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합 불량
공장의 생산 라인을 최적화한 피스트는 ‘최적화’가 좋기만 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할머니? 오늘 밤은 늦게 온다고 하지 않았어?
……
윽, 조용히 있지 말고 무슨 말이라도 해봐. 내가 뭐 잘못이라도 한 것 같잖아……
에이, 스탠이었구나.
미, 미안. 내가, 그, 다른 사람인 척 겁주려고 한 건 아니었어.
알아. 미안해할 거 없어, 긴장 풀어.
응.
근데, 네가 우리 집에 온 건 이번이 처음이지?
앉아, 먹을 것 좀 가져다줄게. 귤맛 탄산수를 좋아했었지, 직접 꺼내 먹어도 돼. 그리고 간식은……
내가 먹을 거 좀 가지고 왔어.
잘 됐네. 보자…… 린수 튀김이랑 감자 파이네? 간식이라기보단 식사 같은걸?
……내가 직접 만들었어.
그럼 먹어봐야지.
……
스탠, 탄산수 가져올 때 내 것도 하나 챙겨줘!
거기 말고, 주방 구석에 청소 도구를 놔둔 선반 아래에 있어!
후, 후…… 이 맛은……
아빤 내가 만든 음식을 먹느니 차라리 용접봉을 먹겠다던데.
……확실히 조금…… 강렬하긴 하네.
피스트, 부탁이야. 모든 공장 사람들이 이걸 매일 먹지 않게끔 좀 도와줘.
……?
너도 알다시피, 난 다른 특기가 없어. 그냥 나중에 아빠 뒤를 이으려고 아빠를 따라 용접공 기술을 배운 것뿐이야. 예전에 아빠가 공장장한테도 말해 놨던 거야
잠깐만, 설마……
그런데 지난달에 공장에서 효율 개선을 위해 생산 라인을 최적화하는 바람에, 아빠 업무가 식당으로 옮겨졌어……
쯧!
……그래서 이젠 용접 말고 식당에 가서 아빠 일을 이어받아야 하는데, 보름 동안 집에서 배웠지만 먹을만한 음식을 만들긴커녕 식당의 허드렛일도 하나 못해.
피스트, 아빠는 곧 퇴직하시는데, 그러고 나면 나는 식당에서 쫓겨나고 말 거야, 결국엔 공장에서 잘리겠지. 그렇게 되긴 싫어.
……그 최적화 방안은 내가 제안한 거야.
네가?
미안해.
널 탓하는 건 아니야. 피스트, 넌 어릴 때부터 공장 전체를 이끌고 나아가겠다고 했었잖아. 나완 달리 말한 걸 지켰을 뿐인걸……
근데 네가 제안한 거라면 혹시 방안을 바꿔서 아빠를 일선으로 다시 보낼 수 있지 않을까?
글쎄, 공장장이 되돌리는 걸 그리 원할 것 같지는 않아서…… 하지만 혹시 모르니까 우리가 한번 공장장을 찾아가 보자.
만약 도저히 방법이 없다고 하면, 용접공이 필요한 다른 생산 라인이 있는지 물어보면 되잖아.
그, 그럼 부탁할게?
나한테 맡겨.
피스트, 공장장이 뭐라고 했어?
안색이 안 좋아 보이는데, 설마…… 공장장이…… 화를 낸 거야?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 다른 사람이 죽든 말든 자기랑 아무 상관없다는 듯한 공장장의 모습에 화가 나서 말이지. 네가 만든 린수 튀김을 그 입에 넣어주고 싶었다고.
공장장은 바꾸지 않겠다고 딱 잘라 말하더라. 그리고 공장 다른 생산 라인에도 빈자리가 없다고 하던데, 애당초 그런 게 있었으면 네 아빠를 식당으로 보내지 않았을 거라면서.
큰일이네. 아빠가 요 며칠 하이버리 구를 돌아다녀 봤는데, 최근에 큰 공장이 문을 닫아서 숙련공들조차 일을 찾기 어렵다고 했거든. 나처럼 경험이 없는 사람이야 뭐…… 애초에 원하는 공장도 없을 테고.
공장 말고 다른 일도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 조그맣게 장사나 잡화점 같은 걸 차리는 건 어때?
아니면 철도 교통 쪽은? 그쪽은 내가 잘 모르긴 하지만, 직원을 모집하고 있지 않을까?
아니면, 음, 숙소 청소도 괜찮고. 몸이 힘들긴 해도 최소한 돈은 벌 수 있으니까……
그……
어쨌든, 내가 벌린 일이니까 끝까지 책임질게. 스탠, 우선 우리 집에 가서 깔끔하게 차려입고, 점심에 바로 일을 찾으러 나가보자.
응.
……전부 실패로군.
일단 오늘 갔다 온 곳은 다 기록해둘게. 내일 우리 다시 다른 구에 가서 부딪혀보자.
젠장, 이 펜은 왜 잉크가 안 나오는 거야…… 빌어먹을!
피스트, 이제 그만하자.
네 탓이 아니야. 기술은 항상 발전해야 하니까, 네가 아니었어도 공장장은 언젠가 '최적화'란 명목으로 사람들을 내보냈을 거야.
너처럼 재능 있는 사람이라면, 기술이 어떻게 변하든 간에 모두가 널 필요로 하겠지만, 난…… 너와는 다르니까.
난 경력도 없고, 딱히 관련된 공부를 한 것도 아닌데다가 집에 돈도 없어. 너처럼 외향적으로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것도 난 못해.
스탠, 그렇게 말하지 마. 오늘은 그저 운이 별로 없었을 뿐이야.
……하지만 우린 하이버리 구에서부터 오슈테리그 구까지 다 돌아봤잖아……
아니 두 분 왜 그러세요, 왜 이리 수심에 가득 찬 얼굴이십니까? 생계가 걱정되시나요?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으시나요? 아니면 방금 하이버리 구 공장에서 해고당하신 건가요?
당신은……
전 지금 직원을 모집 중이거든요. 어때요, 관심 있으세요?
마침 잘 됐네요! 어떤 직원을 모집 중이신가요?
그건 제가 그쪽 분들에게 먼저 물어봐야 할 말이군요. 어떤 일을 하고 계시죠?
용접공입니다.
좋아요, 저희가 딱 용접공이 부족했거든요. 갑시다, 저랑 같이 공장에 가보시겠어요?
어느 구에 있는 공장이지? 낮에 하이버리 구의 공장을 다 돌아다녔는데, 용접공이 부족한 곳은 없었어. 새로 생긴 공장인가?
음, 맞습니다.
혹시 마그나 자치구에서 온 거야? 내일 마침 그쪽에 가보려고 했었거든.
맞아요, 맞아요. 그러니까……
하, 고급 주택단지에 생긴 공장이라니, 진짜 웃기고 앉아 있네. 스탠, 가자.
하이버리 구의 습하고 뜨거운 밤바람이 가로등조차 비추지 않는 구석으로부터 불어오자, 두 사람은 동시에 몸서리쳤다.
집에 가는 게 좋겠어.
그리곤?
모르겠어, 아빠 퇴직금으로는 아빠 한 사람 먹고사는 것도 빠듯할 텐데…… 나까지 키우려고 하시거든. 내가 보기에 그건 그냥 나랑 아빠 둘 다 굶어 죽겠다는 거랑 별반 다를 바 없어……
미안, 피스트. 너한테 하소연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넌 이미 차고 넘칠 만큼 해줬어.
난 그냥 얌전히 공장으로 돌아가서, 때가 되면 식당에 가서 일해볼게. 적어도 이틀은 버틸 수 있겠지.
공장에 돌아가서…… 식당에 간다……
어쩌면 잘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나도 그렇게 생각해……
아니, 스탠, 단념하라는 게 아니야. 내가 말했잖아, 이 일은 내가 끝까지 책임지겠다고.
네가 요리를 못 하니까, 내가 대신 갈게.
그럼 네 일은?
네가 내 자리를 대신해서 생산 라인을 최적화해봐.
피스트?!
적어도 너한테는 식당보다 좋을 거야.
그, 그럴까? 난 너랑은 다르게 재능이 없는데……
네가 재능이 없는지 해보지도 않고선 어떻게 알아?
할머니랑 공장장한테는 내가 가서 잘 말해놓을 테니까, 한번 해봐. 알겠지?
일을 바꾸겠다고? 도대체 너희가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군. 피스트, 할머니는 뭐라고 하니? 네가 이 난리 치는 걸 알고 계시긴 해?
아니었으면 찾아오지도 않았지.
지금 이게 네놈의 독단적인 행동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겠어…… 됐다.
너희 둘 다 명심해. 일을 바꾸는 건 괜찮은데 생산 라인에 악영향을 끼친다거나, 식당에서 사고를 일으키면 안 된다. 만약 사고가 나면, 너희 둘에게 끝까지 책임을 물을 거야.
해, 해고되는 건가요?
해고만 되면 다행이지. 진짜 사고 나면, 손해 배상을 해야 될 거야!
피스트? 정말 너야?
당연히 나지.
공장장님이 어제 나한테 알려줬을 때, 난 그저 너희 어린 녀석들이 떼쓴다고 생각했거든. 다음날이면 끝날 줄 알았는데……
뭐 여하튼 이렇게 온 이상, 나도 널 봐주기만 할 순 없어. 해야 할 일은 꼭 해야 하고 특히 사고 쳐선 안 돼, 알겠지?
알겠어.
그럼 먼저 저기 광주리에 있는 감자 껍질부터 깎도록 해.
제법 깔끔하게 깎았네…… 잠깐만, 왜 이렇게 칼질을 한 번만 한 조그만 감자가 많은 거야? 너 또 무슨 '발명' 같은 걸 한 거야?
아하하……
네가 감자를 어떻게 깎든 상관하지 않을게. 하지만 본인이 어지른 곳은 깔끔하게 정리하도록 해.
응, 걱정 마.
기계는 좀 더 테스트가 필요하겠군……
피스트. 나, 나 이쪽 상황이 도저히 해결이 안 돼가지고, 물어볼 게 있어.
괜찮아, 말해봐.
B7호 컨베이어 벨트가…… 하위 컨베이어 벨트보다 반 박자 느린 것 같아……
반 박자 느리다고? 뭔가가 걸린 거 아니야? 기계 작동 전에 제대로 점검했어?
나, 나는 매뉴얼대로 한번 했는데……
구동 장치는?
어디 보자…… 아, 확실히……
문제의 원인만 찾아내면 쉬워. 무슨 일 있으면 또 말해.
피스트, 서둘러. 너 통신하는 거 다 들었어!
금방, 금방이면 돼!
칼날 위치를 바꿔서……
깎였다! 갖다 줄게……
잠시만, 내가 먼저 검사하고 나서……
피스트, 대단하네. 감자 크기까지 표준화해서 주고 말이야. 집에서도 이렇게 요리하니?
집엔 나랑 할머니만 있지만, 식당은 공장 전체 사람들의 식사를 관리해야 하잖아. 이렇게 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생각했어.
그리고 이거 봐봐, 어젯밤에 내가 감자 자르는 도구를 만들었거든. 감자 크기가 같기만 하면……
씁! 기계가 과하게 깎아낸 부분은 어떡할 건데? 그냥 갖다버리려고?
첫날이니까 봐줄게. 기계가 과하게 깎아낸 부분만큼 네가 몇 개 더 깎아서 채워놔. 제대로 감자 칼을 사용해서!
음, 이 몇 개는 괜찮네.
난 너한테 린수 튀기는 거 알려주고 나서 곧바로 감자 파이 하러 가야 되니까, 빨리 움직여…… 그건 또 뭐 하는 거야? 그 물건으로 린수의 뼈를 발라내겠다고?
뼈를 발라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필요 없어, 식당의 린수는 모두 냉동 린수라서 네가 생각한 것만큼 처리가 번거롭지 않거든.
린수에 반죽 입히는 거나 알려줄게. 딱 한 번뿐이니까, 잘 기억해야 돼.
피스트……
통신기 내려놔. 더 꾸물거렸다간, 공장 사람들 모두가 굶어야 하니까.
응……
방금 내가 이렇게 반죽했어? 밀가루 반, 베이킹파우더 반이라고 했잖아…… 그래, 이건 괜찮네.
잠깐잠깐! 파울비스트 알은 노른자까지 넣으면 안 돼! 이러면 거품을 어떻게 내겠어!
……됐다, 일단 아쉬운 대로 튀김옷을 입혀봐. 기름을 끓이는 건 할 수 있겠…… 잠깐, 물기도 다 안 닦은 채로 기름 솥에 넣지 마! 대체 집에서 뭘 요리해 먹는 거야?
스튜 같은 거.
하아, 됐다. 생각해 보니까 이렇게 많은 기름으로 요리하는 집이 어딨겠냐.
아이고, 드디어 해냈군. 어디 맛 좀 보자……
우웩! 어떻게 해야 냉동 린수를 이렇게 비리게 튀길 수 있는 거지?
시간 좀 보자…… 진짜 *빅토리아 욕설*이네.
일일이 다시 한번 알려줄 시간이 없어. 순서 적어줄 테니까 하나씩 따라 하도록 해. 알겠지, 피스트?
미안……
스탠, 그쪽은 어때. 방금 무슨 일이었어?
생산 라인이 멈춘 것 같아……
멈췄다고?!
기다려, 내가 바로 갈게!
자진해서 식당에 간 녀석은 공장 전체 사람들이 한 끼 식사할 수 있는 양의 린수 중에 4분의 1은 태워버렸고, 다른 4분의 1은 비려서 죽을 지경이고, 남은 절반은 아예 솥에 넣는 걸 잊어버려서 주방에 악취만 진동하게 만들었군.
다른 한 녀석은 더 대단해. 기계 작동 전에 제대로 검사도 안 하고, 문제가 생겼는데 고칠 줄도 모르고, 공장 전체에 반나절 강제휴가를 줘버렸네.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것, 분명 내가 예전에 너희 둘에게 말했었지?
스탠, 내일부터 나오지 않아도 되니 알아서 살길 찾도록 해라.
공장장, 이건 내가 제안했던 거야……
너라고 괜찮을 거라 생각하지 마, 피스트. 쟤가 못한 만큼 네가 책임져야 하니까. 생산 라인으로 복귀하도록 해. 오늘 공장에 입힌 손해는 네 급여에서 뺄 거야.
이번 1년 동안, 급여는 생각하지도 말라고.
어떻게 이러실 수 있어요?!
뭐, 아직 말대답할 기운이 남았나 보지?
생산 라인은 제가 멈춘 거니, 제가 배상할게요! 피스트는 그 린수들만 물어내면 되는 거 아닌가요?
네가 배상하겠다고? 뭘로? 네 아버지 퇴직금으로?
공장장.
오, 캐서린, 왔군. 빨리 집으로 당신 손자 데려가서 교육 좀 똑바로 시켜.
필요 없어. 피스트는 똑똑해서, 꾸짖어야 할 때를 굳이 다른 사람이 알려줄 필요는 없으니까. 난 다른 이야기를 하러 온 거야.
흥, 지금 저 두 사람이 벌인 일이 공장 안에서 가장 큰일 같은데. 다른 게 뭐가 또 있을까나?
전에 당신과 이야기했을 때는, 이런 태도가 아니었는데.
할머니?
크흠!
피스트, 스탠을 데리고 먼저 집에 돌아가 있어. 공장장하고 할 이야기가 많으니.
……
……
할머니……
다행히 공장장이 뜻을 굽혔어. 피스트는 생산 라인으로, 스탠은 식당으로 돌아가도록 해. 다만 두 사람 모두 각각 한 달 치 월급이 깎일 거야.
내가 분명 전에 공장장에게 말해놨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태도를 바꾸고 너희를 심하게 대하더군.
그렇다면 우리가 못 본 척 해줬던 그의 비리들을 어쩔 수 없이 꺼내서 얘기할 수밖에 없지.
할머니, 미안해……
나에겐 사과할 필요 없어. 내일 공장 사람들에게 사과하러 가.
그리고 이 린수 튀김은, 너희에게 주라고 식당 사람들이 포장해준 거야.
자기가 만든 린수 튀김은 자기가 먹어. 린수 상태가 어떻든, 적어도 솥에 넣을 때엔 상한 게 아니었을 텐데 이렇게 튀겨내다니.
난 이만 가볼 테니, 너희 둘은…… 앞으로 어떻게 할지 잘 한번 생각해 보도록 해.
하아.
스탠, 배고파?
……조금.
이건 식은 후에도 정말 엄청 비리네…… 일단 다른 곳으로 가서 이야기 좀 하자……
승강기로 높은 곳에 올라가서, 별이나 볼까.
스읍……하아…… 오랜만에 높은 곳에 온 거 같아.
응, 여기가 작업장보다 훨씬 편하다.
나는 그렇진 않아.
네가 그렇게 말할 줄 알고 있었어.
어떻게?
오늘 오전에 여기저기 검사하면서, 네가 남긴 메모를 많이 봤거든.
“여긴 두 바퀴를 비틀어 돌려야 하고, 그 이상 돌리면 안 됨”, “샘에게, 청소할 때 사각지대를 신경 써서 해야 한다” 같은 메모 말이야, 필체도 시원하고, 어떤 건 뒷면에 웃는 얼굴 그림도 있던데.
나였다면 전체 생산 라인을 완전히 파악한다 하더라도, 그런 곳에다가 웃는 얼굴을 그리진 않았을 거야. 웃음이 나오지 않거든.
나도 식당에서 웃지 못했어.
……내가 먼저 린수 튀김을 먹어볼게.
안 상했어?
아니, 그냥 비릴 뿐이야.
나도 먹어볼게.
두 사람은 각자 린수 튀김을 한 조각씩 들고 몇 입 베어 물었다.
코를 뒤덮었던 탄 내와 비린내가 어느덧 밤바람에 날아갔고, 두 사람 다 조마조마한 마음에 오후 내내 굶었던 탓인지, 이 순간만큼은 식어버린 린수 튀김에서 심지어 조금의 향긋함까지 나는 듯 했다.
아직 기억할지 모르겠는데, 예전에 네가 너보다 어린 우리를 승강기에 태워서 이곳에 올라왔었거든. 모두 여기서 밤새워 놀다가 다음 날 집에 가서 엄청나게 깨졌었어.
당연히 기억하지. 그때 할머니한테 꽤나 세게 맞았었거든, 어쨌든 내가 앞장섰으니까.
그때 우린 이곳에서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이야기했었지. 네가 가장 먼저 한 말은, 공장이 런디니움을 발전시키고 있으니 자신이 그런 공장을 발전시키는 사람이 되겠다는 거였어.
언젠가 기계가 우리를 대신해서 모든 일을 하게 되면, 우리는 출근해서 버튼 몇 개 누르기만 하는 편안한 생활을 보낼 수 있을 거라고도 했었지……
……
앗, 나 또 말실수한 건가?
아니, 내가 한바탕 난리를 피우는 바람에 되려 그 목표에서 더 멀어져 버린 것 같아서.
할머니가 말씀하신 게 맞아. 난 아직 미숙해서, 업무 효율을 올리는 것에만 몰두했을 뿐 공장이 어떤 곳인지 잊고 있었어.
만약 정말 언젠가 버튼 몇 개만 눌러도 일하는 데 지장이 없는 때가 오면, 공장에서 계속 이렇게 많은 사람을 고용하려 할까?
하아, 내가 생산 라인을 최적화하지 않았다면, 넌 분명 좋은 용접공이 될 수 있었을 거야.
……꼭 그렇지만은 않아. 사실 나 용접공이 되고 싶지 않거든.
그, 그래?
우리 모두 어릴 때부터 공장에서 자랐잖아. 공장 사람들의 생활이 어떤지도 잘 알고.
온종일 생산 라인에 있던지, 아니면 오르락내리락하면서 기계를 봐야 하지. 어떤 부품을 만들건, 파이프를 용접하건, 그 성과가 눈에 보이지는 않아.
오직 단 한 번, 정비사 아줌마가 고철로 차출한 완벽한 공을 나에게 줬을 때가 있었는데, 그때가 바로 유일하게 내가 가장 공장 노동자가 되고 싶었던 순간이었어.
하지만 평소에 일할 때, 아줌마가 차출한 물건은 형태도 제대로 볼 겨를 없이 컨베이어 벨트에 올려져서 바로 다음 공정으로 넘어가게 돼.
멀리 떨어진 공장 지역, 야간 노동자들이 열차에서 내렸고, 작업장에서 종일 일한 주간 노동자들은 하이버리 구의 수많은 공장에서 뿔뿔이 나와 퇴근했다.
출근하는 사람이든 퇴근하는 사람이든, 거대한 건물 앞에 선 사람들의 모습은 모두 초라해 보였다.
그래서 내가 넌 재능이 있고 난 없다고 말한 거야. 넌 공장을 하나의 전체로 바라봤으니까, 모든 사람이 일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알았기 때문이야.
자신이 생산한 물건이 제품의 어느 부분에 끼워져 있는지, 어떤 작용을 하고 있는지 넌 알고 있잖아. 심지어 그 물건이 공장에서 나온 이후에는 우리랑 아무 상관없는데도……
근데 나는 아니야. 내 눈에는 매일 하는 일이 똑같이 결과가 없는 작업이고, 그저 노동을 돈으로 바꾸는 게 전부인 작업일 뿐이거든.
그러니 공장은 널 버리지 않겠지만, 난 그들에게 그저 한낱 용접공일 뿐이야. 마치 아빠가 가져왔던 잘못 튀긴 린수 튀김같이, 버리려면 버릴 수 있는 그런 용접공.
……
이게 잘못되지 않았다는 건 나도 알고 있어. 단지 내가 공장이랑 맞지 않았을 뿐이지.
어렸을 때 여기에서 이야기했을 때도, 사실 난 내가 나중에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몰라서 끝까지 말하지 않았었거든.
난 단지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할 수 있는 있을 하고 싶었을 뿐이야…… 내가……
퇴근하고 나서 다른 사람들에게 “이거 봤어? 이거 내가 한 거야!” 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그런 일 말이야.
설령 그게 의자 하나, 칼 공구세트 하나, 완치된 환자 한 명, 심지어 키운 버든비스트 한 마리여도 상관없었어……
하지만 난 공장에서 태어났고, 용접공이 되어야 했지. 왜냐면 아빠가 이 일을 하고 있었으니까.
열차는 마치 버든비스트의 울음소리처럼 기적을 울리며, 퇴근하는 노동자들을 싣고 숙소로 향했다.
아빠가 곧 집에 오겠네, 이만 돌아가자.
잠깐만, 스탠. 나…… 난 아직 생각이 정리가 안 됐어.
이미 늦었어.
승강기를 타고 내려온 후, 집으로 돌아온 피스트는 다시금 자신이 자랑스러워했던 도면들을 살펴보았다.
피스트는 줄곧 공장을 하나의 전체로 여겼고, 할머니도 그래왔기에 이걸 당연하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주방에서 마지막에 남아있던 감자 몇 개를 가지고 일했을 때만 봐도, 그것들이 나중에 어떻게 될지 전혀 몰랐고 심지어 관심조차 갖지 않았었으니.
피스트는 자신이 주방 일을 생각하는 것과 스탠이 공장 일을 생각하는 것이 비슷하거나, 심지어 조금 더 좋다고 느꼈다.
린수 튀김과 감자 파이는 결국 자신의 뱃속으로 돌아왔지만, 공장을 떠난 제품은 노동자와는 아무 상관이 없으니까.
아마 피스트는 공장 전체가 더 발전하도록 이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스탠처럼 언제까지고 결과가 나오지 않는 작업을 하고 싶어하지 않는, 그 밖의 아무것도 모르는 평범한 노동자들은?
스탠처럼 평생 행동할 기회조차 없는 노동자들은 어떨 것인가?
가공된 부품을 생산 라인에 머무르게 둬야 할까? 아니, 만약 모든 단계에서 머무르게 되면 누적된 시간 소모를 용납하기 어려울 거야.
아니면…… 투명한 소재로 생산 라인을 만들어야 되나? 그런 기술이 어디에 있는지도 문제고, 자본금도……
아니면, 모든 직원이 화물을 출하할 때 단체로 인계하는 프로세스를 추가해야 될까?
그 공장장이 퍽이나 승인해 주겠다. 안 돼, 아무래도 생산 라인 내부에서 방법을 생각해야……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왜 아무런 방법도 통하지 않는 거야? 분명 방법이 있을 텐데……
할머니……
야간 근무 담당도 다 퇴근했는데, 피스트 넌 왜 아직 안 자고 있니?
도면? 혹시 스탠을 돌아오게 하고 싶은 거야?
응.
스탠이 정말 뭘 원하는지 알고 있어?
스탠은…… 결과를 볼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 해. 퇴근 후에 자랑스럽게 가리키면서, 다른 사람에게 그 업무의 성과를 말하고 싶어 했어.
그럼 네가 스탠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니?
노력 중이야.
네가 그런 큰 소란을 일으켰던 게 헛되지 않은 것 같아서 정말 기쁘구나.
하지만 이건 네가 고작 몇 날 밤을 보낸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야. 마음을 가라앉히고, 천천히 생각하렴. 너는 할머니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방금 스탠 아버지와 이야기하고 왔는데, 스탠이 하이버리 구를 떠나 런디니움으로 가기로 결정했다더구나.
그럼 스탠은……
버든비스트를 키워보고 싶다고, 우선 근처 마을에 가서 부딪혀본다고 하더군.
……
자, 이제 자러 가.
캐서린의 말투는 확고했고, 피스트 역시 점점 몰려오는 졸음을 느꼈다.
그는 지친 몸을 이끌고 침대로 뛰어들어서는, 커튼 뒤 떠오르기 시작한 아침 햇살과 함께 잠들었다.
꿈속에서 스탠은 버든비스트를 타고 있었는데, 그 버든비스트는 새끼 때부터 키워온 스탠의 보물이었다. 그는 건장한 버든비스트의 등위에 올라탄 채, 옥상에서 뛰어내려 성 밖으로 달려나갔다.
그리고 피스트는 스탠을 향해 손을 흔들어 작별 인사를 한 뒤, 뒤돌아서 런디니움으로, 작업장으로 걸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