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5불길 속
도시에서 예상치 못한 손님을 맞이한 에블라나, 그리고 도시 밖의 유적지에서는 장례식, 즉 타라 전통의 환화 의식이 로흐시니 눈앞에서 치러진다.
등장 오퍼레이터: 리드 더 플레임 섀도우, 네크라스
……
요새에 있는 부하들은 모두 물러가게 했는데, 이 발소리는……
……전하.
아, 너였군. 무슨 일이라도 있나?
왜 돌아왔는지는 여쭤보지 않는 겁니까?
괜찮아, 돌아왔으니 그걸로 됐어. 넌 나의 충복이니까.
게다가 네가 날 위해 어떤 손님을 데려왔을지는 대충 알고 있어.
……통행금지는 시작됐어?
방금 막 시작되었습니다.
그럼 내 명령을 어긴 건 아니네.
……실패했다……
실패했다니?
나 시어셔도 그대로고, 나도 멀쩡히 여기 있잖아. 그런데 실패했다니?
……도망쳐라……
기한은 사윈 때까지야. 아무리 검은 안개가 인간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는 해도, 이 정도는 기억하고 있을 테지.
……예상치 못했다……
……실망스럽다……
……받아들일 수 없다……
솔직히, 네가 뱉는 단편적인 말들을 어떻게 이해하라는 거야?
아니면…… 너도 대화보다는 아츠나 힘을 쓰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에블라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차가운 빛을 머금은 가지와 잎이 검은 안개 속에서 튀어나와 목을 겨눴다.
그와 동시에 에블라나는 창으로 안개의 깊숙한 곳을 찔렀다. 보랏빛 불꽃은 희미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마치 마음만 먹으면 금방이라도 안개를 태워버릴 기세였다.
하지만 가지는 에블라나의 목을 찌르지 않았고, 보랏빛 불꽃 역시 안개 속에서 타오르지 않았다.
사윈.
사윈 다음 날 해가 뜨기 전까지, 우리 모두 원하는 결말을 얻게 될 거야.
지금은…… 우리 둘 다 허세를 부리고 있을 뿐이야. 안 그래?
에블라나는 여전히 안개 속으로 창끝을 겨누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목을 노리던 가지는 순식간에 사라졌고, 창끝에서 일렁이던 보랏빛 불꽃도 흩어졌다.
곧이어 검은 안개가 사라졌다.
전하……
아직 있었네.
아직 더블린에 관해 볼 일이 남았어?
어차피 이곳엔 너와 나 둘밖에 없으니, 그들을 입에 올리는 걸 허락하지. 가장 충실한 나의 부하여.
넓은 아량에 감사드립니다만, 아닙니다.
설령 국가를 세우는 데 도움을 준 망령이라 한들, 결국은 망령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망령은 역사 속에 남아서는 안 될 존재입니다.
하지만 그날 저처럼 그곳에 남아있던 동료들이 걱정되는 건 사실입니다……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혹시 전하께 위협이 될 가능성은 없습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 게다가, 그것이 네가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남아있을 이유가 되진 않아.
……돌아오는 길, 전 혼란을 목도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별것도 아닌 이유 때문에 폭력적으로 변했고…… 아무런 이유 없이 싸움을 벌였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인형처럼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습니다……
마치…… 그때 우리와 함께 빅토리아인에게 맞섰던 망령 같았습니다.
그들도 어둠 속으로 들어갔을까요?
이곳은 나 시어셔, 붉은 용의 둥지이자 타라의 주도입니다. 전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타라 전체를 뒤흔들게 될까 두렵습니다.
그럴 일 없어.
……
아무래도 믿기지 않는 모양이네.
전하……
제가 듣고 싶은 대답은 하나입니다.
이 질문만큼은 꼭 대답해 주셨으면 합니다.
좋아, 네 무엄함을 허락하지.
(깊게 숨을 들이마신다)
에블라나 전하, 그 미래 말입니다만……
더블린과 모든 타라인들에게 약속하셨던 미래, 타라인이 자유롭게 자신의 꿈을 그릴 수 있다던 미래는……
……전부 거짓이었습니까?
교관은 온몸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떨었다. 며칠 동안 가슴 깊이 묻어두었던 두려움이 한순간에 그를 덮쳤다.
그건 자신이 목숨을 잃게 될까 봐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동료들처럼 검은 안개에 삼켜지는 것도, 붉은 용을 화나게 한 대가로 죽는 것도 두렵지 않았다.
교관이 두려운 것은 오직 하나였다. 붉은 용의 입으로 절대 듣고 싶지 않은 그 대답을 듣게 되는 것이었다.
절대 아니야.
전하……
내 대답은 끝났어, 교관.
붉은 용의 목소리는 작고 약해 보였지만, 의심의 여지는 없었다.
수많은 전장에서 자신을 승리로 이끌었던 그 목소리를 들으며 교관은 천천히 허리를 펴고 자세를 가다듬었다.
전하를 믿겠습니다.
사실…… 믿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없는 건 아닌가?
아뇨, 전하를 믿습니다. 언제나 그래왔듯, 이해하기 어렵거나 마치 앞길이 막혀있는 것처럼 보이는 선택을 한다 하더라도, 결국 저희를 이상과 가까운 곳으로 인도해 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이렇게까지 날 믿어준다니, 고맙다고 해야겠네.
하지만 나 시어셔의 질서 유지는 네가 할 일이 아니야.
네가 검은 숲에서 돌아올 수 있었다면, 지금 당장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야 해.
사윈이 끝나기 전까지 말입니까?
맞아.
아니면……
……
“동이 트면 검은 숲으로 가 안개를 부르네”……
전하?
검은 숲 밖에서 들려오는 이 노래, 들려?
도시를 떠난 지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았는데…… 제법이네, 로흐시니.
도시에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요?!
리드 씨, 당신의 언니는…… 대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거죠?
나도 모르겠어.
예전에 누군가 내게 언니의 계획은 모두 타라를 위한 거라고, 타라에 손해가 가는 일은 없을 거라고 장담했지. 하지만 지금은 언니도, 그리고 날 안심시켰던 그 사람도 믿을 수 없어.
영혼수호자, 이래도 리드를 돕지 않겠다는 거야?
……
장례를 치르기 위해 찾아왔다고 했으니, 장례만 치르도록 하지.
어찌 되었든, 고인의 생애는 모두 확인했다.
매듭과 화환을 챙겨서 밖으로 나가, 이제 곧 장례식이 시작될 거야.
사람들은 모두 말을 멈추고 조용히 일어났다.
동이 트면 검은 숲으로 가 안개를 부르네♪
전장으로 향하는 길에 오르자♪
피리 소리도, 북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네♪
등 뒤의 종소리만이 안개 속 물방울을 가르네♪
모든 영혼수호자들이 낮은 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분주히 움직였다.
그리고 그들 중 누군가는 고인의 시신을 꾸며줬다. 꾸민다고 해 봤자 목관 위로 매듭과 화환을 올려놓는 것이 전부였다.
누군가는 관 주위로 땔감을 쌓았다.
누군가는 옆에서 노래를 부르며 장례식에 온 유랑민들에게 촛불을 나눠줬다.
작지만 밝은 불빛이 캠프 곳곳을 비췄다.
로흐시니도 촛불을 받아 조심스럽게 가슴에 품었다.
저기……
말해.
난 고인과 아는 사이도 아니고, 솔직히 특별히 할 말도 없어…… 하지만 내 고향에서 장례식을 할 때면 모두 편하게 이야기를 해.
물론이야. 그게 타라인들이 고인을 기리는 방식이고.
비록 삶은 끝났지만, 여전히 축복받을 가치는 있어. 살아 있는 자들의 즐거움이 고인에게는 위안이 될 거란 건 말할 필요도 없겠지. 편하게 이야기해도 좋아.
저기, 간식을 좀 만들어왔는데……
편하게 나눠 먹어. 잠시 후 우리도 모두에게 음식을 나눠줄 거야.
다만, 쿨란은 젊은 나이에 생을 마쳤고 도시의 변고로 인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으니, 지나친 행동은 자제해 줘.
또, 환화 중에는 우리의 지시에 따라줬으면 해.
알겠어.
모란, 너희는 장례식을 어떻게 지내?
그냥 빈소를 지키면서 밤을 보내요. 특별한 전통 의식이 있는 건 아니에요. 저도 '환화' 가 뭔지 모르겠어요.
어차피 시키는 대로 하면 되니까.
리드, 장례식을 치러본 적 있어?
(고개를 젓는다)
그렇구나……
그 뜻은……
로흐시니가 영혼수호자와 만났어. 영웅의 장례식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지.
“동이 트면 검은 숲으로 가 안개를 부르네, 전장으로 향하는 길에 오르자”…… 이 노래, 알아?
알고 계시면서 여쭈어보시는군요.
몇 번이나 그 노래를 부르며 젊은이들을 데리고 전장으로 향했습니다.
누구지? 누가 노래를 부르고 있는 거야?
젠장, 겨우 검은 숲에서 빠져나와 옛 왕성의 유적지까지 왔는데, 왜 아직 이 노래가 들리는 거지?
설마 아직도 검은 숲에서 벗어나지 못한 건가?!
아니, 그럴 리가 없어. 이건…… 유적지 중앙의 용광로에서 나는 소리인가?
……
아름다운 멜로디야……
피리 소리도, 북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네……
등 뒤의 종소리만이…… 안개 속 물방울을 가르네……
아……
돌아가야 할지도 모르겠어……
이제서야 내가 뭘 원하는지 분명해진 것 같아……
내가 나 시어셔에서 도망칠 자격이…… 있을까?
받아, 엠마. 오늘치 빵이야.
먹을 걸 주다니, 정말 고마워.
너도 내게 빵을 나눠 준 적 있잖아? 은혜를 갚은 거라고 생각해.
그런데 아까부터 계속 이 빵만 쳐다보고 있잖아. 도대체……
……
(작은 소리로) 참자, 참아야 해……
(작은 소리로) 엠마에게 주는 거잖아, 엠마는 전에 빵을 나눠 준 사람이라고. 넌 엠마를 도와야 해, 넌……
(심호흡을 하며) 난 괜찮아, 엠마.
나, 나는 그냥 이 말이 하고 싶었을 뿐이야. 오랫동안 아파서 계속 누워 있었잖아, 그게 걱정된다는 말이 하고 싶었어.
……
“피리 소리도, 북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네……”
갑자기 그 노래는 왜 불러?
저 멀리서…… 누군가 부르는 것 같아……
환화 의식에 앞서 고인의 지인이 추도 연설을 시작하겠다.
리드?
네모스가 준…… 추도사가 있어. 장례식 때 대신 읽어달라고 부탁을 받았는데, 괜찮을까?
물론이야, 부탁할게.
“쿨란 씨에게……”
……편지?
“쿨란 씨, 어쩌면 저도 곧 당신과 같은 결말을 맞이할지도 모르겠네요……”
쿨란 씨, 어쩌면 저도 곧 당신과 같은 결말을 맞이할지도 모르겠네요. 아마 보랏빛 불꽃에 지배되어 잿더미가 되어버리겠죠.
아니면, 아무도 저를 해방시켜 주지 않아 죽은 후에도 영원히 고통받을지도 모르고요.
하지만 저는 당신이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당신은 말했었죠. 당신은 영웅이 되고 싶다고. 자신을 영웅이 되게 해달라고.
당신은 말했었죠. 전쟁이 끝나면 나 시어셔에는 더블린도 군인도 아닌, 우리만의 영웅이 필요하다고.
당신은 모든 나 시어셔인들이 전쟁에서 수많은 소중한 것을 잃었다고 했었죠. 연인, 자녀, 혹은 미래.
만약 그들에게 영웅이 없다면, 그들을 이해해 주고, 그들의 권리를 위해 싸워주고, 그들을 바로잡아주고, 때로는 훈계해 주는 본보기가 없다면……
전쟁이 끝나고 원망의 대상이 사라졌을 때, 사람들이 모두 무너질 거라고 했었죠.
저는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당신의 요구를 받아들였어요.
그렇게 당신은 테오를 거두었고,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찾아주었죠. 그리고……
모든 것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 당신은 조각상을 세우자고 제안했죠. 당신은 그 중책을 스스로 짊어지고 정신없이 조각상을 만들었어요.
물론, 마지막 순간에 깨달았지만, 이미…… 너무 늦은 뒤였죠.
이젠, 제가 당신을 대신해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무거운 짐을 짊어질 차례입니다.
“……이젠, 제가 당신을 대신해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무거운 짐을 짊어질 차례입니다.”
“안녕히 가세요, 쿨란 씨. 어쩌면 곧 다시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저와 당신이……”
“따뜻한 불꽃 속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추도사가 끝나갈 때쯤, 사람들은 목관 주위로 장작더미를 던졌고, 곧 거대한 불길이 매섭게 타올랐다.
사람들은 영혼수호자의 안내에 따라 불길 주위를 에워쌌다.
자, 모두 이 모습을 눈에 담아둬. 고인은 이제 불길 속에서 안식을 얻었으며, 인간 세상을 떠돌지 않게 될 거야.
이제 촛불을 불과 최대한 가까운 곳에 놓아도 되고, 불 속으로 던져도 돼. 불꽃을 고인에게 다시 돌려줘.
만약 고인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불꽃을 향해 크게 외쳐줘. 헌사도 좋고 질책도 좋아. 그것들은 모두 하나의 기억이 되어 고인이 떠나는 길을 비추는 위로가 되어줄 테니까.
고인에게 불을 돌려준 후에는 자리를 뜨지 말고, 불길이 사그라질 때까지 함께 있어 줘.
……자, 시작해.
편히 쉬세요. 얼굴조차 본 적 없는……
……거짓말쟁이이자, 영웅이여.
모란은 허리를 숙여 촛불을 불가에 내려놓았다. 불길이 순식간에 촛불을 집어삼키며 그녀의 손까지 옮겨붙을 뻔했다.
리드 씨, 불에 좀 더 가까이 둘까요?
이곳에서 쿨란을 애도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나일 거야.
못 구한 것뿐이잖아요.
모란?
쿨란 씨가 영웅이 되기로 결심한 순간, 그는 이미 붉은 용의 둥지에서 머물 수 없는 존재가 된 거 아닐까요?
그러니까 쿨란 씨에게 불을 돌려줘요.
재는 재로, 먼지는 먼지로. 죽은 자가 우리의 기억을 안고 영원히 잠들 수 있게 해줘요. 살아있는 우리는 계속해서 살아가야 하니까요.
……
환화, 불을 돌려준다……
죽은 자가 우리의 기억을 안고 영원히 잠들 수 있게 하는 건가…… 살아있는 우리는…… 계속 살아가야 하니까?
로흐시니가 생각에 잠긴 사이, 환화 의식을 마친 사람들은 하나둘씩 자리를 떠났고, 로흐시니는 혼자 남을 때까지 그곳에 촛불을 들고 서 있었다.
그리고 말없이 앞으로 다가가 타오르는 불길 속으로 촛불을 던졌다.
죽은 자는 이미 떠났다.
그 의욕이 넘쳤던 나날들, 정신이 없었던 나날들, 막 꿈에서 깨어난 나날들, 목이 메도록 외치던 나날들이 이제는 불길 속에서 타버려 흩어지는 연기, 침묵하는 재로 변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