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백지 위의 검은 글씨

백지 위의 검은 글씨

오퍼레이터 레코드브릿지

미틈은 신문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어떻게든 등사기 한 대를 손에 넣었다. 이제 그에게 필요한 건, 글을 읽을 줄 아는 필경사뿐이다.

등장 오퍼레이터: 외드레르, 이네스, 미틈


수상한 남성

힘을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해야 해, 알겠어?

수상한 남성

너한테 주는 마지막 기회야, 한 번만 더 실수하면 그냥 관둬.

소심한 남자

네.

수상한 남성

좋아, 이대로 힘을 줘서……

소심한 남자

……앗!

힘을 일정하게 유지하라고 했잖아, 또 버리게 생겼네……

참고할 샘플이 없는 것도 아니고, 철필로 그대로 똑같이 새기기만 하면 되는데, 그게 그렇게 어려워?

소심한 남자

죄송합니다, 고문 나리. 저도 일부러 그런 건 아닙니다. 다만 이 위에 그려진 그림이 너무 난잡해서……

그건 그림이 아니라 글씨야. “해당 쿠폰으로 20% 세일 교환 가능”이라고 쓰여 있잖아.

소심한 남자

저도 글씨인 건 알아요. 고문 나리께서 쿠폰을 찍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주려는 것도 알고요. 그치만 전 글씨를 못 읽는걸요……

됐어, 이제 상대하기도 귀찮아.

보수는 기대도 하지 마, 오히려 이쪽에서 배상을 받아내야 할 판이니까.

소심한 남자

*살카즈 욕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그러면 직접 하시지 그래요?

난 다른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거든. 온종일 여기 앉아서 등사 원지를 새길 시간은 없어……

영리한 여자아이

고문 나리, 밖에서 또 깡패들이 싸우기 시작했어요!

봐.

소심한 남자

……알겠습니다.

됐어, 네가 등사 원지를 죄다 못 써먹게 만들긴 했지만, 네 가상한 노력을 봐서 저기 있는 감자 두세 개 정돈 가져가게 해 줄게. 괜히 어디 가서 내가 사람 돈 떼먹는다고 소문이나 내지 마.

소심한 남자

정말인가요? 감사합니다, 고문 나리!

리츠, 이번엔 누가 누구랑 싸우는 거야?

또 그 돌멩이 때문인가…… 좀 색다른 이유는 없는 거야? 싸움을 말리는 대사까지 똑같아서 나도 이젠 싫증이 날 지경이야.

참, 리츠, 너도 등사 원지나 새겨볼래?

영리한 여자아이

등사 원지는 다 써버린 거 아니었어요?

그게 말이지, 전에 얻어온 등사 원지가 한 보따리가 아니라 두 보따리였다는 사실이 방금 막 떠올랐지 뭐야.

영리한 여자아이

아, 네네네. 그래도 전 안 할 거예요. 종이 위에 글씨 쓰여 있는 것만 봐도 머리가 아프다고요.

영리한 여자아이

근데 여전히 이해가 안 되네요. 신문사를 차릴 것도 아닌데 대체 왜 등사기를 장만하신 거예요?

이건 너한테만 얘기해 주는 거니까 다른 데서 말하지 마. 식품 가게에서 우리한테 쿠폰 인쇄를 부탁했는데, 이 쿠폰이 있으면 고철 4개로 감자 한 자루를 교환할 수 있거든. 너도 알고 있지?

영리한 여자아이

……설마 그 사람들 몰래 쿠폰을 더 인쇄할 생각이에요?

그런 불명예스러운 일은 바보나 하는 짓이야.

지금은 고철이 부족한데, 가게 사장은 감자를 지하실에 잔뜩 쌓아두고 있잖아. 그래서 이런 쿠폰을 인쇄하려는 거야. 다만 내가 그 사장에게 인쇄해 주는 건 '고철로 감자 교환'이 아니라 '20% 세일 교환'란 말이지.

영리한 여자아이

……아! 다른 걸로 교환하실 생각이시군요! 목재인가요? 마침 우리 목재도 쌓여 있는데.

그건 시세를 봐서 정해야지.

영리한 여자아이

역시 고문 나리야, 멀리 보시는군요.

멀리 보기만 하다가 주변에 글 쓸 수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걸 잊어버렸지 뭐야.

영리한 여자아이

그러고 보니 최근 이 주변에 글 배우는 수업이 생겼어요.

글 수업? 아, 그 용병 말이야? 그 녀석 만만치 않아 보이던데. 어디 제대로 가르친 제자라도 하나 있으면 나도 생각해 볼 텐데 말이야.

영리한 여자아이

그럼 신경 안 쓰셔도 되겠네요, 수업을 받는 아이들은 전부 저보다도 어린 아이들이거든요. 아이들이 얌전히 앉아 있게 하는 것부터가 엄청난 일이라고요.

어린아이들을 가르친다고? 아무래도 그걸 밥벌이로 삼진 않은 모양이네……

아니, 그럼 수업 같은 건 왜 하는 거야?

영리한 여자아이

그야 하늘이 알겠죠. 어쩌면 무슨 꿈을 가지고 있는 걸지도요. 제 친척 아이도 그 글 수업에 다니는데, 선생님이 카즈델의 문화나 미래에 대해서 얘기해 준대요.

그럼 나랑은 말이 안 통할 것 같네.

영리한 여자아이

그럼 고문 나리는 등사 원지나 새기러 가세요.

너도 참, 그냥 해 본 말이잖아. 기껏 이런 인재가 나타났는데 순순히 놓칠 순 없지.

영리한 여자아이

오, 고문 나리가 진지해졌어.

……

영리한 여자아이

고문 나리, 그래서 어떻게 하실 건가요?

조용, 조용. 지금 어떻게 말 걸지 계획 구상 중이야.


외드레르 선생 있나?

고마워.

안녕, 외드레르 선생. 난 폴이야.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어.

……

폴은 방 안을 둘러보았으나 눈에 띄는 물건이라곤 칠판 하나뿐이었다. 그 위엔 분필로 써내린 몇 가지 기초적인 문장이 있었고, 그 옆에는 아이들이 멋대로 그린 그림이 아직 남아 있었다.

그 외엔 낡아 보이는 책 몇 권이 전부였다.

이 물건들을 보고나니 폴은 자신이 방금 세운 계획엔 문제가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들어 눈앞에 있는 이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기로 결정했다.

그는 일부러 손을 문지르며 잠시 외드레르의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했다.

갑작스레 찾아와서 미안하지만……

사실 나에겐 꿈이 하나 있어.

이 말을 하는 순간 폴은 외드레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눈앞의 사람은 별다른 표정을 짓지 않았다.

역시, 폴은 생각했다. 이런 고생을 사서 하는 타입의 인간들은 대부분 괴짜거나 말을 거의 하지 않지.

그런데 당신 꿈이…… 내 꿈이랑 같다는 얘길 들었어. 당신은 글 수업을 통해 카즈델의 다음 세대들을 가르치고 있잖아, 맞지?

그건 내 바람과 똑같아. 난 카즈델의 모두가 글을 읽을 수 있었으면 하거든.

솔직히 외드레르 선생이 나보다 한발 더 나아가 더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

스스로 이런 작은 방 안에서 그 기운 넘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길을 택하다니, 정말로 당신이 존경스러워. 당신은 큰 꿈을 가진 사람이야.

살카즈의 문화는 이미 모습을 감춘 지 오래지. 우린 카즈델의 모든 이로 하여금 문자, 문화, 문명에 대한 중요성을 다시 깨닫게 할 필요가 있어. 그리고 교육이야말로 그 첫걸음이야.

하지만 이런 작은 교실만으론 당신의 꿈은…… 아마 결실을 보기 힘들 거야. 이건 결코 과장이 아니야.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것은 결국 왜곡되고, 사라지기 마련이니까. 그래서 난 이걸 막기 위해 특별히 등사기 한 대를 장만했어.

(이 사람의 눈이 잠깐이지만 반짝였어! 이거 가망이 보이는데?)

생각해 봐. 선생이 입이 마르도록 한 시간 동안 이야기한 것들을, 이 등사기 하나면 몇 초 만에 찍어 낼 수 있어. 게다가 더 많은 사람이 보게끔 배포할 수도 있고. 이거야말로 당신이 나아가야 할 올바른 길이 아닐까?

이게 바로 내가 선생을 찾아온 이유야. 선생이 등사 원지를 새길 시간만 조금 준다면, 당신 꿈에도 한발 더 다가설 수 있을 거야.

이게 바로 내가 선생을 찾아온 이유야. 시간을 조금 내서 등사 원지를 새기는 일을 도와주고, 선생의 꿈에 한발 더 다가서자고.

외드레르

글을 읽을 줄 아나?

응, 몇몇 작업들은 글을 알아야만 할 수 있어서……

아, 아니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니라, 내 말은 그러니까……

읽어야 하는…… 아니지, 내 말은 등사 원지를 새기는 게……

등사 원지…… 등사 원지, 등사 원지가……

잠깐, 방금 나한테 한 질문……

……'글을 읽을 줄' 아냐고?

외드레르

(끄덕)

아, 으, 응. 읽을 줄 알아.

외드레르

그건 네 부모가 가르쳐 준 건가, 아니면 따로 선생님이 계셨나? 그 사람은 아직 카즈델에 있나?

……독학인데.

외드레르

독학? 대단하군. 이 주변에서 글을 읽을 줄 아는 살카즈는 오랜만에 봤어.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나도 마찬가지로, 당신을 만나서 기쁘다는 얘기야, 외드레르 선생.

아무튼 방금 얘기를 이어서 할게. 난 카즈델의 모두가 글을 읽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당신을 찾아왔어. 물론 당신은 이미 글 수업을 하면서 큰 공을 세웠지만……

외드레르

방금 등사기 한 대를 장만했다고 했지? 그래서 지금 그걸로 뭘 인쇄하고 있나?

지금은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인쇄하고 있어. 전단지나 거리의 최근 뉴스 같은 것들……

외드레르

다른 사람들이 그걸 알아볼 수 있나?

윽!

확실히 조금 문제가 있긴 해. 그래서 다른 것들도 인쇄하고 있어. 예를 들면 쿠폰 같은 것 말이야. 식품 가게의 쿠폰과 똑같이 생기기만 하면 글자를 못 읽어도 쓸 수 있으니까.

솔직히 이런 짓을 하는 게 내 꿈과는 반대된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내 힘으로는 한계가 있어서 말이야. 그래서 당신을 찾아온 거야……

외드레르

그 반대겠지. 종이의 글자를 통해 물건과 식량을 교환하여 배를 채울 수 있다니, 이건 그 무엇보다도 강력한 힘이다.

……힘이라고?

외드레르 선생, 당신과 얘기를 나누다 보니 정말 많은 걸 얻어가는 기분이 들어. 그래서 말인데, 등사 원지를 새기는 일은……

외드레르

시간이 나면 가도록 하지.

그게 말이지, 가끔 찾아와서 등사 원지를 새기는 걸로는 부족해. 난 진심으로 인쇄소를 세우고 싶어. 혹시 가능하다면 구체적인 시간을 정할 수 있을까? 예를 들면 매주 오후에 몇 번 오겠다거나?

외드레르

난 글 수업 이외에도 할 일이 많다. 그리 많은 시간은 낼 수 없어.

외드레르 선생, 조금 듣기 싫은 소리일 수 있겠지만, 그래도 이 말은 해야겠어. 꿈을 위해서라면…… 어느 정도 희생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외드레르

……당연하지.

그리고 그 꿈은 시간으로 저울질하거나 결정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고 생각해.

솔직히 말할게. 길거리 주변의 깡패들은 모두 내가 글을 읽을 줄 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어. 난 시시때때로 그들에게 붙잡혀 가서 무언가를 읽도록 강요당하고 있지. 그게 아니면 누가 얼마를 벌었고, 얼마를 손해 봤는지 계산하는 일을 하거나……

그럼에도 난 시간을 짜내서 이 인쇄실을 열었어. 남는 시간마저 희생해야 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윽…… 이렇게 말하는 것도 좀 그런가. 이 사람도 정말 여유가 없어 보이고.)

아니면 혹시 글 수업 이외의 일을 내가 도와주는 건 어때?

외드레르

(쓴웃음) 됐어.

(안 돼, 이제 와서 물러설 수는 없어. 적어도……)

(미안, 외드레르 선생)

인쇄실에 정말로 사람이 부족해. 선생마저 도와주지 않는다면 내 인쇄실은 정말로…… 더 이상 운영하지 못하게 될 거야……

나도 이제 물러설 곳이 없어. 등사기를 저렇게 쓸모없게 두고 싶지도 않고. 선생마저 날 도와줄 수 없다면, 그렇다면……

하아……

외드레르

그러니까 어떻게든 글을 새길 사람이 한 명 필요하다는 건가?

만약 정말로 시간이 없다면 다른 좋은 의견이라도 내 줄 수 있어? 이 등사기를 장만하느라 수중의 돈을 전부 써버렸거든.

선생도 알 거야, 그 깡패들 엄청 막무가내잖아. 걔들 일을 해줘도 결국 오히려 빚을 지는 신세가 됐어. 인쇄실을 열지 못한다면 등사기는커녕, 내 한 몸 누일 곳 하나 못 건질 거야.

……

외드레르 선생?

외드레르

그럼 이렇게 하지.

폴이 채 대답을 하기도 전에, 외드레르는 몸을 돌려 방의 한구석으로 움직였다. 거대한 몸이 그의 손동작을 가리고 있어, 무얼 하고 있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폴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이 사람 대체 뭘 꺼내 올 생각이지? 편지? 주소? 아니면…… 무기?

설마 돈일 리는 없겠지……

외드레르

이 돈을 네게 빌려 주마. 급하게 갚을 필요는 없다. 천천히 갚아도 좋아.

이건?!

외드레르

카즈델에선 돈이 잘 쓰이지 않는다는 건 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깡패들을 상대하기엔 충분할 거다.

외드레르

남는 돈으론 사람 한 명을 고용해서 그 사람에게 읽는 법과 쓰는 법을 가르쳐. 이 거리에 글 읽을 줄 아는 사람을 한 명이라도 더 늘려라.

아, 아뇨. 그건 아무래도 좋은데, 이 돈은 대체……

외드레르

이 돈은 나랑 다른 한 사람이 같이 모은 돈이다. 그녀가 모은 돈까진 건들지 않았지만, 내가 모은 돈으로도 아마 충분할 거다.

내…… 내가 이 돈을 들고 어떻게 할 줄 알고……

(잠깐! 폴, 그게 무슨 말이야? 지금 눈앞에 돈이 있잖아!)

그럼…… 받을게?

외드레르

그래, 받아 둬라.

폴은 돈을 들고 멍하니 제자리에 서 있었고, 외드레르는 그런 폴의 앞에서 허리를 숙여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

외드레르

넌 나이가 어떻게 되지?

난……

……

외드레르

괜찮아, 말하기 싫으면 됐다.

외드레르

난…… 네가 글을 읽고 쓰는 걸 독학했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외드레르

부모도 선생도 없이, 대체 어떤 삶을 겪었길래 이렇게 어린 아이가 카즈델에서 혼자서 글을 깨우치게 된 건지.

외드레르

어서 돌아가라. 네가 글을 새길 사람을 구하고 인쇄를 시작하게 되면, 잊지 말고 나에게도 한 권 선물해 주면 고맙겠어.

외드레르 선생, 난……

난 사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고마워.


영리한 여자아이

고문 나리, 오셨군요. 그 용병과는 얘기가 잘 됐나요?

……

영리한 여자아이

왜 아무 말씀도 없으세요? 거절당했으면 뭐 어때요.

그 사람은…… 거절하지 않았어.

영리한 여자아이

그럼 잘 된 거 아니에요?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야, 그 사람은……

……

영리한 여자아이

평소답지 않게 왜 그리 우물쭈물하세요. 설마 한 대 맞았나요?

헛소리하지 마.

영리한 여자아이

아니면 고문 나리도 모르는 책들이 엄청 많이 있었나요?

……그런 것도 아냐……

……아 참, 책.

리츠, 네 도움이 필요해.

영리한 여자아이

또 등사 원지인가요? 전 그런 거 안 한다니까요.

글 새기는 건 내가 할게. 넌 내가 자는 곳에 가 봐, 거기 바닥에 있는 문을 열어보면 나무 상자가 하나 있을 거야.

영리한 여자아이

헤에, 고문 나리가 그런 보물 상자를 숨겨 두고 계셨을 줄은 꿈에도 몰랐네요! 그 안에 대체 얼마나 좋은 물건이 들어 있길래 그러는 거예요? 보석? 순금? 설마 산크타의 수호총?

일단 가 봐, 보면 알아. 난 등사기를 조정하고 있을 테니.

영리한 여자아이

무거워라, 힘들어 죽겠네. 고문 나리, 대체 여기 뭐가 들어있는 거예요?

열쇠 줄게. 네가 알아서 열어봐. 내 손엔 잉크가 잔뜩 묻어서 말이야.

영리한 여자아이

……절 너무 믿는 거 아니에요?

영리한 여자아이

이 낡은 책들은 왜 숨기신 거예요?


이네스

누구지?

어라? 여긴 외드레르 선생 댁이 아니야?

이네스

……

이네스

널 찾는다는데.

외드레르

폴인가? 들어와.

외드레르 선생, 이거 받아.

외드레르

……인쇄물?

내가 글을 배울 때 썼던 책을 몇 권 인쇄했어. 분명 선생의 글 수업에도 도움이 될 거야.

외드레르

십여 년 전의 것인가?

외드레르

고맙군, 아이들이 글을 어느 정도 잘 읽게 되고 나면 이걸 독서 자료로 써야겠어. 한번 볼까, 용병의 일기, 라이타니엔 침입 당시 군사위원회가 인쇄한 심리전용 전단지까지……

외드레르

정말 별것이 다 있군. 이 책은 1030년 정도에 나온 필사본을 인쇄한 건가.

귀한 거야? 혹시 필요하다면 원본을 가져올까?

외드레르

아니, 인쇄본으로도 충분하다. 종잇값은 얼마나 내면 되지?

어떻게 돈을 더 받겠어! 솔직히 말해서 그 깡패들한테 빚진 돈을 다 갚고도 많이 남아서 나 혼자 다 쓰지도 못해.

이건 그 돈의 절반이니 받아 줘.

외드레르

폴……

받아 줘.

남은 절반도 걱정하지 마. 몇 달도 안 걸려서 다 갚을 테니까. 이자 10%까지 포함해서 말이지.

외드레르

하하, 이자까진 필요 없지 않나?

이네스

왜 날 봐, 네 돈이니까 네가 알아서 결정해.

외드레르

그렇다면…… 폴, 혹시 이 지도를 인쇄해 줄 수 있나?

문제없어. 또 인쇄할 거 있어?

외드레르

어디 보자……

이네스

애들한테 낼 시험지를 인쇄하는 건 어때?


영리한 여자아이

고문 나리, 이 등사 원지 좀 보세요.

흐음…… 나쁘지 않네. 이 정도면 필경사로서 합격점을 줄 수 있겠어.

영리한 여자아이

하지만 정작 전 이 위에 쓰여 있는 글씨 중 절반밖에 알아보지 못하는걸요.

성급하게 굴지 마. 나도 옛날에 글 배울 때는 너랑 속도가 비슷했거든. 감자 먹을래?

영리한 여자아이

네!

영리한 여자아이

……설탕도 뿌린 건가요? 고문 나리 최고!

넌 우리 인쇄실의 유일한 필경사인걸, 당연히 잘 먹여야지.

난폭한 깡패 두목

고문 나리, 말씀 좀 해주세요. 전에 4대 6으로 나누기로 약속했으면서 갑자기 자기 멋대로 5대 5로 나누자는데,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음침한 깡패 두목

자기 멋대로? 우리 쪽에서 당한 게 몇 명인데!

너희 말이야……

영리한 여자아이

어째 싸우는 이유가 변하질 않냐고 말하려고 했죠? 고문 나리.

두 깡패 두목

뭐라고?!

애가 세상 물정 모르고 아무렇게나 말한 거니까 신경 쓰지 마.

그건 그렇고, 이번 일의 해결 방법은 사실 아주 간단해.

폴은 탁자 밑에서 인쇄된 종이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여기 계약서가 있잖아. 이건 내가 손으로 썼던 거고, 너희에게도 한 부씩 인쇄해서 나눠줬었지. 지장도 찍혀 있네.

어디 보자…… “양측은 4대 6으로”……

난폭한 깡패 두목

이거 봐, 확실한 증거가 여기 있잖아!

“사상자 발생 시, 피해가 작은 쪽이 이익 일부분을 포기해야 하며, 최소 5대 5부터 시작한다.”

음침한 깡패 두목

그래, 그것참 퍽이나 확실한 증거구먼!

난폭한 깡패 두목

*살카즈 욕설*, 어이 고문 나리, 지금 절 놀리시는 겁니까!

난폭한 깡패 두목

지금 이곳에서 글을 읽을 줄 아시는 건 당신 혼자고, 이렇게 인쇄까지 미리 해 두신 걸 보면 까막눈인 저희가 올 걸 예상하고 계셨던 거 아닙니까? 정말 자기가 뭐라도 된 거라고 착각하고 계신 거 아니냐고요!

폴은 방긋 웃더니 방문을 가리켰다.

사기당할까 무서워? 그럼 너희가 글을 배우든가.

여기서 가까운 곳에 용병이 운영하는 글 교실이 하나 있는데, 거기서 이틀만이라도 글을 배워 보는 게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