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이라 하기 전에
이미 동료들과 로도스 아일랜드 생활에 적응한 이스티나의 앞으로, 뜻밖의 편지 한 통이 라이타니엔에서부터 날아왔다.
음…… 어떤 옷을 입을까?
이 옷은 너무 꽉 끼고, 저 옷은 소매가 좀 짧아. 이렇게 옷 고르기가 어렵게 느껴진 건 굼한테 처음 있는 일이야!
평소에는 보이는 대로 막 입었는데……
……
이 옷은 어때요?
음…… 굼도 기억나. 이 옷은 로사 언니가 굼한테 사준 거잖아…… 엄마 아빠도 예쁘다고 하겠지?
후아…… 으음……
라…… 라다. 거꾸로 입은 거 아니에요? 후드 모자가 앞에 있잖아요……
자, 제가 다시 입혀줄게요.
헤헤. 고마워, 이스티나 언니!
하여간.
오랜만에 부모님을 만나는데 변한 것 하나 없이 여전히 이렇게 바보 같아서 어떡해요?
……음.
그래도 괜찮아. 굼은 엄마 아빠를 만나는 것만으로도 좋은걸!
엄마 아빠를 만나면 들려주려고 언니들과 있었던 일을 노트에 적어뒀어! 로도스 아일랜드에서 지내는 모습도 많이 찍어뒀더니, 앨범이 이렇게 두꺼워진 거 있지!
그리고…… 이걸 봐! 굼이 엄마 아빠를 위해 준비한 선물이야.
이건…… 쿠키 커터인가요? 이 모양은 대체……
헤헤, 언니들을 표현한 거야! 책을 읽는 건 이스티나 언니, 이어폰을 끼고 있는 건 지마 언니. 모자를 비스듬히 쓴 건 로사 언니……
아, 그럼 여기 뿔이 달린 게…… 로잘린드인가요?
아니, 그건 마터호른 아저씨야…… 마터호른 아저씨가 굼한테 쿠키 커터 만드는 법을 오랫동안 가르쳐줬거든. 그래서 특별히 아저씨까지 만들었어!
이 꿀단지를 안고 있는 게 레토 언니야!
……
세세하게 표현하느라 힘들었겠어요, 라다. 앗, 그런데…… 라다 모양이 없네요?
응? 굼은 엄마 아빠가 직접 볼 수 있는데…… 굳이 쿠키 커터가 필요할까?
진짜 굼이 옆에 있으니까 엄마 아빠도 신경 쓰지 않을 거야!
참…… 이스티나 언니는 엄마 아빠한테 뭘 선물할 거야?
아…… 저요?
아직…… 선물을 준비하지 못했어요.
그분들이 살아계신다는 소식이 갑작스럽기도 하고, 직접 만나려고 하니…… 왠지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비현실적…… 굼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굼은 엄마 아빠를 찾았다는 소식에 기뻐서 며칠 동안 밤에 잠도 못 잤어!
……저도 기쁘고 설레요. 당장이라도 그분들 곁으로 달려가고 싶을 정도예요. 다만……
겨우 체르노보그에서 도망친 데다 여러분과 많은 일을 겪고…… 로도스 아일랜드에 온 지도 시간이 제법 많이 흘렀잖아요.
전에도 간간이 부모님 소식이 들려오긴 했지만, 언제나 흐지부지 끝났어요. 이번에도…… 전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
……
후우.
관두죠. 이미 그분들을 찾았다고 하니…… 깊이 생각하지 않고 만날 준비나 잘해야겠어요.
라다.
라다! 문 열어!
아휴, 참. 그렇게 소리 지르지 말라니까…… 뭐 하는 거야! 설마 문을 부술 생각은 아니지?
소냐……
소냐!
……
내가 해볼게.
라다, 문 좀 열어줄래? 다들 널 걱정하고 있어.
거의 이틀째 굶고 있잖아…… 그러다가 아프기라도 하면, 진짜 부모님이 오셨을 때 제대로 만나지도 못할 거야. 그럼……
숙소 방문은 여전히 굳게 닫힌 채였다. 안에서는 아무런 인기척도,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만해, 나탈리야.
인사부 사람들이 그랬잖아. 확인해본 결과 라다의 부모님에 관한 소식은 또 잘못된 거였대. 이렇게 감정을 소모하는 게 처음 있는 일도 아니고.
그때 체르노보그에서 살아나온 것 자체가 이미 큰 행운이란 거 다들 잘 알잖아. 가족을 찾는 일에 관해서는…… 하루빨리 현실을 깨닫는 게 좋아.
더 이상 라다한테 헛된 희망을 주지 마.
……
음……
라다의 부모님은 늘 다른 도시에서 연구 중이셨잖아. 지금 당장 정확한 소식이 없는 것뿐이지, 언젠간 다시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안나, 네 부모님 소식도 있다고 하지 않았어?
……음.
하지만 라다의 상황을 보니 저희 부모님 소식도 정확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드네요.
……안나.
괜찮아요. 정말 잘못된 소식이라 해도…… 전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거예요…… 아마도요.
……
그런 눈으로 바라보지 마세요. 다들 제가 라다처럼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한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전 지금까지도 잘 버텨왔는걸요. 평생 부모님을 못 뵌다 해도 저희의 삶이 완전히 무너지는 것도 아니고요, 그렇죠?
후…… 라다, 괜찮아요.
방에 있고 싶다면 그러도록 해요. 대신 푹 쉬고 잘 자야 해요.
너무 슬플 땐 저를 찾아오세요. 같이 사진이나 더 많이 찍어보는 거예요…… 앨범이 가득 차서 못 넣으면, 새로운 앨범을 또 사면 되잖아요.
아니면 그림을 같이 그려볼까요? 전에 같이 읽었던 책에 나왔던 진저브레드 맨이나 함께 구상했던 저희 다섯 명이 함께 살 수 있는 집을 그리는 거예요……
그곳엔 소냐와 로잘린드가 신나게 겨룰 수 있는 복싱 링뿐만 아니라, 나탈리야와 제가 라다와 함께 케이크를 만들 수 있는 오븐 딸린 주방도 있을 거예요.
그리고 라다가 제게 약속한 책을 잔뜩 꽂아둘 수 있는 방도……
헉…… 허억…… 드디어 찾았네요. 다들 여기 계셨구나……
이스티나 씨, 편지가 한 통 왔어요……
……
저한테요?
네, 조금 전에 도착했어요. 전달자가 최대한 빨리 이스티나 씨에게 전해달라고 신신당부하던걸요.
(새것처럼 보이는 봉투. 봉인된 부분에는 밀랍이 삐져나와 있고, 서명된 우르수스 글자가 왠지 모르게 친숙해……)
(아버지의 책상 위에 놓인 서류 더미에서 이렇게 반듯한 우르수스 손 글씨를 봤던 것 같아. 어머니의 베갯머리에 놓인 책의 메모에서 봤던 것 같기도 하고.)
(이상하다. 왜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리지……)
(설마? 그럴 리가 없잖아……)
저희 부모님이 보내신…… 편지인가요?
이스티나 씨, 저희가 확인해본 결과 이번에는 확실해요. 절대 잘못됐을 리가 없어요.
로도스 아일랜드 라이타니엔 사무소에서 이스티나 씨의 부모님과 연락을 주고받았어요…… 이 편지는 그분들이 보내온 거예요.
……
아, 아……
다음은 65회차 '실제적 노출법을 통한 트라우마 자가치료'입니다.
후……
정말 꿈이 아니네요.
부모님이 라이타니엔에 살아 계신다니.
편지에는 저만 준비되면 언제든 부모님 곁으로 돌아와 함께 지내도 된다는 이야기가 적혀 있었어요.
음……
사실…… 부모님의 생사 문제에 관해서는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요……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곧장 다른 곳으로 주의를 돌렸으니까요.
부모님의 직장이 정부 건물이었다는 것과 체르노보그 도심이 완전히 파괴되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지금껏 두 분이 뻔한 결말을 맞이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생사를 파악하는 것조차 별 의미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심호흡한다)
다시는 부모님을 만날 수 없다는 가정하에 로도스 아일랜드에 남아 소냐와 다른 분들과 함께하게 된 거였는데.
우리는 로도스 아일랜드를 새로운 시작으로 여겼고.
전 모두가 하루라도 빨리 그 악몽에서 벗어나 새로운 일상에 적응할 수 있도록 자세한 계획표까지 만들었어요.
저희는 이곳에서 공부하고 일하면서, 할 수 있는 임무에 참가해 좋은 성과를 냈어요.
이제야 우리의 미래를 그려볼 수 있게 되었는데……
갑자기…… 부모님께 편지가. 지금의 모든 걸 내려놓고 전처럼 곁으로 돌아와도 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죠.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곳을 떠나야 할까요? 로도스 아일랜드와 자치단 동료들을 뒤로 한 채……
라다나 소냐가 먼저 가족을 찾았더라면…… 두 사람은 어떻게 했을까요?
라다는 늘 부모님을 그리워했어요. 소냐도 티는 안 내지만 사실……
참…… 편지. 우선 부모님께 편지를 보내야겠어요.
당분간은 갈 생각이 없다고…… 우선은 이곳에 남아 있겠다고.
들어오세요……
안나, 밥 먹으러 안 가? 로잘린드가 쏜다는데……
……편지 쓰는 중이었어?
네.
부모님께?
네.
……
휴……
소냐, 한번 읽어볼 테니 이렇게 쓰면 될지 확인을……
듣고 싶지 않아.
……
안나, 난 이해가 안 돼. 부모님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직접 만나서 하면 되잖아.
나라면 “네, 금방 돌아갈게요”라고 썼을 거야.
그거면 충분하잖아! 얼마나 간단해?
……
당분간 라이타니엔에 가지 않을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편지를 써야 할지 고민 중이었죠.
뭐?
안 간다고?
그게 무슨 소리야!!
음……
며칠간 응접실 방문 자료 정리를 도와주기로 했거든요. 게다가 하이디 씨와 약속한 독후감도 몇 편 써야 해요. 또……
로도스 아일랜드 수업이 좀 빠듯하잖아요. 시험이 없긴 해도 배울 건 배우고 넘어가야죠.
참, 저희 다섯 명은 다음 주에 도베르만 교관님과 함께 임무 훈련을 하기로 했잖아요? 또 하반기 오퍼레이터 육성 계획에 자치단이 많이 배정되어 있으니까……
라다 때문이구나.
……
라다 때문이라면 이럴 필요 없어.
라다는…… 늘 부모님을 그리워했지만, 아직도 부모님을 찾지 못했어요. 그런데 제가 먼저……
네가 먼저 찾은 게 뭐? 너도 부모님이 보고 싶었잖아, 안 그래?
……당연히 보고 싶었죠. 하지만 로도스 아일랜드에 온 이후로는 다시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전 저희가 해야 할 일이나 나아갈 방향 같은 문제만 고민했지……
전처럼 부모님의 기대를 한몸에 받는 고등학생이 될 거라곤 생각도 못 했어요.
생각도 못 했다기보단, 그런 삶이 돌아오는 건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죠.
전 부모님이 무사하다는 소식을 들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뻐요.
우선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사진으로 서로의 모습을 확인한 후에…… 방학 때, 그때 부모님과 만나는 게 좋겠어요.
……안나.
네가 이렇게 고민스러운 얼굴을 하는 건 정말 드문 일이잖아. 페테르헤임 고등학교에 다닐 때도 이런 표정은 못 봤어.
지금 네 표정을 보고 그 누가 널 엄청난 소식을 전해 들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어?
네가 마지막에 어떤 결정을 내리든…… 부모님, 수업, 일, 우리의 미래…… 물론 모두 중요하지.
하지만, 지금 네게 가장 중요한 게 뭔지 먼저 잘 생각해 봐.
우리는 신경 쓰지 말고. 로도스 아일랜드에서 모두 잘 지내고 있으니까.
라다를 봐. 며칠 전만 해도 방에만 있던 애가 오늘은 히비스커스랑 새로운 야채빵 베이킹을 개발하겠다며 주방을 어지르고 있잖아.
조금 전 식당 앞을 지나오는데 웃음소리가 얼마나 크던지! 내가 달리기가 빨랐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
풉.
……왜 웃어? 너도 애들이 만든 피망 애호박 빵이 궁금해?
그게 아니라 오늘 소냐가 평소와 다른 것 같아서요. 뭐랄까…… 말이 많아진 것 같달까요?
예전 같았으면 이 편지를 찢어버리고는 당장 가라고 했을 거예요…… 기껏해야 “그렇게 고민해서 뭐 해? 귀찮게”라는 말만 덧붙였겠죠.
그런데 이제 위로도 할 줄 아시네요.
……귀찮게.
앗…… 뭐 하는 거야, 왜 갑자기 편지를 찢고 그래?
소냐의 제안을 받아들이려고요.
우선 지금의 제게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생각해보려 해요.
아오, 쫌! 그만 좀 해라! 마지막 잔이라며? 그리고 방금 분명 내가 이겼거든!
으하하, 끅…… 소냐, 그냥 마셔. 방금 잔을 비운 건 방금 전의 너니까, 무효야!
지금, 지금의 넌 아직 안 마셨으니…… 지금 이 잔을 비워야만 해! 꺼……억!
……
로잘린드!!
……더는 못 참아. 끝날 기미가 안 보이잖아. 다음부턴 무슨 일이 있어도 꿀을 저렇게 많이 사게 두지 않겠어……
나탈리야, 네가 같이 좀 마셔줘.
내가? ……난 꿀을 그다지 안 좋아하는데. 홍차를 우릴 때도 꿀을 넣어본 적이 없단 말이야……
뭐? 설마 지금까지 꿀을 한입 가득 먹어본 적이 없단 말이야?
자, 얼른 먹어봐……
자, 잠깐만…… 윽……
……
(날 위한 송별회라더니 왠지 그 핑계로 장난만 치는 것 같네.)
(뭐…… 이것도 나쁘진 않지만.)
이스티나 언니…… 선물이야!
……네? 선물이요?
이건 굼이 부모님께 선물하려던 쿠키 커터잖아요?
음…… 굼은 부모님을 못 만나게 됐으니까…… 이스티나 언니한테 줘도 똑같아!
하지만…… 이러면 다음에 부모님 소식을 듣게 됐을 때 선물할 게 없잖아요?
헤헤, 그때쯤이면 굼이 새로운 걸 만들고도 남을걸!
이걸 봐!
프라이팬을 들고 있는 게…… 라다인가요?
응! 굼이 새로 만든 거야! 이러면 우리 다섯 명의 쿠키 커터가 전부 있는 거지!
이스티나 언니는 지마 언니와 굼을 포함한 모두와 함께 돌아가는 거야!
……라다.
정말 고마워요. 돌아올 때, 작은 선물을 챙겨올게요.
……
잠깐…… 안나, 돌아올 거야?
아…… 당연하죠.
부모님과 시간을 보낸 후에 다시 돌아올 거예요.
뭐? 가족을 찾았으면 다시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지. 뭐 하러 다시 돌아와? 끄윽……
로잘린드,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에요.
부모님 곁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새로운 삶이 시작될까요?
아니면?
……
……설마 다들 로도스 아일랜드를 떠나는 게 저한테 더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고개를 끄덕인다)
꼭 더 나은 선택이 아니라 해도, 선택지가 하나 더 늘어나는 건 맞지.
우리의 안식처가 되어준 로도스 아일랜드는 좋은 곳이야. 이곳이 최선의 선택지인 건, 우리에게 갈 곳이 없기 때문이지.
하지만 안나, 지금의 넌 우리와 상황이 다르잖아.
……
게다가 우리는 누군가 먼저 떠나는 것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마쳤잖아?
……설사 작별하는 날이 온다고 해도, 전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쪽일 거예요.
……안나.
넌 우리의 기분을 걱정하는 거겠지. 하지만 우린 네가 가족을 찾게 되어서 정말 기뻐.
맞아! 이스티나 언니가 엄마 아빠를 찾았으니, 굼도 언젠간 두 분을 찾을 수 있을 거야!
굼도 이스티나 언니가 로도스 아일랜드를 떠나는 게 좋다고 생각해!
……
음, 뭐랄까……
굼은…… 로도스 아일랜드에서 대단한 셰프가 될 거야. 지마 언니, 레토 언니랑 로사 언니도 뛰어난 대장이 될 거고.
하지만 이스티나 언니는 엄마 아빠와 같이 지내면서 학교로 돌아가 공부하는 게 좋지 않을까?
부모님이 입학 수속을 마쳐두셨을 테니 라이타니엔에 가면 바로 등교할 수 있을 거야. 과거에 체르노보그에서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는 지금까지의 일은 없었던 셈 치고 살면 돼.
……
어떻게 없었던 셈 칠 수가 있겠어요……
소냐…… 설마 소냐도 기회가 된다면 새롭게 시작하는 게 가장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쳇.
나한텐 아니야.
저도 마찬가지예요.
전 이미 결심했어요. 우선 가서 부모님께서 잘 지내시는지, 늙진 않으셨는지 확인할 거예요.
어쩌면…… 그때 페테르헤임 고등학교에서 어떤 어둠을 느꼈는지, 그 어둠을 든든한 친구들과 어떻게 극복했는지 얘기할지도 모르죠.
물론 로도스 아일랜드 이야기도 들려 드릴 거예요. 라다와 사진을 잔뜩 찍어뒀으니 부모님도 이곳의 삶을 상상하실 수 있겠죠.
또…… 두 분이 어떻게 체르노보그에서 라이타니엔으로 대피했는지…… 지금까지 그 오랜 시간 동안, 한 번이라도 저를 찾기는 했는지 물어볼 거예요.
……안나, 그러려면 시간이 제법 걸릴 거야.
새로운 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네가 품고 있던 모든 고민을 차근차근 풀어봐. 급하게 돌아오지 않아도 돼.
네, 그런 고민은 차차 풀어가면 돼요. 하지만 이번에 돌아가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그게 아니라……
(심호흡한다)
부모님을 설득하는 거예요. 제가 로도스 아일랜드에서 돌아와 동료들과 함께 지낼 수 있도록.
그래서…… 그 부인의 신분증을 확인했더니, 성이 모로조바인 데다 체르노보그 출신인 거야!
라이타니엔에서 체르노보그 사람을 만나는 건 극히 드문 일이거든.
……
게다가 마침 두 사람이 로도스 아일랜드 사무소 근처에 있을 확률은 정말이지…… 그날 우리를 찾아온 것도 치통이 있었던 모로조바 부인이 사무소를 치과로 착각해서였어.
……페테르헤임 고등학교 일을 듣고, 다른 사람들은 전부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네 부모님은 단 한 순간도 널 찾는 걸 포기하지 않았어.
……후우.
두 분은 지금 어떠세요? ……어떤 곳에서 지내고 계신가요? 새로운 직장은 찾으셨나요?
음, 상황이 나쁘진 않은 것 같아. 사무소에 있는 의사가 나이는 어려도 실력이 좋거든. 적어도 모조로바 부인은 한동안 치통 때문엔 시달리지 않을 거야.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직접 가서 확인해 봐.
네, 알겠어요. 이렇게 데려다 주셔서 감사해요……
고맙긴. 정기적으로 본함과 각 사무소를 오가면서 물자를 전달하거나 임무를 넘겨주곤 하니까, 일하는 김에 같이 온 거지 뭐.
이렇게 누군가를 본함에서 다른 지역으로 데려다 주는 것도 처음 있는 일이 아니고.
……
그럼……
다른 지역에서 본함으로 누군가를 데려오신 적은 몇 번이나 있나요?
응?
……
여긴…… 로도스 아일랜드.
오로지 제 바람대로 다시 이곳으로 돌아온 거예요.
라이타니엔으로 향하는 길에 부모님과 재회하는 장면을 수없이 떠올렸어요…… 어떻게 제 결심을 전해드리고, 성장한 모습을 보여 드려야 할지 끝없이 생각했죠……
하지만 부모님과 만난 순간 그런 생각들은 무의미해졌어요. 우리는 부둥켜안고 서로에게 기대 떨어져 있던 날들에 관해 얘기했어요…… 모든 게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뤄졌죠.
도착한 날, 아버지는 절 위해 기어이 고향의 수프를 끓이겠다고 하셨지만, 여러 시장을 돌았는데도 양파를 구하지 못해 결국 파로 대신……
파로 끓인 수프는 처음이었어요. 못 먹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조금 알싸했죠.
두 분 모두 라다에게 받은 선물을 좋아하셨어요. 그 쿠키 커터로 쿠키를 만들었는데, 너무 많이 만든 탓에 며칠 내내 쿠키만 먹었죠……
라다가 해주는 밥이 맛있다고 했더니, 아버지는 절대 인정할 수 없다며 다음에 꼭 요리 대결을 펼치겠다고도 하셨고요……
참, 부모님께선 이미 제 이야기와 사진을 통해서 자치단 멤버들 이름을 다 외우고 계셨어요.
놀라웠던 건 두 분이 로도스 아일랜드에 남겠다는 제 선택을 흔쾌히 받아들이셨다는 거예요. 게다가 돌아가서 친구들과 나눠 먹으라며 라이타니엔 간식까지 잔뜩 챙겨주신 거 있죠.
그 간식들은 이미 자치단에게 나눠줬고요. 아니, 싹싹 '털렸다'고 해야 하는 게 맞으려나요……
모든 일이 과하다 싶을 정도로 순조롭게 풀렸어요……
(심호흡한다)
자, 66회차 '자가치료'를 종료하겠습니다.
……
그래도, 역시 좀 신경이 쓰이네요.
부모님은 제 선택을 이해하고 존중해주셨지만, 걱정과 근심도 표하셨어요. 제가 지금껏 생각해보지 못한 의문까지도 말씀해주셨어요.
“훗날 자치단 멤버들이 모두 로도스 아일랜드를 떠나 다른 곳에서 각자의 길을 걷게 된다면, 그땐 어떻게 할 거니?”
그렇게 되면 전…… 라이타니엔으로 가야 할까요? 로도스 아일랜드에 남아야 할까요? 그것도 아니면……
(하아……)
그래도 아직까진 부모님이 응원해주시고, 동료들이 곁에 있으니까…… 앞으로 어떻게 할지 이제부터라도 잘 생각해봐야겠어요……
……
어? 통신 단말기가 어디 갔을까요?
찾았다…… 왜 침대 밑에?
클로저 씨의…… 연락처가……
으앗…… 갑자기 전화가……
여보세요? 앗…… 클로저 씨.
캠코더요? 아, 네, 제가 빌렸어요…… 아뇨, 아뇨! 다 썼으니까 바로 돌려드릴게요……
……
참, 클로저 씨.
지난번에 저를 믿고…… 자료실 보조 일을 제안해주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그 제안이 아직도 유효하다면…… 제가 한번 해보고 싶은데, 괜찮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