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이유 없는 비

이유 없는 비

오퍼레이터 레코드브릿지

사미의 식물로 라인 랩 생태원의 샘플이 한층 더 다양해졌고, 뮤엘시스 역시 늘 고민하던 질문에 대한 답을 찾게 된다.

등장 오퍼레이터: 뮤엘시스


생태과 연구원A

켈리, 어떻게 돼가?

생태과 연구원B

방금 막 극지 구역의 식물 모니터링 데이터를 저장했어. 새롭게 들어온 53종의 식물 대부분이 정상 상태인 걸로 봐선, 초기 관찰 기간을 무사히 넘긴 것 같아. 하지만 너도 봤겠지만……

생태과 연구원A

입구에 있는 관엽 느티나무에 심한 잎 말림 현상이 나타났어. 그건 물이 부족하단 뜻이지.

생태과 연구원A

그 빙원 목화는 성장기임에도 꽃과 솜털 수치가 정상보다 낮은 상태야.

생태과 연구원B

가장 상태가 안 좋은 건 사각 해바라기지. 사각 해바라기는 언제나 태양을 바라보고 있어야 하는데, 곧 있으면 땅에 처박힐 정도로 처져 있잖아.

생태과 연구원A

예상했잖아. 생태원 극지 구역은 이제 막 조성되어 데이터와 경험이 모두 부족한 상태지.

생태과 연구원A

뮤엘시스 주임님께 물어보자. 분명 뭐가 문제인지 아실 거야.

생태과 연구원B

(그나저나 뮤엘시스 주임님은 놀라울 정도로 식물을 잘 알고 계신 것 같아. 다들 속으로…… 뮤엘시스 주임님이 식물과 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생태과 연구원A

(함부로 얘기하지 마.)

뮤엘시스

켈리, 이 구역의 순환 시스템 파라미터를 다시 설정해 봐. 배양기의 균근량을 늘리면 수분과 영양분 흡수가 빨라질 거야.

생태과 연구원A&B

뮤엘시스 주임님!

생태과 연구원B

하지만 이건 마젤란 씨의 데이터에 따라 설정해둔 건데……

뮤엘시스

마젤이 사미에서 보낸 식물이긴 하지만, 마젤란은 관측원일 뿐이라 식물에는 문외한이야.

뮤엘시스

즉, 그 데이터는 식물들이 사미에 있을 때만 정확하다고 할 수 있지.

뮤엘시스

식물들에게 생태원은 너무 '따뜻'해.

뮤엘시스

온도와 습도를 조금씩 낮춰봐.

생태과 연구원B

네, 뮤엘시스 주임님.

뮤엘시스

이제 고원 구역을 확인할 거지? 같이 가자.

관엽 느티나무

……

빙원 목화

……

사각 해바라기

……

관엽 느티나무

(상쾌한 듯 가지를 움직인다)

빙원 목화

(쭉 허리를 편다)

빙원 목화

관엽 느티나무야, 조심해. 계속 구부리고 있던 손가락을 쫙 피면 잎맥이 손상될 수도 있다고.

관엽 느티나무

너나 잘해. 격하게 움직이지 좀 마. 솜털이 다 나한테 날아오잖아.

빙원 목화

조금 전 그 녀석이 뭐라고 했지? 조금 더 가면 고원 구역이라고? 솜털을 멀리 날려 보내면 전설의 털수염풀과 얘기할 수 있을지도 몰라.

관엽 느티나무

사미를 막 떠나서 모든 게 새롭나 보네.

관엽 느티나무

아, 사각 해바라기. 넌 왜 아무 말이 없어?

빙원 목화

시들시들한 게 전혀 기운이 없어 보이는데. 아직 새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나 봐.

관엽 느티나무

아니야. 식음을 전폐한 걸 보니 기분이 안 좋은 것 같은데.

사각 해바라기

……

???

기분이 안 좋은 거였구나.

관엽 느티나무

누가 얘기하는 거지?

사각 해바라기

……비가 오네.

빙원 목화

실내인데 비가 온다고? 이게 바로 쟤네가 말하던 순환 시스템인가?

관엽 느티나무

대체 무슨 비지? 아무리 흔들어도 온몸에 붙은 물방울이 안 떨어지는데?

사각 해바라기

……

뮤엘시스

안녕, 내 소개를 다시 할게. 난 뮤엘시스야.

관엽 느티나무

또 왔네, 뮤엘시스.

뮤엘시스

미안. 조금 전 설비를 개조하느라 내스티를 찾아갔는데 말이 안 통해서 시간이 좀 걸렸어.

뮤엘시스

다들 전보다 상태가 많이 좋아졌네.

관엽 느티나무

뭐, 나름.

뮤엘시스

관엽 느티나무야, 일부러 잎을 말진 말아 줄래?

관엽 느티나무

……

뮤엘시스

다음 달, 2차 식물이 도착하기 전까지, 극지 구역은 내가 직접 관리하기로 했어.

뮤엘시스

오후에는 배양지를 교체해줄게. 새로운 배양지는 사미 토양 표본을 참고해 새롭게 배합한 거야.

뮤엘시스

너희에게 필요한 영양분은 '비'와 '이슬'의 형태로 보충될 거고. 이제 전처럼 '규칙적'이진 않을 거야.

뮤엘시스

또 필요한 게 있다면 언제든 얘기해줘. 지형, 대기, 토양, 물, 기후…… 어떤 조건이 너희들의 생존에 가장 적합할 것 같아? 말만 해. 우리 생태원에서 맞춰줄 수 있으니까.

빙원 목화

인내심이 정말 강하네, 뮤엘시스.

뮤엘시스

처음 생태원을 계획할 때부터 난 극지 구역을 조성하고 싶었어. 하지만 생태과에서 사미로 가는 사람이 없어서 계속 미뤄야 했지.

뮤엘시스

지난 몇 년 동안 난 라인 랩에서 생태 실험을 주관해 왔고, 충분히 기초를 다졌다고 생각해. 그래서……

빙원 목화

근데 왜 사미여야 하는데?

빙원 목화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미를 외부와 단절된, 정체불명의 위험으로 가득 찬 황량한 혹한지라고 생각하잖아.

뮤엘시스

실은 사미뿐만이 아니야. 난 테라의 모든 특별한 생태계에 관심이 있어……

뮤엘시스

그중에서 가장 특별한 곳이 사미야. 늪지, 숲, 빙원이 분포되어 있잖아. 이런 특이한 지형 조합은…… 좀 '일부러' 조성된 것 같달까.

뮤엘시스

게다가 사미는 테라의 핵심권에 비해 춥고 생활하기 어려운 환경이지만, 놀라울 만큼 생물 종류가 다양하고 개체 수가 많아. 그건 생태학의 규칙을 벗어난 일이지.

뮤엘시스

그래서 난 사미가 '깨끗하다'는 결론을 내렸어.

빙원 목화

'깨끗하다'고?

뮤엘시스

너희의 생리학 표본을 추출한 결과…… 뿌리의 오리지늄 입자 함량이 평균치를 훨씬 밑돌았어.

빙원 목화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뮤엘시스

즉, 현재까지 사미는 내가 느끼기에 가장 이상적인 실험 환경이라는 뜻이야.

관엽 느티나무

……

관엽 느티나무

그래서 이 거대한 유리방에 '사미'를 복제하겠다는 거야?

뮤엘시스

유리방이라…… 맞아.

관엽 느티나무

뮤엘시스, 대체 왜?

뮤엘시스

난 라인 랩의 최연소 천재 생태학자니까.

뮤엘시스

내게는 이 거대한 유리방을 테라 전역에서 가장 깨끗하게 만들 능력과 책임이 있어. 이곳은 가장 맑은 대기, 적절한 기후, 고영양 토양을 갖추게 될 거야……

뮤엘시스

그렇게 가장 풍부한 생태계가 꾸려지면, 약한 생물들도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겠지.

뮤엘시스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이건 내가 평생…… 추구해온 거야.

빙원 목화

(솜털을 날리려고 애쓴다)

관엽 느티나무

(신나게 나뭇가지를 흔든다)

뮤엘시스

하하, 고마워.

사각 해바라기

……

사각 해바라기

뭐가 좋다고 박수를 치는 거야?

뮤엘시스

아……

뮤엘시스

사각 해바라기! 아무 말 없다가 갑자기 얘기해서 깜짝 놀랐잖아.

관엽 느티나무

보름 전 이곳에 왔을 때부터 계속 저런 상태야.

관엽 느티나무

늘 저렇게 기분이 다운되어 있다니까.

빙원 목화

사미의 숲에서 낯선 도시로 옮겨진 일이 아직도 불만인가 봐.

빙원 목화

기왕 이렇게 됐으니 좋게 생각하는 게 어때? 난 옆쪽 수역으로 솜털을 날려 '바닷물의 짭짤함'까지 느꼈거든.

빙원 목화

사미에 있었다면 넌 이미 똥이 됐을걸. 네 꽃에 담긴 씨앗은 독특하니 파울비스트한테 먹혔을지도 몰라. 그럼 넌 그 육식 먹보 녀석의 소화를 돕는……

사각 해바라기

헛소리 말고 솜털이나 잘 털어내지 그래.

빙원 목화

쳇.

사각 해바라기

뮤엘시스, 내가 이곳에 온 이후로 왜 시들시들해졌는지 궁금하지?

사각 해바라기

사각 해바라기의 꽃은 언제나 태양을 찾아. 물론 네 생태원엔 시간에 따라 일조량이 달라지는 전문적인 조명 시스템이 갖춰져 있긴 하지.

사각 해바라기

네 말대로 아주 '선진적'이야.

사각 해바라기

……하지만 그건 진짜 태양이 아니잖아.

뮤엘시스

음……

사각 해바라기

진짜 태양은 이 유리방 밖에 있어. 하지만 이 유리를 제거하는 순간, 방의 토양, 대기, 온도, 수분, 미생물 군집도 함께 사라지게 되겠지.

사각 해바라기

네가 사미의 토양, 북풍, 빙하를 완벽하게 구현한다 해도, 여긴 내가 이곳으로 옮겨질 때 담겨왔던 표본 상자와 다를 게 없어.

뮤엘시스

음, 다른 식물에 비해 네 추광성이 남다르긴 하지. 그건 어떻게 해줄 수가 없네.

사각 해바라기

그런 뜻이 아니잖아.

뮤엘시스

아니. 무슨 뜻인지 알아.

뮤엘시스

바다, 갯벌, 숲, 황야, 블랙 플로우…… 대자연의 베일을 벗길 때마다 난 경외감을 느끼곤 해.

뮤엘시스

사계절이 뚜렷하고 살기 좋은 기후든, 춥고 더운 열악한 기후든…… 모두 천만년 동안 자연이 변해온 결과물이야.

뮤엘시스

잘 세팅된 '실험 환경'이 아니라.

사각 해바라기

여긴 '사미'가 될 수 없어.

뮤엘시스

아아, 너희를 생태원 밖으로 데려가서 라인 랩 본부 건물과 트리마운츠를 보여주고 싶네.

뮤엘시스

내게 사미가 신비롭듯…… 너희에겐 과학이 신비로울 테니까.

뮤엘시스

과학은 우리가 자연의 한계를 뛰어넘고, 새로운 환경을 만들 수 있게 도와줘. 과학은…… 우리가 답을 찾을 수 있게 도와줄 거야.

사각 해바라기

넌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거야, 뮤엘시스.

???

한 과학기술 회사 탐사 플랫폼이 컬럼비아 북부 산악 지대에서 마지막 남은 옅은 색 삼나무 군락을 찾아냈어요……

뮤엘시스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

그 근처에는 마을이 하나 있었죠. 하지만 마을과 관련된 인구 기록은 이미 기한이 한참 지난 상태였고…… 트렌턴의 실종 인구와 대부분 겹치는 듯했어요.

뮤엘시스

아무리 야라 주임이라도 퇴근 후에 직원들이 뭘 하는 지까진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은데.

뮤엘시스

정말 매너 없는 행동이네, 저스틴.

저스틴

아, 신경 쓰지 마세요. 다른 뜻은 없었으니까. 게다가 전 당신이 뭘 찾는지 모르거든요.

저스틴

전 그저 상대와 협상하기 전에 살짝 살펴본 것뿐이에요. 뮤엘시스 주임님이 흥미를 느낀다면 제 요청에 응해주실 테니까요.

뮤엘시스

능력 좋은 비즈니스과 주임이 왜 이렇게 겁쟁이처럼 굴어? 생태과 일이 그렇게 바쁜 것도 아닌데.

뮤엘시스

지금 바로 갈게. 본사에 있어?

저스틴

본사 아래에 있는 카페에 있어요. 지난번에 제 사무실 인테리어를 보시고는 사무실 안으로 한 발짝도 안 들어오셨잖아요, 뮤엘시스 주임님.

뮤엘시스

그럼 이번엔 네 사무실에서 봐.


관엽 느티나무

돌아왔네. 갑작스레 떠난 지 보름쯤 됐지?

관엽 느티나무

빙원 목화는……

생태원에 비가 내렸다.

관엽 느티나무의 잎맥과 사각 해바라기의 꽃을 적신 물방울이 말라버린 식물 뿌리로 떨어졌다.

세차거나 다급한 빗줄기는 아니었지만, 멈출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관엽 느티나무

뮤엘시스, 우는 거야?

관엽 느티나무

네 탓이 아니야.

관엽 느티나무

켈리라는 연구원이 최선을 다해 목화를 살피고 있어……

뮤엘시스

영양제를 보충하고, 배양지를 교체해도, 결국 사미의 생태 보상 체계를 따라갈 수 없었어. 게다가 극지 구역의 생물 군락은 아직 형성되지도 않았지……

사각 해바라기

어이, 울지 마. 축축해 죽겠다고.

뮤엘시스

다음 달에 생태원으로 들어오기로 예정된 2차 사미 식물은 더 늦게 들여와야 할 것 같아.

사각 해바라기

흠, 생각보다 쉽게 흔들리는 성격이었네.

뮤엘시스

과학 탐사는 어려운 일이야. 가끔 꺾이는 일도 있을 수 있지……

사각 해바라기

그럼 왜 우는 건데?

뮤엘시스

저스틴과 이야기를 나눈 후, 컬럼비아 북부 산악 지대에 다녀왔어.

사각 해바라기

여기서 멀어?

뮤엘시스

아니. 사나흘이면 도착해…… 거기서 일주일 정도 있었어.

사각 해바라기

멀지도 않다면서 왜 이제야 갔는데?

뮤엘시스

찾기가 어려운 곳이니까. 정말 오랫동안 찾았어.

사각 해바라기

……

뮤엘시스

트렌턴 마을의 보육원부터 텅 빈 집, 트리마운츠 대학, 라인 랩 실험실까지……

뮤엘시스

또 도서관의 수많은 고서부터 이름 없는 비석, 진척 없는 실험 보고서까지…… 심지어는 내 생리학적 표본으로 실험한 적도 있었어……

뮤엘시스

그렇게 오랜 시간 끝에……

뮤엘시스

드디어 그곳을 찾았지. 난 그곳에 내가 찾고자 했던 답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내 부모님, 내 종족,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답 말이야.

사각 해바라기

……

뮤엘시스

난 반드시 이 거대한 유리방을 테라 전역에서 가장 깨끗한 곳으로 만들 거야. 이곳은 가장 맑은 대기, 적절한 기후, 고영양 토양을 갖추게 될 거고……

뮤엘시스

그렇게 가장 풍부한 생태계가 이루어져서 약한 생물들도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 거야.

뮤엘시스

……나를 포함해서 말이지.

뮤엘시스

그러니 반드시 답을 찾아내야 해. 왜 내가 허약한지, 오리지늄 환경에 민감한지 알아낼 거야.

뮤엘시스

내가 누군지, '엘프'가 뭔지, 내가 어떻게 태어났는지도 알아내야겠지. 또 이 대륙에 나와 같은 동족이 있는지, 내 미래가…… 어디에 있는지도.

사각 해바라기

……보아하니 답을 찾지 못한 채 돌아왔나 보네.

뮤엘시스

그곳엔 버려진 마을, 죽어가는 나무, 허름한 묘지뿐이었어…… 시간이 모든 걸 묻어버렸지.

뮤엘시스

게다가 옅은색 삼나무 밑에 묻혀 있는 게 내게 답을 줄 수 있는 엘프인지, 나처럼 답을 찾고 있던 엘프인지조차 알 수 없었어.

관엽 느티나무

뮤엘시스, 괜찮아?

관엽 느티나무

힘들면 내 몸통에 기대도 돼.

뮤엘시스

사각 해바라기, 네 말이 맞아.

뮤엘시스

생태원의 설산은 진짜 설산이 아니고, 빙원은 진짜 빙원이 아니야. 난 영원히 '사미'를 복제해 낼 수 없을 거야……

뮤엘시스

나조차도 내가 찾고자 하는 곳이 어딘지 모르는걸.

사각 해바라기

……

비는 그칠 기미가 없어 보였다.

끝없이 내리는 빗방울로 생태원은 이내 부슬부슬한 비의 장막으로 뒤덮였다.

사각 해바라기

울지 마, 뮤엘시스.

사각 해바라기

사미는 이렇게 비가 많이 내리는 곳이 아니야. 네가 계속 이렇게 울면 극지 구역의 생태계가 교란될 거야. 그럼 다른 식물들이 아플 거고, 넌 또 걱정이 늘겠지.

사각 해바라기

사실……

사각 해바라기

애초에 빙원 목화의 수명 주기는 그다지 길지 않아. 빙원에 북풍이 가장 강하게 불 때, 대부분 솜털은 줄기에서 떨어져 나가게 되거든.

사각 해바라기

며칠 전, 목화의 솜털이 극지 구역을 뒤덮었어. 그 순간만큼은 이곳이 진짜 사미의 빙원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뮤엘시스

……고마워.

사각 해바라기

목화의 호기심이 유별난 걸 어떡해. 네가 없는 며칠 동안 자신의 솜털을 극지 구역, 고원 구역, 해양 구역 곳곳으로 보냈거든. 어쩌면 목화의 소원이 이뤄졌다고 할 수 있겠지.

사각 해바라기

목화는 생태원의 식물을 전부 세어봤대…… 천여 종에 달하는 식물 중에는 온갖 생태계 문제로 멸종되었어야 할 식물도 많았다고 하더라.

사각 해바라기

넌 그저 이상적인 서식지를 만들고 싶을 뿐이겠지만, 네가 하는 일에는 그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어…… 음, 얘기하다 보니 넌 그 녀석들과 비슷한 구석이 많은 것 같네.

사각 해바라기

너 같은 사람을 본 적이 있다고.

사각 해바라기

널 보자마자 알 수 있었어, 비록 확실하진 않지만…… 너랑 그들은 우리를 '느낄' 수 있고, 사실 비슷한 일을 하고 있어. 다만 넌 실험실에, 그들은 숲에 있을 뿐이지.

사각 해바라기

식물은 그들의 붕대이고, 이슬은 그들의 진통제야…… 아마 그들은 사미의 상처를 꿰매고 있겠지.

뮤엘시스

사각 해바라기, 그게 사실이야?

사각 해바라기

당연하지. 그들을 도와준 적도 있는 걸.

비가 멈췄다.

생태원 중앙에 서 있는 뮤엘시스는 눈앞의 식물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뮤엘시스

대조 실험을 두 차례 했는데, 결과는 같았어. 그 말인즉슨 너희의 식물 표본을 해부하고 선별해서 얻은 추론이 정확하다는 거야.

사각 해바라기

……

뮤엘시스

네 씨앗에 함유된 화학 성분은 지금까지 학계에 알려진 적이 없어. 그것들이 우리의 추론에 결정적인 증거가 되었지.

뮤엘시스

넌 정말 특별한 식물이야. 네겐 일종의 '치료' 효과가 있어. 다만 치료 대상이 우리가 모르는 자연물일 뿐.

사각 해바라기

……

뮤엘시스

하지만 식물 자체로는 치료 능동성이 없어.

뮤엘시스

그렇다는 건 누군가 너희를 사용하고 있다는 거야. 그 사람들도 사미의 생태 보상 체계의 일부인 거고.

뮤엘시스

사미, 그곳에 내 동족이 있는 걸까?

유리를 뚫고 햇빛이 비쳐들자 축 처진 사각 해바라기의 꽃이 살짝 흔들렸다.

뮤엘시스

고마워, 상상 속 친구야.


생태과 연구원

뮤엘시스 주임님……

뮤엘시스

으음……

생태과 연구원

저기…… 너무 슬퍼하진 마세요!

생태과 연구원

주임님은 식물과 대화하실 수 있잖아요. 그게…… 빙원 목화가……

뮤엘시스

켈리, 그건 스스로 슈퍼 개조 인간이 됐다는 늙은 염소가 늦은 밤에는 사리아와 싸운다는 썰보다 더 황당하잖아……

생태과 연구원

……죄, 죄송해요.

생태과 연구원

참, 주임님께 전해드릴 편지가 있어요.

생태과 연구원

유명 학술지 《트리마운츠 공과대학 학보》, 《바이오 논평》, 《네이처 통신》에서 원고를 요청해왔어요. 다들 주임님의 연구에 관심이 있나 봐요.

생태과 연구원

주임님의 식물 정보 실험은 식물 생리학과 계통 식물학의 관점에서 가능성이 입증되었죠. 분명 생태학에 엄청난 돌파구가 될 거예요.

뮤엘시스

모두가 도와준 덕분이지.

생태과 연구원

그럼 학술지 쪽은 어떻게 할까요?

뮤엘시스

다 받는다고 해. 하지만 원고 제출이 늦어질 수 있다는 걸 편집장에게 꼭 좀 전해줘.

생태과 연구원

잠시 쉬시려고요? 하긴, 긴 여정을 마치고 바로 업무에 투입되셨으니까……

뮤엘시스

아니. 사미에 좀 다녀오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