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작은 한 걸음
로도스 아일랜드에서 새로운 동족 동료 토미미를 만난 에스텔. 당황도 잠시, 그녀 역시 새로운 동료를 돌봐주고 싶어 한다.
9:30 P.M 훈련장
오늘 버블과 대련해 줘서 고맙다.
너처럼 힘으로 여유롭게 버블을 누를 수 있는 사람은 찾기 힘드니 말이야.
이렇게 늦게까지 대련하느라, 정말 고생했다.
(도베르만 교관은 훈련 때는 엄격한데 사석에서는 정말 상냥하단 말이야.)
(항상 늦게까지 깨어있는 것 같던데……)
오늘은 딱히 할 일도 없었으니…… 괜찮아요.
(하지만 버블이라는 저 아이도 정말 대단하네. 저렇게 어린 나이에……)
하아, 누가 좀 본받았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시간이 늦었으니 배가 많이 고프겠군. 식당에 먹을만한 게 있는지 가보겠나? 계산은 내 앞으로 달아두면 된다.
감사합니다.
9:34 P.M 식당
가열…… 음식을 가열하는 방법……
이 기계일까요?
소리만 들리고 뜨거워지지는 않네요.
그럼 이건가?
불 표시가 있네요. 불로 이 기계를 가열해야 하는 걸까요?
기계에 음식을 넣은 다음에 기계 밖을 불로 가열하면…… 이렇게 하는 게 맞으려나요?
위험해……!
괜찮아요?
왜 갑자기 폭발한 걸까요?
그렇게 쓰는 게 아니에요.
다친 곳은 없는 것 같네요, 다행이다……
(처음 보는 동료잖아!)
(나…… 내가 무슨 짓을…… 무의식적으로 그만……)
왜, 왜 그러시죠?
(게다가 아다크리스야. 새로 온 아다크리스 동료일까?)
……
저기, 음식은 어떻게 데워야 하는지……
이 기계로……
이렇게…… 5분만 기다렸다가 이 버튼을 누르면 돼요.
망가진 기계는 건드리지 마세요.
수리 요청을 보내면 누군가 와서 수리할 테니까요……
(나 또 이상한 짓을 해버린 것 같아.)
(박사님과 레나 씨는 내가 많은 사람과 교류하기를 바라니까……)
(지금까지는 다른 사람들이 나보다 훨씬 오래 일해서 압박감이 느껴진다는 핑계로 피했는데……)
(이번에는 새로 온 동료인 것 같네……)
(흑…… 나는…… 가망이 없구나.)
에스텔, 벌써 다 먹은 건가?
아……
(그러고 보니 밥 먹는 걸 깜빡했네.)
네…… 먹었어요.
(그 사람 아직 식당에 있겠지. 조금 있다가 다시 가야겠다……)
9:22 A.M. 요양정원
조금 괜찮아진 것 같아?
네.
(레나 씨, 코드네임은 퍼퓨머.)
(난 매일 이 시간이면 요양정원에 와서 아로마 테라피를 받고 있어.)
(이젠 하루를 시작하는 방식이 된 것 같아.)
(레나 씨는 좋은 향기도 나고, 굉장히 상냥해. 나도 이런 언니가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이 향기가, 네가 긴장을 푸는 데에 가장 효과적일 거야.
뭔가…… 집 냄새가 나요.
정말?
네.
하지만 이건 꽃향기가 아니라…… 배양액 냄새인데……
너의 과거에 대해 얘기하고 싶은 게 있다면 나나 박사가 들어줄게.
……
강요하는 건 아니야.
고마워요.
(이런 냄새를 맡으면 편해지는 이유는 알고 있어…… 이 냄새는, 어릴 때 실험실에서 맡던 냄새랑 똑같으니까.)
(그때는 뿔이 자라기 전이었지.)
(나는 작은 방에 살고 있었어. 타원형 방에는 이런 작은 방이 잔뜩 있었지. 작은 방마다 아다크리스 아이가 한 명씩 살고 있었고.)
(그들은 나를 '실패작'이라고 불렀고, 결국 나는 실험실에서 버려졌어.)
(맞아. 대니 치프, 그 사람이 나를 버렸어. 그전에는 매일 아침 유리 너머로 '좋은 아침이야, 우리 공주님'이라고 했었으면서……)
(내가 착한 아이가 아니라서 버려진 걸까?)
(그 후로 로도스 아일랜드에 들어오기 전까지 황야를 떠돌아다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요양정원에서는 향기를 맡으면서 편안하게 있는 게 좋아.
네.
최근에 다른 사람이랑 제대로 된 얘기는 나눠봤어?
음…… 아니요……
강요는 아니야. 하지만 네가 어울릴 생각이 있다면 편한 사람을 찾아서 많이 대화해보는 게 좋아.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잠깐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는 것뿐이야. 만약 정말 지금 이런 상태를 벗어나고 싶다면 네가 움직여야 해.
네! 고마워요, 레나 씨.
2:15 P.M 의료부 바깥 복도
또 새로운 동료들이 왔대.
로도스 아일랜드에도 사람이 점점 많아지네. 활기가 넘치기 시작했어.
식당 줄도 길어졌어.
그러고 보면 예전에 사람이 적을 땐 새로운 동료를 도와주는 것도 편했는데 말이야. 지금은 이름도 기억하지 못할 정도야.
새로운 동료를 도와주는 건 선배의 책임이잖아! 에이야퍄들라를 봐. 예전에 종일 '선배선배'하면서 네 뒤를 따라다녔잖아. 내가 보기에 네게는 새로운 동료를 챙기는 재능이 있는 것 같아.
(즐거운 듯한 울음소리)
와! 저게 뭐야! 복도에 파울비스트가 멋대로 날아다니고 있잖아!
놀라지 마, 에스텔이 기르는 크롬웰 경이야.
미안해요! 놀라게 했네요.
(어스스피릿 씨도 머리에 뿔이 있어. 카프리니에게는 이상하지 않은 일이지.)
(내 뿔처럼 크지는 않지만…… 더 높은 것 같아.)
(박사님의 사무실에서 깜짝 놀라 뛰기라도 하면 뿔이 천장에 박히지 않을까?)
(만약 친해질 수 있다면 뿔 때문에 불편한 점을 어떻게 극복하는지 물어볼 수 있을 텐데……)
에스텔 씨가 키우는 펫이야?
(브리즈 씨는 여전히 우아하네…… 저 예의범절을 가르쳐 달라 하고 싶어……)
맞아요.
(하지만 크롬웰 경은 내 펫이 아니라 친구인데.)
(실험실에서 버려진 뒤에 크롬웰 경이 가장 먼저 나를 발견하고 내 방문을 열어줬지.)
(크롬웰 경은 나보다 많은 걸 알고 있어. 하지만 말이 적은데다 입이 조금 험해.)
맞다. 다음 주에 외근 지원 작전이 몇 번 있을 예정이야. 에스텔 씨, 잘 부탁해.
(브리즈 씨는 전장 의료 업무를 능숙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종종 한 팀으로 외근을 나가고는 해. 내가 부자연스럽다는 걸 느낀 건지…… 항상 예의 바르고 조심스럽게 나를 대하지.)
(브리즈 씨에겐 정말 고마워. 하지만…… 거리감이 조금 느껴져. 게다가 일 외에는 사적으로 만나는 일이 없기도 하고……)
(박사님은…… 내가 적극적으로 브리즈 씨와 교류하기를 원하는 것 같지만……)
최…… 최선을 다해서 환자를 무사히 데리고 올게요……
(이번에도 아무 말 못 했어.)
크롬웰 경, 어서 돌아와. 함부로 날아다니면 안 돼!
계속 이러면…… 다른 사람에게 폐가 될 거야…… 그리고 우리는 동료들에게 미움받게 되겠지……
그러고 보니 방금 두 분…… 새로운 동료를 도와준다고 했어……
어제 봤던 그 아다크리스는, 아무도 안 도와주는 걸까?
만약 또 그렇게 무모하게 설비를 사용하다가는 다치고 말 거야.
하지만…… 지금 내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의미가 담긴 울음소리)
크롬웰 경, 자꾸 놀리지 마.
(가벼운 울음소리)
난 얌전하게 치료에 협력하고 있어. 매일 요양정원에도 가고 있고. 하지만 동족을 마주하는 건, 아직 조금 무서워.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어…… 그들과 나는 다르다는 걸…… 그럼 그쪽도…… 내 뿔이 이상하다는 걸 알아보지 않았을까?
(짧은 울음소리)
가비알 씨?
응……
가비알 씨도 아다크리스야. 일 때문에 종종 밖에서 마주치고는 했어. 하지만 감히 대화할 엄두는 내지 못했지……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모르겠고.
분명 같은 아다크리스인데 가비알 씨는 대단한 의사잖아. 그런데 나는……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어.
잠깐! 잠깐만! 가비알 씨! 난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어!
잠깐만은 무슨. 눈 한 번 깜빡하면 끝날 일이잖아?
깜빡이라니…… 으악!
오늘은 가비알 씨가 당직인가?
부상자를 왔을 때, 가비알 씨가 당직이면 이런 비명이 들려오더라고.
대체 안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호기심 어린 울음소리)
잠깐만, 또 어디 가는 거야……
(어제 폭발 때문에 다칠 뻔했던 사람이잖아! )
어? 당신은……
(들켰다……)
잠깐만요!
히…… 힘이 엄청 세잖아……
윽, 이런!
다치지는 않았어요? ……미안해요…… 제가 또……
아, 전 괜찮아요!
힘이 정말 세네요!
아…… 네……
미안해요……
괜찮다니까요!
어제 일, 정말 고마웠어요. 당신이 아니었다면 저는 음식을 어떻게 데워야 하는지조차 몰랐을 거예요.
그냥 지나가다 보여서……
……
저는 다른 볼일이 있어서, 이만……
아, 손이 다 시큰거리네. 나 대신 환자 좀 봐줘. 난 가서 주먹 좀 휘두르고 올 테니까!
후! 신선한 공기!
응? 무슨 그림자 같은 게 지나간 것 같은데?
너무 피곤해서 착각한 건가?
휴…… 들킬 뻔했다. 옆에 빈 진찰실이 있어서 다행이었어요.
이번에는 제가 당신을 구했으니, 헤헤, 비겼네요.
네?
가비알 씨에게 들키면 성가시니까요.
무, 무슨 뜻이죠?
가비알 씨가 일하는 걸 몰래 보러 온 거 맞죠?
(새로 온 동료가 오해한 것 같아…… 제대로 설명하지 않으면 나쁜 인상을 주게 될 거야……)
전 그런 게……
저도 몰래 보러 온 거거든요!
가비알 씨랑 잘 알아요?
그…… 아마 잘 아는 편…… 일걸요?
(업무상 가비알 씨와 자주 접하긴 하지만, 딱히 대화해 본 적은 없어.)
당신도 가비알 씨가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로도스 아일랜드 같은 곳의 의사와 나처럼 치료받으면서 잡일을 하는 사람은 완전히 사는 세상이 달라.)
(그렇게 생각하면 이렇게 계속 도망만 다니는 것도 각종 변명거리를 찾아서 정당화만 하게 될 거야.)
네, 맞아요. 굉장히 대단한 사람인 것 같아요.
그럼 우리는 친구네요.
친구…… 저랑 친구가 되겠다고요?
우리는 이제 서로 잘 아는 사이니까요! 게다가 우리 둘 다 가비알 씨가 멋지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 것…… 같네요.
그럼 우리는 친구예요.
그렇군요.
(갑자기 새로 온 동료랑 친구가 됐어……)
(어서 박사님이랑 레나 씨에게 보고해야지.)
(비록 내가 먼저 나선 건 아니지만…… 박사님과 레나 씨라면 분명 기뻐하면서 칭찬해 주겠지.)
저는 토미미에요. 당신은요?
저는…… 에스텔이라고 해요.
(침착하자. 우선 정상적인 대화로 친구 관계를 이어가는 거야.)
(힘내자.)
코드네임인가요?
제 이름이에요.
아다크리스 같은 이름은 아니네요.
네……
뭔가 익숙한 이름인데.
재의 공주 이야기인가?
그 이야기를 알아요?
이남한테 들은 적이 있어요.
재의 공주 에스텔. 어릴 때 나쁜 사람이 성을 점령하면서 그녀를 쫓아냈죠.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어요. 열심히 검술을 연습하면서 계속 성장했죠.
그리고 시기가 무르익었을 때, 그녀는 충성스러운 크롬웰 경의 도움으로 드레스를 입고 성의 무도회에 섞여들었어요.
무도회의 클라이맥스에서 그녀는 준비해둔 갑옷을 입고 크롬웰 경이 던져주는 거대한 검을 받아서 복수해냈죠.
전설에 의하면 재의 공주는 목표를 이뤄낸 뒤에 재가 돼버렸다고 해요.
……
(실수로 멋대로 혼자 떠들어버렸어……)
(미움을 사거나 그런 건 아닐까…… 난 정말 교류에 재능이 없는 것 같아, 역시 최대한 말을 줄이는 게……)
엄청나.
엄청나게 정확한 요약이에요!
그 공주를 정말 좋아하나 보네요.
네…… 재의 공주 같은 사람이 되고 싶거든요.
(새로운 동료는…… 그렇게 무서운 사람이 아닌 것 같아……)
(하지만 나는 그런 투구를 쓸 수 없어.)
(로도스 아일랜드의 대장장이들은 모두 실력이 대단하다고 하지만…… 나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평소에 싸울 땐 무기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니까, 찾아간 적도 없고.)
(용기를 내야 해. 이대로만 한다면 나중에 그들과도 대화할 수 있을 거야. 그럼 공주랑 똑같은 갑옷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할 수도 있겠지.)
그렇다면, 검술 연습도 해야겠네요.
네……
(무기로 싸우는 법도 배워야 해.)
(거대한 검을 사용하는 동료에게 배우자…… 스카디 씨는…… 다가가기 어려워 보여……)
그런데 왜 저를 볼 때마다 도망가는 거예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
왜냐하면…… 제 외모에…… 그다지 자신이 없어서……
외모요?
어디 봐봐요.
개인적인 감상으론 그렇게 굵지도 않고, 그렇게 가늘지도 않고…… 확실히 양쪽 모두 좋은 상태는 아니네요.
하지만……
정상적인 상태잖아요?
……정말요?
어? 당신이 보기에 저는 정상인가요?
하지만 제가 태어난 곳에서는 많은 사람이 비웃었어요. 괴물이라면서……
그들이 모르는 거예요. 가끔은 이런 특징이 있는 게 오히려 아름답다는 걸요.
자, 예를 들자면 가비알 씨……
(아? 가비알 씨도 뿔이 있었던 걸까?)
부족 사람들은 가비알 씨를 좋아했어요. 외적인 부분도, 그 강함도 전부 좋아했죠. 그녀는 많은 이들을 무릎 꿇릴 수 있었으니까요.
어…… 앗!
강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걸까요?
그게 전부는 아니에요.
저도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거든요. 제가 봤을 때, 모두가 가비알 씨를 좋아하는 건, 그냥 가비알 씨가 가비알 씨이기 때문이에요.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당신 자신이 되라는 거예요. 그럼 당신을 좋아할 만한 사람은 모두 당신을 좋아하게 될 테니까요. 다른 사람의 마음에 들려고 애쓰느라 불편한 걸 감수할 필요는 없어요.
저…… 정말인가요!
(내 뿔이, 아다크리스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는 걸까?)
《자신감까지 단 한 걸음》이라는 책을 본 적이 있어요. 거기엔 타인의 심미안은 계속 변화하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건 내가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적혀 있었어요.
시간 있을 때 날 찾아와요. 책 빌려줄 테니까요.
고마워요.
하지만 가끔은 정말 불편해요. 예를 들어서 박사의 사무실에 있을 때, 가끔 문을 찔러버리거든요. 재의 공주처럼 검을 휘두를 때도, 움직임에 방해가 될 테고요.
음…… 확실히 방해가 되기는 하겠네요.
하지만 몸의 균형 같은 기본적인 건 둘째치더라도 무기로 사용할 수는 있잖아요. 자유롭게 검을 휘두를 수는 없지만, 뿔과 함께 공격할 수는 있어요.
그러니까 다른 각도에서 보면 꼬리도 아주 실용적일 수가 있는 거죠.
이해했어요!
(꼬리라고 말한 걸 보면…… 내 말을 잘못 이해한 것 같아…… 나는 내 꼬리가 정말 마음에 드니까……)
(머리의 뿔은 정말 무겁지만 내 꼬리가 있기 때문에 균형을 유지할 수 있어.)
(좋은 꼬리야.)
(하지만 어째서 내 뿔을 신경 쓰지 않는 걸까…… 아무래도 정말로 모든 사람이 이 일을 신경 쓰는 건 아닌가 봐…… 동족인 아다크리스랑 어울리기가 이렇게 편하다니……)
예를 들면, 저는 당신이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정말인가요?!
그럼요. 그러니까 우리는 친구가 된 거죠.
비록 가비알 씨만큼은 아니지만 0.7 가비알 씨만큼 좋아요.
가, 감사합니다!
(토미미 씨에게 '좋다'의 단위는 가비알 씨인 건가?)
(0.7 가비알 씨만큼 좋은 거라면, 엄청난 칭찬이잖아! )
그럼 박사 님은…… 몇 가비알만큼 좋아요?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앞으로 함께 로도스 아일랜드의 모든 사람에게 점수를 매겨 보는 것도 좋겠어요.
가비알 씨로요……?
맞아요.
네.
그럼 약속한 거예요!
아, 가비알 씨가 돌아가려는 것 같아요.
계속 몰래 살펴봐요.
미안해요…… 저는 이제 일하러 가야 해서……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언젠가 로도스 아일랜드에 버림받을지도 몰라……)
궁금한 게 있는데요. 에스텔 씨는 로도스 아일랜드에서 무슨 일을 하나요? 제 기억으로는 전투 소대 소속이었던 것 같은데요?
네?
(너무 갑작스러운 화제 전환이야.)
(이런 게 친구 사이의 대화구나.)
전투 소대의 일원이기는 하지만 구조 보조에 편향되어 있어요.
예를 들면 물건이나 환자를 옮기거나 부상자를 데리고 후퇴하는 일 같은 거 말이에요.
전장에서 누군가 다치면 제가 전장에 들어가서 부상자를 데리고 포위를 돌파하기도 해요. 그 과정에서 전투가 발생할 수도 있고요.
가끔은 저희 쪽 의사를 호위하기도 하고요.
엄청나네요……
딱히 대단한 일은 아니에요……
생각해 봐요. 누군가가 전장에서 다쳤는데 적에게 포위당했어요. 그런데 그 순간 당신이 달려오면, 얼마나 빛나 보일까요.
그들의 눈에 당신은 분명 찬란하게 빛날 거예요. 0.9 가비알 씨만큼이나 말이에요.
정말인가요!
(이런 일도 다른 사람에게 호감을 얻을 수 있는 거였구나.)
아프거나 다친 사람을 가비알 씨가 치료할 수 있도록 옮겨줄 수 있다면 더 좋은 거잖아요.
0.9 가비알에 1 가비알이 더해지면 8 가비알이……
네. 분명 엄청 빠르게 회복될 거예요.
그렇네요. 앞으로 최선을 다해 환자들을 가비알 씨에게 보내줘야겠어요.
하지만…… 음…… 전…… 정말 가봐야 할 것 같아요.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수다를 떨 수 있어서 정말 즐거웠어요.
저도요.
(앞으로도 0.9 가비알 씨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7:23 P.M 엔지니어링부
(친구를 사귄다는 건 이렇게나 즐거운 일이었구나.)
응? 에스텔, 아직도 일하는 거야?
네……
브리즈 씨가 다음 주에 외근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우선 물자들을 차에 옮겨 두려고요.
그러면 초과 근무 수당을 못 받잖아.
괜찮아요.
(그레이포 씨. 로도스 아일랜드를 위해 지상 탈것을 운전해 주는 기사야. 나와 브리즈 씨가 외근을 나갈 때면 이 사람의 차를 타고는 하지.)
(차 지붕을 개조해서 차 안쪽 공간이 훨씬 넓어졌어. 물자를 많이 실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내 뿔까지 들어갈 수 있어.)
(익숙한 사람과의 대화는 그렇게 무섭지 않은 것 같아.)
너 같은 꼬마야말로 근무 시간이 끝나면 푹 쉬어줘야 한다고.
아니면 나이 들고 나서 몸이 안 좋아질 거야.
날 봐. 목이랑 허리 전부 아파 죽겠다고.
장거리 운전을 몇 번만 더 했다간 부스러져 버릴지도 몰라.
많이 힘든가요?
그래.
……
어떻게 도와드려야 할지 알 것 같아요.
(가비알 씨가 퇴근했는지 모르겠네.)
효과가 있다면 정말 고마울 것 같네.
잠깐……
8:20 P.M 의료부 바깥 복도
에스텔 씨, 또 왔네요.
몸이 불편한 동료를 데려다주고 왔어요.
와, 그럼 가비알 씨는 조금 더 있어야 퇴근할 수 있겠네요.
저는 가비알 씨랑 같이 밥 먹으러 가려고 온 거예요.
저도 그레이포 씨의 치료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해요.
잠깐만! 나는 그냥 목이 아픈 것뿐이라니까!
기왕 왔으니까 조금 주물러 줄게, 어때?
아니…… 이제 안 아픈 것 같아. 진짜 좋아졌다고!
으아아악……
효과가 엄청 좋은가 보네요.
그래요?
강력한 치료는 효과가 좋은 법이니까요.
그것도 그렇네요.
왜 웃어요?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친구도 생겼고, 동료도 도울 수 있어서 정말 기뻐.)
(아직은 그리 잘 대화하지 못하지만.)
(로도스 아일랜드에서는 아무도 내 뿔을 비웃지 않아. 내 둔한 모습 때문에 때리거나 욕하지도 않고……)
(뭔가, 난 그렇게 뛰어난 사람은 아니지만 매일 발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아, 끝난 것 같아요.
여어, 토미미.
가비알 씨, 저 오늘 친구가 한 명 생겼어요!
보세요!
응? 어디 갔지?
어디 있는데?
훈련이 너무 힘들어서 환각이라도 본 거 아니야?
(위험했다……)
(또 도망쳤어.)
(흑…… 아무래도 성장이 부족했나 봐……)
아다크리스 소녀는 한숨을 쉰 뒤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몸을…… 두 뿔과 함께 의료실의 벽에 기댔다.
배양액의 냄새는 나지 않았지만, 지금은 진심으로 마음이 편안했다.
함선의 창문 밖, 짙은 밤하늘과 반짝이는 별들은 지난날들과 다를 바 없이 그 자리에 있었다.
비록 아직도 황야를 거닐고 있지만, 이제 그녀에게는 로도스 아일랜드라는 든든한 버팀목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