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0환상의 흐름
혼수상태에 빠진 아미야는 어떤 꿈을 꾸게 된다. 꿈속에서 그녀는 패트리어트의 예언대로 대지를 파괴하는 마왕이 되는 자신의 모습을 목격한다. 살카즈의 영혼들은 아미야가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길 바랐으나, 아미야는 그 바람을 거절한다.
여기는…… 어디지……
고통, 찢김, 분쇄.
온갖 고난이 내게 닥친다. 침묵한 채 살해된 사람들은 모두 나 자신이다.
아니, 나는……
그런데, 왜 힘이 안 들어가는 걸까?
누군가 나를 부르고 있다. 초조한 듯한 말투로……
“아미야!”
“약속했잖아……”
*난잡한 소리*
박사님인가? 잘 들리지 않는다.
대답하고 싶다. 입을 열고 싶다. 나는 괜찮다고, 박사님께 전하고 싶다.
통증은 서서히 가시고, 혼란스러웠던 풍경도 점차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몸에 깃든 힘을 찾고 있다.
“만신창이가 된, 성이 보인다.”
“대지에 만연한, 오리지늄이 보인다.”
“……네가 보인다。”
희미한 메아리가 멀어지자, 나는 눈이 떠졌다.
나는……
여긴 전장이야.
나의 전장이자, '마왕'의 전장.
내 뒤에는 군대가 조용히 사열해 있었다. 높게 들린 깃발에는 피와, 고통, 그리고 슬픔으로 가득했다.
우리와…… 적의 것으로.
당신께 최후의 도시를 바치겠습니다. 그들의 저항은 이미 끝을 맞이했습니다.
당신은…… 나흐체러르 왕정의 주인이시군요.
이름이 뭐죠?
저는 이름이 없습니다. 그저 당신, '마왕'의 신하일 뿐이죠.
이것이 당신의 운명입니다, 저희에게 구원을 내려 주시는 것.
저희가 그토록 갈망하던 구원이…… 마침내 달성된 것입니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열하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퍼졌고, 목구멍 깊숙한 곳에서 파멸의 챕터가 토해져 나왔다. 발 아래의 땅은 나로 인해 움츠러들었으며, 나로 인해 말려들었다.
이것이 '마왕'이 대지에 내린 은총이다.
전선이 전진하기 시작했다.
당신의 의지가 곧 저희의 의지입니다.
당신께서 예언에 답하셨으니, 곧 그 예언이 은총을 내릴 것입니다.
저희에게 맡겨 두시죠. 이 전쟁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예언?
예언.
전에 들어 본 적 있다……
요즘 많이 피곤해 보이네.
아미야, 이대로는 좋지 않아. 가서 좀 쉬어.
……테레시아 씨?
그런가? 내가…… 많이 피곤했던 걸까?
우리는 지금 방위군의 사령탑에서 힘든 전투를 치르고 있고, 켈시 선생님도 중상을 입었다.
봉쇄된 노포트 구에서, 시민들은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빅토리아의 재앙 세례를 받았지만…… 우리의 군대는 굴복하지 않았다.
사르곤인의 황금의 성에는, 자예단의 천 년에 걸친 비명이 우리에 의해 관에 못박혀 죽어 있다.
츠빌링슈튀르메의 고탑은 썩어 붕괴하였으니, 이제 귈데네스게사츠의 아래에서는 더 이상 어떠한 음률도 울리지 않았다.
영원토록 우뚝 서 있을 신성한 도시 라테라노의 순백의 성당은 검게 물들었으며, 그들의 오래된 배신은 끝내 청산의 때를 맞이했다.
바다의 흐름조차…… 오만한 에기르인들도 나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그럼에도 여전히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려는 자들은 내가 그 수급을 직접 취할 것이다.
모든 장면마다 같은 사람이 보였다.
……이 모든 게, 내가 한 짓이라고?
이게…… 전부 제가 한 짓이라고요?
이 모든 것들은 네가 해야만 하는 일들이야, 아미야.
너는 이미 이 모든 것의 시작점에 서 있어.
이것은 우리 운명의 종착점이기도 해.
눈에서 무언가가 천천히 흘러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테레시아 씨가 손을 들어 부드럽게 내 눈물을 닦아 주었다.
울지 마, 아미야.
'마왕'. 내가 너에게 직접 왕관을 씌웠어. 내가 너에게 고통과…… 영광을 준 거야.
우리는 함께 맞서야 해.
이건…… 우리가 거역할 수 없는, 살카즈의 영혼들이 내린 결론이야.
네가 거절하면 할수록, 더욱 고통받을 뿐이야. 네가 거역하면 할수록, 더욱 무력해질 뿐이야.
테레시아 씨의 얼굴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그들 모두가, 나를 향해 동시에 입을 열기 시작했다.
오랜 세월 동안, 영혼으로 돌아간 수많은 살카즈들이, 나를 향해 동시에 입을 열기 시작했다.
질책도, 두려움도 아니다.
그들은 그저…… 내가 다시 한번 평온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우리는 운명의 반항자들을 수없이 봐왔어. 예언이 일찍이 그들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이 어디서 죽을지 이미 알고 있었을 거야.
우리가 감명을 받는 그 무의미한 도전들로 장대한 영웅의 서사시를 써 내려갈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영웅 자신은 필연적으로 몰락하기 마련이지.
거절할수록 넌 더욱 고통받게 될 거야.
모든 선택, 모든 발버둥, 모든 최선, 삼켜버린 슬픔, 이 모든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넌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지. 너의 거절은 그저 운명의 단비를 씁쓸하게 만들 뿐이야.
네가 반항하려 할수록, 더욱 무력해질 거야.
모든 투쟁, 모든 불굴, 우리가 흘린 모든 피, 초췌해진 대화가 갈 곳이 없다는 것을, 너는 알아차렸기 때문이지. 너의 반항은 정해진 결말을 가시밭길로 가득 채울 뿐이야.
그런데 왜…… 대체 왜.
우린 그저 네가 편안하게 잠들 수 있기를 바랄 뿐이야.
아미야, 눈을 감아.
눈을 감는다.
수많은 종족의 후예들이 나의 녹슨 왕좌 앞에 무릎 끓고 있다. 그들은 카즈델을 이 땅까지 짊어지고 왔다.
마왕은 그들을 채찍질하고, 혹사했으며, 노예로 부렸다.
이것은 너의 사명이자, 나의 사명이다.
이것은 나의…… 정해진 운명이다.
“좋은 결말은…… 원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운명이다. 난 이미 충분히, 맛보았지.”
“나는 기나긴 시간 동안, 운명과 싸워왔지만…… 결국, 이기지 못했다.”
“하지만…… 너라면……”
“너는, 인정하는가?”
나는……
“두려워하고 있군. 어린 마왕.”
“너는 나의 결말을 알고 있다. 넌 모든 예언이 실현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너는 파멸의 근원이 될 것이며, 너는 재앙의 징조가 될 것이다.”
“너는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그런가?”
나는……
나는……
예외란 있을 수 없다, 아미야.
불드록카스티, 그조차도, 운명 앞에서 쓰러졌다.
그보다 더 강해질 수 있을까? 더 담대해질 수 있을까? 네 가녀린 어깨는, 그가 겪었던 비바람과 칼날을 버텨 낼 수 있을까?
여정의 끝에 도달하면 넌 후회할 것이다. 그보다 더 고통스러워 할 것이며, 너의 죄는 너조차도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너의 손을 보아라, 아이야. 네 손을 보아라.
나는 고개를 숙여 내 손을 느꼈다. 나는 주먹을 쥐려고 시도했다.
이건 나의 의지일까?
끝없는 전장에 나는 홀로 서 있었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널부러진 시체들.
검은 왕관은 그녀의 머리 위에 떠 있었다.
“검은 왕관을 쓴, 천만의 백성을 추억으로 만드는, 네가 보인다.”
“모든 종족을 노예로 부리는, 마왕이 보인다.”
……
후회할 거예요.
저처럼.
마지막 종착점은…… 여전히 이곳이에요.
잠시 후 죽음이 찾아오면, 당신은 모든 예언이 실현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거예요.
저는…… 이 대지 위에서 가장 두려운 재앙이에요.
나는 이 대지 위에서 가장 두려운 재앙이다.
나는 천천히 아미야를 향해, 나 자신을 향해 다가갔다.
운명 그 자체에게 다가갔다.
그렇다면……
검은색 아츠가 검의 형태로 짜여지며 눈앞의 아미야를 찌른다.
나의 가슴을 꿰뚫었다.
그렇다면, 전 당신을 죽이겠어요.
설령 당신이 저고, 제가 '마왕'이라도 말이에요.
저도 예전에…… 당신과 같은 선택을 했어요.
저는 제가 운명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을 만큼, 강한 줄 알았어요.
당신은 해낼 수 없어요.
아미야…… 당신은 할 수 없어요.
그런가요.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당신은 이 모든 것을 시도하고, 모든 고통을 겪었으며, 결국에는 자신이 같은 심연으로 떨어졌음을 알아차렸겠죠.
하지만 전 아니에요.
전 당신들이 말하는 '정해진 길'을 아직 걷지 않았어요.
……
당신들에게 도전하기로 결심했어요.
당신들에게 도전하겠어요. 마왕의 이름으로, 그리고 '아미야'의 이름으로.
만약 이 모든 결말이 예언이라는 형태를 빌려 책으로 쓰여진 내용이라면, 저희 생명의 모든 의미가 그저 당신들의 결론이 거역할 수 없다는 걸 증명하는 것 뿐이라면……
우리는 왜 살아야 하는 거죠?
우리는 왜 존재해야 하는 거죠?
패트리어트 씨는 일평생 맞서 싸웠으며, 켈시 선생님은 고심을 거듭한 끝에 선택을 내렸고, {@nickname} 박사님께서는 매번 저의 손을 잡아 주시며 굳건하게 제 곁을 지켜주셨어요……
이 모든 것이 그저 정해진 운명이었다고요?
전 인정할 수 없어요.
아미야, 이럴수록 넌 더욱 고통받게 될 거야.
그건 끝없는 고통일 뿐이야.
살카즈의 영혼들에게 묻겠어요. 테레시아 씨는 자신의 운명에서 벗어났나요?
테레시스 씨도 당신들과 정면으로 마주했나요?
……
테레시아 씨는…… 그렇기에 이 왕관을 나에게 맡긴 거예요.
테레시아 씨는 당신들이 그린, 슬픔으로 가득 찬 미래를 믿지 않았던 거예요.
그렇기에 그녀는 지금도 고통받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끊임없이 우리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란 말이다!
테레시아의 고통을 줄여 주기 위해서라도, '마왕'. 너는 반드시……
아니요.
테레시아 씨는 그 어떤 구원도 필요없어요.
'마왕'도 정복과 복수의 상징이 될 수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저여야만 하는 거예요.
이 얼마나 오만하고, 방자한……
아니요. 제가 검은 왕관을 썼기 때문에, 당신들에게 검을 휘두르는 거예요.
운명의 선택으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다. 벗어나려고 할수록 운명은 더욱더 빠르게 다가올……
저는 도망치지 않아요.
전 여기서 '운명'을 기다리겠어요.
당신들의 모든 계획이 사라질 때까지, 당신들의 온갖 비웃음이 실패로 끝날 때까지.
당신들에게 보여 주겠어요……
저희들…… 이 대지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스스로의 마지막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요.
나는 몸 안에 있는 힘을 찾았다.
이 힘을 그들은 '마왕'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마왕'은 이 힘의 본래 의미가 아니며, 결코 정복을, 통제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것의 본래 의미는……
'존속'이다.
눈앞에 펼쳐진 전장이 부서지고 있다.
머나먼 곳에서부터 탄식의 소리가 들려온다.
분노도 아니고, 두려움도 아니며, 슬픔도 아니다.
그저 탄식이다.
살카즈의 영혼들이 나에게 하는 대답인 걸까, 아니면…… 내가 악몽에서 깨어나기 위한 잠꼬대인 걸까?
……
으음……
아미야, 깨어났구나!
익숙한 소리가 들려오자 아련한 감정이 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어디 불편한 곳은 없어?
고해신부의 주술에 당했어. 악몽을 꾼 거야?
박사님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안심이 되었다.
……이제 괜찮아요.
내가 손을 들자, 검은색 아츠가 평소처럼 빛을 발했다.
……'마왕'.
박사님, 이 힘은 저주도, 재앙을 불러오는 금지된 주술도 아니었어요.
테레시아 씨가 제게 이 힘을 맡긴 건…… 우리가 이 힘을 이용해 자신의 길을 찾길 바라서였어요.
난 널 믿어.
박사님은 내 손을 가볍게 잡았다.
일어났군, 아미야.
미안하다.
괜찮아요…… 로고스 씨.
고해신부의 주술이 아니었더라도, 언젠가는 이 질문과…… 마주해야만 했어요.
꿈에서, 그 목소리들이 또다시 제게 예언을 선고했어요.
예언?
네…… 패트리어트 씨가 죽기 전에 말했던 바로 그 예언이요.
그게 무슨 말이든 간에, 전부 고해신부의 쓸데없는 장난에 불과하다.
진심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아니요.
이건 고해신부의 고문 방법일까요, 아니면 살카즈의 영혼들이 여전히 저의 마음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일까요?
어쩌면 저는 스스로의 마음 깊은 곳에…… 그 무서운 예언을 기억해 뒀는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죠. 전 이미 그들의 요청을 거절했으니까요.
다시 한번 더요.
……그렇군.
하지만 닥터 켈시에게 정밀 검사를 한번 받아 봤으면 좋겠군. 네 반지가……
알고 있어요.
아, 그런데 로고스 씨, 저희가 지금 있는 여기는……?
저 멀리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저들은…… 살카즈 용병들인가? 그들은 핏빛 결정 조각을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화물차로 옮기고 있었다.
나는 리더인 여자아이, 파프리카를 알고 있다. 박사님의 말에 따르면 파프리카는 하이버리 구의 노동자들을 해방시켰다고 한다.
로고스는 밴시의 주인이라는 신분을 이용해 살카즈 운송 소대의 차량을 징발했다.
우리는 고해신부의 추적을 뿌리쳐야 하니까.
어제, 클로저의 드론이 우리를 찾아냈다. 클로저가 머물던 W의 안전가옥이 고해신부의 습격을 받았고, 나이팅게일은 고해신부에게 끌려갔다고 한다.
……고해신부.
우리는 고해신부라는 이름의 살카즈에 대한 방비를 소홀히 했다. 테레시스의 계획이 그들에게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었지.
하지만 그들은 결국 숨어있던 그림자 속에서 나오고야 말았다.
박사, 파프리카가 지금 당신이 필요로 하는 오리지늄 샘플을 차에 싣고 있는 중이다. 그들이 이미 의심하기 시작한 모양이더군.
지금은 나를 두려워하기에 어쩔 수 없이 내 명령을 따르는 것 뿐이지만, 곧 주술을 사용해 그들을 협박해야 할지도 모른다.
야미야의 상태도 많이 좋아졌고, 결정 샘플은 다섯 개면 충분해.
이제 우리는 브렌트우드로 가 닥터 켈시와 합류할 것이다.
박사님, 왠지 심란하신 것 같은데…… 걱정거리라도 있으신가요?
테레시스가 원하는 물건이 애초에 뱀파이어의 주술 장치 따위가 아닐까 봐 불안해.
테레시스는…… 그보다 훨씬 더 위험한 힘을 원하고 있는지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