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예전엔 함께였는데

예전엔 함께였는데

오퍼레이터 레코드브릿지

고목 한 그루가 주검방에 뿌리를 내린다. 병사와 협객은 이곳에 모여 노래하고 떠들며 술자리를 즐긴다. 술자리가 파할 무렵, 은퇴를 앞둔 노병은 용기를 내어 오랫동안 존경해 온 종사에게 작별을 고한다.

등장 오퍼레이터: 총웨


???

힘내게, 조금만 더 파면 끝나겠군.

?

팔짱 끼고 구경만 하고 있을 거요?

???

설마 내가 귀공을 돕기 싫어서 이러고 있겠는가? 누구 때문에 팔을 다쳤는데.

?

알겠소, 알겠다고……

백부장

장군님, 술을 사 왔습니다.

좌선료

왜 이렇게 오래 걸렸나?

백부장

우리의 승전보를 듣고 백성들도 모두 축하하고 있습니다. 오늘 객잔에 사람들이 몰려오는 바람에, 가뜩이나 일손이 부족한 데다 짐 나르는 버든비스트들마저 길을 다 막아버렸지 뭡니까!

백부장

저도 한참 동안 짐 내리는 걸 도와준 후에야 겨우 올 수 있었습니다.

좌선료

옥문 군인이라면 전장에서는 목숨을 걸고 싸우고, 평소에는 백성들을 도와야 하지. 아주 잘했군.

백부장

감사합니다, 장군님.

???

어디 보자.

'소주', '진탕주', '몰락주'…… 음? 강남 호송주도 있군.

좌장군, 오늘은 '공무 중'이라는 핑계 댈 생각 말게. 술이 너무 아깝잖나.

좌선료

……물론이오.

백부장

종사님, 안녕하십니까.

그래, 고생이 많군.

백부장

아, 아닙니다.

병사는 술이 가득 실린 수레를 멈추고는 눈앞의 정원을 둘러보았다.

성남 도검방은 옥문 최고의 대장간으로 순방영의 대부분 군사 장비를 제작해 왔다. 방주인 맹철의와 종사 또한 친밀한 사이였다.

부대에 일이 없는 날이면 사람들은 도검방에 와서 강호의 협객들과 무예를 겨루거나 잔을 나눴기에, 이곳은 웃음소리가 늘 요란하게 울려 퍼지곤 했다.

백부장도 가끔 따라오기는 했지만, 오늘 이 정원은 평소와 조금 달랐다……

대문 근처에 깔았던 수십 개의 바닥 벽돌은 온데간데없고, 대신 오래된 회화나무가 덩그러니 서 있었는데, 우거진 가지가 대부분 공간을 차지했다.

회화나무는 두 사람이 껴안을 수 있을 만한 굵기였으며, 나무껍질에 고운 모래알이 끼어 있어 노인의 손처럼 거칠었다.

백 년은 넘은 고목인 듯한데 이렇게 함부로 이동도시로 옮겨 심으면 적응이나 잘할 수 있을지……

좌선료

그대가 옛사람을 흉내를 낸답시고 나무에 공적만 새겨두고 돌보지 않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소? 고목은 나무껍질이 상하는 게 가장 치명적인데, 사막에 그대로 두면 정말 말라버릴지도 모르지.

그렇긴 하지만……

좌선료

나무를 옮기자고 했던 건 여협객인데, 이따 돌아와서 자네가 투덜거리는 걸 보면 분명 화를 낼 것이오.

좌선료

나무도 사람과 크게 다를 바가 없소. 사막에서 살아남은 것만큼, 그 생명력은 결코 무시할 순 없지.

좌선료

게다가, 앞으로는 맹철의가 잘 보살필 테니 내년에 와 보면 아마 새싹이 잔뜩 자라, 더위를 피하기 딱 좋은 나무가 될 것이오.

그것도 그렇군.

???

둘이 아주 귀찮은 일만 내게 떠넘기기는……

맹철의

그때 막았어야 했는데…… 나도 햇볕을 너무 쬐어 맛이 갔나 봐.

이 도검방에는 화로 아니면 쇠붙이밖에 없는데, 활력이 넘치는 게 있으면 그것도 좋은 일 아닌가.

맹철의

예, 예. 너희들 땜에 내가 못 산다니까.

맹철의

오? 술이 왔군. 나무도 심었고 마침 안주도 다 준비됐겠다, 얼른 안으로 들어가자고!

백부장

그럼, 장군님, 종사님, 방주님, 저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왜 가는가?

백부장

제가 이 자리에 있기에는……

이번에 도적도 모두 소탕했고 좌장군도 아직 자네의 공을 치하하지 못했는데, 술만 사 오고 돌려보내는 건 도리가 아니지.

좌선료

……종사님 말씀을 따르게.

백부장

……알겠습니다.

백부장

그럼 제가 술을 가져오겠습니다.


맹철의

엇……

맹철의

달이 나무보다 더 높이 떠 있잖아. 정말 이상하군.

좌선료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눈이 침침해진 게 아니오?

맹철의

많이 마셨다고?

맹철의

아니, 아니지. 이제 시작인데. 평소 검을 만들 때도 꼭 술 한 단지는 끼고 있어야 해. 왜냐고? 한 모금 마셔야 망치질에도 힘이 더 들어가니까!

좌선료

……

맹철의

평숭후, 자네는 옥문 장군으로서 군을 인솔하고 적을 상대하는 능력은 누구보다 뛰어나지. 하지만 술과 무공은, 글쎄……

좌선료

잠깐, 왜 말을 하다가 마는 것이오? 내 무공이 어때서?

좌선료

이번 도적 소탕 때도 백 리 넘는 황사길을 맨 앞에서 추격한 사람이 내가 아니오? 내가 잡은 적이 그대보다 적지 않고, 몸에 난 상처도 그대 못지않게 많소!

맹철의

호오?

좌선료

이 팔을 좀 보시오. 살짝만 더 빗나가도 경맥을 다쳤을 테지……

맹철의

겨우 팔 가지고 무슨. 내 등짝을 보겠는가? 자네를 막아주다가 생긴 새로운 상처가 있다고!

백부장

……

지금 시간이 어떻게 됐나?

백부장

자정입니다, 종사님.

도검방에는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병사와 종사 사이에는 몇 테이블이 떨어져 있어 그는 목소리를 높일 수밖에 없었고, 그쪽에 목소리가 닿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바닥에는 빈 술 단지만 잔뜩 늘어갔고, 그럴수록 연회의 시끌벅적한 분위기도 점점 고조되어 갔다.

술에 취해 혀 꼬부라진 소리를 하는 연무대의 랭커, 강호인과 몸에 난 상처를 비교하는 옥문 장군…… 병사는 낮에 전장에 있던 사람들을 떠올리며 자신도 이미 취했다고 느꼈다.

청아한 목소리

시간은 왜 물어봐? 벌써 취한 거야?

청아한 목소리

주량은 여동생에 한참 못 미치네.

맑고 듣기 좋은 목소리였으나, 말투는 다소 담담했다.

병사는 목소리의 주인이 항상 종사 옆에 붙어 다니던 여협객이란 걸 알아챘지만, 그녀가 언제 합석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가 종사의 맞은 편에 앉은 바람에 병사는 그녀의 뒷모습밖에 볼 수 없었다.

그녀가 옥문에 왜 오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단지 그녀가 종사, 평숭후, 방주와 친하다는 사실만 알려져 있었다. 종사와는 '싸우면서 정이 든 사이'라며, 그 뒤로는 쭉 이곳에 머물게 되었다고 한다.

부대원들도 그 여협객과 안면이 있는 것 같았는데, 다들 그녀의 무공과 주량을 칭찬하며 성격마저 털털해서 만인의 여인이라고 했다.

그러나 어찌 된 영문인지 병사는 좀처럼 그녀의 얼굴을 볼 기회가 없었다.

갑자기 호기심이 든 병사는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옆에 있던 사람의 빈 잔을 들고 서둘러 그녀에게 술을 따르러 갔다.

링 말인가? 그런가, 그 아이가 옥문에 왔을 때 둘이 만났나 보군.

꿈속에선 깨어 있고 꿈 밖에선 취해 있으니, 취하든 않든 그 아이에게는 딱히 상관없는 일이지만.

여협객

또 영문 모를 소리를 하는 걸 보니 많이 취했나 보네……

……

여협객

이번 출정에서 우리도 많은 사람을 잃었어. 돌아온 사람들마저 적잖이 다쳤고.

그래.

여협객

그래서 당신한테 꼭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여협객

그렇게 많은 전투를 치르고도 아무런 부상도 입지 않는 걸 보면, 무공이 너무나도 뛰어나다고 밖에 할 수 없지.

여협객

그리고 그 이름…… '숴'는 무슨 뜻이지? 성도 없이 그냥 한 자인 이름이 어디 있어. 이름보다는 칭호에 더 가까운 것 같은데.

또 다른 여동생이 지어준 이름이야.

여협객

이름은 보통 부모님이나 스승 아니면 점쟁이가 지어주지…… 자신보다 늦게 태어난 동생이 지어주는 경우도 있어?

우리 형제들은 다 그래…… 얘기하자면 길어.

좌선료

……

좌선료

종사님, 많이 취했나 보오.

여협객

또 어물쩍 넘어가게 도와주네……

여협객

……됐어, 그만 물어볼게.

그렇다면……

여러분이 내게 '인간'의 이름을 지어주는 게 어떻겠나.

좌선료

……

좌선료

종사님?

좌장군, 모처럼 기분이 좋은 날인데 그것도 나쁘지 않잖나?

좌선료

……

맹철의

그래, 좋아!

맹철의

옥문에 연무대의 방이 생긴 이래, 1위 자리는 항상 비어 있었지. 이 도시 사람들은 그게 누구 건지 다 알고 있어. 2위인 내가 자네 앞에서 열 합도 못 버티니까.

맹철의

종사의 무공은 당할 자가 없으니, '무적'이라는 이름이 어떤가?

좌선료

……

좌선료

종사님 생각은 어떻소?

좌선료

내 생각엔 '정란'으로 하는 게 좋겠소. '풍파를 평정하고 파도를 잠재운다'라는 뜻이지.

좌선료

아니면 '안창'도 있소.

맹철의

너무 문학적이라 무슨 뜻인지 모르겠잖아……

얼굴이 붉어진 경호원

'천근'은 어떻습니까. 지난번에 종사님께서 권법을 보여주셨는데, 그 주먹이 마치 천근추 같았습니다.

귀가 빨개진 참모

아니죠, '청안'이 좋겠습니다.

얼굴이 붉어진 경호원

……

귀가 빨개진 참모

……

미간을 찌푸렸다…… 평숭후도, 방주도……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미간을 찌푸렸다.

자신에게 향하는 시선을 느끼자 병사는 따르던 술을 멈췄다.

백부장

종사님……

그래, 귀공은 뭔가 좋은 이름이 없는가?

백부장

저, 저, 저……

백부장

제 고향에선 그냥 보이는 대로 아이의 이름을 짓습니다.

백부장

저는 제대로 배우지 못해서, 조, 종사님을 도울 수가……

여협객

정말 시끄럽네.

여협객

복잡하게 생각할 거 없잖아. 내가 지어줄게.

날씬한 여협객은 몸을 일으켜 술잔을 든 채 바닥에서 구르는 빈 술 단지와 얼굴을 붉히며 싸우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쳐 갔다.

그녀가 창문을 열자 밤바람이 방안을 가득 채웠고, 모든 사람들이 조용해졌다.

두 달은 높이 걸려 있고, 밤은 더욱 깊어졌다. 하지만 이 이동 요새는 잠들지 않았고, 비거주지의 군용 오리지늄 등불은 밤을 밝게 비추어 한밤중에도 멀리 내다볼 수 있었다.

저 멀리 뭇 산들은 제멋대로 줄지어 누워있어, 그 모습은 마치 구름 위에서 누군가 붓을 흔들어 걸쭉한 먹물을 떨어뜨린 것 같았다.

……

여협객

저 산은 보는 사람마다 각자 모습이 달라. 하지만 언제나 그곳에 계속 있고, 고개만 들면 바로 눈에 들어오지.

여협객

'총웨', 어때?

좌선료

……

맹철의

……

'총웨'.

병사는 그 두 글자를 계속 곱씹어봤지만, 도통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아주 힘찬 이름이라고 느껴졌고, '정란'이나 '무적'보다는 훨씬 나은 것 같았다.

그는 근처에 앉아있는 종사를 바라보았다. 남자의 표정은 그대로였고 기쁨이나 슬픔이 보이지 않았지만, 두 눈은 유난히 맑게 빛났다.

그는 문득 십여 년 전의 일이 떠올랐다. 옥문에 발령받은 첫날, 종사가 특별히 연무장에 시찰하러 왔었다.

갓 입대한 병사들은 대부분 종사의 소문을 들은 지라 참지 못하고 눈길을 그에게 돌렸으며, 종사는 모든 시선을 하나하나 화답했다.

그로부터 수많은 전장과 수도 없이 많은 나날이 지났다. 옥문은 모래 바다를 누비며 다녔고, 십여 년이란 세월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는 종사의 눈빛을 잘 알고 있다. 분노는 없지만 맑고 투명한 게 무엇보다 냉정해 보였다. 이런 냉정함이 그들을 안심시켰지만, 한편으론 조금 서먹서먹하기도 했다.

종사는 늘 여기에 있었지만, 그는 정말 이곳에 소속감을 느낄까?

지금 이 순간에도 그의 눈빛은 여전했지만, 어딘가 조금 다른 것 같았다.

밤바람 때문인가? 밤바람 때문에 그의 눈에 먼지가 들어간 건가? 아니면 오늘 자신이 사 온 술 때문에 너무 취해 버린 것일까?

이름을 바꾼다고 이렇게 감격하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총웨'.

귀가 빨개진 참모

'총웨, 좋네요! 겹겹이 쌓인 산악, 그 아래에 펼쳐진 사막, 위로 흘러가는 구름. 너무 문학적이고 입에도 착착 감기는 게, 역시 협객님은 남다르십니다.

얼굴이 붉어진 경호원

거…… 거참 말이 많네…… 협객님의 뜻을 네가 해석할 필요가 있나?

맹철의

좋은 이름이군. 종사와는 잘 어울려.

맹철의

자, 이 이름을 위해, 다 같이 건배!

반쯤 취한 사람들

총웨를 위하여!

총웨

위하여.


어제는 장사를 하지 않아 방주는 화로에 불을 지피는 걸 잊었다. 담장 넘어 불어온 새벽바람이 얼굴에 닿자 병사는 술이 확 깨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머리는 매우 아팠다. 어젯밤의 기억은 모두가 차례차례 술잔을 들어 종사의 새 이름을 축하하는 모습뿐이었다. 그리고 모두가 흥이 났는지 군가까지 불렀고, 심지어 눈물을 흘리는 자까지 있었다.

백부장

설마 취해서 환각이 보이는 건 아니지……

고작 하룻밤 사이었지만, 그 회화나무는 어제처럼 앙상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나무 아래에 있던 남자를 보고 병사는 깜짝 놀랐다.

원래는 슬그머니 떠나려 했지만, 상대방에게 들켜버린 것이었다.

총웨

좋은 아침이군. 오늘은 당직이 아닌 걸로 알고 있는데, 왜 더 쉬지 않고?

백부장

이때쯤 일어나는 게 습관이 되어서…… 어제 너무 달린 탓에 잠도 잘 못 자고……

총웨

해마다 벌어지는 전투에 정말 고생이 많군.

백부장

종사님은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나셨습니까? 설마, 밤을 새우신 겁니까?

총웨

……

백부장

종사님, 어제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술을 따라드리지 못했습니다…… 어쨌든,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총웨

내게?

백부장

며칠 전, 마지막 전투에서! 절 구해주셨잖습니까……

백부장

그때 저는 앞에 있는 놈을 제압하느라 등 뒤의 칼은 아예 신경 쓰지도 못했는데, 종사님께서 그걸 막아주셨죠.

백부장

종사님이 아니었다면 아무리 제가 공적을 세우고 승진했다 해도, 그건 사후 특진이었을 테니……

백부장

아마 기억 못 하시겠죠……

총웨

가능하다면 나도 모든 사람을 구하고 싶지만…… 전장은 무심하고 예상치 못한 변수가 너무 많아서, 나도 어찌할 수가 없네.

백부장

종사님, 옥문에 온 이상 다들 각오는 이미 되어 있습니다! 저는 죽음이 두렵긴 하지만, 그렇게 두려운 건 아닙니다.

총웨

하지만 귀공은 지금 이렇게 살아 있잖나?

총웨

살아 있다면 목숨을 소중히 여겨야 하네.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가서 가족과 함께할 날을 위해 열심히 살아야지.

백부장

……일부러 숨기려는 건 아니지만, 저는 곧 옥문을 떠납니다.

총웨

파견인가?

백부장

아, 아닙니다……

백부장

종사님 덕분에 이번엔 목숨을 구했지만, 이전에 입은 부상이 최근 반년간 자주 재발해서요. 의사는 경맥이 완치되긴 어렵다고 하더군요. 아마 앞으론 칼을 잡지도 못할 겁니다.

백부장

좌장군께선 부하들의 사정을 잘 살피셔서 제가 조기 전역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셨습니다. 정리를 마치는 대로 이번 달 안에 고향으로 돌아갈 예정입니다.

백부장

집에는 노모만 홀로 계시고 전 형제자매도 없습니다. 군에 와 있는 십여 년 동안 크고 작은 전투를 백 번은 넘게 치르면서 집에 가 볼 시간이 없었습니다. 단 하루도 노모를 돌보지 못했죠.

총웨

어떻게 그럴 수가……

백부장

별거 아닙니다. 칼은 잡지 못하지만, 괭이로 밭을 가는 건 문제없으니까요.

백부장

조정도 병사들을 많이 배려해 주고 있습니다. 퇴역 후에도 백부장급으로 대우해 준다고 했습니다.

백부장

……종사님, 종사님께 몇 가지 털어놓고 싶은 게 있습니다.

백부장

제가 더는 군인이 될 수 없다는 걸 알았을 때, 저는 진심으로 전우들, 장군님, 종사님과 멀어지기 싫었고, 이 옥문을 떠나기 너무 아쉬웠습니다.

백부장

저는 사람들 앞에서 늘 '황사에 몸을 묻을 각오를 해야 한다'라고 말해 왔는데, 막상 살아서 돌아갈 걸 생각하니 솔직히 마음속으론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백부장

요즘에는 만약 내가 전사해서 어머니가 조의금을 받는다고 해도, 과연 어머니가 홀로 살아갈 수 있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백부장

종사님, 혹시 제가 도망친다고 생각하십니까……?

총웨

그럴 리가.

총웨

귀공의 부상은 나라를 지켰다는 증거네. 누구도 비난할 수 없어.

총웨

설령 고향에 돌아간다 해도 밭을 일구고 작물을 많이 심는 것 또한 나라와 백성을 위한 좋은 일이잖나.

회화나무에서 잎사귀 하나가 떨어졌다. 아무리 환경이 좋아졌다고 해도 당분간 적응하기 어려운 건 사실이다.

남아 있는 취기는 둘의 거리를 더욱 좁혔고 병사는 옆에 있는 남자를 쳐다보았다.

아무리 범접할 수 없는 전설 속 인물이었지만, 지금 곁에 있는 이 순간만큼은 다정한 형 같았다.

백부장

종사님, 궁금한 게 있는데, 감히 여쭈어도 될지……

총웨

생사를 함께 했으니 우리는 전우나 다름없네. 평소 직급이 달라 대화할 기회가 없었을 뿐, 그렇게 서먹해질 필요는 없지.

백부장

하하……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목숨이 위험했던 순간도 다 가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백부장

종사님은 무엇 때문에 옥문을 지키고 계십니까?

총웨

이곳에 있는 장병들과 같은 이유 아니겠나?

백부장

종사님은 저희와도, 좌장군님과도 다르시지 않습니까……

백부장

제가 이곳에 처음 왔을 때 어떤 노병이 제게 종사님께선 이미 오래전부터 옥문을 지켰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이젠 제가 노병이 되었는데 종사님은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으니……

백부장

다들 그저 종사님이라고만 부르지, 정작 종사님의 관직은 아무도 모르고…… 분명 목숨을 걸고 싸우고 계신 데, 조정에서는 종사님의 공적을 치하해 준 적도 없는 것 같고……

백부장

가족도 없으시고…… 그 여협객은 옥문에 오래 머물러 계셨고……

백부장

그게 아니면, 종사님께선 천하무적이시니 전장의 칼이나 화살 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기에, 아무런 고민도 없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총웨

……

남자의 눈빛이 갑자기 날카롭게 변했다. 하지 말았어야 할 말을 했음을 깨달은 병사는 얼마 안 남은 취기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백부장

종사님, 용서하십시오! 제…… 제가 그만 실언을……

총웨

아니야, 귀공의 말이 맞네.

총웨

난 확실히 귀공들과는 달라. 이점은 숨길 필요도 없고, 숨길 수 있는 것도 아니지.

백부장

그게……

총웨

그런데 좀 다르다고, 그게 무슨 상관인가?

총웨

이 사막은 얼마나 넓고 여기는 얼마나 고난이 많은 땅인가. 그러나 이곳은 염국의 방벽이고, 그 뒤에는 우리가 걱정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지.

총웨

무수한 병사들이 이곳에 남아 고난을 겪으며 생사를 함께 하는 건 비단 공명심 때문만은 아니네.

총웨

귀공들은 전부, 스스로에게 '나는 왜 이곳에 남았는가'하고 물어본 적이 있나?

총웨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정말 그렇게 중요할까?

총웨

우린, 꼭 다르다고 할 수는 없네.

총웨

게다가 나도 이제 귀공들처럼 이름을 갖게 되지 않았나?

백부장

……

좌선료

종사님, 긴히 얘기할 말이 있소만?

총웨

음? 그냥 말해도 되네만.

좌선료

……

좌선료

급한 일이오.

백부장

장군님, 종사님, 그럼 저는 먼저 부대로 복귀하겠습니다!

좌선료

어젯밤에 경성에서 전달자가 도착했소. 급히 복명하라 하더군.

좌선료

아무래도 최근 변경 쪽도 잠잠해졌다고 판단했는지, 그대에게 다른 직무를 주려는 걸지도 모르오.

총웨

이번에는 간격이 짧군?

좌선료

아무래도 사세대가 보기에는 그대가 옥문에 머문 지 꽤 오래됐다고 생각되겠지.

좌선료

편지는 전달자가 직접 내게 전해줬소. 사세대 말고도 병부 쪽에서도 압력을 넣은 것 같은데……

총웨

……

......

병사는 도검방을 나오며 대문을 닫았고, 두 사람의 목소리는 점점 낮아져 갔다……

방금 남자와 했던 대화가 왠지 아련해지는 것 같았다.

병사는 갑옷을 꽉 조이고는 통증이 느껴지는 팔을 지그시 눌렀다.

새벽바람은 여전히 차가웠다.


보름 후

여관 점원

대강, 이 술 두 단지는 내가 쏘는 거니까 길에서 마셔.

여관 점원

버든비스트를 살살 몰아, 술이 다 깨질라.

퇴역 군인

이거 미안하게 됐군. 자꾸 신세만 지는 것 같은데.

여관 점원

무슨 소리야, 우린 같이 싸운 전우였잖아. 이 정도야 당연히 해줘야지.

여관 점원

뭐야, 집에 간다고 벌써부터 선을 긋는 건가?

퇴역 군인

그럴 리가.

여관 점원

솔직히, 지금 모습은 정말 익숙하지가 않아.

퇴역 군인

군복을 벗으니 이젠 별 볼 일 없다 이거지? 세월도 많이 흘렀잖아. 퇴역할 나이는 아니지만, 군에선 왠지 더 빨리 늙어가는 것 같아……

여관 점원

쓸데없는 소릴. 고향에 돌아가면 편하게 지내. 아내를 얻어 아이라도 낳으면 편지 보내는 거 잊지 마. 모두를 기쁘게 해 달라고.

여관 점원

기회가 되면 또 와서 얼굴 좀 보여. 그때도 내가 술을 살 테니까.

퇴역 군인

알았어, 꼭 돌아올게.

퇴역 군인

건강해.

여관 점원

그래, 너도.

여관 점원

공교롭게도 오늘 종사님도 출정하던데.

여관 점원

한꺼번에 배웅하는 걸로 할까.

여관 점원

맞다, 대강, 종사님은 요번에 어디로 가신다던가?

퇴역 군인

……

여관 점원

하아……

퇴역 군인

간다.

긴 여정 속에서 모래는 씻기고 초목이 파랗게 물드는구나.

모두가 변방의 요새에 돌아왔는데, 그대는 홀로 어디를 향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