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어제의 내일

어제의 내일

오퍼레이터 레코드브릿지

로사는 새로 들어온 환자에게 위로차 음식을 전달하던 도중 옛 하녀와 만나게 되었다. 자신의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혼란스러워하는 하녀에게, 로사는 말로 설명하기보다는 행동으로 상황을 이해시키기로 결정했다.

등장 오퍼레이터: 로사, 지마, , 이스티나, 레토, 마터호른


로사

굼, 아무도 없으니 솔직히 얘기해 봐. 네 생각은 어때?

이게…… 그렇게 심각하게 물어볼 일이야?

로사

그럼, 나한텐 아주 중요하니까.

음…… 알겠어.

그럼 솔직하게 얘기한다?

로사

걱정하지 마, 마음의 준비는 됐으니까.

솔직히…… 나쁘지 않아.

로사

정말?

응! 로사 언니는 철저히 레시피대로 요리하니까 어떻게 만들어도 못 먹을 정도는 아니야.

로사

다행이다!

근데 굳이 말하자면 로사 언니는 너무 레시피에 얽매여 있는 것 같아.

로사

앗, 그러면 안 되니?

그 어떤 셰프도 전부 레시피대로만 만들지 않거든. 언니는 너무 조심스러운 거 같기도? 물론 이러면 절대 맛없을 리는 없지만…… 오히려 평범한 요리가 되어버리는 것 같아.

로사

……그렇구나. 어쩐지 굼이 만든 요리가 내 요리보다 훨씬 맛있더라.

헤헤, 굼은 그쪽으로 이미 빠삭하거든.

로사 언니, 이 정도 해내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야. 어쨌든 지마 언니보단 훨씬 잘하는걸.

로사

이런 쪽으로 걔를 이긴 건 전혀 기쁘지 않은걸.

마터호른

굼 씨, 로사 씨. 부탁했던 요리는 완성됐습니까? 오늘 예정되었던 진료가 거의 끝났습니다만.

아, 마터호른 아저씨! 준비됐어! 굼이 로사 언니랑 같이 요리를 가져다줄게!

마터호른

좋습니다, 그럼 부탁드리죠.

좋았어, 그럼 어서 가자.

로사

응, 다들 이 요리로 기운을 차렸으면 좋겠네.


다들 안녕!

메딕

아, 굼 씨군요. 오늘의 위문 음식은 굼 씨가 만드신 건가요?

굼이 혼자 만든 건 아니고 로사 언니랑 같이 만들었어!

메딕

정말요?

로사

굼에게 요리를 배울 핑계가 필요했거든.

메딕 언니, 로사 언니가 이 요리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몰라.

굼은 말이야, 스승으로서 이런 제자가 있다는 게 기뻐.

메딕

아무래도 로도스 아일랜드에 대단한 셰프가 한 명 더 생긴 것 같네요.

로사

아직 배울 게 많은걸. 우선 환자들한테 배식부터 하자.

응.

메딕

그럼 이쪽으로 오세요.

활기찬 여자 환자

억양을 들으니 빅토리아 사람이 아닌가 보네요?

수다스러운 여자 환자

휴, 말도 마세요. 남편 병 한번 치료해 보겠다고 우르수스에서 빅토리아까지 왔다니까요.

수다스러운 여자 환자

남편의 병은 어찌어찌 고쳤지만, 어찌 된 일인지 제가 망할 광석병에 걸리고 말았죠.

활기찬 여자 환자

그럼 남편분은……

수다스러운 여자 환자

다행히 저를 버리진 않았어요. 곳곳에 수소문한 끝에 저를 여기로 보냈죠.

활기찬 여자 환자

그래도 복 받으셨네요.

수다스러운 여자 환자

복 받긴요. 후, 남편이 병에 걸리기 전에, 높으신 분의 저택에서 하녀로 일할 때가 정말 복 받은 시절이었죠!

메딕

환자분들, 모두 여기 계셨군요. 제가 배식 도와드릴게요.

로사

고마워.

수다스러운 여자 환자

어……

수다스러운 여자 환자

혹시 나탈리야 아가씨 아니세요?!

로사

당신은…… 소피아?

옛 하녀 소피아

네, 맞아요! 전에 아가씨 댁 하녀로 일했던 소피아예요!

로사

그때…… 그 체르노보그 사건이 터지기 전에 떠났지?

옛 하녀 소피아

네, 맞아요. 알렉세이의 병을 고치겠다고 하녀 일을 관두고, 모아둔 돈을 가지고 빅토리아에 왔죠.

옛 하녀 소피아

체르노보그 사건을 들은 후로 늘 아가씨를 걱정했는데, 별일 없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옛 하녀 소피아

그런데 왜 여기 계세요?

로사

그게……

옛 하녀 소피아

아, 로스토프 가문의 가업 때문이군요! 아가씨는 이곳의 주인이신 거고요, 그렇죠?

로사

……

옛 하녀 소피아

나탈리야 아가씨, 이 불쌍한 소피아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세요.

옛 하녀 소피아

알렉세이를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다가 오히려 제가 이 망할 광석병에 걸리고 말았어요.

옛 하녀 소피아

이곳의 직원들에게 제게 약을 더 많이 처방해 줄 수 있도록 얘기 좀 해주세요. 전 아직 죽고 싶지 않아요.

로사

……

로사

난 이곳의 주인이 아니야, 소피아.

옛 하녀 소피아

주인이 아니라면 왜 여기 계시는데요?

주변에서 쏟아지는 시선에 로사는 이곳이 이야기하기 적당한 장소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로사 언니, 여긴 나한테 맡겨.

로사

……응. 고마워, 굼.

로사

날 따라와, 소피아.


로사

자, 들어와.

옛 하녀 소피아

……

옛 하녀 소피아

아가씨, 여긴……

로사

내 숙소야.

옛 하녀 소피아

숙소요? 아가씨가 왜 이런 곳에서 지내시는 거예요?

옛 하녀 소피아

여긴 저 같은 하인들이 살던 곳보다 훨씬 열악하잖아요!

로사

이미 적응됐어.

옛 하녀 소피아

말도 안 돼요. 금지옥엽처럼 자란 아가씨가 어떻게 버든비스트 우리 같은 방에 적응할 수 있겠어요?

옛 하녀 소피아

주인님 내외께서 이 사실을 아신다면 괴로워하실 거예요!

로사

로스토프 가문은 이미 몰락했어, 소피아.

옛 하녀 소피아

로스토프 가문이…… 몰락했다고요?

로사

리유니온은 체르노보그의 부를 앗아가고, 그곳에 살던 사람들의 존엄성을 짓밟았지.

옛 하녀 소피아

설마 주인님 내외께서도……

로사

……그건 아니야.

로사

그날 이후 부모님의 소식을 수소문해 봤어.

로사

두 분 모두 살아계셔. 운 좋게 체르노보그를 벗어나셨지.

로사

내가 죽은 줄 알고 다른 도시로 가신 거야. 아마 지금쯤 새로운 도시에 정착하셨겠지.

옛 하녀 소피아

그, 그런데 왜 이 함선에 남으신 거예요?

옛 하녀 소피아

여긴 아가씨 같은 분이 계실 곳이 아니에요!

옛 하녀 소피아

어서 주인님 내외를 찾으러 가셔야죠.

옛 하녀 소피아

두 분께서 살아계신 한, 로스토프 가문은 분명 재기할 수 있을 거예요!

로사

……

로사

그럴 생각이었다면 도망쳤을 때 진작 그렇게 했겠지.

로사

하지만 난 그러고 싶지 않아, 소피아. 네가 아는 나탈리야는 이미 죽었어.

로사

지금 이곳에 있는 건 로도스 아일랜드의 오퍼레이터 로사일 뿐이야.

옛 하녀 소피아

……

옛 하녀 소피아

아아, 이제야 알겠네요. 주인님 내외와 말다툼 후에 가출하신 거죠?

로사

……

로사

들어와.

지마

받아.

로사

앗, 이건…… 독서회에서 이스티나랑 얘기했던 《드로스테 형제》잖아?

로사

이걸 왜 지마 네가 가지고 있어?

지마

안나가 널 위해 특별히 찾아둔 거야. 나한테 이걸 전해주라는 부탁하고 임무를 수행하러 갔어.

로사

고마워.

옛 하녀 소피아

당신, 감히 나탈리야 아가씨한테 그런 말투로 얘기하다니, 무례하군요!

로사

소피아, 그렇게 말하지 마.

옛 하녀 소피아

아뇨, 아가씨. 신분에 무지한 이들을 오냐오냐 받아주면 점점 더 기어오르기만 할 거예요.

옛 하녀 소피아

당신, 주인님한테 물건을 전달할 땐 두 손으로 공손히 드려야죠. 그렇게 던지면 어떡해요?

지마

네가 뭔 상관인데?

옛 하녀 소피아

경박스러워서 원! 복장을 보아하니 페테르헤임 고등학생인가보죠?

지마

또 뭐가 문젠데?

옛 하녀 소피아

아가씨의 새로운 하녀인가요? 이렇게 버르장머리가 없어서야!

지마

하? 너 방금 뭐라 그랬냐?

옛 하녀 소피아

후우, 아가씨. 아가씨께서 페테르헤임 고등학교가 체르노보그 학생의 분위기를 망쳤다고 말씀하신 게 엊그제 같은데……

옛 하녀 소피아

이제 그 학교 학생들을 하녀로 삼는 처지가 되셨네요.

옛 하녀 소피아

우르수스로 돌아가기 싫다면 적어도 아가씨의 신분에 맞는 곳에서 지내셨어야죠!

지마

쳇, 그 녀석은 더 이상 아가씨가 아니라고.

옛 하녀 소피아

당신 설마 아가씨와 같은 곳에 산다고 두 사람이 동급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옛 하녀 소피아

조금 전에 당신이 아가씨게 드린 책뿐만 아니라 이 책장에 꽂힌 서적, 각본, 악보를 보세요……

옛 하녀 소피아

아가씨는 이런 환경에서도 과거의 품격을 유지하고 계신다고요.

옛 하녀 소피아

그런데도 당신이 아가씨와 맞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지마

흥, 쟤가 귀족이라고 해서 뭐가 그렇게 대단한데?

옛 하녀 소피아

저는 여러 귀족의 하녀로 일한 덕분에 진정한 고귀함이 뭔지 아주 잘 알고 있어요.

옛 하녀 소피아

나탈리야 아가씨는 제가 지금껏 봐온 귀족 중 '고귀함'이라는 단어에 가장 어울리는 분이시고요.

지마

하?

로사

(나지막이) 신경 쓰지 마.

지마

……됐어.

지마

오늘 할 일이 아직 남았다는 거나 잊지 마.

로사

응, 알고 있어.

옛 하녀 소피아

할 일? 아가씨, 할 일이 있으시다면 제가 대신 도와드릴까요?

로사

별일 아니야. 근처 마을의 선생님이 다치셨거든. 선생님이 한 명 부족하니 내가 대신 가서 아이들을 가르쳐야 해.

옛 하녀 소피아

네? 아가씨, 어떻게 그런 미천한 일을 하시는 거예요?!

옛 하녀 소피아

이곳 담당자를 찾아가 얘기해 볼게요.

옛 하녀 소피아

대체 어떻게 아가씨한테 그런 일을 맡길 수가 있죠?

로사

아니야, 소피아. 내가 자원한 일인걸.


활기찬 학생

로사 선생님, 안녕하세요!

로사

바니, 아버지는 좀 괜찮아지셨어?

활기찬 학생

네! 아빠가 로도스 아일랜드 의사 선생님께 감사하다고 전해달래요!

로사

네가 열심히 수업을 듣는 것이야말로 제일 감사한 일이지.

활기찬 학생

네!

겁먹은 학생

로, 로사 선생님. 안녕하세요.

로사

아, 토토. 이제야 수업 들을 마음이 생겼구나!

겁먹은 학생

네. 그 어, 엄마가 감사하다면서 이, 이걸 드리라고 했어요.

로사

이건…… 약초?

겁먹은 학생

네. 어, 어제 캔 거예요.

로사

고마워……

옛 하녀 소피아

앗, 아가씨. 이건 제가 들게요.

옛 하녀 소피아

이 더러운 약초를 들면 손만 더러워질 거예요.

옛 하녀 소피아

꼬마야, 나탈리야 아가씨가 너그러운 분이긴 해도 다음에 감사 인사를 할 땐 더 좋은 선물을 드려야 한다.

겁먹은 학생

……죄, 죄송해요.

로사

사과할 필요 없어, 토토.

로사

소피아, 넌 밖에서 기다려줘.

옛 하녀 소피아

하지만 여긴 너무 더러운걸요. 아가씨가 이런 곳에서 수업을 하시는데 제가 어떻게 마음 편히 있겠어요?

로사

나가라고 했잖아.

옛 하녀 소피아

……네, 알겠어요.

로사

……

로사가 주변을 둘러보자 창고를 개조해 만든 허름한 교실이 눈에 들어왔다. 호기심이나 두려움이 담긴 열댓 개의 눈이 자신을 향해 있었다.

로사

이런 모습 보여서 미안해, 얘들아.

로사

자, 그럼 이제 오늘 수업을 시작할게.

로사

다들 교과서 67쪽을 펼쳐볼래……


옛 하녀 소피아

휴, 아가씨가 대체 왜 저러시는 걸까?

촌장

아까부터 이 앞을 왔다 갔다 하던데, 대체 누구인가?

옛 하녀 소피아

전 나탈리야 님의 하녀예요.

촌장

나탈리야? 아, 로사 씨 말이군. 이름은 전에 들었네.

옛 하녀 소피아

네, 맞아요.

촌장

하녀가 있다는 건 처음 듣는군.

촌장

아니지, 애초에 로사 씨가 하녀를 둔 귀족이라면 왜 돈을 벌려고 하는 겐가?

옛 하녀 소피아

네?

옛 하녀 소피아

방금 뭐라고…… 돈이라고요?!

촌장

그래, 마을의 문학 선생이 사냥을 나갔다가 중상을 입는 바람에 로도스 아일랜드에서 치료 중이지. 선생이 부족하다는 소식을 들은 로사 씨가 자원해서 온 걸로 알고 있네만.

촌장

처음에는 귀족이 시간을 때우러 왔나 싶었는데, 며칠 지켜보니 열성적인 데다 가르치는 실력도 상당하더군.

촌장

그래서 우리도 기꺼이 대가를 지불하기로 했지.

촌장

사고 싶은 물건이 있어서 돈을 벌기 위해 왔다고 들었네. 피아노라고 했던 것 같은데……

촌장

얼마 전 피아노 살 돈을 다 마련한 걸로 알고 있는데, 그래도 계속 수업을 하러 오더군.

옛 하녀 소피아

……

촌장

정말 로사 씨가 귀족 아가씨고, 자네가 하녀라면 왜 여기까지 와서 아이들을 가르치겠나?

촌장

혹시 사람을 잘못 본 건 아닌가?

옛 하녀 소피아

말도 안 돼요!

옛 하녀 소피아

나탈리야 아가씨는 진정한 귀족이에요!

옛 하녀 소피아

로스토프 가문의 피가 흐르는 분이죠. 태어날 때부터 남달랐단 말이에요!

옛 하녀 소피아

당신 같은 시골뜨기들은 아가씨가 어떤 삶을 사셨는지 절대 모를 거예요!

로사

그만해, 소피아.

로사

안에서 네가 하는 얘기를 전부 들었어.

옛 하녀 소피아

아, 아가씨. 대체 왜 이렇게까지 자신을 낮추시는 거예요!?

옛 하녀 소피아

아가씨는 로스토프 가문의 귀한 따님이시잖아요! 지금 아가씨는 자신의 고귀함을 스스로 짓밟고 계신 거예요!

로사

소피아!

로사

지금까지 몇 번이나 참아 왔는데, 이제 좀 적당히 해.

로사

정말 내 고귀함을 증명하고 싶은 거야, 아니면 내 옆에서 일하던 너도 남들보다 뛰어나다는 걸 드러내고 싶은 거야?!

옛 하녀 소피아

……

옛 하녀 소피아

그러면 안 되나요?

옛 하녀 소피아

로스토프 가문에 있을 때, 얼마나 행복한 나날을 보냈는지 몰라요!

옛 하녀 소피아

매일 주인님 내외와 아가씨를 어떻게 모실지 생각하다 보면 바쁘지만 알찬 하루를 보낼 수 있었어요. 저녁에는 극장에 갈 시간도 있었죠!

옛 하녀 소피아

얼마나 아름다운 시절이었는지 몰라요!

옛 하녀 소피아

그런데 그 저택을 떠난 뒤로 제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세요?

옛 하녀 소피아

알렉세이와 저 자신을 위해 하루하루 뼈 빠지게 일했는데 결국 제가 얻은 건 뭔가요?

옛 하녀 소피아

망할 광석병이잖아요!

옛 하녀 소피아

아가씨가 왜 그 시절로 돌아가기 싫다고 하시는 건지 정말 이해할 수 없어요!

옛 하녀 소피아

아가씨가 저를 데리고 우르수스로 돌아가 귀족이 된다면, 저희 모두 행복한 나날을 보낼 수 있을 거예요!

로사

……미안, 소피아.

로사

행복한 나날은 내가 누려야 할 게 아니야.

로사

네가 곤경에 빠졌던 것처럼 말이지. 그걸 마땅히 누려야 할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로사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고 탓할 생각은 없어. 한땐 나도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당연하게 여겼으니까.

로사

하지만…… 그건 잘못된 거야.

로사

바꿔야 하는 것이고.

옛 하녀 소피아

왜 그렇게 쉽게 말씀하시는 거죠?

옛 하녀 소피아

이 모든 게 제가 누려야 할 것이 아니라면, 전 어떻게 해야 하나요?

옛 하녀 소피아

전 모르겠어요, 아가씨.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전 죽어버릴 거예요.

로사

……

로사

미안, 촌장님.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네.

촌장

아닐세. 후, 정말 딱한 사람이야.

로사

오늘치 보수를 받아 갈 수 있을까?

촌장

물론이지. 이미 준비해 뒀네.

로사

……

로사는 촌장에게 건네받은 봉투에서 돈을 꺼내 지갑에 넣었다.

돈이 많이 모였는지 지갑이 두툼했다.

잠시 망설이던 로사는 소피아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에 지갑을 쥐여줬다.

로사

소피아, 이걸 가지고 이만 돌아가.

옛 하녀 소피아

이건……

로사

내가 모아둔 돈의 일부야. 그 정도면 치료 비용으로 충분할 거야.

로사

이게 네 옛 주인으로서, 널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야.

로사

앞으로는 아가씨라고 부르지 말아줘. 언젠가 내가 우르수스로 돌아간다 해도, 로스토프 가문의 딸로서 가는 건 아닐 테니까.

로사

로도스 아일랜드에서 갖게 된 내 코드네임은 바로……

로사

로사야.

로사

너도 이제 그 코드네임으로 날 불러줬으면 해. 난 이곳의 오퍼레이터일 뿐이니까.

옛 하녀 소피아

……

옛 하녀 소피아

아가씨……

옛 하녀 소피아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옛 하녀 소피아

왜 이런 생활을 선택하신 거예요?

로사

……언젠간 너도 깨닫게 될 거야.

옛 하녀 소피아

아뇨, 전 주인님 내외가 어디 계신지 수소문한 후에, 알렉세이더러 아가씨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전하라고 할 거예요.

로사

……

로사

네 마음대로 해.

로사

하지만 그때 가서 선택하는 건 내 몫이야.

옛 하녀 소피아

……

로사

……

로사

후우.

이스티나

그래도 괜찮아요? 그 돈, 필요한 돈이었잖아요.

로사

다들 여긴 왜 왔어?

지마

애들한테 있었던 일을 얘기했더니 안나가 걱정된다면서 날 끌고 온 거야.

로사

다들 고마워.

로사

돈은 다시 벌면 그만이지만……

로사

어떤 일들은 언젠간 끝을 맺어야 하는 법이니까.

지마

쳇, 어른인 척 굴기는.

로사

어쩔 수 없잖아. 전에 말했듯 난 이런 방법밖에 모르는걸.

로사

응, 나야. 무슨 일이야?

레토

어이 아가씨, 네 물건 도착했어. 아주 거대한 녀석이던데.

로사

응?

로사

설마……

레토

그래, 네 피아노 말이야.

로사

……!!!

레토

얼른 돌아와.

로사

응!

로사

지마, 이스티나. 어서 돌아가자!

지마

뭘 그렇게 서둘러? 물건이 어디 도망가는 것도 아닌데!

로사

하지만 더는 못 기다리겠는걸!

지마

쳇, 하여간. 전혀 아가씨답지 않다니까.

이스티나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점점 마음을 여는 게 아닐까요?

지마

이제 너까지 쟤 편을 드는 거야?

이스티나

전 사실을 말한 것뿐인걸요.

이스티나

소냐도 그렇잖아요.

지마

쟤한테 마음 연 적 없거든.

지마

후, 관두자. 그 피아노 말이야, 제법 비싸 보이던데. 로사 혼자 옮기다 부딪히기라도 하면 수리비가 잔뜩 나올 거야.

지마

우리도 가서 도와주자.

이스티나

후후, 네.


로사

여기다 두면 돼.

로사

후아……

이스티나

피아노 둘 자리를 미리 비워두신 거예요?

로사

응, 어쨌든 로도스 아일랜드에 온 후로 가장 큰 소비였으니까.

로사

하루도 피아노를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을 정도야.

지마

근데 진짜 이해가 안 되네, 네가 번 돈으로 피아노를 산다고 한 거잖아. 근데 왜 그 하녀는 괴로워한 걸까?

로사

내가 고귀하지 않다는 걸 인정해버리면 의지할 곳을 잃게 되니까.

지마

그럼 자신을 믿고 살아가면 되잖아.

로사

그걸 받아들이는 건 아주 힘든 일이야. 봐, 나도 뒤늦게야 그걸 깨달았잖아.

로사

소피아를 탓할 생각은 없어. 우르수스…… 아니, 귀족과 권력 체제 때문에 그렇게 된 거니까.

로사

언젠가는 세상 모두가 너처럼 말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어, 지마.

로사

“그럼 자신을 믿고 살아가면 되잖아.”라고.

지마

너도 해냈는데, 남들이라고 못할 게 뭐가 있겠어?

지마

녀석들에게 방법이 없다면, 내가 대신 방법을 생각해 주면 돼.

로사

……그러네. 그럼 대신 방법을 생각해 줘.

로사

그걸 위해서라…… 우르수스로 돌아가야 할 이유를 조금이나마 찾은 것 같네.

지마

하여간 이해가 안 돼. 왜 매번 당연한 이야기만 하는 건지 모르겠다니까.

로사

그래서 네가 부러워. 넌 뭐가 당연한 일인지 늘 알고 있잖아.

로사

……근데 조금 전 그 말은 그냥 넘어갈 수가 없겠네.

로사

그러니까 내가 돈을 벌어서 피아노를 산다고 했을 때, 사실 내가 못 해낼 거라고 생각했던 거지?

지마

……그렇게 말한 적 없는데.

로사

흥, 내가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랐으니 못 견딜 거라고 생각했겠지.

레토

난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해. 만약 아가씨가 오퍼레이터가 되자마자 나처럼 날뛰었다면 그게 더 이상했을걸.

레토

어쨌든 아가씨는 아가씨니까.

이스티나

맞아요. 어쨌든 스스로의 힘으로 이 피아노를 얻어냈잖아요.

이스티나

저희 모두 로사가 해내길 바라고 있었답니다.

맞아 맞아. 그렇지, 지마 언니?

지마

날 왜 쳐다봐?

우리의 핵심 단원이 방금 막 소원을 이뤘잖아. 그러니 단장님이 축하해줘야지!

지마

……

지마

아, 축하해.

로사

고마워.

로사

……

로사

그럼 우르수스 학생자치단 단원 여러분, 너희는 이제 이 피아노 연주의 첫 번째 청중이 될 거야.

예에~! 전부터 로사 언니의 피아노 연주가 듣고 싶었다구!

이스티나

음, 저도 정말 기대돼요.

로사

앗, 그렇게 얘기하면 민망한데.

로사

게다가 피아노를 안 친지 한참 됐단 말이야. 못 친다고 놀리면 안 된다?

안 그럴게!

레토

어차피 난 무슨 차이가 있는지도 모를걸.

지마

칠 거면 빨리 쳐.

로사

훗, 너희한테 물어본 거 아니거든.

로사

……

피아노 곁으로 다가가 건반을 누르자, 로사는 순식간에 자신이 '나탈리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았다.

화려한 방 정중앙에 앉아 유명 인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연주하던 그녀에겐 어떤 고민도 없었다. 그저 우아하고도 무지한 시간을 즐기면 그만이었다.

다만 이 피아노는 한때 자신의 것이었던…… 아니, 실제로는 단 한 번도 자신의 것이 아니었던 고급 피아노에 비해 음색이 좋지 못했다.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음색에 그녀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로사

그럼 친구들, 오늘 내가 너희를 위해 연주할 곡은…… 《로렌스에게》야.

청중은 넷뿐이었고 방은 허름했다. 그리고 그녀에겐 수많은 고민이 있었다.

피아노 소리가 더듬더듬 울려 퍼졌다.

하지만 괜찮았다.

이건 그녀의 선택이었고,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