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히지 않는 냄비 뚜껑
수송차가 마지막 운행을 앞둔 가운데, 워미는 운전기사 알라나의 차량 반납을 돕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내심 반납이 지연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이런 워미의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한 수상한 승객이 석궁을 들고 차를 강탈하여, 그리닝 밸리로 향할 것을 요구했다.
뜨거운 냄비 속에서 스튜가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소리는 정말 듣기 좋다.
아빠의 라디오에서 나는 소음도, 칼갈이 할아버지의 호객 소리도, 옆에 있는 이 동력로의 구동음도…… 모두 듣기 좋은 소리지만, 이제 들을 수 없다. 아니…… 곧 듣지 못하게 될 거라는 표현이 더 정확한 것 같다.
타오르는 불꽃이 내게 알려주고 있다. 더 기쁘고 더 즐거워야 한다고…… 마치 아빠가 기대했던 것처럼.
불이 좀 약한 것 같은데. 아무래도 화력을 조금 더 올려야겠다. 후우……
어라? 이 소리는……
라나 언니! 또 그릇을 치고 계신 거예요?
제가 그릇 치지 말라고 그렇게 얘기했는데! 다른 분들한테 폐가 되잖아요!
치면 치는 거지, 내 차 안에서도 내 맘대로 못 해? 그리고 이렇게 시끄러운 정거장에서 겨우 이 정도로 폐가 된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
그건 핑계예요.
심심해서 그래……
갑자기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요리를 이렇게나 많이 만들고 있잖아. 나는 기다리고만 있느라 뱃가죽이 등에 붙을 지경이라고!
그러니까 요리가 금방 식지 않게 소리라도 내줘야지…… 네가 오기 전까지 식지 말라고 말이야.
또 핑계를…… 정말이지, 라나 언니는 항상 말 안 듣는 어린애처럼 대충대충이라니까요.
그렇게 심심하면 주방에 와서 저 좀 도와주면 되잖아요!
그야 너는 '6성급 셰프'잖아. 우리 냄비 뚜껑, 정말 대단한걸!
냄비 뚜껑이라고 부르지 좀 마세요~
……근데 여기 이 빨간 건 뭐야?
아, 이건 토마토 치스티비스트 스튜예요!
방금 만든 거라 엄청 맛있을 거예요!
토마토 치스티비스트 스튜? 근데 색깔이 왜 이래? 원래는 더 노래야 정상이잖아……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알라나의 숟가락은 이미 뜨거운 스튜에 들어가 있었고, 곧이어 커다란 치스티비스트 고기 조각을 입에 떠넣었다.
고기가 너무 뜨거운 탓에 입안에서 이리저리 굴리긴 했지만, 그 맛을 본 알라나는 바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 오옷…… 흐읍……
진짜 맛있다! 역시 우리 수송차의 '6성급 셰프'라니까.
흐흥~
그래도 이번에 알라나 언니가 가져오신 고기가 특히 신선해서 조미료를 적게 넣었는데도 맛있게 된 것 같아요!
그래? 아무래도 채소 가게 사장님이 우리가 떠난다는 걸 알고 특별히 좋은 식자재를 주셨던 모양이네. 2년 동안이나 단골이었던 보람이 있어.
아니에요 라나 언니. 이야기를 들어보니, 사장님께선 처음부터 저흴 엄청 신경 써 주셨던 것 같아요.
제 생각엔 그 사장님은 키가 작고, 성격은 엄청 좋으면서, 더러워진 앞치마를 두르고 계실 것 같아요. 아이언 헤드 아저씨처럼요.
에이, 아니야. 그 사람은 매일 식칼을 들고 가게 입구에 서서 누가 당근 하나 함부로 못 가져가게 지키는 그런 타입이거든.
……하하, 나중에 네가 크면 혼자 돌아다닐 수 있게 해 줄게.
그러고 보니, 이 토마토 치스티비스트 스튜…… 저번에 먹었던 게 언제였더라?
저번에요?
아마 라나 언니랑 제가 처음으로 같이 밥을 먹었을 때였을 거예요.
그땐 라나 언니가 직접 요리하셨잖아요!
아, 그렇게 오래된 일도 다 기억하는구나.
당연하죠!
그때 언니가 “요리는 자신있지” 해놓고, 결국 엄~~청나게 신 토마토 치스티비스트 스튜를 만들었잖아요.
크흠, 그 토마토가 그렇게 실 줄 내가 알았나. 색깔도 노란 게, 보기엔 정말 괜찮아 보였으니까 분명 맛도 있을 줄 알았지.
언니가 그걸 맛보고 너무 셔서 부들부들 떨었던 것도 다 기억나요.
어, 어차피 배에 들어가면 다 똑같아! 맛은 그다음이야! 그리고 너도 다 먹었었잖아!
음식을 낭비해선 안 되니까요! 게다가……
아니다. 옛날얘기는 여기까지만 해요. 언니가 또 요리가 식었다면서 투정 부릴 테니까요.
냄비 뚜껑이 그릇을 살짝 쓰다듬자 스튜는 마치 방금 조리가 끝난 것처럼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피어오르는 하얀 김을 보자 알라나의 표정이 굳어졌다.
야!
함부로 오리지늄 아츠 쓰지 않기로 분명 약속했잖아?
그야……
온도를 높이기 위해선 이게 가장 빠른 방법이라……
요리를 데우려고 잠깐 사용한 거니까 괜찮아요!
……
맘대로 해, 어차피 네 몸이니까.
하지만 아이언 캐럿 시티에 도착하면, 너한테 아츠 쓰는 방법을 제대로 가르쳐 줄 수 있는 믿을 만한 선생님부터 찾을 거야.
……
뭐해? 너도 어서 먹어.
저는 구경 좀 할게요.
라나 언니는 항상 음식을 맛있게 드시니까, 저는 보고만 있어도 즐겁거든요.
냄비 뚜껑은 그릇에 흘러내린 국물을 천으로 깨끗이 닦았고, 자기 손도 닦았다.
그리고 두툼한 책 몇 권을 선반에서 꺼내 의자 위에 한 권 한 권 쌓더니 그 위에 앉았다.
냄비 뚜껑은 한쪽 팔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선, 다른 한쪽 팔로는 턱을 괸 채 실눈으로 웃으며 알라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이언 캐럿 시티에 도착하면 이 수송차는 회사에 반납해야 하니, 이 노선도 운행이 중지되겠네요.
그러게.
으음……
왜, 섭섭해?
……그런 건 아니에요.
워미는 우울한 적이 없으니까요.
그래.
그럼 이 노선이 운행 중지된 후에도, 이 차에 남아 있을 거야?
회사에 반납한 이후에도 이 차는 아마 폐기되지 않을 거야. 다만, 원래 정차하던 그 정거장으로는 다시 돌아갈 수 없게 될 뿐이지.
……
그렇다고 해도 전 슬프지 않을 거예요…… 네, 분명 슬프지 않을 거예요!
……라나 언니가 옆에 있는 한, 제가 슬플 일은 더더욱 없을 거예요!
……
알라나는 손을 내밀어 냄비 뚜껑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이에 응답이라도 하듯, 냄비 뚜껑은 귀를 움직였다.
헤헤헤……
왜 그래?
가, 간지러워요……
어린 카우투스의 반응에 알라나는 저도 몰래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다면……
늘 강하고 즐거운 우리 냄비 뚜껑아, 이따 날 대신해서 뭐 좀 사다 주면 안 될까?
네? 하지만 저는 거리에 안 나간 지 너무 오래됐는데요……
괜찮아.
전에 차 속도를 높이려고 안전밸브를 제거했었거든. 회사에서 차량을 점검할 때 들키면 안 되잖아.
그래서 지금 새로운 안전밸브가 필요해.
게다가 긴 여행에 필요한 일용품도. 원래는 동료들이 챙겨준다고 했었는데, 내가 거절했거든.
으음…… 자동차 공장에 있는 아저씨들도 언니가 떠나는 걸 알고 있나요?
응. 하지만 여긴 내가 아직 마무리해야 할 일들이 남아 있어서, 좀 이따 직접 가서 해결해야 해. 아마 밤새 못 끝낼 수도 있어.
언니가 저를 데리고 간다는 것도 알고 있나요?
으음, 아마도.
……그래서 말인데, 다른 건 전부 너한테 맡길게. 어차피 워미도 이젠 다 컸으니까.
아, 그리고 이것도 있어……
알라나는 삐뚤빼뚤한 글씨가 적혀 있는 종이를 냄비 뚜껑에게 건넸다.
차 문 쪽에 있는 저것들도 팔아. 아마 돈이 좀 될 거야.
다른 건 여기 목록에 적혀 있는 대로 사면 돼. 지갑도 가져가.
난 마지막으로 남은 일을 마무리하러 갈게.
마지막인가요……
분업, 어때?
……네, 분업해요!
……그러고 나서 메탈 크랩이 깨어나는데, '칵칵' 소리를 내더니 크레인을 조각내 버리는 거야.
게다가 콘크리트가 그 녀석 껍데기에 떨어졌는데 흠집 하나 안 났어. 다들 그걸 보곤 손에 들고 있던 삽이랑 용접기를 버리고 냅다 도망쳤지.
하하, 어때? 이 이야기는 실존 인물, 아니, 실존 메탈 크랩이랑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대. 오늘 밤 야외 영화관에선 이걸 틀 거야. 위치는 저쪽 슬래그 처리장이고.
……
에이, 고맙다는 말은 필요 없어. 낯선 얼굴인 걸 보니, 여기 온 지 얼마 안 됐지?
우리쪽 공놀이랑 카드놀이 규칙에 대해서 더 자세하게 설명해 줄게. 공장 구역마다 규칙이 다르다는 건 알고 있지?
……샌드비스트를 한 마리 사고 싶은데.
……크흠, 그래.
여기 상자에 있는 녀석들 중에서 아무거나 골라. 우리가 파는 건 전부 길들여진 녀석들이라, 잘 먹고 잘 자고, 사람도 잘 따르거든.
너 정말 그렇게나 얘기하기 싫은 거야? 예를 들면…… 오늘의 날씨라든가. 간만에 모래가 안 날리는 날씨인데. 네 일도 순조로울 테고……
비, 비켜주세요……!
머, 멈출 수 없어요오오오……!
누가 이런 꼬맹이한테 짐을 이렇게 많이 옮기게 한 거야? 이 길이 내리막인 걸 모르나……
어이, 꼬맹이. 괜찮아? 머리를 부딪혀서 바보가 됐다거나 그러진 않았고?
우으……
……괜찮아요! 전 어린이가 아니라, 괜찮을 거예요!
아, 그런데 냄비랑 그릇을 쌓아 올리느라 엄청 고생했는데, 전부 바닥에 떨어졌네요……
여자아이는 허리를 굽혀 커다란 철 냄비를 들려고 했다. 그 순간, 손 하나가 불쑥 나타났다.
두 사람은 반사적으로 손을 뺐고, 냄비 뚜껑은 긴장하며 자신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
……이 물건들은 그냥 제가 주울게요. 도와주실 필요 없어요.
그래.
그리고 방금 제 수레를 붙잡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 네가 멈춰 달라고 말한 적은 없었지만, 앞에 쓰레기차가 있었던 터라 부딪히면 좋지 않을 것 같았어.
어? ……아, 그것도 그렇네요!
죄송해요 사장님. 물건들이 사장님 가게 입구를 막아버렸네요. 금방 치울게요!
괜찮아, 꼬맹아. 천천히 치워, 급할 거 없으니까.
어라……
앗, 잠깐만요. 그러고 보니 여기가 바로 그 '얼로이 롱이어' 잡화점이었군요.
사장님, 저랑 거래 좀 해요!
거래? 하하하…… 네 가족들은 어디에 있어?
이번 일은 언니가 도와줄 필요 없어요. 언니한텐 언니가 해야 할 일이 있고, 저희 둘은 지금 분업 중이거든요.
흐음…… 그래, 그럼 잠깐만 기다려.
아가씨, 어느 샌드비스트로 할지는 정했어?
……
좀 더 볼게.
그럼 이 꼬맹이부터 먼저. 자, 뭐 사러 왔어?
잠깐만요. 일단 중고 물품부터 팔고 물건을 살게요.
사장님, 이거 좀 보세요. 이 냄비랑 그릇, 그리고 오리지늄 난로까지 전부 팔 것들이에요. 제가 물어봤는데, 이 물건들은 전부 상태도 좋고 엄청 깨끗이 닦아서 꽤 돈이 될 거라고 했어요.
크, 크흠…… 근데 저 손잡이가 검게 타버린 냄비랑 이가 빠진 포크, 낡은 철판까지…… 다 팔겠다는 거야?
이것들을 팔아서 받은 돈이랑, 지갑에 있는 이 동전을 더해서 꼭 사야 할 게 있어요. 안전밸브랑, 용접기랑, 스프레이……
하아, 그럼 이렇게 하자. 일단 네가 사고 싶은 물건을 여기 카운터에 올려놔, 할인해 줄 테니까. 그다음에 네가 산 물건의 가격만큼 중고품을 가져갈게. 나머지는 거절이야.
안 돼요. 이거 전부 다 팔아야 해요.
대신 얼린 당근 하나 쏠게.
좋아요!
오케이. 그럼, 어디 보자…… 이 난로 하나면 되니까, 나머지 쓰레기들은 도로 가져가. 됐지?
……역시, 그렇게는 안 돼요.
……정말 이상한 녀석이네. 왜 그렇게 물건을 다 파는 데 집착하는 거야? 네가 착하게 생기지만 않았으면, 네가 무슨 잘못 같은 걸 저질러 놓고 증거 인멸하려는 거라고 의심했을 거야.
게다가 솔직히 말해서, 네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함부로 너한테서 산 잡화들을 다른 사람들한테 되팔 수 있겠어? 네가 감염자면 어쩌려고?
……
저도 오후 동안 다 팔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 안 했어요! 음, 분명 언니한테도 말했는데, 언니는 믿지 않더라고요.
알았어요. 이대로 돌아가서 보고하고, 다시 다른 방법을 생각해 봐야겠어요!
……잠깐만, 꼬맹아. 누가 널 보낸 거야?
네? 라나 언니요. '황야의 알라나'.
그래그래, 내가 넌 모르지만, 그 녀석이라면 알고 있거든. 그 녀석이라면 이런 꼬맹이한테도 일을 떠넘길 법하니까.
자, 앉아. 이러면 장부를 기록할 때 더 잘 보일 거야. 돌아가서 그 녀석한테 전해, 물건은 이쪽에서 일단 받아둘 테니까 나중에 시간 나면 한턱 쏘라고.
어, 그런데 왜 갑자기 제안을 수락하세요……?
하긴, 저도 이젠 어린이가 아니니까 해야 할 일은 할 수 있다고요.
뭐야, 너랑 거래 안 해도 기분 나쁘고, 거래를 해준다는데도 기분 나빠?
네? 아니요. 전 계속 기분이 좋았는걸요.
음…… 선반에 있는 이 안전밸브는 라나 언니가 말했던 그 모델이 아니네요.
어디 보여줘 봐.
이 모델은 이미 단종되지 않았나? 우리 조합이 기준을 정한 뒤로, 매뉴얼에 이런 단종된 모델을 쓰지 말라고 얼마나 많이 말했는데.
안 돼요. 없으면 다른 곳에 가서라도 찾아야 해요! 사장님, 제 수레 좀 맡아주세요!
……하아. 다음에 알라나랑 제대로 얘기 좀 나눠 봐야겠어.
아가씨는 어때? 아직도 결정 못 했어? 아니면 다른 걸 사려는 거야?
……
하아, 정말, 미적거리기는. 렌치 이리 줘, 내가 할 테니까. 내 차는 내가 더 잘 알아.
이건 네가 날 고용해서 시킨 일이잖아. 알라나, 돈을 깎고 싶으면 그냥 말해.
내 지갑은 너처럼 홀쭉하지 않아. 나는 술도 안 마시고, 너처럼 밥 먹듯이 차 사고를 내는 것도 아니니까.
게다가 내가 하는 일이 너보다 적으면, 냄비 뚜껑한테 이게 내 솜씨라고 어떻게 자랑할 수 있겠어?
하하하, 그 녀석 말이구나……
……지금 해체하고 있는 이거, 걔가 잠자는 곳이지?
맞아.
하하하하, 진짜?! 좋아, 이번엔 내가 졌다!
우린 네가 그냥 고집쟁인 줄 알았어!
네 그 조급한 성격대로라면, 진작에 그 애를 다른 사람한테 맡겨야 하는 거 아니었나?
……
……아, 그래. 내가 잘못했으니까 그렇게 째려보지 마.
내 성격이 어때서? 쳇, 날 대체 뭐라고 생각했던 거야? 내가 걔를 거둔 건, 너희들이 나를 애 하나 돌볼 인내심도 없는 녀석이라고 놀리는 바람에 내가 열 받아서 그랬던 거잖아.
한 번만 더 사람 무시해 봐, 다음엔 아주 공을 얼굴에다 차 버릴 테니까.
예, 예. 그건 2년 동안 걔 얼굴 한번 못 보고 그냥 네 입을 통해서만 들어와서 그래.
무슨 거대한 백비스트가 캐터필러를 물어뜯었다든가, 재앙 구름 밑에서 급하게 제어 밸브를 개조해서 수송차를 가속했다든가, 간헐천에 튕겨 차로 떨어진 승객을 받았다든가…… 넌 무슨 말을 하든 다 진짜처럼 말하잖아.
그야 전부 사실이니까.
그래, 다 진짜라고 쳐. 그런데 넌 왜 계속 그 녀석을 차 안에 두고 우리랑은 만나지도 못하게 하는 건데?
……설마 걔가 스스로 차에서 안 나오고 싶어 하는 건 아니겠지?
……그럼 내일부터 이 차가 운행을 멈출 텐데, 걔는 어떡해?
……
……일단 아이언 캐럿 시티에 가서 방법을 생각해 보려고. 회사에서도 새로운 노선을 준비 안 해주지는 않을 거 아니야?
방법이라…… 잠깐만, 그 말은 우리 마을에 안 남고 아이언 캐럿 시티에 가서 새로운 노선을 받을 거라는 얘기야?
이젠 여기에 안 돌아오려고?
으음, 살 수 있는 건 이것뿐이네…… 라나 언니가 알려 준 사양이랑 조금 다르긴 하지만, 가게 주인이 적어도 장착은 할 수 있다고 했으니까 괜찮겠지?
날이 곧 어두워지겠네. 빨리 안 돌아가면 일을 오늘 안에 끝내지 못할지도 몰라.
라나 언니도…… 이제 곧 돌아오겠지?
어, 꼬마야, 안녕? 여유롭게 걷는 거 보니, 넌 급히 차를 탈 필요가 없는 모양이구나……
네? 제가 그렇게 여유로워 보이나요? 헤헤……
……잠깐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그런데, 혹시 아이언 캐럿 시티로 가는 마지막 수송차가 몇 시에 출발하는지 아니?
저녁 9시 반이에요.
확실해요. 이건 제가 제일 잘 알고 있는 노선이거든요.
아, 그래, 그렇구나. 고마워, 꼬마야.
9시 반이라…… 아직 시간은 있네……
하아, 왠지 라나 언니가 불안불안한데, 대체 왜일까……
도시 간 수송차가 출발하는 관문에 자동차 공장에 속하는 폐공방이 있었고, 그 공방의 창문으로부터 익숙한 불빛이 새 나왔다.
냄비 뚜껑은 창에 쌓인 먼지들을 닦아내고 안을 바라보았다……
출구 쪽 통로는 인부들이 드나들고, 지게차가 적재와 하역을 반복하는 '작업 스트레스'를 견디고 있었다.
모두 그 길이 마치 늙은 공장장이 20년간 닦아서 쓴 철제 도시락처럼 미끄럽다고 말한다.
인부들의 외침과 휘파람 소리 속에서 금속구…… 정확히 말하면 자투리 폐자재를 압축하여 둥글게 만든 공이 매끄러운 바닥 위에 떨어졌다.
그 공이 데굴데굴 앞으로 굴러갔다.
나이스 샷!
이야, 또 스트라이크라니…… 역시 알라나! 최고다!
어디 보자, 18점, 19점…… 20점이나 앞서고 있잖아. 이걸 어떻게 따라잡으라는 거야!
이봐, 굼벵이 찰리! 아직 점수가 너무 뒤떨어지지 않았을 때 이만 끝내는 게 어때? 우리 공장 망신시킬 일 있냐!
입 다물고 내가 하는 거 똑똑히 보기나 해, 완벽한 스트라이크가 뭔지 보여줄 테니까.
내 걱정할 시간에 너희들의 그 녹슬고 상상력도 부족한 머리로 오늘 밤에 있을 '알라나 송별회'를 어떻게 다시 세팅할지나 잘 생각해 봐……
우선 송별회 이름부터 '알라나의 러스트드레그 카운티 공장 정식 가입을 환영합니다'로 바꾸자.
진짜? 이번에 스트라이크를 못 내면 다음 기회는 없을 텐데?
입 다물고 보라 했잖아.
그는 허리를 숙여 쓰러진 핀을 일으켜 올바른 위치에 배치한 뒤 손을 바지 주머니에 쓱쓱 비볐다. 천 위에 묻은 자국으로 그의 손에 얼마나 많은 땀이 맺혀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는 공을 들고 발끝을 파울 라인에 둔 채, 전방을 바라보았다……
잠깐만.
찰리,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응?
지금은 내가 앞서고 있고, 너도 역전할 기회가 있으니까, '일시 휴전' 하자…… 지금 점수라면 우리 둘 다 받아들일 만한 결과니까.
이번엔 무승부로 해, 어때?
……
알라나, 우리는 말할 것도 없고, 림 빌리턴에 있는 모든 광산 연합을 다 뒤져봐도 그런 식으로 경기를 하는 곳은 없어.
게다가 내 기억이 맞다면, 원래 우리가 내기로 걸었던 건…… 만약 내가 이긴다면 네가 이곳에 남고, 네가 이기면 네 마음대로 하는 거였잖아.
지금 이 순간에 멋대로 무승부라니…… 설마 몸을 두 동강 내서 반은 수송차를 타고 아이언 캐럿 시티로 가고, 다른 반은 우리 공장에 남겠다는 건 아니겠지?
아니면 절반의 시간은 새로운 삶을 살고, 남은 절반의 삶은 우리와 함께하겠다는 거야?
좀 봐줘. 내가 그 새로 취임한 공장 구역 대표들이랑 같은 줄 알아?
그 녀석들은 아침엔 새로운 발전 계획을 발표하고, 오후엔 광산에서 현장감독을 좀 하다가, 밤에는 지루한 사교 모임에 출석하는 게 전부잖아.
난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한 상황이야. 수송차의 운전대를 잡는 것만으로도 벅차. 기껏해야 승객들이 말하는 기이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정도라고.
그러니까 내 제안은……
일단 아이언 캐럿 시티에서 일을 다 처리하고, 다음에 돌아올 때 다시 너희 공장에 가입하는 걸 진지하게 생각해 보겠다는 거야.
넌 애초에 돌아올 생각도 없잖아!
왜? 우리가 너랑 했던 내기 때문에 그래? 아니면 그 꼬맹이 때문에 그런 거야?
라나 언니?
……냄비 뚜껑?
왜, 왜 볼링을 치고 있는 거예요? 분명 저한텐…… 처리해야 할 일이 많다고 했잖아요?
어, 아직 내기에 승부를 내지 못했으니까, 당연히 내가 처리해야지……
(하아……)
(작은 목소리로) 라나 언니는 정말…… 게으른 치스티비스트 같아.
냄비 뚜껑은 손을 높이 들어, 강하게 알라나의 어깨를 밀쳤다.
흘러내린 소매 밑으로 불규칙하게 나 있는 검은색 결정이 드러났고, 알라나가 그녀에게 선물한 팔찌조차 그 결정이 반사하는 빛들을 완전히 막아 낼 수는 없었다.
어, 언니 친구들이 왜 다 절 쳐다보고 있는 거죠?
……쯧. 다들 그냥 신기해서 그런 거야. 자, 차로 돌아가자.
와……
어때? 4시간 전까지만 해도 여기에 불법으로 지어진 주방이 있었다는 건 아무도 모를 거야. 그렇지?
이게 바로 자동차 공장 최고 실력자의 솜씨라고. 내가 이렇게 최선을 다해 솜씨를 발휘하는 건 좀처럼 없는 일이라니까.
네, 정말 감쪽같아요……
하지만, 라나 언니는 주방을 철거한다고 한 적이 없었는데……
……그래도 정말 대단해요!
전에 그러셨잖아요? 남은 일이 너무 많아서 밤새 해도 못 끝낼 테니, 저 혼자 물건 사러 다녀와야 한다고요.
그런데 제가 일을 다 끝내고 돌아와 보니, 언니는 작업을 다 마친 것도 모자라서 아저씨들이랑 볼링도 치고, 지금은 사이다를 마시면서 잡지까지 읽고 있잖아요!
어, 하하, 그러네.
아무튼, 이제 남은 건 작은 일 3개뿐이야.
우선 스프레이로 여기 연기에 그을린 자국들을 없애야 해. 내가 어떻게 하는지 보여 줄 테니까, 남은 두 캔의 스프레이는 네가 알아서 가지고 놀아.
제가 실수로 요리를 태워 먹은 게 한두 번이 아니었네요……
다음은 예비 동력로 파이프의 안전밸브야.
아, 저 라나 언니가 말했던 그 모델은 못 찾았는데, 혹시……
내일 차량을 반납할 수 없게 되는 거 아닌가요?
걱정 마. 시장에서 그 구형 모델을 못 살 수도 있단 건, 진작에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어……
우리 수송차가 점검 수리가 필요한 이유가 말이지. 다른 부분들은 대부분 새 건데, 동력로가 너무 구식이라 그렇거든.
예전엔 신경 쓰는 사람이 없었는데, 최근엔 빅필러 자치주의 몇몇 조합에서 '규범화'를 준비하고 있잖아.
하하, '규범화'라니까 뭔가 있어 보이지? 그냥 규칙을 정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돼.
이 낡은 동력로의 몇몇 작은 결함들이 나한테 문제 될 건 없었지만, 광고에 나오는 그런 최신 설비로 바꾸는 것이 곧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라는 조합의 주장은 꽤 그럴싸하다고 생각했거든.
아무튼 그 규칙에 맞지 않아서, 우린 내일 아이언 캐럿 시티에 있는 운수회사에 가서 설비를 업그레이드하려는 거야. 이 안전밸브가 조금 안 맞는 것 정도로는 뭐라 하지 않을 거야.
이제 마지막 수송만 남았고, 우린 목적지까지 가기만 하면 돼.
혹시 예비 파이프가 필요하게 된다면…… 그땐 네 도움이 필요하겠네.
전이랑 똑같아. 너한테 동력실 상황을 살피라고 할 때, 제때 보고만 해주면 돼.
아…… 알았어요!
마지막으로……
이건 출발역에 제출할 '운행 중지 보고서'야. 이번에 발차하고 나면 우린 다시 이곳에 돌아오지 않을 거니까.
……
알라나는 잠시 냄비 뚜껑을 바라보았다.
……하아, 절차가 너무 많아서 귀찮지? 공지도 갑자기 내려오는 바람에 '두꺼운 손바닥 파커'한테 2시간 동안이나 양식 작성하는 법을 배웠다니까. 아무래도 오늘 중에 역까지 도착하지 못할 것 같네.
그래도 오늘 네가 잘 해낸 걸 봐서, 내일 아침엔 내가 일찍 방문해서 '보고서'를 제출할게. 넌 이 공구실에서 늦잠이나 푹 자고 있어!
네……
혹시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다면, 가끔은 말해도 괜찮아……
……노선이 변경된다면, 라나 언니는 이쪽에 계신 친구분들을 더는 만나기 힘들어지겠죠?
응?
그러니까 내일은 제가 '보고서'를 제출할게요!
그럼 언니는 친구들이랑 조금 더 얘기를 나눌 수 있잖아요. 갑자기 헤어져서 속상할 일도 없고요!
지금은 주방이 없지만, 새로운 집이 생기면 언니가 좋아하는 달콤한 미트 스튜를 매일매일 만들어 드릴게요……
하하, 그거 좋지.
……아야! 또 등을 치다니! 힘이 너무 세잖아요!
너도 성장하고 있으니까, 크다 보면 익숙해질 거야.
자, 받아!
오늘 밤엔 나와 함께 사이다를 마시는 걸 허락할게. 그리고 평소보다 1시간 더 늦게 자도 괜찮아.
하암…… 졸려.
그래도 난 길을 잃지 않아! 어린애도 아니고, 지도 같은 걸 못 볼 리 없잖아!
음음, 여기를 돌아서, 정면의 계단을 오르면……
……어라, 어제 그 사람이 아직도 저기 앉아 있네. 혹시 차를 못 탄 건가?
앉아 있던 자리도 안 변했고, 자세랑 우울한 표정까지 어제랑 똑같은 것 같은데. 우와, 대단하다……
아, 너구나, 꼬마야…… 조, 좋은 아침…… 마침 잘 왔어.
음, 오늘 아이언 캐럿 시티로 가는 첫 수송차가 몇 시에 출발하는지 아니?
6시 20분이요.
제가 바로 그 차의……
아니, 저, 저도 그 차를 탈 거거든요!
빠듯하지만 시간에 맞출 수 있을 것 같네……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그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예요!
아아아아아니야!
……미안, 배, 배려는 고맙지만…… 그, 그게, 난 좀 더 여기에 있고 싶어.
……혹시 누굴 기다리고 계신가요?
나? 아니, 난…… 으음, 왜 그렇게 생각했어?
가자, 워미. 오늘은 우선 집에 돌아가자. 더 기다리지 말고.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도 어쩔 수 없지.
왜냐하면……
누군가를 기다리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요.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기다리는 분을 만날 수 있길 바랄게요!
아니, 그, 무서워서 마주치기도 싫은데……
……하아, 카우투스 꼬마가 참 빨리도 달리는구나…… 그래도, 으음, 고맙기는 하네.
다음 분, 자료를 가지고 사무실에 들어가시면 됩니다.
(까치발을 하고) 사무실 문은 대체 얼마나 멀리 있는 걸까, 여기 줄에서는 보이지도 않네……
어쩌지, 차가 곧 출발할 텐데. 이대로는 서류를 제때 제출하지 못하겠는걸.
이른 아침인데도 사람이 이렇게 많다니, 이런 걸 불행이라고 하나. 아무리 어른이라도 운이 나쁘면 어쩔 수 없는 거겠지.
하아, 그러네. 사람이 너무 많아. 조합에서 이벤트를 좀 더 공식적으로 보여주고 싶다는 건 좋지만, 그렇다고 보디빌딩 대회 신청이랑 행정업무를 같은 창구에서 처리할 필요까진 없잖아?
이래서야 온 가족이 줄 서서 할머니 방에 호소하러 갔던 거랑 똑같잖아!
그나마 내가 일을 처리하러 와서 다행이지, 박사나 아미야가 여기 왔으면 더 골치 아팠을 거야.
하아, 아미야. 아미야라…… 아미야는 이제 겨우 열 몇 살인데, 대체 누가 그 아이 어깨에 그 무거운 책임을 짊어지게 한 걸까?
참, 꼬마 아가씨. 방금 시간 없다고 그랬지? 이렇게 가녀린데, 보디빌딩 대회에 참가하러 온 건 아닐 거 아냐?
네? 아, 아니에요. 전 '운행 중지 보고서'를 제출하러 온 거예요. 보세요!
오늘 안에 제출하지 못하면, 이 차는 운행을 중지할 수 없게 되겠죠……
아, 그런 거라면 그냥 나한테 맡겨!
네……?
하지만 운행을 중지하는 건 저희 차인데…… 혹시 라나 언니를 아세요?
아니.
그런데, 네가 운전기사야?
음, 아니에요……
그러니까, 어차피 상관없잖아. 그건 곧 이 '운행 중지 보고서'를 누가 내든 똑같다는 의미일 테니까.
어차피 난 여기서 줄을 서야 하니, 겸사겸사 네 자료를 책상에 올려두면 되는 거지. 그러니 넌 안심하고 차에 돌아가!
……어머, 왜 그렇게 우울한 표정을 하고 있어? 무슨 걱정이라도 있는 거야?
아, 그게…… 아니지, 그럴 순 없어.
그럼…… 여기, '보고서'예요.
부탁할게요. 착한 언니!
(이 아이, 건강 상태가……)
……꼬마 아가씨, 이거 받아.
음…… 카드인가요?
명함이야, 네 가족한테 주면 돼. 언젠가 도움이 될지도 몰라.
빨리, 빨리 타! 좀 있으면 승객들이 올 거야!
후우, 후우…… 가요!
미안하지만, 이번 운행 동안은 공구실에 숨어 있어야 해.
괜찮아요. 그러고 보니 처음부터 쭉 이 안에서 지냈잖아요!
그리고, 이 단말기는 차량 내부의 감시 카메라를 볼 수 있어. 차에 탑승하는 모든 사람을…… 더 얘기 안 해도 알겠지?
네.
좋아, 그럼 난 운전석으로 갈게.
……
짧은 시간이었지만, 워미는 정말 많은 일을 해냈어.
분명 어려운 일도 많았고, 라나 언니조차 제시간에 맞추지 못할 수도 있다고 했었는데…… 결국은 차량을 점검 가능한 상태로 만들었고, 절차도 무사히 마쳤어.
아, 계속 정거장에 앉아 있던 그 사람도 무사히 탑승했네. 다행이다…… 참, 차량 번호를 몰랐던 사람도 도와줬었지.
수송차 문이 닫혔습니다. 이제 곧 출발합니다. 승객 여러분께서는 신속히 자리에 앉거나 적절한 공간에서 자신의 접이식 의자 혹은 걸상, 매트를 잘 고정하시고……
……이번에 활약이 엄청났으니까, 기뻐하고 조금은 자랑해도 괜찮겠어!
하지만, 하지만……
내가 진짜로 바랐던 건……
무슨 일이 일어나도 좋으니까, 이 수송차가 도착하는 시간을 어떻게든 늦출 수 있었으면 좋겠어……!
난…… 난 아직……
이 수송차는 탈취되었다. 지금부터 이 차량의 목적지는 그리닝 밸리다.
……어?
냄비 뚜껑은 운전석의 감시 카메라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방송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어제 자신이 만났던 그 이상한 여성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알라나가 평소에 쓰던 방송 마이크는 현재 그 여자의 손에 들려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다른 한 손에 든 석궁으로 알라나의 머리를 겨냥하고 있었다.
각도를 바꾸는 감시 카메라의 미세한 움직임을 포착했는지, 그녀는 상당히 침착하게 카메라 너머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냄비 뚜껑에게 눈길을 주었다.
그리닝 밸리로 가길 원하지 않는 승객은 전부 이곳에서 내려도 좋다. 운전기사도 포함이다.
…………어라? 정말로 차를 강탈하려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