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탕거리는 소리
리유니온이 전기 제어 설비의 조달을 의뢰하고, 수탁인은 그로 인해 컬럼비아 차량 행렬을 습격한다. 구매자와 판매자 사이에 하마터면 충돌이 일어날 뻔했지만, 옛 친구들이 서로를 알아보면서 누그러드는데……
등장 오퍼레이터: 레드
1097년 12월 21일 8:44 A.M.
죽음의 황무지 오래된 폐허 고탑
깎아지른 골짜기 사이로 지난 세월을 알 수 없는 건물이 세워져 있다. 이 버려진 도시에 관한 이야기는 이제 알 길이 없다.
폐허의 그늘에는 꽤 많은 사람이 생활하며 쥐 죽은 듯 고요한 땅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여기, 감자다.
생산량은 어때?
……카라반 한 대에서 이렇게 많은 감자를 키울 수 있다니, 많이 배웠다.
이런 농장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어……
이 기술이 뭐라고 했더라?
하하하…… 이동도시의 수경작 농장도 최근 몇십 년 사이에 보급되기 시작했으니 처음 보는 게 당연하지.
가드 씨는 익숙한가 봐?
로도스 아일랜드에는 이런 농장이 많아서 종종 보다 보니까 좀 알게 됐지.
하지만 카라반 한 대로는 모두를 먹여 살릴 수 없을 거 같아.
카시미어 학자들이 도와주고 있으니 조급해하지 마. 우리한테 필요한 건 시간이라고.
그 엔지니어와 그 사람 팀만 모든 기술을 알잖아.
그 사람들이 없으면 모든 게 다 헛수고가 되는 거라고.
난 역시 그 엔지니어를 못 믿겠어.
왜지?
감염자도 아니잖아.
본인 아내와 딸이 광석병에 감염돼 죽었으니까, 우리를 도와준다고?
본인 삶이 곤경에 빠져 불공평한 운명 앞에 분노를 느꼈고, 감염자와 공감하게 되어 우릴 도와준다면서.
그러다 언젠가 새로운 가정과 가족이 생기면, 감염자를 지원하는 일이 역으로 그 사람의 평범한 생활에 영향을 줄 거야.
그럼 변하지 않을까? 본인의 삶과 가족을 위해 우리를 등지지 않을까?
엔지니어는 감염자가 아니잖아. 완전히 우리 입장이 되어서 한 편이 될 수 없다고.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배신과 악행을 가정하면서 '비감염자'를 우리와 대립하는 입장에 놓지 마.
우리를 향하는 호의가 변질되고, 우릴 도와주는 사람이 언젠가 다 변할 거라고 가정한다면.
우린 영원히 친구를 사귀지 못할 거야. 협력은 늘 믿음을 기반으로 해야 해. '리유니온'이라는 글자 자체가 원래 서로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거라고.
우리는 탈룰라와 같은 일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만 해.
그럼 우리에게 필요한 건 긴급 대처 방안이야. 나타날 가능성이 있는 위기에 대비해 충분한 준비를 해야지, 모두를 경계해서는 안 돼.
알겠어.
가드 씨, 혹시 점점 더 패트리어트 씨를 닮아간다는 소리 못 들었어?
난 패트리어트 씨와 비교도 안 되지……
그건 그렇고, 옷은 어때?
좀 작기는 한데 입을 만해.
이거 잘 닳지 않는 천이잖아, 좋은데?
맞아, 값도 저렴하고 실용적인 천이지. 전투복 제작에는 제격이야.
예전에는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생각도 못 했어.
새 옷이라니! 몇 년 만에 입는 새 옷인지 모르겠어.
칼라돈의 감염자 노동자들에게 고마워하라고.
그런데 이해가 좀 안 가는 게 있어.
리유니온 마크는 왜 떼는 거야?
우리한테는 그 마크가 필요 없으니까.
우리한테 리유니온은 이제 필요 없는 거야?
당연히 아니지.
우린 더 이상 명확한 기호가 필요 없을 뿐이야. 마크로 우리를 증명할 필요도 없고.
우리를 하나로 모으는 건 마크가 아닌 정신이니까.
다른 감염자와 우리를 구분하면 안 돼. 감염자들을 도와주고 지원해 주는 힘이 되어야지.
그럼 4소대 사람들은 왜 아직도 마크가 달린 옷을 입는 거야?
4소대는 특별한 목적이 있는 활동을 하니까. 우리를 위해 연막작전을 펼치고 있거든.
난…… 이해가 잘 안 가는데?
4소대가 마크가 달린 옷을 입고 우르수스 동쪽에서 움직이면 우르수스인의 시선을 끌 거고, 우르수스 군대는 얼마 남지 않은 리유니온이 동쪽 황무지를 떠돌아다닌다고 생각하겠지.
그럼 다른 녀석들이 행동을 취해도, 우르수스나 다른 나라에서 주목하지 않을 거야.
우리의 모든 행동을 그저 조직이 없는 독립적인 행위라고 여기겠지. 우리가 리유니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을 거고, 따라서 주목하지도 않을 거야.
빈 씨! 왔구나!
보고. 빈, 복귀했다.
고생했다! 별일 없었어?
별문제 없었다. 레드 대장이 설비를 창고로 보냈어.
잘 됐네, 전에 상황이 변했다고 해서 꽤 걱정했거든.
칼라돈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다행히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이었어.
좋은 아침, 가드 씨.
엘바 씨! 엘바 씨도 왔네.
전달자 소대 사람이 다 도착했어.
컬럼비아 쪽 상황은 어때?
컬럼비아의 감염자 상황은…… 한마디로 말하기가 어려워.
황무지 개간 지역에 있는 감염자 대부분은 힘들게 살아가고 있어. 우리가 줄 수 있는 도움도 매우 제한적이고.
그런데 컬럼비아인이 개척자에게 땅을 나눠주고 있어. 감염자도 예외는 아니지.
그렇군……
도시 쪽은 티카론토의 감염자가 우리에게 보급품과 거처를 제공하겠다 했지만, 무상으로 도와주는 건 아니야.
그런데 무료로 돕겠다는 황무지 맥주 공장 사장이 있어…… 믿을만한 사람인데 조금 별나.
아주 좋은 시작인 것 같네.
고생했어, 엘바 씨!
유격대 쪽은? 아브로라한테서 회신이 왔나?
아브로라 대장은 북툰드라 쪽에 남은 부대를 찾으러 가서 이번에는 오지 못할 거야.
그래도 유격대에서 살카즈 전사 몇 명을 보내서 이미 나인 일행과 합류했어.
어제 도착한 카시미어 쪽 책임자도 꽤 많은 사람을 데려왔어.
그럼 거의 다 모였군.
난 상황을 살피러 격납고에 갈 테니까, 너희는 먼저 나인한테 가 있어.
알겠다.
시끄러운 기계음 속에 부피가 큰 차량이 버려진 창고 중앙에 멈춰있다.
차량을 둘러싼 리유니온의 기계공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창고 안에는 금속을 절단하고 용접하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조심히 내려놔! 조심히! 부딪히지 않게 조심하라고!
드디어 엔진을 옮겨냈군.
아, 가드 씨!
칼라돈 쪽은 어때? 도시의 감염자들은 다들 괜찮은가?
뭐랄까, 괜찮은 편이야
앵스트 의원을 빼고도, 시의회 의원 절반이 감염자 지역을 계속 운영하는 데 동의했어. 감염자 지역이 계속 운영되는 한, 상황이 악화되지는 않을 거야.
2달 전에 한 귀족이 경비원을 매수해서 감염자 지역의 엔진을 몰래 망가뜨렸어. 우리가 그쪽에 심어 놓은 형제 중에 정비 캐스터가 있었기에 다행이지, 아니면 큰일 날뻔했어.
그렇긴 해도…… 그쪽의 감염자들은 여전히 많은 문제를 떠안고 있어.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해.
엔진을 옮길 때 문제가 좀 있었다며?
예상치 못한 문제가 좀 있었지.
전에 가드 씨가 예상한 것처럼 감염자 지역은 꽤 많은 사람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야. 그래도 우리가 많은 문제를 해결했어.
우리를 위협한 사람이 있었나?
안심해. 정체가 들통난 사람은 없어. 몇몇 형제는 당분간 숨어있는 게 좋긴 하겠지만.
그리고 옛 물류 통로는 이제 쓸 수 없어. 지면이 폭발하면서 구조층이 무너지는 바람에 버려진 통로가 노출됐거든.
앞으로 몇 달 동안은 칼라돈에서의 활동을 줄여야 할 거야.
우리가 들통나면 감염자 지역의 운영에 심각한 영향을 줄 테니까.
나도 네 말에 동의해.
그래도 그 사고 덕분에 무사히 엔진을 가져올 수 있었어. 게다가 아무런 흔적도 없이.
그런데 이게 정말 날 수 있다고?
날 믿어, 예전에 비슷한 걸 타 본 적이 있거든.
컬럼비아에서는 도시 내에서 더 작은 설비를 사용해. 로터크래프트인가 뭐라고 하던데……
로터크래프트는 나도 본 적이 있어. 예전에 우르수스 군대에 있을 때, 정찰용 1인 비행기를 봤거든. 오토바이크보다 조금 더 컸지.
하지만 이렇게 큰 비행 차량은 확실히 처음 봐.
이걸 어디서 구한 거야?
쓰레기를 줍다가 구했다면 믿을래?
농담하지 말고, 진지하게 묻는 거야.
쓰레기를 주운 건 사실의 일부분일 뿐이지.
컬럼비아 군은 7년 전에 떠다니는 차량 연구자를 모집했어. 하지만 자금 문제로 프로토타입만 생산하고 프로젝트가 중단됐지.
프로토타입은 7년 동안 창고에 방치되어 있었어. 컬럼비아인은 이제 이걸 폐기하고 싶어 했고, 컬럼비아 군에서 군용 물자 폐기 프로젝트를 제삼자 기업에 하청했지.
컬럼비아에는 폐기해야 할 군사 연구 프로젝트가 넘쳐나. 무기 탄약부터 차량 장비까지 다 있지. 비용과 수고를 덜기 위해, 이런 작업을 모두 하청으로 넘겼어.
물론 기업은 군대의 기준에 따라 엄격하게 설비를 폐기하지 않았어. 떠다니는 차량을 대충 해체해서 '황무지 쓰레기 회수업자'에게 팔아넘겼지.
그리고 '황무지 쓰레기 회수업자'가 또 '쓰레기'들을 우리에게 판 거야.
……프로토타입이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어?
그야 물론 데이크스트라 그 녀석이 정보를 줬으니까.
데이크스트라? 그 이상한 컬럼비아 캐스터? '해커'인가 뭔가 하는 그 사람 말이야?
정말 대단하네.
어때, 안드레이 씨? 엔진은 쓸 수 있겠어?
엔진 출력은 충분해.
다만 사이즈가 좀 커서…… 이대로 달면 균형 잡는 데 영향을 줄 거야.
빅토리아산 엔진을 컬럼비아산 비행기에 달아도 문제없는 거 확실해?
고전적인 방법은 언제나 있으니까. 띄우는 건 어렵지 않을 거야.
잘 부탁해.
그런데 조종사는? 이건 일반 자동차가 아니야. 조종사는 어떻게 찾을 거지?
이 비행기는 적어도 두 명이 조종해야 해. 이런 수준 높은 비행기를 운전할 수 있는 사람은 컬럼비아에도 몇 안 될걸.
나인이 전에 그 문제를 생각해 봤어. 그런데 데이크스트라가 방법이 있다고 했지.
그것 말고도 지금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어.
전기 제어 시스템을 새로 바꿔야 하는데, 이건 반드시 한 세트로 가져와야 해. 난 만질 수 없는 거거든.
일반 차량 시스템은 안 될 거야. 채굴 플랫폼 메인 관제실 시스템 같은 설비가 필요해.
오리지늄 엔진의 단열 타일도 바꿔야 하고.
전에 나인에게 다 말했는데 준비됐는지 모르겠네.
걱정하지 마, 며칠 뒤에 상인이 부품들을 보낼 거야.
상인? 전에 만난 그 철통 모양의 헬멧을 쓴 사람? 이런 걸 팔려면 간이 엄청 커야 할 텐데. 관리가 엄격한 기술 설비인데 어떻게 구했대?
상인만의 방법이 있겠지. 우린 너무 많은 걸 물으면 안 돼.
나인! 왔구나.
그래, 이 건은 당신 말에 따를게.
그 상인 말인데, 가드, 네가 레드 대장과 함께 가서 좀 만나봐야 할 것 같아.
우리 쪽 사람이 현장에서 상황을 확인해야 한대. “화물의 출처를 어느 정도 인지해야 한다”라고 했거든.
참 이상한 사람이네……
알겠어.
1097년 12월 24일 6:44 P.M.
이런 곳에서 만나자는 건가.
믿을만한 사람인 거 확실해?
잘 모르겠어…… 적어도 나인은 믿을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그 사람한테서 꽤 많은 물건을 샀거든. 그 대가로 우리도 상인을 도와 꽤 많은 일을 했고.
아주 이상한 사람이야. 만나보면 무슨 말인지 이해할 거야.
난 원래…… 출신이 분명하지 않은 황무지 상인은 안 믿어.
멀리서 이상한 헬멧을 쓴 사람이 천천히 두 사람에게 접근하고 있다.
그 사람 뒤로 옷차림이 남루하고 조잡한 헬멧을 쓴 사내 몇 명이 따라오고 있다.
……얼굴에 믿음직하지 못하다고 쓰여 있네.
굿모닝, 굿애프터눈, 그리고 굿이브닝, 여러분.
가드 씨! 또 만났군! 안색이 좋아 보이는걸.
친구를 데려오다니 의외네. 그런데 화물차나 차량은 안 보이는데?
그럼 캔낫 씨, 우리에게 필요한 화물은…… 어디 있지?
서두르지 말자고, 친구.
곧 설비들이 나타날 거야. 다만 지금은 내 손에 없을 뿐이지.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가는데, 캔낫 씨?
인내심을 좀 가져 보게, 친구. 곧 도착할 테니까.
몇 분 후, 서쪽 지평선에서 무장한 차량으로 구성된 행렬이 서서히 나타나며 황무지에 모래바람을 일으켰다.
왔네.
망원경 줘 봐.
......
숨어! 다들 어서 숨어! 차에 오리지늄 화포가 있다!
저 마크는…… 볼보트 코친스키의 차량이다!
설명 좀 해 봐, 캔낫 씨!
자네가 말한 물건은 저쪽에 있네, 친구. 가장 중앙에 있는 대형 차량 보이나?
그 위에 공업 플랫폼에 사용되는 오리지늄 엔진과 전기 제어 설비가 통째로 설치되어 있지. 컬럼비아에서 림 빌리턴으로 보내는 화물이야.
우리 보고 컬럼비아의 무장 차량 행렬을 습격하라는 거야? 이게 당신 계획인 건가?
저 장갑차의 방호는 최소 중형 군용 차량의 메인 화포가 있어야 파괴할 수 있을 텐데, 이게 당신 계획이라고?
진정하게, 친구. 자네는 내 고객인데, 어떻게 직접 움직이라고 하겠나?
여기가 가장 좋은 전망대니까. 당신들은 보고만 있으면 돼.
......
10여 분 후, 완전 무장한 차량 소대가 천천히 골짜기를 지나간다.
전자동 발리스타와 오리지늄 화포는 주위에서 나타날 수 있는 모든 생물을 조준할 준비가 되어 있다.
단단한 합금 장갑판을 설치한 강한 무력의 대형 차량이 울퉁불퉁한 암석 사막 지역을 지나간다.
테라 황무지에서는 이런 무력 장치를 설치해야 목적지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다.
하지만 황무지에서 절대적인 일이란 없다.
골짜기 바닥에서 8미터 길이의 거대한 돌이 일어서자 모래가 폭포처럼 쏟아졌다……
그건 돌이 아니라 모래 속에 누워있던 크기가 어마어마한 메탈 크랩이었다.
베헤모스는 차량을 향해 난폭하게 달려들었다.
무장 차량의 화포가 메탈 크랩을 향해 포탄을 퍼부었고, 속사 발리스타는 끊임없이 메탈 크랩의 약한 관절 부분을 쏘았다.
그러나 베헤모스의 발걸음을 늦추지는 못했다.
폭발음이 울리며 메탈 크랩은 대형 차량의 측면에 세게 부딪혔다.
격렬한 충돌로 완전 무장한 장갑차가 갑자기 뒤집혔고, 측면을 엄호하던 다른 차량을 짓눌러버렸다.
뒤이어 산골짜기에서 거친 포효 소리와 금속을 두드리는 소리가 전해졌다.
이상한 옷차림을 한 전사 백여 명이 암벽과 바위의 그림자 속에서 뛰쳐나왔다.
전사들은 오리지늄 결정으로 만든 간이 폭발물을 던지고, 거대한 사제 발리스타로 혼자 떨어진 적을 사격했다.
무장 차량의 경비원은 혼란 속에 사방으로 도망쳤다.
긴장감 하나 없는 전투는 오래가지 않았다.
......
……친구들이 좀 조심히 다뤄줬으면 좋겠군. 설비가 망가질까 봐 걱정이야. 이따 확인해 봐야겠어.
그래도 봐, 나도 만나자마자 물건을 주고 싶었는데, 계획은 변화를 따라갈 수 없나 보군……
차량 행렬이 어제 재앙을 피한다고 시간을 좀 끌어서 오늘에서야 협곡에 도착했거든.
(무기를 꺼낸다)
(무기를 꺼낸다)
……반응이 뭔가 오해를 한 것 같은데?
캔낫 씨, 당신은 녹슨 망치의 멤버군.
리유니온은 도적들과 거래할 정도로 상황이 나쁘지 않아.
허! 그거 참 상처 되는 말이군, 친구.
게다가 지금은 아마 그런 말을 할 때가 아닐 텐데?
캔낫 뒤에 있는 녹슨 망치의 전사들도 무기를 꺼냈다.
입 조심해, 내가 네 머리통을 깨버려도 계속 건방지게 굴 수 있나 보자고.
괜찮네, 말만 하지 말고 어디 해 보시지?
잠깐, 친구들! 멈춰!
여러분! 오늘 우리가 싸우려고 모인 게 아니지 않은가?
다들 명확한 목표를 갖고 황무지에 왔는데, 짐승 무리처럼 다짜고짜 서로 싸우면 안 되지.
자, 가레스 씨, 우선 무기 내리게. 내가 얘기하기로 약속했잖나.
가레스……?
이 목소리는…… 넌 엘바???
정말 너였구나! 아직 살아 있었다니!
여기서 널 만날 줄은 생각도 못 했어!
그렇게 입으니까 정말 몰라봤다고.
가레스? '번개손' 가레스! 아직 살아 있었구나?
그런데…… 어쩌다가 녹슨 망치에 합류한 거야?
너희였구나!
무기를 꺼내 든 전사들은 서로 쳐다보았다. 조금 전까지 대치하던 양측은 갑자기 묘하면서도 어색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형제들, 긴장하지 마! 내가 아는 친구들이야!
무기 내려놔, 형제들. 얘네들은 나쁜 사람들이 아니야!
정말 너였다니……
난 네가 이미……
얘기하자면 길어……
자, 친구들. 다들 아는 사이잖나. 또 모르지 수천 년 전에는 다들 친척이었을 지도. 우선 자리를 옮겨서 얘기하는 게 어떤가?
자네들의 다른 리더와 협의한 대로, 설비들을 자네들의…… 기지로 옮겨야 하나?
그럼 가레스 씨, 형제들을 데리고 나와 함께 가서 차에 있는 화물을 옮기자고.
그렇게 하지.
어때? 저 녀석을 우리 기지로 보내도 되겠어?
사실 처음 가는 게 아니야. 이제는 나인의 판단을 믿을 수밖에……
휴……
대단하군! 아주 대단해!
정말 이걸 고칠 줄은 상상도 못했어.
내가 전에 말했잖아, 우리한테 그럴만한 실력이 있다고.
리유니온은 정말 모두의 상상을 뛰어넘는군. 자네들은 일을 해내고 마는 사람들이야.
그럼 약속한 대로 난 수수료 조금만 받겠네. 정제된 오리지늄각뿔 40개, 괜찮겠나?
도와줘서 고마워, 캔낫 씨.
......
대체 속셈이 뭐지, 통조림 씨? 이 물건들을 내주고 고작 정제된 오리지늄각뿔 40개를 받는다고?
이보게, 친구. 날 못 믿나 보군. 그럼 안 되지.
협력은 상호 믿음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걸세. 반대로 말하자면 우린 오랫동안 협력했으니 자네는 날 더 믿어야 한다는 소리지.
투자라고 생각하게나. 난 여러분이 더 잘 해내고, 일하는 규모가 점점 더 커질 거라고 믿네. 우린 앞으로도 협력할 기회가 엄청 많겠지.
저기 떠다니는 차량에게서 뭘 보았는지 내게 알려 주게.
그냥 떠다니는 차량이잖아?
난 기회를 보았네!
저게 있으면 당신들은 시속 200km로 날아서 황무지를 지나고 이동도시 사이를 오갈 수 있다네. 테라 대지에서 그렇게 할 수 있는 조직은 얼마 없지.
당신들이 저 차량으로 뭘 할 건지 난 묻지 않을 거지만 신중하게 사용하길 바라지. 망가지면 수리하기 어려우니 말이야.
도와줘서 고마워, 캔낫 씨.
당연한 일이네, 친구. 앞으로 모든 일이 순조롭길 바라지.
녹슨 망치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르네.
다들 녹슨 망치를 오해하고 있어. 하지만 그들은 외부의…… '문명'의 평가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아.
나…… 궁금한 게 있어.
뭔데?
일라 언니는 너랑 같이 안 있어? 언니는……
어떻게 됐어?
뭐? 일라?
걱정하지 마, 일라는 무사해.
그저…… 몸이 좀 안 좋을 뿐이야.
광석병이 악화됐어?
아니, 광석병은 아니니까 그렇게 긴장할 것 없어.
그게 그러니까…… 임신했어.
이…… 임신?
응, 예상 밖이지? 하하하, 나 곧 아빠가 돼!
아니…… 뭐? 두 사람 이미……
걱정하지 마, 녹슨 망치 형제자매들이 잘 돌봐주고 있어. 황무지에서는 새 생명이 태어날 때마다 폭풍과 대지의 축복을 받거든.
아니, 그걸 걱정하는 게 아니라.
휴, 난 두 사람이 이렇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어…… 하하하.
아무튼 축하해.
고마워.
사실 나도 망설였었어…… 그랬었지.
무책임하게 한 생명을 고통과 함께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는 게 맞나 싶어서.
그런데 일라가 그러더라, 엄마가 되고 싶다고.
그래서 결심했지. 아이의 운명이 어떻든 내가 최선을 다해 지키고 가르치겠다고.
나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될 거야.
정말…… 대단하다.
이제 출발하세나, 가레스 씨. 여기 일은 다 끝났으니.
알겠어.
난 가 봐야겠다, 엘바.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흘러 널 다시 만나다니, 오늘은 아주 좋은 날인 것 같아.
잘 살아야 해, 엘바!
너도.
아직도 친구와 회포를 풀고 있었나? 사실 급할 건 없으니 조금 더 얘기를 나눠도 된다만.
괜찮아, 얘기 다 끝났어.
그럼 슬슬 출발하지.
여기서 일부러 날 기다린 걸 보니, 상의할 일이 남았나 보군?
설마 내가 두 사람이 여기 있는 걸 전혀 눈치 못 챌 줄이야.
리유니온의 재앙정보전달자를 얕보지 말라고.
……캔낫 씨, 나 기억해?
물론이네, 엘바 씨.
난 만난 사람은 다 기억한다네. 그런데 그동안 많이 변해서 하마터면 못 알아볼 뻔했지만.
옛 친구가 여전히 기운 넘치는 걸 보다니, 축하할 만한 일이지.
모두를 '친구'라고 부르길 좋아하는구나.
그런데 그 단어의 무게를 당신이 아는지 모르겠어.
우리가 '친구'라면.
떠나기 전에 내 질문에 대답해 줘. 솔직하게 말해줬으면 해.
“협력은 상호 믿음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거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난 우리가 서로 믿을 수 있는 대답을 원해.
그럼, 말해보게, 나인 씨.
왜 우리를 도운 거지?
날 속일 생각 말고, 대답을 회피하는 궤변으로 얼버무리려고 하지도 말고.
솔직한 말을 듣고 싶어.
하하하……
철통 모양의 헬멧을 쓴 남자는 쓴웃음을 지었다.
남자는 잠시 침묵했다. 두꺼운 헬멧 뒤에 있는 아리송한 눈으로 눈앞의 리유니온 멤버를 바라보았다.
내가 일부러 말을 돌리려는 게 아니야. 이해하겠나, 나인 씨?
다만 이 대지에서 모두가 꾸며내지 않은 솔직한 말을 받아들일 수 있는 건 아니지.
'좋은 말은 입에 쓰고, 거짓말은 달콤한 거니까', 나인 씨.
리유니온의 멤버는 거짓말이나 기만이 필요 없어.
황무지에서 테라 각국을 다니며 뭘 봤지?
난 내가 뭘 봤는지 말해줄 수 있다네.
컬럼비아의 개척 거점에서 감염자와 가난한 사람들이 척박한 땅과 무시무시한 짐승 사이에서 몸부림치는 걸 봤네……
그 사람들은 피와 살로 인간의 존엄을 쟁취했어. 하지만 시체 아래 있는 황금은 컬럼비아라는 괴물을 만들어냈지.
빅토리아 사람으로 말하자면, 그들은 진부하고 보수적이네. 귀족은 추할 정도로 탐욕스럽고, 귀한 분들을 모시는 데만 본인들의 재산과 힘을 쓰고 있지.
그 사람들 눈에 감염자는 음모의 도구이자 정적을 찌르는 비수야. 유일하게 살아있지 않은 사람이지.
'테라 대지에서 가장 강성한 국가'에서 문명이 진보하는 흔적은 보이지도 않더군.
2년 전, 사미의 제사장이 “종말의 날은 이미 다가왔다.”라며 비통하게 외쳤지만, 컬럼비아인은 사미인의 경고조차 믿지 않았지.
컬럼비아인은 그 제사장이 미쳤다고 했지. 하지만 그들은 또 그걸 어떻게 판단했을까?
컬럼비아인은 사미인이 직면한 광기에 찬 어둠과 기나긴 항쟁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
광기는 이 대지가…… 아니, 이 세계가 곧 마주하게 될 사실이네.
북극 빙원에 잠복한 그림자, 광활한 바다를 삼켜버린 어둠, 대지 아래 묻혀있는 오랜 재앙은 말할 것도 없고.
하지만 매우 안타깝게도, 대지 위의 사람들은 여전히 폐쇄된 섬에 살면서 돌멩이와 곤봉으로 서로 정복하기 바쁘지.
우리는 시간이 별로 없어. 세계가 와해되고 있으니 더 빨리 개혁을 일으켜야 해!
이게 우리를 도와주는 이유라고?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이유 중 하나야.
녹슨 망치든 리유니온이든 현재 상황을 바꾸려는 집단이 있네. 곧 무너질 정세를 보며 본인을 구하고 살고 싶은 사람들을 포함해서 말이야.
그럼 누군가는 뭐라도 해야 하잖아.
난 많은 사람과 조직에 도움을 줬지. 녹슨 망치, 리유니온, 사미의 사이클롭스들, 사르곤의 신비한 학자까지……
매우 안타깝게도, 이 대지에는 아직 문제를 해결할 '답'을 내놓을 수 있는 조직이 없네.
하지만 난 적어도 자네들한테 방향을 안내할 수는 있지.
좋든 나쁘든 우린 시도해 봐야 해.
……
캔낫 씨, 당신 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날 설득하지는 못했어.
리유니온은 당신이 말한 것처럼 대지의 위기를 해결할 수 없어. 그건 우리가 하려는 일이 아니야.
알지, 알아. 하지만 난 리유니온이 계기가 될 수는 있다고 믿네. 우선 엔진에 시동을 걸어야 방향을 논할 수 있는 거잖나.
당신은 로도스 아일랜드를 찾아가야 할 것 같아. 이상주의자들이 모여있는 곳에만 당신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을 거야.
로도스 아일랜드 하나만으로는 모든 걸 바꿀 수 없어. 로도스 아일랜드에 대지의 정예가 모두 모여있다고 해도 부족하네.
그 사람들이 카시미어에서 한 일을 들었어?
알지, 현장에 있었거든.
그 사람들은 좋은 한 수를 뒀어. 하지만 거대한 바둑판 앞에서 좋은 한 수로는 최종 승부에 영향을 주기에 부족하네. 말을 쥐고 있는 사람이 가장 잘 알겠지.
빛의 기사의 등대처럼 반짝이는 마음의 불로도 대지 전체에 드리운 먹구름을 몰아내기에는 부족해.
물론 고통과 원망으로 가득 찬 세계에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건 위로가 되는 점이긴 하지.
“검은 먹구름의 끝에는 여전히 불꽃이 반짝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