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멈추지 않는 발걸음

멈추지 않는 발걸음

오퍼레이터 레코드브릿지

글래스고에서 겪은 네 번의 중요한 순간을 통해 다그다는 동료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자신을 보내려고 했던 진짜 이유를 깨닫게 됐다. 그건 쇠퇴해가는 제국의 '능지기'라는 신분을 잊어버리고, 새로운 삶을 바라보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등장 오퍼레이터: 다그다, 인드라, 모건, 시즈, 재키


모건

어? 다그다…… 씨?

모건

계속 이렇게 불러야 하는 거지? ……어제 다툰 일에 대해 사과하러 왔어. 한나는 어색하다고 안 왔지만, 이 옷은 함께 고른 거야.

모건

어제 있었던 일은 글래스고의 환영식이나 마찬가지야. 의견이 모이지 않아서 주먹으로 대화한 것뿐이지. 절대 다그다 씨한테 불만이 있는 건 아니야!

모건

그래서 말인데, 이 옷 좀 봐줄래?

다그다

모건 씨, 미안한데 지금 여기서 옷을 받는 건 좀 아닌 것 같아. 예의에 어긋나잖아.

다그다

그리고 나랑 갈등이 있었던 건 인드라 씨야. 그러니 모건 씨는 내게 사과하지 않아도 돼.

다그다

지금 내 신분과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그 옷으로 갈아입을 생각은 없어. 그리고 전하를 모셔가는 일도 포기하지 않을 거야.

모건

잠깐만. '예의'니 '신분'이니 하는 얘기는 그만하고, 정말 이렇게 단칼에 거절하겠다는 거야?

다그다

모건 씨, 미안하지만……

모건

그만!

모건

우선 봐, 이건 사과의 선물로 주는 새 옷이라고! 우선 본 다음에 결정해도 되잖아!

다그다

……앗! 아아……

다그다

이걸…… 어떻게……

다그다

크흠! 모건 씨…… 전하를 왕좌에 앉히는 것은 탑의 기사의 소임이야. 스승님께선 누누이 '빈 왕좌'를 당부하셨는데 '지금 왕좌가 공석'이잖아.

다그다

이건 엄숙한 사명이자 책임이야. 그간 도와준 건 고맙지만……

인드라

아휴, 더는 못 들어주겠네. 그만 좀 해! 마음에 든 거 다 알거든? 그니까 그냥 좀 입어!

다그다

탑의 기사로서 절대……

다그다

잠시만……!

모건

……우와!

다그다

크흠……

인드라

으하핫, 잘 어울리네.

다그다

그만해. 선물을 입어봤으니 이제 다시 원래 복장으로 갈아입겠어.

모건

어디 보자…… 마침 눈썹 칼이 있으니 눈썹도 다듬어줄게!

다그다

아니, 됐다니까……

모건

눈 좀 그만 깜빡여! 눈썹을 다듬는 것뿐인데 뭘 그렇게 긴장하고 그래? 나한테 남는 귀걸이가 있는데 귀도 뚫어줄까? 이 옷에 완전 찰떡일 것 같은데!

모건

모든 일이 끝나면 너도 우리 글래스고 멤버가 되는 거야!

다그다

난……

인드라

됐어, 싫으면 내가 손수 옷을 벗겨주지!

인드라

비나의 설득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네가 싫다면야 또다시 주먹으로 대화하면 그만이야!

인드라

간다~

다그다

……안 돼!

인드라

또 뭐가 문젠데?

다그다

우선, 안 벗을 거야!

다그다

고마워, 모건 씨. 이 옷과 귀걸이, 참 마음에 들어.

다그다

그리고…… 눈썹도 계속 다듬어줄래? ……최대한 눈을 덜 깜빡일게.

인드라

……

모건

어? 그럼 인드라의 사과를 받아주는 거야?

다그다

……

다그다

그래.

모건

그럴 줄 알았어! 역시 우리한테 진심으로 화났던 게 아니지?

모건

한나가 목소리가 크고 다혈질이라 그렇지, 실제로 싸우면 너한테 쨉도 안 될 거야.

모건

다그다…… 씨, 그러니 너무 조급해하지 마. 다그다 씨도 온 지 얼마 안 됐고. 비나도 아직 생각을 정리하지 못했을 거야.

모건

한나도 “빅토리아의 명예를 지켜야 한다”는 말에 벌컥 화를 낸 건 맞지만, 다그다 씨한테 그런 게 아니라 그저 귀족들을 싫어하는 것뿐이야.

인드라

……쳇!

다그다

모건 씨, 더는 서로 격식을 차릴 필요가 없을 것 같아. 이제부턴 그냥 다그다라고 불러줘.

모건

그럼 한나는? 한나도 그렇게 불러도 돼?

다그다

아마도……

모건

자, 이 귀걸이 전부 줄게.

모건

오오, 이런 스타일이 잘 어울리네! 역시 지금 비나 모습보단 다그다 모습이 훨씬 나아!

모건

지금 비나는 그다지 안 멋지거든. 나중에 우리가 비나를 너처럼 꾸며줘도 될까?

다그다

아…… 그래도 전하는……!


당신의 가르침에 따라 알렉산드리나 전하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왜 전하께선 지금의 동료와 헤어지지도 않고, 저와도 함께하지 않으시겠다는 것인지, 그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전 여전히 당신의 가르침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포위망을 뚫고 저를 보낸…… (두 줄로 그어져 있다)

(새로운 글씨가 적혀 있다)

전하는 현재 한 패거리의 리더이며, 동료들은 그 패거리의 멤버입니다.

인드라 씨와 모건 씨가 제게 새로운 옷을 줬습니다. 모건 씨는 귀걸이까지 줬죠. 그들은 오늘부터 저도 글래스고의 멤버라고 했습니다.

그 순간 베일리 스승님께 처음으로 화장을 배운 일과, 스승님께서 몰래 저를 패션쇼에 데려간 일이 떠올랐습니다. 그건 아주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일이지요.

하지만 '빈 왕좌'에 관한 당부는 잊지 않겠습니다. 탑의 기사가 두 번 다시 수모를 겪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저 혼자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란 건 압니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제가 지금까지 구차하게 연명한 의의이자 제 존재의 의미입니다.

더는 빅토리아의 왕좌가 빈 상태로 방치되지 않도록 전하를 모시고 돌아가겠습니다.


인드라

……

다그다

……

인드라

모건 녀석, 날 가지고 놀았겠다? 어쩐지 웃으면서 알았다고 할 때부터 이상했다니까!

다그다

그래도 내가 수업하는 건 좀 아닌 것 같아. 가서 돌아갈 준비나 해야겠어. 난 평소에 훈련실에 잘 오지도 않는단 말이야……

인드라

그럼 네가 비나 대신 런디니움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해 박사와 상의하고 오는 게 어때?

다그다

두 사람이 상의할 게 뭐가 있는데? 이제 런디니움으로 돌아가는 데다, 난 탑의 기사인데, 당연히……

인드라

시끄러워! 난 훈련 도와주러 온 거니까 그만 좀 우물쭈물 대!

재키

……인드라?

인턴 오퍼레이터

(재키 선배, 인드라 선생님은 늘 저렇게 무서우신가요?)

재키

(아무래도 빅토리아에 무슨 일이 생겼나 봐……)

인드라

……쳇! 아오, 몰라! 난 길게 말하는 건 딱 질색이라고. 오늘이 마지막 대결이 될 거야. 우린 떠나야 해서 말이지!

인드라

어떻게 된 건진 이 쪼끄만 녀석한테 들어. 난…… 오늘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으니까!

다그다

크흠…… 음, 오늘 상대는 나야.

다그다

……

다그다

참, 난 다그다라고 해.

다그다

그동안 너희가 어떻게 수업해왔는지 모르니까 오늘은 그냥 평범하게 훈련해보자. 열심히 따라와 줬으면 해.

다그다

그럼…… 시작할게.

다그다

내가 훈련받은 대로라면 너희는 수영, 투창, 검술 같은 기술부터 배워야 해. 또 무기 정비법과 협동 작전을 익혀야 하지.

다그다

음, 그럼 내가 시범을 보일게…… 아니다, 너희는 이런 걸 배울 게 아니라……

다그다

실전 전투를 배우는 게 더 유용하겠지.

다그다

인드라, 좀 도와줄래? 우리가 지난번 훈련에서 어떻게 싸웠는지 보여주고 싶은데.

인드라

간다!

인드라

……


이게 네 첫 번째 훈련이다, 이사벨 몬터규. 정식으로 탑의 기사 훈련을 받기 전에, 이 점을 명심하기를 바란다.

빅토리아 왕좌가 언제까지나 공석이어서는 안 된다.

이사벨

네, 스승님!

이사벨

……어머니께서는 귀족이 빅토리아의 긍지라고 하셨어요.

이사벨

하지만 제가 이어 나가고 싶은 건 긍지가 아닌 책임이에요. 왕궁에 아무도 없다 한들 제가 지키는 명예는 변함이 없을 거고, 그 어떤 수모도 더 이상 저희의 이름에 먹칠할 수 없을 거예요.


인드라

제대로 한 방 먹여주지!

다그다

으음……

다그다

(옆구리, 얼굴…… 허점투성이야.)

다그다

(허점을 노리면……)


이사벨 몬터규……

왕궁의 불은 이미 꺼졌다. 내가 임시로 대행하여, 너를 탑의 기사로 봉하겠다.

이사벨

네!

무기를 깨끗하게 닦았으니 네게 묻겠다. 앞으로 평화를 수호하겠다고 맹세하는가?

이사벨

맹세합니다.

사사로운 욕심을 버리고 탑의 기사의 정신과 명예를 이어받아 국왕에게 충성하겠다고 맹세하는가?

이사벨

맹세합니다.

죽는 그날까지 빅토리아와 국왕을 수호하겠다고 맹세하는가?

이사벨

맹세합니다.

맹세 의식은 끝났다.

이사벨 몬터규, 너는 더이상 수습 기사가 아니다, 이제 넌 진정한 탑의 기사가 되었다.


다그다

……

재키

오! 굉장한 일격이야!

인턴 오퍼레이터

우와…… 인드라 선생님이 거의 날아갔어요. 다그다 선생님의 실력이 이 정도였나요?

다그다

(……이러면 안 돼, 핀 스승님께서 탑의 기사의 미덕은 겸손이라고 하셨는데……)

다그다

(도와주러 와서 이렇게 인드라를 날려버리는 건 좀 아닌 것 같아.)

다그다

(게다가 인드라는 화가 나면 샹들리에를 욕실 조명 구매하듯 사들일 사람이잖아……)

다그다

……

인드라

후후, 이제야 네 허점을 찾았네.

인드라

이제 내 차례다!

인드라

하하하! 이렇게 싸우는 게 대체 얼마 만인지! 재밌군, 아주 재밌어!

인드라

내 손잡아. 일으켜줄 테니까.

인턴 오퍼레이터

우와…… 역시 인드라 선생님의 실력은 대단하세요. 완벽한 반격이었어요!

재키

당연하지! 내가 괜히 추천했겠어?

인드라

다 들리거든. 조금 전까지 이 몸을 의심했겠다?

재키

헉!

인턴 오퍼레이터

아니에요, 아니에요! 글래스고 선생님들은 모두 대단하세요!

다그다

글래스고…… '선생님'?

인턴 오퍼레이터

네! 글래스고 멤버 분들은 하나같이 다 대단하시잖아요. 참, 선생님은 기사 출신이시라고 들었는데…… '탑의 기사' 맞죠?

인턴 오퍼레이터

그리고 인드라 선생님, 전 선생님처럼 패거리 멤버가 되는 게 오랜 꿈이었어요!

재키

그럼 우리 아빠가 골머리를 앓으시겠는데……

인턴 오퍼레이터

두 분 정말 감사해요! 덕분에 필기도 많이 해뒀어요. 인드라 선생님, 다음에 오셨을 땐 더 멋진 모습을 보여드릴게요.

다그다

……풉.

인드라

웃긴 뭘 웃어! 내가 대단하다는 말이 그렇게 우습냐?

다그다

알겠어, 대단하다고 인정해줄게.

다그다

그럼 계속할까?


핀 스승님께

일전의 비망록에도 적었지만 전 시즈를 따라 '로도스 아일랜드'라는 함선에 와 있어요. 오늘 저희는 이곳을 떠나 런디니움으로 돌아갈 거예요.

인드라는 대련 동료들과 작별해야 하니 저더러 마지막 수업에 함께 들어가 달라고 부탁했어요. 알아요, 제 긴장을 풀어주려 일부러 그러는 거겠죠.

전 그들에게 기사의 작전 방식을 알려줬어요. 사실 일개 '탑의 기사'가 가르쳐준 작전 방식은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요.

모두가 빅토리아의 증기 기사를 알듯, 모두가 거대하고 큰 소리를 내며 하늘을 나는 영웅을 더 믿고 싶어 하는 줄 알았어요.

하지만 대련하러 온 오퍼레이터들은 '탑의 기사'라는 호칭을 알고 있었고, 스승님이 제게 가르쳐주신 작전 방식을 기록했어요. 빅토리아 사람이 아니었는데도 말이죠.

인드라가 왜 그들과 훈련하는 걸 즐겼는지 대충 이해가 가요.

죄송해요, 스승님.

시간이 더 흐르면 언젠간 스승님의 말씀을 잊어버릴 거예요. 하지만 스승님께서 당부하신 '빈 왕좌'는 여전히 기억하고 있어요. 구체적으로 무슨 말씀을 하셨는진 이미 가물가물하지만요.


인드라

찾았다, 찾았어! 이게 마지막으로 남은 술일 거야!

인드라

반 잔씩이라도 나눠서 다시 모인 걸 축하하자!

다그다

제대로 축하해야지……

다그다

으악! 이게 뭐야!

모건

세상에, 이 담요가 아직도 있네?

베어드

지난 몇 년 동안 새로운 보급품이 거의 없었잖아. 아직 쓸만해.

시즈

한나는 아직도 흠집 낸 범인이 자기가 아니라고 잡아떼고 있지?

인드라

나 아니라고! 진짜 기억 안 난다니까!

모건

쉿, 조용히 해! 밖에 있는 그 녀석이 들으면 또 난리 칠 거야!

인드라

그래서 뭐? 걔가 뭘 어쩔 건데? 내가 너희랑 이 소파를 복싱장으로 옮길 때, 그 녀석은 손가락을 빨고 있었을 거라고!

베어드

한나, 화내지 마. 내가 가서 얘기해볼게. 아마 요즘 구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많이 봐서 그러는 걸 거야……

인드라

그 녀석은 신경 쓰지 말고 우리끼리 마시자! 이쪽으로 와. 거기 서 있지만 말고! 아직 서로 통성명 안 했지? 이쪽은 베어드, 이쪽은 다그다야.

다그다

베어드 씨, 반가워. 얘기는 많이 들었어. 버터플라이 나이프를 자유자재로 다루고, 음료 만드는 실력도 예술이라며?

인드라

또 시작이다…… 이름 뒤에 '씨' 좀 그만 붙이라니까……

베어드

응, 그건 그런데……

베어드

지금은 만들어줄 수가 없어. 물자가 부족한 데다 찾아온 물건들도 전부 더러워졌거든.

다그다

아쉽네…… 인드라가 매번 눈빛을 반짝이며 얘기해서 궁금했었는데……

인드라

자자~ 서로 인사도 했겠다, 얼마 없는 술이지만 이제 마셔볼까?

모건

내가 잔을 가져올게. 다그다, 얼마나 따라줄까?

다그다

조금만 줘. 취하고 싶진 않거든.

인드라

베어드, 요즘 주량은 어때? 전에는 우리 둘이서 한 박스씩 마시고 그랬잖아!

베어드

조금만 줘. 요즘은 술을 잘 안 마셔서.

시즈

……베어드, 이곳을 좀 구경시켜줄래?

시즈

오랫동안 떠나 있었더니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해서.

베어드

……알겠어.

인드라

마시고 보러 가도 되잖……

인드라

아! 왜 때리는데!

모건

그냥 가게 둬!

다그다

……

모건

다그다, 음료수라도 줄까?

다그다

두 사람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게 어때? 베어드 씨, 기분이 안 좋아 보이던데.

모건

오랫동안 못 만나기도 했을뿐더러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거든……

모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데…… 그럴 시간이 없네.

인드라

괜찮아! 베어드가 돌아오면 이 몸이 꽉 안아줄 거니까!

다그다

복싱장, 복싱장 하길래 궁금했는데 이런 곳이었구나…… 그때, 나랑 한바탕 싸우고 나서 너희가 이 옷을 내게 줬잖아.

다그다

그날부터 너희가…… 좋은 녀석들이라고 생각했어. 성격은 좀 더럽지만.

다그다

그리고 이렇게 다 같이 모여 축하하는 일도 정말 오랜만이야.

모건

스승님이라는 사람이랑 축하할 일이 있을 땐 어떻게 했는데? 술을 마셨어? 아니면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췄나?

다그다

술이라니……! 스승님께서 긴장을 풀라며 권하시긴 했지만, 우린 주로 노래를 불렀어.

인드라

너, 노래할 줄도 알아?

모건

오오! 그럼, 크흠…… 이제부턴 '이사' 네가 이 모임의 주최자가 되어 서로 축하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거라!

모건

후후, 어때? 좀 비슷했어?

시즈

우리 왔어. 무슨 얘기하고 있었어?

다그다

그게……

다그다는 마지막으로 동료와 노래했던 그날 밤을 떠올렸다.

스승들은 기사의 규율에 너무 얽매이지 말라며 갑옷을 내려놓으라고 한 뒤, 그녀를 데리고 좁은 지하 술집으로 향했다.

행여나 다른 사람들에게 들킬까 다닥다닥 붙어 앉은 그들은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주변의 손님들이 욕할 때까지 누르스름한 천장을 향해 노래했다.

황야를 건너고 강풍을 뚫고 가자♪

붉은 달과 검은 장검 ♪

하늘에서 죽음이 나를 내려다보네♪

나는 빅토리아의 탑에 있네♪

다그다

하늘에서 죽음이 나를 내려다보네♪

다그다

나는 빅토리아의 탑에 있네♪

모건

하늘에서 죽음이 나를 내려다보네♪

인드라

하늘에서 죽음이 나를 내려다보네♪

인드라

건배!

다그다

……베어드?

베어드

……

다그다

나오기 싫다면 거기 있어도 돼. 난 그저 너와 얘기하고 싶을 뿐이거든. ……“시즈랑 애들한테 네 얘기를 많이 들었어. 이렇게 만난 건 처음이지만 난 널 잘 알아.” 같은 말이라던가.

다그다

“실제로 보니 들은 것과는 사뭇 달라서 다시 널 알아가고 싶어” 같은 말도 하고 싶고……

베어드

……

다그다

크흠…… 좋아! 인정할게. 모건이 가라고 해서 온 거야. 실은…… 나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 미안해, 베어드 씨.

베어드

……풉.

베어드

미안, 내 감정 때문에 너희를 불편하게 했나 보네.

다그다

그런 말 마. 나도 애들이랑 처음 만났을 때 크게 싸웠거든. 따져보면 몇 주 동안 씩씩댄 인드라가 훨씬 더 사람들을 불편하게 했을걸?

베어드

아,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그때 넌 뭐라고 했는데?

다그다

나는 탑의 기사다. 난 빅토리아의 영광과 굴욕을 이어받았으니, 속히 시즈를 데려가 왕의 책임을 다하게 할 것이다.

다그다

그 일 때문에 여기 오는 길에도 내내 인드라랑 말다툼했다니까.

다그다

너희는? 너희는 어떨 때 싸워?

베어드

한나한테 청소를 시켰는데, 어디에다 둬야 할지 모르겠는 물건을 전부 작은 캐비닛에 욱여넣을 때……?

다그다

아, 그럴 줄 알았어……

베어드

또…… 한번은 한나가 실수로 비나의 얼굴에 탄산음료를 뿜은 적이 있었거든? 그때 둘이서 대판 싸웠지.

베어드

나중에 모건이 화를 내면서 묻더라. 자기는 말리러 간 건데 왜 맞아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면서.

다그다

아하하, 그런 일도 있었구나……

다그다

그럼 넌? 넌 애들이랑 싸운 적 없어?

베어드

……없어. 단 한 번도……

다그다

그럼 한번 싸워보는 게 어때? 사실 나도 잘 아는 건 아니지만……

다그다

그때 싸운 뒤에 모건은 내게 이 옷과 귀걸이를 선물했고, 난 글래스고 멤버가 됐어. 인드라가 내 '기사 습관'이 꼴 보기 싫다기에 고치려고도 엄청 노력했고……

다그다

난 탑의 기사고 시즈는 내 전하지만, 그래도 우린 같은 글래스고 멤버이자 친구잖아?

베어드

……

다그다

아, 모건도 참 어려운 임무를 맡겼다니까…… 어딜 봐서 내가 위로에 소질이 있다는 거야?

베어드

……풉.

베어드

네가 뭘 말하고 싶은 건진 알아. 다만…… 애들과 떨어져 있던 시간이 내겐 너무 길었어.

다그다

그게 뭐 대수라고? 솔직히 인드라는 뭔가 이상하다는 걸 전혀 눈치 못 챘을걸? 인드라가 보기엔 넌 예나 지금이나 똑같을 거야……

베어드

……나도 그렇게 생각해.

다그다

설령 인드라와 한번 싸운다 해도 말이야! 그렇지?

베어드

……응.

다그다

이제 마음이 좀 풀렸어? 후아,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한 건지 모르겠다…… 그럼, 내일 보자.

베어드

응, 내일 봐.

베어드

내일…… 해야 할 일이 많을 거야. 너희와 함께 온 사람들이 가져온 약품과 물자를 배분해야 하니까……

베어드가 다그다의 어깨를 토닥이며 웃어 보인 후, 나지막이 조금 전 다그다가 모두 앞에서 부른 노래를 흥얼거렸다.

다그다는 오래전 동료와 마지막으로 노래를 불렀을 때에도 핀 스승님이 자신의 어깨를 세게 때리듯 토닥여줬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어쩌면 마지막으로 포위망을 뚫을 때, 스승님이 자신의 어깨를 거칠게 밀친 것일지도 몰랐다.

“이사! 넌…… 우리에게 희망을 가져다줬어.”

“하지만 꼭 명심해야 한다. 빈 왕좌는……”

그 순간, 긴 화살이 시공간을 가르듯 그녀의 마음을 꿰뚫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뒷말이 무엇이었는지 떠올려냈다.

“왕좌는 이미 공석이다. 왕을 기다리는 것만이 네 소임은 아니야!”

다그다

왕좌는 이미 공석이다……

다그다

그게 '빈 왕좌'에 담긴 진짜 의미인 걸까……

한껏 지친 미소, 자신을 향한 눈빛, 마지막 외침, 유일한 희망…… 그들은 그녀가 부담을 벗어던지길 바랐던 것이다.

다그다는 늘 지니고 다니던 '탑의 기사 연대기'를 꾹꾹 눌러봤다. 그 책은 딱딱하고 무거웠다.

그녀는 글쓰기를 멈추고 한 발 내디뎠다.


다그다

시즈…… 물 가져왔어. 좀 마셔.

다그다

윈더미어 공작의 함선에 이런 물자는 아직 남아 있으니까, 아끼지 말고 마음 편히 마셔.

시즈

……괜찮아, 많이 좋아졌어.

시즈

넌 어때? 그리고 함께 승선했던 사람들은……

다그다

그 군인들은 전우를 잃었고, 우리도……

다그다가 눈썹을 매만졌다. 잘 다듬어진 눈썹 옆으로 새롭게 돋아나기 시작한 눈썹이 손끝을 찔렀다.

다그다

기억이 잘 안 나. 그때, 베어드는 왜 우릴 놓쳤지?

시즈

……다시 한번 매클래런에게 알리려 했거든.

시즈

모두를 챙기겠다고, 혼자서 아는 사람을 찾으러 비디오룸에 간 거야.

다그다

그렇게 기억력이 좋은 편은 아닌 걸로 알고 있는데.

다그다

너희한테 들은 걸로는 파울비스트 알을 바구니째 잃어버려서 아침 반찬을 하나 부족하게 만든 장본인이라며.

다그다

하지만 베어드는 내가 초조하면 발을 구른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남몰래 다가와 긴장을 풀어줬어.

다그다

대체 왜 기억력이 좋아졌다 나빠졌다 하는 걸까……?

시즈

……그때 내가 함께 있었어야 해……

시즈

아니면 적어도 몇 번 더 얘기했어야 해. 베어드가 이곳에 오래 남아 있었다는 걸 알았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사람들을 더 걱정한다는 걸 알았는데……

다그다

하지만 너도, 우리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

시즈

……

다그다

시즈, 대체 언제까지 주저할 거야? 언제 결정을 내릴 건데?

다그다

넌 결정을 내려야만 해!

다그다

네가 걷고자 하는 길은 대체 어느 쪽이지? 친구를 위해 복수하고 싶은 거야, 아니면 왕이 되고 싶은 거야, 그게 아니라면 리더? 아니면 네 신념을 지키고 싶어? 계속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할 거냐고!

시즈

난……

다그다

……

다그다

오는 길에 넌 내가 태어날 때부터 모셔야 할 주군이 아니라며 결정을 내리라고 했지. 난 이미 결정했어.

다그다

……기사는 자신이 모시는 왕을 위해서, 그리고 친구를 위해서 목숨을 바칠 수 있어.

다그다

기사의 미덕을 지키면서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이게 내 맹세야.

시즈

하지만 다그다…… 난 사람들에게 아슬란 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건 이미 오래전 일이야.

시즈

난 그저 너희들과, 함선에 있는 사람들과 같은 곳에 서 있을 뿐이야.

다그다

……

다그다

알겠어.

다그다

시즈, 이 '탑의 기사 연대기'를 네게 줄게. 잘 보관해줘. 이게 내 선택이니까.

시즈

다그다……?

다그다

핀 스승님의 말씀에 담긴 의미와, 마지막에 날 구하려 했던 이유를 깨달았어.

다그다

내가 그분들의 부담을 이어받지 않길 바랐던 거야. '빈 왕좌'를 당부한 건 그분들처럼 책임감으로 자신을 속이지 말고…… 그분들 대신 빅토리아의 미래를 제대로 내다보란 뜻이었지.

다그다

……

다그다

이 책을 네게 줄게. 이제 난 탑의 기사 이사벨 몬터규가 아니라 글래스고의 다그다야.

다그다

난 빅토리아의 왕을 지키는 게 아니라 내 친구를 지킬 거야.

시즈

……알겠어.

두 사람의 얼굴로 바람이 스쳤다. 바람은 모든 걸 날려버리려는 듯 두 사람을 향해 매섭게 휘몰아쳤다.

다그다

전쟁이 끝나면 같이 탑에 가보자. 내 스승님들을 소개해줄게.

시즈

그래.

다그다

시즈……

다그다

내가 맹세한 이후 탑 너머의 왕궁에선 한 번도 불이 켜지지 않았고, 난 빅토리아 왕을 한 번도 수호해본 적이 없어. 탑의 기사들은…… 지켜야 할 대상을 잃은 지 오래고.

다그다

그럼에도…… 탑의 기사들이 자신의 소임을 다했다고 볼 수 있을까?

시즈

……응.

시즈

너희는, 소임을 다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