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바꼭질
레토의 엄마는 병세가 안정된 후 탐험을 떠나려고 한다. 하지만 늘 털털하던 레토가 평소답지 않게 반대하자, 그녀는 딸에게 게임을 제안한다.
게임?
응.
엄마더러 탐험을 가지 말라며? 엄마도 갑자기 사라져서 우리 딸이 엉엉 우는 꼴은 못 보겠으니 게임을 하자는 거야.
울긴 누가 운다고 그래?
정말?
전에 함교에서 엄마랑 다시 만났을 때 네가 얼마나 눈물 콧물 쏙 빠지게 울었는지……
자, 잠깐! 엄마는 몸이 아직 덜 회복된 거지, 내가 못 나가게 한 것도 아니잖아. 근데 무슨 게임을 하자는 거야!
광석병은 완치가 불가능한데, 대체 언제 완전히 회복됐다고 하려고?
하지만……
우리 딸이 엄마를 챙기는 마음에 이러는 건 알아. 하지만 탐험가에게 최고의 특효약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풍경인걸.
……
가장 중요한 건, 엄마가 정말 떠나려고 마음먹었다면, 우리 딸이 날 막을 수 있었을까?
……알겠어. 하면 되잖아.
무슨 게임인데?
아주 간단해. 바로 숨바꼭질이야.
내일 하루 엄마가 함선 안에 숨어 있을게. 오후까지 엄마를 찾으면 이번엔 네 말대로 떠나지 않는 거야.
하지만 엄마를 못 찾으면 탐험을 못 가게 할 생각은 버리는 게 좋을 거야.
어때?
흐아, 함선 전체라니 너무 넓잖아!
대신 누구에게나 도움을 요청해도 돼. 그럼 공평하지?
음…… 알겠어!
그럼 엄마는 가서 짐을 정리하고 있을게. 일찍 자렴, 우리 딸.
흥, 벌써 기뻐하지 마. 어떻게든 엄마를 찾아낼 거니까.
이래야 우리 착한 딸이지. 그럼 기대할게.
……됐고, 일찍 잠이나 자자.
내일 엄마를 찾아야 하니까.
……
참, 자기 전에 애들한테 문자나 보내놓자.
“내일 일어나면 우리 엄마가 어디로 가는지 지켜봐 줘. 자세한 건 식당에서 얘기하자.”
오케이. 발송 완료.
……에휴, 엄마는 성격이 정말 유별나다니까. 엄마에 비하면 난 완전 선녀지.
빨리 자자.
엄마, 또 떠나려고?
응, 이모 집에서 말 잘 듣고 있으렴. 엄마가 기념품 사 올게.
엄마, 나도 같이 갈래.
음, 안 돼. 엄마가 가는 곳은 우리 딸한테 너무 위험하거든. 네가 조금 더 커서 강해지면, 그때 데려가 줄게.
정말?
당연하지. 약속할게.
못 봤는데.
음, 예상대로야.
무슨 뜻이야?!
나도 못 봤어.
넌 우리 엄마랑 나름 친했잖아?
난 그저 타티야나 씨랑 화장품 후기를 공유한 것뿐인걸.
안나는?
죄송해요.
라다…… 관두자, 아마 너도 못 봤겠지. 아무래도 엄마가 진심으로 하려는 모양이네.
응? 난 봤는데.
뭐?!
음, 아주머니는 아침 일찍 식당에서 식사하셨어.
그럼 나한테 알려줬어야지!
하지만 그때 레토 언니는 자고 있었잖아. 그리고 바로 알려달라고 얘기한 적도 없었고.
뭐, 어쩔 수 없지.
혹시 너한테 어디 간다고 얘기는 안 했고?
그때 굼은 요리하느라 제대로 못 듣긴 했는데, 도베르만 교관님 이름을 들은 것 같아.
도베르만 교관님? 그러고 보니 엄마가 도베르만 교관님한테 재활을 받긴 했지.
고마워. 혹시 다른 상황이 생기면 나한테 꼭 얘기해줘……
잠깐.
응?
아직 무슨 일인지 안 알려줬잖아.
알겠어. 얘기해줄게.
쳇, 난 또 무슨 일인가 했더니 게임 중이었던 거야?
이건 단순한 게임이 아니야! 내가 지면 엄마가 탐험을 떠난다니까?
그럼 좋잖아. 왜 못 가게 하는데?
왜냐고? 우리 엄마는 광석병 환자잖아.
하지만…… 지난번에 다 같이 밥을 먹을 땐, 아주머니가 병세가 안정됐다면서 신체검사 보고서를 보여주셨잖아.
안정되었다고 해도 벌써부터 이리저리 돌아다니면 안 되지!
안나, 왜 쳐다봐?
아니에요. 저희 중에서 가장 날뛰는 사람이 그런 말을 하니까 좀 신기해서요.
……
에휴, 어쨌든 저녁 식사 전에 우리 엄마를 보면 문자 좀 부탁해!
난 도베르만 교관님한테 가볼 테니까.
로잘린드 녀석, 엄마 병 얘기를 꺼내자마자 평소랑 완전히 달라지더라.
어쨌든 그게 마음속 유일한 응어리일 테니까.
엄마가 자기 때문에 광석병에 걸렸는데 신경 안 쓸 사람이 어딨겠어.
하지만……
우리가 타티야나 씨를 걱정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맞아. 우리가 뭉쳐도 아주머니의 상대가 되진 못할 거야.
그러니 우리는 로잘린드의 부탁만 들어주면 돼. 나머지는 그 두 사람에게 맡기자.
도베르만 교관!
좋은 아침, 레토.
혹시 오늘 우리 엄마 못 봤어?
타티야나 씨? 이곳에 들리긴 하셨지.
아직 여기 있어?
아니, 몇 마디 나누다 가버렸다. 탐험 준비를 계속하려는 것 같더군.
탐험 말고 다른 얘기는 없었어?
네가 올 걸 예상했는지 이걸 전해주라고 했다.
이건……?
클라이밍 로프다.
엄마가 자주 쓰는 물건인가?
그래, 평소 학업과 임무로 바쁠 테니 네가 잘 모르는 것도 당연하겠지.
타티야나 씨가 힘은 좀 부족해도 움직임은 아주 민첩하시더군. 저기 있는 클라이밍 암벽의 최고 기록 역시 타티야나 씨가 세운 거다.
……
나도 해봐도 될까?
그렇게 얘기할 줄 알았어. 따라오도록.
흠, 로프도 고정해 뒀으니 가서 해봐라.
엄마가 밧줄을 준 걸 보면 저 위에 뭔가를 숨겨둔 게 틀림없어.
가뿐하게 올라가서 대체 엄마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는 건지 직접 확인해 주지!
핫!
으아앗!
클라이밍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힘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 밟을 곳을 찾고 몸의 균형을 유지해야 하지.
……
다시!
잡았다! 다음은……
여기선 올라갈 수가 없잖아!
다른 부위의 힘을 끌어다 쓰는 법을 터득해야 해. 그건 밟으라고 있는 게 아니다.
힘을 끌어다 쓴다고?
아…… 알겠다!
다시 해 보자!
하, 그런 거였군!
헤헤, 이제 절반 넘게 왔어!
올라가 주겠어, 다음!
이런!
으앗!
위험했어. 그래도 이제 거의 다 왔어!
이쪽에서 올라가려면 이 부분을 밟고 올라서야 할 거야.
응? 저쪽이 더 빠를 것 같은데……
헤헤, 한번 해 볼까!
간다!
핫! 안전하게 착지!
어디 보자……
아, 역시.
클라이밍 암벽 꼭대기에는 책이 한 권 놓여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건 레토에게 낯익은 책이었다.
책을 들고 암벽 가장자리로 가자 훈련실 전경이 내려다보였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엄마가 이곳에 앉아서 본 건 훈련실이 아니라 머릿속에 각인된 풍경이었을 것이다.
그녀가 들고 있는 책은 엄마의 탐험기가 실린 여행 잡지였기 때문이었다.
엄마, 이게 뭐야?
여행 잡지야. 엄마가 쓴 글이 이 안에 실려 있단다.
글?
그래, 탐험한 내용을 글로 쓰는 게 엄마의 일이거든. 봐, 이게 엄마가 지난 탐험에서 찍어온 사진이야.
와, 정말 예쁜 곳이다.
그렇지? 이게 엄마가 돈을 버는 능력이야. 예전에는 엄마한테 제일 즐거운 일이었다면, 지금은 이 가정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해야 할 일이지.
엄마, 너무 무리하지 마.
걱정 마. 엄마한텐 이런 곳에 가는 게 우리 딸이랑 있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니까. 언젠간 우리 모녀가 함께 미지의 땅을 밟게 된다면 정말 좋겠네!
응, 나도 엄마랑 같이 갈래!
하하, 그럼 우리 꼬마 로잘린드도 쑥쑥 커야겠네!
레토, 뭘 좀 찾았나?
찾았다고 하기도 좀 그렇고, 아니라고 하기도 좀 그렇네……
이 잡지는……
엄마의 탐험기가 실린 잡지야.
……
레토, 타티야나 씨가 네 곁에 없는 걸 원망한 적이 있나?
엄마는…… 자주 떠나곤 했어. 나한텐 엄마가 없는 시간이 훨씬 길었지. 하지만 아빠가 없는 것과는 다른 느낌이었어.
엄마는 돌아올 때마다 내게 재밌는 이야기를 많이 들려줬거든.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름들과 본 적 없는 광경들…… 난 엄마가 단순히 내 곁을 지켜주는 것보다는 그 이야기가 훨씬 재밌다고 생각했어.
그랬군.
그래서 고민하는 건가? 넌 지금껏 타티야나 씨와 함께 만든 특별한 모녀 관계로 지내왔다.
하지만 광석병이 그 관계를 망치고 말았지.
응.
엄마가 뭘 원하는진 나도 알아. 그렇게 지내는 게 서로에게 가장 좋은 방법일 거야. 하지만……
체르노보그로 돌아와서 날 찾지 않았다면, 엄마도 병에 걸릴 일은 없었을 거야.
어쨌든, 난 나 자신조차 설득할 수 없었어.
그래서 엄마가 탐험하는 걸 말리려고 했지.
하지만 내가 엄마를 어떻게 막을 수 있겠어? 솔직히 막고 싶은 생각도 없어.
……
타티야나 씨도 널 이해할 거다.
그렇지 않았다면 너와 이런 게임도 하지 않으셨겠지. 안 그런가?
분명 널 위한 대답을 준비해 두셨을 거다.
……응.
로잘린드, 다른 애들이랑 조사해 봤는데 타티야나 씨가 눈속임을 좀 해놓은 것 같아.
하나하나 조사하는 방법으론 절대 찾을 수 없을 거야.
더 특별한 단서는 없을까?
특별한 단서……
내가 아는 엄마라면 이런 게임을 할 때 분명히 힌트를 남겨뒀을 거야.
정말?
전에 함교에서 엄마랑 다시 만났을 때, 네가 얼마나 눈물 콧물 쏙 빠지게 울었는지……
아!
알겠다!
뭔가 떠올랐어?
응, 함교로 와!
로잘린드, 우리 딸!
엄마?! 여, 여긴 어쩐 일이야?!
체르노보그에 문제가 생겼다길래 급히 돌아왔는데, 내가 도착했을 땐 이미 폐허가 된 후였어. 아무리 찾아도 네가 없어서 걱정했는데, 무사해서 다행이야.
하핫,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길 리가 없지! 근데 엄마는 어떻게 여길 찾아온 거야?
말하자면…… 아주 긴 이야기야. 어쨌든 로도스 아일랜드의 의사에게 네가 여기 있다는 소식을 들었어.
로도스 아일랜드가 왜…… 잠깐만. 엄마, 몸이…… 어쩌다 광석병에 걸린 거야!
앗, 아이고. 벼, 별일 아니야. 걱정 마. 엄마가 실수해서 그래……
……엄마, 날 찾다가 병에 걸린 거야?
아, 아니야. 탐험하다가 그만……
엄마…… 전부 나 때문이야……
아이고, 울지 마. 너만 무사하다면 이런 병쯤은 아무것도 아니야.
흑…… 으아아아아앙……!
어제 엄마가 로도스 아일랜드에 처음 왔을 때의 이야기를 했거든. 진작 눈치챘어야 했는데!
그때 여기서 엄마를 끌어안고 펑펑 울었다니까!
하지만 여기에도 사람 한 명 안 보이는데?
……
어? 레토, 로사. 함교에는 어쩐 일이야?
혹시 우리 엄마 못 봤어?
응? 타티야나 씨 말이야? 못 봤는데.
쳇.
그런데 여기에 타티야나 씨의 가방이 떨어져 있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 중이었어. 너희가 대신 가져갈래?
응?
어디 봐!
자, 여기. 가방이 제법 무겁더라.
이건……
신상 아웃도어 용품이랑 다국어 공부 비결 책이잖아?
쳇, 엄마한테 당했네. 내가 여길 찾아올 줄 알았나 봐.
응? 편지가 한 통 있어.
“착한 딸에게”. 와, 웃는 표정까지 그려놨네. 비웃는 것도 아니고.
타티야나 씨라면 이런 일을 하고도 남을 성격이긴 하지.
얼른 뜯어보자.
……
우리 딸. 언젠가 네 이모가 나한테 뭐라고 한 적이 있었어. 나더러 네 곁에 더 있어 줘야 한다고 했지.
하지만 내 성격이 이런 걸 어떡해. 사실 내가 좋은 엄마가 아니라는 건 알아. 그러려고 노력해 보기도 했지만 결국 뜻대로 되지 않았지.
그 문제를 정말 오랫동안 고민했단다. 하지만 그 고민을 해결해 준 건 다름 아닌 너였어.
긴장하며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항상 날 반겨주는 건, 기대와 기쁨으로 찬 네 웃는 얼굴이었지.
넌 내가 널 위해 준비한 모든 이야기를 재밌게 들어줬어.
난 네가 들려준 학교 이야기를 들으며 웃음을 터뜨리곤 했지.
넌 행동으로 내게 말해줬어. 이런 엄마도 괜찮다고, 이런 모녀 관계도 가능하다고 말이야.
넌 모르겠지만 그건 엄마에게 일종의 구원이나 마찬가지였어.
널 사랑하면서 내 일도 사랑할 수 있단 뜻이었으니까.
함께하는 시간이야 당연히 즐겁지만, 떨어져 있어도 네가 즐겁게 지낸다는 걸 알면 엄마는 기뻤어. 엄마가 즐겁게 지낸다는 걸 알면 너도 기뻐했지.
지금까지 우린 그렇게 지내왔잖아. 안 그래?
엄마가 광석병에 걸린 게 네 탓이라며 괴로워했다는 건 알아. 그래서 늘 엄마 대신 그 풍경들을 보러 간다고 했겠지.
하지만 엄마한테 가장 무서운 일은 널 잃는 거야. 네가 건강하고 행복하기만 하다면 이런 병쯤은 아무것도 아니야.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이제 우리 두 사람도 각자의 길을 찾게 된 것 같아.
엄마는 네가 예전처럼 스스로의 인생에 좀 더 신경 쓴다면 좋겠어.
'하장군'처럼 타인을 위해 이정표가 되어주는 거야.
그만큼 엄마도 스스로를 잘 챙길게.
어때?
우리 착한 딸이라면 지금쯤 편지를 찾았을 거야.
못 찾았다 해도 누군가 편지를 발견해서 그 애한테 전해줬겠지.
너무 엄마를 미워하지 말렴, 우리 딸.
우리 사이엔 늘 그렇게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았잖아, 안 그래?
네 딸 노릇도 쉽진 않겠어.
아, 왔어? 꼬마 아스베스토스.
꼬마라는 말은 빼라니까.
처음부터 딸한테 들킬 생각은 전혀 없었던 거지?
나한텐 딸이 소중하지만, 탐험도 중요하니까.
게다가 이 비행기도 로도스 아일랜드의 일부니까, 그 애를 속인 것도 아니잖아?
우리 집 가훈이…… 한 입으로 두말하지 않는 거야.
……그러시겠지. 난 레토가 불쌍하다고 생각할 뿐이야.
언젠간 꼬마 아스베스토스 앞에 갈림길이 나타난다면, 그때 자연히 깨닫게 될 거야.
쳇, 내 미래는 탐험하다 죽는 것뿐이거든.
신기하네. 처음엔 나도 그렇게 생각했거든.
근데 진짜 마젤란이 아니라 나랑 같이 갈 생각이야?
마젤란의 경로도 매력적이긴 하지만, 난 도전적인 환경이 더 좋거든.
그런 쪽으론 우리 취향이 참 비슷하지?
쳇, 당신을 내버려두고 확 그냥 출발할 걸 그랬어.
박사가 알면 슬퍼할 텐데?
그건 그 녀석 사정이고.
하아, 박사가 계속 부탁하지 않았다면 나도 혼자 떠날 생각이었어.
하지만 꼬마 아스베스토스가 나랑 다니는 게 싫다면 어쩔 수 없이 박사한테 가서 얘기해야겠네……
쳇, 아오! 알았어, 알겠다니까. 나랑 같이 움직이도록 해. 됐지?
진작 그랬어야지!
두 분, 이제 가면 될까요?
출발!
후…… 내 인생에서 두 번째로 시끌벅적한 탐험이 되겠네.
……
로잘린드!
이쪽에서도 못 찾았어. 잠깐…… 왜 그래?
……아무것도 아냐.
아무것도 아니라니? 하지만……
내가 졌어. 엄마는 진짜 치사하다니까.
로잘린드 언니, 여기 휴지.
안 울었거든?
그날 이후로 다시는 울지 않겠다고 맹세했어.
웃으면서 짜증 나는 놈들을 전부 부숴버릴 거야.
쳇, 센 척하기는.
센 척하는 게 뭐 어때서?
후아. 가자, 가자. 가서 저녁 먹어야지!
오늘 저녁은 내가 쏠게. 엄마 몫까지 전부 먹어 치우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