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숙명

홀로 오른 추운 산

미니 스토리브릿지2023-08-22

광석병 말기의 한 다큐멘터리 감독이 생명의 마지막 시간 동안 카메라를 들고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으로 향한다.

등장 오퍼레이터: 윈드차임스, 멀베리, 클릭


감염 일기:

오늘 병원에 다녀왔다. 덕분에 마음속 커다란 돌덩이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설마 내 몸 안에 진짜 '돌덩이'가 있을 줄이야.

어렸을 때부터 나는 병원 단골이었다. 하지만 의사의 최종 판결을 듣고 나서 오히려 나는 현실감이 들지 않았다.

“생명의 의미란 무엇일까?” 수많은 영화와 책에서 다뤘던 이 질문은 사실 내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나는 단지 마지막으로 남은 시간 동안 진정한 의미로서의 나만의 작품을 완성하고 싶다.

나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눈앞에 보이는 환경이나 TV 속에 그려진 땅만을 보고 있는 게 아닐까?

우리는 눈부신 고층빌딩이나, 네온사인으로 휘황찬란한 밤에 익숙해져 있지만, 정작 그 모든 것을 포용하고 있는 방대한 이동도시를 간과하고 있다. 실은 그 이동도시마저도 이 땅의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지만.

하물며 사람은 또 얼마나 하찮은 존재일까.

그래서 나는 내 마지막 작품을 다큐멘터리로 남기고 싶다.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나 최대한 먼 곳까지 가서 한 번도 보지 못한 풍경을 보고 싶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는 구석진 곳에는 어떤 사람이 살고 또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알고 싶다.

그렇다고 해도, 혼자서 다큐멘터리를 찍는다는 건 꽤 힘들 것이다…… 게다가 그 먼 곳까지 가야 하니 챙겨야 할 장비만 해도 감당하지 못할 것 같다.

하아, 그런 쓸데없는 걱정을 하면 뭐하나? 가다가 도중에 갑자기 광석병이 발작해 내 목숨과 작품이 그대로 끝날지도 모르는데.

차라리 이 작품의 제목을 뭐로 하면 좋을지나 생각하는 게 더 낫겠다.


전달자

편지는 총 337통, 소포는 25개네요. 다시 한번 확인해 볼래요?

우체국 직원

수량은 맞는데…… 그 많은 걸 혼자 옮길 수 있겠어?

전달자

이정도야 뭐, 매번 비슷했으니까요.

전달자

이번에는 대략 2주 정도 걸리겠네요. 중간에 서쪽에 있는 마을에도 가야 해서요. 긴급하게 보낼 물건이 있나 봐요.

우체국 직원

매년 봄이 되면 더 바빠지는 거 같네. 고생이 많아.

전달자

고생은 무슨,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

우체국 직원

저기…… 그리고……

전달자

네? 편하게 말해요.

우체국 직원

봄이 와서 가족에게 줄 옷 몇 벌이랑 영양제를 조금 샀거든. 혹시 일정이 좀 여유로우면……

전달자

됐어요, 난 또 뭐라고. 얼른 줘요.

우체국 직원

고마워, 전달자 누님!

전달자

또 누님이라고 하네. 나보다 나이도 많으면서……

우체국 직원

영차~~

전달자

이게…… 옷이랑 영양제 조금이라고요?

우체국 직원

그래서 부탁하기 좀 그렇다고 했잖아……

우체국 직원

정 힘들면……

전달자

아니에요, 위에 올려요. 이렇게 많은 물건도 다 담았는데 그 정도도 못 담겠어요?

우체국 직원

고마워!

우체국 직원

맞다, 우리 부모님을 만나면 안부 좀 전해줘. 내년 설에는 꼭 돌아간다고.

전달자

네, 기억할게요.

전달자

그럼 출발합니다.


안녕하세요, 잠깐 실례 좀 해도 될까요……?

전달자

엥, 저 말인가요?

네!

갑자기 말 걸어서 죄송하지만…… 혹시 당신은 이곳 전달자신가요?

전달자

이쪽 산간 지대의 편지와 화물은 모두 제가 맡고 있으니까……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전달자

그런데 누구신지……?

안녕하세요, 제 소개를 하겠습니다. 저는 영화감독인데…… 이쪽 산간 지대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어요.

혹시 당신을 따라가도 괜찮겠습니까? 가능하다면 당신을 촬영하는 것도 허락해 주시면 좋겠습니다만……

전달자

……

아…… 저는 수상한 사람이 아닙니다!

앞마을에서 여기까지 오는 길에 신분증을 잃어버려서, 신분을 증명할 만한 건 없지만……

보세요! 가방에는 진짜 촬영 장비밖에 없어요……

전달자

다큐멘터리라고 하셨죠?

네…… 다큐멘터리라는 건……

전달자

다큐멘터리가 뭔지 알아요…… 그런데 왜 저를 찾아왔나요?

여기 산속 깊은 곳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을 찍고 싶은데 이쪽 지리를 잘 몰라서요…… 전달자라면 아무래도……

전달자

이해했어요.

잠시만 동행을 허락해 주시면 됩니다. 일에는 절대 방해되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할게요!

출연료는 드릴 순 없지만, 원하시면 엔딩 크레딧 맨 첫 줄에 당신의 이름을 올릴게요……

전달자

그건 딱히 상관없는데……

전달자

뭐…… 알겠어요……

전달자

뭘 찍으려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전달자

일정에 지장만 없다면……


부모님과 가장 친한 친구 몇 명에게 간단한 작별 편지를 남겼다. 말주변도 없고 시간도 없어서 말없이 떠난 걸 용서해 줬으면 좋겠다.

부모님은 항상 나를 안전한 공간에서 보호하려고 했다. 두 사람의 고생은 나도 이해하지만, 내겐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부모님과 친구들이 이 작품을 보고 이번 원정의 의미를 이해하길 바란다.

내 두 발이 인공 땅이 아닌 진정한 땅을 밟았을 때, 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흥분과 희열을 느꼈다.

짧은 몇 달 동안의 경험이 내 지난 십여 년 인생에서 겪은 것보다 훨씬 값지다.

나는 마침내 맑고 깨끗한 밤하늘을 보게 됐고, 재앙이 휩쓸고 간 땅도 보게 되었다. 나는 황야에서 분주하게 일하는 치도 공사팀을 만났고, 동분서주하는 재앙정보전달자도 만났다.

난 황량하고 인적이 없는 사막과 얼어붙어 고요해진 강을 지났고, 평화롭고 활기찬 마을도 지났다. 섣달그믐날 밤, 마을 사람들은 나를 초대했고 그들이 직접 빚은 곡주도 한 잔 마셨다.

솔직히 말해서, 난 경박한 스토리에 관객들의 환심을 살 만한 장면을 끼워 넣는 것에 진작 넌더리가 났다. 어느 정도 흥행하고, 웃음이나 눈물을 대충 자아내고 나면 사람들에게 완전히 잊히니까.

작품이란 건 한번 본 후 바로 잊어버리는 일회용 소모품이 되어서는 안 된다. 보존할 가치와 짊어져야 할 무게가 있어야 한다.

허구의 이야기 속에 최대한 '진정성' 있는 인물을 만들어 내느니,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가장 솔직한 모습을 기록하는 게 훨씬 낫지 않나?

바로 지금처럼. 카메라가 기록하는 모든 화면이 전부 의미 있는 것처럼.

아득한 저편이나 수많은 사람을 난 모두 만나보고 싶다.

시간이 별로 없지만 난 내가 진정으로 '살아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이런 진실한 느낌 때문에 나는 다가올 마지막 순간이 더 두려워졌다.


감독의 메모:

하늘은 아직 어둑어둑하고 별빛과 아침 햇살이 엇갈리는 때부터 전달자는 묵직한 짐을 짊어지고 바쁘게 하루 일정을 시작한다.

이렇게 외진 산간 지대는 화물이나 편지, 심지어 소식을 전하는 것도 다 사람의 힘이 필요하다.

홀로 깊은 산속을 걸으며 수많은 어려움을 마주해야 한다. 여기 있는 전달자처럼 매일 십수 리의 산길을……

전달자

수십 리예요.

전달자

십수 리면 여기 산 하나도 못 넘는데, 어떻게 편지를 전하겠어요?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 기억했네요. 이 부분 내레이션은 나중에 다시 녹음할게요……

전달자

그런데…… 계속 걸을 수 있겠어요? 아니면 당신 가방도 저한테 주세요.

아…… 아닙니다……

전…… 괜찮아요……

전달자

그런데 오늘 오전부터 지금까지 마을 한 곳밖에 배달이 안 됐어요. 평소 속도에 비하면 상당히 늦어졌는데요……

정말 죄송합니다! 열심히 따라가겠습니다……

전달자

됐어요, 무리하지 말아요.

전달자

평소에도 별로 운동하지 않는 것 같은데, 야외에서 쓰러지면 큰일 나니까 일단 여기서 좀 쉬었다 가죠.

전달자

자, 물 좀 마셔요.

전달자

이 붕대를 발목 관절에 감아요. 아니면 내일 다리를 꿈쩍도 못 할 테니까.

고…… 고맙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일에 방해되지 않게 하겠다고 했는데.

전달자

하핫…… 애초부터 안 믿었어요. 허여멀쑥해 보이는 도시인이 산길에서 제 걸음을 따라올 리가 없으니까요.

전달자

근데 궁금하긴 하네요. 카메라로 한참 동안 찍던데 대체 뭘 찍은 거예요?

그게…… 길에서 봤던 풍경이나 사람을……

전달자

저도 영화를 좀 보긴 했어요. 거긴 화려한 장면에 예쁘고 잘생긴 배우들만 나오던데……

전달자

여긴 민둥민둥한 산밖에 없는데 찍을 게 있나요?

그럼요!

'진정성'이 있어야 '아름다움'을 논할 수 있으니까요. 그럴듯하게 꾸민 아름다운 화면은 어디까지나 기만에 지나지 않아요……

사람들이 모르는 풍경과 지나간 세월 속에 사라진 것들을 더 많은 사람이 보도록 기록하는 것 자체가 아주 의미 있는 일이거든요!

전달자

흠……

마침 쉬고 있는 참에 당신을 인터뷰해도 될까요?

전달자

인터…… 뷰요?

질문 몇 가지만 할게요. 대답하기 싫으면 안 하셔도 됩니다.

전달자

별로 상관없긴 한데…… 인터뷰라면 카메라를 보고 말해야 하는 거였죠……

전달자님은 줄곧 이 산간 지대에서 살았습니까?

전달자

줄곧은 아니고, 학교 다닐 때는 몇 년 동안 떠나 있었죠. 졸업 후에 다시 돌아왔어요.

당신의 관점에서 이곳을 소개해 줄 수 있나요?

전달자

별로 소개할 만한 게 없는데……

전달자

당신이 본 것처럼 지극히 평범한 산간 지대예요. 비교적 외진 곳이고 인구도 많지 않아요. 평소에 외지 사람이 오는 일도 거의 없고요……

전달자

제가 기억이 있을 때부터 쭉, 여긴 별로 달라지지 않았어요. 최근에 가장 신기한 일이라면 아무래도 치도가 생긴 거겠네요.

여기 사는 분들은 어떻게 생계를 유지하나요?

전달자

상당한 흉작만 아니면 수확한 작물로 기본적인 생활은 가능해요. 여분의 수확물은 시내에 가서 생활용품으로 바꾸기도 하고요.

전달자

여기가 건조하긴 해도 기후 조건은 일부 과일을 재배하기 딱 좋거든요.

전달자

예전에 제가 마을에서 난 과일을 도시에 가져다 팔며 장사를 한 적이 있었지만……

전달자

음, 아무래도 운반 비용이 너무 비싸서 결국 흐지부지됐죠.

지금까지 지나온 마을은 다 사는 사람도 별로 없고 텅 빈 것 같던데요.

전달자

그렇죠. 사실 몇 년 전부터 사람들이 점점 이동도시로 옮겨 살기 시작했어요. 젊은 사람들이 먼저 떠나고 그다음에는 아이와 노인이 떠났죠.

전달자

여긴 아무런 변화도 없지만, 이동도시는 확장 속도가 엄청 빠르잖아요. 아무래도 도시에는 일자리도 많으니 젊은 사람들이 더 가고 싶어 하겠죠.

전달자

그러다 재작년이 되자 우리 고향에는 나만 남게 됐어요.

다들 이동도시로 옮겼나요? 그럼 당신은 왜 여기 남았나요?

전달자

어쩔 수 없죠. 감염됐으니까요.

......

전달자

도시에 못 가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돌이켜보면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은 여기 산길을 안내하는 것뿐이더라고요.

전달자

낯선 곳에 가서 새롭게 살길을 찾느니 내가 할 수 있고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게 낫죠……

전달자

게다가 제가 여기를 떠나면 편지는 누가 전하겠어요?

이런 생활이 힘들지 않나요?

너무 불공평하다고 원망한 적은 없나요?

전달자

힘들어요?

전달자

세상에 힘들지 않은 일도 있나요? 본인이 가장 잘하고 익숙한 일을 하는 게 그나마 편하긴 하지만.

전달자

원망이니, 공평이니 하는 건…… 하아, 어차피 큰 이치는 누구 하나 제대로 말할 수도 없는데, 착실하게 자기 할 일을 하는 게 더 낫죠.

전달자

그런데 당신, 도시 밖에서 사는 사람들을 너무 비참하게 생각하는 거 아닌가요?

전달자

이곳 생활이 평범하고 단조롭기는 해도 다른 사람이 동정할 정도는 아니거든요.

전달자

자신의 노력을 대가로 착실하게 사는 게 뭐가 나쁘다고.

네네, 그건 그렇죠……

하지만,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이곳의 낙후한 환경은 변할 수 없지 않나요?

전달자

변해요?

전달자

여기 환경은 매일 변하고 있는데요?

전달자

오늘 지은 집은 어제 지은 것보다 더 튼튼할 테고, 내일의 농작물은 오늘보다 더 자라 있을 테고요.

물론, 그런 변화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더 거시적이고 구조적인 변화 말이에요……

저는 사람은 태어난 환경에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어디서 태어났든 자원이나 기회는 모두 평등하게 누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전달자

이치는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그 이치를 실행할 수 있게 하려면 실질적인 행동부터 시작해야겠죠.

전달자

아아, 그만. 얘기가 점점 더 산으로 가버리네.

그럼, 이 주제가 싫으면 본인에 대해 얘기해 주세요!

전달자

저요? 그것도 별로 할 얘기가 없는데……

전달자로서 아쉬웠던 점이나 바라는 점, 또는 가장 잊을 수 없었던 일이라든가?

전달자

잊을 수 없는 일이라……

전달자

……카메라 끄면 얘기해 줄게요.

네, 알겠어요!

전달자

사실 한 번은 아주 급히 물건을 전하느라 밤새 산길을 달린 적이 있거든요.

전달자

그때 비가 내려서 산길 양쪽의 진흙이 물렁물렁해진 상태였고, 산 위에서 돌도 꽤 많이 굴러떨어졌죠……

그럼 혹시 그때 감염이……

전달자

그건 아니고요……

전달자

꽤 큰 돌이 화물 위로 떨어지게 생긴 거예요. 그때 저도 급한 마음에 무슨 생각인지 뿔로 그 돌을 들이받아 버렸죠……

전달자

그래서…… 왼쪽 뿔이 부러진 거예요……

풉……

전달자

지금 웃었어요?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그만……

전달자

됐어요, 웃고 싶으면 웃어요. 아까처럼 굳은 표정으로 있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전달자

제가 생각해도 너무 웃겨요. 그래서 그 부러진 뿔을 늘 갖고 다니면서 앞으로 비 오는 날 밤은 길을 재촉하지 말자고 다짐했죠……

전달자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의사를 찾아가서 붙여달라고 할까 생각도 하고 있어요……

전달자

사실 혼자 편지를 전하면서 멍청한 짓도 많이 했어요. 재미있는 일도 많았고요……

전달자

다만 평소에 혼자 다니니까 다른 사람에게 얘기할 기회가 없었죠……

지금 그 기회가 왔네요. 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얘기해 보세요.

……그리고 사실 당신이 편지를 전할 때 꼭 '혼자'가 아닐 수도 있잖아요.

“당신은 어떠한 마음으로 자신의 일생을 돌이켜 볼 것 같나요?”

길에서 나는 수많은 사람에게 이러한 질문을 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거의 다 비슷했다.

사람이 일생 동안 겪는 우여곡절은 수도 없이 많지만, 모두 몇 마디로 요약할 수 있는 것 같다.

그 전달자가 내게 담담한 말투로 산촌의 환경이나 잊힌 고향, 본인의 감염에 관해 얘기할 때…… 마치 식후 산책하면서 들은 견문을 말하는 것처럼 담담했다.

하지만 난 여전히 상상할 수 없다. 간결하고 차분한 말 뒤에 숨어있는 고생과 슬픔, 그리고 본인조차 깨닫지 못할 정도의 무력감은 또 얼마나 많을까.

그렇다. '현실'이라는 거대한 괴물 앞에서 우리는 모두 무력하다.

그러고 보니, 나라면 그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나는 아직도 얼마나 많은 것을 이 카메라에 담을 수 있을까, 또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아직, 뭘 더 남길 수 있을까?


전달자

오늘 밤은 이 숲에서…… 야영해야 하겠네요.

편지를 전하다 보면 밤에는 이렇게 쉴 수밖에 없나요?

전달자

보통은 마을에서 밤을 보내요. 해가 지기 전에 마을에 도착하지 못하면 대충 이렇게 보내는 거죠.

전달자

당신도 운이 참 나쁘군요. 처음 산길을 걷는데 야영으로 하룻밤을 보내야 하니.

전달자

그래도 지금까지 버틴 게 더 대단해요. 진작 포기할 줄 알았는데.

하하…… 사실 예전이라면 진짜 포기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은 꼭 계속 해야 하는 이유가 있어서요……

전달자 일은 확실히 제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고생스럽네요.

전달자

뭐, 아무리 험한 길이라도 몇 년 동안 오가다 보면 다 익숙해져요.

전달자

당신한테 이런 경험은 한 번이면 충분하겠지만.

그래도 저는 떠나면 그만이지만, 여전히 수많은 사람은 세상과 거의 단절된 곳에 갇혀 있는 거잖아요……

어쩌면 사람들이 더는 이런 생활을 하지 않아도 될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전달자

이런…… 생활이요?

네, 더 많은 사람에게 이곳 상황을 알리면 여기도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전달자

잘은 모르겠지만, 당신은 왜 자꾸 이곳을 변화시키려고 하는 거죠?

전달자

마치 당신이 몇 마디만 툭 내뱉으면 뭐라도 바꿀 수 있는 것처럼……

저 혼자만의 힘으로는 당연히 한계가 있죠. 제가 할 수 있는 건 더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도록 호소하는 게 다예요.

만약 낙후된 이곳 상황을 변화시킬 가능성이 있다면, 모두가 노력할 만한 가치가 있으니까 당연히……

전달자

그만 해요.

저는……

전달자

대체 무슨 마음으로 그 다큐멘터리라는 걸 찍으러 온 건지 도통 이해가 안 되네요……

전달자

당신은 여기 사람들의 생활을 이해하고 싶다면서 대체 뭘 이해했다는 건가요?

전달자

당신은 여기 사람이 어떻게 경작하고, 어떤 절기에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몰라요. 황야에 우물을 어떻게 파는지도 모르고, 심지어 농작물의 가격도 모르잖아요.

전달자

당신은 아무것도 몰라요.

확실히 저는 아는 게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저도 두 눈으로 이곳의 현재 상황을 봐왔습니다.

당신도 변화를 주고 싶다고 말했잖아요?

전달자

맞아요. 확실히 이곳은 가난하고 낙후됐으며 도시의 풍족함과는 거리가 멀어요.

전달자

설령 그렇다고 해도, 여기 남은 사람들은 본인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어요.

전달자

당신은 여기 사람들을 진심으로 이해해 본 적도 없으면서, 대체 무슨 근거로 거들먹거리며 우리 삶을 평가한다는 거예요? 대체 무슨 근거로 '변화' 같은 소리를 하냐고요?

저는……

전달자

말끝마다 '관심'이라고 했지만, 솔직히 그건 우월감에 찌든 동정에 불과하잖아요.

전달자

아무래도 길 안내 같은 건 더 이상 필요 없겠네요. 그 다큐멘터리인지 뭔지도 더는 찍고 싶지 않아요. 그럼.

죄송해요, 그런 뜻이 아니었어요!

저기, 잠시만요……

전달자

더 이상 따라오지 말아요!


클릭

윈드차임스 언니, 최선을 다해서 수리하긴 했지만…… 안에 데이터는 그대로 있는지 모르겠네?

윈드차임스

……응, 고마워요.

클릭

이 카메라는 작년 최신 모델이야. 가격이 자그마치 내 반년 월급은 될 텐데. 예전에 계속 고민했는데 차마 못 질렀거든.

클릭

근데 어쩌다 카메라가 이 지경이 된 거야? 주인이 너무 막 다룬 거 아니야?

윈드차임스

그, 그런 건 아니고……

클릭

그래서, 뭐가 찍혀있어?

윈드차임스

경치 같은 게…… 조금……

멀베리

윈드차임스 씨, 신체검사 결과가 나왔어요.

윈드차임스

고마워.

멀베리

앗, 지금 볼 거면 자리를 비켜줄게요……

윈드차임스

이 정도면 나쁘진 않네요. 너무 호들갑 떨길래 나까지 괜히 긴장했는데.

멀베리

제가 전문 의사는 아니지만, 그래도 수치가 그리 낙관적인 건 아니니까……

멀베리

앞으로 전달자 일을 할 땐 방호 조치를 단단히 하셔야 해요.

윈드차임스

네, 고마워요.

윈드차임스

그리고 로도스 아일랜드라는 곳을 알려 줘서 너무 고마웠어요…… 전에 그 마을에 관한 일도 그렇고.

윈드차임스

여러 가지로 정말 도움이 됐어요.

멀베리

저는 그저 단순한 자연재해인 줄 알았는데…… 설마 배후에 그런 일이 있을 줄이야……

멀베리

다만 아쉬운 건, 제가 조금 더 일찍 도착했더라면, 어쩌면……

윈드차임스

그런 말 하지 말아요. 그렇게 후회해도 아무 의미 없으니까요.

윈드차임스

이런 일 앞에선 누구나 무력해질 수밖에 없죠.

윈드차임스

멀베리 씨…… 그 산사태로 죽은 사람 말인데……

멀베리

죄송합니다…… '춘건' 본부에 연락해서 최근 보고된 실종자 기록과 대조해 봤지만, 조건에 부합하는 사람은 없었어요.

윈드차임스

그렇군요……

멀베리

아직은 단서가 너무 적어요. 이름도 모르고 신분을 증명할 만한 것도 없고, 심지어 어디서 왔는지도 몰라서……

멀베리

참, 카메라에 있는 영상에서 더 많은 정보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단서가 더 있다면……

윈드차임스

그 사람도…… 감염자예요……

윈드차임스

그거 말고는……

멀베리

하지만……

윈드차임스

괜찮아요, 제가 계속 찾아볼게요.

윈드차임스

분명 여행 도중에 뭐라도 단서를 남겼을 거예요……

그렇다. 그렇게 먼 길을 걸었고, 그렇게 많은 사람을 만났는데 당신 같은 사람이 아무것도 안 남겼을 리가 없지 않은가?

당신이 봐온 수많은 산과 강, 그 아름다운 경치 어딘가에 분명 당신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을까?

멀베리

맞다, 윈드차임스 씨, 저 조만간 모선 마을에 한 번 더 다녀와야 해요.

멀베리

산사태 방호 공사의 재건 작업이 막 끝난 것 같은데, 다시 가서 확인해 봐야 해서요……

윈드차임스

잘됐어요, 같이 가죠.


소란스러운 사람들

어이! 내 거는 없어? 내 편지?

소란스러운 사람들

밀지 마, 밀지 말라니까! 내 편지를 봤단 말이야!

전달자

편지는 도망가지 않으니까 다들 진정하세요. 줄 서서 한 명씩 받아 가세요……

전달자

왕 씨 아저씨, 울지 마세요. 편지가 왔잖아요. 편지가 온 건 좋은 소식이라는 뜻이에요!

전달자

장 씨 아주머니, 아들이 대학에 붙었다는 좋은 소식이죠? 입꼬리가 귀에 걸리셨네요, 축하드려요.

......

이런 표정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다.

전달자를 둘러싼 사람들이 얇은 종잇장에 담긴 소식을, 산 밖에 있는 자신이 걱정하는 사람의 소식을 눈이 빠지게 기다린다.

모두의 얼굴에는 가장 진심 어린 기대와 가장 진지한 감정이 가득 차 있다. 그 열정적인 마음이 렌즈를 넘어 내게도 전해진다.

그들이 많은 걸 기대하는 건 아니지만, 그들의 감정에는 전혀 부족함이 없다.

인생이란 어쩌면 사람마다 큰 차이가 없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파란만장한 삶이라도 간단하게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생로병사, 희로애락, 이합집산.

전달자

어, 뭘 찍고 있는 거예요?


두 달 만에 다시 찾은 마을은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농한기인데도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분주하다. 마을 공터에는 우물이 늘어난 듯했고, 사람들은 논두렁에 모여 새로 설치한 관개 시설을 연구하고 있었다.

물방울이 그녀의 볼에 떨어졌다. 고개를 들어 보니 마을 어귀 오래된 회화나무에 드문드문 꽃이 피어 있었고, 초여름의 따뜻한 바람에 살랑거려 마치 지나가는 사람에게 고개를 흔드는 것 같았다.

그녀는 별안간 누군가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한밤중에 길을 갈 때 하늘의 별이나 길가 바위 뒤에 숨은 꽃을 보는 걸 잊지는 않으셨나요?”

윈드차임스는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명랑한 아이

준비됐어? 스위치 누른다!

망설이는 아이

그거 폭발 안 하는 거 확실해?

명랑한 아이

셋…… 둘……

명랑한 아이

봐! 움직였다!

윈드차임스

소평, 소안? 이건 뭐야?

명랑한 아이

트랙터! 책에서 배운 건데, 폐기된 치도 건설용 도구로 만들었어!

망설이는 아이

야, 떠벌리지 말라니까. 어른들이 알면 우리 또 혼난다고!

윈드차임스

너희끼리 트랙터를 만들어서 뭐 하려고?

명랑한 아이

용문에 갈 거야!

명랑한 아이

우린 예전부터 대도시에 가 보고 싶었어.

명랑한 아이

거기 엄청 큰 쇼핑몰이랑 영화관이 있대. 족장님 댁 정원만 한 큰 피아노도 있고!

망설이는 아이

용문이 아무리 좋아도 무슨 소용이야? 어차피 우리는 돌아와야 하는데……

망설이는 아이

요즘 마을에 일이 많잖아. 우물을 파고 수로를 만들어야 하고, 이산묘도 다시 지어야 하고……

망설이는 아이

족장님이 떠나신 뒤로 마을에 일이 많아서 다들 어쩔 줄 모르고 있어……

명랑한 아이

그건 일도 아니야. 멀리 내다볼 줄 알아야지. 우리가 좀 더 크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잖아?

명랑한 아이

전달자 누나는 도시에 가봤잖아, 내 말이 맞지?

윈드차임스

가본 적이 없는 곳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는 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

윈드차임스

맞다, 내가 사진 찍어 줄까?

윈드차임스

사진은 갖고 다닐 수 있으니까, 나중에 여기 없더라도 고향의 모습을 기억할 수 있거든.

명랑한 아이

좋아! 우리 둘이 곧 강호로 나가는 기념으로!

명랑한 아이

이리 와, 소안. 트랙터 위에 앉아서 사진 찍자.

윈드차임스

자, 카메라 보고 웃어 봐.

윈드차임스

셋…… 둘……

당신의 마지막 소원이 이번 여정을 끝내고 다큐멘터리를 완성하는 것이었다면, 저는 당신이 그 소원을 이룰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게요.

그리고 당신이 이런 걸 촬영하는 의미를 이제야 깨달은 것 같아요. 익숙한 곳에도 지금까지 미처 보지 못한 풍경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잊힌 마을처럼, 떠나간 사람들처럼, 그들도 언젠가는 조용히 사라지겠지만, 그들이 존재했던 흔적을 남길 방법이 있으니까요.

제게 수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또 제 이야기도 많이 들어준 당신에게 진심으로 고마워요.

그리고 미안해요. 당신을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는데.


인터뷰 상대와 싸우고 헤어지다니, 또 예상 밖의 어려움이다. 하지만 남겨진 여정을 난 계속 해야 한다.

그 다툼으로 나도 많이 반성했다. 책 속의 이론만으로 삶의 모든 것을 이해하기엔 너무 부족했던 것 같다. '고난'에 대한 나의 이해는 너무나도 어설펐다.

인생은 시작과 끝이 정해진 여정이다. 그저 비틀거리며 더듬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가는 길은 각자 다르지만, 모두가 그리워하는 풍경 때문에 '운명'이라는 홍수에 찢기기도 하고, '현실'이라는 거대한 존재에 저항하기도 한다.

그러한 항쟁이 바로 '고난'의 근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존경할 만한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내 처지가 그저 운이 나빴을 뿐, '불행'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한다. 이 점을 깨닫고 나니 도리어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그렇다면 최선을 다해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맞다, 만약 그 전달자님을 다시 만나면 꼭 그녀에게 사과해야겠다.

아니다, 차라리 지금 말해둘까.

존경하는 전달자님, 안녕하세요.

수중에 종이와 펜이 없어서 이렇게 '사과 편지'를 남길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을 불쾌하게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사실 해명을 좀 하고 싶은데요. 저는 결코 거들먹거린 적이 없습니다. 그저 최선을 다해 '무언가'를 이루고 싶었을 뿐입니다…… 당신처럼.

저는 당신을 정말 존경합니다. 당신의 그 인내와 용기를 정말 존경합니다.

전 아직 당신처럼 '진정한 삶'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 덕분에 '진정한 삶'에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실례를 범해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미숙한 자신의 인식이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언젠가 이 불성실한 사과 편지가 당신의 손에 전해지길 바랍니다.

촬영자……

???

으앗!

기분이 나쁜 소년

야! 앞 똑바로 보고 걸어!


신기해하는 소년

네 말은 눈에 보이는 모든 걸 이 기계에 담을 수 있다고? 영원히?

네, 촬영한 화면은 계속 남아있죠.

신기해하는 소년

그럼 나도 담아줄 수 있어?

가능은 합니다만……

뭐, 하고 싶은 말은 없나요?

의기양양한 소년

음…… 이 몸은 방돌쇠야! 최고의 협객을 목표로 하는 남자다!

의기양양한 소년

내 이름 기억해. 머지않아 다른 데서 반드시 듣게 될 테니까.

네, 꼭 기억할게요.

의기양양한 소년

앗, 이만 가야겠다. 뒤에서 무서운 놈이 쫓아오고 있거든……

의기양양한 소년

먼저 간다! 안녕!

그래요.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