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르수스를 향해
공작 연합군이 도시로 진군한 후, 첸은 마침내 런디니움에서 나인이 이끄는 리유니온을 찾아냈다. 리유니온은 전쟁에 휘말린 무고한 사람들을 구해냈고, 우르수스 설원 깊은 곳에서 반란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들었다.
편집장님, 이게 체르노보그에 관한 모든 자료예요. 책상 위에 올려두었어요.
이 먼지가 잔뜩 쌓인 자료에서 원하는 정보를 찾을 수 있길 바라죠.
정리해 줘서 고마워, 제냐.
조수는 나가면서 습관적으로 문을 닫았다. 낡은 문이 울퉁불퉁한 바닥에 끌리며 비명 같은 소리를 냈다.
편집장은 똑바로 앉아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불쾌한 기분을 참으며 눈앞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낡은 신문들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제3군단의 체르노보그 사건에서 직무 유기……》라.
쳇…… 온통 도돌이표 같은 내용뿐이군. 《체르노보그가 폐쇄한 광산, 우르수스 오리지늄 공업에 타격》.
……《새로운 체르노보그, 폐하의 영광 아래 감염자의 행복한 생활》.
모두 터무니없는 소리네.
아니야, 죄다 내가 찾는 내용이 아니야…… 이런 엉터리 내용들은 그저 표면적인 것에 불과해.
……진실에 접근할 만한 보도가 하나도 없군.
편집장은 흘러내린 안경을 고쳐 쓰며 담뱃재를 털어내다가 불씨가 종이에 튀고 말았다.
그는 서둘러 불을 끄려 했지만, 신문에는 이미 불에 탄 구멍이 생겼다.
그 구멍 사이로 '리유니온'이라는 자그마한 글씨가 편집장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름이었다.
요 며칠 어떤 감염자들이 우리를 계속 찾아와서 리유니온에 들어오고 싶다고 했어.
그래서 우리는 한 달 뒤에 런디니움을 떠나서 고도딘 공작령으로 갈 거라고 말했거든.
그런데도 우리랑 같이 가고 싶대?
아직 동의도, 거절도 안 했어. 자기들도 모르겠나 봐.
……그 사람들을 데리고 떠날 수 있도록 준비할게. 그 사람들은 이제 갈 곳이 없잖아.
고도딘 공작령 말인데, 그 공작이 감염자의 생활 환경을 개선하라는 많은 명령을 내렸대. 지켜볼 필요가 있겠어.
명령은 현실과 다를 수 있어.
나도 물론 그 점에 대해선 잘 알아, 탈룰라. 그래서 더욱 직접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는 거야.
구석에 있던 첸이 손에 든 신문 페이지를 넘기자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가볍게 울렸다.
첸, 계속 듣고만 있고 아무 말도 안 할 거야?
그건 너희 내부의 일이잖아, 나인.
내가 의견을 낼 수 있는 사안이 아니야. 나는 그냥 신문만 보고 있었어.
네가 여러 부대원이랑 몰래 대화할 때는 그런 태도가 아니었잖아.
우리는 네 의견이 필요해, 훼이지에.
네가 우리 곁에 머물도록 내버려둔 건, 이 부대가 얼마나 다른지 증명하기 위해서만이 아니야, 첸.
네가 나와 탈룰라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멋대로 넘겨 짚지 마.
지금 같은 상황에서, 이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힘이라면 내가 마다할 이유가 없어. 그러니까 네 의견을 말해 봐.
……
너희는 갈 곳 없는 그 사람들을 받아줄 생각이야?
안 될 게 뭐가 있는데?
그들은 우리의 새로운 병력이 될 수 있어.
새로운 갈등이 생길 수도 있어.
너희가 '리유니온'이라는 이름으로 모은 이 부대에는 다양한 신분을 가진 사람들이 섞여 있어.
나인, 네가 떠날 때 나한테 약속했던 미래가 이거였어?
거기에 얘까지.
첸은 무덤덤해 보이는 탈룰라를 바라보았다.
……
너희는 조만간 더 많은 주목을 받게 될 거야.
물어봤으니까 답하는 건데, 나는 너희가 잠시 런디니움에 머물면서 재정비할 시간을 가졌으면 해……
그런 다음 더 적합한 사람한테 이 일을 맡기라고?
부정하진 않을게.
너희 부대원들을 좀 봐. 범죄자, 감염자, 전장에서 도망친 군인까지…… 그 사람들을 어디로 데려가야 할지 정말 알긴 해?
적어도 제자리에 머무르는 일은 절대 없을 거야.
무슨 일이야? 뭐가 그렇게 급해?
……나인, 레드가 방금 긴급 소식을 전해왔어. 어……
그는 곁에 있는 첸을 힐끗 바라보았다.
이 '첸'이라는 낯선 인물이 부대에 합류한 이후, 주변 동료들의 행동이 이상해졌다.
첸은 탈룰라와 나인의 곁을 거의 떠나지 않았고, 리유니온의 활동에 대해서도 아무런 의견을 제시하지 않았다.
괜찮아, 우린 같은 편이야.
……공장 근처로 공작 연합군의 부대가 접근 중이야. 쫓아낼까, 나인?
공작 연합군? 특별히 우리를 노릴 만한 이유는 없는데…… 내가 가서 확인해볼게.
탈룰라…… 모두를 데리고 숨어.
걱정 마.
너도 나인의 생각에 동의해?
……완전히 동의하진 않아. 하지만 이 부대는 내가 처음에 설원에서 함께 했던 그 부대와는 정말 달라.
안타깝게도 억압받는 이들을 대하는 방식은 이 땅 어디에서든 다 똑같아.
훼이지에, 이 사람들이 어디로 가는지 신경 쓰는 사람은 없어. 다들 우리가 마지막으로 어디에 정착하는지만 신경 쓰지. 그 후에는 쫓아낼 방법이나 궁리하고.
……
이 '리유니온'이라는 이름은 내가 저지른 잘못이나 마찬가지야……
나인이 그 잘못을 감추려는 건 아니겠지만, 만약 나인이 나한테 이 이름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라고 한다면……
나한텐 거부할 권리가 없어.
하지만 나인은 그렇게 하는 데에 전혀 거리낌이 없잖아.
나인…… 그리고 나, 우리는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어.
오히려 훼이지에, 너는 나를, 혹은 리유니온의 흔적을 쫓아 여기까지 왔잖아.
그런데 왜 진작 결심한 일을 아직도 안 하고 있는 거야?
탈룰라가 첸의 곁을 떠난 후, 한참이 지나도록 첸은 탈룰라를 뒤쫓지 않았다.
앞으로 가! 이 짐승 녀석들, 멈추지 마!
크윽…… *빅토리아 욕설*!
당장 일어나!
저 역겨운 꼴을 보니, 당장 여기서 끝장내고 싶군.
어이, 이 앞은 파라곤 부대의 세력권이야. 쓰레기를 남의 집 문 앞에 버리게?
나는 괜한 소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아. 쓰레기 처리장은 이미 준비되어 있는데, 아무 데나 버리면 안 되지.
쓰레기 처리……?
병사, 네가 언제 누구에게 명령을 받았는지는 묻지 않겠어.
하지만 여기는 네가 처형을 집행할 장소가 아니야.
아, 공장에 숨어 있던 그 감염자들인가.
다행인 줄 알아. 우리가 마족 놈들을 잡느라 여유가 없던 게 아니었다면……
공기가 순식간에 뜨거워졌고, 나인은 곁눈질로 어두컴컴한 구석을 흘끗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 어둠 속에서 불꽃이 밝아지더니, 이내 서서히 사그라졌다.
너…… 방금 피부가 좀 따끔거리지 않았어? 마치, 마치……
불에 덴 것처럼.
……해보자 이거지?
이 공장 구역은 파라곤 부대의 보호를 받고 있어.
네 상관에게 물어봐. 멍청한 부하 하나가 공장과 갈등을 일으켜서 어렵게 얻은 평화를 망치길 원하는지.
그러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분명히 알게 될 거야.
하지만 우리와 같은 전선에 있는 동료가 공동의 적에게 부적절한 동정심과 연민을 보인다면……
내 상관도 분명 다른 태도를 보일 텐데.
비켜, 감염자.
……저 사람들의 억양은 카즈델 출신의 억양이 아니야.
마족 놈들은 위장에 능해.
우린 위장한 마족 용병 놈을 하나라도 놓칠 생각이 없거든.
빨리 움직여, 이 마족 놈들아.
윽……
살카즈 압송 행렬이 서서히 앞을 지나갔다. 그러나 포로든 군인이든 모두 지치고 무감각해진 기색이었다.
나인은 떠나는 그들을 지켜보았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포로들 중, 맨 뒤에는 비틀거리며 무리를 따르는 소년들이 있었다.
빌어먹을……
바로 여깁니다. 큰불이 사흘 밤낮으로 타올라서 거의 남은 게 없죠.
감시팀 초소 외에, 불길이 광산까지도 번졌습니까?
아니요…… 하지만 거기 광부들이 혼란을 틈타 많이들 도망쳤어요. 다들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감시팀이 언제 다시 올지 모르니……
그런데 선생님께서 먼저 오셨죠. 기자라고 하셨지만 누가 알겠어요?
……그런 건 관심 없어요. 그것보다 이곳은 엄격하게 관리하기로 유명했는데, 광부들의 방화 계획이 어떻게 성공한 겁니까?
광부요?
그, 그게 아닙니다. 이 마을에 도시에서 온 귀족 나리가 있었는데, 매우 좋은 분이었죠…… 너무 착해서 문제였지만.
그분은 광부들을 걱정하면서, 모두 구해야 한다고 늘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어요. 저희는 그저 말뿐이라 여겼는데, 나중에……
진짜로 할 줄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네? 그럼 그 사람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아마 감시팀 장교들과 함께 불길 속에서 죽었을 겁니다.
음, 한 고상한 귀족이 감염자 광부들을 돕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쳤다……
꽤 괜찮은 주제가 될 것 같네.
기자는 새까맣게 타버린 땅을 바라보았다. 주변의 건물은 모두 폐허가 되었고, 한때 울창했던 숲은 타다 남은 그루터기만 남아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갑자기, 불에 탄 한 자국이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기이하면서도 약간의 미학적인 색채가 돋보였다.
이 표식은…… 누가 남겼는지 아십니까?
그건 불에 타서 생긴 자국일 뿐입니다.
그냥 자국이라면 제가 윗선에 보고할 수 없으니, 이제부터 이건 '표식'이 될 겁니다.
그래서 이 '표식'은 대체 누구의 작품일까요?
음…… 잘 모르겠습니다. 큰불이 난 후로 여기에 생겼어요.
그러니까, 이건 누군가 의도적으로 남긴 자국이고, 외부로 보내려는 일종의 '구조' 신호라는 말씀이죠?
그, 그런가요?
(웃으며) 방금 제게 그런 사실에 대해 말씀해 주셨잖아요?
다들 천천히, 줄을 서. 모두 다 받을 수 있어.
첸 씨, 우린 여기에 얼마나 더 있어야 해?
도시 밖으로 나가는 다음 팀은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지……
걱정 마, 여기는 안전해.
모두가 떠날 수 있도록 내가 여러 루트에 연락을 취해뒀어.
하지만 내가 드, 듣기로는 도시 내 살카즈를 수색하는 병사들이 이미 여기를 찾아왔다는데.
만약 너희가 살카즈를 숨겨준 사실이 들통나면……
숨겨주다니? 왜 스스로를 죄인인 것처럼 말해?
런디니움 시민이라면, 너희 역시 이 전쟁의 피해자야……
살카즈 군대가 런디니움에 들어오기도 전에, 우리는 이미 환영받지 못했어.
날 믿어, 그 부대에는 병사만 있는 게 아니야.
적어도 지금은 살카즈라는 존재 자체가 가장 흉악한 범죄야. 전쟁에 참여했든 아니든.
……나도 알아.
아무튼…… 우리를 받아줘서 고마워.
나랑 다른 사람들은 이미 결정했어. 만약 3일 안에 도시를 나갈 기회가 생기지 않는다면 우리는 스스로 떠날 거야.
병사들의 수색 범위와 강도가 전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고 심해졌어. 지금은 떠나기에 좋은 때가 아니야.
아니, 그게 바로 우리가 최대한 빨리 떠나려는 이유야. 미룰수록 상황만 더 악화될 테니까.
……너희가 떠나기로 마음을 굳혔다면 나도 최대한 도와줄게.
이해해 줘서 고마워. 나는 너희도 되도록 빨리 떠나는 게 좋다고 생각해.
저 녀석들이 도시 안에 있는 살카즈를 전부 처리하고 나면, 다음엔 누구를 표적으로 삼을 것 같아?
너희 대부분은 감염자니까 그 귀족 놈들의 생각을 잘 알겠지.
여기 오늘 자 신문입니다.
흐음…… 알료샤, 지금 읽기 귀찮은데, 뭐 새로운 소식이라도 있어?
새로운 세금 정책, 새로운 문학예술 작품, 새로운 스캔들, 그리고……
그리고 뭐?
전국 곳곳에서 폭동이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어디 봐봐.
드디어 진짜 뉴스를 보도하려는 자가 있군. 디에티 그라이퍼부르크 기자들은 평생 가십거리만 다루는 줄 알았는데.
“각지의 공장과 초소에서 감염자들이 파업을 벌였다. 일부 지역에서는 충돌이 격화되었으며, 감염자들은 초소와 현지 정부 기관을 공공연히 습격하여 심각한 피해를 끼쳤다……”
“전해진 바로는, 이 감염자들은 '리유니온'이라는 감염자 조직에 의해 고무되었다고 한다……”
오호, 이거 봐, 감염자들이 표식도 몇 개 남겼다는데……
……요양을 마치셔야 할까요?
전혀, 어렵게 얻은 휴가인데.
하지만 선전부의 동료분들께서 여러 차례 찾아오셨습니다.
알료센카, 친애하는 우리 알료센카. 우리나라는 오랜 고질병을 앓고 있고, 많은 이들이 그 병을 고치고 싶어해.
하지만 그러려면 먼저 썩어버린 상처부터 드러내야 하는 법이지.
그리고 그 상처들을 계속 포장하려 애쓰는 동료들에게 이젠 신물이 나.
그럼 제가 그분들께 뭐라고 답해야 할까요?
무슨 일이든 내 휴가가 끝난 후에 논의하자고 전해 줘.
녀석들이 또 도시에서 포로들을 잔뜩 털어냈대? 탈룰라, 여기 네 수프.
고마워.
조금 싱겁나? 에휴, 이게 소금통에서 털어낸 마지막 소금이야.
괜찮아, 간은 딱 맞아.
훗, '털어냈다'? 그 표현 마음에 들어.
일주일 전만 해도 그 사람들은 공장 앞을 지나가지 않았고, 포로에 아이들은 없었어.
하지만 지금은 우리가 본 그대로야.
최근 보름 동안 녀석들은 살카즈가 남긴 모든 흔적을 없애려고 작정한 거야.
처음엔 미처 철수 못 한 병사들 뿐이었지만, 군대와 접점이 있는 시민들, 이젠 런디니움 출신들까지 가만 두지 않고 있어.
난 네가 손을 쓸 거라고 생각했어, 훼이지에.
……그건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들 뿐이야. 여기는 빅토리아야. 더 안전하고 확실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해.
하지만 그건 시간이 더 많이 걸리잖아, 첸.
며칠 전 어떤 아이들이 가엾은 부인 하나를 괴롭히는 걸 봤어…… 살카즈와 결혼해서 아이들을 키운 사람일 뿐인데.
전쟁 전에는 감염자를 그런 식으로 대하더니, 전쟁이 끝나자마자 살카즈가 타깃이 됐어. 조만간 런디니움의 모든 시민에게 이런 분위기가 만연하게 될 거야.
부당한 대우를 받는 사람들에게 가장 부족한 건 시간이야.
나인은 잠시 말을 멈추더니 옆에 있는 탈룰라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탈룰라는 이상할 정도로 차분했다. 마치 조금 전 거리에서 나인이 병사들과 대치할 때, 온도가 삽시간에 올라간 게 한낱 환상에 불과했던 것처럼.
나는 네가 방금 그 빅토리아인들을 진짜로 공격하려는 줄 알았어.
그냥 경고였어. 계속 얽히면 더 큰 골칫거리가 생길 뿐이니까.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런디니움에서는 저자세를 유지하는 게 현명해. 이 관점에서 보면 훼이지에의 의견도 일리가 있어.
공업 단지 길거리에서 공작 연합군을 공격하는 건, 이곳에 사는 인부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아.
그래서 네가 화를 내지 않았구나.
네가 겪은 일은 나도 이미 다 겪어봤어. 하지만 적어도 살카즈의 피는 광석병처럼 여기저기 전염되진 않아.
나는 이미 분노를 통제하는 법을 배웠어. 적어도 자신들이 한 행동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는 병사들에게 내 분노를 쏟아내지는 않을 거야.
이 전쟁은 억압받던 피해자들을 억압하는 가해자로 만들었어. 이건 그들의 잘못이 아니야.
그럼 저 무고한 살카즈들은 또 누구에게 분노를 표출해야 해?
예전에 바이크를 타며 우리에게 물자를 가져다주었던 살카즈 기억나……? 근데 감염자들이 무섭다며 그를 죽였지.
지금 그 공포는 살카즈가 패배하면서 빠르게 번지고 있어.
감염자, 군인, 귀족…… 심지어 전쟁의 개념조차 모르는 평범한 사람까지. 하아, 그들은 자신이 하는 일이 옳다고 여기고 있어.
네 말이 맞아, 탈룰라. 살카즈의 피는 광석병처럼 전염될 수 없어…… 하지만 증오와 공포는 쉽게 전염되지.
그래서 결정했어?
그 살카즈를 구하겠냐고? 그건 고민할 필요도 없어. 그들은 우리와 같은 처지니까.
단지 내가 그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어. 그래서 네 도움이 필요한 거고, 탈룰라.
캠프에 있는 사람들과 그 인부들을 보호해 줘.
……내 불꽃이 그들을 위해 타오르길 바란다면, 난 주저하지 않아.
레드, 가서 그 인부들에게 우리 계획을 말해줘. 동참하고 싶은 사람은 남으라고 하고, 두려운 사람들은 떠날 수 있도록 파라곤 부대의 캠프로 데려다 줘.
알겠어.
첸.
……
너는 지금 우리를 막아도 되고, 아니면 그냥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바로 떠나도 돼.
그 살카즈들을 구한다는 건 너희들의 원래 계획을 전부 바꾼다는 뜻이야.
심지어 살카즈들을 데리고 있으면 그 어떤 공작령도 너희들을 받아주지 않을 거야, 나인.
지금이라고 우리를 받아줄까?
우리는 감염자야, 첸. 로도스 아일랜드와 너무 오랜 기간 접촉하느라 감염자의 처지에 대한 기억이 흐릿해졌나 본데.
그럼 너희는 이제 어디로 가려고?
그 말은 우리 행동을 묵인하겠다는 뜻이군.
……
아무리 포로라 해도 아무런 이유 없이 처형하면 안 돼. 게다가 공식적인 군령도 없는 상황이라면 말이지.
나인과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보다는 어디서 그들을 필요로 하는지가 문제야, 훼이지에.
우리는 우리가 진정으로 속할 수 있는 곳을 찾을 거야, 첸.
감염자뿐만 아니라…… 평등하게 살아갈 권리를 빼앗긴 자들, 노예가 된 자들 모두를 품을 수 있는 곳 말이야.
그 어떤 차별도, 억압도 없는 곳으로.
……그건 힘들어, 거의 불가능한 일이란 건 잘 알고 있잖아, 나인.
물론 알고 있어, 첸. 하지만 이건 우리 모두 알고 있는 사람이 내게 가르쳐 준 거야. 그는 비록 세상을 떠났지만, 적어도 우리에게 남긴 게 있어.
가드……
누군가는 해야 해, 훼이지에.
리유니온은 자체적으로 약물을 개발하고 있고, 모든 가능성을 동원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돕고 있어. 그리고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있지.
변화가 일어나고는 있지만, 너무 미약해.
그들에게는 믿음과 목표가 필요해. 그래야만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어.
비록 나는 나인의 방식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거부할 이유도 없어.
훼이지에, 나인은 줄곧 네가 추구하는 '공평'을 높이 평가했어.
그런데 너는 왜 나인이 추구하는 가치를 보려 하지 않지?
황제의 칙령에 언급조차 되지 않는 그 설원에서, 저항의 움직임은 더욱 거세졌습니다. 수천 명의 감염자가 하나가 되어, 몸에 채워진 족쇄를 깨부수고 자유를 되찾았습니다.
우리는 과거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일을 해냈습니다.
이름 모를 어떤 귀족이 첫 번째 불을 지핀 이후로, 많은 사람들 사이에 우리를 이끄는 자가 있냐는 소문이 퍼지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저 역시 잘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압니다. 저항을 갈망하는 우리의 목소리가 더 이상 묻히지 않고, 이 숲에 가려진 설원을 뚫고 나가려 한다는 사실을요.
모두가 궁금해하는, 불길에 타오른 그 유일한 표식이 이 사실을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통신기에서 들려오는 쉰 목소리가 평범한 시골 마을의 고요함을 깨버렸다.
사람들은 문을 열거나, 창가에 기대어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방송으로 전해진 소식에 그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고, 영하 10도가 넘는 날씨임에도 손이 뜨거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뒤이어 그들은 마을 중앙에 횃불을 밝혔다. 불빛은 그들의 눈을 비추었고, 얇은 옷으로 가려진 그들의 몸을 따뜻하게 해주었다.
곧이어 인근 마을에서도 불빛을 보고 잇따라 모닥불을 피웠다.
어둠이 뒤덮인 설원에서 수많은 불빛이 밤하늘을 밝게 비추었다.
우리는 생존이 어려운 이곳 툰드라에 모였고, 그들이 남긴 발자국을 따라 이곳에 뿌리를 내렸습니다.
여러분 모두 체르노보그에서 자취를 감추고 감염자를 위해 싸운다는 '리유니온'에 대해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들이 우리의 외침을 들은 걸까요……
그들이 돌아온 걸까요……
됐어, 뒤돌아서! 이 쓰레기 같은 놈들아.
제발…… 사, 살려주세요……
저는 여기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저, 저는 그들과 무관합니다. 제, 제발요!
닥치라고 했지!
그, 그게 아니라……
젊은이, 이놈은 네가 누구든 상관없어. 그냥 자기 앞에 있는 모든 살카즈를 죽이려 하는 것뿐이야.
닥쳐!
갑자기 이상한 향기가 퍼지며 청년의 코끝을 자극했다. 그 향기는 어머니 품에서 맡았던 향수를 떠올리게 했다.
피로 얼룩진 바닥에 수많은 꽃이 피어났고, 향기는 더욱 짙어졌다.
처형을 집행하던 병사는 갑자기 기침하더니 피 묻은 꽃망울을 줄줄이 토해냈다.
윽…… 크억……
당, 당신들은……
사람들을 데리고 여기를 벗어나. 우리 쪽 사람들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야.
이 자식들…… 안 돼…… 커헉……
나인, 오리지늄 아츠를 해제해!
저 살카즈들은 이미 구했잖아! 병사들을 죽이는 건…… 너무 지나쳐.
평소처럼 입 좀 다물고 있어줄래, 첸?
리유니온이 런디니움을 떠난 뒤, 공작의 군대에 쫓기고 싶지 않다면 더 이상 적을 만들지 마.
탈룰라가 이 모든 걸 '우연히 일어난 화재'로 만들어줄 거야.
아니, 그들은 화재의 원인을 전부 살카즈의 보복으로 돌릴 거야.
그다음에 대공작들이 겨냥하는 건 누구일까? 더 많은 무고한 살카즈들이겠지.
혹은, 수많은 살카즈를 데리고 빅토리아에서 떠도는 과격한 감염자 부대일 수도 있고.
놈들을 그냥 놔뒀다간 상황만 더 나빠질 뿐이야.
말해봐, 첸. 마지막에 우리가 공작 연합군에 맞서느라 옴짝달싹 못 하는 상황이 오면, 그땐 어떻게 그곳의 감염자와 무고한 살카즈를 지킬 거지?
으윽……
그만해! 다른 대안이 있을지도 모르잖아!
첸의 칼날이 나인의 목을 겨누었다.
……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생각하고 있었어.
물론, 지금보다 더 빨리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말이야. 첸.
저 병사들의 상관들은 대부분 내 동기들이야. 내가 만나고 올게.
무슨 신분으로? 용문근위국 전 고위 총경? 로도스 아일랜드의 오퍼레이터? 아니면…… 동기들과 만나 회포라도 풀게?
……적어도 너희와 이 살카즈들의 안전은 보장할 수 있어.
물론 그렇겠지. 나는 네가 약속을 지킬 수 있다고 믿어.
하지만 너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어, 첸.
혼자서는 결국 한계가 있어. 아무리 너라도, 네가 볼 수 없는 곳의 사람들을 지킬 순 없어.
네 능력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되려 네가 베푸는 잠깐의 호의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고 더욱 확신하게 됐어.
내가 바라는 건, 우리와 함께하길 원하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스스로 들여다봐야 한다는 거야.
그런 궤변은 나한테 안 통해, 나인.
나는 객관적인 사실을 볼 뿐이야.
'궤변'이라고?
어쩌면 우리 모두 '공평'이라는 걸 추구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너와 내가 생각하는 공평은 다른 것 같네.
첸…… 난 오래 전에 포기했어. 네가 나를 이해해 주는 것도, 내가 기대했던 것을 이해해 주는 것도.
날 체포해도 상관없어, 첸 경관.
적소는 미동조차 없었고, 나인 역시 첸에게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러나 불꽃을 뿜어내는 검 한 자루가 적소를 밀어냈다.
여기는 너희가 옛일을 노닥거리는 곳이 아니야.
뒤이어 탈룰라는 긴 검을 바닥으로 세차게 내리꽂으며, 대치하고 있는 두 사람을 떼어놓았다.
너한테 나서 달라고 한 적 없어, 탈룰라. 멋대로 굴지 마.
나인, 훼이지에의 제안도 일리는 있어.
누군가 런디니움에 있는 살카즈들을 전부 알아서 데리고 나가준다면, 대공작들은 더 기뻐할 것이고, 우리를 건드릴 가능성은 작아.
더 중요한 건, 모두가 아직 너희를 지켜보고 있다는 거야.
저 사람들이 관심 있는 건 딱 하나야. 앞으로 향할 행선지가 어디냐는 거지.
구출된 살카즈, 나인과 함께하는 리유니온 대원들 모두 겁에 질린 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나인, 저들 중 대부분은 네가 추구하는 것을 이해 못 해. 그저 살아남고 싶을 뿐이지.
그들에게는 시간이 필요해. 네가 그리는 미래를 보여주려면, 아마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거야.
나도 잘 알아.
그 구호가 우리의 실질적인 행동 강령이 될 때까지라면, 난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어.
더 많은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그렇다면 누가 희생되어야 하지?
그만해!
……
……
너희 둘 중 누가 옳고 그른지 판단하고 싶지 않아. 그럴 처지도 아니고.
하지만 지금은 저들을 데리고 떠나야 해. 우리와 함께 떠나겠다고 하는 모든 사람을 데리고.
설령 훼이지에가 빅토리아인이 우리를 괴롭히는 것을 멈출 수 있다 해도,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 해.
나한테 명령하는 거야, 탈룰라?
아니, 나는 내 의견을 말하는 거야.
근데, 어디로 갈 수 있는데?
지금 너희의 신분으로는 어디도 갈 수 없어.
난 네가 우리를 로도스 아일랜드로 데려가 주겠다고 말할 줄 알았는데.
그럴 거야, 나는 반드시 너희의 재판을 직접 지켜봐야 하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아직 수많은 감염자들에겐 너희의 보호가 필요하고, 난 그들을 외면할 수 없어.
하…… 정말이지, 아주 뻔한 대답이네, 첸 경관.
내 생각을 들어 볼래?
탈룰라가 나인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건 드문 일이었다. 게다가 그녀의 지나치게 협조적인 태도에 나인은 오히려 의심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탈룰라는 단 한 번도 대열에서 낙오된 적이 없었다.
심지어 대열의 중앙에서 늘 침묵을 일관했고, 존재조차 없을 만큼 눈에 띄지 않았다.
탈룰라, 리유니온의 리더, 카셰이의 양녀, 체르노보그 참사의 배후자.
진실을 모르는 감염자들에게 영웅으로 추앙받던 자.
그런 그녀의 검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바닥에 번진 불길은 치솟았다가 다시 떨어지며 표식을 하나 그렸다.
세 사람의 눈에는 불빛이 비쳤지만, 표정은 되려 어두워졌다. 그것은 어두웠던 과거를 상징하는 표식이었다.
온갖 죄악과 어리석음이 그 안에 깊이 감춰져 있었다. 그것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찌르는 듯한 고통을 느낄 것이다.
우르수스.
우르수스로 돌아가면 돼.
……
……그건 좋은 생각이 아니야, 탈룰라.
왜, 아직도 너의 그 미완의 대업을 마음에 두고 있나?
아니, 내가 저지른 잘못을 바로잡으러 가는 거야.
우르수스에서 온 사람들이 몇 가지 소식을 전해줬어. 툰드라에 족쇄를 부순 감염자들이 다시 모여들고 있다고 해.
그들은 리유니온의 부름을 받았다고 하면서, 감염자와 억압받는 모든 사람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와 자유를 찾을 수 있도록 나서기로 했다는 것 같아.
그들이 출처가 불분명한 거짓에 고무된 건 맞지만, 그들의 저항 의지는 진짜임이 틀림없어.
그들 때문에 네가 옛일을 다시 꺼낼 용기가 난 거야?
……그곳엔 감염자들만 있는 게 아니야. 어린 학생들, 추방된 군인과 병사들, 죄책감에 시달리는 귀족 자제들도 있어……
이건 너희들이 원했던 힘이야.
종족 간의 장벽, 신분의 차이, 질병에 대한 공포를 버리고, 단 하나의 목표를 위해 단결한 힘 말이야.
게다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떠나면 시간이 걸릴 거야…… 아무래도 가드가 남긴 귀중한 뜻을 여전히 우리를 따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알릴 때가 온 것 같아.
……리유니온이라는 이름을 다시 되찾으려는 건 아니지?
단지 놀랐을 뿐이야. 리유니온이 남긴 영향력이 이렇게까지 클 줄은 몰랐으니까.
설령 우르수스 제국이 체르노보그에서 발생했던 모든 일을 감췄다고 해도 말이지.
저항을 갈망하는 목소리는 물과 같아. 바싹 말라버려도 결국 다시 빗물이 되어 땅에 내리지.
우르수스로 돌아가는 결정은 쉽게 할 수 없어. 너무 많은 것들이 연루되어 있어서, 난 더 많은 상황에 대한 판단이 필요해.
첸, 그건 네 사정이지, 우리가 고려할 일이 아니야.
탈룰라……
아무리 리유니온이 새롭게 탄생해, 다시 그 자유와 행복을 상징하는 조직이 된다고 해도……
탈룰라…… 너의 죄는 씻을 수 없어. 너의 존재 자체가 리유니온의 가장 암담했던 과거잖아.
그런 네가, 다시 그 순백의 설원을 마주할 수 있겠어?
나는 내가 더 이상 이 무리의 리더가 아니라는 걸 알아. 난 그저 상징이자, 깃발, 아니면…… 단순한 무기에 불과할지도 모르지.
그럼에도 나는 받아들일 수 있어. 너희가 나에게 채운 족쇄를 받아들일 수 있어. 나에게는 수많은 신분이 있었어. 드라코, 귀족, 리더, 감염자…… 하지만 그런 것들은 이제 중요하진 않아.
지금 내 유일한 신분은 죄악을 퍼트린 사람일 뿐이야.
내가 우르수스에서 저지른 죄들은 부디 우르수스에서 갚을 수 있게 해줘.
갚기는 무슨…… 말이야 쉽지.
단순히 깃발로서 갚겠다는 것이 아니야.
그럼 뭔데?
진정한 불꽃에 이 몸을 던져, 그대로 불사르는 거야. 냉혹한 설원이 녹을 때까지.
……
나는 우르수스로 돌아가…… 내가 받아야 할 진정한 심판을 마주할 거야.
나인, 네가 그 과정을 지켜봐도 좋아.
리유니온의 최후와 그 시체 속에서 탄생할 새로운 걸 지켜봐. 그거야말로 네가 진정으로 원하는 거잖아.
정말 그렇게 돼도 상관없어?
내 마음속의 리유니온은 이미 그 설원에서 사라졌어…… 내 소대와 동료들과 함께 저 멀리 떠났어.
……
……
그렇다면 나도 함께하겠어.
내가 또 무고한 사람들을 해칠까 봐?
너도 너지만, 나인도 있으니까.
그간 리유니온과 함께하면서 이 조직에 변화가 생겼다는 점은 확실히 느꼈어.
하지만 그 변화가 좋을지 나쁠지는…… 아직 확실치 않아.
나는 네 심판을 놓치고 싶지 않고, 또 무턱대고 나인이 고집하는 길이 옳다고 단정 짓고 싶지도 않아.
지금의 나는 로도스 아일랜드의 오퍼레이터로서 너희를 감시할 뿐이야.
우르수스에 가서 무슨 일이 생기든, 나는 전부 로도스 아일랜드에 보고할 거야.
탈룰라, 나인, 너희 모두 내가 책임져야 할 대상이니까.
……마음대로 해.
그렇다면 지금 당장 떠나. 이 병사들은 내가 맡을게. 병사들의 안전이 보장되는 즉시 너희를 따라갈 거고.
우린 너를 기다릴 생각이 없어, 첸.
내가 너희를 찾아오기 전까지, 너희들이 날 기다렸던 적이 있었나?
쳇.
그럼, 우르수스로 가자.
……
우르수스로 가자.
칼날의 불꽃은 여전히 천천히 퍼져 나갔다.
뜨거운 불길이 벽 구석에 쌓인 시체들을 핥으며 부드럽게 감쌌다.
가벼운 탁탁거리는 소리 속에서, 탈룰라는 이 사람들이 불길을 따라 더 따뜻하고 밝은 곳으로 인도되기를 조용히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