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인터뷰
위슬래시는 은퇴한 지 몇 년이 흘렀는데도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는 기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센트럴 저널》 한 부 줘.
……조피아? 오랜만이네.
그러게, 엘. 아직도 가판대 일을 하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으하핫, 단골손님들 덕분이지. 그나저나 요즘 신문 1면에 자주 걸리는 기사가 네 조카라고 그랬나?
마리아? 조카는 무슨, 동생이지!
그랬지, 참. 녹슨 구리의 기사와 겨루는 경기를 봤는데 집요한 모습이 꼭 왕년의 네 모습 같더라.
나? 마가렛이 아니라?
응, 틀림없다니까.
……하하, 엘. 뭐 아무래도 상관없지, 이제 다 지난 일이니까.
하긴, 이 신문에 등장하는 사람도 매년 달라지니까.
몇 년 전만 해도 온통 피의 기사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올해는 신인 기사들이 1면을 장식하고 있잖아.
나도 봤어. 마리아 사진도 있더라.
그때만 해도 기자들이 허구한 날 널 쫓아다녔는데. 응? 뭘 보는 거야?
《포시즌 타임즈》…… 처음 보는 이름이네. 새로 나온 신문인가?
하핫, 이 제목 좀 봐. 《채찍의 기사, 코치로서 '복귀', 지도를 받은 마리아 니어는 도살자 잉그라와 무승부》.
아직도 내 생활에 관심을 갖는 기자가 있다니. 지난주 내가 쇼핑몰에서 물건을 쓸어 담았다는 기사로는 부족했던 걸까?
요즘 기자들은 확실히 옛날과는 딴판이야. 예전에는 꿀을 빨아대기나 했지만, 이제는 썩은 곳에 날아다니는 똥파리들이지
……그래도 이 사람은 좀 나은 것 같아. 단어도 고심해서 쓴 것 같고, 문체도 담담하잖아. 이걸 봐!
“……채찍의 기사의 코치 아래, 과연 니어 가문의 기사는 경기장에서 자신만의 명예를 거머쥘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채찍의 기사는 재정비 후, 새로운 활약을 보여줄 수 있을까?”
아무래도…… 실망하겠네. 난 그저 그 아이를 잠시 돌보고 있을 뿐이니까.
한 부 사 갈래?
됐어, 엘. 요즘 들은 정보만으로도 충분히 많아서 말이야.
그래, 조피아. 또 보자.
《센트럴 저널》 한 부 줘.
……조피아? 오랜만이네.
엘, 이제 너까지 기사 굿즈를 판매하는 거야?
이 조그만 피규어가 얼마나 큰돈을 벌어다 주는지 몰라, 조피아. 특히 이 빛의 기사는 하루에 60개씩이나 팔린다고. 정작 신문은 하루에 몇 부밖에 안 나가는데.
마가렛에게 네가 고마워한다고 대신 전해줄게. 이 소식을 들으면 정말 기뻐할 거야, 분명.
으하핫, 마가렛한테 제일 고마워해야 할 사람은 발 빠른 기자들이 아닐까? 빛의 기사가 돌아온 덕분에 기삿거리도, 판매 부수도 폭발적으로 늘었을 텐데.
나도 고마워해야지. 마가렛이 돌아오지 않았다면 마리아와 함께 다음 경기까지 어떻게 버텨야 하나 고민했을 테니까.
이제는 마음이 좀 편해. 시골에 별장 하나를 봐뒀는데 그걸 구매할까 싶어. 일이 좀 진정되면 그곳으로 이사 갈 거야.
가지 마, 이곳엔 아직 널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고. 자, 가져가.
《포시즌 타임즈》? 아직도 출간되고 있네?
그뿐만이 아니야. 네 소식만 전하는 특별 칼럼까지 있다니까?
《채찍의 기사 위슬래시, 마리아의 코치를 그만두고 호화로웠던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하다》? 내 인생이 그렇게 호화스러웠다고 생각되지는 않은데?
그건 비교 대상에 따라 다르겠지.
흥.
쯧쯧, 이걸 봐. 어찌나 너의 재능이 낭비되는 걸 걱정하는지 글에서조차 한탄스러움이 묻어난다니까.
어디 들어나 보자. 읽어줘, 엘.
괜찮겠어? 표현이 좀 격하던데.
응, 괜찮아.
으음……
“마리아가 토너먼트 출전을 뒤로하자, 채찍의 기사 위슬래시도 코치로서 경기장에 복귀하는 것을 포기한 듯하다. 정말이지 실망스러운 선택이다.”
“어쩌면 그녀도 은퇴 이후 기사도 정신을 잊은 채, 돈더미에 누워 지금 마주하고 있는 현실에 안주하는 평범한 사람이 된 게 아닐까.”
풉……
이런 글에도 웃음이 나와?
문체를 보니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애 같은데 화낼 것도 없잖아, 안 그래?
아하하, 하긴 그렇지.
접지 마, 엘. 그 신문은 내가 살게.
그래, 조피아. 또 보자.
《센트럴 저널》 한 부 줘.
조피아, 오랜만이네.
타이터스? 여긴 어쩐 일이야?
너야말로 여기 어쩐 일이지? 신문사는 건 하인을 시킬 줄 알았는데.
이봐, 지금 뭐라고……
엘, 내가 직접 얘기할게.
(어깨를 으쓱거린다)
타이터스, 너 요즘 여기저기서 눈에 띈다? 은퇴하고 나니 사는 게 재밌나 봐?
챔피언인 빛의 기사 덕분에 편하게 지내고 있는 너보단 못하겠지만……
아차, 깜빡할 뻔했군. 그 많은 광고를 거절했으니 오히려 우리의 챔피언이 네게 의지하고 있겠군. 요즘 바빠서 정신이 없지?
알면서 뭘 그렇게 쓸데없는 소리를 해댈까?
(입을 삐죽인다)
결승전이 끝나고 상업연합회의 지인에게 들은 소식인데……
새로운 섹터에 경기장을 세울 계획이래. 그때가 되면 주변에 상권도 생길 테니 좋은 투자처이지 않겠어?
됐어.
아직 말 안 끝났……
거절할게.
조피아, 아무리 지금 재산이 두둑하다지만 네 그런 씀씀이로는 언젠간 거덜이 나고 말 거야. 게다가 작년에 해고한 몇몇 하인은 중간에서 네 돈을 빼돌리기까지 했다지.
네 알 바 아니야.
……쳇, 싫으면 관둬.
참, 좋은 뜻으로 조언을 하나 하지. 조피아, 넌 아직 젊어……
타이터스, 할 말이 있다면 돌려 말하지 말고 해.
……어쨌든 잘 생각해 봐. 너 자신을 위해서라도.
신경 써줘서 고마워. 잘 가, 배웅은 안 할게.
어이, 신문은 안 사 갈 건가?
……흥.
빛의 기사가 챔피언이 된 후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나 보네.
마가렛…… 하아, 그렇다고 내버려 둘 수는 없잖아.
그동안 니어 가문의 아이를 돌보느라 애썼어, 조피아.
어쨌든 함께 자란 사이인데다 가문의 뿌리와도……
잠깐, 엘! 뭘 숨기는 거야?
크흠, 아무것도 아니야.
당장 가져와.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빨리!
……자, 그 어린애가 쓴 칼럼이야. 아무것도 모르는 녀석이니 너무 화내지 마.
……
칼럼에는 아무런 글 없이 사진 하나가 대문짝만하게 걸려있었다.
사진에 찍힌 사람은 결승전 날 관중석에 앉아 있는 자신이었다. 걱정스러움과 불안함, 자부심이 뒤섞인 표정이 사진에 선명하게 담겼다.
심지어 사진에는 자세히 봐야 느껴질 법한 부러움 어린 눈빛까지 드러나 있었다.
사진 위에는 검고 굵은 글씨로 제목이 적혀있었다.
《니어 가문의 가장 우수한 시종》
대담한 아이네……
조피아……
조피아가 옆에 있는 신문을 뽑아 들어 사진을 반쯤 가렸다. 관중석에 앉아 있는 사람이 가려지자 경기장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기사만이 보였다.
다음에 봐, 엘.
아가씨, 조피아 아가씨!
……누구? 여긴 어디지……?
정신 차려보세요. 다행이다…… 놀랐잖아요. 왜 수풀에서 주무시고 계시는 거예요!
……어제 너무 신나서 그만. 그렇게 많이 마신 건 정말 오랜만이네. 릴리, 나 좀 일으켜 줘.
조심하세요.
사람들은 다들 돌아갔고?
네, 마가렛 아가씨와 마리아 아가씨도 취하셨거든요. 아까 집사님이 운전기사를 붙여 두 분을 데려다줬어요.
무에나는?
기억 안 나세요? 파티가 한창일 때 무에나 씨는 먼저 떠나셨잖아요.
……그때부터 이미 취했나 봐.
이렇게 무절제하게 드신 건 정말 오랜만인 것 같아요.
그야 마가렛 축하 파티였으니까……
휴, 제가 침실로 모셔다드릴게요.
잠깐만.
누구냐, 당장 나와!
이거 놔요! 놓으라니까요!!
기자? ……어떻게 들어온 거죠? 조피아 아가씨, 경찰을 부를까요?
됐어, 이만 가 봐.
하지만……
걱정 마, 이 녀석은 내가 책임지고 내보낼 테니까.
네,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불러주세요.
너 몇 살이니? 열다섯 살? 열여섯 살?
성인이거든요?
《포시즌 타임즈》의 기자가…… 너였구나.
명찰을 돌려주세요.
주택에 무단 침입하는 건 범죄야. 그건 알고 있니?
죄송해요…… 전 그저……
쯧……
이왕 여기까지 쫓아왔으니 궁금한 게 있다면 뭐든 물어봐도 좋아.
우리 집에 무단 침입할 정도면 소파에 앉았다 가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지?
저는……
앉아.
그냥 인터뷰라고 생각해. 질문들을 아주 오랫동안 준비했을 거 아니야, 안 그래?
입사한 지 얼마 안 돼서…… 인터뷰 경험이 없어요.
잘됐네, 그럼 연습 삼아서 해봐.
이렇게 무턱대고 들어와서 정말 죄송해요. 감옥에 가든 배상을 하든 뭐든 할 테니까……
보통 인터뷰는 자기소개부터 시작해야 해. 뭐, 이건 내가 대신해 줄게.
하지만……
내 이름은 조피아, 은퇴한 채찍의 기사지. 빛의 기사, 마리아와는 자매야. 정확히는 고모지만, 그건 넘어가자고.
또 골든팜 은행의 VIP이자 스타라이트 거리의 쇼핑몰 VVIP기도 해. 부동산엔 문외한이기도 하고…… 참, 연예지 기자의 관심 대상이기도 하지.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라면…… 네 눈에 난 어떤 사람인데?
전 당신의 경기 영상과 기사들을 전부 다 봤어요. 조피아 씨는 때에 따라 늘 다른 모습을 보이셨죠.
그럼 제일 기억에 남는 모습부터 얘기해 봐.
아, 찾았다. 그때 조피아 씨는 마리아처럼 포니테일 머리를 하고 계셨죠.
빛의 기사가 떠난 후 니어 가문은 점점 쇠퇴하기 시작했고, 조피아 씨는 그녀를 대신해 모든 걸 되돌리고 싶어 했죠…… 이게 그때 사진이에요.
정말 오래전 일이네. 나한테도 없는 사진이야.
마가렛은 타지로 떠났고, 무에나는 기사가 되기 싫다며 회사에 취직했으니 나라도 나서야 했지.
오직 니어 가문을 위해서 그런 건가요?
그럴 리가. 눈 부신 빛의 기사를 본 적이 있으니 나도 모르게 힘이 솟았던 거겠지. 난 내 힘으로 카시미어에 드리워진 장막을 걷어내고 싶었어.
하지만 실패하셨죠……
이 사진은 또 어디서 난 거야? 당장 찢어버려야겠어! 너무 못생겼잖아!
안 돼요! 힘들게 구한 거란 말이에요!
하여간, 어린애들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니까. 대체 왜 이렇게 묵사발이 된 기사 사진들을 모으는 건데?
이건 조피아 씨의 마지막 경기 사진이에요. 균열의 기사에게 패배해 16강에서 떨어진 후로 다시는 경기장에 나타나지 않으셨죠.
왼손을 다쳤거든.
하지만 오른손으로 끝까지 버티셨잖아요.
알려줘서 고마워. 하마터면 잊을 뻔했네.
죄송해요, 제가 괜한 말을……
괜찮아, 부상은 은퇴를 결심한 이유 중 하나일 뿐이야. 그때만 해도 생각조차 못 했어.
돌이켜 보니 실망감 때문이었던 것 같아.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기사 경기의 이면에 있는 추악함을 보고 나니까 더는 버텨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더라.
누구나 눈 부신 빛의 기사처럼 발길 닿는 곳마다 어둠을 밝힐 수 있는 건 아니었어.
대부분은 새벽이 오기 전에 쓰러질 뿐이야. 하늘을 향해 검을 치켜들어도 끝없는 어둠을 향해 휘두를 수밖에 없는 거지.
하지만 마리아 니어가 경기장에서 빛날 수 있도록 코치를 맡으셨잖아요.
난 그저 어둠 속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가르쳐 준 것뿐이야.
나도 못 하는 일을 어떻게 가르쳐 줄 수 있겠어?
그렇다면……
마리아가 스스로 이뤄낸 거야.
마리아든 마가렛이든…… 다들 나보다 뛰어나지.
그래도…… 두 사람이 이뤄낸 결과를 보며 기뻐하셨잖아요. 《스포츠 신문》에서 둘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기사를 봤어요.
맞아, 《포시즌 타임즈》에서는 “니어 가문의 가장 우수한 시종”이라고 표현했지. 비슷한 맥락이지 않을까?
……그건 그냥 재미로 그런 거였어요.
(고개를 저으며) 걱정 마, 그런 말을 담아두는 성격은 아니니까.
하지만 조피아 씨의 표정은 그렇지 않던걸요? 그날 가판대에서의 표정은 확실히 평소와 달랐어요.
그 말은 좀 섬뜩한데…… 대체 날 얼마나 쫓아다닌 거야?
쫓아다닌 건 몇 달 안 됐지만, 지켜보기 시작한 건 6년하고도 28일 정도 됐을 거예요.
……그러다 감옥에 갈지도 몰라.
그래도 기자로서 누릴 만한 최고의 명예는 거머쥘 수 있겠죠.
……
……관두자, 그런 건 관심 없으니까. 하던 얘기나 계속하자……
그 사진을 본 순간, 그동안 풀리지 않던 문제가 뭔지 깨닫게 됐어.
내가 마가렛을 부러워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정작 실력, 오리지늄 아츠, 페가수스라는 신분, '니어' 가문 중 어떤 점이 부러운 건지는 몰랐지.
하지만 조피아 씨는 그런 걸로 빛의 기사를 부러워할 분이 아니잖아요.
응.
난 그저 마가렛처럼 아무런 두려움 없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없어서 괴로웠던 거야.
……다시 경기장에 돌아올 생각은 없으세요?
전혀 없어.
그럼…… 경기장에서의 나날이 그리우세요?
아……
적어도 그땐, 내가 뭘 원하는지 알고 있었지.
……오늘 들은 얘기를 칼럼에 써도 될까요?
마음대로 해, 난 상관없으니까.
다음 주에 《포시즌 타임즈》를 사실 건가요?
그것도 다음 주가 되어야 알 수 있지 않을까?
《센트럴 저널》 한 부 주세요.
여기, 받아. 요즘엔 너처럼 신문을 보는 사람들도 별로 없는데 말이야.
아저씨, 쓸데없는 말 좀 그만 하세요.
하하, 사람을 기다리면서 신문까지 사다니. 정말 애늙은이 같다니까.
무슨 뜻이죠?
그렇게 오래 쫓아다녀 놓고 신문 뒤로 감춰둔 카메라가 안 보일 거라고 생각했어? 아, 네가 기다리는 사람이 저기 오네.
익숙한 모습에 기자가 카메라를 들고 도로 건너편의 여자에게 초점을 맞춘다.
그녀의 손에는 방금 막 샀는지 뜨거운 김이 피어오르는 커피가 들려있다.
차로 다가간 여자는 커피를 왼손으로 옮겨 들고 가방에서 열쇠를 꺼내려 했다. 왼손이 불편한 탓에 그녀는 위태로운 자세로 뜨거운 커피를 들 수밖에 없었다.
곤란해 보이는 모습에 행인들이 도우려 했지만, 그녀는 한사코 거절했다.
이를 악물고 가방을 뒤적이는 그 모습에 기자가 카메라를 움켜쥔다.
그 순간, 기자는 자신이 봤던 영상 속 여자도 똑같은 표정으로 적에게 맞섰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괴로운 기다림 끝에 여자가 가방에서 열쇠 꾸러미를 찾아냈다.
……
왜 카메라를 내려놓는 거야? 안 찍어?
찍을 필요가 없어졌어요.
왜?
찾았으니까요.
뭐?
열쇠 꾸러미가 가방 안에 있는 한, 결국 찾아낼 수 있을 거예요.
으응?
아하하핫!
꼬마 아가씨, 자전거 탈 때는 손잡이를 꽉 잡아야지! 조심하라고!
또 봐요, 아저씨!
하여간 정말이지……
좋은 밤이야, 엘.
《센트럴 저널》로 한 부 줄까?
아니, 《포시즌 타임즈》로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