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6깜빡이는 등불
광석병 약물의 연구 개발을 위해 박사는 자신을 실험 대상으로 삼는 것도 마다치 않는다. 한편, 테레시아는 박사의 머릿속에서 모순된 사고가 충돌하는 걸 알아차리게 된다.
……
실험대 위에 놓인 오리지늄 결정 한 덩어리가 불빛 아래서 주황색 빛을 냈다.
깨끗하고, 아름답고, 무해해 보였다.
프리스티스…… 우리가 드디어……
정말 유감이지만…… 그건 불가능해.
박사님…… 몸이…… 아파요……
……감사…… 합니…… 다……
실험대 앞에 앉은 사람은 오리지늄 결정을 집어 들어 자신의 팔에 꽂았다.
앙상한 팔이 피로 물들었지만, 피로 얼룩진 상처가 하나 더 생긴 것 외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고통이 몰려왔다.
하지만 그건 오리지늄 감염으로 인한 고통이 아니었다.
검사 기기에도 세포와 오리지늄의 융합 징후는 전혀 표시되지 않았다.
……오리지늄은 날 감염시키지 않아.
우린 그 고통이 이런 거였을지 몰랐을까?
만약 너라면, 이 대지의 상황을 어떻게 판단할까……
(미지의 언어) '오리지늄'.
(미지의 언어) 유일하게 계속될 우리의…… 등불.
……
(차분한 호흡)
효과가 있어.
여태까지 만들었던 억제제보다 몇 배나 효율이 높아. 아미야의 혈액 내 오리지늄 결정 밀도도 현저히 감소했고.
하지만……
이건 실험에 불과해. 테라에서 양산할 수 있는 방법은 아직 찾지 못했어.
박사!
네가 네 몸을 써서 실험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지금 네 상태는 좋지 않아.
혈액 연구일 뿐이야.
오리지늄은 날 감염시키지 못해. 에너지 프로젝트였을 때에 마련해 둔 보험이야. 이 점을 이용하면, 광석병의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을지도.
그리고 테레시아, 테레시아는 너랑 달라. '문명의 존속'은 강력한 마법 같은 게 아니야. 테레시아는 무수히 많은 계승을 통해 가장 근본적인 오리지늄 아츠의 형태를 만들어낸 거지.
테레시아의 도움이 있다면, 우린 한 걸음 더 나아가 광석병 약을 계속 생산해 낼 수 있을 거야……
지금은 네 상태가 더 걱정돼, 박사.
괜찮아.
오리지늄이 너희를 우리와 비슷한 형태로 만들었어. 그럼, 내 몸을 대가로 혈청을 만들 방법을 찾을 수도 있을 거야……
눈앞에 있는 문제가 아무리 복잡해도, 바벨이 효과 있는 광석병 치료제를 만들 수 있다면, 우리를 지지하는 살카즈가…… 아니……
대지 전체에서 바벨을 지지해 줄 사람이 무수히 많아질 거야.
그때가 되면, 우린……
조용하게, 행복하게, 평온하게 끝나지 않는 미래를 만들어 줄 오리지늄을 기다릴 수 있어.
아니, 내 말 들어.
켈시는 강압적으로 박사의 팔을 잡았다.
켈시는 박사의 팔이 훨씬 가늘어졌다는 걸 어렴풋이 느꼈다.
림 빌리턴 여행부터 살카즈 내전까지, 넌 잠시도 쉬지 않았어.
내가 널 깨우기로 결정한 건, 네가 이 문명을 위해…… 날이 갈수록 당황스럽고, 놀랍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문명을 위해 탈출구를 알려주길 바라서였다.
하지만 난 지금 이 순간 네가 자신을 소모시키길 원하진 않아.
자신을 조금 더 소중히 여겨.
……미안.
그래도 지금은 아미야의 고통을 더 줄여주고 싶어.
3개월 뒤
카즈델 지역, 바벨 로도스 아일랜드 본함
……아미야, 거기 있는 거 다 보여, 이리 나와.
박사님…… 제, 제가 방해했나요?
아니, 문 열리는 소리를 못 들었거든. 그래서 어떻게 들어온 건지 궁금했어.
비밀 통로를 잔뜩 알아냈거든요.
비밀 통로?
네. 클로저 언니가 비밀을 지키라고 해서 다른 사람들에겐 안 알려줬는데, 박사님에게만 알려드릴게요.
어쩐지, 그래서 켈시가 널 검사하려고 해도 찾지 못했던 거구나. 몰래 숨어있었던 거였네.
……박사님이 같이 가주시면 도망가지 않겠다고 약속할게요.
좋아, 나중에 시간을 내볼게.
박사님. 요즘 많이 바쁘시죠. 켈시 선생님이 그랬어요. 점점 얼굴 보기가 어려워지고 있다고요.
늘 혼자 계시잖아요…… 엄청 엄청 두꺼운 서류를 들고, 고개도 푹 숙인 채로 복도 여기저기 돌아다니시고.
다들 인사해 줘도 한마디도 없이 그냥 고개만 끄덕이시곤, 뒤도 안 돌아보고 바로 떠나시잖아요.
윽, 그렇게 들으니까 되게 예의 없어 보이네. 미안해, 아미야.
아니에요, 박사님…… 제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 저, 전 그냥 박사님에게 기분 나쁜 일이 있던 건 아닌가 해서……
왜 그렇게 생각해?
로도스 아일랜드에 도착하기 전, 박사님은 모든 것에 관심을 가졌어요. 버든비스트 사이에 껴서 자고, 광산 갱도 안에서 쭈그리고 앉아 돌멩이를 한참 바라보고, 백비스트 동굴로 가서 열매를 꺼내 오고……
저조차도 유치하다고 생각하는 일이었지만, 그래도 박사님은 기뻐 보였어요.
지금은…… 매번 제가 재밌는 얘길 해줘도 “아미야가 즐거우면 됐다”라는 말만 하고 계세요.
근데 사실 박사님이 기뻐하시길 바라면서 했던 얘기인데……
제 몸이 좋아지지 않아서 박사님의 기분이 안 좋으신 건가요?
아미야 때문이 아니야. 나 때문이지.
그리고…… 아미야도 가끔 함선 바깥이 어떤 상태인지 듣곤 하잖니?
……네…… 림 빌리턴의 초대형 시추기처럼…… 엄청 시끄러워요, 너무 싫어요.
그래서 나, 테레시아, 켈시 모두 바쁜 거야. 아미야 잘못이 아니야.
……네.
그럼, 아미야 오늘 시간 좀 있니?
있어요!
갑판 위로 가서 구름을 보고 싶네. 조금 있으면 비가 올 건데, 구름이 엄청 특이하게 생겼거든. 만약 들어줄 사람이 있다면 이야기도 잔뜩 할 거야.
듣고 싶어요! 근데…… 박사님은 아직 할 일이 있지 않나요?
괜찮아…… 금방 끝나는걸.
아미야.
언젠가 네 광석병이 다 나으면, 이 대지의 광석병이 다 낫게 되면……
테라인들이 오리지늄과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 날이 되면, 그땐……
이 대지의 다른 곳도 보러 가자.
그땐 켈시도 같이 가는 거야……
오리지늄은 다음 문명을 밝히는 별빛이 될 거야.
시간의 끝까지, 모든 의지는 오리지늄 속에서 새로운 희망을 낳겠지.
박사!
……괜찮아. 그냥 과로로 갑판 위에서 쓰러진 거야.
후우…… 별일 아니라니 다행이네.
박사의 팔은 왜 다친 거야?
자신이 광석병에 감염되나 테스트했어, 아주 다양한 방법으로 시도했지. 분진 흡입, 오리지늄이 많은 환경에 노출되기도 했고, 활성 오리지늄으로 피부를 찢기도 했어……
나도 말려 봤어, 스카우트나 다른 사람들에게도 박사를 말려보라고 했지. 하지만……
이곳에 박사가 다치는 걸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어.
……어쩌면 박사는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괴로워하고 있을지도 몰라.
아미야는?
많이 놀랐나 봐. 한참 울고 있는 걸 겨우 재웠어.
응? 이건…… 작은 석조상인가?
도움받은 감염자가 박사한테 남겨준 거군.
아미야의 비명 소리를 가장 먼저 들은 건 에이스야. 박사를 이곳으로 업어왔을 때, 감염자에게 받은 박사의 선물을 둔 거지.
……박사, 이것 봐. 박사는 이미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있어. 오래전부터 혼자가 아니었다고.
근데 대체 무슨 일이 있길래 켈시나 나한테조차 털어놓지 않는 거야?
……
박사가 아미야랑 바벨을 돕고 싶어 하는 마음에 거짓이 없다는 걸 난 느낄 수 있어.
하지만 계속, 박사에겐 아직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생각, 걱정, 의혹이 있는 것 같아.
처음엔 박사가 너무 급하게 깨어나서 그럴 거라고, 시간이 지나면 그런 감정들도 사라질 거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그렇지 않아. 켈시.
박사는 아직 하지 못한 말 때문에 마음이 찢어지고 있어. 망설이고, 괴로워하고, 자책하고 있지.
부끄럽지만, 어쩌면 나도 박사라는 사람을 생각만큼은 잘 알고 있진 못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네.
박사의 고통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만약 너조차 박사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다면……
그럼 어떤 사랑과 경외를 받더라도 바벨의 박사는 계속 외톨이가 되겠지.
……켈시.
응.
나중에 박사한테 설명해 둘게.
테레시아는 박사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뜨거운 이마 속에는, 그녀가 상상할 수도 없는 과거가 담겨 있다.
'문명의 존속'.
오리지늄은 반드시 모든 것을 다시 써 내려가야 한다.
이 방법을 얻어야만, 존재에 가치가 생긴다.
지혜로운 생명으로 시작해서, 세상의 빛과 별 무리의 소용돌이까지.
오리지늄이 스스로 복제되고 전환되는 과정 속, 결국은 시간조차 존재하지 않게 된다.
……이건, 오리지늄?
오리지늄.
빅뱅 전의 첫 번째 빛이 될 것이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오직 이 방법, 오리지늄으로 이 대지를 가득 덮는 것만이 물질과 시간, 조수와 감탄, 빛과 울음소리를 광활한 정보의 바다로 돌아가게 할 수 있고……
우리는 변화와 돌파구를 찾아, 종말의 운명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비록……
이것이 변화가 아니라, 일종의 죽음이라 할지라도.
이것은 멸절이 아닌, 존속이다.
이건 대체…… 언제의 기억이지? 박사의 마음, 고통, 망설임, 그리고…… 공포?
이 절망 속에서 박사와 함께하고 있는 건…… 누구지?
아냐. 켈시가 전에 말했어. 예전에 다른 사람이 한 명……
……!
오리지늄은 조용히 성장했다. 아름답고, 고요했다.
생명의 흔적은 묻혀버렸고, 문명도 이 대지에선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테레시아가 느낄 수 있는 건, 오직 숨 막히는 공포뿐이었다.
기억이 떨리며 무너지고 있었다. 어떤 힘이 잘못을 바로잡고자 하고 있었다.
기억 속의 오리지늄은 끊임없이 성장했다. 테레시아의 의식마저 동화시키기 충분할 정도로……
“테레시아……”
켈시? 맞다, 켈시가 곁에 있었지.
“테레시아!”
자신의 생각이 희미한 오리지늄의 빛에 완전히 빠져들기 전, 그녀는 본 것 같았다. 박사는……
테레시아!
……!
테레시아, 어떻게 된 거야?
뭘 봤어?
오…… 오리지늄을 봤어.
오리지늄이 대지 전체에 동화되었고…… 박사는, 이것 때문에 고통받고 불안해했던 거야.
……
그건 박사의 기억이야? 아니…… 그냥…… 꿈인가?
켈시…… 부축해 줘. 그런 느낌은, 그 기억 속의 잡음과 울부짖음은…… 나는……
……테레시아.
말했잖아…… 오리지늄은, 일찍이 이 대지의 멀고 먼 미래를 결정했다고. 하지만 선택지는 두 개야.
우리는 구체적인 고통, 재앙, 광석병에 너무 많은 관심을 기울였어. 먼 미래를 내다보는 건 어려워, 의미도 부족하고.
박사는 그중 하나를 선택했던 거야. 박사는…… 내게 그 미래를 직접 말해줬어.
그 미래는 잊을 수 없어, 박사가 내게 했던 말도.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잊을 수 없어.
그에 반해, 또 다른 공허하고 차가운 생각은 만 년이란 세월 동안 늘 밤마다 차갑게 내 척수를 파고들었지.
난 말할 수 없어.
하지만 너는 마왕의 힘으로…… 내 분노를 느낄 수 있을 거야.
이 또한 '문명의 존속'이 언어에 의해 만들어진 속박에 없다는 것을 뜻하지.
……
그러니까, 테레시아.
네가 원하지 않는 미래를 봤다면, 난 네가, 오직 너만이 오직 '문명의 존속'만이 결과를 바꾸길 바라고 있어.
……그게 내가 됐든, 아니면 박사가 됐든, 네가 우리의 낯선 모습을 봤다면……
켈시?
아냐, 켈시!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
……박사가 아미야와 우리, 네게 갖고 있는 마음엔 거짓이 없어. 절대 거짓말이 아니야.
박사를 믿어줘, 그리고 날 믿어줘. 박사를 괴롭게 만드는 원인은 내가 직접 찾을게. 그때까지……
으윽……
박사!
박사……! 깨어났구나.
어떻게 된 거지……
아미야와 갑판으로 나가던 중에 갑자기 쓰러졌어.
윽, 아미야는?
많이 놀랐지만, 지금은 괜찮아.
네 상태는 아직 나빠,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
난 아미야의 광석병을 고치고 싶고, 참혹한 살카즈의 현재 상황을 끝내고 싶어.
나로 인해 생겨난 이 문명 속을 거닐며, 한때 갖고 있었지만 오랫동안 잃어버린 새로운 생명의 힘을 느끼고 싶어.
설령……
백 년, 천 년 뒤 우리가 봤던 익숙하고 그리웠던 모든 것들이 더는 존재하지 않게 된다고 하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