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노을 아래의 연주

노을 아래의 연주

오퍼레이터 레코드브릿지

루푸카른의 귀족 계승자 중 한 명으로 미하엘은 명령을 받고 수도에 '교육'을 받으러 가게 된다. 자신을 두렵게 하는 쌍둥이 여황 앞에서, 존재감이 없는 그는 고향을 위해 기회를 얻으려고 최선을 다한다.

등장 오퍼레이터: 베이스라인


12월 28일 5:00 P.M.

츠빌링슈튀르메, 쌍둥이 여황 탑 앞

미하엘은 그에게는 너무 무거운 튜바를 안은 채, 악단을 이끌고 그들을 맞이하는 시종을 따라 쌍둥이 탑으로 향했다.

접견 담당 시종

미하엘 각하, 각하께서 떠나실 때, 고향에선 이미 새해 행사를 준비하고 있던가요?

미하엘

네.

미하엘

편하게 미하엘이라고 부르세요.

접견 담당 시종

아, 알겠습니다.

접견 담당 시종

정말 고향이 그립습니다. 그곳의 저녁노을이 이곳 츠빌링슈튀르메만큼 찬란하진 않을지 모르지만, 프레첼을 굽는 고소한 냄새만큼은, 어떠한 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죠……

접견 담당 시종

이 시간에 츠빌링슈튀르메에 도착하시게 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저는……

접견 담당 시종

적어도 당신의 고탑 안에서 새해를 보내실 거라 생각했었거든요.

미하엘

어쩌면 제가 고향에서 보내는 마지막 새해일 수도 있었겠네요, 그렇죠? 츠빌링슈튀르메에 '공부'하라고 보내진 후계자들은 언제쯤에야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니까요.

미하엘

수도의 새해 축제에 맞춰서 오고 싶다고, 제가 요청했어요.

접견 담당 시종

새해 축제에 참여하고 싶으신가요?……

미하엘

오늘 두 여황폐하를 알현할 때 신청해보려 합니다. 아버지께서 다른 지역과 무역을 할 때, 그들이 루푸카른을 평등하게 대하길 원한다면 먼저 폐하들의 태도를 봐야 한다고 말씀하셨거든요.

접견 담당 시종

그런데 폐하들은…… 아, 미하엘, 저는 이 앞부터 통행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제가 들어가 본 적은 없지만, 은총의 고탑으로 가는 길은 아마 이쪽이 맞을 겁니다.

미하엘

한 번도 들어가 본 적 없다고요?…… 그럼 지난 몇 년 동안 고향에서 폐하들께 올린 공식 문건들은 대체 누가 전달한 거죠?

접견 담당 시종

아…… 폐하들께서 '잡음'을 듣고 싶어하지 않으실 때엔, 그 '잡음'이 그분들의 귓가에 닿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이런 '특별한 예우'는 주변 귀족들도 아주 잘 알고 있는 것이죠.

미하엘

……

접견 담당 시종

어쨌든 미하엘, 폐하들과 대화를 나눌 때 조심하세요. 좋지 못한 소문이 꽤 많이 들려오더군요.

접견 담당 시종

특히 저희의 고향을 거의 평정할 뻔했던 그리마흐트 폐하, 그분 앞에서 말 한번 잘못했다가는 허리춤에 있는 검으로 몸을 두 동강 내버린다고 합니다!

접견 담당 시종

제 말을 괜히 겁주려고 하는 실없는 소리라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가능하면 온화하신 에비게그나데 폐하와 최대한 소통하도록 하세요. 어쨌든 당신의 안전이 최우선이니……

미하엘

이번 알현을 위해 일 년 내내 준비했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조심스럽지 않나요?

미하엘

자기소개부터 선곡 소개, 새해 축제 참가신청서의 단어 하나하나까지 원고를 쓰느라, 수많은 펜이 못쓰게 됐어요.

미하엘

게다가, 마침내 루푸카른의 늑대가 양 떼의 고탑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게 되었으니, 꽤 좋은 신호 아닌가요?

접견 담당 시종

……미하엘, 하시는 일이 모두 순조롭길 바랍니다.

미하엘은 과하게 넓은 낯선 길에 들어섰다.

미하엘

(후…… 하…… 후…… 하……)


미하엘

(여황은…… 한 명만 자리에 있는 건가? 문무 관원들도 좀 있어. 그 무섭다는 그리마흐트는 없나?)

미하엘

(잘 됐다…… 그녀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멘트들은 쓸 일이 없겠어.)

앞으로 나섰을 때, 그는 자신의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앞서 수없이 연습했던 대로 미하엘은 에비게그나데에게 점잖고 절제된 태도로 인사를 하였다.

미하엘

폐하, 저 미하엘이 가문을 대표하여 알현하러 왔습니다.

에비게그나데

미하엘, 여기서 지낼만한가?

미하엘

모든 것이 좋습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곳, 츠빌링슈튀르메에서 지내는 동안 제 고향에선 여태껏 본 적 없던 경치를 곳곳에서 보았습니다.

미하엘

수도의 번영을 제 두 눈으로 직접 보니, '영원한 은총'과 '무자비한 권위'의 찬란함 아래에서 루푸카른 역시 발전할 수 있을 것 같아 더욱더 기대됩니다.

순간 미하엘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너무 긴장한 탓일까, 유창한 대답 중 거의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잠깐의 끊김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에비게그나데의 반응을 슬쩍 살펴보니, 그녀는 겁먹지 말라고 격려하는 듯 얼굴에 다정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덕분에 미하엘의 팽팽하게 당겨졌던 마음속 현이 조금은 느슨해졌다.

에비게그나데

악단을 데리고 왔던데, 이번엔 어떤 연주를 선보일 건가?

미하엘

제 고향의 서사시인…… 《하얀 이빨》입니다.

미하엘

숲 속에 살던 야만적인 짐승이 하루는 숲 속 가장자리를 배회하는데, 먼 곳에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에 매료되었고, 감동하여……

에비게그나데

날카로운 이빨을 거두고, 숲 속을 벗어나 음악 소리의 부름에 응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지.

미하엘

(여황은 이 곡을 선곡한 이유를 알고 있어! 게다가 매우 만족스러워 보여…… 잘 됐다.)

에비게그나데

어디, 네가 연주하는 《하얀 이빨》을 들어보자꾸나.

미하엘

예, 부디 제가 루푸카른을 대표하여 이 연주를 여황폐하께 바칠 수 있도록 윤허해주소서!


루푸카른의 서사시가 탑에 울려 퍼졌다. 고음은 활기차고 생기있게, 저음은 온화하고 순종적이게, 어린 늑대는 여황 앞에서 날카로운 이빨을 거두었다.

의심할 여지 없이 에비게그나데 여황의 마음에 딱 맞는 선곡이었다. 그렇지만, 미하엘은 그녀에게 좀 더 강한 인상을 남기기 위해 마지막 튜바 독주에 비장의 무기를 남겨두었다.

한 박자, 두 박자, 세 박자, 네 박자…… 모든 악기가 연주를 멈추자, 미하엘은 한 발짝 앞으로 나와 밤낮없이 연습한 결과 정교함이 극에 달한 독주를 마침내 시작했다.

이 독주는 원곡과 달랐다. 원곡이 가진 소박함과 애틋함은, 에비게그나데의 고급스럽고 화려한 취향에는 알맞지 않았다.

그래서 미하엘은 완벽한 포르타멘토를 추가하여 전체 음역을 더욱더 풍성하게 만들었다.

보라, 이 휘황찬란한 은총의 고탑을. 곳곳에 흩날리는 오색빛깔의 비단을, 고개를 들면 바로 보일 정도로 하늘 가득 펼쳐진 저녁노을을……

화려한 음색과 현란한 연주 솜씨가 고탑 주인의 취향에 딱 들어맞았으리라. 그 금빛 찬란하게 빛나는 신성함은…… 다행히 준비한 대로 완벽하게 연출되었다!

일 년간의 준비가 전혀 헛되지 않았다! 미하엘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그는 튜바를 천천히 내려놓고, 기대에 찬 얼굴로 에비게그나데의 표정을 몰래 살펴보았다.

미하엘

(좋았어, 여황께선 여전히 온화해 보이시는군.)

미하엘

(……그런데 어쩐지 여황의 표정이 연주를 시작하기 전과 똑같은 것 같은데?)

미하엘은 악단과 함께 에비게그나데에게 절을 했다.

에비게그나데

그래. 선곡이 아주 좋구나.

에비게그나데

편곡에도 신경을 많이 썼고.

에비게그나데

애를 많이 썼어.

에비게그나데

……

미하엘

……

에비게그나데

……

미하엘

좋게 들어주셔서 매우 영광입니다.

미하엘

……

미하엘

폐하, 사실 제가 이번에 방문한 이유 중에는 아버지의 말씀을 전하기 위함도 있습니다.

미하엘

아버지는 루푸카른 귀족들이 새해 축제에 참여하는 것에 대하여 폐하의 견해를 듣고 싶어 하십니다……

에비게그나데

아니다. 모처럼 마음에 드는 연주를 들었으니, 지금은 그런 일에 대해 생각하기보단 좀 더 여운을 즐기고 싶구나. 훗날 다시 논의하도록 하지.

미하엘

……

순간 미하엘의 손바닥에 식은땀이 뚝뚝 배어 나왔다.

미하엘

……

미하엘

외람되오나 폐하, 그렇다면 훗날 다시 상의할 시간을 정해 주실 수 있으신지요?

미하엘

루푸카른 또한 다른 지역의 발자취를 따라가기를 매우 갈망하고, 우리 모두의 라이타니엔을 더 좋게 만들기를 희망합니다……

에비게그나데

……

에비게그나데

음악에 대한 네 열정은 이미 연주를 통해 나에게 전해졌다. 너에게 새해 축제보다 더 어울리는 자리가 있는 것 같구나.

에비게그나데

오늘부로 마티의 탑에서 일하거라. 그곳엔 고전 악보가 많이 있으니, 음악의 부름을 맞이하기엔 그곳만 한 곳이 없을 것이야.

미하엘

……

에비게그나데

숲 속의 어린 늑대여, 내 안배가 마음에 드는가?

미하엘

……

미하엘은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튜바가 점점 무겁게 느껴졌다. 힘겹게 버티고 있는 팔에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여황의 고탑에서 멀찍이 떨어진 채, 고전 악보나 보라니…… 방치하고자 맘먹으면 얼마 동안이든 방치할 수 있는……

그의 삶이 이 짧은 접견 중 고작 별일 아니란 듯 내뱉은 여황의 선언 한마디로 순식간에 결정되었다. 하지만 이건 거절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게 바로, 온화하고 자애로운 에비게그나데……

미하엘

저……저는……

미하엘

……!

모두가 문이 열리는 소리를 따라 시선을 돌리자, 라이타니엔의 또 다른 여황 그리마흐트가 나타났다

2년 전 미하엘의 고향에 직접 출정해 절대적인 무력으로 반란을 진압했던 '무자비한 권위'의 여황. 미하엘의 안색은 더욱 창백해졌다.

그리마흐트

……

미하엘

그리마흐트 폐하……

에비게그나데

왔구나. 하지만 아쉽게도 좀 늦었네, 이 루푸카른에서 온 소년이 우리를 위해 준비해온 멋진 공연을 놓쳐버리고 말았잖아.

그리마흐트

밖에서 다 들었어. 형편없기 짝이 없더군.

에비게그나데

어라? 난 이 영리한 아이가 네 마음에 들 줄 알았는데.

그리마흐트

겉만 번지르르하니 실속이 없잖아. 마지막 독주의 편곡 부분은 듣기조차 민망하더군.

에비게그나데

그래? 아쉽네, 원래는 마티의 탑에 보내 연구를 시킬 생각이었는데.

그리마흐트

연구? 이런 수준이라면 차라리 빨리 루푸카른으로 꺼져버리는 게 더 나을 거다.

미하엘

……예, 그럼, 저 먼저 물러나 보겠습니다.

뒤에서 들려오는 매서운 목소리

리젤로테, 또 새해 축제 일로 바쁜 거야? 이런 일은 여황의 목소리에 맡겨. 굳이 네 시간을 낭비할 필요 없잖아.

뒤에서 들려오는 온화한 목소리

누군가는 루푸카른의 목소리를 들어야 해.

뒤에서 들려오는 온화한 목소리

그렇지 않는다면, 여기저기서 말이 나오지 않겠어?

뒤에서 들려오는 온화한 목소리

그럴 바엔 한번 허심탄회하게 만나는 게 낫지.

그리마흐트가 뭐라고 대답했는지 미하엘은 듣지 못했다. 그는 이미 입구까지 가버렸고, 더 머물 수 없기에 밖으로 나가야만 했다.

미하엘

(루푸카른의 목소리……? 고향에서 정상적인 경로로 보낸 서신은 모두 문전박대당하지 않았었나? 혹시 누군가……)


미하엘

……

그리마흐트

……

미하엘

……!

미하엘

그리마흐트 폐하,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외람되오나, 방금 도와주신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미하엘

그리마흐트 폐하, 부디……

미하엘

저는……! 저는 폐하께서 이 시점에 모습을 드러내신 것이 결코 우연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미하엘이 다급하게 건넨 말이 그리마흐트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그는 여황의 침묵하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힘들게 침을 삼켰다.

미하엘

제 생각에 고탑 밖에서 수년간 소외됐던 시종이나, 이곳에 온 지 하루 만에 꾸짖음을 들은 저, 저희의 존재는 본질적으로 여황폐하들께서 보여주신 태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미하엘

루푸카른의 일개 소년이 사람들 앞에서 한 명의 여황께 비난받고, 또 다른 여황께 용서받는 것이 절대 우연일 리가 없습니다.

미하엘

이 극의 관중은 그 자리에 있던 귀족들과 지혜를 모아 편지를 여황 앞에 전달하려는 루푸카른 귀족의 계승자들……

미하엘은 그리마흐트를 살짝 바라보았지만, 미동도 없는 뒷모습에선 그 어떤 정보도 얻을 수 없었다.

미하엘

……그 배우가 꼭 저여야 했는지는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두 분께서 저희 아버지의 의견을 탐탁지 않게 여기셨을 수도 있고, 혹은 단순히 제가 도착한 타이밍이 나빴을 수도 있죠.

미하엘

그러나 분명, 폐하께서 저를 구해주셨다는 것만은 알고 있습니다.

미하엘

만약 제가 방금 추측한 것이 모두 사실이라면, 폐하의 이번 행동도 여황께서 저희에게 보내는 메시지 중 하나이겠죠.

미하엘

그렇다면 여황께서 여전히 루푸카른에 인자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시리라는 확신이 듭니다.

그리마흐트

리젤로테와 교류하는 걸 보고, 네가 더 신중한 아이일 줄 알았는데.

미하엘

단도직입적인 걸 좋아하시니, 있는 그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미하엘

폐하께서는 오늘 연주를 그리 좋아하지 않으셨지요……

미하엘

사실은, 저도 오늘 편곡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미하엘

이것이 제가 폐하의 기분을 언짢게 할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이곳에서 기다렸던 이유입니다.

미하엘

저는 더 많은 곡을 연주할 수 있습니다. 꼭 폐하께 들려 드리고 싶습니다……!

지금 등 뒤에서 들려온 소리는 상대할 가치도 없는 잡음일 뿐이라는 듯, 그리마흐트가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멀어져 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미하엘은 점점 절망에 빠져들었다.

돌연 여황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 순간, 미하엘은 여황이 이쪽으로 얼굴을 돌리는 걸 본 것 같았다. 다만 그리마흐트는 아무런 지시도 내리지 않은 채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미하엘은 지금 이 순간처럼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아 본 적이 없었다. 자신이 잘못 본 것은 아닌지, 착각한 것은 아닌지 고민할 겨를조차 없이, 그는 일말의 망설임마저 버리고 그리마흐트의 발걸음을 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