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4나란히 피어남
라타토스는 빅토리아 대사와의 2차 회담에서 걸림돌 같은 아크토즈를 제거할 의사를 은밀히 표시한다. 조금씩 친해지던 조안나와 엔야는 다시 자객의 습격을 받는다.
등장 오퍼레이터: 스노우헌터
짜증 나 죽겠네! 오늘은 아무도 건드리지 말라고 했지?
누가……
……언니.
네가 여긴 어떻게……
어서 앉아. 왜, 잠이 안 와?
유카탄은 뭐 하는 거야. 옆에서 잘 지켜보라고 했더니……
아니야……
시우루스가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라, 내가 유카탄한테 따라오지 말라고 했어.
언니랑 단둘이 얘기하고 싶어서.
……
라타토스는 늘 솔직하고 밝기만 한 여동생에게 이런 표정이 있는 줄은 몰랐다.
알겠어, 하지만 잠깐만이야. 얘기가 끝나면 가서 얌전히 자.
정말이지…… 엄마가 되어서도 아직 어린애 같다니까.
오늘 아크토즈가 응접실에서 소리 지르는 걸 들었어……
거기까지 들렸어?
젠장, 나중에 제대로 따져야겠어……
아니…… 그게 아니고……
내용을 들었어. 나도 요즘 쉐라그에 안 좋은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는 건 알아……
언니…… 부탁이야. 뭐든 알게 되거든 나한테 꼭, 꼭 말해줘야 해.
쉐라간드 신이시여……
시우루스, 그건 네가 걱정할 일이 아니야.
걱정하지 말고 있어. 나중에 네가 넘겨받으면 걱정하기 싫어도 해야 할 일이 잔뜩이니까.
근데 요즘 사건이 연달아 터지고 있잖아. 방 안에만 있는데도 모든 게 나빠지고 있다는 게 느껴져……
매일 창밖 사람들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해. 묀히도 똑같아, 아직도 소식 하나 없다니……
아직 찾는 중이야…… 묀히는 괜찮을 거야. 브라운테일의 뛰어난 전사 중 하나잖아, 잊었어?
그건 알지만……
더 걱정되는 건 언니야.
……
예전에도 내가 언니에게 도움이 된 적은 별로 없었지만, 그래도 언니 옆에 서서 응원해 줄 수는 있었는데……
하지만 지금은 언니 혼자 모든 걸 감당하고 있어…… 언니, 나는 언니가 나한테 많이 털어놨으면 좋겠어.
혼자서 모든 걸 짊어지려 하지 마. 나랑 유카탄은 언제나 언니 편이니까.
……넌 생각이 너무 많아, 이 바보야. 내가 가주 역할을 잘 못하는 것 같으니까, 빨리 넘겨받고 싶은 거지?
그게 아니라……
시우루스, 맹세할게.
난 너와 유카탄, 그리고 브라운테일을 지킬 거야.
내 목숨을 거는 한이 있어도, 그렇게 하고 말 거야.
쉐라간드 앞에서 약속할게.
……
왜, 나는 못 믿어도 쉐라간드는 믿잖아?
그렇게까지 진지하게 말할 필요는 없어……
그래…… 그러면 이제 약속한 거야. 가서 쉬어.
걱정 마,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테니까……
존경하는 브라운테일 부인, 초대해 주시다니 영광입니다.
지금 절 부르셨다는 건, 마음을 바꾸셨다는 뜻이겠죠?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마.
실버애쉬와 페일로쉬 쪽 사람을 습격해 삼족 사이를 이간질해서 내가 협력하도록 강제하는 게 너희의 방식인가?
하하, 빅토리아의 정치가라면 좀 똑똑한 수법을 쓸 줄 알았는데 말이야.
남자는 아무 말 없이 웃기만 했다.
브라운테일 부인,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타국의 영토에서 그 영토의 지도자를 공격하는 건 전쟁 선포나 다름없는 짓입니다…… 물론 그게 사실이라면 말이죠.
부인께서는 정말 빅토리아에 그런 혐의를 제기할 생각입니까?
……이게 너희가 겁 없이 날뛰는 이유구나.
존경하는 부인, 무슨 말씀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오늘 이렇게 저를 만나주셨으니 기쁜 마음으로 들어드리죠…… 제가 부인을 어떻게 도와드리면 될까요?
……흥, 기뻐하라고. 너희가 준비한 그 조잡한 계획이 어쨌든 성공했으니까. 페일로쉬와 브라운테일의 관계는 박살이 났고,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의심받는 처지가 됐어.
엔시오데스가 말한…… 삼족 모두가 안정을 바란다는 말은 아크토즈 같은 멍청이를 속이려고 즉석에서 지어낸 말이야.
엔시오데스도 잘 알고 있어. 지금 쉐라그가 처한 상황 속에서 한 가문의 지도자가 '불의의 사고'를 당한다면, 누군가 살짝 부추기기만 해도 마지막 희망을 잃은 백성들이 뿔뿔이 흩어질 거라는 것을.
우리가 만난 게 알려지면, 설령 내가 그 어떤 제안도 수락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엔시오데스는 주저 없이 페일로쉬와 함께 나를 치러 올 거야.
지금 쉐라그엔 모든 죄를 짊어질 '죄인'이 필요하니까.
엔시오데스의 수완이라면, 최악의 경우 브라운테일 가문을 쉐라그에서 사라지게 만들 수도 있어.
……나한텐 시간이 많지 않아.
부인께서 처한 상황에 공감이 갑니다. 지금 상황에 대해 내리신 판단도 정확하다고 생각하고요.
그렇다면 부인께서는 이런 상황을 깨고 싶으신 겁니까?
……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말자고.
첫째, 절대적인 약속이 필요해. 그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브라운테일 가문의 안전과 영지 백성들의 안전을 우선적으로 보장해 줘야겠어.
물론입니다. 저희는 실버애쉬의 들러리 취급이나 받는 이곳 사람들을 늘 안타깝게 생각해 왔습니다. 그게 바로 저희가 쉐라그와 평화 협력을 추진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쳇…… 마음대로 생각해.
둘째, 앞으로 브라운테일이 카란 무역회사를 대신해 빅토리아와 협력하게 되더라도 현재까지의 모든 무역 정책은 그대로여야 해. 쉐라그에 대한 원조를 철회하는 것도 안 되고.
만약 그렇지 않다면, 언제든지 빅토리아와의 협력을 중단하겠어. 너희도 그걸 원하는 건 아니겠지.
부인, 걱정이 너무 많군요. 저희가 간절히 바라는 건 쉐라그와의 평화적 협력인데, 굳이 망칠 이유가 있을까요?
부인께서 쉐라그의 유일한 대변인이 되신다면 우리는 더 폭넓게 협력할 수 있을 겁니다.
좋아……
하지만 카란 무역회사를 대체하는 건 하루아침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우리에겐 준비할 시간이 필요해…… 지금 가장 급한 일은 아크토즈를 처리하는 거야.
내가 아는 아크토즈라면, 브라운테일과 빅토리아가 손을 잡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부터 나를 귀찮게 만들 거야.
어떻게 보면 엔시오데스보다 더 성가시지……
멍청이 녀석!
정말 유감이군요……
브라운테일 부인께서 결정해 주시죠. 저희가 아크토즈를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
마지막으로 아크토즈와 '대화'를 시도해 보겠어.
……음?
영지 남서쪽 산자락에 브라운테일의 옛 저택이 하나 있어, 근처에 아무도 살지 않는 곳이지.
아크토즈에게 서신을 보낼 거야, 진실을 밝히고 싶으니까 내일 그곳에서 만나자고.
시간은 밤 7시, 지금으로부터 15시간 후야.
빅토리아의…… 진심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
물론입니다. 실망하지 않으실 겁니다, 부인.
저희도 부인께서 페일로쉬 가문을 '설득'할 수 있길 진심으로 바라도록 하죠.
눈송이 섞인 산바람이 처마의 마른 풀을 흔들었다.
바람에 휩쓸린 마른 이파리가 지붕에 앉은 소녀의 땋은 머리 위로 날아갔고, 소녀는 이파리를 손으로 집어 만지작거렸다.
리프트 클라우드비스트가 소녀의 어깨 뒤에서 고개를 내밀고 그녀의 붉어진 뺨을 톡톡 건드렸다.
아, 리프트……
그냥…… 바람 좀 쐬려고 여기 앉아 있는 거야. 너까지 같이 추위에 떨지 않아도 돼.
작고 하얀 생명체가 '고롱고롱' 소리를 냈다. 조안나와 수많은 날을 함께한 존재였다.
고마워……
나…… 성녀님 얼굴을…… 어떻게 봐야 할지 모르겠어……
그분은 쉐라간드의 대리인이셔, 존경과 사랑으로 대해야 했는데……
왜 그런 일이 일어난 걸까. 왜 우리 가문이 벌을 받아야 하는 걸까……
소녀는 리프트 클라우드비스트를 품 안에 넣고, 가는 눈송이가 자신의 머리칼을 하얗게 물들일 때까지 지붕 위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뒷마당으로 통하는 문이 열렸다.
새로 쌓인 눈 위에 얕은 발자국이 생겨났다. 엔야는 왼쪽으로 걸어가 어지럽게 놓인 석궁 3자루 중 하나를 집어 들어 자세히 살펴보았다.
조안나가 쓰던 활보다 한 치수 작은 것처럼 보였다.
엔야가 앞을 바라봤다. 멀지 않은 곳에 과녁 3개가 있었고, 아직 회수하지 않은 화살 몇 발이 그대로 꽂혀 있었다.
이렇게 어린 나이부터 훈련받는 걸까……
손잡이에 이름도 새겨져 있네…… 동생들 건가?
이번엔 마당 반대편에 쌓인 잡동사니가 엔야의 시선을 끌었다. 그곳의 공터에는 조각상들이 이리저리 나뒹굴고 있었는데, 엔야는 그중에서 가장 보고 싶은 얼굴을 단숨에 알아볼 수 있었다.
엔야는 다가가 그중 가장 큰 조각상을 들어 올렸다. 조각의 경지에 오른 장인이 만든 듯한 쉐라간드 조각상이었다. 조각상이 엔야를 향해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건……
우리가 은심호에 세운 조각상이랑 비슷하네.
사람들 마음속에서는 항상 이런 모습인 거군요.
엔야는 발치에 놓인 또 다른 작품도 집어 들었다.
새로 집은 조각상은 좀 더 가늘고, 얼굴도 다소 투박했으며, 심지어 차가워 보이기까지 했다. 아마 조각가가 얼굴을 조각할 때 힘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해 너무 많이 깎은 모양이었다.
역시 너무 안 어울리지 않아? 쉐라간드랑 하나도 안 닮았잖아!
최소한 얼굴도 좀 더 얇아야 하고, 몸도……
성녀님, 이 시녀의 작은 소망도 좀 들어주셨으면 좋겠는데.
엔야~ 아잉, 엔야~ 응?
이제 알겠죠? 얼굴은 좀 더 넓적해야 예뻐요.
……
엔야는 크기가 다른 두 조각상을 원래 있던 자리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황량하고 낯선 마당에서 엔야는 만주원 장로들처럼 두 손을 합장하고 쉐라간드 조각상을 경건하게 바라봤다.
엔야는 구체적인 소원을 빌지 않았다. 그저 기적이 일어나길 바랄 뿐이었다.
……
해는 이미 넘어갔지만, 어린 사냥꾼은 여전히 마당에 홀로 앉아 있었다.
엔야는 그녀를 보고 벌떡 일어나 예를 갖추려는 꼬마 사냥꾼의 팔을 꽉 붙잡았다.
……성녀님.
그러지 않아도 돼요. 여긴 우리 둘뿐이니 그렇게 예의를 차릴 필요 없어요.
아까처럼 편하게 대해주세요.
……아, 알겠어.
인사를 마친 소녀는 다시 고개를 돌린 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참…… 마당에 쉐라간드 조각상이 잔뜩 있던데, 다 직접 만든 건가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게다가 조각상의 생김새가 다 다르던데, 고서 속 쉐라간드의 이미지에 대한 해석이 저마다 달라서 그런 건가요?
……
닮은 건 아버지가 조각한 거고, 안 닮은 건 내가 조각한 거야……
푸흡……
미안해요……! 그런데 쉐라간드 조각상을 왜 그렇게 많이 만든 거예요?
……먼 옛날, 우리 가문이 페일로쉬 가문에서 갈라져 나온 후, 쉐라간드의 인도를 따라 설산에 들어왔어. 그때부터 대대로 사냥꾼으로 살았어.
우리는 산속의 모든 생명에 쉐라간드의 영혼이 깃들어 있고, 우리도 그분의 일부로서 이곳에서 순환하며 삶을 이어간다고 믿었어.
쉐라간드의 은혜를 기리기 위해, 우리 가문의 모든 사람들은 혼자 사냥할 수 있게 되는 때부터 쉐라간드상을 만드는 법을 배워.
그분의 표식을 새긴 가죽옷이나 뼛조각, 장식품 같은 것도.
“사냥꾼에게 복이 있나니, 들을지어다.”
“바람이 불면 풀이 눕는 것이 어찌 그분의 가르침이 아니겠는가? 날짐승과 들짐승들이 어찌 그분의 현신이 아니겠는가?”
“삶과 죽음의 순환은 얼음과 물의 변화와 같으니, 시작도 끝도 없으리라.”
“오직 너희에게만 쉐라간드의 지혜와 사랑을 전하노라.”
“기적에 기대지 말고, 설산을 찾아라.”…… 다음이 뭐였더라……
“그래야 그분과 함께할 수 있을 것이다.”
맞아, 바로 그 단락이야…… 《쉐라간드》의 다른 단락이랑 많이 달라서 한 줄 외우면 한 줄을 까먹는다니까.
경전의 세세한 내용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요. 쉐라간드께서 언제나 우리의 말과 행동을 듣고 지켜보신다는 걸 스스로 떠올리면 돼요.
어려운 구절을 막힘없이 외우지는 못하지만, 열심히 살아가고 있잖아요. 사냥하고, 조각하는 그 행동 하나하나가 다 그분의 가르침을 따르는 일이에요.
성녀인 저조차도…… 조안나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평생 이 구절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지 못했을 거예요.
조안나는 제가 본 신자 중에 가장 독실한 신자예요. 쉐라간드께서 조안나 가문의 행복을 지켜주실 거예요.
……
정말?
네, 저는 그분이…… 선택하신 성녀니까요. 아무리 힘들어도 그분은 우리가 필요로 할 때 나타나실 거라고 믿어요.
……
흐윽……
줄곧 강한 모습만 보이던 꼬마 사냥꾼의 앳된 얼굴 위로 눈물이 흘러 사냥꾼과 엔야의 발치에 떨어졌다.
조안나? 무슨 일 있었어요? 말해주실래요?
나, 나는……
엔야는 주체할 수 없이 떨리는 조안나의 두 손을 꽉 잡았다.
막 사냥을 배웠을 때, 오리지늄에 감염된 야수에게 물렸어…… 그렇게 광석병에 걸리고 말았지……
아버지는 나를 치료하려고…… 매일 사냥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도 조각상을 만드셨고, 그걸 도시로 가지고 가서 약으로 바꿔오셨지…… 그렇게 시간이 계속 지났는데……
며칠 전, 아버지의 친구분이 나한테 말했어…… 재앙이 있었던 그날, 아버지가…… 그 역에 있었다고……
내가 병에 걸리지만 않았어도……
흑…… 흐으윽……
조안나……
쉐라간드시여, 어째서……
슬픔에 잠긴 소녀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무릎을 끌어안고 몸을 웅크렸다.
엔야는 소녀의 옆에 쪼그리고 앉아 위로의 말을 건네려 했지만, 머릿속으로 경전을 샅샅이 뒤져도 적당한 말을 찾을 수 없었다. 엔야는 손을 살며시 내밀어 소녀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성녀의 목이 메어왔다. 영원하신 쉐라간드께서도 침묵하시는데 쉐라간드의 성녀가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키야르 씨, 듣고 있나요……
“고롱고롱”. 창가에 있던 리프트 클라우드비스트가 뭘 본 건지 낼 수 있는 가장 큰 소리로 울어대더니 잽싸게 조안나의 후드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조안나는 코를 훌쩍이며 손바닥으로 급히 두 뺨에 흘러내린 눈물을 닦았다.
……밖에 누가 왔나 봐. 내가 보고 올게.
착한 아가씨……
저기…… 여기서 제일 가까운 마을은 어떻게 가는 겐가?
길을 잃어버리셨나 보네요…… 저기 불빛 보이세요? 이 길을 따라 산 아래로 내려가다 보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거기서 빛이 보이는 쪽으로……
하아…… 날이 어두워서 눈이 잘 안 보이는데 말이지……
그러면 제가……
아니다…… 저는 이곳을 떠날 수 없어요.
어르신, 그러시면 여기서 하룻밤 묵고, 내일 날이 밝으면 그때 내려가세요.
됐네, 됐어. 자네를 귀찮게 할 수는 없지. 그냥 내가 어떻게든 내려가 보겠네……
무슨 일이죠?
별일 아니야. 그냥 길 잃어버린 할아버지였어.
이렇게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도 사람이 자주 다니나요?
여기 사는 건 우리뿐이고, 지나가는 사람은 거의 없어. 엔야가 처음이었는데……
……
……조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