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착오
반란 속에서 과거의 전우가, 고향의 친구가 적이 된다. 사르곤의 병사가 반역자가 되는 순간 헤비레인은 딜레마에 빠진다.
등장 오퍼레이터: 헤비레인
핏빛 불꽃은 사람들의 모습을 흐릿한 그림자로 만들었으며, 그 얼룩덜룩한 검은 그림자는 폐허로 비치고 있었다.
그들은 한때 전장을 누비며 죽음의 계곡을 함께 걸었다.
하지만 지금 서로를 노려보는 눈빛엔 증오와 적개심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모두가……미쳐버린 것 같아……)
*사르곤 욕설*!
간신히 목숨 부지하고 돌아왔는데 따뜻한 밥 한 끼도 못 먹고 전선에서 죽게 되는 건가?
물러서! 모두 물러서!
지금 반역이라도 일으키려는 건가?!
반역? 너 *사르곤 욕설* 맞고 싶어?!
저놈을 잡아라! 놓치지 마.
비켜! 막지 마라!
헤비레인! 인마!
놈을 막아! 놓치지 마!
(아는 사람인 것 같은데……)
(이름이 뭐였더라?)
뭘 멍하니 있어! 어서 죽여!
비켜!
윽!
빌어먹을!
헤비레인, 왜 저놈을 놓친 거냐!
(주변의 전우들이 모두 절 보고 있어요. 적의에 가득 찬 눈빛인데.) 죄송합니다.
(마치 내가 이들의 적이 된 것처럼.) 그렇지만 전우를 공격할 순 없어요.
전우? 훗……
아직도 저 짐승들을 전우라고 생각하나?
헤비레인에게로 주먹이 날라왔다.
고참병은 마치 쌓인 분노를 싸움으로 풀고 싶은 듯 헤비레인의 반격을 기대하며 탐욕스럽게 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헤비레인은 그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방패를 내리고 평온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망설이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미안해요.
그래도 전우를 공격할 순 없어요.
……
쳇! 겁쟁이 자식.
됐어! 지금이 때가 어느 땐데 우리끼리 싸워선 안 되지.
대장, 지금이라도 가자.
아직 기회가 있을 때 가야 해.
지금 돌파하자고? 그럼 우리 고향 사람들은?
우린 모두 같은 출신이야. 아미르가 마음만 먹으면 우리는 전부 일망타진할 수도 있어.
*사르곤 욕설*!
이 짐승 같은 놈들은 우리를 살려둘 생각이 전혀 없다고!
충동적으로 행동하지 마, 이제 와서 후회되나?
……
형제들이 이렇게 사지로 내몰리는 걸 더 이상 가만히 지켜볼 수가 없어.
됐어, 지금은 무슨 말도 소용없어. 출입구나 제대로 감시하게 해.
그 근위병도 군관도 모두 귀족 출신이야. 우리가 녀석들을 인질로 잡고 있으면, 밖에 있는 놈들도…… 감히 난동을 피우진 못할 거야.
알았어.
수년간의 전쟁을 겪으며 사람들은 고향과 가족으로부터 멀어졌고, 부대 동료들만이 서로의 버팀목이 되었다.
그렇게 동향 사람들끼리 서로를 돌보고, 온갖 위험으로부터 서로를 지켜가며 의리를 쌓아오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억압적인 환경에서 갈등은 아주 흔한 일이다.
이 몸이 적에게 3일이나 잡혀 있었던 것도 모두 너희가 찌질하게 도망을 쳤기 때문이잖아.
지금 찌질하다고 했냐?!
머저리 같은 너희만 아니었어도, 나도 *사르곤 욕설* 여기 갇히지 않았을 거 아니야!
*사르곤 욕설*너 지금 뭐라고 지껄인 거냐?
붙어 보자는 거야? 덤벼! 누가 무섭대?!
어서 덤벼!
……
도와주지 않아도 돼? 여기서 보고만 있을 거야?
도와줘? 어느 쪽을?
더 걱정되는 사람?
……
그럼 넌 어느 쪽이 더 맞는 거 같은데?
둘 다 틀렸어요.
사르곤 병사들은 이래선 안 돼요. 이건 아무 의미 없는 싸움이에요.
……아, 역시 헤비레인은 다르네.
네?
병사로서 해야 할 일과 하면 안 되는 일이 어딨어……
그냥 좋다 싫다, 복종한다 불복한다 그뿐이지.
밥은 왜 그렇게 적게 받아 왔어?
고참병은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거 아니었어?
괜찮아요, 전 이걸로 충분해요.
많든 적든 상관없어요.
……
아.
(애넘 씨는 뭔가 실망한 건지 슬픈 건지 묘한 표정을 하고 있네요.)
(절 걱정하는 걸까요?)
애넘 씨.
응?
사실……
저, 낮에 도망간 사람을 알아요.
안다고? 근위병은 우리와 관련 없을 텐데.
마지막 전투에서 그 사람을 시체 더미에서 꺼내준 적이 있어요.
이름은 이븐이라고 하던데요.
저희 둘은 적 캐스터의 추격을 피해 함께 다녔고요.
그럼 그 사람이 헤비레인의 친구라는 거야?
친구가 아니라 전우죠.
뭐가 다른데?
……뭐라고 설명하기가 어려운데.
그래도 달라요.
싸움이 왜 일어났는지 기억해?
군관이 명령을 받고는 모두를 전선으로 다시 이동시켰었죠.
그리고는?
베테랑들은 사망자가 너무 많다고 생각해서 보급품과 휴식을 요구했고, 그 갈등이 이어지다가 지금에까지 이르게 된 거예요.
그래서 어느 쪽 말이 맞는 것 같아?
고참병들의 심정과 생각도 이해는 하지만……
어쨌든 넌 그때 망설인 거네.
다른 사람들은 그걸 배신이라고 생각해.
……
전 아무도 배신하지 않았어요.
그냥 잘 모르겠어요……
왜 제가 살린 사람을 죽여야 하죠?
그럼 만약 그때 네게 돌진한 사람이 다른 사람이었다면?
예를 들어 예전에 너랑 갈등이 있었던 사람이었다면?
그래도 구했을까? 정말 구하고 싶었을까?
……
제가 아니라고 한다면 애넘 씨는 절 겁쟁이라고 생각하실 건가요?
아니…… 헤비레인이라면 누구라도 분명 구했을 거니까.
넌 모두를 전우라고 생각하잖아.
우리가 전우이기 때문에, 우리가 사르곤 병사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때 맹세를 했기 때문에.
“위험 앞에서 적에게 굴복하지 않고, 곤경에 빠져도 절대 전우를 저버리지 않는다.”
개인적인 원한이나 욕망 같은 건…… 제겐 상관없어요.
어……?
이 밥을 봐!
거꾸로 뒤집어도 접시에 떨어지지 않아!
장난 그만 쳐요. 그러다가 진짜 떨어지면 굶어야 한다고요.
으흠.
만약 그렇게 되면 헤비레인이 밥을 나눠줄 거야?
그러죠.
내가 네 전우니까?
친구니까요.
친구, 전우…… 헤비레인은 정말 이 두 단어밖에 모르나 보네.
정말 뭐가 다른 거지?
……
달라요.
헌신? 영예? 맹세? 무슨 의미가 있다고?
내부의 반란군! 잘 들어!
우린 모두 평범한 사르곤 사람이다! 모두가 월급 받아먹고 살고, 돈 벌어 가족 부양하지, 그게 다야!
그러니 당장 무기를 버리고 투항해라! 인질들도 모두 석방해!
네이네이, 근위병 나으리! 아주 고매하신 나으리들!
이 전투에서 우리 형제들이 얼마나 죽었는지 너희는 조금도 개의치 않지.
최후통첩이다!
됐어…… 어차피 막다른 길이야.
이번이 최후통첩이다!
헤비레인.
일어나.
(적?!)
(아니야!) 무슨 일 있었어요?!
일단 칼 먼저 내려놔……
나야, 진정해.
(앗…… 위험했어.) 흐음……
(다행히 애넘 씨를 다치게 하진 않은 것 같네요.) 죄송합니다.
괜찮아. 그것보다 네 도움이 필요해.
따라와.
네.
지금 이 두 사람, 고열이 심하고 오한이 온 건지 계속 몸을 떨고 있어.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죽을 거야.
(상처가 치료되지 않았네요.)
(심하게 곪고 있는 거 같은데.) 제가 뭘 하면 되는 거죠?
물자는 전부 고참병들이 관리하고 있는데 도움을 주려고 하지 않아.
헤비레인은 물자가 어디 있는지 알 것 같아서, 받아올 방법이 좀 없을까?
어쨌든 전우잖아.
(전우라……) 알겠어요.
(이 타이밍에 전우라니, 일부러 강조한 걸까요?) 해볼게요.
아까 네가 말리지만 않았으면 분명 내가 저 자식들을 손 봐줬을 거야.
이 사람 믿을 만한 거 맞아?
안심해. 헤비레인은 좋은 사람이야.
말을 뱉은 이상 약속은 반드시 지키지.
좋은 사람?
군엔 바보와 머저리만 있을 뿐이야. 좋은 사람은 없어.
……
그렇지.
누구냐?!
*사르곤 욕설* 눈치챈 건가!
해치워, 시끄럽게 하지 말고.
잠깐만! 우리도 협박당하고 있을 뿐이에요!
그러니까…… 협상하시겠어요?
(너무 어두워……)
(약품이 여기 있었던 것 같은데……)
(여기 붕대가 있네요, 그럼 소독약은 분명 옆에 있겠죠.)
누구냐?
(이런, 들키면 안 되는데.)
(일단 약은 숨기고……)
무슨 소리지?! 거기 누구야?!
……나다!
뭘 좀 찾고 있었어.
아.
……
……
헤비레인, 가져가려는 게 약품인가?
혼자야?
(불을 끈다고?)
(뭘 하려는 거지?!)
긴장할 필요 없어. 너도 다른 사람들에게 여기 있는 걸 들키고 싶지는 않잖아.
무슨 일이야? 누가 다친 거야?
(얘기를 해도 되는 걸까요?)
(이대로 나가면 저를 막아설까요?)
말하고 싶지 않다면…… 문은 저쪽이야. 소리 나지 않게 조심히 나가.
……
신병 두 명이 부상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서 지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요.
무슨 약을 가져가는 거지?
이거요.
음…… 소독약과 붕대군. 상처를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나?
네, 배운 적이 있어요.
그렇군, 곪은 부위는 깨끗이 제거해야 돼.
마취제는 없어서…… 그건 신병이 참아내야 할 거야.
여기 항생제도 가져가. 이게 목숨을 살리는 관건이니까. 내가 줄 수 있는 건 이 정도네.
물론 병원에 가는 게 가장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까.
고맙습니다……
그럼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
헤비레인, 잠깐만!
네?
다친 데는 없나? 어디 아픈 데는?
전 다치지 않았어요.
음…… 네 엄마가 내게 널 맡겼을 때부터 경고했었는데.
모두 어린애들뿐이라고……
……
아니다, 아니야. 얼른 가봐. 들키지 않게 조심히 가.
궁금한 게 있어요……
아비 아저씨?
아? 응?
뭐야, 갑자기? 날 오랫동안 그렇게 부르지 않았잖니.
우리는 사르곤의 적을 모두 없애버리기로 맹세했었잖아요.
그렇지만 지금 우릴 포위하고 있는 건 사르곤 병사들이에요.
우리에게 결박당하고 인질이 된 것 역시 사르곤 병사들이고요.
우리가 매일 싸우는 상대 역시 사르곤의 병사들이에요.
대체 누가 우리의 적이죠? 적이란 게 대체 무엇일까요?
전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요?
헤비레인.
먼저 한 가지 물어도 될까?
네.
만약 다친 사람이 나였으면, 넌 도와줄 거야, 그렇지?
네, 그럼요.
왜지?
우리는 사르곤 병사이기 때문이죠. 우리는 전우를 저버리지 않으니까요.
그럼 만약 내가 네 전우가 아니라면, 내가 이 옷을 입고 있지 않다면.
모르는 사람인데 너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면, 그때도 날 도울 거니?
그럴 거예요.
그럼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살려달라고 하는 거라면 어떻게 할 거니?
모르는 사람을 돕기 위해 너의 모든 걸 걸 수 있겠니?
……
모르겠어요.
쉽게 말하자면 말이다. 사르곤의 병사들은…… 그냥 이 옷을 입고 있을 뿐이야. 그것이 우리 모두를 하나로 묶고 있는 것이지.
이 옷을 안 입고 있으면, 너는 너고, 나는 나야. 다른 녀석들도 마찬가지고. 각자의 신분, 생각, 목적이 모두 다른 사람들이라는 거지.
너 역시 너만의 생각이 있지 않니? 그러니까 전우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약품을 훔치러 온 것이겠지.
전……
단지……
하하하…… 내 그럴 줄 알았다.
넌 좋은 아이야. 모든 병사를 전우라고 생각하는 거지.
하지만 만약 이 옷을 벗는다면? 넌 누구지?
(이 옷을 벗으면 더 이상 사르곤의 병사라고는 할 수 없겠죠……)
(그럼 전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고향으로 돌아갈까요?)
자, 나도 이제 초소를 살펴봐야겠구나.
헤비레인…… 너 자신을 가장 중요시하렴.
네……
아비 아저씨.
반역자는 그 자리에서 죽여도 좋다. 인질 보호를 최우선으로 둔다.
말한 건 지키실 거죠? 우리가 안쪽에서 협력한다면……
만약 너희가 반성하고 아미르에 대한 반역 행위를 멈춰준다면……
위에서도 너희들의 처분을 재고해 줄 것이다.
……그게 ……우리도 강제로 말려든 거예요.
우리는 절대 아미르를 배신할 생각이 없었어요!
그렇겠지.
정말이에요!!!
이제 중요한 건 너희가 어떻게 행동하느냐다.
애넘 누님, 누가 와요!
너희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걸 잘 기억하도록.
잘 생각하고 행동해.
저 왔어요. 그 두 사람 상태는 어때요?
아직 열이 떨어지지 않았어. 약은 구했어?
구했어요. 상처 치료를 다시 해야 할 거 같은데 좀 도와주세요.
상처의 곪은 부분을 다 제거해야 돼서, 좀 참아달라고 전해주세요.
그리고 이 항생제도 먹여주세요.
헤비레인 씨……
고맙습니다.
아니에요.
애넘 씨, 와서 이 붕대 좀 풀어주시겠어요?
알겠어.
헤비레인은 먼저 치료하고 있어봐, 나는 뭐 좀 가져올게.
네.
(작은 목소리로) 너희는 날 따라와.
이건 마지막 기회야, 할 거야 말 거야.
난……
그렇지만 그 고참병들……
너 쫄았구나?
……
여기서 죽고 싶어? 저 머저리들이랑 같이?
너희는?
……정말 갈 수 있을까? 우린 수적으로 열세라고.
게다가 애초에 아미르가 정말 우리를 봐주겠어?
어차피 우린 다 먹고 살자고 군에 들어간 거야. 어느 쪽에 붙든 상관없다고 말한 건 너 아니었니?
목에 칼이 들이밀어진 상태에서 결백을 증명해봤자 바깥의 사람들이 그걸 믿어줄 거 같아?
(크게 심호흡한다)
*사르곤 욕설*! 됐어, 네 말대로 하자.
네 친구가 과연 우리를 도와줄까?
헤비레인…… 내가 가서 물어볼게.
만약 어쩔 수 없다면……
죽일 거야? 친구를?
헤비레인은 내 친구이자 좋은 사람이지.
그렇지만 헤비레인은 자신의 입장과 무엇을 우선시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것 같아. 누구에게나 친절하지.
……
네가 말했잖아?
군엔 바보와 머저리만 있을 뿐이라고.
그렇지?
그건 그래……
당신들…… 왜 날 보고 있는 거예요?!
난……당신들과 함께할게요.
상처는 다시 치료했어요. 약도 먹였고요.
둘 다 열도 아까보단 많이 내린 것 같아요.
(애넘 씨의 표정이 조금 이상한 것 같네요.) 조만간 괜찮아질 거예요.
헤비레인.
전쟁이 끝나고 전역하면 뭐 하고 싶어?
(왜 갑자기 이런 걸 묻는 거죠?)
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하고 싶은 거 없어? 걱정되는 사람이라던가?
하고 싶은 일……
없어요.
걱정되는 사람……
애넘 씨.
그리고 모두요……
너란 사람은 정말.
(주변 사람들이 힐끗힐끗 제 반응을 살피는 것 같네요.)
(모두 무장하고 있어요.)
(……)
애넘 씨,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거라면……
확실하게 말해주세요.
……
만약 내가 반란군 병사들을 잡자고 하면, 협조해 줄래?
뭐라고요?!
사실 네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든, 우리에겐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어. 우린 이미 사르곤의 적이야.
하지만 지금 우리에겐 기회가 주어졌어, 아주 운 좋게도.
우리는 살아남을 수 있어.
(이게 정말 운이 좋은 걸까요?)
(살아남는다……)
(단지 이런 이유 때문에……) 이젠 다른 방법은 없는 건가요?
없어.
이제 헤비레인도 이 문제와 마주할 필요가 있어.
헤비레인은 쟤들을 전우라 생각하겠지만, 그쪽은 널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아직도 모르겠어?
(나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 알고 있어요.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요……) 하지만 전 괜찮아요.
그저 살아남기 위해서라는 게 이유라면, 그렇게 할 수 없어요.
그럼 내가 대신 해줄게.
(내가 너무 소심한 걸까요……) 애넘 씨!
미안.
핫!
윽!
죽일 건가?
솔직히 말하면 당신이 언제 내 등에 칼을 꽂을지 몰라 두려워.
……
일단 묶어.
맞아, 어쨌든…… 얘는 우릴 구해줬는데.
헤비레인, 넌 겁쟁이가 아니야. 다만 허상에 손발이 묶여있을 뿐이지.
아미르는 네가 욕심을 부리게 허락하지 않을 거고, 장교들은 네 증오를 두려워하고 있어.
넌 좋은 사람이야.
그러니까 이번엔, 내가 대신 할게.
그래도 이걸로 넌 내게 하나 빚진 거야.
왜냐하면, 넌 전에 날 지켜주겠다고 했으니까.
난, 살고 싶어.
너랑 같이.
저기 꼬맹이 왜 저러지?
온 지 반년이 되어 가는데 아무 말도 없이 혼자 우두커니 서서 우리만 바라보고 있잖아.
낯가림을 해서 그래.
애는 진짜 착해.
……
어이, 꼬맹아!
와서 좀 도와줘.
(저 사람, 저를 부르는 걸까요?)
우선 이 명단 가지고 있어. 그리고 저기 어리바리한 놈들 보이지?
신병들이야, 가서 여기로 데리고 와.
(또 신병이 들어 왔나 보네요.)
(아직 한 달도 안 지났는데요.) 네, 알겠어요.
헤에.
너도 여기 고참병이야?
(나보다도 어린 사람.)
네.
와! 저기 금성 봤어?
네.
이건 내가 폐허에서 찾은 전리품이야.
이거 줄 테니까 내가 괴롭힘당하지 않게 지켜줄 수 있을까?
……
왜요?
응? 신병이 오면 고참병이 괴롭힌다고 들었거든.
그런데 넌 뭔가 다른 사람이랑 달라 보여서.
그게 아니라 그걸 왜 저한테 주냐고 물어보는 거예요.
이건 당신 거잖아요. 받을 수 없어요.
그리고 저는 전우를 괴롭히지도 않고요.
……
너, 정말 이상한 사람이구나.
난 애넘이라고 해.
……전 헤비레인이에요.
이제 복귀해 주세요.
코를 찌르는 매캐한 포연 냄새와 익숙하고 무서운 비명소리 속 헤비레인은 단숨에 깨어났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자신이 지니고 있는 무기에 손을 뻗으려고 했지만 이내 자신이 기둥에 단단히 묶여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젠장…… 제멋대로에 나쁜 애넘 씨……)
(애넘 씨를 찾아야 해……)
최루가스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헤비레인은 고통으로 인한 신음 소리를 참아내기 위해 이를 악물고는 자신의 팔을 탈구시켜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밧줄로부터 벗어났다.
반란군을 모두 죽여라!
(어쨌든 애넘 씨와 아비 아저씨를 먼저 찾아야 해요.) 애넘 씨!
(애넘 씨…… 도대체 어디로 간 걸까요?) 아비 아저씨!
(거친 숨소리를 내뱉으며) 하아…… 하아……
하하하, 전우라고?
쳇! 역시 넌 모두를 배신했어.
(배신?) 당신……
(배신하지 않았어요……) 상처 먼저 치료해 드릴게요.
오지 마!
*사르곤 욕설*! 난 속지 않아.
너 내 몸을 가져다 공을 세울 생각이지?
덤벼라!
(생사를 함께한 전우……)
(둘 중 하나가 죽을 때까지 싸울 적인가?)
이 몸은 영예로운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사르곤 욕설*!
넌? 전우를 팔아서 목숨을 부지할 생각이냐?
(누군가 팔아먹는단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는데……)
(하지만 모두에게 적이 된 걸까요……)
영예? 맹세? 넌 겁쟁이 꼬마일 뿐이야!
넌 단지 죄를 짓는 게 두려운 거야, 비난받고, 나쁜 사람이 되는 게 두려운 거지.
그렇다 한들 어쩌겠어? 설령 잘못된 선택이라 해도 이 몸은 이미 형제들을 위해 모든 걸 바칠 각오가 되어 있어. 무서울 게 없다고!
다시 말하지만, 병사에게 옳고 그름은 없어.
(난……)
덤벼, 날 죽이고 싶은 게 아니었나?
난 죽어도 형제들이 함께할 테지!
하지만 넌 어떻지? 살아 있다고 한들 또 뭘 할 수 있겠어?
쳇!
……당신 말이 맞아요.
헤비레인, 넌 겁쟁이가 아니야. 다만 허상에 손발이 묶여있을 뿐이지.
그러니까 이번엔, 내가 대신 할게.
(부모님은 언제나 순종적이고 착한 아이가 되라는 말을 하셨어요.) 집에 있을 때 실수를 한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항상 좋은 아이가 되려고 노력했지만, 돌아오는 건 발길질뿐이었죠.
집안 사정이 좋지 않으니까, 단지 그 이유였어요.
(여기서는 맹세도, 도덕도, 명예도……) 저는 모두를 전우라고 생각하고, 모두를 돕기 위해 노력했어요. 틀릴까 봐 두려워해 왔고요.
(정말 이건 허상에 불과한 것이었을까요……) 그런데 결국은 이렇게 되고 말았네요……
정말 당신들 말대로라면…… 반드시 해야 할 일도, 하면 안 되는 일도 없고, 맞고 틀린 것도 없으니까.
(애넘 씨의 말대로네요.) 그렇다면 저는 애넘 씨를 위해…… 모든 책임을 지겠습니다.
저는 애넘 씨를 지킬게요.
(죄송해요.)
큭!!
(그냥 방패만 사용하면……) 후……
(이 사람을 죽일 필요는 없으니까요.)
애넘 씨!
어디 있는 거예요?
당신만 잡으면 이 일도 끝이야.
아직 모두가 살아남을 기회가 있다고.
살아남는다고? 아직도 탐욕을 버리지 못하고……
넌 사르곤의 병사가 될 자격이 없다.
사르곤의 병사?
그런 거 신경 쓰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아?
죽어라.
(젠장……) 애넘 씨!
(왜 하필 아비 아저씨가……) 아비 아저씨?
헤비레인!
도와줘.
……
헤비레인, 잘 생각해 봤니?
(죄송해요……) 아비 아저씨, 일이 이렇게 되는 걸 원한 건 아니었어요.
(만약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면……) 하지만 애넘 씨는 제 친구예요, 그러니까……
아저씨가 애넘 씨를 해치게 둘 순 없어요.
친구라……
하하하핫! 와라! 어디 한번 보자!
네?!
앗!
헤비레인! 조심해!
내가 도와줄게!
꺼져!
앗!
애넘 씨!!
아비 아저씨!!!
친구를 위해서라, 정말 장하구나!
헤비레인, 다시 와라!
읏!
헤비레인, 방어만 해선 날 이길 수 없어.
아직도 고민되니?
친구를 지키고 싶은 네게, 난 적이다.
(최악의 상황……)
헤비레인! 제길…… 너무 아파……
누가 좀! 도와줘!
이 반역자를 잡아!
하아…… 시간이 없군.
그럼 이번엔 이 아저씨 마음대로 결정하마.
네?
핫!
앗!!
헤비레인!
이걸로 끝이다!
(죽는다……)
(안돼!) 으아아악!!!!
와라!!!
내리치는 칼을 헤비레인은 방패를 들어 있는 힘껏 막았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이 가려진 바로 그 순간……
그 고참병은……
칼의 방향을 바꾸어……
자신의 몸에 꽂았다.
어째서!!!!!!!!
안 돼!!!
왜요?! 아비 아저씨!!!
왜 이렇게 하신 거예요?!
내 칼을 들고 있어라.
안 돼요……
들어! 빨리!
놈들이 눈치채기 전에.
안돼! 싫어요!
창고! 창고에 아직 약이 있어요!
*사르곤 욕설*!
*사르곤 욕설* 들라고 했잖아!
들어!
아비 아저씨……
헤비레인, 넌 착한 아이야.
넌 전우를 보호하고, 친구를 배려하고, 이 쓸모없는 늙은이를 걱정했지.
아저씨는 정말 기쁘구나.
안 돼요……
쿨럭…… 넌 모두를 전우로 생각하고, 돕고 싶어 해. 개인적인 원한 따위 개의치 않지.
넌 우리 같은 매정한 늙은 놈들보다 훨씬 낫다…… 그렇지만…… 쿨럭……
거기에 너무 얽매여선 안 돼. 내가 가는 길에 흔들림이 있어선 안 된다.
넌 착한 아이야, 아저씨는 믿어.
다만 선함이 어울리지 않는 때도 있단다.
저도 알아요.
저도 알아요……
아저씨……
너무 부담은 갖지 말아라. 편지를 가져다줄 사람 한 명은 살아있어야 하지 않겠니.
집 떠난 지 벌써 이리도 오래되었구나, 우리 같은 늙은이들은 슬슬 돌아가야지.
이 군번줄, 전우여…… 잘 맡아다오, 믿는다.
가지고 가…… 쿨럭…… 모두들……
(아비 아저씨!!!!)!!!
안 돼요!! 아비 아저씨!
제길…… 헤비레인……
물러서! 모두 떨어져라!
난동을 부리는 자는 현장에서 즉결 처형한다!
애넘 씨에게서 떨어져, 안 그러면 나도 봐주지 않을 거야!
애넘 씨, 무서워하지 마!
응……
그만두지 못해! 너희들, 죄를 더 무겁게 만들 생각이냐!
0374 소대! 너희는 아미르를 배신하고, 병사로서 한 맹세를 저버렸다.
이것이 너희가 죄를 씻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이번 임무에서 행동으로 너희의 충성을 증명하길 바란다.
윽…… 난 이게 유일하게 살아남을 길이라고 생각했어.
설마 아미르가 우릴 놓아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니.
어떻게 하지?
괜찮아요.
그 누구도 애넘 씨를 해칠 수 없어요.
……
(아비 아저씨……)
(반드시 모두를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갈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