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희미한 등불

희미한 등불

오퍼레이터 레코드브릿지

결정을 내린 아이린은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선생님의 묘비 앞으로 오는데……

등장 오퍼레이터: 아이린, 켈시


하늘, 바람, 벌판과 묘비.

이곳은 모든 대재판관의 무덤이다.

재판관 아이린

……

아이린은 처음 선생님의 손에 이끌려 이 묘지에 왔던 풍경을 기억하고 있다.

그녀가 차마 선생님에게 얘기하지 못했던 사실이 있었다. 당시에 그녀의 마음은 뜨거운 사명감으로 가득했기 때문에 희생조차 그녀에게는 일종의 찬미였다.

그렇기에 그녀는 이 묘지에 신성한 아름다움이 가득하다고 느꼈다.


재판관 아이린

(아름다워. )

대재판관 다리오

아이린.

재판관 아이린

아, 네……네! 선생님!

대재판관 다리오

여전히 내 보좌가 되고 싶은가 보구나. 그렇다면 오늘부터 나는 네 선생일 뿐만 아니라, 네 상관이기도 하다.

재판관 아이린

네, 장관님!

대재판관 다리오

이곳은 내가 재판관이 됐을 때 나의 스승님이 데리고 왔었던 곳이다.

대재판관 다리오

여기 있는 대부분의 묘지에는 의관만이 묻혀 있다. 재판관 중에 온전한 시체를 찾을 수 있는 사람이 드물기 때문이지.

대재판관 다리오

하지만 육신보다는 등불과 무기가 더욱, 재판관이 존재했다는 증거가 되지.

대재판관 다리오

그렇기에 우리는 전쟁에서 희생된 재판관을 기리기 위해 그들의 무덤 앞에 등불과 무기를 놓는 것이다.

대재판관 다리오

이곳에 있는 아홉 개의 묘비는 아홉 성도의 묘비란다.

재판관 아이린

아홉 개…… 하지만 스승이신 카르멘 각하는 아직 살아계시잖아요?

대재판관 다리오

다른 성도 여덟 분은 이미 긴 여정 속에서 하나둘씩 스러져갔고, 카르멘 각하 역시 이곳을 영면할 거처로 미리 정하셨지.

재판관 아이린

……

재판관 아이린

(나도 이베리아를 지키다가 희생되어 이곳에 묻힐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대재판관 다리오

아이린.

재판관 아이린

네!

대재판관 다리오

언젠가 너도 내 등불과 무기를 들고 와, 내 무덤 앞에 놓을 날이 오게 될 거다.

재판관 아이린

……

대재판관 다리오

그 순간이 왔을 때 슬퍼하기보다는 네가 싸우는 의미를 깨닫기를 바라마.

대재판관 다리오

그때가 되면 더는 널 가르쳐줄 사람이 없을 테니 말이다.

대재판관 다리오

그러니 그전에 내가 아는 모든 것을 네게 전수해 주겠다.

아이린은 우렁찬 목소리로 “네!”라고 대답했던 것을 기억한다.

하지만 그때 그녀는 선생님의 말씀 속에 담긴 무게도, 생명의 무게도 알지 못했다.

스툴티페라 호에서 그 모든 걸 겪고, 지금 선생님의 등불과 무기를 들고 선생님의 무덤 앞에 놓는 이 순간까지 말이다.

재판관 아이린

묘비가 더 늘어났네.

아이린은 한 묘비 앞으로 걸어갔다.

“대재판관 다리오. 이곳에 잠들다. “

작은 목패 위에 간단한 글귀가 쓰여 있었다. 아무런 장식도 되어있지 않은 이곳이 바로 어느 한 대재판관의 무덤이었다.

선생님의 영혼을 깨울까 아이린은 등불과 무기를 살며시 무덤 앞에 내려놓고는 천천히 앉았다.

재판관 아이린

선생님, 등불과 무기를 들고 왔습니다.

재판관 아이린

말씀하셨던 대로 무덤 앞에 잘 놔뒀으니 선생님의 영혼도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겠죠.

재판관 아이린

그때 선생님과 약속하기는 했지만, 그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어요.

재판관 아이린

그날로부터 한참이나 지났지만 선생님이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은 여전히 믿을 수 없어요.

재판관 아이린

하지만 결국은 떠나신 거겠죠.

재판관 아이린

이제는 저의 유치함을 꾸짖을 사람도, 많이 보고 많이 생각하라고 일깨워 줄 사람도, 비바람을 막아 줄 사람도 더는 없네요.

재판관 아이린

……됐어요. 이런 얘기는 그만할게요. 이 자리에 계신다면, 제가 한 말들을 듣고 분명 저의 나약함을 꾸짖으셨겠죠.

재판관 아이린

걱정 마세요. 오늘 이 순간이 오게 될 때, 제가 싸우는 의미를 깨닫기를 바란다는 말씀은 아직 기억하고 있습니다.

재판관 아이린

그리고 확실히 깨달은 것 같아요.

재판관 아이린

……그래서 앞으로 한동안은 선생님을 보러 오지 못할 것 같네요.

재판관 아이린

제 믿음에 의심이 생겼기 때문은 아니에요.

재판관 아이린

실은 오히려 심판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기 때문에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어요.

재판관 아이린

절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어요, 선생님.

재판관 아이린

카르멘 각하? !

성도 카르멘

긴장하지 말거라. 지금 이곳에 있는 건 희생된 제자에게 성묘를 하러 온 노인일 뿐이니 말이다.

재판관 아이린

……

성도 카르멘

자네가 놓아둔 건 다리오의 물건이겠지.

재판관 아이린

그…… 그렇습니다. 제가 직접 가져다 둘 필요는 없었지만, 특별히 받아왔습니다.

재판관 아이린

전 선생님의 학생이니까요. 그리고 이건…… 선생님에게 건네는 작별 인사기도 하고요.

성도 카르멘

그런가?

재판관 아이린

……

눈앞의 사람은 성도라는 이름을 지닌 대재판관이다. 재판관이라면 모두 성도 카르멘이 얼마나 많은 시련을 겪었고 얼마나 많은 악을 심판했는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의 존재가 바로 재판소의 의지 그 자체이다.

그녀는 순간적으로 자신의 선택을 후회했다. 물론, 그다음 순간 바로 그런 생각을 억눌렀지만 말이다.

그녀는 이미 결정을 내렸다.

재판관 아이린

이곳에 오기 전에 사직서를 냈습니다.

재판관 아이린

재판관을 그만둘 생각입니다. 그래서 재판소를 떠나기 전에 선생님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싶었어요.

성도 카르멘

……

아이린은 질문도 문책도 각오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를 맞이한 건 성도의 침묵이었다.

그녀는 이 침묵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감히 추측할 수 없었으나 성도에게서 분노는 느껴지지 않았다.

성도 카르멘

다리오는 내 여덟 번째 제자였네. 내 모든 제자 중에서도 가장 우수한 아이였지.

성도 카르멘

하지만 말주변이 없다 보니 재판관 중에서도 대인관계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네. 선생인 나한테도 각하라는 칭호를 끝까지 고집하고 말일세.

성도 카르멘

그 아이의 제자로 지내는 건 그리 편하지만은 않았을 걸세.

재판관 아이린

아니에요.

재판관 아이린

선생님은 모든 일을 빠르게 처리하셨죠. 저는 선생님의 결단력이 부러웠습니다. 게다가 결과는 항상 선생님이 맞았다는 걸 알려줬고요.

성도 카르멘

그 아이도 한때 실수를 많이 해봤기 때문이지.

아이린은 순간적으로 자신이 마주하고 있는 게 엄격한 성도가 아니라, 그저 나이든 노인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성도 카르멘

만약 나와 다리오가 함께 이베리아의 눈으로 갔다면 그 아이는 희생되지 않았을 걸세.

재판관 아이린

……황금빛 함선에서 그 괴물이 선생님의 죽음을 알리면서 그러더라고요. 선생님의 죽음은 의미가 없다고 말입니다.

재판관 아이린

그래서 녀석에게 재판소에는 '무의미한 희생' 같은 건 없다고 말해줬습니다.

재판관 아이린

하지만 그전에 선생님이 제게 말했었어요. 사실 가치 있는 죽음이라는 건 죽음을 미화시킨 말일뿐이라고요.

재판관 아이린

최소한 재판관은 살아남아야만 자신의 신념을 다 할 수 있다고 그랬죠.

재판관 아이린

그래서 전 선생님의 죽음에 의미가 있었다고 따지기 전에, 살아계셨다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도 카르멘

다리오가 잘 가르쳤군.

성도 카르멘

……

성도 카르멘

그 재앙이 이베리아를 휩쓴 뒤에 재판소는 나와 다른 성도들의 인도 속에서 지금의 규모를 이루게 됐네.

성도 카르멘

우리는 많은 일을 이루어 냈지. 아마 대부분은 경전으로 알 수 있을 걸세.

성도 카르멘

하지만 그중에는 나를 방금과 같은 의문에 빠지게 한 일들도 있었네…… 만약 내가 그렇게 행동했다면…… 누군가가, 혹은 더 많은 사람들이 살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의문 말일세.

성도 카르멘

내가 많은 일들을 할 수 있다 해도, 난 한 인간에 지나지 않네. 내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또 다른 죽음을 불러왔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재판관 아이린

개인의 힘에는 한계가 있다는 걸 일깨워 주시는 건가요.

성도 카르멘

설마 재판관의 길에 실망이라도 했기에 사직서를 낸 것인가?

재판관 아이린

당연히 아닙니다…… 다만 이렇게 쉽게 제 생각이 들킬 줄은 몰랐습니다.

성도 카르멘

만약 그랬다면 스툴티페라 나비스에서 돌아왔을 때 그대의 위축된 모습을 보았겠지.

성도 카르멘

하지만 그대에게는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았네.

성도 카르멘

오히려 그란파로에서 처음 만났을 때보다 그 굳건함이 더 순수해 보였다네.

성도 카르멘

그러니 내가 어찌 그대가 주눅 들었다 의심하겠나.

재판관 아이린

하지만……

성도 카르멘

몇 년 전에 다리오가 했던 말이 기억나는군. 자신의 첫 번째 제자는 어린아이가 될 거라 그랬지.

성도 카르멘

재판소를 이어가기 위해 모든 대재판관은 재판관 중에서 몇몇 학생을 뽑아 자신이 배운 것들을 물려줘야 한다네.

성도 카르멘

하지만 어린아이를 제자로 들인다는 건 매우 드문 경우였지.

재판관 아이린

경전은 제 목숨을 구해줬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이 저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아마 전 그 폐허 속에서 죽어 갔겠죠.

재판관 아이린

그리고는 재판소의 고아원으로 보내졌어요. 그때부터 선생님은 가끔씩 절 보러 오고는 했습니다.

재판관 아이린

……바로 제 선생님이 돼주신 건 아니었습니다. 실은 규정에 따르면 대재판관인 선생님이 고아인 저를 가르쳐서는 안 됐었죠.

재판관 아이린

제가 재판관을 꿈꾸고 있고 훈련도 받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고 나신 뒤 머지않아, 갑자기 직접 절 가르치겠다고 하셨죠.

성도 카르멘

그런가?

재판관 아이린

이 일에 대해서는 저도 의문을 품고 있었어요. 그래서 나중에 기회를 봐서 선생님에게 물어봤었죠. 그때 선생님의 대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대재판관 다리오

왜 널 내 학생으로 받아들였냐고?

재판관 아이린

네.

대재판관 다리오

재판소에 대한 열정 그리고 경문과 율법에 대한 네 열정이 내 귀에 들렸기 때문이다.

재판관 아이린

정말인가요? !

대재판관 다리오

하지만 너의 가장 큰 약점이기도 하다.

재판관 아이린

네?

대재판관 다리오

네 정의는 너를 구해 준 경전과 널 길러준 재판소, 재판관이 되기 위한 배움 속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대재판관 다리오

네 두 눈으로 확인한 풍경과 네 귀로 들은 말들, 그리고 네 발로 걸었던 땅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지.

대재판관 다리오

넌 아직 너무 약하단다, 아이린.


재판관 아이린

그 당시에는 이 말의 의미를 알지 못했고, 선생님 또한 말을 아끼셔서 일단은 기억해두고 있었습니다.

재판관 아이린

이제는 비로소 그렇게 말씀하신 이유를 알겠어요.

재판관 아이린

선생님은 제가 정의 때문에 눈이 멀까 봐, 지나친 열정에 다칠까 봐, 진실 때문에 목숨을 잃을까 봐 두려웠던 것이었습니다.

재판관 아이린

과거의 저는 율법과 경전 속 내용이 저의 전부라고 믿었거든요.

성도 카르멘

그래서…… 재판소의 율법에는 한계가 있다 의심하기 시작한 겐가?

재판관 아이린

아닙니다. 전 여전히 율법은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도 카르멘

그렇다면 재판소가 정의와 악에 대한 판단의 기준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겐가?

재판관 아이린

아닙니다. 저희의 규칙은 이미 증명된 것이라 믿습니다.

성도 카르멘

그렇다면 어째서 재판소를 떠나려고 하는 겐가?

재판관 아이린

선생님이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그 순간이 오게 된다면 제가 이베리아의 마지막 방어선이 되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재판관 아이린

저에 대해 너무 높은 기대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었지만, 지금은 그것이 가장 기본적인 요구였단 걸 알 수 있습니다.

재판관 아이린

제 재능이 뛰어나기 때문도, 제가 유일무이한 사명을 짊어지고 있기 때문도 아니에요.

재판관 아이린

단지 선생님이 그렇게 생각했고, 그렇게 했기 때문이에요.

재판관 아이린

전 선생님의 학생으로서 그 뜻을 이어가야만 합니다. 단지 그뿐이에요.

재판관 아이린

스툴티페라 나비스에서 깨달았어요. 선생님의 모든 가르침은 결국 제게 한 가지를 알려주기 위한 것이었죠……

재판관 아이린

경전과 율법은 제 행동을 인도하겠지만, 제 행동은 우선 자기 자신의 생각을 따라야만 합니다.

재판관 아이린

스스로 이해가 되고 믿음이 가야만 경전과 율법이 진정한 힘이 될 수 있고, 등불 또한 바다의 괴물을 위협할 수 있습니다.

재판관 아이린

저는 재판소 지하의 감옥에서 진실을 마주했고, 스툴티페라 나비스에서 그들의 생각과 언어를 알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진화까지도 말이죠.

재판관 아이린

그래서 저는 제 적을 알아볼 수 있었고 저희에게 닥친 위기도 이해할 수 있었죠.

재판관 아이린

저는 헌터들과 함께하고 같이 싸우면서 그들의 오만함과 함께, 그 실력의 막강함도 알 수 있었습니다.

재판관 아이린

그녀들은 미지의 존재지만 그리 두려운 존재는 아닐지도 모릅니다.

성도 카르멘

그렇다면 그대는, 그 모든 걸 겪은 나서 어떤 답을 얻었나?

아이린

진정으로 그 괴물들을 마주한 순간에서야 알 수 있었습니다. 제가 의심했던 것은 선생님도 마찬가지로 의심했었고, 제가 걱정한 것 또한 선생님도 걱정했던 것이었음을 말입니다.

아이린

제 정의는 시련을 견뎌내지 못했지만, 선생님의 강한 의지는 심사숙고를 거쳐 도달한 결과였습니다.

아이린

전 이제 의심하지도, 망설이지도, 도망가지도 않을 겁니다. 이제는 제가 할 수 있는 일, 해야 되는 일들을 하려 합니다.

성도 카르멘

……

아이린

아, 죄송합니다, 카르멘 각하. 아무래도 무례한 소리를 너무 많이 늘어놓은 것 같습니다……

아이린

하지만 믿어주세요. 재판관을 그만두려는 건 재판관의 직책을 더 잘 수행하기 위해서라는 걸요.

성도 카르멘

재판관의 직무가 민감하다 보니 다른 조직, 나아가 다른 국가와 교류하려면 재판관의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겠지.

성도 카르멘

그대는, 협력의 빛을 본 듯하군.

성도 카르멘

재판소를 떠나면 어떻게 할 생각인가?

아이린

우선 어비설 헌터스 세 명과 한동안 함께 움직일 예정입니다.

아이린

그 여자들이 그 로도스 아일랜드라는 조직과 관계가 상당히 밀접해 보이니, 저도 그 조직과 협력할지 고민 중입니다.

성도 카르멘

만약 그런 거라면……

성도 카르멘

다 들었겠지, 켈시.

아이린

네? !

켈시

미안, 하던 대화가 너무 재밌어서 나도 모르게 멈춰서 듣고 있었네.

아이린

우으……

켈시

그리고 당연히 로도스 아일랜드는 뛰어난 전 재판관과의 협력을 거절하지 않을 거야.

성도 카르멘

아이린, 재판관은 그만둬도 좋네. 하지만 그렇다고 재판소를 떠나야 한다는 건 아닐세.

아이린

네? !

성도 카르멘

그대는 재판소의 전달자가 되어 로도스 아일랜드로 향해, 재판소를 대표하여 로도스 아일랜드와 협력하길 바라네.

아이린

정말인가요?

성도 카르멘

아이린, 잘 기억하게. 오늘 그대의 결정이 에기르와 이베리아 협력의 두 번째 발걸음이 될 테니 말일세.

아이린

……네!

성도 카르멘

가서 출발할 준비를 하게나.

성도 카르멘

이끌어 주는 사람이 없는 새로운 여정이 될 테지만, 그대 마음속의 신념이 올바른 길을 알려줄 것일세.

성도 카르멘

……

성도 카르멘

보게, 켈시.

성도 카르멘

에기르와 이베리아 협력의 계기가 지금 나타나다니, 내게는 너무 늦어버린 얘길세.

성도 카르멘

설사 이번 일이 확실히 전환의 기회가 되더라도 세월이 내 몸에 남긴 흔적 때문에 아무런 기쁨도 느낄 수가 없군.

성도 카르멘

하지만 저 아이에게는 여명의 빛과도 같겠지.

켈시

만약 녀석들의 진화가 생명의 본능이라면, 지금 저 아이의 선택은 영락없는 문명의 본능일 것이다.

켈시

……응?

성도 카르멘

뭘 보는 겐가?


켈시의 시선을 따라간 노인은 다리오의 무덤 앞에 놓인 등불이 갑자기 깜빡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별을 고하는 것 같기도, 배웅하는 것 같기도 한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