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관을 벗기려는 자
로도스 아일랜드로부터 우르수스에 가는 것을 금지당한 크라운슬레이어는, 분노에 찬 채 뉴 볼시니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녀는 하나의 결정을 내리게 되는데……
……크라운슬레이어 씨, 정말 미안하지만, 로도스 아일랜드는 당신이 우르수스로 향하는 걸 허락하지 않을 거예요.
왜지?
켈시 선생님께서 전에 제게 편지를 보내 특별히 당부하셨거든요. 혹여 당신이 이 일에 대해 말을 꺼내면, 바로 이 결론부터 전달하라고요.
여기서 우르수스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바로 나라고!
바로 그렇기 때문이에요.
그게 무슨 뜻이야?
당신이 분노한다면, 켈시 선생님의 판단이 옳다는 걸 증명하는 거라고 하셨어요. 게다가 선생님은 당신의 전출 명령서에 각별히 주석까지 달아 놓으셨고요…… “우르수스만 제외하면, 어디든 가도 좋다.”라고 말이죠.
그 사람이 뭐라고 날 대신해서 결정하는 거지? 난 더 이상 그 사람 뒤에 숨던 어린 여자아이도, 복수에 눈이 먼 노예도 아니야!
난 그냥 집으로 돌아가서 내 아버지가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신 건지, 그 빌어먹을 석관이 도대체 뭐 하는 물건인지 알아내고 싶을 뿐이라고! 이게 잘못된 거야?
잘못됐다는 게 아니에요. 마침, 켈시 선생님께서 크라운슬레이어 씨에게 녹음을 하나 남기셨어요.
……
류드밀라, 네 아버지를 집어삼킨 그 기계 앞에 섰을 때, 네 손에 어린 시절의 그림이 들려 있을 때, 그때 넌 무엇을 할 생각이지?
무엇을 하냐고?
진실을 찾아야지.
아마 넌 진실을 원하겠지. 하지만, 진실은 과거형이야, 류드밀라. 진실을 찾아낸 다음엔 넌 또 어떻게 할 생각이지?
진실을 찾은 뒤에 어떡할 거냐고?
당연히 복수해야지.
분명 넌 왕을 시해한 자가 되겠다고 말하겠지만, 누구를 향해 그 칼날을 휘두를 생각이지?
누구를 향해, 라고?
정치적 소용돌이에 휩쓸린 귀족에게, 그 차가운 석관에, 또 어쩌면…… 당신일 수도 있겠지.
만약 네가 그저 이 모든 일에 관한 답을 원하는 것뿐이라면, 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 내가 직접 너에게 알려줄 수 있는 모든 걸 알려줄 테니.
비록 어떤 일들은 여전히 네게 말해줄 수 없겠지만, 그래도 직접 우르수스로 돌아가서 얻을 정보보다는 훨씬 많은 것을 알 수 있을 거라고 약속하지.
이 약속이 있다면, 네가 우르수스로 돌아가겠다는 마음을 접게 하기에 충분할 거라고 생각한다. 네게 딴생각이 있는 게 아니라면 말이지.
네 생각이 아미야를 설득할 수 있기를 기대하마.
난……
크라운슬레이어 씨, 미안해요. 당신을 우르수스로 보내지 않으려는 건 켈시 선생님의 뜻일 뿐만 아니라, 저와 박사님이 함께 내린 결정이기도 해요.
우르수스에 관한 당신의 생각에는 개인적인 감정이 너무 많이 들어가 있어요. 저로서도 그런 이유가 우르수스에서 로도스 아일랜드의 행동에 영향 주게 둘 순 없으니까요.
하지만 약속할게요, 나중에 켈시 선생님이 돌아오시기만 하면……
……됐어!
대체 계속 어디에 처박혀 있는지, 그 꼬마 토끼한테 말을 전하라고 한 거야!
내가 자격이 없다고? 하! 그 여자는 내가 죽으러 가는 거라고 돌려서 말하고 있어. 날 전혀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맞는 말이야, 우리 류드밀라는 겁쟁이가 아니라고! 네가 아니었으면 피터는 벌써 한 줌의 재가 됐을걸!
맞아! 그 켈시인지 뭔지 하는 의사 나부랭이가 트럭 모는 게 뭔지 알기나 한대? 이 바닥 일이 얼마나 대단한 능력이 필요한지 제깟 게 알긴 하겠냐고?!
네가 그 여자 비밀에 대해서 안다고 하지 않았어? 내가 보기엔 널 겁내는 거야! 혹시라도 네가 돌아가서 자기 비밀을 다 까발릴까 봐 무서운 거지.
흥, 맞는 말이야!
그런 대기업 녀석들 말은 그냥 무시해! 그놈들은 널 자기네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고!
그래! 류드밀라, 너무 화내지 마. 고작 그런 인간 때문에 화낼 필요 없어. 자, 이거 받아!
고마워, 조…… 이 사과 아주 아삭하네.
그렇지? 방금 막 농장 쪽 사람이랑 교환해 온 거거든.
농장? 우리가 언제부터 농장과 협력을 했지?
네가 없을 때, 황야에 있는 마을 몇 군데랑 관계를 맺었어. 걱정하지 마, 다 합법적인 거니까.
오늘 밤에 바비큐 파티를 하려고 다 같이 상의 중인데, 다들 네가 나서주길 바라고 있어…… 가장 큰 이유는 에이레네가 고기를 또 다 태워버릴까 봐 무서워서지만 말이야.
흥, 어쨌든 나한테 탄산수를 얻어먹는 게 목적인 것 같네.
하핫, 그래도 진심으로 하는 말인데, 류드밀라. 로도스 아일랜드의 골치 아픈 일은 다 잊어버리고, 여기 남아서 우리랑 즐겁게 지내는 건 어때?
그건……
누가 내 흉을 보는 거야?
사실대로 말한 것뿐이야, 에이레네. 고기 굽는 솜씨는 너보다 류드밀라가 훨씬 좋잖아.
시끄러워. 그나저나, 지금 할 일은 다 끝내고 탄산수를 마시고 있는 거야?
일하러 간다, 가.
류드밀라, 이번에는 얼마나 머물 생각이야?
이번 외근 임무는 그리 길지 않으니까. 며칠 뒤면 돌아가야 해.
좀 더 있다가 가지 그래?
어차피 또 올 거야. 요즘은 딱히 갈 데도 없거든.
이거 받아.
이건…… 《운송보장국 특별 파트너 협약》?
“……협약에 따라, 운송보장국은 을측 류드밀라 일리니치나에게 뉴 볼시니의 거주지와 신분 증명을 제공한다……”
너……
네 상황이 특수하다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지난번에 네가 떠난다고 했을 때, 난 곧바로 이렇게 해야겠다고 생각했어.
류드밀라, 이 협약서는 널 묶어두려는 게 아니라, 네게 보장을 제공하기 위해서야.
여기에 사인하면, 넌 뉴 볼시니에 기반이 생겨. 로도스 아일랜드가 널 어디로 보내든, 네가 원하기만 하면, 여기에 언제나 네 트럭 한 대와 침대 하나가 있는 거지.
난 네가 여기 남았으면 좋겠어. 파견 오퍼레이터가 아니라, 우리 가족으로서 말이야.
가족……
왜 아직도 망설이는 거야? 혹시……
너무 매력적인 제안이네.
합법적인 신분, 순수하고 열정적인 동료들, 그리고 정치적 음모나 오리지늄 아츠의 포격이 없는 곳.
여기에 사인만 하면, 당연하다는 듯 이곳에 머물 수 있다.
에이레네를 지키기 위해서, 운송 보장국을 도와 패밀리에 맞서기 위해서라는…… 이런 완벽하고 정의로운 명분으로 스스로를 속일 수도 있다.
그렇게 하면 우르수스의 눈보라도, 켈시의 빌어먹을 질문도 다시는 고민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게다가, 예전에 에이레네를 계속 지켜보겠다는 말도 한 적이 있다.
류드밀라?
……에이레네, 고마워. 진심으로 말이야.
하지만, 이 협약서는 내게 너무 큰 부담이야. 나…… 좀 더 고민해 볼게.
물론 괜찮지! 이게 너한테 큰일이라는 거 충분히 알아. 협약서는 일단 가지고 있어. 언젠가 마음이 정해지면, 언제든 사인하러 날 찾아 와.
그것보다, 가서 따뜻한 커피나 한잔 마시자. 샘이 막 끓인 건데, 설탕을 평소보다 두 배로 넣었대.
그래.
에이레네의 뒷모습을 보며, 류드밀라는 협약서를 접어 가슴팍에 붙어있는 앞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거기엔 구깃구깃한, 우르수스 접경지로 향하는 오래된 지도 한 장도 들어 있었다.
참, 최근 우리에게 새로운 협력 파트너가 생겼어.
방금 조한테 들었어. 그런데 그게 왜?
뭐라고 해야 할까…… 조금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어서.
무슨 뜻이야?
그 사람들, 먼 곳에 있는 농장에서 왔다고 하더라고. 직접 그 사람들 신분을 자세히 조사해 봤는데, 별문제는 없었고 사람 대하는 태도도 아주 예의 발랐어.
그런데, 그중 몇몇은 왠지 너와 비슷한 느낌이 든단 말이지. 네가 직접 가서 그 사람들에 대해 좀 알아봐 줬으면 좋겠어.
나랑 비슷하다고?…… 알겠어.
어디 보자, 리스트에는 온통 생활 물자뿐이라, 별문제 없어 보이네.
화물 자체도…… 으음, 이상 없고.
납품 장소가 여기인가?
'수지 잡화점'? 평범한 이름인데
……?!
……레드, 네가 왜 여기에? 설마……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야.
류드밀라, 운송보장국 사람들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레드, 말해! 잡화점 사람들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
……
물건 배달하러 온 운전기사가 너야?
물건 받으러 온 사람이 너야?
……
……
이 화물들…… 문제는 없군.
도와줄게.
오랜만이야.
너도.
운송보장국에 아주 실력 좋은 리프로바가 하나 있다고 듣긴 했었는데. 지금은 부재중이라더니, 설마 그게 너일 줄은 몰랐네.
고향엔 잘 다녀온 모양이군. 나인이 알면 좋아하겠어.
나인…… 농장은 어떻게 된 거야?
그냥 농장일 뿐이야.
나인이 거기 있어?
응, 나인이랑 다른 녀석들도 다.
탈룰라는?
……됐다, 말 안 해줬다간 또 한바탕 싸우려 들겠지. 탈룰라도 있어, 나인이 지켜보는 중이야.
물자를 모은다는 건 설마……
우리는 지금 다음 단계를 준비하고 있어.
그래서 대량의 물자가 필요한 거고.
카시미어나 라이타니엔에선 아무도 우리랑 거래하려고 하지 않았지. 그래서 일단 한번 해보자는 생각으로 여기까지 왔는데, 뜻밖에 그 판사님과 에이레네 국장이 우리를 흔쾌히 도와주더군.
그야 네가 정체를 숨기고 있으니까.
류드밀라, 너라면 예전에 자기가 리유니온이었다고 사방팔방 떠들고 다니겠어?
……
우린 그저 우르수스 접경지 농장에 사는 농부들일 뿐이야. 거짓말은 단 한 마디도 안 했다고.
너희들…… 대체 왜……?
……
레드, 무슨 생각이야?
거의 다 옮겼네.
리스트를 확인해 봤는데, 별문제는 없는 것 같아. 돌아가면 에이레네에게 고맙다고 전해줘.
우린 아마 한참 후에나 다시 올 것 같다고, 우리 같은 농민들을 보살펴줘서 고맙다고 말이야.
레드!
이건 널 위해서라고, 류드밀라. 넌 이제 더 이상 리유니온이 아니야.
아니면, 설마 다시 돌아오고 싶은 거야?
만약 그럴 생각이라면, 같이 가자. 널 보면 나인도 정말 기뻐할 거야.
나인과 탈룰라, 두 사람 곁으로 돌아가겠다고 하면, 분명 우르수스로 들어갈 수 있다.
게다가 탈룰라…… 그녀를 더 세심하게 관찰하지 못했던 것과 그녀의 타락을 더 빨리 알아채지 못했던 것을 내가 얼마나 많이 후회했었던가.
이건 기회다.
잘 생각해 봐, 류드밀라. 지금의 리유니온은 달라졌어. 우리가 이번에 돌아가는 건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다.
하지만 너는 어때? 넌 여전히 예전의 그 류드밀라야? 아니면 트럭 기사 류드밀라? 그것도 아니면 아예 다른 사람이 된 건가?
정말로 돌아오고 싶긴 한 거야? 아니면 그냥 예전처럼 우리에게 얹혀 가고 싶은 거야?
난 얹혀 간 적 없어!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너 스스로 어떻게 걸어갈지 결정하지 못한 채로는, 설령 체르노보그의 폐허에 데려다 놓는다고 해도, 넌 그저 길을 잃은 유령에 불과할 뿐이야.
이제 차 시동 걸 거야. 멀리 떨어져, 바퀴에 말려들어 가지 말고.
잠깐만! 레드!
이 자식이……
선생님, 나 왔어.
그녀는 계속 비용을 지급하며 이 방을 빌려두었다. 방 안은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한 것이,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전 모습 그대로였다.
그녀는 우르수스로 향하는 낡은 지도와 에이레네가 준 협약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레드가 사인한 영수증을 꺼내 놓았다.
선생님이 나한테 말했지…… 복수를 위해 우르수스로 돌아가선 안 된다고. 난 아직 약한 데다, 각오도 충분하지 않다고.
그런데, 대체 어떻게 해야 충분한 힘과 각오를 했다고 할 수 있는 걸까?
화가 나 있군. 그건 켈시가 네 요청을 거절해서인가? 아니면, 레드에게 정곡을 찔려서인가?
그것도 아니면, 속으론 에이레네가 제안한 타이밍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건가?
켈시는 아무것도 몰라! 나더러 죽으러 가는 거라고, 나에겐 목표가 없다고 했어. 그리고 레드는, 대체 지가 뭐라고 나보고 얹혀 간다고 말하는 거야?
맞아. 리유니온에서 넌 '크라운슬레이어'였어. 탈룰라가 지목한 곳이라면 그게 어디든 갔지.
그 후엔 '배송 전문가'였고. 에이레네가 배송하라고 하면 무엇이든 배송했지.
류드밀라, 넌 항상 이미 출발한 차에 올라타기만 했을 뿐이잖아.
리유니온의 차, 로도스 아일랜드의 차, 상조회의 차……
닥쳐! 난 그 목표들을 위해 피 흘려왔다고!
네가 그 이야기의 일원이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였을 뿐이잖아. 그 이야기가 끝나버리거나, 그 이야기 속에 네 자리가 없게 되면,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게 될까 봐 두려워서 말이야.
넌 '복수자'나 '운전기사'를 빼면 아무것도 아닌 너 자신이 두려웠던 거야.
난 어떻게든 진실을 밝혀낼 거고, 아버지 묘에도 찾아갈 거야!
네 발로 네가 가겠다는데 누가 막겠어?
난……
확실히 넌 진실을 원하고 있고, 아버지 묘도 가고 싶어 하는 데다, 석관도 찾고 싶어 하지.
하지만 넌 탈룰라를 만났고, 에이레네를 만났어. 탈룰라의 타락을 미리 알아채지 못한 걸 후회했고, 에이레네에게는 약속했어.
왜일까? 이게 석관의 진실과 관계가 있어서?
아니, 이건 오직 너, '크라운슬레이어' 류드밀라와 관련된 일이야.
돌이켜 생각해 봐. 네가 지난번에 우르수스로 가려 했을 때, 선생님은 어떤 표정이었지?
선생님은…… 웃고 계셨어.
네 순진함에 웃은 거지.
선생님은 말했어. “류드밀라, 황제 한 사람을 죽이는 건, 사실 파울비스트 한 마리를 죽이는 것과 비슷하게 간단해. 피를 흘리기만 하면, 황제도 죽기 마련이거든.”
“……하지만, 황제를 죽인 다음에는 어떡할 거니?”
그 말 대로야. 황제를 죽인 다음에는?
황좌가 비게 되면, 그 자리엔 누가 앉아? 혼란에 빠질 국가는 또, 누가 관리하고? 뒤이어 새로운 폭군이 즉위하면, 그 황제도 다시 죽일 셈이야?
그렇게 흐르는 피가, 과연 네 마음의 구멍을 메워줄 수 있을까?
난……
넌 지금까지 이런 걸 단 한 번도 생각한 적 없지. 그저 '죽이는 것'만 신경 써왔으니까.
왜냐하면 '사람을 죽이는 것'은 너무 간단하거든. 그건 끝이 있는 행동이니까. 그저 칼을 뽑고, 상대가 쓰러지면, 임무는 끝나.
지금 운송보장국에서 지내는 것도 마찬가지야. 물건을 배송하고, 사인을 받으면, 임무는 끝나지.
넌 이런 느낌을 좋아하는 거야. 목표만 바라보고 있으면, 목표를 이룬 후에 벌어질 일이 얼마나 복잡할지 같은 건 신경 쓸 필요 없으니까, 임무가 끝난 뒤에 네가 어디로 가야 할지도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지.
넌 너 자신을 그냥 한 자루의 칼로 단순화해 버렸어. 칼은 미래를 고민할 필요가 없으니까.
……그래서 내가 방황했던 거구나.
그래. 난 알고 있었던 거야. 한번 그 얼어붙은 땅에 발을 들이는 순간, 더 이상 진실이라는 것에만 집중할 수 없고, 연구소 폐허 앞에서 울고만 있을 수 없게 된다는 걸 말이야.
난 그곳에서 자라서, 그곳의 삶이 어떤 모습인지 잘 알아. 리유니온과 함께하며 그 땅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고난을 지켜봐 왔어.
그래서, 난 절대로 그 사람들과 일들을 외면할 수 없어. 나는 그것들을 다시 마주했을 때, 내가 여전히 무력할까 봐, 그게 두려운 거야.
내 증오는 단지 아버지가 겪은 일 때문일까? 내 분노는 그저 진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일까?
난 아직도 스스로에게, 난 '크라운슬레이어'라고, 내 검은 오직 왕을 죽이기 위해 존재한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거야?
군왕 한 사람을 죽이는 건 쉽지만, 왕관 자체를 죽이는 건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지.
그래서 난 로도스 아일랜드나 리유니온에 의지하고 싶었던 거야.
난 그들이 날 보호해 주길 바랐던 게 아니라, 날 도와서 그 얼어붙은 땅의 눈보라를 함께 막아내길 바랐던 거지.
……난 이미 답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는데도.
류드밀라! 대체 어딜 갔었던 거야? 오후 내내 코빼기도 안 보이더니.
빨리 와, 네가 원하던 보드카야! 우르수스 것만큼 독하진 않겠지만, 시라쿠사에서는 이게 최고라고.
에이레네.
응? 이렇게 심각한 얼굴이라니, 왜 그래?
혹시 드디어 사인하기로 한 거야? 펜도 내가 다 준비해 뒀어!
나 떠날 거야.
떠난다고? 어디로? 로도스 아일랜드에서 복귀 명령이라도 내린 거야?
아니. 스스로 결정했어.
난 우르수스로 돌아갈 거야.
지금? 하지만…… 북쪽은 엄청 춥잖아.
혹시…… 우리가 뭐 잘못한 거라도 있어? 아니면, 농장 사람들이 너한테……
둘 다 아니야.
날 지켜보겠다고 말해 놓고선, 이제 와서 네가 이러면 약속을 어기는 거라고.
지켜봤어. 그래서 알 수 있었지. 네가 초기의 트럭 상조회를 어떻게 지금의 규모로 키워냈는지, 이 모든 걸 위해 얼마나 많은 심혈을 기울였는지 말이야.
너도, 그 사람도, 그런 행동으로 나에게 알려준 거야. 무언가를 이루고 싶다면 반드시 처음부터 스스로 움직여야 한다는 걸.
……그건 정말 어려울 거야.
그러니 내가 지금껏 도망쳤던 거겠지.
……그럼에도 꼭 가야 한다는 거지?
꼭 가야만 해.
알겠어.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리프로바를 막는 건 친구로서 할 짓이 아니지.
하지만 잘 들어, 류드밀라. 네가 그곳에서 무엇을 찾아내든, 아무것도 찾지 못하든 상관없이……
지치고 힘들 땐, 운송보장국의 문이 언제고 항상 열려 있다는 걸 기억해. 그 협약서도 내가 잘 보관하고 있을게.
응, 약속할게.
누구야?
나야.
어쩐 일이야? 마음을 정했어? 아니면 배웅하러 온 거야?
그것보다 '수지 잡화점'은 어떻게 된 거야?
……어떤 친구의 이름이야.
너도 예전과는 좀 달라졌네.
이 트럭에 실린 짐들, 내가 국경선까지 운반하는 거 도와줄게.
……왜?
너희에게 내는 차비라고 해두지. 그리고…… 내가 예전에 리유니온에 졌던 마지막 남은 빚을 갚는 셈이기도 하고.
알겠어.
넌 어디로 갈 건데?
일단 로도스 아일랜드로 돌아가서 짐을 챙긴 다음, 우르수스로 갈 거야.
혼자서?
혼자서.
그럼, 어쩌면 나중에 다시 만날 수도 있겠군.
기회가 된다면 말이지.
류드밀라가 회의실로 들어서자, 켈시가 그곳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류드밀라가 먼저 입을 뗐다.
켈시, 넌 내게 많은 걸 숨길 거야, 안 그래?
내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그렇겠지.
네가 판단하기에 내가 꼭 알아야 하는 것들만 말해줄 테고, 맞지?
부정하지 않겠어.
그렇다면, 거절하겠어.
로도스 아일랜드는 여전히 네가 우르수스로 가는 걸 승인하지 않을 거야.
난 그저 집으로 돌아가는 것뿐이야. 우르수스, 그곳이 내 고향이니까.
나 혼자서 돌아갈 거야. 내 발로 내가 가는 거니까, 넌 물론이고, 로도스 아일랜드도 나한테 간섭할 순 없어.
그곳에서 내 발로 걷고 내 눈으로 보면서, 어쩌면 다른 무언가를 할 수도 있겠지.
그러다가 너희 오퍼레이터를 마주치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자고.
내가 할 말은 이게 다야.
말을 마친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회의실을 나갔다.
켈시는 그녀를 붙잡지 않았다.
아버지, 난 이제 파일럿도 정치인도 될 수 없을 것 같아.
그래도 눈보라를 빠져나가는 안개는 될 수 있으니까, 이번에는 내 두 눈으로 직접, 눈보라 뒤에 펼쳐진 길을 확인해 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