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스
딥컬러는 한 장의 그림을 받았다. 그림의 단서를 따라, 그녀는 탐색을 시작한다.
등장 오퍼레이터: 딥컬러
토톡, 투툭……
쓰윽, 쓱삭
토톡, 투툭……
안녕하세요, 우편 왔어요!
……
문 앞에 놔줘, 고마워.
네!
방금 어떻게 붓을 대려고 했었는지, 완전히 까먹어버렸잖아.
칫……
모르겠다, 조금 있다가 다시 생각할래!
우선 뭐가 왔는지 보러 가야지.
그림인가?
근데 난 그림을 그리기만 하지, 사진 않는데. 이걸 도대체 누가 보낸 걸까……
이상하네,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에 모두 이름이 안 적혀있잖아.
하지만 딥컬러는 이 그림이 자신에게 보내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색칠 그리고 붓 터치 모두 딥컬러는 어딘가 익숙하다고 느꼈다.
누가 보낸 지는 모르겠지만, 선물 고마워.
그리고 딥컬러는 그림을 이젤 옆에 두고는, 바로 다시 자신의 작품을 그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 작품이 완성되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딥컬러가 생각했던 그림이 아니었으며, '그 그림'을 카피한 것이었다.
딥컬러의 주의력은 끊임없이 기이한 익숙함에 사로 잡혀갔고, 이에 그녀의 눈동자는 자신도 모르게 캔버스를 벗어났으며, 그녀의 생각은 끊임없이 액자 속의 색을 모사하게……
……
좀 쉬어야 할 것 같네.
오늘도 진짜 불태웠다……
어쩐 일로 왔어?
너 그림 그리는 거 보러왔지, 오늘 새로운 그림 있어?
아직 없어.
캔버스 위에 이미 뭘 그린 거 아니야?
개울 하나, 숲 하나, 오두막 하나?
저건 모사야, 누가 나한테 그림 하나를 보냈는데, 내 머릿속이 온통 저 그림으로 가득 차 버렸어, 붓질하면 그 그림을 카피하는 것밖에 못 할 정도로.
뭐 어때, 모사도 그림이잖아.
그건 다른 사람의 생각과 기법을 카피하는 것에 불과해. 연습이라곤 할 수 있지만, 내 그림이라고는 할 수 없지.
나한테는 별 차이 없는데, 네 손으로 직접 붓을 들고, 물감을 묻혀 칠했다면, 난 다 좋아.
아무튼, 오늘은 안 그릴 거야, 이만 가보도록 해.
왜 그래? 왜 저 그림을 보는 거야?
뭔가…… 익숙한데……
너는 안 그래?
그 친근감 때문에 더 이상 그림을 못 그려나가겠어, 마음에 들면 가져가든지.
근데 네가 이미 봤으니까, 내가 가져가도 소용없는 거잖아.
하긴……
그럼 우린 어떻게 해야 하지?
조사하러 갈래? 탐험하러 갈까?
다른 방법이 없을 것 같긴 하네…… 그래, 네 말대로 해보자.
좋아, 지금 바로 출발하자!
기, 기다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최소한 이 그림은 챙겨야지!
이 소포가 어디에서 왔는지 묻는 겁니까?
응, 받는 사람도 보내는 사람도 안 적혀 있는데, 확실히 나한테 보내진 소포 같거든. 그래서 이게 대체 어디에서부터 온 것인지 알고 싶어.
뭐, 이게 갑자기……
죄송해요, 전 이 소포를 받은 기억이 없어요.
응?
나갔다 돌아오고서 나서, 검사할 때 이 소포를 본 기억이 없거든요. 제가 준 게 확실한가요?
하지만 걱정 마세요. 지금 가서 확인해 볼게요. 분명 답을 드릴 수 있을 거예요. 어쩌면 인사부 쪽에서 하는 사기 방지 훈련일지도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금방 올게요!
어딜 다녀온 거야?
방금 나한테 소포를 전해준 전달자 씨가 기억이 안 난다는데……
내 친구한테 물어봤는데, 이 그림이 어디서 온 지 알고 있대.
어디서 왔는데?
강을 따라 걸어가다 보면 보일 거라던데.
개울 하나, 숲 하나, 오두막 하나가.
장난치지 말고, 이 땅에 개울이 얼마나 많은데, 그중에 어느 개울인지 어떻게 알아.
친구들이 위치를 알려줬어, 내가 안내해 줄게.
알았어, 그럼 우선 여기서 조금만 기다려.
어디 가는데?
붓이랑 캔버스 가지러.
잠깐, 멈춰봐!
왜 그래?
조금만 쉬게 해 줘……
그래.
대체 얼마나 걸은 거지?
며칠? 몇 주?
힘들지? 내가 대신 화구들 좀 들어줄까?
괜찮아, 난 화가야, 아직 들 수 있어.
왜, 너도 그림 그리고 싶어?
응, 근데 나한테는 무리야. 배워도 못하겠더라고.
그럼 물감 좀 준비해 줘, 어차피 쉴 거 그림이나 좀 그리고 싶네.
그래.
역시 안 되나……
눈앞의 확연히 다른 경치를 보고 있음에도, 딥컬러가 그려낸 것은 여전히 그 그림 속 경치였다.
지금 이 그림 좋지 않아?
오두막은 아직 안 그렸지만, 근데…… 너무 이상해……
분명 사용한 물감도 다른데, 왜 마지막에는 영락없이 그 그림처럼 되는 거지?
아직도 모사 중이야?
하아, 맞아……
자연 경치를 진짜처럼 그리는 것도 모사라고 해?
그건 사실적이라고 하지.
다른 거야?
응, 달라.
그럼 모사라고 할 게 아니라, 사실적이라고 말해야 하겠네.
개념을 혼동하면 안 돼……
앞을 봐봐.
딥컬러는 캔버스에 가려진 눈앞의 경치가 바로 자신이 그려낸 그곳임을 불현듯 깨달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우리 눈앞에 있던 건 잔디밭 아니었어? 어디서 온 개울인 거야?
너 정말 잘 그린다, 자연과 완전 똑같아.
이 개울을 따라 걸으면, 우리도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는 걸까?
아마도……
하아, 정말 가면 갈수록 이상해지네……
이젤 좀 정리해 주겠어, 조수님?
알겠어.
……
대체 뭐가 고민이야, 딥컬러?
뭔가…… 익숙하단 말이지……
아직도 그 그림 말하는 거야?
여기잖아. 이 숲, 이 개울.
그림 속에 그려져 있던 곳이 바로 여기야……
앞에 나무로 만들어진 오두막이, 바로 그림 속 그 집이야.
마침내 도착했네……
여기라고?
내가 봤을 땐, 그런 것 같아.
그럼 들어가 보자.
응, 난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들어가 보고 싶지 않아?
난 못 들어가, 문이 보이지 않거든.
문은 바로 여기 있는 걸. 봐, 내가 열었잖아.
나한텐 여전히 아무것도 안 보여, 미안.
들어가 봐,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그럼, 조금만 기다려, 금방 돌아올게.
집은 이미 오랫동안 아무도 살지 않은 듯했다. 가구는 심하게 망가져 있고, 그림은 사방으로 산산조각 난 채 흩어져 있었으며, 모든 물건에 두꺼운 먼지가 쌓여 있었다.
뒤따라 오는 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익숙함이었다. 그 그림에서 느껴지던 기괴함 대신, 친근함과 애착이 자리 잡았다.
마치……
집?
딥컬러가 손이 가는 대로 그림 하나를 집어 들고 먼지를 닦자, 너덜너덜한 진실이 드러났다.
그림이 생명이 되면, 삶은 독이 되어 추락해 버려.
물줄기를 따라 내려가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지.
숲, 개울, 오두막…… 어떻게 전부 다 하나같이 똑같은 그림인 거지?
딥컬러는 벽에 걸려 있는 족자를 떼어내 족쇄를 풀자, 과거의 기억들이 갑자기 쏟아져 나왔다.
저 먼 곳에는 화가를 위한 천국이 있다고 하던데……
여기에서 물줄기를 따라 내려가면, 도착할 수 있겠다.
콜록콜록…… 이 타원형 액자는 초상화에 쓰이는 거 아닌가? 왜 또 그 그림이야?
설마 스케치북 안에도……
딥컬러가 책상 위 스케치북을 펼치자, 종이가 흔들리며 오래된 경고가 전해왔다.
아름다움을 그리지 못하는 손, 아름다움을 보지 못한 마음, 천국에 닿지 못하고, 자멸이 지척에 왔구나.
흐름을 따라……
역시…… 페이지마다 모두 오두막 바깥 경치뿐이네.
이 오두막 주인은, 아마 미쳤었던 게 아닐까……
이렇게나 많이 그렸으니까, 이 그림도 그녀에게 남겨줘야겠네.
그림이 털이 빠진 카펫 위로 떨어지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그것은 여기서 잊힌 채, 먼지로 뒤덮일 것이다.
언젠가……
그녀가 그린 마지막 그림이 영원해질 그날까지.
돌아왔네, 뭐라도 발견한 거 있어?
아니.
그 그림은?
오두막에 버리고 왔어, 다시는 그걸 기억하고 싶지 않아.
그럼, 이제 그림 그릴 수 있는 거야?
여기에서?
응.
아직은 같은 풍경만 그릴 수 있지 않을까?
해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
응…… 그러네, 한 번 해볼게.
좋아.
이거 같은 그림 아니야?
다르지, 봐봐, 여기의 빛과 각도, 그리고 채색방법 모두 그 그림과는 차이가 있잖아.
……
뭔가, 빠진 것 같은데……
기술적인 문제는 아닌데…… 이상하다……
왜 그래?
……너, 전에 친구가 이 그림이 여기에서 왔다고 알려줬다며.
응, 무슨 문제 있어?
네 친구는, 오두막에 들어갈 수 있었어?
그건 무리지.
그럼 어떻게 그림의 위치를 알 수 있었던 거지……
“물줄기를 따라 내려오면, 개울 끝에 있다.”
이렇게 말했었어.
응?
개울 끝에 뭐가 있다고?
오두막 주인이 원했던 게 있어.
흐음……
조수, 먼저 이 그림부터 치워줘.
알겠어.
그러고 나서, 우리 한번 개울을 따라 내려가 보자.
개울 끝에는 도대체 뭐가 있을까?
조수, 물 좀 남았어?
눈앞의 바닷물밖에 없어.
배고파…… 힘들어…… 여기에 와서 그림을 그리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야……
그림 그리러? 당연히 아니겠지.
여기는 살기 위해 온 거니까.
봐 봐.
조수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바라보니, 난잡하게 쌓인 한 무더기의 화구가 보였다.
물감은 이미 굳어버렸고, 나무로 된 이젤은 산산이 부서진 채였다.
정말 안타까워……
다른 곳에는 이미 그녀가 머물렀던 곳이 남아있지 않아.
생존은, 불순물을 받아들일 수 없지.
살기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해.
한 무더기의 암초 속에서, 딥컬러는 익숙한 액자 하나를 보았다.
산산조각 나서, 죽음이 임박해 있었다.
이건 소포 속의 그 그림……
맞아.
그녀는 나에게 그림을 보내고 싶었던 거야……
맞아.
그런데 나는 그걸 오두막에 버린 거고?
맞아, 결국에는 그게 필요 없어졌으니까.
혹시 내가…… 기념으로 남겼어야 했을까?
그냥 네 모사품을 보내는 거 어때?
그렇게 하자.
그럼 우리는?
우리는 계속 앞으로 가야지.
여기가 끝인데, 도대체 어디를 가려는 거야?
딥컬러가 바다에 들어간다.
그녀는 바다에 끌려간 거야, 맞지?
바다에 젖으면,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어.
선택지가 있었을까?
없지.
그럼 나도 없는 거 같은데, 아니야?
가자, 조수. 유종의 미를 거둬보자고.
바다를 가득 채운 것은 물이 아니다.
물감이고, 기름이고, 색이었다.
그것은 딥컬러의 신경 하나하나에 스며들었고, 이내 그녀 마음속의 모든 감정을 지워버렸다.
그녀는 순수해지고, 또 완벽해졌다.
수많은 소리가 그녀와 함께 노래하고, 생존의 조화를 외쳐댄다.
그녀는 그 소리에 응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그녀는 부르지 않고, 붓을 잡았다.
노래가 뚝 그쳤다.
생존의 표현은 이래서는 안 돼, 딥컬러.
난 아직 살아있어, 그리고 난 그림을 그리고 싶어.
그림에 방어 효과는 없어, 그림은 영양을 보충할 수도 없고, 이런 건 잘못된 생존 논리라고!
맞아, 하지만 그림을 그린다는 건 내가 살아있다는 거잖아, 그러니 내가 어떻게 그리지 않을 수 있겠어?
붓끝에 바다라는 물감을 찍으니, 색이 물속에서 흩날린다.
바다를 포용하려는 초심을 잊어버린 거야?
당연히 기억하지, 생존하기 위해서 그림을 포기하고, 그 괴로움 속에서 끝까지 길을 걸어간 거잖아.
그래서 그녀는 익사하고 말았지만, 난 아직 살아있어, 그러니 난 표현을 해야 해.
다시는 색을 버리거나 붓을 놓지 않을 거고, 멈추지도 않을 거야.
같이 그림 그리자, 조수.
우린 에너지를 쌓아야 하고, 약점을 극복하며 진화를 추구해야만 해.
맞아, 우린 그림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어.
그건 진화의 착오야.
그렇다 치지 뭐. 그러면 또 어때?
난 못 해, 그리고 무리의 외침을 듣고 싶지도 않아. 난 단지 남은 나 자신을 전부 그림에 남길 거야.
그녀의 붓질과 채색, 그리고 표현이 이어지면서, 바닷속은 점차 색채로 가득 찼다.
심지어 바닷물조차도 이 폭발적인 감정을 막을 수 없었다.
바닷물과 먹물은 섞여서 퍼졌다가 다시 뒤섞이는 걸 반복했고, 결국 이 바닷속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빨리 와, 조수. 나 혼자서는 너무 바쁘단 말이야.
색 조각이 흩어지지 않게, 그걸 내 쪽으로 한 곳에 모아줘.
뭐라고? 동포들이 멀리 떠나갔다고?
그건 그들의 무리잖아. 그게 우리, 나와 무슨 상관인데?
색 배합은 끝났어? 바다가 줄곧 우리가 자기를 색으로 물들여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잖아!
조수, 아직 있지?
조수?
후, 여기까지만 그리자……
딥컬러 앞에 있는 캔버스에는, 나열된 파란색 조각들이 모여 그림의 주체를 이루고 있었다.
이건 우리의 이야기에 관한 건데, 마무리가 너무 격렬했으려나?
팔레트에서 뻗어 나온 가느다란 촉수가 좌우로 흔들리며 긍정인지 부정인지 모를 반응을 보였다.
시본의 삶은 너무나도 억압스러우니까, 과격한 방식으로 그 삶에 저항을 표현하는 것도 어쩔 수 없겠지.
그러면 이 그림은 이만 여기서 마무리해야겠다. 덮개를 씌워서 정리 좀 해야겠네. 안 그러다 근처 오퍼레이터한테 또 고발당하면…… 정말 인사부 사람들이 나를 배에서 내쫓을지도 몰라
모처럼 그 녀석들 방해 없이, 마음 편히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곳이 생겼네. 이젠 더 이상 이리저리 숨어 다니고 싶지 않아.
안녕하세요, 우편 왔어요!
왔구나!
오퍼레이터 딥컬러 씨 맞죠, 여기 주문하신 물건이요, 그림 재료들이랑 액자 하나.
맞아, 고마워.
먼저 확인해 주시고, 문제없으시면 여기에 서명해 주세요.
여기에?
네
오……케이!
딥컬러 씨라면 글자도 파란색일 줄 알았는데요.
하하.
그럼, 좋은 하루 보내세요!
고마워!
읏차.
자 그럼, 다음 그림은 뭐가 좋을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