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꽃
사람들의 두려움과 배척에 고통받으면서도 의사의 책임을 저버린 적이 없었던 히비스커스. 재앙이 닥쳐오자, 사람들에게 배척받던 살카즈는 애프터글로의 마지막 희망이 되었다.
등장 오퍼레이터: 히비스커스, 히비스커스 더 퓨리파이어
히비스커스……!
히비스커스! 어디 있는 거야……
내 다리…… 아파, 너무 아파……
괜찮아. 함부로 움직이지 마. 내가 한번 볼게.
다행이다, 멍든 것뿐이야. 찰과상도 없고 뼈가 다치지도 않았어. 약을 좀 발라줄 테니 별일 없을 거야.
하지만…… 정말 너무 아파. 조금만 움직여도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아프다고!
응, 나도 겪어봤어. 어릴 때 넘어져서 다쳤는데, 피를 엄청 흘렸었어. 그때 너무 아프고 무서워서 울어버렸다니까.
그런데 지금 넌 울지도 않잖아. 그러니까 넌 강한 아이야, 그렇지?
(열심히 눈을 비빈다)
하지만 계속 여기 앉아있으면 낫지 않을 거야.
차가운 빗물 속에 계속 앉아 있을래, 아니면 집에 돌아가서 부드럽고 편한 침대에서 푹 쉴래?
나, 난……
자, 내 손 잡아. 천천히 일어나는 거야. 그렇지, 잘했어. 알아서 돌아갈 수 있지?
으…… 응!
정말 용감한 아이네. 어서 돌아가. 엄마랑 아빠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야.
고, 고마워, 누나!
히비스커스!
히비스커스, 대체 음악회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왜 혼자 여기에 있어?
안단테 씨…… 마침 잘 왔어요.
설명할 시간이 없어요. 여기 부상자들이 있어요. 막 간단한 처치를 마친 참이죠.
하지만 주위에, 오리지늄 농도가 너무 높아요…… 어, 어서 사람들을 사무소로 데리고 가야 해요. 그리고 다시, 다시 검사해야……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지금 네가 다른 사람을 돌볼 때야? 네 부상은 대체 어떻게 된 거고!
부상이요? 그게 무슨……
아가씨, 그럴 필요까지는……
……에벤홀츠 씨, 여기는 제가 막을게요. 지금이에요!
어째서, 그때 분명 막았는데……
걱정 말아요. 이래 봬도 라바에게서 이것저것 배웠으니까요, 아츠라면……
히비스커스……!
며칠 전
안녕하세요. 구급 전화를 받고 왔어요. 이곳이 대런 씨의 집인가요?
어째서 당신이…… 안단테 씨는?
안단테 선생님은 왕진을 나갔어요. 대신 제가 상황을 보러 온 거고요. 걱정 마세요. 저도 전문적인 의료 교육을 받았답니다.
괜찮으시다면 들어가서 진찰해봐도 될까요? 그냥 기본적인 검사일 뿐이에요. 피도 안 뽑을 거고……
우리집에 가까이 오지 마!
긴장하지 마세요. 당신의 허락 없이는 가까이 가지 않을 테니까요.
하지만 상황이 좋지 않다고 들었어요. 제때 검사를 받아보는 편이……
그게 당신이랑 무슨 상관이야!
몸 상태는 요즘 계속 괜찮았어. 하지만 당신, 살카즈가 애프터글로에 온 뒤로 병이 난 거라고!
예언 대로야. 당신들 살카즈가 애프터글로에 재앙을 가져온 거라고!
사정이 좀 복잡해요,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하지만 지금 급하게 도움이 필요하잖아요. 건강이 가장 중요한 거 아닌가요?
됐어! 죽어도 살카즈의 도움은 받지 않을 거야.
알았어요. 진찰을 받고 싶지 않다면 절대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을게요.
이것들은 필요할지도 모르는 약이에요…… 이건 살카즈의 도움이 아니에요. 전 로도스 아일랜드 대신 약이 필요한 사람에게 전해주는 것뿐이니까요.
입구에 약을 두고 갈 테니 조금 있다가 가져가세요. 알겠죠?
어서 이곳을 떠나…… 아니면 보안관을 부르겠어.
죄송해요…… 바로 갈게요.
지금까지 애프터글로 전체를 한 번씩은 돌아본 것 같아. 갑자기 상태가 좋아진 감염자의 수를 봤을 때, 사무소의 물자 비축량으로는 특별 상황에 대응할 수 없어.
주문한 약은 어째서 아직 오지 않는 거지…… 방금 그분이 약을 낭비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히비스커스……
……네?
멀리서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여 히비스커스가 급히 고개를 돌렸지만, 그곳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집마다 문을 굳게 걸어 잠근 모습을 보니 며칠 전의 흥겹던 광경이 마치 없었던 일만 같았다.
하지만 오래된 담벼락과 바닥에 흩어진 흑청색의 석판은 너무나도 익숙한 모습이었다.
히비스커스, 내일 치 식재료를 창고에 옮겨달라고 했을 뿐인데 어째서 일주일 치를 전부 옮겨놓은 거야. 정말 지칠 줄도 모르나 봐.
괜찮아요, 아저씨! 살카즈의 힘을 얕보지 말라고요.
그래그래…… 힘들지? 자, 방금 만든 감자랑 핀 튀김이야. 2인분 가져가서 여동생이랑 먹으렴.
감사합니다, 아저씨! 하지만 엄마가 밥을 차려 뒀을 거예요. 저랑 라바는 1인분이면 충분해요!
내가 말했잖아. 꼬마 아가씨에게 기름진 걸 너무 많이 먹이면 안 된다니까.
히비스커스, 이 과일 한 봉지 가져가렴. 널 위해 특별히 남겨둔 거란다. 엄청 달단다.
감사합니다!
감사하긴. 다음에도 우리 집 꼬맹이의 숙제를 봐달라고 부탁해야 하는걸.
딴생각하지 말고 정신 차리자……
다녀왔어요.
또 어디를 나갔다가 온 거야! 며칠 동안은 조사는 전부 내게 맡기라고 했잖아?
지금 애프터글로 내의 병세가 너무 복잡해요. 전부 당신에게만 맡길 수는 없잖아요.
그냥 필요한 사람에게 약을 좀 전해준 것뿐이에요.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는 않았을 거예요.
……널 곤란하게 만든 사람은 없었지?
(고개를 흔든다)
켈시 선생님이 말씀하셨잖아, 메딕 오퍼레이터는 임무를 수행할 때 자신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며칠 전의 그 상황은 확실히 그쪽 잘못이었지만 그렇게 앞에 나서는 건 너무 위험했어.
미안해요. 저도 반성했어요…… 그때는 그냥 좀 화가 났기도 하고 급하기도 해서, 잘잘못을 가려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런 논쟁은 의미 없는 짓이었어요.
반성했으면 됐어. 아무튼 다음에도 그런 위험한 짓을 하면 본함에 보고할 거야!
사실, 다들 원래 악의는 없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냥 요즘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서 무서웠던 거겠죠.
제가 애프터글로에 처음 왔을 땐 제게 춤을 권유한 사람도 있었는걸요.
그 사람, 아마 널 카프리니라고 생각했을걸……
전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사실 저도 최근에서야 알게 됐어요. 카프리니는 살카즈와 카프리니의 뿔을 한눈에 구분할 수 있더라고요. 예전에는 별 차이가 없는 줄 알았는데 말이죠.
참,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어요.
사실 비세하임에 도착하기 전에 길에서 기절한 카프리니 소녀를 만났어요.
전 아이에게 약이랑 물을 먹였어요. 아이가 깨어났을 때 제가 살카즈인 걸 알아본 모양이더라고요. 엄청 무서워하는 것 같았어요.
그때는 저도 당황한 데다 아이를 놀라게 하고 싶지 않아서 “무서워하지 마. 난 사실 카프리니야!”라고 말했어요.
그런데 전혀 안 믿더군요. 비명을 지르면서 도망가버리지 뭐예요.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웃겨요. 어떤 살카즈가 자기소개를 그런 식으로 하겠어요.
하나도 안 웃겨.
윽……
제가 문 열게요.
어째서 당신이……?
너 방금 우리 집에서 나왔잖아, 기억 안 나?
내가 아들이야! 감히 우리 아버지의 피를 뽑아?!
안단테 선생은? 그 사람을 찾아왔어.
('없다고 해'라는 수신호를 보낸다)
저기, 무슨 일로 오셨죠? 안단테 선생님은 안 계시니, 제게 얘기하시면 돼요.
저기, 그러니까, 그……
우, 우리 아버지를 살려줘!
무슨 일이 생겼나요?
며칠 전까지 아버지의 상태는 괜찮았어. 하지만 오늘 아침부터 뭔가 이상해.
열이 엄청 높은데다 피부에도 새로운 결정이 돋아났어……
선생! 제발 도와줘……
안내해주세요.
도, 도와주는 건가……? 고마……
얘기할 시간이 없어요. 어서 출발해요.
(고통스러운 신음)
……선생님, 우리 아버지는……
방금 안정을 위해 가장 기본적인 처치를 마쳤고, 일단은 위험한 고비를 넘겼어요. 푹 주무시게 두세요.
아버지의 병, 나을 수 있는 건가요……
솔직하게 말하면 낙관적이지는 않아요.
어째서……
애프터글로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아버지께서는 2일간 몸이 갑자기 좋아졌어요. 이걸 보통 '유사 회복'이라고 해요.
몸이 손상되지 않은 부분을 사용해서 손상된 부분 중 잃은 기능을 대신하는 거예요. 하지만 이런 조정 상태는 안정적이지 않아서 결국 한계가 오기 마련이죠.
아버지께서는 지금 유사 회복 이후의 '대상부전' 단계에요. 광석병의 병세가 급격하게 나빠지죠. 게다가 연세가 많으셔서 이런 불균형이 더욱 심각한 상태에요.
저번에도 비슷한 얘기를 했었죠.
내 잘못이야. 조금만 더 일찍 알아차렸다면……
지나간 일은 후회해도 소용없어요. 중요한 건 앞으로의 시간이에요. 아버지를 더욱 신경 써서 보살펴 드리세요.
식단을 엄격하게 관리해서 균형을 잘 지켜주세요. 이런 때에는 간병이 치료보다 더 중요해요.
아, 알겠습니다! 꼭 그렇게 할게요!
히비스커스 선생님…… 저기, 저번에는 정말……
히비스커스, 여기 있어?
상황이 심상치 않아. 어서……
잠시만요. 환자를 방해해서는 안 되죠. 나가서 얘기해요.
안단테 씨, 무슨 일이에요?
네가 나가고 얼마 안 돼서 사무소에 열 명이 넘는 환자가 연속으로 찾아왔어. 일부는 갑자기 기절했고, 일부는 생명 징후가 급작스럽게 저하됐어.
게다가 더 많은 사람이 각종 증상 때문에 도움을 청했어. 하지만 단기간 내에는 광석병의 합병증인지 확인할 수가 없어.
역시, 슈나이더 씨 댁만 그런 게 아니었네요. 지금쯤이면 갑자기 증세가 좋아졌던 환자들이 전부 대상부전 단계에 처하게 될 거예요.
로도스 아일랜드 사무소의 수용 능력으로는 부족해요. 안단테 씨, 다른 병원에 환자를 받아줄 수 있는지 연락해 보셨나요? 전에 예약했던 약은 제때 배달될까요?
다 연락해 봤어. 하지만 다들 이것저것 핑계를 대면서 거절했지. 게다가……
클리피파티오의 가치가 더 높으니 우선 클리피파티오의 의료 자원부터 충분히 비축할 거라고 하더군.
어떻게 그런 무책임한 말을 할 수가 있죠!
안단테 씨, 우선 조금만 버텨주세요. 금방 돌아올게요……
히비스커스, 일단 진정해.
지금은 인심이 흉흉할 때야. 게다가 많은 사람이 유언비어를 믿고 있을 거고. 이런 상황에서 넌 함부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편이 좋아.
그렇다고 제가……
……
……당신의 말이 맞아요.
안단테 씨, 사무소의 환자들은 일단 당신에게 부탁해도 될까요?
걱정 마. 애프터글로에 오래 있었던 만큼 나도 경험은 충분하니까.
저도 돕겠습니다!
하지만 당신 아버지가……
잠깐은 이웃에게 부탁하면 돼요…… 지금 일손이 많이 부족하잖아요?
저도 도울게요. 뭐든 하겠습니다. 부탁드려요.
좋아요. 몸이 갑자기 유난히 좋아졌던 환자들을 이 명단에 정리해 뒀어요.
당신은 애프터글로에 익숙하니 이 명단을 대조해서 병세가 갑자기 나빠진 사람을 집중 치료할 수 있도록 사무소에 데려와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병원 쪽은 제게 맡겨주세요.
제가 직접 가서 설득하겠어요.
선생, 사, 살려줘……
으아앙~ 집에 가고 싶어……
좁은 공간에 평소의 수 배에 달하는 환자가 북적이고 있었다.
울음소리, 신음 소리, 그리고 질병의 냄새가 공기 속에 한데 섞여 숨통을 죄는 그물을 드리우고 있었다.
콜록콜록…… 이게 무슨 냄새야…… 안단테 선생님, 환자를 전부 데려왔습니다.
환자의 수가…… 안 돼.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너무 많아. 예전에 조사한 이상 회복자 수와 전혀 달라.
응급약밖에 없는 이런 환경에서, 병균의 교차 감염 때문이라도 발생하면 다들 위험해질 거야……
안단테 씨 말대로예요. 이런 상태에서는 공포가 질병보다 더욱 큰 위협이 될 수도 있어요.
환자는 자신의 상황을 판단할 수 없어요. 대상부전 단계가 아닌 환자도 몸의 불편함 때문에 공포심을 느끼게 되겠죠.
지금 당장 급한 건 이상 상태의 구체적인 이유를 알아내는 거예요. 각자 처리하죠.
대상부전 단계에 처한 환자는 몸에 급격한 기능의 불균형이 생겼을 거예요. 제때 피 검사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체온이 가장 직접적인 지표라고 할 수 있죠……
히비스커스! 그쪽은 좀 괜찮아?
전…… 괜찮아요.
안단테 씨, 사무소 쪽은 일단 부탁드릴게요.
걱정 마세요. 반드시 약을 가져올게요.
아, 알았어! 조심해야 해!
선생님, 이 사람이 소란을 피우는 건가요?
거기 아가씨. 여기는 개인병원의 병실입니다. 다른 의료 기관의 의사라 해도, 허가 없이는 들어올 수 없어요.
마지막 경고예요. 당장 이곳을 떠나세요.
같은 의료인으로서 저도 다른 의사를 방해하기는 싫어요.
하지만 감기 환자 한 명이 열 명은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을 혼자 차지하고 있는 게, 당신들이 말한 '물자 부족, 병상 부족' 상태인가요?
환자의 신분에 따른 특수성이 있는 거죠. 저희도 저희만의 기준이 있습니다……
선생님? 이게 무슨 일이죠? 저, 저 여자는, 그 예언 속 악마 아닙니까?
여, 여기! 사람 살려! 저 살카즈를 내 방에서 쫓아내!
제가 정말 예언 속 악마라면, 여기 당신을 구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히익……
함부로 움직이지 마!
순간적으로 열 개가 넘는 스태프가 히비스커스를 향했다.
환자를 위협하는 건 그만두시지.
저는 환자를 위협하지 않아요. 저는 의료인으로서 당신들에게 얘기하는 것뿐이에요. 의사가 가져야 할 윤리를 다시 떠올려보고 의료인이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애프터글로의 많은 사람이 위험에 처해 있어요. 저는 로도스 아일랜드 사무소와의 협의에 따라 필요한 약을 제공하고 일정 인원의 환자를 치료해 달라고 부탁드리는 것뿐이에요.
이게 과한 요구인가요?
당신은 수상한 외부인일 뿐이야. 그 예언은 모두가 알고 있어. 이런 때에 내가 왜 너 따위의 말을 들어야 하지?
더는 얘기하고 싶지 않군. 보안관, 쫓아내 주게.
그럼 그냥 절 악마라고 생각하세요.
예언을 믿는다고 하셨죠? 예언에서 뭐라고 했던가요?
“핏속에 악마가 숨어 있으니 만연한 죽음을 불러오리라.” 애프터글로의 예언이 어느 지경까지 진행됐는지 궁금하지 않나요?
예언 속의 그 악마가 바로 당신 앞에 서 있어요. 지금 절 잡아도 돼요. 쫓아도 좋아요. 당신은 살아남기 위해 해야 할 일을 하세요.
그리고 더 고귀하다는 클리피파티오가 과연 재앙 속에서 홀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지켜보세요.
카를 씨, 체온 정상, 혈액의 오리지늄 밀도 소폭 상승.
마르타 아주머니. 체온 정상, 혈액의 오리지늄 밀도 정상.
병례도 많고…… 기구도 너무 많아…… 나는…… 이제 더는 못 옮겨……
건강 식단은 그만 먹고 싶어…… 고기를 먹고 싶다고……
아무래도 안단테 씨는 오늘 식사를 하지 못했나 보네요. 꿈에서도 먹을 걸 찾다니.
저기…… 안단테 씨, 침이 흐르고 있어요.
히비스커스 선생님…… 아직도 쉬지 않으신 겁니까.
환자의 상황을 체크해 보고 있었을 뿐이에요. 낮에는 모습을 드러내기가 힘드니까 밤에라도 뭔가 해야죠.
오늘 정말 고생하셨어요.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별일 없으면 우선 집에 가서 푹 쉬세요.
전 역시…… 여기 있겠습니다. 참, 여기 물이요.
고마워요.
히비스커스는 손을 뻗어 물병을 받으려고 했지만 손에서 힘이 빠진 탓에 제대로 잡지 못했다. 물병이 땅에 떨어져 굴러갔다.
미안해요…… 제가 주울게요.
괜찮으신가요?
네, 괜찮아요. 그냥 실수한 것뿐이에요……
오늘 오후에 당신이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병원에서 차가 왔어요. 대체 그쪽을 어떻게 설득한 건가요?
설득이라…… '이성적으로 설득'한 건 아니에요……
아무튼 이제야 상황이 조금 안정됐네요. 아마 이쪽의 임시 격리 구역도 내일이면 정리할 수 있겠어요.
히비스커스 선생님…… 구, 궁금한 게 있어요.
막 애프터글로에 오셨을 때는 저희랑 친하지도, 가깝지도 않았죠. 게다가 어떤 사람은, 그렇게 심한 짓도 했는데…… 왜 저희를……
으음, 생각해 보면 제가 의사로 취급받은 건 이곳이 처음이네요.
네?
본부에 있을 땐 보통 환자를 돌보거나 보조 의사로 일했거든요. 지금은 제가 처음으로 주치의가 할 일을 하고 있으니까요.
봐요. 당신도 절 선생님이라고 부르잖아요. 그러니 당연히 책임을 다해야죠.
예전에 당신에게 했던 말도, 용서해 주시는 겁니까……?
만약 제가 용서하지 않겠다고 한다면요?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제가 나쁜 놈이었어요!
화가 풀리지 않는다면, 플루트로 저를 흠씬 두들겨 패셔도 됩니다!
농담이었어요.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음,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니까요.
모두가 무서운 위험을 겪었는 데다 미지의 위협을 마주하고 있잖아요. 외부인을 경계하는 건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일이죠.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게다가 만약 제가 정말 떠나버렸다면 예언이 이뤄지는 거 아니겠어요? 애프터글로에 재앙을 불러오고 사라져버린 악마가 되는 거잖아요.
원한은 새로운 원한을 낳을 뿐이에요. 영원히 이해가 될 수 없죠.
전 그냥, 제가 뭔가를 해야 모두의 편견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한 것뿐이에요. 조금이라도 좋으니까요……
죄송해요. 조금 어지러워서 이상한 말을 해버린 것 같네요……
우, 우선 푹 쉬세요. 근처에 있을 테니까 무슨 일 있으면 언제든 불러주십쇼.
후우…… 이제야 상황이 좀 괜찮아진 것 같네.
물도 마시고 조금 쉬어야……
콜록…… 콜록콜록……
물…… 목말라…… 물을……
아, 여기 물 있어요, 여기요!
콜록콜록…… 후우……
몸은 좀 어때요? 불편한 곳은 없나요?
다, 당신은 살카즈?
그냥, 저를 카프리니라고 생각하세요……
거짓말하지 마. 살카즈와 카프리니의 뿔은 보기만 해도 구분할 수 있어.
아, 역시 그렇군요.
달이, 둥글구먼…… 달이 찬 밤에 살카즈를 만나다니, 나는, 곧 죽는 건가……
그건 또 무슨 전설인가요? 처음 들어보네요.
으윽, 머리야. 쓸데없는 소리를 해 버렸군.
돌봐줘서 고마워…… 살카즈든 카프리니든 상관없겠지…… 함께 노래나 한 곡 부를까?
노래요? 상태가 막 안정됐으니 지금은 푹 쉬는 게 좋을 텐데요.
주위가 너무 조용해…… 내일 죽는다 해도 오늘은 음악이 있었으면 좋겠어.
내가 노래를 부를 테니, 플루트로 반주나 해줘.
좋아요. 그렇게 해서 조금이라도 더 편해진다면……
하지만 사실, 저는 플루트를 그리 잘 불지는 못해요.
간단해. 내 리듬에 맞춰 주기만 하면 돼……
시작한다. 하나, 둘……
하늘은 맑고 푸르며, 산들바람이 흥얼거리네♪
강물은 잔잔하게 흐르고, 가슴속엔 희망이 가득 찼네♪
좁고 긴 골목은 매우 조용했다. 주위의 주민들이 앞장서서 환자를 위해 공간을 비워줬던 것이다.
끊길 듯 이어지는 플루트 소리가 달빛 속에서 울려 퍼졌다. 그것은 마치 소란이 일었던 도시를 달래는 자장가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