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밤에 타오르는
지마는 로도스 아일랜드 선발대의 팀장으로 부임 됨과 동시에, 우르수스 학생자치단의 다른 멤버들에게 중요한 결정 사항을 선포했다.
……
(라다는…… 여기에도 없는 건가?)
(요즘 많이 바쁜 모양이네.)
팀, 팀장님!
응? 오, 무스잖아.
저번 실전 연습 땐 정말 잘해줬어.
헤헤, 레토 씨의 스파르타 훈련 덕분이에요……
뭐? 로잘린드가?
네, 전에 새 분대 명단이 나왔을 때 지마 씨가 제 새로운 팀장이라는 걸 알게 됐거든요…… 제 기억으론 두 분께서 사이가 정말 좋으셨으니까, 어떻게 하면 작전에서 지마 씨랑 좋은 호흡을 맞출 수 있을지 여쭤보고 싶었어요……
레토 씨는 흔쾌히 제 부탁을 들어주셨고, 지마 씨랑 호흡을 맞추기 위한 작은 팁 같은 것도 잘 알려 주셨어요……
팁이라니?
레토 씨는 “소냐가 먼저 나서면, 넌 그 뒤를 따라가기만 하면 돼!”라고 하셨죠.
걔는 정말…… 쳇, 어쩐지 그 녀석 모습이 안 보이더라니, 너랑 훈련실에 있었던 거구나.
저, 저뿐만이 아니라…… 다른 오퍼레이터분들도 레토 씨와 훈련을 하려고 기다리고 계셔요.
게다가 요즘엔 레토 씨가 종일 훈련실에서 시간을 보내셔서…… 하아, 전 언제쯤 레토 씨처럼 왕성한 에너지를 가질 수 있을까요?
……
세상에, 말도 안 돼.
저 신입, 후방 지원부에서 전선으로 막 투입됐다고는 믿기지 않는 실력인데……
저렇게 단단한 철판을 특수 제작했다던 석궁으로 뚫다니…… 무서울 정도야.
진짜 무서운 건 그게 아냐…… 너 그 소문 들었어? 스톰아이 씨가 실전 연습에서 난생처음 저 신입을 칭찬하셨대……
……
(저 사람들, 지금 나탈리야 얘기를 하는 건가?)
(그 녀석이라면 그렇게 놀라운 일도 아닌데. 뭔가 이상하네, 이게 대체 무슨 느낌이지……)
(난 지금 그 녀석이 칭찬을 받아서 기뻐하고 있는 건가?)
(성가시네…… 그나저나 곧 도착인가.)
……
(안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데…… 사람도 많은 것 같고……)
응? 누가 문을 두드리는 것이냐?
이 왕실 탐정이 진실을 밝혀 주겠……
……
……
지…… 지마! 이스티나를 찾으러 온 건가!
이스티나는…… 지금 모두에게 《윈터 캠프파이어》의 독후감을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내가 지금 불러오겠다는 것이다!
자, 잠깐, 그럴 필요는 없어……
나도 특별한 일은 아니라서, 나중에 다시 오지 뭐.
……
하아.
5일 후
……
로잘린드가 여기 있으려나?
……역시 없네.
아침부터 미트 파이 굽느라 진땀을 뺐는데, 역시 라다가 만든 것보단 별로야.
메이한테서 빌린 《윈터 캠프파이어》도 아마 오늘 밤 안에는 다 읽을 수 있겠지.
게다가 그 더럽게 맛없던 홍차…… 나탈리야 그 녀석은 그 괴상한 맛으로 졸음을 쫓고 있던 게 분명해.
지금 우리는……
……
자치단이라…… 우리가 원래 누렸어야 할 생활은 이렇게 단순했어야 하는 건데……
……
니어…… 들었어?
뭐, 마침 잘 왔어.
지금 내가 속한 분대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게 있거든. 이스티나랑 레토는 역시 나랑 한 팀에 있는 게 좋을 것 같아.
왜 그렇게 생각하지?
너…… 알면서 왜 물어보는 거야? 그야 우린 예전부터 한 팀이었으니까.
분대를 구성함에 있어서 오퍼레이터의 출신이나 관계, 친밀감은 중요하지 않아.
너희가 전장으로 향하는 것은 로도스 아일랜드의 전략적 수요 때문이지.
분대는 임무 목표와 오퍼레이터 개개인의 능력, 그리고 오퍼레이터 간의 시너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구성한 최선의 선택이야.
……
넌 어떻게 항상 망설임 하나 없는 모습일 수 있는 거야?
……
지마, 너는 곧 재편성된 소대를 이끌고 작전에 투입될 거다.
넌 지금 한 소대의 팀장이라는 걸 항상 명심하도록 해.
흥…… 그래, '팀장'이지.
그게 내 새로운 신분인가.
후우…… 이곳의 밤은 정말 춥구나……
팀장, 몸도 데울 겸 담배 하나 태우실래요?
팀장은 그…… 성인 맞으시죠?
난 안 펴.
그리고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이 시기의 우르수스는 상당히 건조하거든. 작은 불똥이라도 건초에 떨어지면 큰불이 날 수도 있어.
……알겠습니다, 저도 안 피는 걸로 하죠.
후우…… 춥다…… 근데 아무리 그래도 이번 임무는 스케일이 너무 크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운송 도중에 잃어버린 의료 물자를 찾는 것뿐인데, 굳이 이렇게 많은 인력이 필요한 이유가……
……
니어 선배가 이곳에 저희를 보낸 건 분명 전략적으로 의미가 있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헷, 의미는 무슨.
우린 고작 신입인 데다, 실전 경험도 없는데, 상관들이 우릴 어려운 임무에 파견할 거라고 생각해?
난 전에 같이 훈련했던 의료부 여자애랑 같은 팀에 배정 못 받은 게 아쉬울 뿐이야, 나도 원래는……
잠깐! 저기 보세요……
저, 저쪽에 불빛이!
가자, 무슨 일인지 확인해야겠어.
이, 이건…… 천막이 전부 불에 탔잖아……
로도스 아일랜드의 로고가 보이는데…… 여기가 저희의 임시 캠프였나 봐요.
그럼 천막 안에 있던 그 상자들이, 혹시 저희가 잃어버린 의료 물자 아닐까요?
……안나, 의료부가 준 약품 샘플이랑 비교해 봐.
……
……
저…… 팀장, 이스티나 씨는 우리 소대에 없는데……
……
귀찮네.
이런 말 실례일 수 있지만, 팀장님은 이번 작전 내내 마음이 다른 곳에 있는 것 같습니다.
제 기억으로 팀장은 이스티나 씨, 로사 씨와 같은 학생자치단 출신이셨죠?
하지만 지금 팀장과 같은 소대에 있는 건 저희입니다. 빛의 기사님도 전장에선 자신의 팀원을 믿어야 한다고 하셨잖아요?
그…… 저기……
팀장, 대충 확인해 봤는데, 천막에 있는 물자들은 이전에 잃어버린 물자가 맞는 것 같아요.
틀림없다니까! 함선에서 봤던 그 운송 대기 물자랑 포장이 똑같다고.
……
가자. 그렇게 긴장들 하지 말고, 이제 돌아가서 우리의 성과를 보여주자고…… 이렇게 순조로울 줄은 몰랐지만!
잠깐…… 가면 안 돼!
으윽……
너, 너흰 누구야? 이거 놔!
움직이지 마!
더 움직이면 다음엔 팔이 아니라 네 머리를 노려 주겠어.
……
너희는 누구냐?
알려 줄 이유는 없다.
약, 장비, 돈 될 만한 건 전부 다 내려놓고 여기서 꺼져.
형제들이여!
팀장……
쳇.
숀슨,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딱 있어.
네? 팀장, 진정하세요……
무스! 지금!
아, 알겠습니다!
으악!
으윽……
야, 너.
네가 여기 우두머리냐?
……
대답해!
……
기절한 것 같은데요……
흥, 매를 부르는군.
숀슨, 괜찮아?
……팀장, 제 이름 알고 계셨네요.
……
걱정 마세요, 상처가 깊지는 않으니까요…… 이 정도는 제가 처리할 수 있습니다……
방금은 그냥 심장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랐을 뿐이에요.
전 역시 전장에 적합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돌아가면 후방 지원부나 의료부로 부서를 옮길 수 있을지 상담을 해 볼 생각이에요.
겁쟁이 녀석.
루치, 천막 상황은 어때?
조사해 봤는데, 확실히 로도스 아일랜드 물자 상자예요……
근데 상자 안이 텅 비어 있었어요, 약품이 전부 사라졌다고요!
……
젠장, 야, 일어나 봐, 자는 척하지 말고!
지마는 강도의 옷깃을 붙잡곤 이리저리 흔들었다. 그러자 강도의 주머니에 담겨 있던 물건들이 땅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 이건…… 페테르헤임 고등학교…… 학생증인가요?
……
여긴……
깼구나.
넌 숲에 있던 그…… 여긴 어디지? 대체 무슨 속셈이냐. 내 다른 형제들은 어디 있지?
귀찮네, 깨어나자마자 의미 없는 질문 공세라니.
널 여기로 데려온 건 우리야. 네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영양실조인 네게 영양도 보충해줬지. 게다가 널 이런 숙소에 데려와서 머물게까지 해 줬는데……
말투 좀 조심하지 그래?
다닐.
……
어떻게 내 이름을……
네 학생증.
그런 외딴 숲에서 동창을 만나게 될 줄이야.
내가 누군지 모르겠어?
……
너, 설마 동장군이냐? 못 알아봤어……
……
좋아, 날 기억하고 있다니 얘기가 빨라지겠네.
질문 하나 할게.
의료 물자, 어딨어?
……
다 팔아버렸어.
팔다니? 그럼 돈은?
……전부 다 써 버렸어.
그 말 진심이야?
……
너…… 이런 녀석일 줄 알았으면 그 귀족 학생들한테 얻어맞게 내버려 두는 거였는데.
네가 정말로 그걸 다 팔아 버렸다면, 분명 그 물자를 사들인 사람도 있었겠지? 구매자와 그 거래의 관계자, 거래 금액까지 빠짐없이 다 알려 줘야겠어.
너도 상황 파악을 하는 게 좋을 거야. 로도스 아일랜드가 잠시 널 거둬들이긴 했지만, 네가 이런 식으로 나오면 우리도 널 우르수스 경찰에 넘겨 버릴 수밖에 없어. 우리에겐 그럴 권리도 있고.
……
그 동장군이 '경찰에 넘긴다'라는 말을 할 줄이야…… 아무래도 체르노보그를 떠나 있는 동안 사람이 변한 모양이네.
동장군…… 아니, 소냐. 페테르헤임 고등학교 학생이었던 예전의 나였다면 분명 네 말에 따랐겠지.
그 당시의 나에겐 선택지가 많지 않았으니까. 널 따르거나, 아니면 귀족 놈들의 발아래서 기어 다니거나.
지금도 날 따라도 좋아. 그때처럼, 우르수스 학생자치단에 들어왔던 것처럼 말이야.
여긴 로도스 아일랜드야, 로도스 아일랜드가 우리를 체르노보그에서 벗어나게 해 줬지.
네가 로도스 아일랜드의 일원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일할 마음만 있다면 아마 문제없을 거야.
흥, 우르수스 학생자치단이라, 그리운 이름이네.
……
안나도 로도스 아일랜드에 있다면, 그때 네 곁엔 왜 안나가 없었던 거지? 네 옆에 있던 두 명보단 안나가 훨씬 똑똑할 텐데.
쳇. 그 둘은 내 팀원이야, 네놈 따위가 함부로 평가할 사람들이 아니라고.
그리고 안나는…… 안나만의 일이 있으니까.
흥, 안나의 일이라.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너 설마 네가 계속 학생자치단의 리더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너랑 안나 일행을 거둬준 건 로도스 아일랜드야.
그런 네 곁에 안나랑 다른 애들이, 예전처럼 영원히 있어 줄 것 같아?
……쳇.
물론 그 녀석들도 영원히 내 곁에 있진 않겠지, 그러지 않는 편이 좋기도 하고.
예전엔 미래 따위 생각하지 않았어.
그때의 난 우리가 체르노보그에서 무사히 빠져나온 것만으로도, 미래가 어떻게 되든 그 시절보단 나을 거라며 스스로를 위로했었지.
실제로 로도스 아일랜드엔 신세를 지고 있다고 말하는 편이 맞겠지. 우리는 점점 더 그러한 생활에 익숙해질 거고, 지금도 각자한테 어울리는 일을 찾아서 하고 있어.
우리에게 페테르헤임은 이미 과거야. 우르수스 학생자치단도 마찬가지고.
5일 전
뭐, 뭐라고? 해산?
우르수스 학생자치단을 해산한다니?
킁킁…… 꿀 냄새는 안 나는데…… 벌꿀주에 취한 건 아닌 것 같고……
지금 제정신인데 그딴 헛소리를 하는 거야!?
헛소리가 아니야, 내가 내린 결정이지.
소냐……
나탈리야도 막 돌아왔잖아요, 같이 성적도 축하해 주기로 했고요.
자치단을 해산한다니…… 정말 그러기로 결정했다고 해도, 굳이 그 얘기를 지금 해야겠어요?
아니, 지금이니까 하는 말이야.
우리가 자치단을 결성한 가장 큰 이유는, 서로가 서로를 지탱해 주면서 혼란스러웠던 나날들을 함께 헤쳐 나가기 위해서였지.
하지만 지금 우리는 그 혼란스러웠던 나날들을 전부 헤쳐 나왔어. 자치단에 있던 모두가, 로도스 아일랜드에서 해야 할 일을 찾았고, 지금 잘 나아가고 있잖아.
바로 지금의 나탈리야처럼 말이야. 싸움이라곤 전혀 몰랐던 녀석이 지금은 실전 연습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어…… 나탈리야의 변화야말로 우리가 보고 배울 점이라고 생각해.
예전엔 난 리더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었어…… 하지만 같이 오랜 시간을 보낸 지금이라면, 너희들의 신뢰를 조금은 얻었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계속 이 리더에 자리에 있어도 된다는 건 아니야.
과거의 난 우르수스 학생자치단의 리더였지만, 지금은 로도스 아일랜드 선발대의 팀장이야…… 소냐의 미래에는, 아직 많은 가능성이 있지.
그리고 그건 너희도 마찬가지야.
……
으응, 그치만, 굼은 아직 잘 모르겠어.
자치단이 해산되면 뭐가 달라지는 거야?
……
우르수스 학생자치단이 아니어도, 우리 다섯 명이 계속 같이 있을 수 있는 거잖아?
그거와 해산은 달라, 라다. 좋은 요리사가 되고 싶다고 했잖아? 안나도 자기는 대학에 가서 연구하고 싶다고 말했고.
예전이라면 정말 꿈도 못 꿀 일들이겠지. 하지만 우리에겐 더 좋은 기회가 주어졌어. 어쩌면…… 아니, 분명 모두에게 더 좋은 미래가 있을 거야.
우린 분명 더 나은 자신이 될 수 있을 거야. 그저 우르수스 학생자치단의 일원이 아닐 뿐.
정말이지, 우리의 리더답네.
내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어…… 가장 먼저 자치단을 나가겠다는 사람이 지마 네가 될 줄이야.
나 혼자 나가겠다는 게 아니라, 우르수스 학생자치단을 해산하는 거야! 다들 자유의 몸이 되는 거라고!
소냐.
이게 바로 우리의 미래에 대한 네 대답이야?
팀장은 그…… 성인 맞으시죠?
우웨엑……
안나랑 다른 애들이, 예전처럼 영원히 있어 줄 것 같아?
으윽……
자치단이 해산되면 뭐가 달라지는 거야?
우웨엑……
전부 토해내. 하나도 남기지 말고.
소냐, 넌 만능이 아니야.
자치단의 모두를 위해서는 이게 최선이야.
변기 속의 물이 소용돌이를 치며, 마치 자신마저도 빨아들일 것만 같은 느낌이 들게 했다. 그녀들이 존재하는 삶으로부터, 날 빼내어 줄 것만 같다.
지금, 미래가 내 눈앞에 펼쳐져 있다.
어쩌면 좋지?
정말…… 한동안은 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함선에 돌아간 지 며칠이나 됐다고, 다시 이런 곳으로 보내지게 될 줄이야……
게다가 저번보다 더 추워진 느낌이야……
팀장은 여전히 의욕이 넘치는 얼굴이던데…… 정말 못 말린다니까.
의욕이 넘친다고? 저건 누가 봐도 무리하게 버티고 있는 모습이잖아……
야, 너 그 얘기 들었어? 학생자치단이 해산됐대!
뭐? 진짜로?
너희 둘, 또 무슨 불만이 있길래 구시렁대고 있는 거야?
아, 팀장! 저, 저흰 절대로 불만 같은 거 없습니다, 정말로요!
이번 한 번은 봐주지.
루치, 담배 하나 줘 봐.
……팀장, 빛의 기사님께 부탁받은 게 있어서요.
담배는 절대 못 드리니까, 저한테 뭐라고 그러지 마세요.
쳇, 니어 그 녀석, 쓸데없는 짓을.
아 참, 팀장……
왜?
다닐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순순히 마을 위치를 알려줬다는 게 믿기지 않아요.
그렇게 많은 의료 물자를 정말 전부 그 마을에 숨겨뒀대요?
이건 니어가 얘기해 준 정보야…… 니어가 어떻게 그 녀석한테서 정보를 알아낸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니어가 계속 “나한테 맡겨라” 같은 얼굴이길래, 별로 놀랍지도 않았어.
하지만 이렇게 황량한 곳에…… 정말로 사람이 살긴 하는 걸까요?
팀장, 이거 혹시 빛의 기사가 팀장을 시험하려고 한다든가 그런 건 아니겠죠……
저, 저기 보세요!
저기 어떤 노인분이……
……
무슨 일인가, 젊은이?
이런 설원에서 낯선 이를 만나는 게 흔한 일은 아니지.
이 주변에 다른 마을은 없나?
……
저기 있는 작은 집 하나 보이나? 저 집이 있는 방향으로 가면 우리 마을이 나온다네.
너…… 아니, 당신, 혹시 다닐이라는 사람을 알아?
다닐이라……
크, 큰일입니다! 촌장님!
무슨 일이지?
마을에 불이 났습니다! 불이 창고로 옮겨붙을 기세예요! 겨우내 먹을 식량이 전부 거기 있는데……
하아…… 하…… 지마 팀장님! 동쪽의 마을 주민분들은 전부 대피시켰습니다!
북쪽도 대피 완료입니다!
서쪽, 남쪽 주민들도 전부 대피시켰습니다!
좋아. 무스, 넌 촌장님이랑 같이 다시 한번 마을 주민의 수를 파악해. 그다음엔 불을 끄는 데 협력해. 주민들이 벽돌을 하나하나씩 쌓아가면서 만든 집들이야, 가능한 많은 집을 확보하도록.
아, 알겠습니다!
숀슨, 루치, 너흰 날 따라와. 이제 할 작업이 위험하긴 한데…… 우린 창고에 가서 의료 물자를 빼낸다.
네? 그 의료 물자가 정말로 이 마을에 있었던 거군요!
그래…… 이 얘긴 나중에 하도록 하자.
하지만…… 물자가 전부 창고에 있다고요? 불이 이렇게 크게 났는데……
나도 알아, 이건 명령이 아니야.
너희가 가지 않겠다면 나 혼자 가겠어.
팀장, 이건 가고 안 가고의 문제가 아니라……
할아버지, 할아버지, 형이 우릴 도와주러 오겠지?
……
봄에 형이 가을이 되면 돌아오겠다고 그랬잖아.
그리고 가을이 되니까 형이 정말로 돌아왔어, 기억나지? 그때 형이 우리랑 같이 곡식도 수확하고 그랬는데.
이놈아, 녀석이 겨울에 돌아오겠다고는 안 했잖니.
그렇지만 형이, 우리가 빵을 다 먹을 때쯤이면 돌아온다고 했단 말이야.
부, 분명 그랬는데……
……할아버지, 겨울이면 먹을 빵이 다 떨어질 거라고 했지?
그럼 형도 금방 돌아오겠네!
하아……
자, 착하지. 얼른 가보거라. 저기 할머니가 기다리고 있잖니.
……
……
계획을 변경한다. 일단 마을 주민들의 식량 먼저 확보해.
하, 하지만 팀장! 지금 상황을 보면 이 마을 주민들도 다닐이랑 한패인 게 틀림없다고요!
우리 물건을 빼앗기까지 한 녀석들인데, 정말로 우리가 저 녀석들을 도와줘야 해요?
그거랑은 다른 얘기야…… 너희 둘, 따라와.
……
이건 명령이야. 의료 물자에 대해선…… 원만하게 해결하지 못할 시에는 내가 전부 책임지겠어.
지금 창고에 있는 식량, 얼마나 더 건질 수 있을 것 같아?
불길을 보면 발화점 주변은 포기해야 할 겁니다. 그래도 바깥쪽은 어느 정도 건질 수 있을 것 같네요.
응? 굼은 그렇게 생각 안 해~ 분명 안쪽도 건질 수 있을 거야, 조금 타 버렸을지도 모르지만!
이제 드디어 훈련의 성과를 보여 줄 때가 된 건가! 자자, 한번 해 보자고!
아무튼 지금이라면 아직 늦지 않았어. 우리가 함께라면 이 이상의 비극은 막을 수 있을 거야.
너, 너희들……
너희들이 어떻게 여기에?
그 때……
너! 너 이 자식…… 네가 지금 무슨 짓을 했는지 알기나 해?!
난……
그냥 실수로……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어서 물 가져와! 어서!
안 돼, 이 정도 물로는 소용없어!
부, 불길이 번지는 속도가 너무 빨라!
……
젠장…… 그럼 뭘 기다리는 건데! 어서 도망쳐!
……아, 안 돼…… 여기가 마지막 식량고인데!
저 녀석은 내버려 두고 어서 도망치자!
다닐이 저희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소냐에게 다른 우르수스 학생자치단 멤버들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다고 하더군요.
그 편지를 받고 저희는 곧바로 니어 씨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니어 씨가 이 마을의 위치를 알려 주셨죠.
……
다닐 그 자식……
이제 됐어, 소냐. 뭘 망설이는 거야.
우리 다섯이면 충분하잖아! 그나저나 저 둘은 어쩌지?
윽……
저…… 저희는……
의료 물자를 확보하겠습니다!
모두들 힘내! 끝나면 굼이 슈퍼 울트라 테이스티 흘렙을 구워줄게!
소냐, 그럼 가볼까요.
……
안나, 너희까지 올 필요는 정말 없었는데.
자치단은 이미 해산됐잖아.
맞아요. 하지만 그건 소냐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죠. 가장 처음 우르수스 학생자치단을 설립하자고 제안한 건 저였습니다. 설마 그런 제 의견을 묵살하겠다는 건 아니겠죠?
게다가 라다, 로잘린드, 나탈리야의 의견도 들어 봐야죠.
그럼 너희의 의견은 뭔데?
전원 반대입니다.
……
저도 소냐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꺼냈는지 어느 정도는 알 것 같아요.
저도 자치단의 존속에 대해 여러모로 생각을 해 봤는데……
만약 우리가 로도스 아일랜드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분명 다닐과 다를 것 없이 살았을 테죠.
하지만 소냐…… 로도스 아일랜드가 우리에게 많은 걸 제공해줬다고 해서, 우리가 꼭 무언가를 잃어야 하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우린 지금 서로 다른 소대에 속해 있잖아……
자, 도와주세요.
이거, 꽤 무겁네요.
……
이쪽은 내가 잡는다. 속도를 조금 높여보자고.
소냐.
왜?
소냐의 말대로 우린 지금 소속된 소대도 다르고, 앞으로 다 함께 모여있을 시간이, 기회가 점점 줄어들지도 몰라요. 하지만……
적어도 소냐가 뭔가를 홀로 짊어지려고 할 때, 우린 이렇게 곁에 있어 줄 거예요……
왜냐하면 우린, 영원히 계속 친구니까요.
이상해……
우리 다섯이 이렇게 같이 있다니……
게다가 그때처럼 불과 마주하고 있어……
만약 이 불만 아니었다면……
아니, 만약이란 건 없어.
설사 불길이 이미 치솟고 있었을지라도.
우리는 변함없이 서로의 손을 맞잡고,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을 거야.
우리는 변함없이…… 같이 식량을 옮겼을 거야.
얼어붙은 땅은 푹신한 흙이 된 이 순간.
씨앗은 이제 더 이상 공허한 이름을 고집하거나 하지 않는다.
이 겨울밤이 지나면, 그녀의 마음속엔 자그마한 불꽃이 피어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