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2비극 연습
백그라운드 페인터 티피가 주최한 영화 감상회 도중, 한 통의 메시지를 받고 자리를 떠난 셸리는 결국 냉동고에서 숨진 채 발견된다. 한편, 제작팀 사무실에 잠입한 루시안은 의도적으로 감춰졌던 또 다른 비밀을 발견하게 된다.
깊은 밤, 아무도 없어야 할 소품실에서 미세한 소리와 억눌린 비명이 흘러나왔다.
어두운 구석에는 눈도, 코도, 입도 없는 마네킹의 얼굴이 반짝이는 불빛과 함께 깜빡이고 있었다.
티피는 쿠션을 끌어안고 소파에 웅크리고 있었다. 칼을 든 범인은 사악한 웃음을 터뜨렸고, 시퍼런 칼날에서 눈 부신 빛이 반짝이더니, 다음 순간……
꺄아~
으악~
……
클래식은 영원하다! 역시 내 최애 공포영화야. 30년 전에 찍은 저예산 영화지만, 요즘 신작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아!
후우…… 역시 공포영화를 보니 우울함이 해소되네요. 덕분에 초조함도 많이 사라진 거 같아요. 초대해 줘서 고마워요, 티피 씨.
소리 지르니까 확실히 후련하지? 역시 셸리 씨는 일부러 촬영을 방해한 게 아니었어. 요즘 너무 신경이 곤두서 있어서 그래.
맞아요,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많지만…… 오늘 밤은 싹 다 잊으려고요. 다음은 뭐 볼까요?
여긴 없는 게 없어. 공포영화의 밤은 이제 막 시작이라고!
어? 몰리, 왜 말이 없어? 이 영화 별로였어?
그게……
이 영화에서 나온 무기의 칼날이 너무 얇은 것 같아서. 나라면 측면에 핏줄을 달아 더 임팩트 있는 특별한 무기로 만들었을 거야!
일 얘기는 그만해! 몰리! 셸리 씨랑 너무 오래 있어서 그런 거 아냐?
야옹~
어? 여기는 어떻게 왔니, 신비한 꼬마야?
아름다운 생물이 천천히 두 소녀 사이로 다가와 과시하듯 기지개를 켜고는 소파 앞에 앉았다.
몰리, 얘가 우릴 좋아하나 봐. 그럼 같이 영화 보는 거다! 놀라지 마.
어? 누구 단말기지? 몰리, 네 거야?
아니.
……
미안해요,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셸리 씨 안색이 너무 안 좋은데. 설마 낮에 있었던 일 때문에 그레타 씨한테 문책당하는 건 아니겠지?
몰리, 내일 우리가 셸리 씨 일을 좀 분담해 줄까? 너무 지쳐 보여.
좋아.
자! 우린 영화나 계속 보자. 다음은 최우수 미술상을 받은 작품이야. 세트, 소품, 무기까지 아주 멋지게 만들었거든……
스크린이 깜빡였다. 다시금 공포영화에 빠진 두 소녀는 발치에 있던 미스 크리스틴이 소리 없이 자리를 떠난 것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
셸리? 티피랑 같이 영화 보고 있는 거 아니었어? 그렇게 급하게 어딜 가?
친근하게 말을 건넨 남자는 셸리의 오른손에 들려 있는 단말기를 발견했다.
아, 알겠다…… 깜짝 데이트 신청이구나?
데이트 상대한테는 그렇게 무거운 표정 짓지 마, 상처받을 수도 있으니까.
당신이랑 상관없는 일이에요.
입술이 떨리고 있어. 추워? 아니면 무서워서?
가여워라. 너도 나처럼 달튼의 사고 때문에 많이 놀란 거지?
너무 상심하지 마. 너처럼 성실한 코디네이터가 있으니, 앞으로는 다 순조로울 거야. 자, 내가 안아줄게. 따뜻해질 거야……
“너도 나처럼”?
당신의 달콤한 말에서는 조금의 두려움도 느껴지지 않는군요.
건망증이 대단한가 봐요? 5년 전의 일을 머릿속에서 깨끗이 지워버릴 정도로?
저는 '당신처럼' 양심 없이 살진 못해요…… 잊지 마세요, 당신도 그때 추락 사고에 책임이 있다는 것을.
……
깊은 밤, 2층 사무실에 갑자기 불이 켜졌다.
책상 위에는 서류가 가지런히 보관돼 있었고, 사용한 흔적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다른 책상 위에는 공고문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으며, 빼곡한 수정 흔적으로 보아 글씨의 주인이 뭔가에 시달리고 있는 듯했다.
한 늘씬한 형체가 책상 근처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정확하고 깔끔한 동작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여기다.
파쇄기에는 최근 사용한 흔적이 있었다.
루시안은 폐지함을 열고 종잇조각들 속에서 특별한 촉감의 조각을 몇 개 집어 들었다. 그건 제작팀에서 쓰는 인쇄용지는 아니었다.
'트리마운츠 대학'…… '환경 관측'…… 서명은…… 그레타.
이게 셸리가 말한 '수상한 서류'인가.
그는 마치 동의라도 받은 듯, 어깨가 살짝 눌리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사무실엔 자신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왔군, 미스 크리스틴.
요즘 산책 횟수가 부쩍 늘었던데, 재미있는 거라도 찾았나?
여기는 생각보다 더 재미있는 곳이더라고.
맞아. 나도 예상치 못한 걸 찾았다.
……넘겨짚지 말자…… 그저 누구의 장난인지 확인하러 온 거잖아……
그 번호가 말소된 것도 직접 봤을 테니, 그 사람일 리가 없어…… 그럴 리가 없다고……
셸리는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애썼지만, 영화를 보면서 잊었던 두려움과 불안감이 다시 그녀를 집어삼켰다.
“창고에 가서, 네 죄나 뉘우치거라.”
고요한 창고 안에서 단말기 화면은 미약한 빛을 발하고 있었고, 발신자 란에는 셸리에게 아주 익숙하지만 마주하기 싫은 이름…… '로라'가 요동치고 있었다.
거기 누군가요!
수작은 그만 부리세요. 지금 이 메시지가 환각이 아니라는 걸 분명히 알고 있어요! 대체 원하는 게 뭐죠……
당신이 뭘 안다고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어둠은 낡은 창고에 남아 있던 모든 소리를 삼켜버렸다.
미세한 전류 소리가 지직 울리더니, 저 멀리 선반 위의 천장등이 갑자기 밝아졌다.
기괴하면서도 매혹적인 광경에 셸리는 저도 모르게 그쪽으로 걸어갔다.
셸리 씨.
……로라 씨…… 인가요……?
셸리는 다시 떨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 목소리가 창고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망상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그녀는 뭔가에 홀린 듯 앞으로 걸었다. 그녀는 마치 5년 전의 스튜디오로, 비극의 시작점으로 다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저기, 셸리 씨! 새로운 장면이 또 추가됐어요. 와이어가 필요한데, 준비 좀 해줄 수 있나요?
건방지고…… 오만한 데다…… 안하무인까지…… 랭크우드에 갓 들어온 신인 주제에……
달튼 씨가 감독님의 동의를 받았다고 하셨어요. 이미 결정된 일이라……
지금 인기 절정인 달튼 씨는 당신을 손보려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당신은 진심으로 자길 도와주려는 거라 착각하고 있군요…… 그래서, 만족하나요?
달튼 씨는 아직인가요…… 몇 시간째 와이어에 매달려 있으니, 팔이랑 다리가 부러질 것 같아요…… 셸리 씨, 대신 물어봐 줄 수 없나요?
저 같은 '일개 코디네이터'가 할 수 있는 일은 당신이 쓸 와이어와 장비를 준비하고, 안전을…… 확보하는 것 정도예요……
그래서, 그렇게 했나요?
셸리는 선반 앞으로 다가갔다. 흔들리는 불빛이 검은색 방진 주머니를 비추고 있었다. 그녀는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고 있었다.
열지 마, 셸리. 안 돼.
!!!
방진 주머니 안에는 낡은 와이어 장치가 들어 있었다. 고리와 와이어는 심하게 마모되었고, 생명줄도 끊어지기 직전이었다.
그리고 검은 천에는 짙은 얼룩이 묻어 있었다.
그건 로라의 피였다.
아니야! 당신이 알고 있을 리 없어요!
당신은 환각이야! 살아있을 리가 없다고! 맞다…… 통증…… 만년필, 내가 만년필을 갖고 왔는데……
윽……
……애처롭군요.
왜 아직도 있는 건데…… 왜 아무 소용이 없는 거야!
5년 전의 일은 정말 사고였나요? 아니면 살인이었나요?
사고…… 사고였어요! 달튼이 당신을 괴롭히지 않았더라면 그런 참극도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고요!
왜 제 장치는 점검하지 않았나요?
그건……
왜!
당신이 싫었으니까요!
이기적이고 오만하고, 팀의 일정을 엉망으로 만들었어요. 당신의 터무니없는 요구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방해를 받았다고요!
달튼이 당신을 손봐준다니, 마침 잘된 일이었죠! 그날엔 평소처럼 와이어 장치를 점검했고, 마침 교체 시기가 됐다는 것도 알고 있었어……
그런데 머릿속에 갑자기 아주 작은 생각이 스치더군요. 만약 당신이 사고를 당해 완전히 사라진다면……
하…… 하하하…… 그럼 더 좋은 거잖아요……
갑자기 나타난 손이 넋이 나간 셸리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그녀는 파이프 안에서 냉매가 세차게 흐르는 소리를 들었고, 몸 아래에 얼어붙은 서리가 천천히 금이 가며 갈라지는 것을 느꼈다.
셸리는 그제야 자신이 어느샌가 창고 끝에 있는 냉동고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문을 부숴야 하나? 소리라도 질러야 하나? 그렇지만 셸리에게는 이미 발버둥 칠 힘조차 남지 않았다.
……
두려움은 어느새 사라지고, 그녀는 전에 없던 해방감을 느꼈다.
……
……
죽음은 그녀에게 모든 수수께끼의 답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