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잃어버린 시간

잃어버린 시간

오퍼레이터 레코드브릿지

멜라나이트는 한동안 자신을 괴롭혀온,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 꿈을 해결하고자 허니베리를 찾아간다.

등장 오퍼레이터: 멜라나이트, 허니베리, 도베르만, 듀나


목요일

허니베리

멜라나이트 씨, 편하게 앉아 계세요. 이렇게 상담하러 오신 건 처음이시죠?

멜라나이트

……네.

허니베리

괜찮아요. 그냥 대화를 나누는 것뿐이니 긴장 푸세요. 요즘 제게 이야기할 만한 일이 있으셨나요?

멜라나이트

허니베리 씨. 저, 요즘 들어서…… 자주 꿈을 꿔요.

허니베리

꿈이요? 어떤 꿈인데요?

멜라나이트

……잠에서 깨어나면 꿈을 꿨다는 것은 기억나지만, 어떤 내용이었는지 전혀 기억나질 않아요…… 꿈에서 남겨진 감정만이 계속 제 마음을 짓누를 뿐이죠.

허니베리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 꿈과…… 남겨진 감정…… 언제부터 이러신 거예요?

멜라나이트

일주일 정도 됐을 거예요. 하지만 그 감정은 점점 강렬해지고, 점점 더 오래 지속되고 있어요. 어쩔 땐 하루 종일 계속되기도……

허니베리

기억나지 않는 그 꿈이 악몽이라고 생각되나요?

멜라나이트

아니요.

멜라나이트

제가 꾸는 악몽은 단 하나예요. 그날 밤, 전 강도들이 아버지에게 접근하는 걸 직접 보면서도 아버지한테 배웠던 것처럼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죠.

멜라나이트

악몽에서 깨어날 때마다 늘 식은땀에 젖은 채였고, 어떻게 해도 두근거림이 진정되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게 가짜라는 걸 깨닫고 나면 곧 안정을 되찾았죠.

멜라나이트

하지만 최근의 꿈은…… 완전히 달라요. 뭐라고 설명은 못하겠지만, 잠에서 깨어나면 솜을 덧댄 납 조각을 품에 안고 있는 것 같아요. 부드럽지만, 아주 무겁죠.

멜라나이트

정말 무거운 감정이에요…… 정말 무겁고, 게다가 오랜 시간 이어져서…… 마음이 불안하고 뭔가에 집중하기가 어려워요.

멜라나이트

이런 감정을 없앨 수 있는 약이 있을까요?

허니베리

성급하게 약을 먹는 건 좋지 않아요. 전 그 꿈이 희미해진 과거나…… 어린 시절에 잊어버린 무언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부모님에 대해 얘기해주실 수 있나요?

멜라나이트

알겠어요.

허니베리

난처해하실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요.

멜라나이트

그럴 리가요.

멜라나이트

아버지는 블랙스틸에서 퇴역한 분이셨어요. 별로 크지 않은 키에, 팔이 하나 없었고, 다부진 체격과 수염이 있는 분이었죠.

멜라나이트

어머니는 주부셨어요. 아버지가 퇴역하기 전엔 아르바이트로 세탁 일을 하셨는데, 아버지가 돌아오신 후로는 함께 장사를 하셨죠. 아버지보다 키가 조금 더 크고 마르셨어요. 이 정도예요.

허니베리

당신은요?

멜라나이트

저 말인가요? 당시 전 어린애였으니, 매일 어린애가 해야 하는 일을 했죠.

허니베리

당신에 대한 이야기, 좀 더 자세히 들려주시겠어요?

멜라나이트가 고개를 들고 머리 위의 노란 조명을 바라봤다.

멜라나이트

……좀 더 자세히요?

멜라나이트

등교, 집안일, 가게 보기, 옆집 친구와 놀기. 거의 그게 전부였어요.

허니베리

기억에 남는 장면이나 경험, 물건은 없으세요?

멜라나이트

특별히 기억나는 건 없어요.

허니베리

정말 없다 해도 뭐라도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생각나는 곳까지만 얘기해 주셔도 되고요.

멜라나이트가 주위를 둘러보며 방 안의 인테리어를 훑어봤다.

멜라나이트

집안의 조명은 이곳과 비슷했죠. 노란색 조명이었어요. 바닥은 이곳에 비하면 질이 조금 떨어져서 이따금 소리가 나곤 했죠.

멜라나이트

책상은 정말 높았어요…… 어쩌면 그때 제가 너무 작아서 그랬던 걸지도 모르죠.

허니베리

멜라나이트 씨, 당신에 대해 얘기해 주시겠어요? 그곳에서 뭘 하고, 무슨 생각을 하셨나요?

멜라나이트

……저에 대해서요?

멜라나이트

아, 참. 지금은 사라졌지만 무릎에 흉터가 있었던 걸로 봐선 집 계단이 높았던 모양이에요. 그렇지 않았다면 넘어질 일도 없었겠죠.

멜라나이트

조명, 바닥, 책상, 계단…… 아, 또…… 의자가 있었던가.

멜라나이트

의자는……

허니베리

멜라나이트 씨……

멜라나이트

기억은 잘 안 나는데 집에 나무 의자가 있었던 것 같아요……

허니베리

멜라나이트 씨, 이제 됐어요.

허니베리

조금 전…… 사실을 하나씩 말씀하셨는데, 분위기나 감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어요. 꼭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시는 것 같았어요.

멜라나이트

그 시절에 대한 인상은 항상 이래요.

허니베리

오직 사실만 있고 세세한 내용이나 감정, 심지어는 자신의 자리조차 없다니…… 정말 괴로우셨겠어요.

멜라나이트

아뇨, 전혀 그렇지 않아요.

멜라나이트

그날 밤 일을 잊고 싶으니까요…… 하지만 악몽만 꾸면 그날 밤 모든 일이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지곤 해요.

멜라나이트

그렇다면 그전에 있었던 일을 기억에서 지우면 적어도 무감각해질 수는 있죠……

멜라나이트

……이미 무감각해진 걸 잃었다고 자신이 그렇게 불쌍하게 느껴지진 않으니까요.

멜라나이트

게다가 제 삶은 그때와 아무 관련이 없어요. 감정이 있든 없든, 과거의 일은 지금 제 삶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죠.

허니베리

멜라나이트 씨……

멜라나이트

기억나지 않는 꿈과 상관없는 것들만 이야기해서 죄송해요. 의료부에 적당한 약이 없다면, 제가 알아서 해볼게요.

허니베리

아니에요. 분명 관련이 있을 거예요. 어쩌면 어린 시절의 기억에 관한 문제가 해결되면 꿈 문제도……

멜라나이트

걱정 끼쳐서 죄송해요. 이만 가볼게요.

멜라나이트는 몸을 돌려 상대의 걱정스러운 시선을 피하며 빠르게 방을 나섰다.


그녀는 곧바로 자신의 숙소로 돌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다급하게 방을 나선 바람에 결국 길을 잃고 낯선 곳에 도착하고 말았다.

눈앞의 텅 빈 복도를 바라보던 멜라나이트는 자신도 모르게 레일건 스위치에 손을 가져다 댔고, 이내 자신의 움직임을 깨닫고는 급히 손을 떼었다.

멜라나이트

여긴 로도스 아일랜드야. 로도스 아일랜드.

멜라나이트

처음 보는 장소라도, 대처할 수 없는 일은 일어나지 않아…… 여긴 모든 게 안전한 곳이야.

멜라나이트

지난 일은 너와 아무런 관련 없어. 지금 넌 로도스 아일랜드의 오퍼레이터야.

멜라나이트

이곳엔 널 해치려는 사람이 없어. 전장에서 화력 지원만 제대로 해낸다면, 적당한 보수와 치료를 받을 수 있지……

멜라나이트

괜찮아. 괜찮을 거야……

멜라나이트가 몇 차례 심호흡했다.

자기 암시, 혼잣말, 심호흡…… 이 방법들은 완전히 긴장을 풀어주진 못했지만, 언제나 도움이 되었다.

길을 잃은 탓에 종아리까지 올라왔던 불안감이 차츰 발목으로 내려갔다.

멜라나이트

괜찮아. 괜찮을 거야…… 난 평소 페이스대로 내 일만 하면 돼.

멜라나이트

지난 일들과 거리를 두고 계속 벗어나려고 하면,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올 거야.


금요일

의료부 오퍼레이터

오퍼레이터 멜라나이트, 정기 검진이 끝났어요. 보고서는 조금 기다리셔야 할 거예요.

의료부 오퍼레이터

요즘 기분이 안 좋으세요?

멜라나이트

어, 어떻게……

의료부 오퍼레이터

네? “어떻게”라뇨……?

멜라나이트

그, 그게 아니라 왜 제 기분이 안 좋다고 생각했죠? 검진할 때 무슨 문제라도 있었나요?

의료부 오퍼레이터

그럴 리가요. 안색이 안 좋아 보여서 그냥 여쭤봤어요.

멜라나이트

……잠을 설쳐서 그런가 봐요. 아침에 꿈을 꿨거든요.

의료부 오퍼레이터

보고서가 나왔네요. 어디 보자……

의료부 오퍼레이터

음…… 광석병은 잘 통제되고 있는데, 다른 생리적 지표가 많이 변했네요……

의료부 오퍼레이터

요즘 정말 잠을 제대로 못 주무시나 봐요. 악몽을 꾸셨나요?

멜라나이트

……아뇨, 악몽이 아니라 평범한 꿈이었어요. 정말이에요. 어제 허니베리도 찾아가 봤는데, 별다른 문제는 없으니 언제든 업무에 투입돼도 된댔어요.

의료부 오퍼레이터

업무요? 뜬금없이 업무 얘기는 왜 하시는 거예요.

의료부 오퍼레이터

자, 초콜릿 좀 드세요. 안정되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멜라나이트가 생각에 잠긴 얼굴로 포장이 벗겨진 초콜릿을 건네받았다. 쌉싸름한 단맛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멜라나이트

궁금한 게 있는데, 지금 이런 상태가…… 다음 외근 업무에 영향을 미칠까요?

의료부 오퍼레이터

그때까지 나아지지 않으면 한동안 휴식을 권할 생각이에요. 지금도 좀 걱정되는 상태라서요.

멜라나이트

휴식……?

멜라나이트

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 다음 외근 전까지 어떻게든 회복해 볼게요.

의료부 오퍼레이터

자신감이 넘치시네요, 좋아요.

의료부 오퍼레이터

전 이만 점심을 먹으러 가볼게요. 같이 드실래요?

멜라나이트

아뇨, 괜찮아요. 고마워요.

멜라나이트

……빨리 좋아져야 해.

멜라나이트

전에 어떻게 했었는지 생각해 보자. 전에는……

멜라나이트

쓸데없는 생각을 할 시간이 없도록 한가한 일정을 전부 채워버렸지……

멜라나이트

분명 나아질 거야.


토요일

멜라나이트

도베르만 교관님.

도베르만

토요일인데도 훈련하러 온 건가? 좀 쉬어야지.

멜라나이트

괜찮아요.

도베르만

훈련하러 온 게 A6팀의 문제아였다면, 두말 하지 않고 훈련하라고 내버려뒀을 거다. 하지만 넌 달라. 넌 늘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쪽이지.

도베르만

게다가 어제 정기 검진 결과 지표가 좋지 않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도베르만

그 일을 듣고 허니베리에게 가서 자초지종을 물었지. 정확하게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어떤 꿈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멜라나이트

전부 알고 계셨나요?!

도베르만

너희의 건강 상태를 파악하는 것도 교관의 의무지.

멜라나이트

도베르만 교관님, 전 괜찮아요. 정말이에요.

도베르만

오늘 아침에도 같은 꿈을 꿨나?

도베르만

오늘은 푹 쉬는 게 좋겠군.

멜라나이트

도베르만 교관님, 제겐 훈련도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 중 하나예요. 정말이에요.

도베르만

확실한가?


멜라나이트

빗나갔어.

멜라나이트

빗나갔어.

멜라나이트

또 빗나갔어……!

멜라나이트

안 되겠어. 오늘 컨디션이 너무 안 좋네……

멜라나이트

같은 과녁을 수십 번째 쏘고 있는데 이렇게 연속으로 빗나간 적은 처음이야……

멜라나이트

과녁을 조준하려 할수록 손이 떨리는 것 같아. 내가 왜 이렇게 됐지? 이러면 로도스 아일랜드에……

도베르만

거기까지!

멜라나이트

정말 죄송해요…… 제가 모두에게 짐이 되고 말았어요……

도베르만

이건 네 개인 훈련인데, 짐이 되었다니 그게 무슨 소리지?

도베르만

괜찮다. 여기 따뜻한 우유라도 마셔.

멜라나이트

도베르만 교관님, 제가 계속 이런 상태라면…… 외근 때, 모두에게 짐이 되지 않을까요……?

도베르만

그건 걱정하지 마라.

멜라나이트

걱정하지 말라니…… 상태가 안 좋은 오퍼레이터는 외근에 파견하지 않는단 뜻인가요?

도베르만

간단히 말하자면 그렇다. 외근 임무에는 다양한 위험이 따르는 법이니……

멜라나이트

그러니…… 상태가 안 좋은 오퍼레이터는 임무를 맡을 수 없다는 거죠?

멜라나이트

죄송해요. 이만 가볼게요. 따뜻한 우유는 잘 마셨어요.

도베르만

멜라나이트? 멜라나이트!


일요일

눈을 뜨자 꿈에서 깨어나는 기분이 순식간에 그녀의 마음을 짓눌러온다.

자세히 느껴보면 그 부드럽지만 무거운 느낌은…… 일종의 슬픔에 가까웠다.

그건 갑자기 팔이 잘린 듯한 핏빛 고통이 아니었다.

잘린 팔의 상처가 아문 후에, 문득 아주 오래전 어느 한 오후, 두 손으로 친구의 눈을 가리던 장면이 떠오르는 듯한 슬픔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멜라나이트는 그런 미묘하고도 형언하기 어려운 감정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그녀는 그 꿈이 자신의 삶을 망치고 있으며, 불안에 떠는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보살핌을 받다가…… 결국 쓸모없는 사람이 되리라고 여길 뿐이었다.

아무리 로도스 아일랜드가 자비롭다 한들 쓸모없는 사람까지 받아줄까?


허니베리

멜라나이트 씨,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그렇지 않아요!

멜라나이트

그렇지 않다고요?

멜라나이트

친척들이 저를 후원해 준 건, 제가 혈연관계이기 때문이었어요.

멜라나이트

웃으면서 절 맞이해준 건, 제 성적이 늘 좋았기 때문이죠.

멜라나이트

전 직장에서 제게 월급을 준 건 제가 남들이 할 수 없는 무기를 테스트할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멜라나이트

로도스 아일랜드가 절 고용하고 병을 치료해 준 건 제가 이 레일건으로 화력 지원을 제대로 해냈기 때문이고요……

멜라나이트

애초에 당신들과 그 사람들을 비교하는 건 무례한 일이긴 하지만…… 누가 쓸모없는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주겠어요?

허니베리

……당신의 부모님이 있잖아요.

허니베리

그분들은 아무 조건 없이 당신을 사랑하셨죠? 그렇지 않고서야 그분들을 잃는 일이 그토록 슬펐을 리가 없잖아요?

멜라나이트

이제 그만해요, 허니베리. 부탁이에요. 전 그저 평온하게 살고 싶을 뿐이에요. 무조건적인 사랑 따위는 필요 없어요. 제 손으로 인생을 바꿀 수만 있다면 그걸로 충분해요……

허니베리

괴롭다고 스스로를 방치…… 아니, 과거의 기억과 멀어지는 척하는 건 아무런 도움이 안 돼요.

허니베리

어쩌면 무의식적인 방어 기제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과거의 감정에서 벗어나려는 걸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 감정들은 절대 사라지지 않아요.

허니베리

의식이 닿지 않는 은밀한 곳에 숨어 있을 뿐이죠. 당신은 그것들로부터 영원히 벗어나거나 도망칠 수 없어요.

허니베리

그 꿈이 정말 당신의 삶을 망치고 있다면, 도피는 더더욱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에요.

멜라나이트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계속 이렇게 지낼 수는 없잖아요……

허니베리

멜라나이트 씨, 절 믿어주세요. 로도스 아일랜드는 심리적인 문제 때문에 누군가를 해고하지 않아요.

허니베리

이유 없는 사랑이 보기 드문 건 사실이지만, 사람 간의 선의에 반드시 이유가 필요한 건 아니에요.

허니베리

오늘 하루는 당신이 좋아하는 방식대로 보내보는 거예요. 아시겠죠?

허니베리

책은 여기 있어요. 전 커피를 타올게요.


멜라나이트

“찻잔에서 피어오르는 온기에 창문에 끼어있던 하얀 성에가 녹아내렸다. 은은하고 따스한 냄새를 맡고 있자니 마음이 평온해졌다……”

멜라나이트

“안락의자 맞은편의 타오르는 난로에선 장작이 타닥타닥 타들어 갔다. 방 안의 공기가 발효되어 포근해지고 부푸는 느낌이 들었다……”

멜라나이트

……안 되겠어. 눈에 글자가 안 들어와……

멜라나이트가 따뜻한 치스티밀크가 담긴 컵을 입가로 가져갔다.

입술에 치스티밀크가 닿기도 전에 마음을 짓누르던 무거운 슬픔이 한층 더 짙어졌다.

멜라나이트

(냄새? 치스티밀크 냄새? 도베르만 교관님과 있을 때도 그랬던 것 같아……)

멜라나이트

(아니, 치스티밀크뿐만 아니라…… 뭔가 다른 게……)

멜라나이트

(근데 이런 생각이 드는 거지? 최근에 이런 냄새를 맡았던가?)

멜라나이트

(어쩌면…… 숙소 근처에서……?)

멜라나이트

허니베리, 저…… 잠깐 실례할게요.

허니베리

그러세요. 오늘은 하루 종일 여기에 있을 테니 언제든 돌아오셔도 돼요.


멜라나이트

(숙소 입구에 도착했어…… 역시…… 그런데 냄새의 근원은 숙소가 아니라 저쪽인 것 같아……)


멜라나이트

(맞아, 바로 여기야. 내 숙소와 한 층밖에 안 떨어져 있었다니……)

멜라나이트

(구석에 눈에 띄지 않는 문에서 냄새가 흘러나오고 있어. 안에 들어가면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있을 거야……)

멜라나이트

(하지만……)

???

안에 있는 무언가가 널 바보처럼 만들면 어떻게 할래?

???

넌 그 괴로운 경험을 잊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어…… 넌 무의식적으로 모든 색깔과 냄새, 감정을 내게 떠밀고 그것들로부터 벗어났지……

???

네 기분이 좀 더 나아질 수 있도록, 외로울 때 행복했던 시절이 떠오르지 않도록, 이를 악물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말이야.

???

돌아가, 멜라나이트. 이 안엔 별거 없어. 넌 모르겠지만, 난 저 안에 있는 게 우스울 정도로 하찮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

???

감정이니 기억이니 하는 것들은 필요 없어! 그런 것들은 네 발목만 잡을 뿐이야!

멜라나이트

하지만 이대로라면 난 곧 무너질 거야……

???

그 사람들 말은 믿지 마. 네가 정말 좋아질 수 있을 것 같아? 다들 결국 돈 때문에 듣기 좋은 소리를 할 뿐이야. 나중엔 널 신경조차 쓰지 않을 거라고!

멜라나이트

그럼 난 어떻게 해야 해?

???

돌아가.

멜라나이트

최소한…… 꿈에서 뭘 봤는진 알고 싶어……

???

저 안에 있는 물건이 네 꿈, 과거, 삶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면?

멜라나이트

넌 알고 있다고 했잖아!

???

……

???

지금까지 우리가 했던 노력을 헛수고로 만들 생각이야?

???

정말 들어갈 거야?

멜라나이트가 거칠게 문을 열었다.

자신과 닮아있던 그 목소리는 조용해졌고, 방 안의 짙은 냄새와 하나가 되어 사라졌다.


멜라나이트

……듀나 교관님?

듀나

멜라나이트?!

듀나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료를 들고 있었다.

멜라나이트

이 냄새는……

듀나

네가 여긴 어쩐 일이야? 의료부에서 보낸 거야?

멜라나이트

아뇨. 그냥…… 음료 냄새가 나길래……

듀나

아아, 깜짝 놀랐네.

멜라나이트

이 음료는 대체……

듀나

지난 외근에서 겨우 구해온 영양제야. 우유에 타서 마시는 거. 십여 년 전엔 컬럼비아 잡화점에서 많이 팔더니, 요즘은 구하기가 영 어렵더라.

듀나

마침 마시기 전이고, 마음에 드나 보네. 자, 여기.

멍하니 음료를 받아 든 멜라나이트는 두 손으로 컵의 온기를 느끼며 이 달콤한 냄새가 마음속 어느 구석에서 짙은 슬픔을 일으키는지 알아내려고 했다.

기억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지만, 그것들은 수년간의 회피로 이미 얼어붙고 매끈하게 변한 후였다.

그녀는 달콤함과 어울리지 않는 슬픔의 근원을 건져내고자 했다. 하지만 마음과는 달리 계속 한 끗 차이로 실패했었다.

결국 그녀는 컵에 담긴 연갈색 음료에 입을 대었다.

혀에 달콤함이 느껴진 순간, 기억들이 녹아내린 수면에서 초콜릿과 따뜻한 치스티밀크가 어우러진 달콤한 냄새가 풍겼다.

그녀는 수면에 비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료를 들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컵 속에서 잃어버린 시간과, 한때 이미 버렸다고 생각했던 시간을 되찾은 것이었다.

컵에서 낯설지만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버지의 목소리

브레오나, 이게 뭔지 알겠어?

아버지의 목소리

요즘 아주 인기인 영양제야. 딱 한 상자 남은 걸 사람들이 계속 사겠다고 했는데…… 우리 브레오나 주려고 아무한테도 안 팔았지.

아버지의 목소리

뭐야, 왜 들고만 있어?

어머니의 목소리

그야 당신이 치스티밀크를 너무 데워서 그렇지. 이 뜨거운 걸 브레오나가 어떻게 먹겠어? 안 그래, 브레오나?

브레오나

응! 너무 뜨거워! 시…… 싱……

브레오나

식혔다가 먹을래!

달콤한 수증기가 초콜릿과 치스티밀크 냄새가 풍기는 흐릿한 두 형체로 변했다.

아버지의 형체

자, 브레오나. 넌 언제나 아빠의 총을 좋아했지? 오늘 외곽에 있는 공터에 데려가 줄게. 가서……

어머니의 형체

……당신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브레오나는 이제 겨우 여덟 살이야!

아버지의 형체

봐 봐, 이 하나뿐인 손에 들린 총에 식각 탄환은 한 발도 안 들었어!

어머니의 형체

아휴, 당신도 참. 알겠어. 최소한 컵에 있는 음료는 다 마시게 해줘.

그리고 이미 멜라나이트의 마음속에서 몇 개의 단어로 메말라 버린 부분들.


브레오나

아빠, 식각 탄환은 하나도 안 가져왔다며?

아버지의 형체

훗, 이 아빠가 팔은 한 짝이어도, 이런 조그만 물건쯤은 얼마든지 숨길 수 있지.

아버지의 형체

자, 손을 잡아줄 테니 아츠의 느낌에 집중해 봐……

아버지의 형체

대단한데! 아빠도 총을 쏘기까지 보름이나 걸렸는데!

아버지의 형체

그래도 앞으로 더 열심히 연습해야 해. 총을 쏘는 건 복잡한 일이니까. 아츠가 익숙지 않으면 위급한 상황에 방아쇠를 당기지 못할 거야.

희미했던 모든 장면이 끝내 선명해졌다.

평온했던 유년 시절, 컵 속에서 아직 멜라나이트라고 불리기 전이었던 브레오나가 연갈색 형체로 피어올랐다.


아버지

내 탓이야. 영양제가 계속 잘 팔릴 줄 알았는데 창고에 재고가 한가득 쌓였어. 유행이 끝나자마자 아무도 안 살 줄이야……

어머니

가격을 더 내릴 수도 없잖아. 그렇다고 계속 창고에 쌓아둘 수도 없고……

아버지

휴……

브레오나

나, 나 그거 좋아해! 매일 마실 수 있어!

어머니

브레오나?

아버지는 단순한 외팔이, 수염이 나고 키가 작은 근육질의 남성이 아니었다. 약간 다혈적이긴 했지만 갓난아기 시절 딸을 돌봐주지 못한 일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으며, 브레오나를 사랑했다.

어머니는 단순히 키가 크고 마른 주부가 아니라 집안의 기둥이었다. 주변의 모든 것들은 그녀의 목소리와 재빠른 손놀림 아래 정리되었다. 브레오나에게는 엄격하면서도 자상한 어머니였다.

브레오나는…… 아버지가 고향으로 돌아갈 때 모든 것을 궁금해하던 어린애에서, 어느덧 아버지보다 키가 조금 작은 소녀가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키가 더 이상 크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지만, 이런 나날이 영원히 지속되리라 믿었다.


아버지

이게 창고에 남아 있는 마지막 영양제네…… 브레오나, 네가 몰래 타 먹은 건 아니지? 칼로리를 과다하게 섭취하면 그만큼 열심히 운동해야 해.

아버지

그래도…… 브레오나, 우린 네가 있어서 계속 장사를 하고 가게를 되살릴 수 있었단다. 넌 아빠 엄마한테 축복 같은 존재야.

아버지

네가 무슨 일을 하든 언제나 널 사랑하고, 영원히 네 곁을 지켜주마.

아버지

잘 자, 브레오나. 초콜릿 맛 꿈꾸렴.


잘 자, 브레오나. 초콜릿 맛 꿈꾸렴.

말을 마친 아버지가 계단을 내려가고, 피비린내 나는 하룻밤이 지난 후, 모든 달콤함은 무의식적으로 기억 깊은 곳의 먼지 앉은 구석에 갇히고 말았다.

그녀가 잃어버린 것은 너무나 소중해서, 차라리 가져본 적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 나았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듀나

멜라나이트. 멜라나이트? 괜찮아? 갑자기…… 왜 울어?

멜라나이트

(울음을 참는 소리)

멜라나이트

아, 아니에요. 듀나 교관님, 그냥…… 잊고 있던 일이 떠올라서 그만……


월요일

허니베리

(훌쩍) 멜라나이트 씨, 정말 다행이에요……

멜라나이트

아, 허니베리 씨. 누가 이걸 전해달라 하더라고요

허니베리

저한테요?

멜라나이트가 등 뒤에서 작은 종이 상자를 꺼냈다.

멜라나이트

듀나 교관님이 지난번에 약속했던, 림 빌리턴의 대용량 6종 건과일이에요.

허니베리

네? 듀나 교관님의 간식 네트워크 일을 시작하신 거예요?

멜라나이트

잃어버린 맛, 잃어버린 기억……

멜라나이트

잃어버린 시간을, 더 많이 되찾고 싶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