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울부짖는 광명 · 에피소드 8

R8-1어제, 이삭이 갈라져 버린

메인 스토리작전 전2020-11-01

과거를 버린 공작의 딸은 외딴 산골짜기 마을에 숨어 살며, 어느 순박한 가족을 알게 된다.

등장 오퍼레이터:

[CG: avg_8_34]



탈룰라

드디어 왔구나.

훼이지에.

훼이지에에게

연일 내린 폭설로 산이 온통 새하얗게 변했어.

산딸기가 아직 싹도 틔우지 못한 걸 보니, 이러다 영영 봄이 오지 않는 건 아닐까 싶을 지경이야.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못하고 여기에 갇힌 채 눈이 녹기만을 기다리려니 하루하루가 따분해 죽겠어.

아무래도 일이 이상하게 흘러가는 것 같아.

여태껏 뭐 하나 잘 풀린 적이 없었어. 아무리 좋은 상황도 내가 끼어드는 순간 꼬이고……

어쩌면 용문 사람들 말처럼, 내가 화근이라서 내 주변에 사고가 끊이지 않는 걸지도……

그러고 보니 몇 년 전 일이 떠오르네.

아무래도 네게 그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어. 안 그러면 마음이 계속 불안할 것 같아.

12월 14일


검은 뱀으로부터 벗어난 지 3년째 되는 해

우르수스의 어느 작은 마을

할머니

어여 와! 탈룰라! 들키면 어쩌려고 그래!

탈룰라

할머니도 참, 늘 잔소리시라니까. 지금 들어가요.


할머니

이 할미가 몇 번을 얘기혀! 아직도 그걸 입고 있는 게야? 그 옷 입으면 벌레 꼬인대도!

할머니

시커먼 데다 독이 있어서…… 한번 물리면 농작물이 다 말라 죽는다고 했냐 안 했냐!

탈룰라

평소에는 평범하게 입고 다녀요. 요 며칠 일이 있어서 잠깐 갈아입은 게 전부예요.

탈룰라

이 옷을 입고 있어야 옷을 보내주신 멋진 분이 절 기억해 주실 테니까요.

탈룰라

그분과 다시 만난 건 분명 운명일 거예요. 나중에 할머니랑 할아버지 제가 꼭 호강시켜드릴게요.

할머니

아서라! 지난번이랑 말이 또 다르니 이거야 원……무슨 애가 입만 열면 거짓말을 술술 쏟아내는 건지……

탈룰라

할머니도 참…… 제가 뭐라고 했는데요? 기억은 잘 안 나지만 대충 비슷하게 말하지 않았어요?

할머니

저번에는 네 애비가 생일선물로 보내줬다매?!

할머니

네 애비가 길가에서 누군지도 모르는 외국인에게 강도를 당하는 바람에, 피 묻은 옷 입고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고 막 그러더만!

할머니

그 이야기는 뭐고, 이건 뭐 또 뭐냐…… 어째 매번 얘기가 달라져?

탈룰라

어머, 제가 그렇게 말하지 않았나요? 우리 할머니, 기억력도 참 좋으시다니까.

할머니

듣기 좋은 말로 어영부영 넘어갈 생각이나 하고…… 곧 있으면 죽을 늙은이를 매번 속이고도 부끄럽지도 않어?!

탈룰라

죄송해요, 할머니. 제가 잘못했어요.

할머니

얼른 앉아! 옷이 입고 싶으면 그냥 입는 거지 거짓말이나 하고… 그 옷 입은 채로 반성해라!

할머니

와서 밥이나 먹어. 점심에 돌아온다더니만 이 봐봐 이거, 해가 다 질 때 되서야 와 가지고!

할머니

니 온다 그래서 스프 끓이다가 다 졸아버렸잖어. 이렇게 된 거 그냥 저녁으로 때워!

할머니

아이고, 폐하…… 이 아일 어쩌면 좋겠습니까……

할머니

어여 먹어. 안 그래도 할애비가 아까 니한테 볼 일 있다고…… 아니 이 영감탱인 또 어딜 주정부리러 간 겨? 얘야, 아무래도 네가 가서 찾아와야것다.

탈룰라

네, 알았어요.

할머니

쯧쯧…… 생긴 건 예쁘장하게 생겨 가지고는 입만 벌리면 그짓말이 자동으로 나와…… 듣기 좋은 소리만 늘어놓는 성안의 사내놈들이랑 똑같다니까!

할머니

나도 젊었을 땐 그 고~약한 놈들한테 속아 넘어갈 뻔했는데……

탈룰라

그만하세요…… 하도 들어서 귀에 딱지 생기겠어요.

할머니

쯧, 하여간 말하는 거 하곤! 어서 접시 챙겨! 빵도 얼른 먹고!

할머니

천천히 먹어 이것아, 그러다가 사레걸리겠다.

할머니

그날 네가 피범벅이 된 채로 나타났던 일만 생각하면……

할머니

하이고……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벌렁거린다니까. 탈룰라, 네가 못된 아이였으면 영감이 널 가만 안 뒀을 거다.

탈룰라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는데요?

할머니

네가 여기에 나타났던 날은 유난히 어두운 밤이었지. 사방에 쫙 깔린 짐승들이 쉬지도 않고 계속 울어 재끼는데 어찌나 무섭던지……

할머니

게다가, 네가 들고 있던……

탈룰라

억, 푸흡…… 쿨럭, 쿨럭!

할머니

그 칼…… 그렇게 큰 건 또 생전 처음 봤지 뭐냐!

탈룰라

그건 칼이 아니라…… 검이라고요! 그걸로 산 타지 마시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쓰기도 불편한데……

탈룰라

그리고 그 이야기는 다신 안 하기로 했잖아요. 할머니, 자꾸 그러시면 저 화낼 거예요.

할머니

에구머니나! 내 정신 좀 봐, 하여간 입이 방정이지…… 폐하, 다시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죽지 못해 사는 이 늙은이를 부디 용서해 주십쇼……

탈룰라

그러지 마세요, 할머니. 사치와 향락에 취한 황제는 다음 주에 먹을 감자도 없는 우리한테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으니까요.

탈룰라

그리고 할머니는 지금 황제가 누군지도 모르시잖아요?

할머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덜 말어!

탈룰라

수프가 좀 싱겁네…… 집에 소금 없어요?

할머니

없어 이것아! 안 그래도 어젯밤에 소금이 다 떨어졌다, 너랑 영감은 어찌 그리 짜게 먹는 건지…… 그렇게 짜게 먹다간 온몸이 소금에 절어질 게다!

할머니

한 번 나가면 며칠동안 감감무소식이믄서! 게다가 돈도, 식량도 없이 매번 빈손으로 돌아오니……

탈룰라

알았어요, 가서 바꿔오면 되잖아요.

할머니

사지도 멀쩡한 게 부지런하면 을마나 좋아!

할머니

됐다, 알리나한테 얘기해 뒀으니 곧 가져다줄 게다…… 쯧쯧, 한심도 하지!

할머니

알리나 좀 봐라, 얌전하니 을마나 좋아? 차분한 데다 공부도 잘하고, 손재주도 좋은데 넌 어찌 된 게 바느질 하나 못하니……

탈룰라

어차피 각자도생인데……

할머니

응? 그건 또 뭔 소리냐?

탈룰라

사람마다 정해진 길이 다르다고요.

할머니

길? 길은 무슨 길이여, 좋은 사람 만나서 가정 꾸리면 그만이지. 일하기 싫음 말어! 니 일하는 거 기다리다 모쏘앗이 다 썩겠다.

탈룰라

농사일이라면 매년 돕고 있잖아요.

할머니

거 몇 년이나 했다고……

???

할머니, 탈룰라도 열심히 하고 있으니 너무 나무라지 마세요.

할머니

알리나, 네가 쟤 좀 붙잡고 말해보렴. 계속 이렇게 살다간……

알리나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

탈룰라

아, 네가 왔으니 이제 할머니도 좀 조용해지시겠네.

할머니

말하는 꼬라지 하고는! 어디서 난 건지도 모르는 제복을 걸치니까 무슨 귀족이라도 된 것 같아? 하여간 겉멋만 잔뜩 들어선, 그런 건 어디서 배워온 버르장머리야!

할머니

난 일하러 갔다 올라니까 알아서들 먹거라. 알리나도 요기 좀 하고. 탈룰라, 혼자만 먹지 말고 알리나도 챙겨줘.

탈룰라

네, 네……

알리나

괜찮아요.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해요, 할머니

알리나

탈룰라, 소금 가져왔어. 소금 장수는 다음 주에 온다니까 그때 꼭 사둬.

탈룰라

고마워, 알리나. 네가 없었다면 귀가 딱지가 생길 때까지 잔소리를 들어야 했을 거야.

할머니

다 들린다!

알리나

이번에는 또 어디로 가는 거야?

탈룰라

그냥 나가서 바람이나 쐬려고. 자, 네가 부탁한 풍경화.

알리나

아, 기억하고 있었구나. 고마워!

알리나

……

알리나

붓터치를 보면…… 이 근방의 화가가 그린 것 같지 않은데?

알리나

슈미르 마을의 늙은 화가는 거칠게만 그려서 섬세한 붓을 쓸 줄 몰라. 털끝이 부드러운 걸 보니 이건…… 탈피하지 않은 나이트아이의 꼬리털이 분명해.

알리나

성에 다녀왔구나.

탈룰라

……넌 속일 수가 없다니까.

알리나

날 속여서 뭐 하려고? 난 헌병도, 세리도 아닌데.

탈룰라

위험한 일 같은 건 넌 몰라도 돼.

알리나

그렇다는 건, 네가 위험하다는 뜻인 거야?

탈룰라

……

눈앞의 사슴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백발의 드라코는, 알리나가 모르게 하기 위해서는 그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는 게 최선일 거라 생각했다.

탈룰라

그러니까…… 알리나, 너도 신경 쓸 필요 없어……

우르수스 농민

크, 큰일이야!

할머니

뭔 일인데 문을 그렇게 냅다 박차고 난리법석이여? 그러다가 문짝이라도 부서지면 어쩌려고……

우르수스 농민

가, 감염자 감시팀이!

우르수스 농민

영감님이 싸움에 휘말리셨어요.

할머니

으응?!

알리나

탈룰라! 어디 가?

할머니

앗, 칼! 알리나, 탈룰라한테 칼 쥐어주면 안 돼!


감염자 감시팀

다시 한번 말한다, 늙은이. 계속 방해한다면 이 자리에서 다리를 분질러 주지!

할아버지

다녀간 지 얼마나 됐다고 또 나타난 거냐! 이제 세금 낼 돈도 없다! 언제까지 괴롭히려는 게냐!

감염자 감시팀

정기 감찰이다! 그동안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2년마다 반드시 받아야 해…… 안 그러면 우리까지 매질을 당할 테니까.

감염자 감시팀

근데 너흰 분명……

할아버지

돈도, 장신구도, 먹을 것마저 없는 사람들한테 뭘 더 뺏으려는 게야! 아무것도 안 준다, 아니 못 준다!

감염자 감시팀

아직도 헛소리를 지껄이다니……

감염자 감시팀

정기 감찰이다, 모두 비켜!

할아버지

어이쿠 선생님, 제발 한 번만 봐주십쇼! 이젠 정말 아무것도 내놓을 게 없습니다요. 드릴 것이라고는 이 목숨 밖에……

감염자 감시팀

비키라고 했을 텐데!

할아버지

흐윽!

할아버지

다, 다리가……

탈룰라

무슨 짓이냐?

감염자 감시팀

뭐야? 어디서 굴러먹던……

감염자 감시팀

……너, 그 옷 어디서 났지? 서민 주제에 이런 옷을……

탈룰라

……

탈룰라

무슨 짓이냐고 물었을 텐데?

감염자 감시팀

뭐, 뭐야?

감염자 감시팀

저, 저리 가!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헉…… 누구 하나 죽일 눈빛이로군!

감염자 감시팀

……죽고 싶은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