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2굵기 차이
함께 이동하며 박사에게 이 일대의 상황을 설명하는 토미미. 한편, 가비알은 꼬리에 관한 논쟁에 관심을 갖게 되는데……
이 정글은 여전하네.
가비알 씨도 아주 오랜만에 와보는 거죠?
난 줄곧 여길 좋아하지 않았어. 공기는 축축하고 땅은 질퍽거리고. 강한 느낌이라곤 조금도 없다니까.
하지만 지금은 많은 부족들이 정글로 이사 왔어요.
그래? ……아, 박사, 일어났구나. 어젯밤엔 잘 잤어?
- 그럭저럭.
- ……
- 정신이 아주 맑아졌어.
적응력이 꽤 좋은 걸, 박사. 이런 환경에서의 노숙은 못 견딜 줄 알았는데.
하하, 네 눈빛만 봐도 알겠다.
네가 계속 관자놀이만 문지르고 있지 않았다면 아마 믿었을 거야.
내가 미리 말했잖아, 박사. 마음의 준비 단단히 해두라고. 앞으로도 계속 이런 환경만 펼쳐질 거야.
자, 여기서 찾을 수 있는 재료로 정신 차리게 해주는 수프를 만들었으니까, 좀 마셔봐.
아, 그러고 보니 예전엔 몰랐는데, 방금 주변을 돌아다니다 보니까, 이 일대에 약용식물이 꽤 많더라고.
……가비알 씨가 사람들을 보살피고 있다니.
가, 가비알 씨, 저도 잠을 설쳤어요……
뭐어? 아다크리스가 되어 가지고 잠을 설치면 안 되지.
아다크리스라니…… 흐흑…… 가비알 씨는 우리의 원래 이름도 잊어버리셨군요…
어? 아, 깜빡했네. 티아카우라고 해야 맞지.
이곳을 떠난 후로 '티아카우'라는 말을 써본 지도 오래됐어. 박사, 너도 기억해 둬. 우리 고향에서는 종족으로 자신을 구분하지 않아.
종족으로 구분한다면, 어디 보자, 난 아다크리스고… 주마마 그 녀석은 피디아… 그리고 리베리… 음, 대충 이렇게 세 종족이 있거든?
하지만 여기서는 우리 모두 자칭 '티아카우'라고 불러. '용감하고 잘 싸우는 사람'이라는 뜻이지.
그리고, 아마 네가 쓸 일은 없을 것 같지만, 우린 여기를 '아카후알라'라고 불러. 이쪽 말로 '숲이 무성한 땅'이라는 뜻이야.
자, 훌쩍거리지 말고 네 부하들 다 불러와. 이제 출발해야지.
흐흑……
로도스 아일랜드 제약회사…… 박사……
아, 맞다, 회사의 뜻은 그러니까……
아, 알아요. 가비알 씨가 떠난 뒤로 저도 외부 정보를 알아봤거든요!
오? 그러고 보니, 확실히 옷 차림새가 전이랑 좀 달라졌는데?
네, 이건 밖에서 굉장히 핫한 스타일이구요!
난 패션은 잘 몰라서. 박사, 정말 그래?
- 잡지에서 본 적 있어.
- ……
- 모르겠는데.
역시 박사님도 본 적 있으시군요!
가비알 씨, 친구분께선 패션을 잘 모르시는 것 같네요.
하하, 박사도 모를 때가 있구나.
아참, 토미미. 일단 박사한테 우리 고향 소개 좀 시켜줘. 난 오랫동안 떠나 있어서 뭐가 어떻게 변했는지 잘 모르겠으니까.
네!
으음… 외부인에게 소개를 한다면…… 아, 일단은 부족 소개부터 시작해야겠네요.
이 지도를 봐주세요. 여긴 가비알 씨가 도착한 곳이고, 여긴 우리가 지나온 길이에요.
이 거대한 숲으로 덮인 구역이 바로 아카후알라예요.
아카후알라에 거주하는 크고 작은 부족들은 전통에 따라 일정 기간마다 제전을 열어 대족장을 선출하죠.
아, 제전의 방식은 싸움이에요. 모든 도전자를 이겨서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면 지금의 대족장에게 도전할 권리를 얻게 되죠.
지금의 대족장과 싸워서 이기면 새로운 대족장이 될 수 있어요.
대족장이 되면… 모든 부족이 대족장의 말을 따르게 되는 권력을 얻게 되죠!
딱히 달라진 건 없네.
달라진 것도 있어요.
이전의 후안 대족장님은 술을 너무 좋아해서 부인에게 쫓기다가 절벽에서 뛰어내리곤 두 번 다시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원래대로라면 지난번 제전 때 다음 대족장을 선출해야 했지만……
그런데 가비알 씨 때문에 저번 제전 때는 대족장을 선출하지 못했고, 가비알 씨가 떠나고 나서 각 부족들은 서로 간에 불만이 많이 쌓이게 되었어요.
그래서 지금, 이렇게 부족들끼리 서로 다투는 상황이 된 거죠.
- 전임 대족장…?
어? 이곳에서는 흔한 일이에요.
저희 아버지께서 그러시는데, 후안 대족장님은 대족장을 오랫동안 맡은 편이래요. 보통은 2-3년마다 바뀐다고…
대족장이 없으면 제전을 열어서 새로운 대족장을 선출하는 거죠.
- 가비알 때문에?
어? 아, 맞아. 로도스 아일랜드 사람들한텐 내가 이 얘기한 적 없었구나.
그때 난 제전에 참가한 모든 사람들을 두들겨 패준 다음, 그대로 떠나버렸지.
- 배척당했다며?
- 모든 사람들을?!
맞아, 그때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모조리 다 줘패줬지.
됐다, 일단 이 얘기는 그만두자. 지금은 어떤 부족이 세?
지금이라면……
강력한 부족이 몇 개 있어요.
첫 번째는 주마마가 이끄는 유넥티스 부족이에요.
주마마는 정글의 반대편 끝, 광맥 근처에 터전을 잡아서 대부분의 금속 자원을 차지하고 있어요.
유넥티스 부족은 기괴한 도구와 무기 만드는 걸 좋아해요. 주변의 여러 작은 부족도 흡수했죠.
두 번째는 크마르의 플린트 부족이에요.
정글에 사는 티아카우는 우리처럼 부족 생활을 하지 않아요. 그들은 평소에도 흩어져서 생활하고, 우리랑도 교류하지 않죠.
그런데 대족장의 제약이 사라지고 나선 여러 부족이 정글로 들어왔어요. 그래서 지금은 정글에 거주하는 부족이 적지 않게 되어요.
플린트 족도 그중 하나고요.
그들은 자신의 힘을 신봉하고, 일부 지역을 점령했어요.
그리고 좀 특별한 부족이 있는데, 가비알 씨도 알죠? 이남의 부족이요.
그 부족은 '이남 상회'라고도 불리는데, 부족 사람들이 좀 특이해요. 싸우는 걸 싫어하고 장사하는 걸 좋아하죠.
그래도 부족원 수가 적지 않으니 얕봐서는 안 돼요.
주마마 그 녀석이 왜 터전을 광산 근처에 마련했는지 상상이 가. 그 녀석은 옛날부터 직접 무기 같은 걸 만드는 데 푹 빠져있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한 부족의 우두머리가 되었을 줄이야. '유넥티스'라, 이름 꽤 괜찮은데!
네, 지금은 주마마의 유넥티스가 최강이에요. 다들 주마마가 틀림없이 차기 대족장이 될 거라고 생각하니까요.
그 녀석은 전부터 유능했으니까.
저…… 가비알 씨는 역시 대족장이 될 생각이 없는 건가요?
응, 지금은 바깥에서 해야 할 일이 있어.
그렇지? 박사.
- 그렇지.
- ……
- 여기 남아도 돼.
그렇군요…
아아…… 가비알 씨가 직설적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잔인하다고 해야 할지……
뭐 언젠간 여기로 돌아오겠지만, 아무튼 지금은 아니야.
근데 너도 대족장 도전한다면서? 아주 자신 있다고 막 편지에 쓰고 그랬잖아?
무, 물론이죠!
저도 충분히 준비했어요!
그래. 기대할게!
어? 싸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저쪽이야, 한번 가보자.
인정 해 안 해?!
절대 안 해!
짜식, 근성 좀 있네? 어?
뭐야, 싸움난 거네. 박사, 상관 말고 가던 길 가자, 흔히 있는 일이야.
넌 뒈졌다, 가는 꼬리! 오늘 굵은 꼬리가 더 훌륭하다는 걸 인정하게 해주마!
꿈 깨시지! 난 절대 굴복하지 않아!
음?
어이, 거기, 방금 뭐라 했어?!
웬 녀석이냐? 설마 너도 가는 꼬리 부족이냐?!
그건 아닌데, 너 혹시 굵은 꼬리가 더 좋다고 생각하는 거냐?
뭐어어어? 당연하지! 내 꼬릴 봐라, 건장하고 힘차고 옹골지잖아. 이런 굵은 꼬리보다 더 멋진 꼬리가 어디 있겠어!
하…… 선 넘네……
내 가는 꼬리를 보라고. 호리호리하지! 섬세하지! 라인 또렷하지! 게다가 물건도 들 수 있어! 꼬리란 건 바로 이런 거야, 알아 몰라?
맞아! 가는 꼬리가 최고라고! 콜록, 콜록!
얼라리요? 그런 꼬리는 엉덩이 뒤에 숨기면 전혀 보이지 않거든!
네 꼬리야말로 길고 두꺼워서 앉을 때 불편하거든!
- 대체 뭣 때문에 싸우는 거지?
아, 가비알 씨랑 저 사람은 꼬리 굵기에 대해 논쟁하고 있는 거예요.
이곳에선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에요. 꼬리는 아다크리스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부분이라, 다들 종종 서로 비교하곤 해요. 꼬리의 굵기 때문에 형성된 부족도 있고요.
가비알 씨와 다투는 사람은 아마 굵은 꼬리 부족이겠죠.
확 *험한 말*을 *험한 말*해버릴라! 아그들아, 다 나와 봐라!
오늘 내가 너희들에게 굵은 꼬리의 위대함을 깨닫게 해주마!
앗, 저쪽 패거리의 머릿수가 꽤 많은 거 같아요. 박사님, 전 먼저 가비알 씨를 도우러 가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