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우리
살카즈인 부모님이 빅토리아의 새 보금자리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알고 싶었던 라바는 몰래 주변 이웃들을 관찰했다. 그러다 돌연 자신을 '악마'라고 부르는 아이들과 마주치게 되었다.
등장 오퍼레이터: 라바, 히비스커스, 히비스커스 더 퓨리파이어
엄마, 아빠:
이 편지를 받을 때쯤이면, 아마 나랑 언니는 이미 엄마, 아빠를 만나러 가는 중일 거야. 막으려고 다시 편지 보낼 필요 없어, 어차피 보내봤자 우리는 못 받거든.
엄마, 아빠는 인정하지 않겠지만, 사실 난 엄마, 아빠가 급하게 또 이사 가려는 이유가 뭔지 알고 있어.
엄마, 아빠는 나한테 전쟁도 이미 끝난 지 오래됐고, 이사 가는 마을도 제법 외딴곳이라 살카즈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포용력이 높을 거라고 했지만. 근데 빅토리아에 정말 그런 곳이 아직 남아 있을까?
게다가 런디니움에서 전쟁이 시작된 이후로, 엄마, 아빠는 좋은 소식만 전하고 나쁜 소식은 말하지 않았잖아. 그러니까 지금 엄마, 아빠가 정말로 잘 지내고 있는지, 혹시라도 누구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건 아닌지, 우리가 직접 확인해야겠어.
어쨌든, 나머지 이야기는 만나서 하자. 그때까지 꼭 몸조심해.
라바.
라바, 고춧가루 찾았어? 좀만 더 늦게 고기를 재웠다가는, 저녁 시간에 맞추지 못할 거야……
재촉하지 마, 어차피 엄마, 아빠가 집에 돌아오기 전까지만 다 만들면 되는 거잖아. 이 사람들 상자 속에 대체 무슨 물건이 이리도 많은 거야……
하프? 엄마, 아빠가 음악 쪽에 조예가 있는 줄은 몰랐는데.
그건 엄마, 아빠의 가장 친한 친구인 바로크 씨 물건이야. 전쟁이 시작된 이후로는 더 이상 연락이 닿지 않나 봐.
……윽, 왜 우리 어렸을 때 숙제 노트가 아직도 있는 거야! 이참에 그냥 버릴까……
그건 안 돼. 우리 둘이 늘 집에 없으니까, 엄마가 자주 꺼내 본단 말이야.
여기에 뭐 볼 게 있다고, 우리가 안 돌아오는 것도 아니잖아…… 그리고 이 산더미 같은 사진첩들, 너무! 무거워!
이건…… 다 엄마, 아빠가 런디니움에서 일할 때 찍은 사진들인가? 전부 모르는 사람들뿐이잖아…… 옷차림을 보니 아마 엄마, 아빠의 동료들인가. 사진 하나하나가 정말 잘 보관되어 있어.
아래는 전부 편지들이야. 진짜, 이사를 그렇게나 많이 했으면서, 이런 것들은 진작 버렸어야 하는 건데…… 정말 어지럽다.
어쨌든 여기 있는 건 엄마, 아빠가 반평생 넘게 사용해 온 살림살이잖아…… 잠깐만에 다 정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란 말이야. 누가 그렇게 쉽게 자기가 살아온 인생을 싹 정리할 수 있겠어?
게다가 엄마, 아빠는 또 낮에 일까지 하러 가시잖아……
여기도 없고, 저기에도 없어…… 혹시 선반 위에 있나? 어……
…… 히비스, 이거 봐.
모집 공고…… 타자 치는 업무, 정원사, 보모…… 모두 다 엑스 표시가 되어 있어.
엄마, 아빠는 원래 엔지니어였는데……
이렇게까지 해서 빅토리아에서 살아야만 하나……
여기를 떠난다 해도, 갈 데가 또 없잖아.
라바, 신문은 제자리에 돌려놔. 그리고 엄마, 아빠 앞에서 이 이야기는 하지 마. 우리는…… 그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돼.
……고춧가루를 도저히 못 찾겠어, 이웃한테 빌리러 가볼게.
잠깐만…… 잔뜩 화가 난 채로 뛰쳐나가다니…… 이웃과는 절대 다투지 말라고 미처 당부도 못 했는데……
안녕하세요, 저는 저기 동쪽 맨 끝 동에 사는 사람인데요. 실례지만, 조금 빌리고 싶은 게……
어…… 미안한데, 없어요. 미안해요.
(내 말을 끝까지 들으려고 하지도 않네……)
안녕하세요, 고춧가루를 좀 빌리고 싶은데요.
상대방은 아예 문을 닫아버렸다.
(포용…… 이라고?)
안녕하세요, 저는……
알아요.
어……
호기심 많은 아이가 어머니 뒤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곤, 방문한 살카즈 소녀를 엿보고 있었다.
일사, 방으로 돌아가렴.
실은 저희가 여기로 이사 온 지 얼마 안 돼서……
알아요. 이 근처 이웃집 문을 다 두드리던데, 무슨 일이에요?
언니가 음식을 하는 데 고춧가루를 못 찾아서요, 괜찮으면 좀 빌릴 수 있을까요?
……그런 거였군요. 문 앞에서 잠시 기다리세요.
문이 닫혔다가 살며시 다시 열렸다. 호기심에 찬 작은 얼굴이 튀어나와선, 라바를 바라봤다…… 정확히 말하자면 라바 머리 위의 뿔을.
아이는 약간 긴장한 듯 침을 삼키고, 오랫동안 망설인 끝에 라바에게 손을 내밀었다.
라바는 이미 오는 길에 이러한 시선에 익숙해져서, 그냥 가만히 서 있었다. 이윽고 그 여자 아이의 작은 손가락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더니, 라바의 옷자락에 닿았다.
와…… 진짜 옷이다, 주술로 바꾼 게 아니네요.
하아?
일사! 이리 오렴!
그 어머니는 손에 있던 물건을 내던지고 달려와 자신의 아이를 뒤로 감쌌다. 그녀의 얼굴에 나타난 표정은 더 이상 침착해 보이지 않았다.
우리 집에는 그쪽이 원하는 게 없네요, 이만 가세요.
……
바스락바스락, 일사는 다락방 창문을 통해 집 밖으로 기어 나와, 잔뜩 신이 나선 친구들에게 암호를 보냈다. 잠시 후, 마을 사람들은 잇따라 발걸음을 멈추고, 멀리서 그 기이한 광경을 바라봤다……
환영받지 못하는 살카즈 한 명이 냉랭한 표정으로 마을을 거닐었고, 그 뒤 멀지 않은 곳에서 한 무리의 아이들이 그녀를 살금살금 따라가고 있었다.
아이들은 이따금 덤불 뒤에 숨었다가, 또 때로는 몸을 굴러 나무 뒤로 잽싸게 숨으며, 서로 눈을 깜빡이며 암호를 주고받고, 때때로 상상 속의 무전기를 손에 대고 말했다.
보고, 악마는 이미 톰네 집 짚 더미 앞에 도착했고, 곧 톰의 집 문 앞에 도착할 예정이다. 이상!
오케이, 수성포 준비 완료!
얘들아, 저 사람에게 새총을 겨누지 말렴. 그러면 위험하단다……
어른들이 끼어들자, 아이들은 파울비스트처럼 소리를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졌다가, 이내 곧 다시 모여들었다.
쯧, 이 녀석들……
큰일이야, 악마가 우리를 발견했어! 빨리 철수해!
악마……?
(짜증 나네, 빨리 겁줘서 쫓아내야겠어.)
빨리 봐봐, 악마가 지나간 길에 반짝이는 발자국이 있어. 저게 대체 뭐지?
가만히 있어, 내가 정찰해 볼게…… 우와아, 불이야! 악마가 지나간 길에 불이 붙었어!
어디 봐봐…… 진짜다! 땅에 있는 발자국이 전부 다 불타고 있어, 완전 대단해!
앗, 멀어져 가잖아, 빨리 쫓아가자!
(뭐야, 이래도 안 무서워?)
라바는 아이들의 손에 있는 새총을 잠시 바라봤다.
칫, 됐어. 괜히 다치게 하면 귀찮으니까. 좀 더 무서운 걸 보여줘야겠네.
에취……
악마가 재채기를 하더니 불을 뿜어냈어! 우와, 악마한테서 불꽃 날개가 나왔어!
와……! 너무……
너무 멋지다!
…… 그래도 꽤 보는 눈이 있네, 꼬마녀석들.
(끊임없이 흐느낀다)
어……
어쩔 줄 몰라 하던 라바는 주머니를 더듬어 손에 잡히는 사탕을 꺼내 아이를 달래주려 했지만, 곧 히비스커스가 아이들은 반드시 공복으로 채혈을 받아야 한다고 당부한 것이 생각났다.
얄미운 언니 같으니. 도와달라고 불러놓고선…… 동족이 옆에 있는 걸 보면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아이들도 그렇게 무서워하지 않을 거라는 둥 말했는데, 아이들은 아까부터 계속 울기만 했다!
병실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울음소리에 그녀는 어찌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매일, 매일, 전쟁이 계속되는 한, 이런 울음소리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음…… 너희들, 혹시 불꽃놀이 보고 싶어?
(흐느낀다)
그럼 그냥 보고 싶은 걸로 칠 테니까, 잘 봐. 기회는 한 번뿐이야.
크흠.
불꽃이여, 이 대지를 밝혀라!
한 송이 불꽃으로 만들어진 폭죽이 천장으로 치솟더니, 병실 위에서 터졌다. 라바는 아이들의 표정을 살며시 훔쳐봤다. 아이들은 모두 불꽃에 매료되어 잠시나마 울음을 잊은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불꽃은 소방 장치를 작동시켜서, 모두를 곤란할 정도로 젖게 했다. 어느새 병실의 울음소리가 잠시나마 웃음소리로 바뀌었다.
역시 아이들은 어디에서나 똑같았다. 그런 얕은 수로도 속일 수 있으니까 말이다.
정말 어디에서나…… 똑같을까?
라바, 돌아왔구나. 주변 이웃들은 어때?
이웃들? 난 그냥 고춧가루 빌리러 간 거였어……
한 바퀴 둘러보고 나니 안심이 됐어? 누구랑 싸운 건 아니지?
난 그냥 고춧가루를 빌리러 간 것뿐이라니까.
라바? 뭘 찾고 있어? 문밖에 있는 꼬마들은 새로 사귄 친구들이야? 넌 여전히 아이들이랑 잘 놀아주나 보구나……
어라, 짐 한 보따리를 들고…… 또 나가 버렸네?
보고, 악마가 집에서 나왔다! 현재 작은 화원에 도착했음, 이상!
와! 불이다! 내 말은 악, 악마가 불꽃을 조종해서…… 나무줄기를 태웠다는 말이야! 보고, 악마가 대량의 나뭇가지로 수상하고 거대한 무언가를 짓고 있다!
그 거대한 게 어떤 건지, 정확히 좀 말해봐!
잘 모르겠어! 보고, 악마가 지금 하얀 침대 시트를 털어서 펼치더니…… 아니, 하얀 주술 재료야. 그걸 나뭇가지 위에 펼치고 있음, 정보 요원 분석 요청 바람!
정보 요원 도착! 음, 내가 보기엔, 이건 분명…… 뭔가 위험한 제단인 거 같아.
맞아, 나뭇가지로 저 장막을 지탱하잖아. 봐봐, 악마가 쓰러진 나무줄기를 밀고 왔어. 저건 아마도 제물을 놓는 제단 같아.
(숨을 들이쉬며) 마을이 위험해!
(몸을 움츠린다)
겁, 겁쟁이! 우리가 잘 지켜보고, 우리 마을을 지켜야지!
잠깐! 악마가 새로운 물건을 꺼냈어! 무슨 기계 장치 같은데…… 프로젝터? 아니, 분명 무슨 주술을 시전하기 위한 장치일 거야!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기기가 켜지면서 하얀 '주술 재료' 위에 고층 빌딩보다도 더 거대한, 포효하는 거대 괴수가 나타났다.
꺅……!
쾅! 파악!
그 '주술 재료'에 비친 화면 속에서, 변이한 거대 괴수는 순식간에 고층 빌딩을 짓밟아 가루로 만들었다. 절망에 빠진 사람들은 울부짖고 도망치며, 영웅의 등장을 기대하고 있었다.
라바, 로도스 아일랜드의 정예 오퍼레이터, 아츠 마스터이자 재해 전문가. 지금 이 순간, 도시의 안위가 그녀의 손에 달려있었다.
빨리 저거 봐봐! 영웅이 왔어!
어? 거대 괴수를 물리치는 영웅이 왠지 저 악마…… 아니, 저 사람이랑…… 완전 똑같지 않아?
라바는 아이들이 말한 '제단' 위에 당당하게 앉아, 편안하게 영화를 즐기는 척했다……
그녀가 아직 개봉하지 않은 영화를 가져온 건, 원래는 부모님을 즐겁게 해주고 싶어서였다.
억지로 집어넣은 과장된 스토리가 우습다고 생각했었지만, 지금 보니 전체적인 효과는 꽤 괜찮은 것 같았다.
아이들은 저마다 그녀를 몰래 쳐다보며, 그녀와 영화 속 영웅의 생김새를 비교했다.
아이들은 비록 염국 말을 알아듣진 못했지만, 영화 속 특수 효과에 매료되어 자신도 모르게 좀 더, 조금씩 가까이 다가가 나중엔 거의 라바의 곁에 붙은 꼴이 됐다.
(흥, 제법 보는 눈이 있네. 그렇다면 슬슬 요 녀석들에게 진짜를 좀 보여줘야겠는걸……)
큰일이야, 거대 괴수가 집을 짓밟으려 해. 영웅님, 빨리 도망쳐!
영웅은 도망가지 않아. 봐, 영웅이 이제 불꽃을 발사하려 해!
저기…… 너희 둘, 그, 그 사람은?
꺄아악, 거대 괴수가 쫓아오고 있어!
저기! 다들! 그, 그 사람이 사라졌다구! 그, 우리 이웃 말이야……
앗! 그 사람, 방금까지 여기 앉아 있었는데, 어디로 간 거지?
라바가 원래 앉아 있던 자리는 어느새 텅 비어 있었다. 갑자기, 한줄기 불꽃이 그들의 뒤에서 엄습해, 그 침대 시트로 만든 스크린을 향해 발사되었고, 아이들은 비명을 질렀다.
저기, 이…… 이거 진짜 제단 아니야? 우린 깜빡 속아서 올라온 거라고!
빨리 도망가…… 빨리…… 앗!
하지만 아이들은 곧 걸음을 멈췄고, 눈앞의 광경에 놀란 나머지 말을 잊었다.
그들의 눈앞에는 전투복으로 갈아입은 한 늠름한 여성이 서 있었다. 그녀는 멋지면서도 시크하게 손을 휘둘렀고, 불꽃은 '주술 재료', 즉 침대 시트로 만든 스크린을 덮쳤다.
스크린 위의 거대 괴수가 고통스럽게 울부짖으며, 잿더미로 변했다. 불꽃은 그러고 나서야 꺼졌지만, 주변의 꽃과 풀들은 조금도 다치지 않았다.
와아!
대단해! 영웅님, 정말로 거대 괴수를 물리친 적이 있어?
방금 기술, 가르쳐 주면 안 돼?
전투복이 정말 예쁘고, 음, 멋져요!
저기 영웅님, 내가 먼저 물어봤으니까, 나한테 먼저 대답해 줘…… 앗! …… 엄마?
영화가 불꽃 속에서 막을 내리자, 아이들은 그제야 자신들의 부모가 이미 멀지 않은 곳에서 긴장한 채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부모들은 다가와, 이렇다 저렇다 말하지 않고 아이들을 집으로 끌고 갔다.
일사, 몰래 멋대로 뛰쳐나오지 말라고 했지. 오늘 밤엔 방에서 잘 반성하도록 해.
그만 좀 잡아당겨, 엄마. 나 방금, 정말 엄청난 걸 봤는데……
그만, 말하지 마.
……
참 빨리도 도망가네. 내가 저 사람들보다 송곳니나 날개 한 쌍이 더 달린 것도 아닌데……
됐어, 다 가고 나니 이제야 좀 조용해졌네. 귀찮게 꼬마들 달래줄 필요도 없고 뭐, 시끄러워서 짜증 났었는데 말이지.
이건……?
……
일사가 원래 앉아 있던 자리에, 고춧가루 한 병이 조용히 놓여 있었다. 라바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고개를 들어 감사의 인사를 하려 했지만, 마을 사람들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물건을 챙겨 집으로 걸어갔다. 그 발걸음이 왠지 조금 가벼워진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