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짙푸른 그리움

짙푸른 그리움

오퍼레이터 레코드브릿지

기묘한 화가가 살고 있는 마을. 어느 날, 그곳으로 불청객이 찾아오는데……

등장 오퍼레이터: 딥컬러


그림 가게 주인

안녕하세요, 손님. 저희가 아직 오픈 전이라, 오후에 다시 방문해 주시겠습니까.

수상한 외지인

죄송합니다만 여기 온 건 그림을 사기 위해서가 아니라 잠깐 물어볼 게 있어서 왔습니다.

수상한 외지인

괜찮으시다면 얼마 안 되지만 사례 의향도 있습니다.

수상한 외지인

(소매에서 금화를 꺼내 문틈으로 밀어 넣는다)

그림 가게 주인

이건……

수상한 외지인

그저 성의의 표시라고 생각해 주시죠, 협조해 주시면 답례로 더 많이 지급해 드리겠습니다.

수상한 외지인

아 참,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림 가게 주인

에헴…… 그 무슨 일이시죠?

수상한 외지인

지난달, 제가 목숨처럼 아끼던 귀중한 그림이 부끄럽지만 보존 미숙으로 습기에 장시간 노출되었고, 이내 안료가 심하게 벗겨져 버렸습니다.

수상한 외지인

얼핏 듣기로는 이곳에 실력 좋고, 복원 능력도 뛰어난 화가가 계신다고 하던데, 혹시 그분이 제 그림을 구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이렇게 무작정 오게 되었네요.

그림 가게 주인

그건…… 조금 어려울 것 같네요. 그 아이는 만나기가 좀처럼 쉽지 않아서요.

수상한 외지인

혹시 그분이 살고 있는 곳이 이 마을에서 멉니까? 금화라면 충분히 있습니다만.

수상한 외지인

(소매에서 몇 개의 금화를 더 꺼내놓는다)

그림 가게 주인

그렇진 않습니다. 이 마을에 살고 있긴 한데, 성격이 특이한 탓에 아무도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지 않거든요.

수상한 외지인

혹시 성격이 괴팍하고 남을 공격하는 편인가요? 아니면 고독을 좋아하기에 모든 이와 거리를 두는 건가요?

그림 가게 주인

사실은…… 열정적이고 활발한 편이라고 할 수 있죠.

수상한 외지인

네?

그림 가게 주인

차라리 집안에 틀어박혀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가 그나마 나아요. 그럼 기껏해야 집안에서 이상한 소리만 나는 정도니까요. 하지만 밖에 나와서 그림을 그리는 날이면…… 모두 피해 다닌답니다. 잘못하면 그림 모델이 되어야 하거든요.

그림 가게 주인

그 아이 눈에 띄면 뭘 어떻게 해도 도망칠 수 없어요, 아무리 중요한 일이 있다 해도 다 그릴 때까지 그저 앉아서 기다려야 하죠.

그림 가게 주인

잘 아시겠지만 그림이라는 게 그렇게 금방 그려지는 게 아니잖아요. 그러다 보니 한 번 잡히면 하루를 통째로 날리게 된다니까요.

수상한 외지인

왜 거절하지 않으시는 거죠?

그림 가게 주인

거절이요……?

그림 가게 주인

그러게…… 왜 아무도 거절하지 않았지? 왜 아무도 거부하지 못한 거지?

그림 가게 주인

(공허한 눈으로 중얼거린다)

수상한 외지인

사장님, 괜찮으세요?

그림 가게 주인

괘, 괜찮습니다…… 전에 그 아이가 제게 했던 말들을 떠올리려고 했는데, 머리가 어지럽고, 도저히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아서요.

수상한 외지인

그것 참 기묘한 일이군요…… 후후.

그림 가게 주인

맞아요, 어쨌든 그 아이는 미쳤다고 생각하면 돼요. 워낙 말이 많으니 기억하지 못하는 게 오히려 당연한 것일 수도 있겠네요.

그림 가게 주인

그러니 손님께서도 이야기를 나누던 중 뭔가 화나게 하는 부분이 있더라도 부디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세요.

수상한 외지인

후후, 당신이 그 이상한 화가의 편을 들 줄은 몰랐습니다.

그림 가게 주인

그 아이가 이곳에 온 뒤로 이상하게 굴기는 하지만, 여기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으니까요, 게다가……

그림 가게 주인

저희 가게 벽에 걸린 그림 절반이 그 아이 작품인데, 손님들의 평판도 굉장히 좋은 편이라서 말이죠.

수상한 외지인

정말 부지런한 데다 열정적인 화가님이신가 보군요. 후후, 더 흥미가 생기는데요.

그림 가게 주인

손님이 이렇게까지 완강하시니 어쩔 수 없네요, 저를 따라오세요. 안내해 드리죠.


그림 가게 주인

그 아이는 이 집에 삽니다. 전 일이 있어서 이만 먼저 가보겠습니다.

수상한 외지인

같이 안 들어가시나요?

그림 가게 주인

그…… 손님, 전 일이 있어서 동행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수상한 외지인

그럼 저도 감사의 인사를 드리지요.

수상한 외지인

(소매에서 많은 금화를 꺼낸다)

수상한 외지인

답례입니다.

그림 가게 주인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손님 정말 친절하시군요! 혹시 뭔가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언제든 가게로 찾아오세요!

수상한 외지인

그럼 안녕히.

그림 가게 주인

네? 아 네네, 안녕히 가세요.

수상한 외지인

은신처로 정말 멋진 장소를 골랐군요.


곧 정오가 될 무렵, 원래는 충분히 밝아야 할 것이었다.

하지만 실내의 문과 창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창문에 박힌 나무판자 사이로 비치는 햇빛만이 실내가 완전한 어둠에 잠식되는 것을 막고 있는 것 같았다.

가장 어두운 구석, 무언가 스치는 듯한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그가 옷을 정돈하고 앞으로 나아가자, 그곳에는 바닥에 우두커니 서 있는 이젤과 붓을 들고 캔버스 위에 색을 덧대고 있는 한 여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상한 화가

붓끝을 조금 더 꽉 짜는 게 좋으려나, 그런데 이렇게 하면 터치가 너무 뚜렷해져서 난 별론데……

이상한 화가

아니지, 이런 방식으로는 내가 내고 싶은 색을 만들 수 없어.

이상한 화가

역시, 이게 더 낫잖아?

이상한 화가

캔버스에 색을 길게 뺄수록 마음에 드는데, 이거 한 번의 터치로 끝까지 칠해야겠네. 도중에 그만둬서는 안 돼…… 절대로, 그만둬서는 안 된다고.

수상한 외지인

……

수상한 외지인

오랜만입니다……

이상한 화가

음……?

이상한 화가

아, 너였구나, 편하게 앉아.

수상한 외지인

이 방, 정리한 지 얼마나 된 거죠? 이 거울은 이 방의 어느 것 하나 비추지 못할 것 같은데요.

이상한 화가

하하 선교사님. 내 더러운 방에 벌써 싫증이라도 난 거야? 넌 절대 모르겠지만 여기 있으면, 영감이 계속 끝없이 떠올라.

외지의 선교사

당신은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군요. 본인의 예술 외에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 모양을 보니.

이상한 화가

넌 많이 변한 것 같은데. 전에는 그렇게 인상 쓰고 그러지 않았잖아.

외지의 선교사

그렇습니까……

이상한 화가

무슨 고민이라도 있어?

외지의 선교사

……

이상한 화가

말하기 싫으면 됐어.

외지의 선교사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도, 당신은 지금처럼 그림에 몰두하고 있었죠.

이상한 화가

처음 만났을 때? 그게 도대체 언제 일이야, 너무 오래돼서 난 기억도 안 나는데.

외지의 선교사

당신이 사도와 처음 만난 그날, 저는 그 암초 뒤에 있었죠.

이상한 화가

너도 그 해변에 있었구나…… 난 사도가 내게 드러낸 아름다움밖에 기억하지 못해. 그렇게 아름다운 생명체는 처음 봤거든.

외지의 선교사

생각해 보면, 사도도 당신의 경모를 느끼고 있었을 겁니다. 단 한 번뿐인 그 간단한 접촉으로 당신을 위매니의 품으로 이끌어 우리의 동포로 만들려고 했으니까요.

이상한 화가

항상 감사하고 있어.

외지의 선교사

하지만 바다까지 단 한 걸음을 남기고 당신은 되돌아갔어요.

이상한 화가

변명할 생각은 없어.

외지의 선교사

당신이 일족을 배신하고 동포들에게 상처를 준 건, 단지 그 작품을 완성하고 싶었기 때문인가요?

외지의 선교사

(손가락으로 캔버스를 쓰다듬는다)

외지의 선교사

이리도 아름다우나, 수많은 죄악을 품고 있는.

이상한 화가

정말 미안해.

외지의 선교사

하지만 당신은 그 유감의 말과는 어울리지 않게 그 붓을 멈추지 않는군요.

외지의 선교사

하아, 정말 고집스럽고 편협합니다. 스스로를 캔버스에 가둬 그 아득한 미래를 보지 못하고 있다니.

외지의 선교사

당신은 일족을 이해하지도, 어울리지도 못했죠. 당신이 우리와 섞여들 수 없다면, 숙청되어 우리 일족의 양분이 되셔야 합니다.

외지의 선교사

이것이 바로 당신이 돌아가야 할 곳이며, 운명입니다. 정말 아쉽지만 기쁘기도 하답니다. 동포여, 우리는 머지않아 한 몸이 되겠지요.

외지의 선교사

(소매를 턴다)

이상한 화가

있지, 그거 좀 넣어줄래? 모든 게 끝나기 전에 이건 완성하고 싶은데.

외지의 선교사

(소매를 정리한다)

외지의 선교사

제가 이곳까지 오기에 걸린 시간에 비하면 이 시간이야 짧은 순간에 불과하죠.

이상한 화가

다행이네.

외지의 선교사

잘 됐습니다. 저도 당신의 목숨을 취하기 전에 몇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었습니다.

이상한 화가

물어봐, 근데 붓은 멈출 수 없어.

외지의 선교사

왜…… 우리를 떠난 거죠?

외지의 선교사

일족이 되면 영원히, 서로 연결된 채로, 모두의 희로애락을 함께 나눌 수 있는데.

이상한 화가

하…… 너희가 말하는 그 나눔이란, 내가 가진 모든 감정을 벗겨내, 일족의 생존 의지만을 복창하는 존재로 전락시킨다는 거잖아.

외지의 선교사

감정 분출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그렇게 한다고 분노가 사그라들지도 슬픔을 지울 수도 없죠. 그저 끝없는 공포 속에 빠져 한 걸음 한 걸음 파멸로 나아갈 뿐이랍니다.

외지의 선교사

일족을 위해 우리는 의미 없이 남아도는 감정의 분출을 막아야 합니다. 지속적인 긴장 상태는 일족의 생존에 불리하게 작용할 테니까요.

외지의 선교사

당신은 스스로 그것을 버리고 우리와 함께 일생의 평온과 안녕을 받아들여야 해요. 그렇게 된다면 당신도 자신의 감정에 좌우되는 일은 없어질 겁니다.

이상한 화가

하지만…… 예술가로서의 내 비명도, 포효도 노여움도 전부 창작의 씨앗인걸.

이상한 화가

내가 너희들에게 속하려고 했던 건 평온이나 안녕을 원했기 때문이 아니야.

외지의 선교사

당신은 우리의 몸에서 무엇을 얻으려고 했던 겁니까?

이상한 화가

섞여들든 떠나든, 내가 눈에 가장 담고 싶은 건 예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았어.

이상한 화가

아름다움. 영원한 아름다움이야. 모든 생명 속에 담겨 있는 아름다움 말이야.

외지의 선교사

그걸 얻지 못했다는 건가요?

외지의 선교사

사도의 아름다움은 비록 당신 앞에 아주 잠시 나타났을 뿐이지만, 당신의 일생을 흔들기에는 충분했을 텐데요. 그걸로는 부족하셨던 겁니까?

외지의 선교사

사도는 당신의 몸속에 씨앗을 남기고, 당신을 우리의 동포로 바꾸어 아름다움을 공유할 것입니다.

이상한 화가

그래. 너희의 몸속에 감춰져 있던 건 확실히 모든 것을 초월하는 궁극의 아름다움이었어.

이상한 화가

하지만 너희들은 그걸 진심을 담아 즐긴 적 있어?

이상한 화가

너희의 선택 하나하나가 전부 너희를 영원한 예술로 이끄는데도, 너희는 예술 앞에서 항상 무관심했지.

이상한 화가

생존과 진화를 위해, 너희는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을 버리는 걸 선택했어.

이상한 화가

나는 너희에게 녹아드는 과정에서 점점 감각이 마비되어 갔지. 창작을 할 수도, 그 과정을 즐길 수도 없게 되었어.

이상한 화가

내 붓에 먼지가 쌓여 더러워지는 걸 알았을 때, 내 마음이 어땠는지 너는 모를 거야…… 그때의 괴로움이 내가 일족으로부터 멀어져야 한다는 걸 깨닫게 해주었어.

외지의 선교사

그렇군요…… 당신에게서 인간의 욕망을 버리게 하는 일은 불가능한 것이었네요.

외지의 선교사

인류가 만들어낸 예술은 그저 자기표현의 방법일 뿐입니다. 인류가 예술을 즐기는 것 역시 그 속에서 자신을 찾기 위함일 뿐이고요.

외지의 선교사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에 대한 연민일 뿐.

외지의 선교사

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슬픈 일인가요……

이상한 화가

(붓을 내려놓는다)

외지의 선교사

완성하셨군요.

이상한 화가

맞아. 완성했어.

외지의 선교사

파란색, 만면이 파란색이군요. 당신도 이미 바다의 깊이를 보셨으니 아시겠죠. 이런 작은 캔버스로는 몰아치는 큰 파도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이상한 화가

넌 이 안에서 바다를 봤구나…… 하지만 난 그냥 물 한 줌을 그렸을 뿐이야.

외지의 선교사

물의 운명은 바다에서 시작하여 바다에서 끝납니다.

이상한 화가

그건 물의 운명이지 바다의 운명이 아니야.

외지의 선교사

마지막 한 획을 그었으니, 이제 슬슬 떠날 시간이네요.

이상한 화가

몇 달 동안 잠자는 시간도 쪼개서 이걸 완성한 거야. 마침 딱 맞춰서 온 건데 이 작품의 첫 감상자로서 제대로 좀 살펴보지 그래.

외지의 선교사

우리에게 있어서 이런 건 그저 색칠만 한 천일뿐입니다. 아무 의미가 없는 물건이라는 말입니다.

이상한 화가

천? 틀렸어. 내가 스스로를 캔버스에 가둬 진정한 위대함을 보지 못한다고 했지, 근데 넌…… 너도 그럴 거라 생각하진 않나 보네?

외지의 선교사

뭐라고요?

그 순간, 실내의 모든 사물의 표면이 저절로 벗겨지고 그 본연의 색깔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건 아주 기묘한 파란색이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파란색은 마치 생물처럼 주위의 색을 삼키기 시작한 것처럼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색깔은 여기저기 퍼져나가 실내 전체를 물들였다. 창문의 나무판자의 틈마저 그 파란색은 메우기 시작했고, 이내 약간의 햇빛마저 완전히 차단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원래라면 완전한 어둠에 빠졌어야 할 실내는 기묘한 밝기로 변해갔다. 그 안은 오직 파란색, 만면이 파란색이었다.

언뜻 불길하게 반짝이는 파란색, 엄숙한 듯 어두운 살의에 가득 찬 파란색.

외지의 선교사

하…… 그렇군요. 이것이야말로 당신 작품의 진정한 모습이었던 겁니까?

외지의 선교사

제가 당신을 낮춰봤던 것 같네요…… 지난 반년간 당신은 상당한 진전을 보이셨군요.

이상한 화가

돌아가, 선교사님. 난 못 본 걸로 하고. 넌 이미 날 잡을 절호의 기회를 놓쳤어.

외지의 선교사

정말 유감입니다……

이상한 화가

넌 질문을 하지 말았어야 했어. 사냥과 포식에 말은 필요하지 않거든. 바로 행동으로 옮겼어야지.

이상한 화가

애초부터 넌 여기에 혼자 발을 들여선 안 됐어.

외지의 선교사

그랬던 건가요……

이상한 화가

뭐?

외지의 선교사

지난 몇 년 동안, 저는 다음 단계로 변화할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해왔지만 계속 원인을 찾을 수 없었죠.

외지의 선교사

이제 알겠습니다…… 제 안에도 인간에 속하는 욕망이 있었던 겁니다. 아마도 그것이 제가 다음 단계로 변화할 수 없었던 원인일 것 같군요……

이상한 화가

너도 나와 같은 지점에서 발을 멈춘 것 같은데, 네 의지가 어떻든 인간에 속하는 것은 마치 그림자처럼 널 쫓아다닐 거야, 버릴 수도 없지.

외지의 선교사

후…… 정말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상한 화가

여길 떠나, 선교사님. 너는 나와 같아. 절대로 그것들처럼 될 수 없어. 그러니 나처럼 너도 도망쳐.

외지의 선교사

……

외지의 선교사

……아니요.

이상한 화가

후우…… 아직도 포기하지 않은 거야?

이상한 화가

네가 내게 입힌 상처라고 해 봤자, 이 피부의 찰과상 정도잖아.

이상한 화가

……이런.

이상한 화가

내 몸에 뭘 남긴 거야?

외지의 선교사

단순하고 아주 작은 '표식'일 뿐입니다.

외지의 선교사

당신이 저보다 강해지셨으니 저 혼자 당신을 숙청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다른 동포들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그 '표식'은 동포들을 끌어당길 것이며, 당신이 숨을 쉬는 한, '표식'은 영원히 그대와 함께 반짝이겠죠.

이상한 화가

난 네게 기회를 줬어…… 선교사님.

외지의 선교사

도망치기로 선택한 거라면, 영원히 도망쳐보시죠.

외지의 선교사

저는 이미 막다른 길에 들어섰고, 이젠 앞으로 나아갈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전 영원히 이 길목에 머무는 것을 선택하려고 합니다.

외지의 선교사

그러면 제 이 몸뚱이는 후대의 양분이 되고, 그들은 저보다 더 멀리 나아갈 수 있겠죠.

이상한 화가

네 선택을 존중할게……

외래인의 시야 속 모든 파란색이 비틀어졌고, 그것들은 이내 꿈틀거리며 제자리를 벗어났다.

대량의 점액이 바닥으로 떨어지더니 마치 뱀처럼 몸을 구불구불 비틀며 외래인에게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그의 로브 끝을 적시고, 로브를 타고 위로 기어 올라갔다.

그를 에워싼 점액들은 가는 막대기 모양으로 뭉쳤고, 형태가 점점 두꺼워지더니 마침내 여러 가닥의 촉수 모양을 이루며 그를 집어삼켰다.

점점 희미해져 가는 남자의 시야에 맺힌 건, 한 여성의 연민 어린 두 눈뿐이었다.

이상한 화가

우리의 길은 잠깐 겹쳤을 뿐인데, 넌 그래서 내가 너와 같은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했던 거구나.

이상한 화가

넌 내가 도망쳤다고 그랬지, 사실 우린 갈림길에 다다랐을 뿐이었어.

이상한 화가

내 미래는, 아직 추구해야 할 것이 많거든.

이상한 화가

잘 가……

이상한 화가

……아무래도, 이제 여기서 더 머물 수는 없을 것 같네.

이상한 화가

어디로 가야 방해받지 않을 수 있을까……


걱정하는 마을 주민

방금 그 큰 소리 뭐야?

대담한 마을 주민

어, 너도 들었어? 집 안에 있다가 나도 놀라서 달려 나온 건데.

걱정하는 마을 주민

앗, 이 폐허는 설마…… 화가 씨네 집인가?

걱정하는 마을 주민

왜 갑자기 무너진 거지?

걱정하는 마을 주민

오늘…… 나오는 거 못 봤는데. 이 밑에 깔린 걸지도 몰라.

대담한 마을 주민

서둘러 아무나 좀 불러와, 이거 치워야 돼!

걱정하는 마을 주민

아, 알았어!

대담한 마을 주민

어이! 화가 아가씨! 밑에 깔린 거야? 내 목소리 들려?

그림 가게 주인

무슨 일이죠? 헉…… 헉…… 소식 듣고 달려왔어요, 집이 갑자기 무너졌다고요?!

그림 가게 주인

화가는요? 그 그림을 복구하러 왔다는 손님은요?

대담한 마을 주민

우선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빨리 이리 와서 같이 파 줘!

걱정하는 마을 주민

사람들 데리고 왔어.

대담한 마을 주민

뭐 보여?

걱정하는 마을 주민

아니, 그쪽은 어때?

그 외 다른 마을 주민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림 가게 주인

아무것도 없어요.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하다못해 그림자조차도 보이지 않아요.

그림 가게 주인

설마 벌써 어디론가 가버린 걸까요?

걱정하는 마을 주민

아까 사람들 데려오면서 여기 주변은 대충 다 훑어봤는데 화가 양반은 못 봤어.

그림 가게 주인

잠깐만요, 저게 뭐죠?

걱정하는 마을 주민

그림인가?

대담한 마을 주민

이상하네. 이 그림, 분명 토사와 잔해 밑에 오랫동안 깔려 있었을 텐데 왜 얼룩 하나 묻어 있지 않지?

걱정하는 마을 주민

도대체 뭘 그린 거야? 난 도통 모르겠는데.

그림 가게 주인

겉으로 보이는 것만 보면 온통 새파랗네요, 하늘일까요? 아니면……

걱정하는 마을 주민

쉿……

대담한 마을 주민

방금 무슨 소리 못 들었어? 조금 더 파 보자고.

대담한 마을 주민

으악……!

걱정하는 마을 주민

무슨 일이야?

대담한 마을 주민

이게 뭐야?!

햇빛 아래 비추어진 남자의 손바닥에는 미끌미끌하고 묽은 점액이 캔버스로부터 길게 늘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