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조
심하게 훼손된 방패를 폐기하려는 마터호른에게 벌컨은 새로운 의견을 제시한다.
벌컨 언니!
(킁킁)
벌꿀 쿠키 냄새! 쿠키 만든 거야?
케오 왔구나, 막 구운 거야. 자, 여기.
와아!
벌컨 언니 한 개, 나 한 개! 마터호른 아저씨 한 개, 나 한 개! 라바 언니 한 개, 나 한 개!
……
벌컨 씨, 수리가 필요한 무기를 가져왔습니다.
케오, 여기서 놀고 있어. 일 좀 하고 올게.
응!
벌컨 씨, 기름칠 같은 간단한 작업은 다른 오퍼레이터가 완료했고, 몇 가지 좀 복잡한 것들이 남았는데 벌컨 씨의 의견이 필요합니다.
알겠어. 보여줘 봐.
오리지늄 회로와 석궁 본체의 부품들은 분해를 완료했고, 모두 여기 있습니다.
정비와 가동 테스트도 끝냈지만, 문제는 개조입니다.
사용자가 스나이퍼 오퍼레이터인데 무기에 방패 효과를 내는 부품을 추가하고 싶다고 해서요.
내가 전에 디자인했던 원형 방패처럼? 여러 사람을 보호하긴 힘들지만, 허리에 찰 수 있어 휴대하기 편하긴 하지.
탑재된 오리지늄 회로는 스나이퍼 오퍼레이터의 오리지늄 아츠를 증폭시킬 수도 있고,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적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도 있긴 해.
하지만 석궁에 장착한다면 무게 때문에 오히려 강도에 영향을 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개조 요청을 거절해야 하나 고민 중입니다.
아니, 그럴 필요 없어. 나한테 맡겨.
전에 연구한 신축성 부품도 있고, 블레미샤인과 함께 개발한 초슬림형 소재도 있는데, 여기에 써도 될 것 같네.
그럼 부탁드릴게요. 벌컨 씨.
오늘도 의뢰가 많네……
다들 일 끝내고 돌아오면 무기들 정비에 수리도 해야죠.
그나저나 이 긁힌 자국을 보니…… 꽤나 치열한 전투였던 것 같군.
이 균열…… 엄청난데. 이 방패가 없었다면 오퍼레이터는 중상을 입었을 거야. 여기 봐. 적의 화살이 그대로 꽂혀 있잖아.
벌컨 선배, 마터호른 씨의 방패도 왔어요.
와, 이 방패의 균열은…… 마터호른 씨는 이걸로 산이라도 가른 걸까요?
음…… 이대로라면 이 방패의 수명도 곧 다할 것 같네.
미안한데 내가 부품별로 분해할 테니까 각 부품의 파손 상태를 체크해 줘.
……
……왜? 무슨 문제라도 있어?
아, 아닙니다! 제가 신입이라 벌컨 선배와 처음 일하다 보니 조금 긴장돼서……!
엔지니어링부의 다른 선배들에게 말씀 정말 많이 들었습니다. 저,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렇구나, 잘해보자고.
그럼 난 쓸만한 금속이 있는지 찾아볼게.
히비스커스의 아츠 스태프, 팽의 창, 비글의 방패, 크루스의 석궁……
매번 가장 심하게 파손되는 무기들이야.
이건 그들이 처음 로도스 아일랜드에 왔을 때 사용했던 무기들이고, 이건 내가 개조한 무기야. 뭐가 다른지 보여?
……로도스 아일랜드 오퍼레이터들은 항상 다양한 작전 환경에 대응해야 해. 각 작전의 요건을 맞추기 위해서는 오퍼레이터의 무기도 그에 상응하는 기능을 갖춰야 하지.
그렇군요!
그리고 개조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각 오퍼레이터의 성격과 요구사항도 고려해야 해. 자기만족을 위해 사용자의 요구를 무시하는 일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크루스 선배 무기에 매달려 있는 이 작은 장신구처럼 말인가요?
맞아.
무기에 오퍼레이터의 마음이 담겨있는 경우가 많으니까, 정비랑 수리할 때는 세심히 신경 써서 진행해야 한다고.
사용자를 이해하면 그들의 의뢰도 더 잘 수행할 수 있을 거야.
자, 일단 이 무기들은 정비 끝.
이제 나머지는 오퍼레이터들이 최대한 실력을 발휘하는 거야.
실례합니다. 벌컨 씨 계십니까?
아아, 열려있으니 들어와.
실례합니다, 벌컨 씨. 새로운 방패 제작을 부탁드리려고 왔습니다.
항상 사용하던 방패인데, 여러 번 수리하면서 쓰다 보니 성능이 예전 같지 않아 슬슬 바꿔야 할 것 같습니다.
이 방패…… 내가 전에 몇 번 수리했었지.
네, 쉐라그에서 가져온 방패입니다.
쉐라그의 독특한 기후 때문에 그곳의 장인들은 저온에 잘 견디는 강철로 방패를 만듭니다. 극한의 날씨에도 부서지거나 갈라지지 않게 말이죠.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쉐라그 외의 지역에서는 제 성능을 발휘하지 못하겠지.
맞습니다. 이전에도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만, 방패를 바꾸고 싶지 않았습니다. 제 욕심이었죠.
다만, 이번 작전에서 너무 심하게 갈라진 걸 보니, 이 녀석도 이제 한계에 다다른 게 아닐까 생각이 들더군요.
여기 보세요. 이번 외근 임무에서 폭주한 니들플라이 떼를 만난 바람에 독액이 균열 틈까지 스며들었습니다.
전에 몇 번 수리하면서 구조를 완벽하게 복구해주셨지만, 이번만큼은 독액과 니들플라이 찌꺼기를 깨끗이 제거하는 건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전문가가 아닌 제가 봐도 상당히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이 녀석의 수명은 여기까지인가 봅니다. 아무리 수리해도 전성기로 돌아갈 수는 없을 테니.
이리 줘 봐.
……니들플라이의 독액에 구기 파편까지 끼어 있고, 확실히 귀찮긴 하겠어.
이번엔 균열이 심해서 반대쪽 구조까지도 변형되었네.
…… 내부 균열도 육안으로 확인될 정도고, 이번에 도대체 무슨 임무를 수행한 거야?
흠, 일부 강한 공격은 의도적으로 피한 모양이네. 그렇지 않았다면…… 물린 자국으로 볼 때 이 방패는 진작 산산조각이 났을 거야.
그래서 이 방패는 어떻게 하려고?
일반적으로 오퍼레이터가 사용하지 않는 무기는 무기고에 모아두곤 해. 그럼 예비 작전 오퍼레이터에게 실전 연습용으로 제공되거나 엔지니어링부에서 분해 및 회수해서 새로운 무기 제작에 사용하지.
특별한 의미가 있다면 무기 전용 보관소에 따로 보관하거나 각자 직접 보관하기도 해.
……전……
사실 이 방패는 실버애쉬 가문의 장인이 만든 것으로, 죽을 각오로 싸운다는 맹세가 들어 있습니다. 저의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실버애쉬 가문의 가드셨습니다.
아버지는 이 방패를 물려주시며 그 맹세를 잊지 말라고 당부하셨죠.
그리고 저는 실버애쉬 님의 지시에 따라 엔시아 아가씨 보호를 위해 이곳에 왔으며, 이 방패 역시 저와 함께 사명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몇 번이나 이 녀석을 수리해주신 벌컨 씨께 늘 감사했습니다. 아무래도 이 방패는 저에게 아주 소중한 존재니까요.
다만…… 이번엔 너무 심하게 파손된 바람에.
그래서 이건 깨끗이 닦아서 기념으로 남겨두고, 새 방패의 제작을 부탁드릴까 합니다.
새 방패를 만드는 건 아주 쉬워. 기존의 재료와 기술에 여러 번 방패를 수리한 경험이 있으니 네 요구에 맞는 방패를 금방 만들어 낼 수 있을 거야.
그 전에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어.
만약 내가 이 방패를 완벽하게 수리하거나 심지어 전보다 더 강력하게 만든다면, 너는 계속 이걸 사용할 거야? 아니면 그냥 기념품으로 남겨둘 거야?
……
내가 이 방패를 어떻게 처리하고 단조할 것인지, 어떤 새로운 소재를 사용할 것인지 그런 건 생각하지 말고, 그냥 네 진심을 말해봐.
여기까지 찾아와서 이 방패의 이야기를 해주고, 방패가 갖는 의미와 그에 담긴 맹세까지 알려줬잖아.
이 방패를 얼마나 소중히 생각하는지 알겠어.
그렇다고 해도, 원상태로 복구하기에는……
원상태로 복구할 수 있는지 물어보지도 않았잖아.
……그게 가능할 리가 없습니다.
내 공방에 온 이상 그게 가능하지.
그렇지만……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길지 많이 고민하고 결정했다는 거 알아.
나를 찾아온 오퍼레이터들이 다 그래.
얘기나 해보자고, 마터호른.
락락이라는 빅토리아 소녀가 있는데, 알아? 본함엔 몇 번 안 왔지만, 그래도 인상 깊어서 기억하고 있지.
모르는 분입니다…… 그분은 왜?
재밌는 사람인 것 같았거든. 나랑 좀 닮은 것 같기도 하고.
그녀는 도시의 오래된 공업 지구에서 태어나서 그곳의 모든 것에 대해 깊은 애정을 품고 있었어. 지닌 물건들도 모두 스스로 만든 것이고.
그녀는 이곳의 기계들을 보고 마음에 들어했지만, 그래도 자신이 직접 만든 물건을 계속 쓰겠다고 하더라고.
……마치 매일 불을 피우고 쇠를 단련하는 벌컨 씨처럼 말이죠?
맞아.
이렇게 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솔직히, 전혀.
이곳의 기계는 짧은 시간에 상당한 양의 철괴를 만들어내. 락락도 자신이 만든 물건이 그리 정교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을 거야.
그런데도 두 분이 지금의 방법을 고수하는 건……
그래, 그 행동에 숨겨진 의미가 있으니까…… 난 대장장이야, 그게 내 뿌리고.
락락도 새로운 것을 거부하는 게 아니야. 직접 만든 물건에 집착하는 건 자신의 뿌리가 오래된 공업 지구에 있다고 믿기 때문인 거지.
그래서 나는 이해해. 네가 아무리 로도스 아일랜드에서 오래 지내든 뭐든 넌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가르침을 영원히 잊지 않겠지. 네 뿌리는 언제나 쉐라그의 설산에 있을 테니까.
이건 대장장이로서가 아니라 너의 한 친구로서 부탁하는 거야. 내게 다시 한 번 이 방패를 수리할 기회를 주지 않겠어?
……
나한테 맡겨줘.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내어줄 테니까.
선배, 벌컨 선배가 조금 전 회의에 참석하지 않으셨는데, 무슨 일일까요. 얼마 전까지도 벌컨 선배와 함께 일했는데, 최근에는 공방에도 안 보이시고...
벌컨 씨는 마터호른 씨의 방패 복구에 필요한 새로운 금속을 찾고 있는 것 같아.
마터호른 씨의 방패요?
부식이 심해서 못쓰게 된 거 아니었나요? 그때 제거 작업을 오래 했지만, 완벽히 제거할 수는 없었거든요.
마터호른 씨도 교체하려고 하셨던 것 같은데?
그렇긴 한데 저번에 얘기 들어보니까 벌컨 씨가 복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하네.
복구요? 그 너덜너덜해진 방패를요?
신입이라 아직 잘 모르겠지만, 우리 부서에 인원이 많아지기 전에는 로도스 아일랜드의 모든 무기를 벌컨 씨 혼자 수리했었어.
게다가 내가 여기 들어오기 전에 벌컨 씨가 전설의 무기를 만들었다는 소문도 있어. 무기가 처음 나왔을 때 천지가 진동하고, 해와 달이 빛을 잃었다더라!
로도스 아일랜드 본함조차 흔들릴 정도였다나…… 물론 과장된 부분도 일부 있겠지만, 엔지니어링부의 몇몇 선배들은 벌컨 씨가 진짜 '불의 신'이라고 해.
아…… 보고 싶다…… 복구 작업……!
벌컨 선배는 아직 공방에 계실까요? 작업 마치고 보러 가도 될까요?
아니, 없을 거야. 어제 다음 작업을 내게 맡기고는 광석 찾으러 나갔거든.
지금쯤 어느 산속 동굴 안에 있을걸.
아가씨, 이 동굴은 들어가면 안 돼! 안에 괴물이 산단 말이요!
예전에도 사금을 채취하려던 자들, 현상금을 노리던 자들, 보석을 캐려던 자들이 꽤나 들어갔는데 아무도 나오지 못했소!
다리도 불편한 것 같은데, 괜히 들어가서 죽지 말게나!
……
할아버지야말로 빨리 이 동굴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쯧, 젊은이가 말이야……
후……
드디어 도착했군. 좌표도 예측보다 많이 벗어나지 않는 거 보니, 여기가 틀림없네.
주변 환경과 규모도 예상한 대로고.
지형이 특수해서 채집이 좀 번거로울 순 있지만, 마취제와 미끼도 다 설치했으니까……
쉐라그의 단조 공법은 추운 환경에서 강재의 인성을 높이는 것인데. 복구하려면 그걸 완벽하게 대체할 수 있는 재료를 찾아야 해.
다행히 몇 년 전 우연히 원석충으로부터 광물 결정을 얻은 적이 있는데…… 작긴 했지만, 원석충의 분비물을 흡수해서 그런지 인성이 상당했지.
……
깊이가 300미터쯤 될 테니 장비를 다시 점검해봐야겠어. 문제없겠네.
……이렇게 빨리 트랩에 걸렸다고?
좋아, 마취는 됐고.
걱정마, 네 몸에 붙어 있는 결정만 좀 떼어 가려는 거야……
이런, 안쪽에 동굴이 더 있었다니!
가져온 광물은 이미 단조했고, 다양한 온도에서 강편의 추출물과 추출 후 강도도 모두 테스트했어.
음…… 협강도 나름 쓸 만하네. 잘 단조 된 강철 내부에 인성이 더 좋은 소재를 끼우면 무차별 공격에도 부서지는 일은 없겠다.
문제는 담금질 시간이랑 온도인데.
그저께 무리하게 국부만 열처리하다가 하마터면 부러진 파편에 다칠뻔했잖아. 안전조치를 충분히 했으니 망정이지.
역시 온도는 조금 더 세밀하게 조정해야 하는구나.
이쪽 선반이랑 장식품을 치워서 공간을 마련해야겠어.
기계는 역시 컬럼비아산이지.
…… 자, 그럼 작업을 시작해볼까.
설정에서 각 금속의 비율을 하이라이트로 표시하고, 산소의 수치는……
이걸 기준으로 온도와 시간을 재설정하고……
각도 조절…… 온도를 올린 다음…… 초기화하면……
후…… 최대치에 근접했어!
좋아, 완성이다!
콜록콜록, 새로운 단조법이……
실험 성공이야.
벌컨? 여긴 무슨 일이지?
도베르만 교관, 잠깐 실례.
이 방패를 시험해 보고 싶은데 저기 훈련 장비 좀 써도 될까?
물론 가능하지.
예비 오퍼레이터의 도움은 필요 없나? 신입들도 훈련이 필요할 것 같다만.
그럼 좋지. 고마워.
도베르만 교관님, 준비 다 됐습니다!
부족한데. 전력으로 있는 힘껏 방패를 공격해 줄래?
내 걱정은 하지 말고.
도베르만 교관님……?
벌컨의 실력은 너희들에 비할 바가 아니다. 게다가 이건 새로운 단조 기법으로 만든 방패이니 전력을 다해도 상관없다.
네!
허억…… 허억……
어때?
역시 도베르만 교관이 공격해봤으면 좋겠는데.
문제없지.
준비됐나!
하!
좋은 방패군!
클, 클로저 선배! 시간 괜찮으신가요……
무슨 일인데?
저…… 벌컨 선배가…… 로도스 아일랜드 본함이 흔들릴만한 전설의 무기를 만들었다는 것이 사실인가요?
……
그거…… 누구한테 들었어?
2주 후
후……
좋아, 이걸로 완성이네.
그래도 지연 없이 예정된 시간 내에 완성했군.
최종 테스트까지 하면 약속한 시간에 맞을 거야.
실례합니다. 벌컨 씨, 계십니까?
응, 들어와.
네 방패, 약속대로 고쳐놨어.
전……
설마 정말로 고쳐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벌컨 씨.
한번 써 봐.
어떻게…… 정말 제가 쓰던 그 방패가 맞습니다!
정말 수리해 주셨군요?
응, 새로운 단조 기법을 이용했어. 더 적합한 광물도 찾았고. 원래의 강재에 인성이 더 좋은 소재를 끼워 넣었지.
내한성 면에서는 이전보다 성능이 떨어질 수 있는데, 협강 구조 때문에 극한의 날씨에서도 부서지거나 갈라지진 않을 거야.
방패 자체의 강도도 전과 거의 차이가 없을 거야. 기존의 형태는 유지하면서 뒷면에 오리지늄 회로를 추가했거든. 자동으로 실행되는 구조이니 오리지늄 아츠를 따로 발동할 필요도 없고.
여기선 휘두르면 안 된다. 나중에 훈련장에서 테스트해 봐.
전……
정말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벌컨 씨는……
단 2주 만에 이걸?
2주면 충분하지.
바로 전날도 외근 임무에 나가셨다고 해서, 아직은 시간이 더 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 벌컨 씨.
무슨, 이게 내 일인걸.
오퍼레이터의 요구에 맞춰 무기를 수리하고, 그 무기가 제대로 쓰일 수 있다면 그걸로 난 만족해.
게다가 누구나 무기에 갖는 의미가 다르니까.
대장장이로서 당연히 최선을 다해야지.
그게 바로 대장장이로서의 사명인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