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8-8인심, 변덕스러운
감염자의 배신에도 탈룰라는 실망하거나 분노하지 않았다. 자신의 질문에 솔직히 대답하며 결심을 알리는 탈룰라를 향해, 패트리어트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사상자의 수를 확인해라.
네가 예상한 대로, 우리를 미끼로 삼은 전투가 시작됐다.
실망했나, 탈룰라?
……아뇨.
그들이 이렇게 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요, 저도 잘 알고 있는 이유죠…… 덕분에 저도 괜한 기대감을 버릴 수 있었어요.
……밀고자는 사형에 처해야 한다.
전쟁터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던 사람 중에서 어떻게 반역자를 알아볼 수 있을까요?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위해 동료를 팔아넘긴 자들을 두둔하는 건 전사의 명예를 짓밟는 짓이다.
아뇨, 그들은 단 한 번도 '충성'한 적이 없어요, 패트리어트 씨.
모든 대원이 완벽하길 바라시나요? 그건 불가능해요, 그런 부대는 존재하지 않아요.
유격대……
유격대의 전사들도 완벽하진 않아요.
유격대 중에도 엉뚱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죠. 이런저런 이유로 남긴 했지만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지 제대로 알 수 없는 사람들도 있고요.
물러서라, 병사여. 논쟁은 불필요하다.
도시를 파괴하는 것보단 도시를 세우는 편이 더 쉬워요. 패트리어트 씨, 그들을 그냥 놓아주세요.
감염자가 살아남기 위해 어떤 방법을 쓰든 간에 모두 성공했으면 좋겠어요.
탈룰라, 희생은 피할 수 없다.
희생이라……
그건 제가 결정해야 하나요?
우린 모두 준비가 됐다. 피를 흘리지 않고서는 승리할 수 없지.
난 알고 있다. 아니, 너와 나 모두 잘 알고 있지. 네가 남쪽으로 내려가겠다던 결정이 전쟁의 도화선이 될 거라는 걸.
제국은 감염자의 세력이 커지는 걸 좌시하지 않을 거다. 네가 공언한 대로 감염자들은 자신의 운명을 바꾸려고 행동을 취하겠지. 그러니 전쟁은 피할 수 없다.
……그렇네요.
자신의 생명이 소중하다는 걸 감염자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게 중요해요.
그런 뒤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감염자는 감당할 의무가 없죠.
유격대가 참전하길 바라는 건가?
탈룰라, 너는 다른 나라와 전쟁을 일으키는, 네게 유리하고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우르수스를 기다리고 있는 거냐?
아니면 네 자신이 전쟁을 일으키고 싶은 거냐?
(침묵한다.)
대답하고 싶지 않은가 보군.
피를 흘리지 않는 승리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겠죠.
그래도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지 않을 거예요.
엄청난 고통을 감당할 각오를 한 건가?
각오 같은 건 하지 않았어요, 왜냐면 우린 고통을 반드시 견뎌낼 테니까요.
모든 사람이 선한 존재이기를 바라는 건가?
이기심과 잔인함이 우르수스인의 천성이 아닐 거라고 믿을 뿐입니다.
언젠가 너는, 진정한 악을 마주하게 될 거다.
이미 마주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랬길 바란다.
부대와 동료에게 충성을 맹세한 전사가 사사로운 이익에 믿음을 배신했다면 제 입으로 배신자의 징계 명단을 발표했을 거예요.
하지만 우리와 뜻이 다른 감염자를 학살하고 정복해야 할 이유가 뭐죠? 우리의 적은 여기에 있지 않아요.
……
탈룰라!
……!
말씀하시죠.
난 한때 많은 사람을 존경했다. 내가 존경했던 건 그들의 강함이 아니라, 그들의 정직함이었다.
너도…… 그러길 바란다.
……명심하죠.
페트로바, 프로스트노바의 위치는?
……누님은 아직 골짜기 입구에 있어. 우리가 도시를 점거할 때까지 거점을 지키시겠대.
우리도 합류한다, 프로스트노바에게 직접 사과해야겠어.
그렇다는 건…… 이걸로 괜찮은 겁니까, 대위님?
적어도 세 개의 현지 주둔군이 근처에 있다. 이들을 모두 소탕해야 자원을 보낼 수 있다.
결과적으론 그녀의 결정이 맞다. 이동도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앗, 탈룰라 누나!
……
기분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던 거야?
아니.
……이노, 사샤.
너희들, 원래 이름으로 계속 불리고 싶니?
……그런 건 왜 물어보는 거지?
외부에서 행동하려면 자신을 보호할 이름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자신이 이름을 선택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지어준 이름으로 계속 불릴 수도 있어.
하지만 넌 이름을 안 바꿨잖아.
난 바꾸고 싶지 않았거든.
왜지? 그럼 방금 말한 것과 다르지 않나.
왜냐면…… 난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이 되고 싶거든.
그렇다는 건 지금 네 생각과 행동이 다르다는 건가?
사샤!
그럴지도…… 맞아.
그래서 지금의 이름을 계속 쓸 거야. 모든 사람에게 이 이름이 의미가 있는 건 아니겠지만.
내가 누구인지 모두에게 중요하지 않겠지만, 내게는 무척 소중하거든.
그럼 널 뭐라고 불러야 하지? 그렇게 말하니까 뭐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어.
……
사샤, 이렇게 얘기해둘게.
난 그저 반항자, 평범한 사람이라고 말이야.
이름? 중요하지 않아. 누구도 내 이름을 기억해선 안 돼. 내 이름이 부호처럼 쓰이거나 특별한 힘을 지녀서도 안 돼. 그건 그저 내 이름일 뿐이야.
네가 원한다면, 지금은 탈룰라라고 불러도 돼. 이 이름을 부르면 내가 뒤돌아보겠지. 하지만 그것뿐이야.
탈룰라.
이노도 그렇게 불러.
너희한테 들려주기에 좀 이른 것 같지만…… 그래도 너희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어, 사샤.
뭐지?
날 탈룰라라고 불러줬으면 해. 날 마음이 맞는 친구라고 생각해 준다면 말이야.
내가 죽어도 넌 내 이름을 기억하게 될 거야. 내가 살면서 해온 일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했던 일들을 기억해줬으면 좋겠어, 탈룰라는 좋은 친구였다고 말이야.
하지만 넌 나쁜 사람을 해치우고, 그들과 싸우고 있잖아.
싸우는 사람에게는 어떤 이름도 필요 없다고 생각해. 전쟁에서 싸우는 우리 모두가 전사 그 자체니까.
고개 숙인 채 투사의 발자취를 따라가선 안 돼, 절대로!
모두가 패트리어트 씨가 될 순 없지, 우린 누구나 실수를 해. 고개를 들고 자신이 어디로 향해 가는지 봐야지, 누군가의 명성을 보고 그 뒤를 따라선 안 돼.
네가 기억해야 하는 건, 친구의 이름이야. 너와 늘 함께했던 사람의 이름 말이야.
엄청 매운 사탕을 먹이고 웃어대는 프로스트노바, 이상한 채소요리를 만들어주시는 선생님, 그리고 절대 포기하지 않고 가르쳐 주는 패트리어트 씨……
그들은 모두 친구야, 투사가 아니라.
투사에게 이름 따윈 필요 없어.
……탈룰라 누나,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
응…… 그러니까 내 신분 때문이 아니라 좋은 친구로서 네가 날 믿어줬으면 해.
내 친구들처럼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