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8-5추위, 감각으로부터 느껴지는
감염자 부대를 이끌고 북툰드라로 향하는 탈룰라. 그녀는 압제에 맞서 감염자를 위해 싸우는 북툰드라 유격부대를 찾다가, 프로스트노바와 그녀가 이끄는 눈의 악마 소대와 우연히 조우하게 된다.
훼이지에에게
아무도 감염자를 지원하진 않을 거야. 우리는 의용군도, '큰 귀' 미하일 시대의 '용감한 웍'도 아니니까. 우리만의 거점이나 비빌 만한 언덕 같은 건 기대할 수도 없어.
"우리 몸엔 오리지늄이 자라고, 몇 자루 무기가 손에 든 전부. 입안의 눈이 녹아 물이 되고, 뱃속엔 풀씨와 나무껍질이 가득하네."
모두 이런 노래를 부르던데, 나도 최근에 여러 곡 배웠지.
우리는 갈 곳 없는 감염자에 불과해.
일단 북툰드라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 여긴 돌아갈 곳이 없는, 갈 곳이 없는 사람으로 가득하거든.
도시 지역 감염자와 민간인의 분화가 진행될 거야. 각국 역시 종족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 의심하게 될 거고. 하지만 설원에서는 모든 게 단순해져.
남쪽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만 돌아가더라도 절대 혼자 가지는 않을 거야.
감염자들이 설원에서 굶어 죽거나 얼어 죽는 것과 자신들의 땅에서 병들어 죽는 건 엄연히 다른 문제야.
감염자는 자신들의 거점을 확보해야 해. 우르수스가 용납하지 않는다면 우르수스를 바꾸는 수밖에.
도망다니다가 나라를 등지고 나면 결국 갈 곳 없는 떠돌이 신세가 될 뿐이야. 이 대륙에서 감염자를 받아줄 곳이 있다는 건, 동화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에 불과해.
존엄을 되찾고 싶다면 감염자에게는 지금의 상황을 바꿀 힘과 구심점이 필요해.
감염자 부대를 같은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면 이번 여정도 성공할 수 있을 거야.
감염자의 신뢰를 되찾는 게 중요해, 우리의 생명과 직결된 문제니까.
맞아, 바로 여기야.
감시팀이 폐허로 변한 도시에 초소를 새로 설치했어. 바퀴벌레 같은 놈들…… 농작물을 몽땅 집어삼키고, 뿌리마저 남기지 않았지.
……여긴 십여 년 전에 버려진 것 같군.
핵심 설비를 몽땅 가져갔어, 민간인도 예외는 아냐. 남겨진 건물과 지대도 언제 헐릴지 알 수 없어.
여긴 또 어느 귀족 나리의 영지인 거지?
칼에 난도질당한 네바 남작. 이 근방에서 남작의 유산을 물려받을 수 있는 자들이 모조리 죽임을 당했다.
지독하군, 대체 누가 그런 짓을……
왕당파의 짓이야. 제1군단에는 그런 자들이 적지 않거든.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지? 탈룰라, 대반란은 지금의 황제와 군인이 된 귀족 나리들이 일으킨 거라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왜 또 누군가 황제를 도와 귀족을 죽이려는 거지?
대반란 시기에 반란을 주도한 건…… 우르수스가 대외적으로 끊임없이 세력을 확장하던 시대에 덕을 톡톡히 본 이전 세대의 귀족 장교들이다.
하지만 새로운 황제가 즉위하자, 그동안 집어삼킨 재산과 도시, 사람들마저 모두 토해내야 했지.
당시 우르수스의 군대는 대부분 귀족 장교의 지휘 아래 있었지만, 왕당파도 그리 멍청하진 않았어. 입을 하나라도 줄여야 한 푼이라도 더 쥘 수 있다는 걸 알았거든.
귀족들을 죽이고 그들의 주머니를 차지하려는 거야. 위험했지만 모험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거지.
그 때문에 대반란 시기에 가까스로 살아남은 몇몇 대도시를 제외하고, 반란을 일으킨 가문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이 모든 건 아마도 왕당파의 계획이겠지……
반란군이 대반란에서 우세를 차지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왕당파는 교수형 당하고, 황제는 연금된 채 퀴퀴한 냄새를 풍기는 늙은 귀족들의 특권을 인정해줘야 했을 거다.
귀족들과 여러 세력이 우르수스를 분할 통치하게 되겠지…… 적어도 암암리에는 말이야.
게다가 현실적으로 봤을 때 대반란 시기 도중이나 사태가 일단락된 뒤에 성공 가도를 달리던 젊은 군관들이 새로운 황제에 충성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아. 그들이 노리는 건 아마도 돈이겠지.
그렇군…… 결국 돈을 위해 싸운다 이건가.
그래.
대단하군! 넌 뭐든지 다 알고 있는 건가?
……내게 이런 것들을 가르쳐준 사람은 내가 얼마나 배웠는지 관심도 없을 만큼 오만한 자였지. 내가 알고 있는 선에서 들려주는 대답은 믿을만할 거야.
흥, 너처럼 똑똑한 녀석이 여긴 왜 온 거지? 네가 그러지 않았나, 살 수 있는 곳이 이미 다 사라졌다고.
그 얼토당토않은 이야기에서…… 어떻게 며칠 만에 감시팀이 여기 있다는 걸 알아낸 거지?
주변의 여러 마을이 이주를 준비하고 있었어. 재앙이 일어난 게 아니라면 그 이유는 딱 하나겠지.
썩어빠진 감시팀이 나타난 거다. 그냥 지나가는 부대였다면 마을 사람들은 움직일 생각도 하지 않았을 거야.
추수철이 막 지난 탓이겠지. 감시팀이 하필 이 시기에 정기 수색에 나선 건, 세리들이 마을에 아직 들르지 않은 틈을 노린 걸 테고.
이 근처에서 그마나 멀쩡한 곳은 쉬라즈부르크야. 경공업이 발달한 곳이라, 자원을 사러 정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
근처에 있는 마을 대부분은 지주의 보호 범위 밖에 있어. 감시팀이 머나먼 이곳까지 달려온 건 그만큼 건질 게 있어서라는 말이 되겠지.
……대반란 이후 감염자를 색출하던 삼류조직이 이제는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는 악당이 된 셈이라고나 할까?
그렇다면 놈들을 쓰러뜨리자. 요즘 푹 쉬었으니 슬슬 몸을 풀 때도 됐잖아.
우리에겐 그럴 만한 힘이 아직 없어.
뭐?! 그럼 여기서 뭘 하려는 거야?
……'방패'다. '방패'로 초소를 공격할 거야.
……'방패'? 설마 그 유격대를 말하는 거야?
맞아.
감염자 유격대?! 하지만…… 폐하가……
그들에게 연락을 취하는 데 애를 먹었지만, 석 달 동안 소식을 쫓은 끝에 간신히 기회를 잡았지.
며칠 전에 네가 어떤 사람들을 찾고 있다고 했을 때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유격대를 찾고 있었을 줄이야.
그런데 남쪽 도시의 감염자와는 쉽게 연락이 된 것 같던데, 유격대와는 왜 그렇게 연락하기 어려웠던 거지?
도시에서 살아남으려면 생생한 정보와 협력이 중요해.
설원에서 살아남으려면 탄탄한 전술과 우르수스 정찰대가 예측할 수 없는 패턴을 앞세워야 하고.
감염자 중에도 전달자는 많아, 다들 자신들만의 신호 전달 방식과 루트를 갖고 있지.
하지만 유격대는 달라. 그들은 툰드라의 감염자하고만 대화하거든.
유격대는 자신들의 정체가 드러나는 걸 꺼리기 때문에 누구와도 협력하려 하지 않아.
그들은 그저 감염자를 꾸준히 모집해 전사로 키우려고 해. 내가 기대하는 모습과 다를 수도 있겠지만, 유격대가 듬직하다는 것만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
……적어도 두 개의 유격대가 10km 밖에 있는 감염자 마을에서 자원을 교환했을 거야.
그곳의 감염자는 좀처럼 인정하진 않지만, 마을 밖에 있는 불 피운 흔적은 아무래도 군대의 것이 아닌 것 같아.
그들의 목표는 아마도 단 하나…… 방금 구축한 초소와 미처 정비되지 않은 감시팀을 무너뜨리는 걸 거야.
모두 여기서 기다려, 감시팀이 여길 통해 도주할지 모르니 정신 바짝 차려야 해.
여긴 쉬라즈부르크에서 멀리 떨어진 데다, 초소가 약한 편이라 제대로 지켜내지 못할 거야.
저들은 반드시 퇴각할 거야, 유격대한테 전멸당하지 않는다면 말이야.
들키지 않게 조심해. 감시팀 두세 개와 정면승부를 펼칠 실력은 아직 없으니까.
탈룰라?! 혼자 가겠다는 거냐?
혼자 가게 해줘. 유격대와 연락하려면 적의가 없다는 걸 보여줘야 하거든.
그리고…… 만일 충돌이 일어난다고 해도 너흰 도망칠 수 있겠지.
우리가 그런 비겁한 짓을 할 것 같아?!
너희보다 용감한 사람은 본 적 없어. 그래서 다른 감염자들에게 너흰 무척 중요한 존재야. 사람들이 오래 버티려면 너희의 도움이 더더욱 필요해.
너희가 살아남는 쪽과 나 때문에 많은 사람이 희생되는 쪽, 어느 게 더 나을 것 같아? 결과는 뻔하잖아?
……
역시 우릴 얕잡아 보는군.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야. 게다가 모두에게 좋은, 최상의 결론이기도 하고.
그러니 함부로 말하지 마.
화가 난 건가?
우리도 화가 나! 네가 우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너도 우리가 널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잖아.
우린 결론을 원하는 게 아니야, 너와 함께 돌아가고 싶을 뿐이야…… 어떤 결론 같은 걸 원하는 게 아니라고.
네 덕분에 모두 편안하게 지낼 수 있게 됐고, 더 많은 걸 알게 됐지.
잘은 모르겠지만, 다른 도시에서 온 사람들, 심지어 광산의 감염자들과 네가 전혀 다르다고 생각해.
넌 그저 우리가 죽지 않기를 바라는 거겠지. 하지만 탈룰라, 우리를 봐.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여? 우린 겁쟁이가 아니야!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하느니 너와 함께 싸우다 죽기를 바란다는 걸, 넌 절대 생각도 안 해봤을 거야!
알고 있었지만 그걸 바라지 않는다면 어쩔 건데?
왜 그렇게 말하지?
왜냐면 난 죽지 않을 거니깐.
걱정하지 말고 보내줘. 너희가 가지 않아야 사망자가 줄 거야. 왜냐면, 나는 '불사'거든.
어느 역겨운 괴물이 내게 그러더군.
하지만…… 우리를 무시하는 건 견딜 수 없어! 우리가 목숨을 구걸했다는 오해는 사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너랑 같이 가게 해줘!
안 돼!
누가 사람을 더 많이 죽였는가는 살인귀들이나 따질 일이야. 너흰 이미 수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고 있어. 왜냐하면 너흰 당당히 일어섰으니까.
만약 누군가 너희를 무시한다면 그 녀석이야말로 무시당해도 싼 놈이야.
……
알았다.
……잠깐! 정말 검 하나만 들고 가겠다는 거야?
명단과 채널 번호부도 챙겼어!
모두들 명심해, 이게 검보다 더 중요하다는 걸!
탈룰라는 조금 후회했다.
탈룰라는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다는 유격대도 만나지 못했고, 그들의 트레이드마크인 거대한 방패도 보지 못했다. 낡아빠진 우르수스의 장비도, 심지어 소문으로 들었던 살카즈들도 보지 못했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지만…… 탈룰라는 눈의 악마 소대를 만났다.
정말 추웠다.
불을 붙인 탈룰라가 눈의 악마들의 경악한 시선을 뒤로 한 채 감시팀의 마지막 보루를 향해 뛰어들었다.
명단을 태우면 안 돼, 춥긴 하지만……
여길 좀 덥혀야겠어 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