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받다
숙소에서 자가치료를 시도하는 이스티나. 이때 마침 메이가 숙소를 방문하게 된다. 메이와 함께 온 건, 다름 아닌 우르수스 학생자치단의 또 다른 멤버, '나탈리야'였다.
……
전원 연결됐네. 문제없고.
잘 되고 있는 건가? 아…… 아……
문제없는 것 같네.
……
……
무슨 말을 해야 할까요.
흐음……
지금 제가 쓰고 있는 이 기계는 클로저 씨가 빌려준 거고, 용도는…… 음, 신청서에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유무 자가 진단' 용도라고 적혀 있습니다.
……기네요.
어쨌든 기계 조작은 간단한 것 같군요. 배터리가 충분한지 확인하고 스위치를 켜면…… 이렇게, 자동으로 녹화가 시작됩니다.
후우……
(혼잣말하는 것도 참 어렵네.)
(화면을 보면서 이야기하는 건, 별로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제 증상을 완화하고 치료하고 싶다고 이야기하니, 의료부의 오퍼레이터가 이런 제안을 해주었습니다……
자신에게 모두 털어놔 보는 건 어떠냐고…… 말이죠.
아, 녹화하고는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려고 하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생각은 없습니다!
진정하자, 이스티나. 진정…… 음음, 그냥 아무렇게나 말하고 있는 거잖습니까. 그러니까 긴장하지 말고 저에게 하고 싶은 말이라면 뭐든지 하면 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줄 수 없는 이야기를, 차근차근 자신에게 해보는 거예요.
솔직히 말하면, 나쁘지 않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있었던 일 말입니다만……
지금이야 모두들 괜찮아 보이지만, 그래도 잘 알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주 많다는 걸요.
굼도, 로사도 예전 그 일을 잊지 못하고 있죠. 학교에서 일어났던 일들, 학교를 떠나서 있었던 일들을 잊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지마는…… 지금까지도 악몽을 꾸고 있는 것 같고요. 레토는 어느 정도 내려놓은 것 같지만, 정말로…… 전부 다 내려놓을 수 있을까요?
저는? 저는 어떨까요. 그 일을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만, 정말로…… 그게 될까요?
다들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언젠가는 마주해야 할 문제입니다.
……
……어렵네요.
후…… 좋아. 드디어 이 혼잣말에 조금은 익숙해진 것 같네요.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까요.
먼저, 제 소개를 해야 할까요?
(하아…… 후우……)
제 이름은 이스티나…… 물론 코드네임입니다. 진짜 이름은 '안나 모로조바'.
으음, 이 이름을 입에 올린 건 정말 오랜만인 것 같군요. 내 이름인데도 어색합니다, 이상하게도.
이쪽은 내 친구, 비카라고 합니다.
학생자치단에 가입하기 전까지 가장 친하게 지내던 친구였죠.
지금은 로도스 아일랜드의 '우르수스 학생자치단'이라는 곳에 속해있습니다.
아, 학생자치단을 만들자 제안한 건 저지만, 학생자치단을 만든 건 지마입니다. 그리고 독립 단체라고는 하지만, 멤버도 고작 다섯 명밖에 되지 않죠.
지마, 나탈리야, 레토, 굼, 그리고 저.
사실 예전에는 더 많았지만, 지금은 우리만 남았습니다.
아, 물론 비카도 우리 멤버였지만요.
지금은 모두 로도스 아일랜드의 오퍼레이터로…… 일하고 있다고 봐도 되려나?
나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일한 만큼 보수를 얻는 건, 매우 공평한 일이죠.
지마는 당분간 여기를 떠날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별말은 안 했지만, 여기 생활을 싫어하진 않는 것 같아요. 저도 가끔은 쭉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합니다.
후우……
지금은 같이 있지만, 우리 다섯은 사실 같은 학교 학생은 아니었습니다.
저와 굼, 그리고 나탈리야는 같은 고등학교에 다녔고, 지마와 레토는 다른 학교에 다녔죠.
아, 같은 학교는 아니었지만, 지마는 예전부터 꽤 유명했습니다. 근처 학교에선 지마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죠.
……저는 지마가 타고난 리더 타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도 물론 우리의 리더를 맡고 있긴 하지만.
리유니온은, 무방비 상태였던 우리의 도시 '체르노보그'를 공격하고 점령했습니다.
그리고…… 정말 많은 일이 벌어졌죠. 도시를 점령한 리유니온은, 우리 학교 학생들을 지마네 학교로 끌고 갔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곳엔 어쩌면 저희뿐만 아니라 다른 학교 학생들이 더 있었을지도 모르겠군요. 아무튼 그땐, 모든 게 혼란스러웠으니까요.
그들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때 리유니온을 이끌던 사람은, 어느 하얀색 머리카락을 한 소년이었습니다.
그는 꽤 어려 보였어요. 얼핏 보아선 우리보다도 더 어려 보였는데… 잘은 모르겠습니다.
그 소년이 다른 리더에게 뭐라 말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당시 많은 학생이 지마네 학교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황당한 일이었네요.
그렇게 우리는 십여 일을 갇혀 있었고, 그다음엔……
안나!
후우…… 다행이야. 끌려온 게 너라서.
안나, 나 좀 잡아 당겨줘.
……안나?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봉쇄된 학교에 안에서 싸움이 벌어졌어요. 그리고 학교를 벗어난 뒤에는, 체르노보그 전체가 전쟁에 휘말렸고요.
당시 우리 모두에겐 어쩔 수 없이 맞서야 하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시간에 굼은 아닐 테고, 대체 누구지……)
지금 나갑니다.
(이거, 끄기 전에 저장하는 게 조금 귀찮던데, 이렇게 둬도 상관없겠지.)
누구시죠?
나다, 이 몸인 것이다!
……누구시죠?
하아? 예비 탐정 이스티나! 일부러 모르는 척하는 것이냐? 내 목소리를 어떻게 못 알아듣는 것이냐!
흐음, 시끄럽군요.
그리고 전에도 말했지만, 저는 예비 탐정 같은 게 아니랍니다.
후후, 사이 좋아 보이네?
안녕, 안나. 나도 왔는데.
……어라?
나탈리야?
자, 홍차예요.
아, 고마운 것이다!
음…… 좋은 향기. 흐흥~ 찻잎이 좋은 건가 보구나!
그러고 보니 한참 문을 안 열던데, 바빴던 것이냐? 혹시 내가 방해한 것이냐?
바쁘면 나중에 다시 와도 되는 것이다. 어차피 책을 돌려주러 온 것뿐이니……
아니요. 괜찮아요.
특별히 급한 게 아니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 것이냐……?
안나가 저렇게까지 말할 정도면 진짜 신경 안 써도 돼.
이런 일로 빈말하는 성격이 아니거든. 그렇지?
……
헤헤, 그럼 된 것이다!
아, 그런데 아직까지도 문을 잠그는 습관을 가지고 있을 줄이야… 역시 신중한 것이다.
훌륭한 것이다. 예비 탐정이 가져야 할 신중함을 이미 갖고 있는 것이다!
잠깐만요. 예비 탐정 같은 거 아니라니까요. 괜히 이상한 말 하지 마세요.
그리고, 문을 잠근 건 할 일이 있었기 때문에……
하지만 안나는 평소에도 습관적으로 문을 잠그긴 하잖아? 우리 중에서 가장 신중한 사람이니까.
나탈리야, 그만 놀리세요.
후후, 미안. 안나의 표정이 너무 귀여워서 어쩔 수 없이 그만.
하아……
아아, 어쨌든 오후에 마시는 홍차는 정말 최고인 것이다!
홍차를 정말 좋아하시는군요…… 마치 녹아내린 치즈 같은 표정이에요.
에? 에? 그게 무슨 말인 것이냐?
음… 멍청해 보인다는 뜻이겠죠?
응? 뭐야, 너무하단 것이다!!
흥! 됐다. 당장 이 마음씨 넓은 탐정님께 감사 인사를 하는 것이다. 자, 너한테 주려고 쿠키도 가져온 것이다!
어, 크래커? 으음, 조금 의외네요……
뭐가 의외야?
미안해요. 간식을 가지고 올 줄은 몰랐거든요. 그냥 홍차를 얻어 마시러 온 거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오해했네요.
내가 그런 사람으로 보인 것이냐?!
잘 보는 것이다, 너를 위해서 특별히 준비해온 선물인 것이다! 히비스커스 특제 야채 크래커……인 것이다!
네 잘 알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돌아가십시오 지금 당장이요.
어서요, 출구는 오른쪽입니다. 배웅은 따로 하지 않겠습니다.
에이, 너무 그러지 않는 것이다. 진짜 맛있다니까? 정말인 것이다!
자, 한번 먹어보는 것이다.
괜찮아요…… 잠깐, 제가 먹을 테니까 그렇게 제 입에 막……
으읍, 으으읍……!
하하, 아하하하. 안나랑 메이 씨, 사이 좋네! 조금 부러운걸.
이상한 소리 마세요. 누가 사이가 좋단 겁니까! / 헤헹~ 확실히 사이가 좋긴 한 것이다!
어?
뭐?
물론 사이가 나쁜 건 아니고, 굳이 따지자면 좋은 편이지만……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이다. 사이 하나도 안 좋은 것이다!
????
이하하하하하!
나, 나탈리야!
하하, 푸흡, 하하하! 미… 미안! 근데 두 사람, 꽤 잘 맞잖아! 푸흡, 푸하하하!
윽.
후우……
너무 과하게 웃는군요. 정말이지…… 됐습니다. 메이는 책을 돌려주러 온 거고, 나탈리야는요?
응? 요즘 생각하고 있는 게 좀 있어서, 이스티나랑 얘기라도 할까 하고……
음? 중요한 일인가요? ……먼저 저를 찾아오다니, 드문 일이군요.
에이, 난 항상 안나랑 친하게 지내고 싶었는걸.
괜찮아. 별로 중요한 일도 아니고, 나중에 얘기해도 돼. 지금은 오후의 티타임을 느긋하게 즐겨보자고.
흠, 그렇군요.
잠시만요, 메이! 조심해요. 홍차를 들고 그렇게 돌아다니면 엎지를 수도 있다고요.
내가 어린 애도 아니고 뭐, 엎을 리가 없는 것이다!
후우……
죄송해요. 손님이 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해서, 방이 조금 지저분하네요.
숙소에 손님을 대접할만한 공간도 따로 없고요. 나탈리야도 그렇게 서 있지만 말고, 메이처럼 아무 데나 편한 곳에 앉으세요.
그럼 실례할게.
음…… 확실히 로도스 아일랜드의 숙소는 가구까지 제공해 주는구나. 깔끔하기까지 한걸?
그래도 예전처럼 친구들을 초대해서 노는 건 조금 어렵겠어.
잠시만요, 나탈리야. 당신이 말하는 건 단순히 노는 게 아니라, 본격적인 파티를 말하는 게 아닌가요?
에? 파티… 인 것이냐?
그게 그거 아니야?
많이 다릅니다!
아, 그래?
완전히 다르죠.
우와…… 파티라니 엄청 대단할 거 같은 것이다!
에이, 그 정도는 아니야.
전부 지난 일인데 뭐. 전에 큰 저택에 살았으면 뭐해, 지금이랑 전혀 관계없는 일인걸. 안 그래?
소냐도 그래, 매번 이걸로 날 놀린단 말이지. 말 좀 예쁘게 하면 어디가 덧나나.
안나가 없었다면, 소냐는 매일 싸움만 하고 다녔을 거야. 정말이지 답이 안 나오는 애라니까.
……
음, 난 사실 잠입 조사를 하면서 살던 예전보다, 지금 생활이 백 배는 더 좋은 것이다!
그리고 이스티나의 방은 지금도 깨끗한 것이다! 책이 많기는 해도 정리는 잘 되어있고……
평소에 치우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굼의 청결도 기준은 매우 엄격하다 보니.
아, 그러고 보니 굼은 확실히 엄청 깔끔하지.
예전에 그런 상황에서도, 굼은 모아온 물건을 늘 정리해 두곤 했거든.
지금도 그래요. 전혀 변하지 않았죠.
예전에 그런 상황……?
……
하지만 그런 룸메이트가 있다는 건, 행운인지 불행인지 모르겠는 것이다.
어라, 이 인형은 무엇인 것이냐?
!
안 돼요, 만지지 말아요!
우와앗!
왜, 왜 그러는 것이냐, 깜짝 놀란 것이다.
그렇게 급하게 뺏어갈 필요는 없지 않느냐?
……
미, 미안해요……
미안해요. 이건, 저에게 굉장히 중요한 물건이라서요.
이건…………
안나, 이건 그 사람의……
여전히 이 인형을 가지고 있구나, 너……
나탈리야, 거기까지 하죠.
말하지 마.
저는 괜찮습니다. 그러니 걱정 마세요.
안나……
말하지 마.
그 일에 대해선 나도 들었어……
그건, 어쩔 수 없는 거였어.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거니까.
말하지 마!
정말 유감이야…… 하지만, 네 잘못이 아니라는 건 모두가 다 알고 있어.
그만! 더 이상 말하지 마!!!
조금 늦었을 뿐이야. 너는 최선을 다했어.
……
알고 있어요. 고마워요. 걱정 마세요, 나탈리야.
전 괜찮으니까요.
난 괜찮아.
나는 항상 모두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마, 굼, 레토, 나탈리야…… 모두가 내가 괜찮다고 믿었다.
그리고 나 자신도…… 거의 그렇게 믿을 뻔했다.
내 잘못이 아니야.
내 잘못이 아닐까?
나는 늦었을 뿐이야.
아니, 나는 늦지 않았어.
나는 최선을 다했어.
……나는 최선을 다했어.
……나는 훨씬 이전부터 선택을 했었어.
아, 이 소설! 내가 빌렸던 탐정 시리즈 완결편이지 않느냐?
응? 아, 그 책 말하는 건가요. 맞아요. 보는 눈이 있네요.
이 시리즈 중에 가장 귀한 책이죠. 위대한 대탐정의 마지막 엔딩…… 후후, 박사님께 부탁드리고 한참이나 지나서 겨우 손에 넣었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집에 돌아갔을 때 친필 사인이 있는 초판본을 봤던 것 같은데……
그리운 것이다. 처음에 읽었을 때 진짜 엄청 울었던 것이다!
네?
친필 사인 초판본……?
아…… 어머…… 분위기가 살짝 안 좋아진 것 같네.
그 사인본을 받으려고, 안나가 꽤 노력했다고 소냐에게 들었거든. 하지만 결국은……
어쩔 수 없지. 구하기 힘든 물건이잖아.
(큰일난 것이다… 그렇게 귀한 물건이었던 것인가? 집에 그런 게 너무 많아서 실수해버린 것이다!)
저, 저기… 이스티나! 어…… 그래! 이 책, 나한테 빌려줄 수 있는 것이냐?
……
……빌려드릴 수야 있지만, 이미 본 책 아닌가요?
(작은 목소리로) 게다가 사인까지 받은 초판본까지 있으면서.
그게…… 윽…… 확실히 보긴 봤지만, 너무 오래전이라 다시 보고 싶어진 것이다!
그, 그런데 마침 이스티나가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하하, 운이 좋았던 것이다!
음……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빌려드리죠.
좋아! 이스티나, 넌 정말 좋은 사람인 것이다!
(후…… 이걸로 겨우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후후.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까지 티 나게 기분을 맞춰주려 하다니, 아직 부족하군요.
(작은 목소리로) 그래도…… 고맙습니다.
어, 방금 무슨 말 한 것이냐?
아, 이 야채 크래커 진짜 맛있는 것이다. 이스티나, 안 먹느냐?
아뇨.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
정말 이상한 맛이 아닌 거죠? 그럼, 어디 한번……
그러고 보니 드문 일 아닌가요? 메이와 나탈리야가 함께 있다니. 둘이 아는 사이였나요?
아…… 잘 아는 건 아닌데, 지난번에 펭귄 로지스틱스를 비밀리에 조사하던 중 나탈리야 씨에게 신세를 좀 진 것이다.
신세라고 할 것 까지야, 도움이 되어서 다행이지.
펭귄 로지스틱스 조사요? 아, 자주 이야기하던 그거 말인가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니 의외네요.
절대 포기 안 하는 것이다! 왕실 탐정의 명예를 걸고……
더 걸 수 있는 왕실 탐정의 명예 같은 게 아직 남아 있었던가요.
너……! 흥, 뻔한 수에는 넘어가지 않는 것이다!
아무튼! 지나가다 우연히 마주쳤을 뿐인 것이다.
그건 그렇고, 저번에 내가 빌려준 그 소설도 재밌었지 않느냐? 나도 방금 다 읽어서 그런지, 책에 관해서 얘기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한 것이다!
그렇습니까. 별로라 할 순 없겠지만……
다른 사람과 탐정 소설에 관해 이야기하는 건 오랜만이네요. 그 소설, 트릭이 굉장히 좋았는데, 어땠나요? 대단하죠?
진짜 엄청난 것이다! 대체 작가는 어떻게 그런 트릭을 생각해낸 것이냐? 마지막에 진상이 드러나는 결말 부분에서는, 소름이 쫙! 끼치는 기분이었던 것이다!
네, 바로 그 점입니다. 추리와 문학이 합쳐져서 현실에 있는 독자의 심리 상태에 영향을 주다니… 제가 이 시리즈에서 가장 좋아하는 책이랍니다!
아…… 알겠는 것이다. 무슨 말인지 잘 알겠는 것이다!
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진범은 바로 주인ㄱ…… 으, 으으읍?!
바보! 진범을 말해 버리면 어떡해요! 나탈리야는 아직 이 책을 보지 않았다고요!
으으읍!!
푸…… 하! 숨, 숨 막혀 죽을 뻔한 것이다……
으으으… 아파라… 혀 깨물었지 않느냐. 스포일러를 할 뻔한 건 내 잘못이지만, 이스티나 너도 이렇게까지 할 필욘 없었던 것이다!
재밌을 거 같은데? 안나, 탐정 소설 정말 좋아하는구나. 네가 이렇게 흥분해서 얘기하는 건 오래간만이야.
아, 그, 그런가요?
그래. 음…… 그렇게 재미있으면, 나도 한번 봐볼까.
나탈리야도 관심 있나요? 의외네요. 지난번에 내가 추천했을 때는 '시간이 나면' 보겠다고 했잖아요.
아…… 그게 말이지……
다들 즐겁게 이야기하는 걸 보니까, 왠지 나도 대화에 끼고 싶어져서 말이야.
그렇군요. 어쨌든 소설을 좋아하는 동지가 늘어나는 건 환영입니다.
여기선 이런 작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적다 보니…… 박사도 읽기는 하지만 너무 바빠서 영 기회가 나지 않는 것이다.
박사…… 아, 그 지휘관?
오, 나탈리야 씨도 아는 것이냐?
물론이지. 이 함선에선 꽤 특별한 사람이잖아. 그리고 지휘하는 걸 직접 본 적도 있는걸.
음… 실로 유감인 것이다. 오늘은 회의가 있는 모양인 것이다. 원래는 박사에게도 쿠키를 나눠줄 생각이었는데……
걱정 마세요. 히비스커스 씨라면 분명 박사님 몫도 남겨뒀을 거예요.
그래. 박사의 상태는 켈시 선생님이 본다고는 하지만, 사실 다들 꽤 신경 쓰고 있는 상태니까.
의료부 오퍼레이터들이 특히 더 그래. 얼마 전엔 테스트를 받으러 갔었는데, 메딕 몇 명이 박사의 영양 밸런스에 관해서 이야기하더라고…… 그때 뭐라고 했더라? 일단은 간식부터 금지해야 한다고 했던가?
하하하하… 그런 이상한 간식은 몽땅 몰수당해도 이상하진 않을 것이다!
하긴…… 굼도 가끔 그런 말을 했었던 것 같네요. 정말이지, 대체 평소에 뭘 몰래 먹고 다니길래……
그리고 나탈리야, 방금 말한 테스트라는 건?
아, 그건 일단 비밀로 해둘게.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해서…… 오늘 온 것도 사실은 그 일에 관한 거야.
하지만……
오늘은 역시 됐어. 음, 아무래도 때가 아닌 것 같네.
어쩌면 얼마 뒤에 알게 될지도?
흠?
……알겠습니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더는 물어보지 않겠습니다.
흠흠……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나탈리야, 우선은 고전부터 읽어보는 건 어떤가요?
어머, 다시 그 얘기로 돌아가는 거야?
헤헤, 자기가 좋아하는 걸 다른 사람에게 추천해줄 기회인 것이다.
이 화제를 쉽게 넘길 생각은 없습니다.
와…… 정말 대단한 열정이네.
물론입니다!
탐정 소설을 얕보지 마십시오. 종류를 불문하고, 우수한 작품에는 모두 영혼이 담겨있답니다.
후후, 확실히 안나가 할만한 말이네. 하지만, 음… 그래. 그건 나도 동의해.
소설 속 트릭을 생각하는 것도 재밌지만, 탐정 소설의 매력은 그것만이 아니에요.
이스티나의 말이 맞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역시 탐정이 진범을 찾아내는 그 순간을 제일 좋은 것이다.
그리고 고전이라고 하면, 역시 '그거' 지 않느냐?
'그거'요? 그거라니……
'그거' 말이다! '그거'!
엣헴…
"진실은 언제나 하나! 범인은 바로…… 당신이야!"
아, 그건 나도 알아. 명탐정이 반드시 외치는 대사지.
그런 것이다. 몇 번을 들어도 피가 끓어오르는 대사인 것이다!
확실히 그렇죠.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범인을 찾고 난 뒤가 백미예요. 정말 생각이 필요한 부분이죠.
으에? 어째서인 것이냐?
메이, 하나 물어보죠. 범인을 찾고 진상에 도달한 뒤, 탐정은 뭘 해야 하나요?
모두에게 진상을 알리고, 범인에게 죗값을 치르게 해야 하나요?
모두가 진상을 알게 되더라도, 법적으로 어떻게 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범인이 법망을 빠져나가게 둬야 할까요, 아니면 자신이 심판자가 되어야 할까요?
현실에서도 있을 법한 일이네. 꽤 곤란한 문제야.
만약 나라면……
으음……
뭐야, 그게 궁금했던 것이냐?
무슨 바보 같은 얘기인 것이냐, 이스티나? 오늘 좀 이상한데, 어디 아픈 것이냐?
이상하네…… 열도 안 나는데……
……뭐라고요?
우리는 진상을 밝히는 탐정인 것이다. 그 뒤의 일은 경찰이 해결하는 것이지 않느냐? 탐정은 만능이 아닌 것이다. 뭔가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탐정, 경찰, 그리고 판사에게는 각자 역할이 있는 것이다. 상식이지 않느냐?
뭐야, 그건 무슨 표정인 것이냐? 그렇게 놀란 얼굴을 하고선……
네. 탐정은 선고를 내릴 수 없어요. 그건 저도 알아요.
하지만 당신 입에서 상식이라는 말이 나오다니, 정말 의외네요……
뭐라고? 잠깐! 무슨 뜻이냐 그거!?
혼잣말이니 신경 쓰지 마세요.
후훗, 요즘은 하도 싸우고 죽이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살인 같은 건 다들 신경 쓰지도 않지 않느냐. 확실히 내가 말해놓고도 조금 미묘하긴 한 것이다.
어쨌든 우리 탐정이 할 수 있는 건, 진상을 밝히고 법을 수호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선고를 내릴 권리가 없는 것이다. 법 위에 올라서는 것도 말이 안 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심판을 내리는 건 더더욱 말이 안 되는 것이다.
……
나쁜 짓은 나쁜 짓인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건 어떤 이유로 포장한들 결국 나쁜 일일 뿐인 것이다. 그 행위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 것이다.
확실히, 그렇죠……
사람들이 알든 모르든, 판결을 받든 안 받든, 이미 벌어진 일은 적어도 당사자로서는 잊기 힘든 일인 것이다.
탐정이 해야 할 일은 그렇게 숨겨진 진상을 파헤쳐 내는 것! 음… 후후후, 굉장히 멋있는 말이라고 생각하지 않느냐?
이미 벌어진 일……
……
그 말이 맞네요.
어떤 이유든지, 사람들이 모른다고 하더라도, 이미 벌어진 일은 절대 변하지 않아요.
언젠가는……
어머, 이야기가 약간 무거워진 것 같네.
미안해요……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었는데.
아니, 나도 들으면서 꽤 의미 있는 토론이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모처럼 만의 티타임이니, 조금 더 가벼운 화제는 어때?
네, 좋은 생각입니다.
그런 것이다. 차도 다 식은 것이다.
응? 뭐지? 저건……
무슨 일이죠, 메이? 아까부터 뭘 보고 있는 겁니까?
아, 저기를 보는 것이다. 창밖에 저건 대체?
응? 창밖? 뭔데?
음…… 뭔가 날아다니…… 아니, 날아오고 있네……
드론인 것 같은데?
드론?
정말 드론이네요…… 이런 곳에 어째서 드론이 있는 거지…… 아무래도 처마 쪽에 걸린 것 같은데……
아…… 함선이니까 안전하지 않겠느냐? 별일 없을 것 같으면 길게 생각할 거 없는 것이다!
영차.
바보! 왜 올라가는 거예요…… 위험하잖아요!
헤헤, 잡았다……
메이 씨, 발 조심해!
엣?
우와아아앗~!!!
……!
안나!
후우…… 다행이야. 끌려온 게 너라서.
그날, 그녀는 그렇게 떨어졌다.
몸을 살짝 일으키자 바람에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너무나도 현실과는 동떨어진 것 같은 그 깨끗함에, 마치 그동안 일어났던 모든 일들이 전부 꿈처럼 느껴졌다.
안나, 나 좀 잡아 당겨줘.
소리를 낼 수 없었다. 말을 할 수 없었다. 움직일 수 없었다.
……안나?
내가 살짝 건드리자, 그 아름답던 꿈은 그렇게 아래로 떨어졌다.
소리도, 기척도 없이, 그저 내 손끝에 작은 흔적만을 남긴 채로.
잠깐…… 안나, 뭘 하려고?!
나는 그렇게, 그녀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
……
메이 씨! 조심 좀 해! 봐봐. 어디 다친 데 없어?
아야야… 괜찮은 것이다.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어라? 드론에 쪽지가 달려있는 것이다!
아, 나탈리야 씨에게 온 쪽지인 것이다.
뭐? 나한테?
음…… 무슨 쪽지지?
……
!
메이……
응?
으아아아! 왜 그런 것이냐? 안색이 안 좋은 것이다!
……괜찮아요.
정말? 어디 아픈 덴 없는 것이냐? 무리하지 않는 것이다!
후우……
바보.
엥?
목적도 모르는 드론을 잡으려고, 창턱을 밟고 처마로 뛰어오르는 사람이 어디 있나요?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도구를 사용하겠죠. 아니면 아츠를 쓰거나!
그, 그런 건 생각 못 한 것이다!
다음번에는 제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하세요!
놀라게 하지 말라고요. 바보.
손, 이리 내요.
어? 아냐…… 진짜 괜찮은 것이다!
왼손, 방금 창턱에 긁혔잖아요.
숨길 생각 하지 마세요. 제 앞에서 거짓말해도 소용없습니다. 당신은 알기 쉬운 사람이니까.
으으……
너, 너무 예리한 것이다.
저는 '예비 탐정'이니까요…… 이 정도 관찰력은 있어야죠. 당신이 그랬잖아요?
으으으으……
네, 상처가 심하진 않네요. 깨끗이 닦아내고 약 좀 바르면…… 됐어요.
메딕 오퍼레이터를 찾아가는 거 잊지 마세요. 작은 상처라도 덧나면 큰일이니.
작은 상처라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는 것이다!
헤헤… 그래도 고마운 것이다.
(어휴……)
아, 이 쪽지. 사일런스 씨가 나를 찾는다고 적혀 있는데?
사일런스 선생님이?
응. 내가 방금 말한 테스트 때문에.
그런데 사일런스 씨도 대단하네. 내가 여기에 있는 걸 어떻게 알았지?
드론을 쓰면 이렇게나 간단히 찾을 수 있는 것인가? 켈시 선생님부터 시작해서 의료부 사람들은 정말 대단한 것이다……
확실히 그렇네.
미안, 안나. 의료부에 가봐야 할 거 같아.
아, 괜찮아요. 그쪽 일이 더 중요하니.
그럼 나도 이만 실례하는 것이다.
책도 돌려줬고, 읽을 것도 생겼으니까 대성공인 것이다!
뭐가 대성공이란 건지……
다음에 기회 되면 또 같이 얘기하자.
모든 게 순조롭다면…… 음, 금방 학생자치단의 모두에게 좋은 소식을 들려줄 수 있을지도?
네.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안나, 너……
……
아니야, 아무것도.
다음에 봐.
다음에 또 보는 것이다~
……
……
후우……
좋은 소식…… 인가요.
비카, 어떤 소식일 거라고 생각하나요?
나탈리야, 그리고 지마, 아니 소냐…… 모두 사이좋게 지낼 수 있다면……
분명히 그럴 거라고요?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
난 단 한번도, 당신에 대해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
만약 잊는다면, 날 원망할 건가요? 아마 원망하겠죠.
아니라고요? 거짓말하는 거 다 압니다. 다 알아요, 비카. 지금 날 속이고 있잖아요? 당신은 제게 말을 걸 수 없으니까요.
항상 저와 함께 있어주었던 당신, 그리고 지금까지도 저와 함께 있는 당신……
언젠가는, 마주해야 할 텐데……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아직은 때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저는, 아직 약한 모양입니다. 지금의 저는 아직 해낼 수가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