪽 시장이 있는 오아시스가 멀리 지평선 위에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버든비스트는 소리를 들은 그 순간 발걸음을 멈추었고, 케스트럴은 그 즉시 손에 칼자루를 쥐었다. 모래와 먼지를 휘감은 발굽 소리가 매우 빠르게 마차로 다가오고 있었다.

상인은 당황하며 고개를 내밀었다. 그의 얼굴에 맺힌 땀방울은 결코 황야의 더위 때문은 아니었다.

여행 상인

케스트럴 씨, 이거……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죠? 설마 정말로……

여행 상인

왜 멈춘 겁니까? 도망칠 순 없어요?

케스트럴

네 짐을 버리지 않는 이상은 불가능해.

케스트럴

게다가 이런 사람들 상대로 도망치는 건 최악의 방법이야. 더 나쁜 결과를 얻게 될걸.

케스트럴

쟤들이 너희들한테 손을 쓸 수 없도록, 너흰 뒤쪽에 꼭꼭 숨어서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

케스트럴

텔라라! 절대 나오면 안 돼, 뒤에서 잘 숨어 있어.

카라반 안에선 텔라라의 짧은 대답만이 들려왔고, 케스트럴은 칼을 단단히 쥔 채 휘몰아치는 모래바람 속에서 습격해 오는 그림자들을 바라봤다.

여행 상인

케스트럴 씨, 저 녀석들 대충 상대할 수 있는 강도 같지는 않은데요……

케스트럴

멀쩡한 팔다리로 물건을 가지고 사르곤을 떠나고 싶다면, 내 말대로, 안으로 돌아가 앉아 있어.

케스트럴

내가 죽기 전까진 절대로 저 녀석들이 너희들 손가락 하나라도 건드리지 못할 테니까.

여행 상인

네…… 알겠어요……

상인은 물건을 지켜주겠다는 말에, 반쯤 쉰 목소리를 내며 서둘러 다시 되돌아 들어갔다.

케스트럴

(인원은 많지 않아…… 대열도 그리 정돈되어 있지 않은 걸 보니, 아마 국경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유랑 도적들인 것 같은데……)

케스트럴

(아마도 국경을 넘는 상인들을 노리고 온 게 분명해……)

빠른 속도로 습격해 오는 도적무리는 조금도 멈출 기미가 없어 보였고, 케스트럴이 그들의 두건 아래 눈빛을 똑똑히 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그리고 그 눈빛보다 더 밝게 빛나는 것은, 그들이 손에 들고 있는 곡도의 칼날에 반사되어 나오는 햇빛이었다.

케스트럴

더 해볼 셈이야? 고작 너희 정도로는 나한테 상처 하나 못 입힌다고!

카라반을 둘러싼 도적들이 모두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첫 번째 돌격 후, 케스트럴의 앞쪽에 도적 시신 한 구가 더 생겨났기 때문이었다.

카라반 앞쪽의 버든비스트는 불안한 듯 발굽을 들었고, 케스트럴은 고삐를 꽉 쥐었다. 오른손에 쥔 톱날에서는 선홍색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케스트럴

너흰 사냥감을 잘못 골랐어. 지금 당장 꺼져. 그렇지 않으면 이 칼이 너희 모두의 목을 찌를 테니까.

케스트럴

오늘 이 마차 안의 무엇이 있든 간에, 털끝 하나도 건들 생각 하지 마.

케스트럴이 말하며 손에 든 톱날을 높이 들어 올리자, 칼날의 선홍색이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유난히 눈에 띄었고, 그것을 본 도적 잔당들은 모두 재차 두어 걸음씩 물러섰다.

케스트럴

겁이 나는 게 정상이지. 죽은 저 녀석을 너희에게 주는 교훈으로 삼으라고.

뒷걸음질을 멈춘 도적들은 여전히 카라반을 둘러싸고 있었다. 케스트럴은 여전히 사나운 습격자들의 눈빛을 보고, 두려움이 아직 그들을 무너뜨리지 못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케스트럴

(이 녀석들 딱히 강하진 않아. 나 혼자서 전부 처리 못 할 건 아니긴 한데.)

케스트럴

(하지만 만약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죽음조차 각오한 놈들이라면……)

그녀는 다시 전투 자세를 갖추었고, 그녀 앞에 있던 도적들의 곡도 역시 또 한 번 들어 올려졌다.

도적들의 두 번째 돌격은 이전보다 훨씬 빨랐다. 케스트럴은 상대의 공격이 도달하기 전에, 도적들의 목표가 자신이 아니라는 걸 즉시 알아차렸다.

곡도의 칼날이 앞쪽의 두 마리 버든비스트를 향했다. 깜짝 놀란 버든비스트들은 앞발을 높이 들며 울부짖었고, 미친 듯이 고삐의 속박에서 벗어나려 했다.

미친 듯이 날뛰는 버든비스트의 발버둥에 곧 마차가 옆으로 전복됐다. 케스트럴은 도적들의 공격은 막아냈지만, 마차가 전복되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텔라라

꺄악!

연습장을 품에 안은 소녀가 마차에서 굴러떨어졌고, 그 안에 끼워져 있던 종이들이 순식간에 메마른 황야 위로 흩날렸다.

케스트럴

텔라라! 조심해!

버든비스트들이 일으킨 먼지 속에서, 도적들이 계속해서 거리를 좁혀왔다. 앞장서 있던 도적은 대열에서 한발 앞서 나가서는 미리 옆으로 선회하더니, 텔라라가 있는 방향으로 돌진했다.

케스트럴

빌어먹을, 이런 수작을 부리다니!

케스트럴

그 아이를 다치게 할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고!

텔라라

안 돼!

케스트럴

일어나, 텔라라.

케스트럴

이제 괜찮아, 놈들은 도망갔어.

케스트럴은 발밑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머리를 감싸며 떨고 있는 텔라라와 목이 꿰뚫려 쓰러진 도적 두목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등 뒤엔 방금 쓰러진 또 한 명의 도적이 있었다. 아까 그녀가 텔라라를 향해 고개를 돌렸을 때, 그 도적은 케스트럴의 등을 향해 칼을 내리쳤다.

텔라라

케스트럴 언니, 언니 등이!

텔라라

빨리 뭐라도 찾아서, 상처를 지혈해야겠어!

케스트럴

너만 무사하면 됐어. 저 녀석들이 너희를 건드리게 할 순 없지.

케스트럴

네 '이빨 자국' 그림이나 챙기도록 해. 이 정도 상처는 별거 아니니까.

텔라라

하지만 그림들은…… 봐봐, 문양도 전부 엉망진창인 데다가, 이젠 거기에 피까지 묻었어.

텔라라

이미 쓸모없어진 것들에 신경 쓰기보다는, 빨리 시장에 가서 다친 곳부터 살펴보는 게 좋겠어, 케스트럴 언니…… 피가 아직도 흐르고 있잖아……

케스트럴은 텔라라가 들고 있는 피 묻은 습작을 바라보더니, 조용히 소녀를 자신의 곁으로 끌어당겨, 그녀의 손에 든 종이를 가져갔다.

그녀의 등에 난 상처에서 피가 흘러나오며, 그녀의 몸에 있는 흰 문양을 붉게 물들였다.

케스트럴

텔라라, '이빨 자국'은 원래 전사들이 자신의 피로 그리던 거야.

케스트럴

그렇기 때문에, 전사들의 피와 희생을 잊지 않게 해주는 문양인 거지.

케스트럴

비록 아주 오래전 어느 시점부터 사람들은 피 대신 물감을 사용하기 시작했지만, 그 의미만은 변하지 않았어.

케스트럴

내 '이빨 자국'은 내가 지켜야 할 책임을 잊지 않게 해주고 있어. 더구나 이런 상처는 치명적인 것도 아니라서, 금방 나을 테니 걱정하지 마.

케스트럴

그보다…… 그 상인은……

여행 상인

전 살아있어요, 살아 있어요. 무서워 죽는 줄 알았네.

여행 상인이 넘어진 마차 속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비록 머리는 헝클어지고 옷은 흐트러졌지만, 딱히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여행 상인

천지신명이시여 감사합니다. 다행히 상자들이 잘 고정된 덕분에, 물건은 전부 무사하네요.

여행 상인

케스트럴 씨, 다친 데는 괜찮으세요? 저희가 이대로 계속 국경까지 갈 수 있을까요?

케스트럴

문제없어. 다만 이 버든비스트 두 마리가 다쳐서 말이야. 남은 거리는 얼마 안 되긴 하지만, 너무 무리하면 안 될 것 같아.

케스트럴

누가 먼저 시장에 한번 갔다 와야겠어. 그리고 마차도 정리해야지.

텔라라

내가 갈게, 케스트럴 언니.

케스트럴

그 도적들이 물러나긴 했지만, 아직 완전히 멀리 간 것도 아니야. 어떻게 널 혼자 보내겠어.

케스트럴

물론 그렇다고…… 너를 여기 두는 것도 안전하지는 않지만.

케스트럴

이렇게 하자. 텔라라, 내 칼을 가지고, 얼른 시장에 다녀와.

케스트럴

놈들도 피의 교훈을 한번 맛봤으니까, 감히 칼의 주인에게 덤비진 않을 테지. 이 칼이 널 지켜줄 거야. 나는 여기에 남아서 저 상인을 지키고 있을게.

텔라라

언니의 칼…… 응, 걱정하지 마. 꼭 안전하게 시장에 다녀올게!

텔라라

케스트럴 언니, 상처 조심해. 너무 무리하지 말고.

텔라라

최대한 빨리 돌아올게!

여행 상인

수행원이 한 명 있는 게 정말 큰 도움이 되네요, 케스트럴 씨.

케스트럴

텔라라는 수행원이 아니고, 내 제자야.

케스트럴

아니, 제자라기보단 친구에 가깝지.

여행 상인

제자요? 하지만 딱히 전투 기술을 가르치시는 것도 아니잖아요. 케스트럴 씨는 참 독특한 전사이신 것 같아요.

여행 상인

뭐, 이 얘긴 그만하고, 우선 마차 정리 좀 부탁드릴게요.

케스트럴

독특한 전사…… 인 건가.

그녀는 텔라라가 떨어뜨린 연습장을 주워서 피로 물든 '이빨 자국'들을 조심스레 끼워 넣은 뒤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여행 상인

아슬아슬했네요. 하필 목적지에 거의 다 와서 그런 일을 겪다니. 그래도 출발 전에 호위를 고용해야겠다고 생각한 게 정말 다행이었어요.

여행 상인

마차도 고쳐야 하고, 버든비스트도 두 마리나 새로 사야 하지만, 그런 것보다도 제 물건을 무사히 지켜낼 수 있었으니까요.

여행 상인

케스트럴 씨, 이 한 잔은 우리가 무사히 도착한 걸 축하하는 의미도 있지만, 동시에 당신에게 바치는 술이기도 합니다!

여행 상인

당신에게 준 호위 비용이 내가 평생 쓴 돈 중에서 가장 가치 있는 돈이었어요. 자, 건배합시다!

케스트럴

아…… 그럼, 건배.

케스트럴

두 사람 다 안 다쳤다면, 내 임무는 완수한 셈이야.

케스트럴

그 무모한 도적들을 상대로 이 정도면 충분히 축하할 만한 일이라고 할 수 있겠지.

케스트럴은 그렇게 말하며 술잔을 들었지만, 시선은 옆에서 조용히 습작을 바라보는 텔라라에게 향했다.

여행 상인

꿀꺽…… 크하! 시원하다!

여행 상인

아, 그나저나 케스트럴 씨. 당신이랑 제자가 계속 만지작거리는 그건 뭔가요? 그림인가요?

케스트럴

아, '이빨 자국'을 말하는 거야? 음, 일종의 그림이라고 할 수 있지. 이건 우리 사르곤 부족 사람만이 그릴 수 있는 거거든.

케스트럴

이제는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 아는 사람도 거의 없어서, 내가 이 기술을 이어 나가기 위해 텔라라를 제자로 들인 거야.

여행 상인

오, 이러한 기술을 아는 사람이 현재는 거의 없다고요?

케스트럴

응. 예전엔 우리 부족의 모든 전사가 이러한 문양들을 어떻게 그릴 지 다들 알고 있었어……

케스트럴

지금은…… 황야에서 나처럼 운 좋게 살아남은 사람들도 아직 있긴 하지만, 그 사람들이 이 기술을 이어주진 못할 수도 있으니까.

여행 상인

어쩐지 아까 그걸 목숨 걸고 지키시더라니, 그렇게 귀한 거여서 그랬군요.

여행 상인

정말 값이 나가는 물건 같아요, 마치 제 화물처럼 말이죠, 하하!

케스트럴

값? 아니, 난 그런 걸 위해 싸운 게 아니야.

케스트럴

하물며 '이빨 자국'은 값을 매길 수 없어. 나를 따라오겠다고 한 텔라라는 더욱 그렇고 말이야.

케스트럴

텔라라는 안정된 삶을 포기하면서까지, 나와 함께 여행하기를 원했어……

텔라라

포기라고까지는 말할 순 없어, 케스트럴 언니. 나도 마을에서 평생 사는 건 싫었으니까.

텔라라

부모님 가게를 지키는 것도 괜찮긴 했겠지만, 늘 과거의 것만 지키고 있을 수는 없다고 느꼈거든.

텔라라

그래서 케스트럴 언니가 우리 가게에 물건을 가져다주러 왔을 때, 제자로 받아줄 수 있냐고 물어봤던 거야.

케스트럴

나도 예전에 네 또래 아이들을 만난 적이 있었지만, 그땐 어떻게 싸우는지만 알려줬었지, 더 중요한 것들을 깨닫게 해주진 못했거든……

케스트럴은 말을 마치고 잔 속의 술을 단숨에 비우더니, 그저 조용히 텅 빈 잔을 바라보았다.

케스트럴

아마 그때는 내가 반드시 지켜야 할 것들에 대해서, 아직 완전히 깨닫지 못했던 거 같아.

여행 상인

재밌네요, 재밌어요. 이런 이야기는 전 처음 들어봤거든요.

여행 상인

이전에 고용했던 호위들도 다 유능하긴 했지만, 대부분 오로지 전투만 아는 사람들이었죠. 케스트럴 씨 같은 사람은 처음 봐요.

케스트럴

그럴 리가. 사막엔 나 같은 전사들이 많아. 다만, 전사의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적을 뿐이야.

케스트럴

하지만……

케스트럴

에휴, 됐고 술이나 마시자! 텔라라, 너도 계속 연습장만 보고 있지 말고 탄산수라도 들어. 우리 같이 건배하자!

케스트럴

호위 임무는 이제 끝났어. 이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할 기회인 것 같네.

여행 상인

그렇네요, 마지막으로 딱 한 잔만 더 하시죠. 저는 해가 지기 전에 다음 마을로 서둘러 가야 할 거 같아요.

여행 상인

다 마시고, 여기서 헤어집시다!

케스트럴

나랑 똑같은 생각이군, 그러면 마시자!

세 사람

건배!

여행 상인

으…… 사르곤 술은 진짜 독하네…… 케스트럴 씨처럼 많이 안 마신 게 그나마 다행이지.

여행 상인

정말 흥미로운 사람이야. 그 사막의 예술도 참 독특해 보였고, 케스트럴 씨 말로는 아주 희귀하기까지 하다고 했었지……

여행 상인

좋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화물만 점검하고, 바로 출발해야겠다.

여행 상인

상자 개수…… 표시…… 다 이상 없고.

여행 상인

응? 이건……?


일주일 후, 사르곤의 어느 시장.

사르곤 주민

자 이게 당신 몫의 옷감이야. 이 붉은 게 당신 거. 급하게 돈부터 꺼내지 마, 내가 하나씩 계산해 볼 테니까!

사르곤 주민

음, 이건 딱 떨어졌으니까, 거스름돈은 없네. 그다음은……

여행 상인

사장님! 사장님!

여행 상인

이것 좀 봐주세요. 혹시 이런 거 그릴 줄 아는 사람 어디 있는지 아세요?

옷감 상인의 가판대 앞에서, 한 외지 상인이 문양이 가득한 종이 한 장을 흔들며 흥분한 듯 물었다.

여행 상인

여기 계신 누구라도 좋아요. 이걸 그릴 줄 아는 사람만 찾아주시면, 제가 엄청나게 후한 보수를 드릴게요!

사르곤 주민

응? 그게 뭔데……

옷감 상인은 의아한 듯 상인의 손에 든 그림을 봤다가, 이내 하찮은 걸 본 듯한 표정을 지었다.

사르곤 주민

이런 건 또 어디서 가져온 거야. 이거 부족 사람들이 몸에 그리는 '이빨 자국'이잖아.

여행 상인

맞아요 맞아요, 그런 이름이었어요! 혹시 이런 거 그릴 줄 아는 사람 두 명 좀 찾아주실 수 있나요?

여행 상인

이건 진짜 값진 거예요. 제가 큰돈, 아주 많은 돈을 지불해서라도, 그 사람들한테 더 만들어달라고 하고 싶어서 그래요.

사르곤 주민

형씨, 속은 거 같은데. 내가 딱 보니까, 이 '이빨 자국'은 잘못 그려져 있는걸.

사르곤 주민

이런 건 부족 내에서 전승되는 거라, 그리는 방법이 정해져 있다고. 형씨가 들고 있는 그건 색깔부터 문양까지 전부 잘못된 거야.

사르곤 주민

못 믿겠으면 다른 사람들한테도 가서 보여줘 봐. 누구도 이게 제대로 그려졌다고는 안 할 걸.

사르곤 주민

그리고 제대로 된 거라고 쳐도, 그건 그저 부족 전사들이 전투를 기록하는데 쓰는 것일 뿐인데, 뭐 비싸게 팔리기나 하겠어?

여행 상인

아니요, 아니요! 요즘 수집가들 사이에선 이게 최고 인기라니까요! 그 사람들이 제 마차에 남긴 게 바로 이런 그림이었는데, 컬럼비아에서 엄청 비싼 값에 팔렸다고요.

여행 상인

그 사람 이름이 분명…… 맞아, 케스트럴이었어요. 그 사람 좀 찾아주세요……

사르곤 주민

내가 말했잖아, 그건……

옷감 상인의 가판대 밖, 시장의 인파 속에서.

케스트럴

텔라라, 네가 어제 그린 그 '이빨 자국' 정말 예뻤어.

케스트럴

지금까지 아무도 그런 문양을 그렸던 적은 없긴 하지만, 전에 네가 따라 그리려고 시도하던 거랑 비교하면, 분명 훨씬 좋아졌어.

케스트럴

마치 네가 갑자기 각성한 것처럼.

텔라라

케스트럴 언니 기억 안 나? 그날 그 상인이랑 헤어지고 나서도, 언니는 술을 많이 마셨잖아.

텔라라

그날 밤에 언니가 나한테 많은 얘기를 해줬는데, 뭐 물론 그게 '이빨 자국'을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에 대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중에서 딱 한 마디가 기억에 깊게 남더라고.

텔라라

언니 스스로는 영원히 전사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원히 싸우는 건 아니라고 말했었거든.

텔라라

그래서 난 '이빨 자국'도 마찬가지로, 그게 단지 전사들의 과거를 기록하는 것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

케스트럴

하긴…… 원래도 일종의 축복으로 볼 수 있지. 두목이 내게 가르쳐줬던 수호 문양처럼 말이야.

텔라라

아니, 케스트럴 언니. 내 말은, 우리가 본 모든 것을 그리고 싶다는 뜻이야.

텔라라

사르곤의 사람들, 황야, 그리고 우리가 마주한 모든 이야기, 어쩌면 내가 그것들을 '이빨 자국'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

텔라라

피도, 특별한 색깔도 필요 없고, 이미 정해진 문양을 쓸 필요도 없는 그런……

케스트럴

하하……!

케스트럴

그때 네가 나와 함께 가겠다고 해서 정말 다행이야, 텔라라!

케스트럴

그래, 그때 두목이 나한테 해줬던 모든 것들이, 바로 이런 의미였구나.

텔라라

그게…… 뭔데?

케스트럴

사실 간단해, 텔라라.

케스트럴

난 굳이 사무소로 서둘러 돌아가지 않아도 되니까, 앞으로 우리 조금 더 둘러볼 시간이 될 거 같아.

케스트럴

그래서 나도 너처럼 다른 곳들에 가서 보려고 해. 황야뿐만 아니라, 더 멀리 있는 사람들과 일들까지 말이야.

케스트럴

우리 어떻게 하면 새로운 '이빨 자국'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 함께 생각해 보자!

텔라라

……

텔라라

좋아, 케스트럴 언니!

케스트럴

그럼 바로 출발하자, 먼저 이 황야부터 건너는 거야!

케스트럴은 손을 들어 멀리 지평선을 가리켰다. 두 사람은 웃으며 시끄러운 인파를 지나 황야를 향해 걸어갔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시장 인파 속에서 종이를 흔들고 있는 외지인은, 지나가는 그녀들과 조용히 엇갈릴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