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프릴의 노래
임무에서 복귀한 에이프릴은, 때마침 전달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안셀을 만나게 된다. 호기심 많은 그녀는 안셀에게 다가가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그 과정에서 과거 생각지도 못한 일들에 대해 알게 되었다.
후, 오늘 임무 뛰느라 땀으로 흠뻑 젖었네.
빨리 숙소 가서 샤워해야겠다.
어라? 저건……
됐다, 편지와 금액도 확인 완료.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하하, 걱정 마세요. 이미 단골 손님인걸요. 사실 안셀 씨 가족들도 이젠 날 알아볼 정도에요.
그런데 안셀 씨도 집에 안 돌아간지 꽤 됐죠? 한번 다녀와 보는 건 어때요? 큰아버님이 날 보면 분명 "안셀은 림 빌리턴에 언제 오냐"며 또 뭐라 하실 텐데.
일 년 내내 집 밖에만 있으면서 뭐라 할 자격은 없지만, 편지 몇 통보단 역시 직접 가보는게 더 좋겠죠.
저도 알아요…… 하지만 아직 절 필요로 하는 환자가 있는걸요.
나중에 한가해지면, 그때 돌아갈게요.
그래요, 이쪽 방면으론 충분히 잘 하실 테니, 여기까지만 하죠.
그럼, 난 확인할 우편물이 마저 남아서 먼저 가볼게요.
특산품은 늘 사던 걸로 사면 되죠?
네. 우리집 아래에 있는 가게에서 파는 박하사탕도 한 박스 같이 부탁할게요.
네, 같이 접수할게요.
큰아버지, 죄송해요……
……
헤에~ 로도스 아일랜드에도 전달자가 있었구나.
당신은……
코드네임 에이프릴, 새로 온 오퍼레이터야. 그냥 에이프릴이라고 불러줘.
안녕하세요 에이프릴. 의료부의 안셀이라고 합니다.
로도스 아일랜드에는 꽤 많은 전달자가 있어요. 그리고 아까 그 분같은 전달자는 우리 오퍼레이터는 아니고, 로도스 아일랜드 사람들만 전담하는 전달자세요.
뭔가 차이가 있는 거야?
그럼요, 우리 오퍼레이터가 되기로 결정한 분들 중에서도 전달자가 있는데요, 아, 혹시, 안젤리나 씨를 아시나요?
응. 나랑 비슷한 나이 또래의 전달자 여자아이 말하는 거지?
네. 로도스 아일랜드에 들어온 전달자들 대부분은, 광석병에 걸리는 바람에, 오퍼레이터가 되어 근무하는 방법으로 치료 비용을 청산해요. 안젤리나 씨도 이와 같은 경우죠.
그래? 나도 그런데.
광석병의 치료 비용은 싼 편이 아니니까요. 함내의 각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은 다들 비슷한 이유로 이곳에 남아있어요.
그럼 이곳의 전달자가 되는 거랑 다를 게 없잖아?
하하, 그렇게 오해하기 쉽긴 하지만, 사실 그렇진 않아요.
전달자라는 직업은 사람과의 직접적인 접촉이 꽤 적은데다가, 혼자서도 곳곳을 돌아다닐 수 있기 때문에 감염자가 되어도 계속 일할 수 있거든요.
아마 대부분은 편지를 전달해 준 사람이 감염자라는 것도 모를걸요……
아무튼, 이분들은 평소에는 원래 살던 곳에서 일을 하시다가, 정기적으로 로도스 아일랜드를 방문해 치료만 받으시면 되는 거죠.
어라, 그럼 본인의 일을 하는 거랑 똑같은거 아냐?
그렇죠. 우리는 평상시에도 전달자 오퍼레이터에게 장기 외근같은 임무를 내어주거든요.
게다가 그 분들은 대부분 로도스 아일랜드를 자신들의 정류장이라고 생각해요. 만약 우리 오퍼레이터 중에 그 분들 활동 범위내에 살고 있는 가족이나 친구가 있다면, 분명 그 분들께 부탁하게 될 테니까요.
하지만 저처럼 정기적으로 가족에게 편지를 보내야 하는 경우엔, 마냥 그 분들을 기다리기는 어려워요.
뭐 실제로도, 요즘 로도스 아일랜드에는 림 빌리턴에서 오는 전달자가 드물기도 하고요.
그렇구나. 그래도 별다른 제약 같은 건 없는 것 같은데…… 내가 전에 있던 회사에서는 이런 건 꿈도 못 꿨었지.
이런 거, 라뇨?
자유롭게 일하는 것 말이야. 이런 식이라면 한 번만 오고 나서 다시 안 오는 사람도 있을 것 같아서.
예리하시네요. 확실히 간혹 그런 상황이 발생하기도 해요. 그런 경우엔 당연히 책임을 물을 거지만, 그래도 어찌 됐었든 간에 환자를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으니까요.
닥터 안셀은 정말 좋은 사람이구나.
그렇게 띄워주지 않으셔도 돼요. 전 그저 하나라도 돕고 싶어서 그러는 것 뿐이니…
말을 들어보니, 로도스 아일랜드엔 확실히 전속 전달자가 필요하긴 하겠다.
이런 일은 생각도 못 해봤는데.
참, 에이프릴도 림 빌리턴 출신이죠?
응, 남쪽의 아이언 로봇 시티 출신이야.
아, 들어본 적 있어요. 매년 광석 생산량 상위권을 차지하는 도시잖아요.
맞아, 우리 도시의 자랑이지. 나는 딱히 별 감흥 없지만.
전 아이언 피스트 시티 출신이에요. 고향에 연락해야 하는 가족은 없나요?
없어.
우리 부모님은 내가 어렸을 때 광산에서 사고로 돌아가셨거든. 그렇게 되고 나선 부모님이 근무하시던 회사에서 나를 키워줬지.
성인이 되고 나선 그 회사의 헌터가 되었어. 급여가 높진 않았지만, 그래도 나쁜 편은 아니었지. 광석병에 감염되기 전까지는 말이야……
죄송해요, 제가 괜한 말을……
괜찮아.
그래도 제 기억에 림 빌리턴에 있는 회사들은, 감염자에 대한 대우가 그렇게 나쁘진 않았던 것 같은데… 아닌가요?
림 빌리턴은 광업이 발달해서, 원래 그곳 사람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광석병과 접촉할 확률이 높다보니 그렇게 됐다고……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막상 겪어보니까 그렇지만도 않더라고.
여러가지 복지가 있다고 말만 번지르르하게 해놓고는 몰래 월급 떼어먹는 일은 일상다반사에, 광석병에 걸린 게 알려지기라도 하면 일자리 찾기도 점점 힘들어지고 그래.
나처럼 혼자 사는 광석병 환자는, 그런 곳에선 못 살겠더라고.
그런 일이…… 몰랐어요.
어쩐지 전에 광석병에 걸린 직원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아무리 알아봐도 알 수 없더라니……
어쨌든, 난 벌써 퇴사하고 방도 빼버렸어. 림 빌리턴은 이미 내가 있을 곳이 아니야.
아이 참, 그런 표정 짓지 말라고! 나는 동정받는 거 싫으니까.
게다가 난 지금 이렇게 로도스 아일랜드에 와있잖아?
그러게요.
그건 그렇고, 아까 편지 보낼 때 표정이 별로던데, 무슨 일 있어?
아, 말하기 힘든 거면 얘기하지 않아도 돼. 나도 다른 사람들한테 불편한 얘긴 안 하니까.
……
에이프릴 씨, 점심은 드셨나요?
아니, 아직. 방금 임무 끝내고 돌아오는 길인걸. 샤워만 하고 다시 나가려고.
그럼 제가 점심 살게요. 얘기하자면 조금 길거든요.
응? 좋지.
와, 의사라서 그런지 되게 건강하게 먹는구나…
직업병인가봐요. 그리고 그냥 안셀이라고 부르세요, 나이도 비슷해 보이는데…
그래~
일단 다 먹고 나서 천천히 얘기하죠.
응.
말로는 항상 가족을 만나지 못해서 아쉽다고 하지만…… 사실 전, 그다지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왜?
돌아가면 정말 번거로운 일들이 생기거든요.
저한텐 형 셋에 여동생이 하나있는데,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셨어요. 어머니는 폐질환으로, 아버지는 과로로 돌아가셨죠.
에이프릴 씨랑은 달리,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적어도 세 형들은 이미 다 나가서 일을 할 수 있을 만큼 자랐었죠.
하지만 전 아직 어려서,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전 큰아버지에게, 여동생은 삼촌에게 맡겨졌어요.
확실히 그런 일은 흔치 않지. 우리집도 친척이 있었다면 아마 그랬을 거야.
우리 아빠는 나한테 우리집 친척들은 모두 다른 도시로 갔다고 그랬던 거 같은데.
그래서? 큰아버지가 못되게 굴어서 돌아가기 싫은 거야?
아뇨. 큰아버지는 작은 회사를 경영하시는데, 꽤 엄격하고 진지하신 분이지만, 그래도 저한테는 엄청 잘해주세요. 진짜 아들처럼 대해주시죠.
단지……
큰아버지는, 제가 의사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어요.
그래…
저는 어렸을 때부터 큰아버지의 회사에서 일을 도와드렸어요. 원래 큰아버지는 제가 그 자리를 물려받기를 원하셨죠.
하지만 전, 큰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의사가 되는 것을 선택했어요. 하물며 여기, 로도스 아일랜드같이 먼 곳으로 와버렸으니…
엥? 설마 너, 가출한 거야?
하하, 그 정도까지는 아니에요.
의학을 배우기로 결심한 전, 로도스 아일랜드로 오기 전까지 어느정도 시간이 걸렸어요.
그 기간 동안 큰아버지와 몇 번이고 이야기를 나눴고, 말다툼도 꽤 있었죠.
……결국 큰아버지는 제 선택에 동의해 주셨어요.
알 것 같아. 아무래도 림 빌리턴에서 의사로 사는 건 엄청 고된 일이니까.
그렇죠. 본격적으로 일에 착수하기도 어렵고, 열심히 노력해도 실력을 늘리기 어려우니까요.
게다가 채광 지역에 배치된 대부분의 의사들은 가장 기초적인 의술밖에 몰랐어요.
그래서 저도 의사가 되면 큰아버지네 회사에서 일할 때만큼 생활이 안정적이진 않을 거라고, 일자리도 찾기 힘들 거라고 생각했고요.
사실 저도 큰아버지가 정해준 대로 따르려고 생각했던 적이 많았어요. 솔직히 말하면, 큰아버지네 회사는 꽤 괜찮았거든요.
게다가, 절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신 큰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도 많이 죄송했고요.
그거야 그렇지만, 누구나 하고 싶은 일이 있는 건 당연한 거잖아?
너네 큰아버지 대단하시네! 우리 부모님이 만약 아직 살아계셨다면, 아마 허락하지 않았을걸?
네… 어쨌든 전 마지막까지 제 뜻을 굽히지 않았어요.
하지만 큰아버지는 원래 속마음을 잘 감추지 못하시는 분이라, 회사에 반평생을 바치신 만큼, 역시나 늘 제가 돌아와서 사업을 이어받기를 원하셔요.
예전에 두 번 정도 다녀왔었는데, 아무래도 조금 난감하더라고요.
더군다나, 사실 제 형들도 반대하고 있어요. 제가 돈을 보내주고 있으니까 그나마 저한테 뭐라 안 하는 거죠.
제 여동생은 그래도 절 응원해 주는 편이지만요.
뭔가, 나랑은 좀 거리가 있는 이야기 같네.
세상에 고민 없는 사람이 어디있겠어요.
그래도 전, 제가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어요. 로도스 아일랜드에서도 좋은 대우를 받고 있고요.
하지만 이런 일은…… 어떻게 해야할 지 잘 모르겠어요.
어떻게든 큰아버지의 마음을 달래 드릴 수 없는 것 같아요.
그저 제가 맡은 일을 더 열심히 하고, 더 잘해낼 수 있도록 노력하는 수밖에요.
언젠간 가슴 펴고 당당히, "큰아버지, 제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살렸어요. 광석병을 없애는 데 많은 공헌을 했다고요"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때쯤이면, 저도 큰아버지 앞에 당당히 설 수 있을 정도의 기세는 갖출 수 있겠죠.
겉보기엔 나약해 보였는데, 의외로 속이 깊네?
칭찬하는 건가요? 아니면 놀리는 건가요?
당연히 칭찬이지.
하하, 고마워요.
그러니까, 안셀 너는 사실 그래도 돌아가고 싶은 거지?
……네.
로도스 아일랜드를 따라 이곳저곳을 다니며 견문을 넓히는 것도 좋지만, 어쨌든 그곳이 제 고향이라는 사실은 변함없으니까요.
전 그 커다란 굴뚝, 떠들석하게 돌아가는 기계 소리, 광부들의 고함소리, 시끌벅적한 거리가 여전히 그리운걸요……
언젠가는, 저도 로도스 아일랜드를 떠나서 고향으로 돌아가 그곳의 의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죠.
그렇구나……
왜요?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말로는 내가 림 빌리턴을 신경쓰지 않는다고 해도, 사실은 나도 돌아가고 싶은 게 아닐까 싶어서.
안셀, 내 코드네임의 뜻을 알아?
4월 아닌가요?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해. 사실 한 노래의 제목이거든. 봄에 관련된 노래의 제목이야.
난 내가 줄곧 림 빌리턴을 싫어하는 줄 알았어. 네가 얘기했던 것들, 나는 다 싫어하거든.
내 기억속 고향은 숨도 못 쉴 정도로 희뿌옇고 새까만 모양이었어.
광석병에 감염되기 전의 삶도 순탄하진 않았거든.
매일 같이 회사에 출근하고, 임무가 있으면 팀원들과 함께 외근을 나갔었지.
돈벌이는 되지만, 조건이 너무 열악했어. 게다가 한 번 나가면 거의 십몇 일을, 어쩔 때는 심지어 1~2개월을 나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지.
그리고 임무가 없을 때는, 나도 특별히 하고 싶은 게 없었어.
좋아하는 밴드는 모두 타국에 있고, 갖고 싶은 화장품은 잡지에서만 볼 수 있었으니까.
게다가 공장이 많아서 공기가 안 좋다 보니, 늘 피부관리용 화장품에 신경을 많이 써야 했지.
공장과 길거리의 소음이 너무 커서 새벽엔 늘 잠을 설쳤고 말이야.
아파트 시설도 최악이었어. 어쩔 때는 샤워하는 도중에 갑자기 물이 끊기기도 하고 그랬다니까! 너무하지 않아?
윽… 그건 확실히 별로였겠어요……
그래도, 잘~ 생각해보면, 좋았던 일들도 기억나.
회사는 악덕 기업이었지만, 그래도 나를 여러 해 동안 보살펴 줬으니까, 윗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했는진 잘 모르겠지만 말이야. 내가 이 사건에 대해 문의하러 갔을 때 그 사람들 표정 관리 안 되던 모습은 기억나.
이웃들은 그래도 날 많이 챙겨줬어. 윗집 사시던 페로 할아버지도 평소엔 그렇게 무섭게 대하더니, 내가 광석병에 걸린 걸 아시고 나선 가끔 반찬을 보내주셨거든.
근데 밑층 살던 롤로 할머니는 진짜 별로였어. 글쎄 나를 볼 때마다 침을 막 뱉더라니까?
건물 아래 마트에는 매번 파는 음식이 바뀌는데, 그게 또 얼마나 맛있던지! 아, 그러고 보니 거기에서 팔던 완자는 다른 곳에서 파는 걸 본 적이 없네? 정말 맛있었는데…
어렸을 때는 부모님이랑 같이 사는 것도 참 즐거웠던 거 같아…
아, 알았다! 이런 걸 바로 추억 보정이라 하는구나!
하하하,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우린 결국, 자신의 출신을 잊을 수 없는 게 아닐까요.
로도스 아일랜드에 오고 나서 이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알게 되었고, 더욱 근사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었어요.
전 다른 삶을 살아보려고도 했어요. 예를 들면, 가드 오퍼레이터나 캐스터 오퍼레이터나, 사무직 같이 완전히 다른 포지션도요.
제가 원한다면, 새로운 삶을 선택할 수 있겠죠. 반대할 사람도 없으니까요.
그래도 결국은, 계속 의사로 살아갈 것 같아요.
제가 림 빌리턴에서 태어났고 인부들 사이에서 자랐다는 사실은, 어느 날 갑자기 기억이라도 잃지 않는 이상은 완전히 부정할 수 없는 제 과거니까요.
기억 상실이라, 그러고 보니 박사도 기억을 잃었다 그러지 않았던가?
아, 네. 딱히 비밀로 하고 있진 않아요.
그럼 안셀 말대로라면, 박사는 새로운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거네?
그건 아마…… 어렵지 않을까요.
전 박사님의 과거를 잘 모르지만, 아미야도 켈시 선생님도, 그리고 많은 분들이 박사님에 대해 알고 있잖아요.
아마 박사님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박사님 같은 경우는 기억을 잃었다고 해도 자신의 과거에서 벗어나긴 힘들지 않을까 싶어요.
음, 대화 주제가 조금 바뀐 것 같은데? 고향 얘기에서 과거 얘기로 넘어가버렸네.
그래도 고향이란 원래 한 사람의 과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잖아.
그렇죠. 제 생각엔 엄밀히 말하자면 중요한 건 고향이 아니라, 고향에서 보냈던 시간이 우리에게 남긴 흔적들이라고 생각해요.
전 그 흔적들을 지워버릴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에이프릴 씨는 어떤가요?
나는……
음……
잘 모르겠네. 더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
괜찮아요, 우리는 아직 젊으니까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할 시간은 충분하죠.
그래도 난 적어도 그런 생활에서 도망치려고 림 빌리턴을 떠나기로 결정한 건 아닌걸.
만약 아직 그곳에서 살 수 있다면, 난 계속 그곳에서 살려고 했을 거야. 난 어쩔 수 없이 떠나온 거지.
감염자가 되었다는 이유로 엄청 고생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사람들과 림 빌리턴을 미워할 순 없지 않겠어?
그렇죠, 한 사람이 감염자로 변해버렸다고 해서 그 사람이 가진 생각까지도 갑자기 바뀌는 건 아니니까요.
이 점에 대해서는, 앞으로 로도스 아일랜드에서 오랫동안 생활하다 보면 더 깊이 있게 고민해볼 수 있을 거예요. 지금은, 고향 이야기와 과거 이야기만으로 충분할 거 같아요.
음, 결국은, 내 생각에, 나도 사실 받아들이는 쪽이지 않을까 싶어.
림 빌리턴이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아이언 로봇 시티는 좋아해.
고민이 많을 때마다 매번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갔던 그 기억을, 난 아마 영원히 잊지 못할 거야.
내가 살던 아파트는 그렇게 높지 않고, 주변에 더 높은 건물들이 많이 있었어.
어쩔 때는 주변의 높은 건물들이 울타리 같이 나를 가두는 것 같아서, 내 머리 위의 하늘만이 내가 볼 수 있는 풍경이라고 생각했지.
그런데 그걸 보니 마음이 안정되더라고. 왜냐하면, 나는 넓은 공간이 필요했던 것이 아니었으니까. 선택지가 많은 거 보다, 오히려 그렇게 협소한 느낌이 좋았던 거지.
거기선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둘러볼 수 있고, 어쩔 때는 재밌는 일도 있었어. 사실 이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지만.
그리고 옥상 한 가운데에 누워서 헤드폰을 귀에 꽃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 《에이프릴》을 틀어놓는 거야. 그렇게 이런 일 저런 일 생각하면서 달콤하게 한숨 자는거지.
그렇게 한숨 자고 일어나면 고민들은 거의 다 연기처럼 사라졌었어.
그거 정말 기분 좋겠는데요.
그럼~ 지금도 가끔, 그런 곳을 찾아서 한숨 자고 싶어질 때가 있어. 로도스 아일랜드의 갑판은 너무 탁 트여있어서 찾기 힘들 것 같긴 하지만…
그럼 크루스라는 오퍼레이터를 찾아가 보세요. 게으름 피우는 거라면 따라올 사람이 없을 정도니까요.
정말? 잘 됐다! 나중에 가서 물어봐야지!
그래도 이렇게 말하니까, 확실히 조금 돌아가고 싶어진 것 같네.
흥, 다 너 때문이야.
하하, 죄송하게 됐네요…
그래도 지금은 됐어. 난 아직 신입이니까… 오자마자 휴가가겠다 그러면 보기 안 좋을 거 아냐.
아! 생각났다!
안셀, 네가 편지를 부탁했던 그 전달자, 벌써 떠났나?
아직 안 갔을걸요, 아마 내일까지 머무를 거예요.
다행이다! 그럼 그 사람 찾으러 가야겠어!
전달자 씨! 림 빌리턴에 가려는 거지?
네. 보낼 게 따로 있으신가요? 카우투스 아가씨.
에이프릴이라고 불러줘. 편지는 아니고, 부탁 한 가지 해도 괜찮을까?
어떤 거죠?
림 빌리턴에 가게 되면, 높~은 건물 옥상으로 올라간 다음, 거기서 보이는 풍경을 찍어서 가져와 줄 수 있을까?
네? 꽤나 특이한 부탁이네요.
그렇게 귀찮아 보이지는 않으니…… 가능할 거 같네요.
잘 됐다! 그럼 부탁할게!
고향, 과거라……나, 의외로 꽤 신경쓰고 있었구나.
아, 일단은 크루스라는 사람을 찾아가야겠어. 역시 돌아가는 것 보단, 편안한 곳을 찾는 게 더 현실적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