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의 첫걸음
여러 해가 지난 후, 아델은 그녀가 키워낸 경보꽃 모종을 가지고, 처음으로 우나 화산에 발을 디뎠다.
등장 오퍼레이터: 에이야퍄들라 더 크비트 아스카
8월 24일. 경보꽃 인큐베이터의 온도: 정상, 습도: 정상, 토양의 각종 성분 수치: 정상, 구역 오리지늄 활성: 아직 활성 제어를 작동하지 않음.
오늘 우나 화산 근처의 우나 마을에 도착했는데, 새로운 주소를 찾느라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들은 원래 있던 곳에서부터 북쪽으로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다시 집을 짓고 살고 있었다.
지금은 우나 마을에서 어느 방향을 바라보건 우나 화산을 볼 수 없다. 가장 높은 건물 옥상에 올라가야, 저 멀리 폐허가 된 옛 우나 마을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산길이 멀고 험했지만, 다행히 이번 답사에는 차량을 신청한 덕분에 인큐베이터가 손상되지 않았다. 그 안에 있는 경보꽃 모종의 상태도 좋아서, 바로 실험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왠지 모르겠지만…… 마을 사람들의 태도가 매우 이상하다.
내가 처음 마을에 들어섰을 때, 마을 사람들은 내가 길 잃은 여행객인 줄 알고 매우 친절하게 맞아주었다.
하지만 내가 화산을 조사하러 왔다고 말하자마자, 바로 차갑게 굳은 표정을 짓더니 더는 나와 말을 나누려 하지 않았다.
아델은 펜을 내려놓고 시선을 돌려 먼 곳을 바라봤다. 몇 년 전에 보도된 화산재로 뒤덮인 옛 마을의 모습과 비교해 보면, 새로운 우나 마을은 이미 오래전에 활기를 되찾은 것 같았다.
오고 가는 마을 사람들 중 누군가는 손에 든 악기를 튕기고 있었고, 집에서도 간간이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몇몇 아이들은 즐겁게 햇빛 아래에서 뛰어놀고,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아델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득히 먼 우나 화산 산기슭 밑에는 캄캄한 어둠이 깔려있었다. 조금의 생기도 남지 않은 듯한 폐허엔 분명 짙은 어둠이 가득했지만, 한편으론 눈에 잘 띄는 모습으로 굳건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던 아델의 시선이 마지막에 그곳에서 멈췄다.
다행히 한 착한 아이의 도움으로 촌장을 찾을 수 있었고, 그녀는 내가 잠시 머무를 수 있도록 빈 다락방을 내주었다.
실례 좀 하지, 아델 양. 손님 대접으로, 따뜻한 차랑 저녁 식사를 준비했어.
그리고 촌장으로서 마을 사람들이 자네에게 차갑게 대했던 것에 대해 설명해야겠지.
차와 음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우리는 저쪽에 있는 화산과 관련된 일은 그 어떤 것도 언급하기 싫어하고, 더는 그걸 보고 싶어 하지도 않아. 그러니 자네도 '화산'이란 단어 자체를 입 밖으로 내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당시의 재해 때문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우리 곁을 떠났지. 그래서 지금에 와서조차 그 일을 가벼이 언급할 사람은 아무도 없어. 자네도 가능하면 최대한 빨리 일을 마무리 짓고 이곳을 떠나 줬으면 해. 오늘만 해도 많은 마을 사람들이 그것 때문에 나를 찾아왔었거든.
……
그렇다고 해도, 원래 계획한 대로 제 할 일을 다 마치고 떠나야겠어요.
촌장님,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화산재해경보와 관련된 일이에요. 이게 마을 분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여러분이 제게 불친절한 태도를 취하는 이유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아가씨, 자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는 잘 알아.
……하지만 우리에겐 화산을 대하는 우리만의 방식이 있고, 우리에게도 시간이 필요해.
9월 3일. 경보꽃 인큐베이터의 온도: 정상, 습도: 정상, 토양의 각종 성분 수치: 정상, 구역 오리지늄 활성: 아직 활성 제어를 작동하지 않음.
화산의 여러 지점에서 토양 샘플을 수집한 결과, 나는 경보꽃 모종을 기르기에 적합한 장소를 찾아냈다. 경보꽃의 생존율은 매우 만족스러우며, 우나 화산에서 잘 적응하고 있다.
대략 보름 후면 경보꽃이 개화기에 돌입한다. 경보꽃의 색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오리지늄 활성과 관련된 생물학적 생태를 찾아낸다면, 화산 재해를 막을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이 될 수도 있다.
그렇게만 된다면, 더 많은 사람이 화산으로 인한 피해를 피할 수 있겠지.
매일 오가는 언덕 꽃밭과 숙소 사이의 길도 어느덧 꽤 익숙해져서, 해가 지기 전에만 산에서 내려오면 혼자서도 문제없이 되돌아올 수 있다.
아무래도 업무 시간의 마지노선을 정해야 할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업무 중 날이 어두워져서 산길을 전혀 볼 수 없게 될 것이다.
……다만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나를 배척하고, 나와 교류하기를 꺼리는 것 같다. 나는 그들의 방식에 참견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이렇게 피하기만 해도 정말 괜찮은 걸까……?
참, 이제 실험용 꽃밭에 울타리를 쳐야겠다. 오후에 울타리 만들 재료를 찾는 걸 잊지 말아야지.
음, 꽃봉오리가 많이 자랐네. 며칠만 더 지나면 꽃이 피겠어……
오늘부터 오리지늄 활성 기록 간격을 줄이고, 구역을 나누어 모든 실험 구역의 오리지늄 활성 제어를 시작해야겠네.
여기서부터 표시를 해야겠……
으아아아…… 으악!
아이고 아파라!! 없던 울타리가 갑자기 왜 생긴 건데!
……!
아, 그날 화산에 올라간다고 말했던 언니네…… 역시 여기에 있었어!
넌 그날 나한테 길을 알려준 아이잖아……? 다친 데는 없니? 왜 혼자 화산에 뛰어 올라온 거야? 여기는 네가 함부로 올 곳이 아니야!
난 괜찮은데……
흥, 엄마 아빠는 나더러 화산에도 못 올라가게 하고, 옛 마을 쪽 폐허에도 못 가게 한단 말이야! 하지만 난 꼭 가봐야겠어!
그래 봤자 그냥 화산 아니야?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나 혼자서도 올라갈 수 있단…… 아야!
아무래도 넘어져서 다리를 다친 거 같은데…… 여기 앉아봐, 약 발라줄게.
이 정도 상처는 아무것도 아니야. 언니, 난 언니가 여기 있을 줄 알았어!
혹시 나한테 어떻게 해야 화산 꼭대기에 오를 수 있는지 알려 줄 수 있어?
9월 23일. 어제는 일이 좀 늦게 끝난 데다, 비까지 내렸다. 그냥 비를 맞으며 산에서 내려가 봤는데, 역시나 넘어지고 말았다. 다행히 마을 사람들이 나를 발견하고 숙소까지 데려다주었다.
사람들이 날씨가 이렇게 안 좋은데 대체 왜 산에 올랐느냐고 묻기에, 난 화산재해경보에 관한 연구 때문이라고 답했다. 내게 이곳 현지에서 쓰는 연고도 발라주는 걸 보니, 이제는 사람들이 나를 배척하지 않는 것 같다. 약은 정말 잘 들었다.
업무 기록. 오리지늄 활성은 경보꽃의 색깔에 뚜렷한 영향을 끼친다. 기본적으로 오리지늄 활성 농도가 한 단계 올라갈 때마다 경보꽃의 색깔이 변하는 걸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다.
그동안 그룹 테스트를 진행하는 데 필요한 식물 성분 샘플을 충분히 추출해 뒀다. 도대체 식물의 어떠한 물질이 이런 현상을 일으켰는지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만약 그걸 빨리 발견할 수만 있다면, 이른 시일 내에 그 물질을 이용해 화산 경보의 감도와 정확도를 향상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만 된다면 정말 화산 재해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날이 머지않을 텐데.
그리고 나에게 길을 가르쳐 줬던 그 아이를 또 만났다. 꽃밭에서 넘어져 내가 약을 발라줬던 그날 이후, 아이는 거의 매일 나를 찾아왔다.
아이는 종종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화산에 뛰어 올라가거나, 화산 산기슭의 폐허에 가곤 한다. 게다가 나에게 우나 화산의 정상에 데려가 달라고까지 하니…… 화산에 참 관심이 많은 것 같다.
휴…… 드디어 이쪽 데이터 정리를 끝마쳤네……
좋았어, 꼬마야, 난 일 끝났으니까, 너도 이제 집으로 돌아가.
언니, 다들 언니가 화산을 연구하러 왔다고 하던데, 책에서는 화산을 연구하려면 산꼭대기 같은 데 가서 돌도 연구해야 하고, 삽으로 마그마도 파야 한다고 했어.
그런데 매일 와서 보니까, 언니는 산꼭대기엔 한 번도 가지 않고 언덕에서 꽃만 심고 있던데.
언니는 왜 산꼭대기에 가지 않는 거야? 나도 언니랑 같이 꼭대기까지 올라가고 싶어!
……너, 이름이 호프였지? 내가 언덕에만 매일 있는 건, 바로 여기서 실험을 해야 하기 때문이야.
혹시 화산 산꼭대기에 왜 가려 하는지 알려줄 수 있니? 너는 아직 너무 어려서, 산꼭대기에 가는 건 매우 위험한 일이야. 그러니 널 데려갈 수는 없어.
……
……흥! 언니까지 날 데려가 주지 않으려는 거구나!
……?
10월 5일. 그룹 테스트에서 일부 물질을 배제하였다. 현재의 실험 환경에서 할 수 있는 건 범위를 최대한 특정하는 것뿐이다.
샘플을 잘 보관한 뒤에 실험실로 돌아가서 좀 더 정밀한 분석을 해봐야겠다.
경보꽃이 잘 피었다. 샘플 채취가 일단락되면, 꽃을 옮겨 심는 범위를 확대해 이곳을 원래의 생태 환경으로 돌려놓는 것에 대해서도 고려해 봐야겠다.
어제저녁 식사 때엔 마을 사람들이 싱싱한 나물을 가져다주며 전에 다친 내 상처는 좀 어떤지 물어보았다고 촌장님이 말해주셨다. 나물볶음은 매우 맛있었다. 부모님께서 해주시던 그 맛이었다.
호프는 그날 이후로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촌장님께 여쭤보니, 요즘엔 통 화산에 올라갈 생각이 없다고 하던데, 아마 포기한 것 같다.
마지막으로 샘플 그룹을 다시 정리하고…… 라벨도 체크 한번 해보자…… 좋았어, 모두 문제없어……
……이런! 잠깐 한눈팔았더니,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이미 너무 어두워져서 앞도 잘 보이지 않고……
지금이라도 좀 더 서두르면 산 아래로 돌아갈 수 있겠지……?
……아!
안 되겠어, 손전등만으로는 역시 앞이 잘 보이지 않아……
차라리 여기에 보호 텐트를 치고 오늘 하룻밤을 보내는 게 좋겠어, 이전에 준비를 해두어서 망정이지……
……후! 드디어 다 쳤다! 습기 방지 매트까지 깔면 밤에 잠자는 것도 별문제 없겠어.
주변에 동물이 꽤 많이 있으니 야생 동물 퇴치 스프레이를 뿌려야겠네……
한 차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오자, 아델은 의심스러운 듯 고개를 돌렸다.
암석 뒤에서 풀잎과 진흙을 뒤집어쓴 작은 머리가 삐죽 튀어나왔다.
이런! 또 들켰다!
도망쳐야겠어, 빨리!
기다려!
시간이 이렇게 늦었는데 왜 아직 여기에 있는 거야? 화산은 너한테 너무 위험하다고 말했잖아! 여기 가만히 있어, 내가 손전등을 가지고 와서 마을로 데려다줄게.
나…… 난…… 안 돌아갈 거야!
나는 산꼭대기에 꼭 가고 싶은데, 다들 가지 못하게 한단 말이야! 겨우 사람들에게 내가 화산에 가고 싶지 않다고 믿게 하고 몰래 빠져나왔는데, 하필 여기서 언니를 또 만나다니……!
난 안 돌아가, 산에 올라갈 거라고!
……그럼 말해봐, 대체 산에 올라서 뭘 하려는 건데?
말해주면 나 데리고 올라가 주는 거야? 나…… 난 하고 싶은 일이 있어……!
호프는 품 안에서 쭈글쭈글한 화환 하나를 꺼냈다.
나는 이걸 산꼭대기에 가져다 놓고 싶어……
화환…… 이 화환을 왜 산꼭대기에 두고 싶은 건데?
……
내가 말한 거 아무에게도 얘기하면 안 돼.
……좋아, 약속할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게.
……
……나……
……나…… 나 우리 할아버지랑 할머니가 보고 싶어……
할아버지랑 할머니……?
……내가 어렸을 때 어느 날 자다가 갑자기 잠에서 깼는데, 엄마 아빠가 나를 업고 달리고 있었어, 잠시도 멈추지 않고 멀리 더 멀리…… 나는 피곤해서 다시 잠이 들었고……
그 후는 나도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하루아침에 갑자기 원래 집에서 도망쳐서는 잘 먹지도 자지도 못하면서 쭉 텐트 안에서만 살았어. 할아버지 할머니도 계속 볼 수 없었고.
시간이 더 흐르고 나서야, 어른들이 새집을 지어서 우리는 그곳에 들어가 살았어. 하지만 할아버지 할머니는 따라오지 않으셨지! 그래서 내가 찾으러 가겠다고 그랬어, 예전 우리 집이 그 자리 그대로 있는 걸 여기서도 볼 수 있었으니까!
호프는 어둠 속 어딘가를 가리켰다.
하지만 엄마 아빠는 나를 못 가게 하고, 내가 가고 싶다고 말만 하면 화를 내셨지. 할아버지 할머니는 이미 우리를 떠났다고, 우리 예전 마을이랑 똑같다고 하면서.
그러다 뉴스에서 우나 화산이 폭발했다는 걸 보고, 화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폭발이 뭔지 꼭 두 눈으로 보고 싶었어……
우,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는 화환을 엮으면서 나랑 놀아주셨어, 나…… 나는 꼭 산꼭대기에 가고 말 거야……!
서러웠던 아이는 한바탕 말을 쏟아내고는 감정이 격해져 숨을 헐떡였다.
다들 왜 그렇게 나를 화산에 가지 못하게 하는 거야? 어째서 우리가 이렇게 멀리 이사 왔어야 했는데? 왜 아무도 이 일에 대해 말 못 하게 하는 거냐고?
나는 정말 할아버지 할머니가 보고 싶을 뿐인데! 도대체 왜, 왜 그렇게……?
어……
아델은 손에 들고 있던 손전등을 내려놓고는, 높이 있는 산꼭대기를 바라보며 어린 소녀의 등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자, 일단 눈물부터 닦고, 옆에 앉아보렴.
정말 산꼭대기에 가고 싶다면, 우리 내일 촌장님을 찾아가서, 촌장님과 네 부모님께 이 일에 대해 잘 이야기해 보는 게 어떨까?
지금은 너무 늦어서 산에 올라가기 너무 위험하니까 얌전히 여기서 자고 말이야, 혼자 몰래 가지 말고.
……
……진짜지?
그럼 우리 약속할까?
……좋아, 약속한 거다.
호프는 눈물을 대충 닦아내고, 텐트 안으로 들어가 아델 옆에 누웠다.
두 사람은 잠시 침묵했다. 아델은 말없이 하늘의 별을 바라봤고, 호프는 돌을 쳐다보기도 하고, 텐트를 찔러보기도 하다가, 손에 쥐고 있던 지푸라기를 둘둘 감아 막 헝클어뜨렸다.
호프, 잠이 오지 않아?
……응.
그럼, 내가 내 이야기 하나 들려줄게, 들어볼래?
……무슨 이야기?
하나의…… 아름다운 꿈에 관한 이야기야.
아델도 자리에 누운 채 어린 소녀의 손에 들려 있던 지푸라기 뭉치를 건네받아서는 작은 양 한 마리를 만들었다.
그거 알아? 어떤 사람은 잠이 들면, 분홍색 털북숭이 어린 양이 하는 꿈속 게임에 초대되기도 해.
그곳에서 양들은 초대받은 사람의 소원을 들어줘. 예를 들면 도시의 하늘을 함께 날아다니거나, 바다에서 서핑을 즐기거나, 가로등과 별을 밟으며 뛰어놀지.
나도 양들에게 초대받은 적이 한번 있어.
진짜야……?
그러면 양들이…… 언니의 어떤 소원을 들어줬는데?
아델은 어린 소녀에게 어린 양 모양으로 엮은 지푸라기 뭉치를 건넸고, 바닥에 떨어진 경보꽃을 주워 들어, 작은 양에게 줄 화환을 만들기 시작했다.
부모님을 만나게 해 줬지.
언니의 부모님……?
응.
내가 지금 여기에 이 꽃들을 심는 건 그 꿈의 보상이자, 그때 우리 부모님께서 끝내지 못한 일을 이어서 하는 거야.
내가 이 경보꽃을 잘 심기만 하면, 그 어린 양들은 다시 날 초대 할 거야.
그럼 언니 부모님은? 왜 이 일을 끝마치지 않았은 거야?
아델은 움직이던 손을 멈추고 살며시 미소를 띠었다.
언니 부모님은 너희 할아버지 할머니처럼 이 산에 남아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시거든.
……
그럼…… 언니도 부모님이 보고 싶어? 울기도 하고?
……당연하지.
……나도 그래. 그런데 부모님이나 다른 사람들은 전혀 아닌 것 같아.
다들 직접 화산에 가지도 않고, 내가 가지도 못하게 해. 모두 이상한 겁쟁이들이니까, 어린 양이 소원들 들어주려 초대하는 일은 없겠네.
흠, 꼭 그렇진 않을 수도 있어.
왜?
왜냐하면…… 사실 나도 겁쟁이거든.
예전에 나한테 왜 언덕에만 꽃을 심고 산꼭대기에는 오르지 않냐고 물었지?
사실 거기 가는 게 무서워서 그래…… 나도 아직 준비가 안 됐어. 어찌어찌 이 화산까지 오기는 왔는데, 줄곧 산꼭대기까지의 마지막 한 발자국을 내밀지 못하고 있는 거지.
어째서!
왜 어른들은…… 다 이 모양인 거야! 모두 다 겁쟁이야! 언니는 다를 줄 알았는데……
하지만 호프, 난 어린 양의 초대를 받았거든.
……
그럼, 내가 잘못한 거야……?
아벨은 고개를 저었다.
밖에 있는 경보꽃을 봐봐. 비교 실험을 하기 위해서 이쪽은 척박한 땅에, 저쪽은 비옥한 땅에 꽃을 심었어.
꽃들이 자라는 환경은 완전히 다르지만, 개화기가 되면 모두 다 예쁘게 꽃을 피우지.
사실 우리도 별반 다르지 않아. 모든 사람마다 자신만의 방식이 있어, 어떤 사람은 울고, 어떤 사람은 떠올리고 싶어 하지 않고, 어떤 사람은 용감하게 마주하잖아……
……하지만 그건 모두, 우리가 아직 잊지 않았기 때문이야.
아델은 두 손을 내밀어 방금 완성한 경보꽃으로 만든 화환을 호프에게 보여주었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부모님도 나에게 가지고 놀라고 이런 걸 만들어주셨어.
우리가 기억하는 한, 이런 이어짐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거야. 예를 들면, 어린 양들이 그걸 찾아내듯이 말이야.
……봐, 저기 양들이 오고 있어.
밤하늘 아래 별들 사이로 연분홍색 구름들이 유유히 흘러간다.
어린 소녀는 눈을 비비며, 자신 품 안의 화환과 아델 손 안의 화환이 나풀거리며 허공으로 날아가는 것을 쳐다보았다.
어, 내 화환……
내 화환이 날아가 버렸어!
기다려, 호프, 함부로 뛰어가지 마!
여기에도 없고…… 어디까지 간 거야?
너무 어두워…… 전혀 보이질 않잖아. 여긴 함부로 돌아다녀도 되는 곳이 아닌데……
어둠 속에서, 아델은 뭔가 복슬복슬한 것이 자신에게 비비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녀는 열심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급박한 소리)
호프 못 봤나요?
(아델을 머리로 들이받는다)
(아델을 등에 업고 달리기 시작한다)
어디로 가시는 거죠?
아앗, 조심……
떨어질 것 같아요!
꺄앗, 떨어진다!
조심해! 요즘 아델 키가 또 자랐어. 예전처럼 목마를 태우고 그러면 안 된다니까!
그래 그래…… 아델은 아빠 어깨 위에 있고, 아빠는 화산 위에 있으니까, 아델이 화산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거네?
오늘은 우리 아델 생일인데, 무슨 소원이라도 있니?
제…… 제 소원은 엄마 아빠랑 함께 화산에 답사하러 가는 거예요!
조금만 더 천천히 가주세요……!
(경보꽃을 달고 있다)
(꽃잎을 코로 불며 논다)
노는 데 정신 팔리면 안 돼요. 우린 호프를 찾으러 가야 한다고요!
털북숭이 생물이 뛰어올라 앞을 향해 달려가다, 하얀 김을 뿜어내고 있는 화산 온천을 마주했다.
거기는 위험해요……!
털북숭이 생물들은 그 외침에 아랑곳하지 않고, 동그란 몸뚱이에 달린 사지를 쭉 벌려 가볍게 물웅덩이를 뛰어넘어 안전하게 반대편으로 착지했다.
그리고는 만족스러운 듯 물웅덩이 가장자리에 서서 자신의 흐트러진 솜털을 털었다.
몸집이 작은 생물은 조금 즐거운 듯 울부짖으며, 의기양양하게 머리 위에 있는 꽃송이를 흔들었다.
제가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아 보여서 오신 건가요……?
혹시…… 돌리 씨가 보낸 건가요?
(신나서 펄쩍펄쩍 뛴다)
털북숭이 생물이 깡충깡충 뛰는 게, 마치 무언가에 화답하는 것 같았다.
등에 업힌 여자아이가 마침내 그 뜻을 알아차린 듯하자, 털북숭이 생물들은 신이 나서 동굴 밖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좋아, 네가 키가 더 크고, 나이도 더 들고 나면, 우리가 꼭 널 데리고 화산에 답사하러 가줄게. 그땐 네가 엄마 아빠의 조수가 되는 거야.
진짜죠? 빨리 컸으면 좋겠다!
좋지, 얼른 크렴, 우리가 화산에서 널 기다릴게.
네가 우리와 함께 등반하고, 함께 답사하고, 함께 화산의 아름다움과 떨림을 느낄 그날을 기다릴게……
벌써 그날이 기대되는걸!
잠깐, 잠깐만요!
속도가 너무 빨라요……
아……
털북숭이 생물의 달리는 속도가 느려진 게 느껴지자, 아델은 솜털을 꽉 움켜쥐고 있던 손의 힘을 천천히 풀었다.
털북숭이 생물들은 아델의 곁에서 소란을 피우기도 하고, 그녀가 기분이 나쁠 때 위로하러 오기도 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그녀는 지금 해야 할 매우 중요한 일이 있다.
진짜로 우나 화산 산꼭대기에 오를 결심조차 아직 굳히지 못했지만, 화산에서 홀로 사라진 어린 소녀를 찾아야 했다.
아델은 자신의 호흡을 가다듬고, 두 눈을 떠보았다.
잠깐만, 여기는…… 산꼭대기잖아요?
왜 여기로 저를 데리고 온 거예요? 저는……
저는 아직……
메에!
메에! 메에!!
흥분한 털북숭이 생물들의 울음소리에 당황스러워하던 아델의 말이 멈췄다. 산기슭의 하늘은 완전히 어두워졌지만, 산꼭대기에서는 아직 약간의 자줏빛석양을 볼 수 있었다.
털북숭이 생물들은 산꼭대기를 향해 울부짖었다. 마치 누군가를 부르는 듯, 또는 무언가를 재촉하는 듯.
당신들…… 도대체 뭘 하려는 건가요……?
(머리로 아델을 들이민다)
멀리 하늘에선 화환 하나가 유유히 나부끼고, 온몸이 하얀 어린 양 두 마리가 이미 곤히 잠든 호프를 자상하게 안아주듯 둘러싸고 있었다.
잠이 든 호프의 얼굴에는 눈물 자국이 남아 있었지만, 입가에는 행복한 미소가 가득했다. 화환은 가볍게 호프의 머리 위로 내려앉았다.
그들은 천천히 산기슭에 자리한 우나 마을 쪽으로 날아갔다.
후…… 여기 있었구나, 호프……
보아하니, 너도 초대를 받은 것 같네.
(머리로 아델을 들이민다)
(큰 소리로 울부짖는다)
……왜 그러시죠? 저도 같이 소리치라는 건가요……?
(기대하는 눈빛)
……어, 와……!
(조급한 울음소리)
이게 아닌가요? 대체 제가 뭘 하길 바라는 건가요……?
그럼 제가 크려면, 얼마나 시간이 지나야 해요……?
그럼 우리 다 같이 손가락 걸고 약속할까? 엄마 아빠가 아델이랑 약속할게. 네가 크고 나면, 같이 화산도 올라가고, 산꼭대기 풍경도 같이 보자.
이건 영원한 약속이야, 언제 어디서든.
그럼, 우리 이 약속을 시작하는 구호를 만들어볼까? 구호만 외치면, 엄마 아빠가 다 자란 아델을 데리고 화산 답사를 가는 거야.
생각 좀 해보자…… '산꼭대기 풍경은 정말 아름다워', 이거 어때?
……산……
……산꼭대기 풍경은 정말 아름다워……
음……
자, 우리 촛불을 불도록 하자. 그러면 엄마 아빠가 아델에게 작은 비밀을 하나 말해줄게.
뭐예요, 뭐예요?
에이, 떼쓰면 안 돼. 촛불을 꺼야만 비밀을 들을 수 있어!
후…… 후후! 후! 다 불었어요! 무슨 비밀인데요?
자, 우리 베란다로 가보자. 저기 봐, 하늘에 있는 두 달과 그 아래쪽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의 모습, 우리 세 명과 비슷하지 않니?
작년에 우리가 발견했을 땐 그저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해에도 두 달 아래 별이 하나 있을 줄은 정말 몰랐어.
아델, 네 생일인 오늘, 하늘에 있는 두 달과 별은 마치 우리 셋의 모습 같아.
아델이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바라보니, 두 달 아래 별 하나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작은 외형의 생물이 아델에게 머리를 다정하게 비벼대며 천천히 울부짖었다.
당신들이 전하고 싶었던 게, 이거였나요……?
오늘이 내 생일이었구나, 나도 잊고 있었어……
진짜 산꼭대기에 올라왔구나…… 사실은……
사실은……
……사실 아직도……
……
아델은 몸을 웅크리고 앉았다. 입고 있던 약간 헐렁한 보호 외투가 화산의 숨결을 품고 살며시 그녀를 안아주었다.
발밑의 돌에서 올라오는 따뜻한 열기는, 마치 따뜻한 손길처럼 그녀의 얼굴에서 흐르는 눈물을 천천히 말려주었다.
그녀는 손을 뻗어 발밑의 따뜻한 돌을 어루만지며, 평소 하지 못했던 말을 속삭였다.
엄마 아빠, 저는 올해 또 세 개의 화산을 답사했어요. 오늘까지 모두 삼십여 개의 화산을 다녀온 거예요……
저랑 켈러 선생님은 두 분이 하시던 연구를 계속해가고 있어요. 이전에 부족했던 부분도 채워가고 있고, 엄마 아빠가 남기고 가신 문제들도 하나하나 해결해나가고 있어요……
참, 화산경보꽃을 찾고 난 후, 저는 줄곧 경보꽃을 재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지금도 식물의 특징과 오리지늄 활성 농도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는데…… 제가 답사를 해보니, 여기가 최적의 장소 같아요.
그래서 제가 경보꽃들을 가지고 왔어요…… 아, 오늘은 어린 양이 갑자기 데리고 온 거라 미처 챙기지 못했네요……
한 경보꽃 새싹이 아델의 눈앞에 건네졌다.
……어?
작은 외형의 생물이 살며시 경보꽃의 뿌리줄기를 물고 있고, 뒤에 있는 어린 양들은 머리로 공놀이하듯 하나씩 하나씩 경보꽃 모종을 아델 곁으로 옮겼다.
아델은 자신이 정성껏 키운 꽃을 넘겨받았다. 경보꽃은 연약한 꽃가지를 휘날리며 석양 아래 마지막 한줄기 햇빛을 찾으려 애쓰고 있었다. 그녀는 허리를 굽히고 손으로 흙을 파헤쳤다.
방호복 외투의 소매 끝에 이번 답사로 화산재가 더해졌다. 그러나 그녀는 서둘러 화산재를 털어내기보단, 오직 작은 경보꽃 모종을 심는 데만 집중했다.
봐봐! 경보꽃이야, 이렇게나 많이 피었다니.
여기서도 이걸 볼 수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어……
우리 하나 채집해 가서 샘플로 쓸까?
그래, 이번 답사 선물로 하면 되겠다. 저번에 우리가 준 나물볶음도 아델이 되게 맛있게 먹더라고.
아델도 이 경보꽃을 분명 좋아할 거야.
후……
어린 양 씨, 우리 이제 갈까요?
(즐거운 울음소리)
아델이 바닥에 줄줄이 새로운 발자국을 새기자, 어린 양이 깡충거리며 그녀의 뒤를 따랐다.
……여기까지 왔는데, 저도 이제 와서 멈출 순 없죠.
산꼭대기에는 엄마 아빠가 봤던 풍경이 우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