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동하는 희미한 빛
님프는 카즈델 주재 로도스 아일랜드 사무소의 위임을 받아, 도시 내 감염자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줄 인력을 모집하려 한다. 이력서를 선별하고 면접을 준비하면서, 그녀는 어느새 도시의 많은 변화를 목격하게 된다.
님프, 내가 문 앞에 쌓아뒀던 이철 자루 혹시 본 적 있어?
님프! 내 리어카가 또 없어졌어! 제발, 얼른 찾아주라.
님프, 혹시…… 나한테 일자리 좀 찾아줄 수 있어? 이번엔 절대 무단결근 안 할게!
님프……
서두르지 말고, 한 명씩 말해!
이철 자루는 왼쪽 '분실물 보관함'에 있어. 리어카는 지붕 위에 있고…… 저기 아니고서야 둘 데가 어딨겠어? 방 안은 너희가 꽉 채워놨잖아!
고맙다는 말은 사양할게, 사람들이 뒤에도 줄 서 있으니까 말이야!
일자리를 찾는 건, 누구……
나, 나야!
'작은 벽돌', 네가?
지난번에 내가 여러 사람한테 부탁해서 네게 간신히 화로 지키는 일을 구해줬더니만, 다음 날에 바로 화로 틀을 뜯어서 밀수꾼한테 팔아버렸잖아……
알아, 잘 알고 있어. 내가 두어 번 일을 망쳤었지.
'두어 번'?
하지만 이번엔 약속할게! 나 정말 열심히 할 거야!
(고개를 젓는다)
나 좀 도와줘, 님프! 이제 너 말고는 아무도 날 도와주려 하지 않는단 말이야!
썩은 벽돌, 온 거리의 창문을 박살 내놓고 염치도 없이 잘도 여길 왔네? 더 이상 님프 시간 뺏지 말라고, 다 줄 서서 기다리고 있는 거 안 보여?
누구더러 썩은 벽돌이라는 거야? 누가 썩은 벽돌이냐고?!
싸우지 마, 모두 그만해!
벌써 점심시간이 됐으니까, 우선 다들 집으로 돌아가! 오후에 다시 와서 줄 서도록 해…… 나도 이만 좀 쉬어야겠어.
이내 떠들썩하던 인파가 흩어지자, 님프의 집 문 앞이 마침내 조용해졌다. 그녀는 지친 얼굴을 비비며,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님프는 굳어버린 반죽 구이를 꺼냈다. 힘껏 베어 물려던 순간, 눈앞으로 몇 사람의 그림자가 또 다가왔다.
미안한데, 오후에 다시……
어, 너였어?
님프, 점심인데 고작 그거 하나로 배가 차겠어?
이거 받아……
미틈이 로도스 아일랜드 로고가 찍힌 고기 통조림을 던졌다. 님프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통조림 위에 있는 날짜 표시를 살펴보았다.
이번엔 진짜 유통기한 안 지난 거야!
미틈 뒤로 많은 로도스 아일랜드 오퍼레이터들이 다가와, 오랜만에 만난 님프와 정겹게 인사를 나눴다.
모두…… 왜 돌아온 거야?
박사님이랑 켈시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로도스 아일랜드 대부분의 오퍼레이터랑 환자들을 각지의 사무소로 분산 배치했거든. 어라, 혹시 미리 통지받지 못한 거야?
언니는…… 아니, 인사부에서는 나한테 말 안 해줬어, 아마 보안 때문이겠지. 다들 도착한 지 얼마나 된 거야?
방금 막 도시에 들어왔어. 오는 길에 또 환자들을 받아 치료하느라고, 예상보다 인원이 훨씬 많아졌지 뭐야.
늘어난 환자들을 어떻게 수용해야 할지 걱정이었는데, 미틈이 님프라면 분명 해결할 방법이 있을 거라고 하더라고.
도시 밖의 감염자들이 대부분 도시로 이주해 오다 보니, 남아있는 빈방이 확실히 많진 않아. 그래도 몇 번 돌아다니다 보면, 방 몇 개는 찾을 수 있을 거야.
내가 님프라면 분명 방법이 있다고 했잖아.
같은 로도스 아일랜드 오퍼레이터끼리, 당연히 협력해야지.
근데 아마도 오후에 또 감염자들이 찾아와서 도움을 요청할 거라, 난 아마 시간이 안 날 것 같아. 대신 내일? 아니다, 내일도 안 되겠네. 매일 사람들이 너무 많이 오다 보니……
카즈델을 통틀어 가장 착한 디얄 씨, 잠깐 안 본 사이에 머리가 예전만큼 안 돌아가는 거 같네?
네가 말했잖아, 같은 로도스 아일랜드 오퍼레이터끼리 당연히 협력해야지. 설마 우리가 그걸 가만히 보고 있겠어?
그래, 감염자를 돕는 건 원래 로도스 아일랜드가 해야 할 일이라고.
님프의 눈이 반짝였다.
그럼…… 일단 내가 먼저 너희 숙소부터 마련할게! 이따가 사무소에서 보자!
님프는 종이 한 장을 찢더니, 미틈의 주머니에서 펜을 꺼내 그 위에 글씨를 휘갈겨 쓰고, 문밖에 붙였다.
“도움이 필요하신 분은 왼쪽으로 돌아 로도스 아일랜드 사무소로 와 주세요! ——님프 드림”…… 이렇게나 정중한 말투를 걔네가 알아볼 수 있으려나?
밑에 친절하게 약도도 그려놨으니까 괜찮아. 다만 사람이 너무 몰려서, 로도스 아일랜드 사람들도 감당 못 할까 봐 걱정되네.
걱정하지 마, 님프. 너는 그냥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모두 사무소로 오라고 하면 돼. 인원이 이렇게나 많은데, 설마 감당이 안 되겠어?
로도스 아일랜드, 내가 지붕에다 걸어놓은 버든비스트 육포 혹시 못 봤어?
저기, 내 상처에서 왜 또 피가 나는 거야? 그냥 살짝만 건드렸을 뿐인데……
카즈델에서 일자리 찾을 수 있는 데가 또 어디 없을까?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님프, 내가 잘못 생각했어. 도와줘.
미안해, 너희가 저번에 떠난 이후로 도시 안에 사람들이 갑자기 늘어났거든. 이 사실을 미리 알려야 했는데……
일단은 내가 그냥 사람들한테 돌아가라고 해볼게.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나는 로도스 아일랜드 오퍼레이터들이랑 같이 카즈델의 감염자들을 도와줄 만한 믿음직한 임시 계약직들을 모집해야 할 것 같다고 얘기하려던 거였어.
급여랑 식비 지원은 로도스 아일랜드 규정대로 하고…… 님프 너라면, 금방 인원을 모집할 수 있겠지?
인원을 모집한다고? 마침, 내가 아는 사람이 몇 명 있긴 한데……
아니, 공짜로 도움받을 순 없지. 제대로 된 절차를 거치고, 고용 계약을 맺는 게 제일 좋아.
이력서니, 배경 조사니, 면접이니…… 님프 넌 예전에 인사부에 자주 들락거렸으니까, 이런 건 잘할 수 있을 거야.
(언니가 이력서 선별하는 법은 안 가르쳐줬는데……)
알았어, 내가 방법을 생각해 볼게.
무거워!
고생했어. 이게 진짜 마지막 이력서 박스야!
이 녀석들, 평소엔 글 수업 좀 다니라고 하면 죽는소리나 하더니, 네가 몇 마디 소리치니까 다 달려가서 이력서를 써왔네?
로도스 아일랜드가 주는 보수가 확실히 경쟁력이 있으니까. 어디 보자……
어떻게 이 많은 이력서가 전부 똑같을 수 있어?!
어…… 혹시 걔네 전부 같은 이력서 하나를 '그려서' 낸 거 아니야?
그래도 내가 자기 이름은 쓸 수 있도록 가르쳤는데, 설마 그 정도까지는…… 아아, 이름도 그대로 베꼈네.
이렇게 분류해서 정리하고 나니까, 이 몇 상자 분량의 이력서가 겨우…… 네 장만 남았잖아? 미안해, 폴. 미리 알았으면 너보고 괜히 힘들게 왔다 갔다 옮겨달라고 안 했을 텐데.
힘든 건 상관없는데, 종이가 이렇게나 많이 낭비돼서 아까워. 님프, 이거 외드레르 선생의 글 수업에 가져가서, 학생들 교재로 쓰게 하면 될 것 같아!
교재?
어쨌든 이력서 내용은 나름 풍부하잖아. 예를 들어서, 이 이력서 봐봐……
이름, 벽돌. 음, 글씨는 괜찮네. 경력, 벽돌 벽돌……
엥? 종이에 죄다 '벽돌'만 적어놨네. 이 사람은 자기 이름 밖엔 쓸 줄 모르는 건가?
“작은 벽돌”도 이력서를 냈어? 어디 보자……“작은 벽돌” 글씨 맞네. 근데 그 아이의 형편없는 경력으로는, 로도스 아일랜드에 채용되는 건 불가능한 일이야.
어쩌지…… 이력서만으론 안 되겠는데, 그렇다고 이렇게나 많은 사람을 내가 다 한 명씩 불러서 면접할 수도 없는 거잖아?
방금 생각한 건데, 이참에 일자리 찾는 사람들을 전부 속여…… 크흠, 설득해서 글 수업에 가도록 하는 거 어때.
넌 제대로 된 이력서를 낸 몇 명만 면접을 보고, 적합한 사람이 있으면 절차에 맞춰서 채용하는 거지. 그걸 '1차 모집'이라고 하자.
나머지 사람들은 글을 쓸 줄 알면 좋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될 테고, 그 뒤에 네가 '2차 모집'을 시작한다고 알리는 거지. 그러면 그 사람들도 분명히 열심히 이력서를 쓸 거야.
그 방법 좋아 보이네!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이러면 외드레르 선생의 글 수업도 학생이 안 올 걱정은 안 해도 되겠지, 하하하!
스읍…… 님프, 내가 외드레르 씨에게 가져간 이력서들에 문제가 좀 있는 것 같아.
폴, 무슨 일인데?
어쨌든, 일단 바벨 사무소로 가봐. 외드레르 씨가 직접 데려다준다고 하더라.
어, 어떻게 된 거야?
바벨 사무소는 얼마 전에 새로 인테리어를 한 것 같네.
하지만 텅 비어서, 사람 그림자도 보이지 않아.
오래 기다렸죠, 님프 양.
안녕! 그, 그 옷은……
이 군복이 제가 유일하게 가진 정장이어서요. 네, 전 빅토리아의 장교였어요.
이력서상으로는 전혀 군인이라는 걸 알 수 없었거든. 외드레르 씨가 면담을 주선했다고 하던데?
빅토리아에서 성공적으로 철수하고 돌아왔을 때, 외드레르 씨를 알게 되었죠, 참 흥미로운 분이더군요.
미안한데, 방금 '성공적으로 철수'했다고 한 거야?
네, 무슨 문제가 있나요? 아, 님프 양은 제가 외드레르 씨의 포로인 줄 아셨나 보군요, 하하.
미, 미안.
제가 이 계급을 잃게 된 건, 아마 제가 런디니움의 살카즈들을 계속 도시 밖으로 도망칠 수 있도록 도왔기 때문일 거예요. 제 행동이 분명 몇몇 사람들을 화나게 했을 테니까요.
그래서 저는 아미야 양을 따라, 살카즈와 함께 그 나라를 떠났습니다.
실례일 수 있겠지만, 그래도 묻고 싶은 게 있어. 그럼, 빅토리아에 있는 가족들은……
모두 세상을 떠났어요.
왜……
오리지늄, 그리고 칼날 때문이죠.
미안!
괜찮아요. 이제 본론으로 넘어가죠. 님프 양은 제가 무슨 일을 하길 원하시나요?
이력서를 보니까, 여러 나라 언어에 능통하다고 썼던데…… 카즈델에는 여러 나라에서 온 감염자들이 많아서, 다방면으로 도움이 필요하거든.
그런데 로도스 아일랜드 사무소의 오퍼레이터들 대부분은 살카즈라, 기초적인 일상 회화는 가능하지만, 카즈델 새 주민들의 요구를 완전히 이해하기엔 좀 부족해.
……그리고 병세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미묘한 차이를 구분해야 하는 문제도 있고 말이야.
이해했어요. 언어의 작은 오류 하나가, 곧바로 환자의 생명과 직결될 수 있으니까요.
의학적인 판단이야 제가 함부로 못 하겠지만, 로도스 아일랜드 의사분들에게 언어 지원을 해드리는 건 기꺼이 하겠습니다.
좋아! 도와주려는 것만으로 충분해!
그리고 또 한 가지…… 말하긴 좀 부끄럽지만, 님프 양이 절 대신해서 외드레르 씨께 휴가를 신청해 줘야 할 것 같아요. 앞으론 제가 글 수업을 병행할 수 없을 거 같거든요.
엣?…… 당신도 글을 공부하는 거야?
……전 대리 교사에요.
……미안! 그, 그럼 우리 그렇게 하는 걸로 하자. 다행이다, 오늘 안에 다음 사람도 면접 볼 수 있겠어…… 미리 이력서를 전부 챙겨와서 다행이야.
혹시 제가 이력서를 좀 봐도 될까요? 어쩌면 제가 아는 사람일 수도 있을 거 같아서요.
왜 이 사람이? 이 사람은 전장에서 꽤 유명했어요. 저한테까지 들렸을 정도인데, 다만 아주 나쁜, 아주 나쁜 유명세였죠. 조심하는 편이 좋겠어요.
뭐?!
안, 안녕…… 혹시 '체인' 씨?
무슨 일이지?
난 로도스 아일랜드 사무소의 채용 담당자야. 예전에 이력서를 제출한 걸 보고, 면접 보러 왔어.
'이력서'라, 다른 사람한테 그 단어의 뜻을 물어봤었지. 그래, 내가 '이력서'를 내긴 했는데, '면접'은 또 뭐지?
그냥…… 간단한 조사 같은 거야. 몇 가지 질문을 할 테니까, 사실대로…… 음, 최대한 사실대로만 답해주면 돼.
필요한 건 이력서에 다 적혀 있잖아? 뭣 하러 또 물어보는 거지?
음…… 이력서에 쓴 전적은 정말 인상적이야. 근데 난 그쪽이 짧게 언급했던 '임시 거처 건설 경험'에 더 흥미가 있거든.
흐음?
용병이 칼을 들고 일어서자, 거대한 그림자가 순식간에 님프 위에 드리웠다.
그, 그게, 말하기 좀 불편하면, 나, 나는 그냥……
너도 건축에 관심이 있나?!
님프는 어리둥절해졌다. 눈앞의 용병은 마치 자기 장난감을 자랑하는 아이처럼, 그런…… 흥분에 찬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래서, 몇 채나 지을 예정이지? 부지는 얼마나 되는데? 자재는…… 상관없겠지, 자재 구하는 건 제일 쉬우니까 말이야.
빨리 말해 봐!
아…… 아! 우리는 의료 지원이 필요한 감염자를 수용하기 위해 '병동'을 지으려 해. 그래서 건축 경험이 있는 공사 감독을 찾고 있어.
공사 감독? 쳇, 나는 남 시켜 먹는 일은 딱히 안 끌리는데.
그래도 부상자를 돕는 일이라면 얘기가 다르지. 나한테 형제들이 좀 있는데, 그 친구들한테 도와달라고 할게. 어떻게 지을지만 너희가 결정하면, 구체적인 시공은 내가 맡겠어.
그럼 정말 좋지. 다만…… 지금의 로도스 아일랜드 사무소로선 아직 시공팀 전체를 고용할 계획은 없어.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가 단순히 보수 때문에 일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거야? 나도, 형제들도 임금은 필요 없어.
나는 전장에서 부상자를 버리는 놈들을 제일 경멸한다고!
하지만 여긴 전장이 아니야…… 전쟁은 이미 끝났잖아. 그 환자들도 단지 다른 지역에서 이주해 온 '환자'들일 뿐이야.
“전쟁은 끝났다”라…… 그렇지.
용병은 힘없이 주저앉았다.
괜찮아? '체인' 씨?
그 환자들은 어디서 온 거지?
각지에서, 더는 그들을 받아주려 하지 않는 곳들에서 왔어.
……
그 사람들이 혹시 카즈델에 와서, 살카즈가 지은 곳에 사는 걸 꺼리진 않을까?
그 사람들에게 그 건물은 목숨을 구해주는 곳이야. 그러니 건물을 지은 사람은, 목숨을 구해준 사람이 되겠지.
좋아. 그렇게 말하니, 이 일은 내가 맡아보도록 하지.
응? 그럼 면접은…… 끝난 건가?
내가 어떻게 알아? 네가 날 면접하려고 온 거잖아?
마지막 이력서에 적힌 주소는, 바로 이 근처에 있네. 진료를 볼 줄 아는…… 농부?
근데 왜 계속 도시 밖에서 살고 있는 거지? 환자는 도시 안에 더 많지 않아?
님프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판잣집을 바라보았다. 그다지 건장해 보이지 않는 쿠란타 여성이 사다리 위에 서서 비가 새는 지붕을 고치고 있었다.
몇몇 아이들이 긴장한 채 사다리를 붙잡고 있었는데, 아이들 몸에는 깨끗한 붕대가 감겨 있었다.
안녕……
쿠란타 여성은 님프를 보자 아이들을 판잣집 안으로 들여보냈고, 그 후 사다리에서 내려와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레텔 씨, 안녕, 나는……
안녕, 님프.
그 이력서 때문이지?
아, 응, 맞아. 이력서에 병을 치료해서 사람들을 구할 수 있다고 적혀 있던데, 보자마자 지금 로도스 아일랜드 사무소에 꼭 필요한 도움이라고 생각했거든……
미안, 거짓말이야. 난 치료할 줄 몰라.
하지만……
글을 쓸 줄 모르는 살카즈가 도시에서 뛰쳐나와서는, 보리 씨앗을 내게 줄 테니 그 대가로 자기 대신 이력서 좀 써달라고 하더라고. 난 그걸 승낙했을 뿐이야.
그 사람이 이력서를 다른 사람에게 다시 팔아넘겼는지는 모르지만, 어차피 내가 상관할 바 아니고 말이야.
난 치료할 줄 모르고, 이름도 '그레텔'가 아니야. 괜히 헛걸음하게 해서 미안해.
님프는 판잣집 뒤에서 풍겨오는 약초 달이는 냄새를 맡았고, 아이들 몸에 감긴 붕대를 똑똑히 보았기에 뭐라 더 말하려 했다……
하지만 말을 마친 쿠란타 여성은 이미 몸을 돌려 돌아가고 있었다.
전에 만난 적 있지?
'그레텔'의 발걸음이 잠시 멈추더니, 그녀가 어깨를 으쓱였다.
워낙 많은 사람을 보아서 말이야. 언제를 말하는 거야?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넘어져서 팔을 다친 적이 있었어…… 그때 나한테 붕대를 감아준 게…… 너 맞지?
님프는 판잣집에서 몸을 내밀고 있는 아이를 가리켰다. 아이의 발목에는 하얀 붕대가 예쁘게 리본 모양으로 묶여 있었다.
님프는 저 가볍고 아름다운 리본을 기억하고 있었다. 저걸 보고 있으면 울고 싶은 마음을 잊어 버리게 되는 것 같았다.
예전에 바벨의 의사였지?
'예전'엔 그랬지.
나를 치료해 줬었잖아. 지금도 다른 아이들을 치료하고 있고.
그래서?
카즈델에는 아직도 많은 아이가 치료를 기다리고 있어…… 살카즈의 아이들뿐만이 아니야.
쿠란타 여성이 몸을 돌려, 얼굴에 아직 마르지 않은 땀을 닦았다.
난 살카즈 아이들에게 아무 불만 없어.
그저 다시는 그 도시에 발을 들이고 싶지 않을 뿐이야.
과거는 이미 지나간 일이고, 모두에게는 각자의 선택이 있는 법이지. 님프, 너는 어릴 때부터 이 이치를 잘 알고 있었잖아.
물론 잘 알지…… 알겠어, 고마워.
쿠란타 여성이 판잣집 쪽을 향해 큰소리로 몇 마디를 외쳤는데, 말을 듣지 않는 아이들을 나무라는 듯했다.
……하지만 이해가 안 가, 여전히 넌 카즈델 성벽 아래에 살고 있고, 이력서에 실제 주소를 적기도 했잖아.
내가 굳이 그럴 필요까진 없었단 걸 말하고 싶은 거야? 마치 일부러 너희가 날 찾기를 바라서 이력서를 적었다고?
쿠란타 여성은 회복 중인 아이들을 바라보며 진심 어린 미소를 지었다.
그 사람이 보리 씨앗을 가져다주기로 했으니까, 내가 어디 사는지 알려줘야 하잖아?
그런 거구나……
로도스 아일랜드가 하는 일은, 나도 하고 있는 중이야. 난 그저 또 하나의 명목상 '일자리'가 필요 없을 뿐인 거지.
잘 가, 님프.
님프……님프!
드디어 찾았다, 님프! 이거 내가 새로 쓴 이력서야, 받아 줘!
잠깐잠깐, 일단 좀 앉아서 쉬어…… 그나저나 손에 든 그 자루는 뭐야?
보리 씨앗이야. 내가 약속한 게 있어서……
아! 이력서를 위조한 게 바로 너였구나!
아, 아니야!
난 내 이름밖에 쓸 줄 모르니까, 그 의사한테 내가 말하면 그걸 대신 글로 써달라고 부탁한 거야. 그런데 도중에 다른 사람한테 빼앗겨버렸어!
별수 없으니 다른 종이에다가 내 이름만 가득 써놨지. 님프가 보면 도와주지 않을까 싶어서.
그런데 생각하면 할수록 이건 아닌 거 같은 거야.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두에게 분명하게 보여주려면, 자신이 제대로 쓴 글로 전해야 할 것 같았어.
그래서 방금 고문 나리를 찾아갔어. 한 글자 한 글자 알려준 걸로 다시 써서 완성하고, 곧장 네게 가져온 거야.
어디 보자…… 네 이름이……그레텔?
응, 그 의사가 내게 지어준 이름이야.
너 그 사람이랑 알고 지내면서, 설마 그 사람 주소도 몰랐던 거야? 왜 또 이력서에 주소까지 써달라고 한 거야?
나…… 다른 '주소'라는 게 없거든.
그랬더니 의사가 자기 주소를 적어도 된다고 했어. 혹시 또 문제가 생기면, 자기가 막아주겠다고. 이건…… 예전에 내가 여기에 와서 도와준 거에 대한 작은 보답 같은 거라고 했어.
여기에 와서…… 도와줬다고? 그럼, 이력서에 있던 사람들을 치료했다는 내용이, 네 진짜 경력이라는 말이야?
맞아…… 내가 전에 많은 사고를 쳤다는 거 알아. 나는 단지…… 만회하고 싶을 뿐이야. 쓸모 있는 지식도 많이 배웠거든…… 정말이야!
나 모두를 돕고 싶어. 님프처럼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어서, 다들 조금이라도 편하게 살 수 있도록 말이야.
임금은 안 줘도 되니까…… 님프!
그건…… 안 돼.
에, 뭐, 뭐라고?
내 말은, 시간과 장소를 다시 정해서, 정식으로 면접을 보자는 거야.
널 다시 알게 돼서 기뻐, 그레텔!
아, 목이 뻐근해…… 2차랑 3차 채용 계약서도 이제 겨우 처리했네.
언니는 이런 인사 서류를 상대하는 걸 왜 그렇게 좋아하는 건지 모르겠어. 난 정말이지 전혀 못 하겠는데 말이야.
서류도 처리했으니, 나가서 좀 움직이고 와야겠다.
고작 며칠 안 나갔을 뿐인데, 왜 이렇게 도시에 사람이 많아진 것 같지?
살, 살려주세요! 저쪽 비계발판이 무너지는 바람에, 아래 사람이 깔렸어요!
내가 바로……
내가 할게! 다른 사람들은 빨리 로도스 아일랜드 사무소로 가서 응급키트를 가져와 줘!
알겠어! 로도스 아일랜드 의사들이 도착하려면 조금 시간이 걸릴 테니, 우선 나랑 같이 위에 무거운 것부터 치워내자고!
나도……
님프? 넌 신경 안 써도 돼, 여긴 우리가 도울 테니, 걱정하지 마.
아, 응……
님프, 그간 며칠이나 안보이더니, 드디어 돌아왔구나!
할머니, 무슨 문제라도 생겼어?
그렇다니까! 내가 몇 년이나 키운 작은 파울비스트가 그저께 갑자기 사라졌었는데……
내가 바로 찾아봐 줄게!
괜찮아 괜찮아, 어제 이미 다른 사람이 찾아주고 갔어. 그냥 좀 봐줬으면 해서 말이야. 한 번 날아갔다가 왔더니, 어째 애가 좀 통통해진 것 같지 않니?
……혹시 로도스 아일랜드 고용노동자들이 찾아준 거야?
로도스 아일랜드? 글쎄, 아마도…… 아닌 것 같은데. 그냥 평범한 사람이었어, 막 이 거리로 이사 온 사람이었지.
음, 그렇구나……
님프는 도시를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그녀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만났고, 동시에 다른 이를 돕고자 하는 더 많은 사람도 만났다.
이러한 일들을 하고 있는 건 님프나 로도스 아일랜드뿐만이 아니었다.
님프는 마침내 자기 집 문 앞으로 돌아왔다. 문에는 아주 오래전, 님프가 그녀에게 도움을 청하러 온 사람들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직접 그녀의 표식을 그린 팻말이 박혀있었다.
얼마 전엔 그 팻말 아래에 “도움이 필요하신 분은 왼쪽으로 돌아 로도스 아일랜드 사무소로 와 주세요! ——님프 드림”이라는 한 줄이 추가되었다.
♪~
님프는 즐거운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그 글귀를 지웠다.
그러고는 팻말을 떼어냈다.
사람들에게 더 이상 '님프'가 필요하지 않게 될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는데, 꽤 기뻐할 만한 일이었네.
이젠, 외근 임무라도 신청해서, 카즈델 밖을 돌아다녀 봐야 할 것 같아……
님프는 길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 속엔 그녀와 닮은 얼굴들이 여럿 있었다. 어쩐지 그레텔라는 이름을 가진 살카즈도 본 것 같았다.
님프는 그 모든 사람에게 인사를 건네며, 마음속으로 조용히 '고마워'라고 속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