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날리는 미래의 눈꽃
산탈라는 남쪽으로 이주 중인 부족의 감염자를 돕던 중 한때 자신이 속해 있던 부족과 마주쳤다. 또다시 과거를 뒤로한 채 떠난 그녀는 우르수스인이 처한 상황을 보게 되고, 다른 방법으로 사미를 구하겠다고 다짐했다.
등장 오퍼레이터: 산탈라
음…… 곧 있으면 좌표 지점이네, 좀 돌아오긴 했지만.
이주자들의 이동 경로를 예상해 봤어요. 목표 위치에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한 후에 다시 좌표 지점으로 움직여도 늦지 않을 거예요.
그 사미 사람이 말한 '맑은 샘물'과 '버섯 나무'는 모두 나무를 갖고 있는 부족이에요. 부족 나무와 함께 움직이려면 기척이 클 테니 놓칠 리 없어요.
그렇군……
들었지, 노먼? 산탈라 씨한테서 잘 배워둬.
그래그래……
내게 5일간의 여정을 4일 안에 끝낼 능력이 있었다면, 그때 군에서 제대하지 않았을 거야.
사실 서둘러 가야 한다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어요. 제가 너무 조급해서……
산탈라 씨 잘못이 아니야. 요즘 사미 상황이 복잡하잖아. 탐사대와 사미 전사 모두 북쪽으로 갔지만, 다수의 부족이 남쪽을 선택했어.
이번에 부족이 이주할 때 우리한테 감염자를 봐달라고 한 것도, 상호 간의 신뢰에 기반한 거란 건 우리도 알고 있어. 그리고 이 정도 힘든 건 힘든 것도 아니지.
……고맙습니다.
……?
산탈라가 통신기에 귀를 가져다 댔지만, 잡음 외에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우르수스인이 통신기 신호를 차단했다는 걸 확신했지만, 산탈라는 여전히 통신기를 지니고 있었다.
이 통신기가 우르수스의 그 어떤 소식이라도 가져다줄 가능성이 있는 한, 이 통신기를 지니고 다닐 가치가 있었다.
음, 거의 다 온 것 같은데?
숲에서 수관들이 움직이고 있어. 도움을 청하는 사미인인 것 같아.
누구냐?!
안녕하세요…… '맑은 샘물'의 전사여.
그걸 어떻게…… 샤먼인가?
문양은 여러 정보를 드러내죠, 존귀하신 전사님.
구조 요청을 보낸 건 당신인가요?
우리 언니가 보낸 모양이네. 그런데 지금 언니는 부족 간 일을 처리하느라 너희를 맞이할 여력이 없어. 미안.
저희는 감염자를 돌보기 위해 온 것뿐이에요. 인사는 목적지에 도착한 후에 얘기해도 괜찮답니다.
이해해 줘서 고마워. 자, 이리로.
각 부족의 감염자는 모두 이곳에 모여 있어.
페이, 우선 감염자들이 기본적인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오퍼레이터를 배정해 주세요.
그래.
노먼, 빨리 와서 통역 좀 해!
그래그래…… 지금 갈게……
왠지…… 전쟁이라도 치르러 온 것 같네……
병에 맞서 싸우는 건 총성 없는 전쟁이나 마찬가지죠.
하긴, 그것도 그렇지……
아무래도 언니의 선택이 맞았나 보네. 너희가 돌봐준다면 각 부대도 병에 대한 무지함 때문에 언쟁을 벌일 필요가 없을 테지.
이곳에 막 도착했을 때 네 개의 수관이 이동하는 걸 봤는데, 이번에는 네 개의 부족이 함께 이주하는 건가요?
그런데 인원수가 맞지 않는 것 같네요. 아무리 네 부족이라고 하지만 이렇게 많을 리가 없잖아요.
우리도 네 부족만 이주하고 싶었어……
일곱이야, 사미의 자매여. 이곳엔 총 일곱 부족이 모여 있어.
그중 두 부족의 제사장은 에이크티르니르의 부름에 응하기 위해 전사와 부족 나무를 이끌고 북쪽으로 향하고 있지.
부족 나무를 이끌고요?! 사미가 그걸 허락할까요?
나도 모르겠어……
아무튼 이곳도 복잡한 상황이야.
다행히 다섯 그루의 부족 나무가 우리를 지켜주는 덕분에 적어도 밤에는 안심하고 잠들 수 있지만……
다섯…… 그루요?
그래, 다섯 그루.
'죽음의 한기'의 부족 나무는 아직 어려서 수관이 다른 나무에 가려져 있어. 그래서 너희가 도착했을 때 못 봤을 거야.
!
왜 그러지?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죽음의 한기' 부족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사미어) 증상이 심하지 않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래도 상처를 만지지는 마. 괜히 더 아프기만 할 거야.
(사미어) 그래, 주기적으로 약을 먹고 주사를 맞으면 병이 진행되는 걸 막을 수 있어.
(사미어) 내가 거짓말을 왜 해? 봐, 나도 감염자잖아.
감염자들의 융합률이 아직 높지 않아서 가져온 약으로 충분할 것 같아. 지원이 도착하면 굶주린 사미 사람에게 식량도 나눠줄 수 있겠어.
……
어라, 산탈라 씨는?
(손목시계를 슬쩍 본다)
노먼, 혹시 산탈라 씨 못 봤어?
(사미어) 그래, 약은 그냥 삼키면 돼. 주문을 외우거나 샤먼에게 부탁할 필요는 없어.
왜, 뭔데?!
산탈라 씨 못 봤냐고?!
아까 우리를 맞이해 준 사미인과 대화를 하더니 인파 끝으로 갔어!
무슨 일이야?!
별일 아니야. 하던 일이나 계속해!
(설마…… 산탈라 씨의 부족?)
(하지만 내가 제대로 기억하고 있다면, 산탈라 씨는……)
그녀가 부족을 떠난 지 얼마나 되었을까? 수년, 아니면 십수 년?
불만감과 실망은 희미해진지 오래, 그 자리를 대신한 건 약간의 그리움이었다.
그녀는 몇몇 익숙한 얼굴뿐만 아니라 부족의 풍습과 전통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다.
기억 속엔 지난날의 포근함과 행복감이 감돌고 있었다. 다만……
안녕.
처음 보는 얼굴이군, 친구.
이곳에 있는 이들은 눈보라의 아이를 기억하고 있을까?
넌 어느 부족이지?
전……
그녀는 항상 상대방에게 솔직했다. 그게 적이든 아군이든 간에.
하지만 오늘은 거짓말을 해야 할 운명이었다.
그냥 지나가던 외지인이에요. 편지를 전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이곳에 왔죠.
족장님은 안에 계시나요?
아직 막사에 계셔. 내가 데려가 주지.
널 뭐라고 불러야 하지, 동포여?
산탈라라고 불러주세요……
산탈라라, 좋은 이름이네.
날 따라와.
그럼 부탁드립니다……
한때 그녀는 고목이 잊혀버렸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그리고 지금, 그녀 또한 잊혀버린 사람이 되었다.
길을 걸어가자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낯익은 얼굴들이 호기심 어린 시선을 던져왔다.
그들은 '외부인'을 보고 있었다.
화려한 복장을 하고 강철의 아츠 스태프를 들고 있는 그녀라는 외부인을.
과거를 떠올리는 사람은 없었고, '추억' 또한 그곳엔 없었다.
완벽한 망각이었다.
도착했어. 보고하고 올 테니 잠시만 기다려줘.
이제 들어가도 돼.
고맙습니다……
어서 오세요, 친구여. 제가 도와드릴 일이 있을까요?
당신은…… 에라스 씨의 손녀신가요?
맞아요.
제 기억이 맞다면 대리 족장 자리는 당신의 오라버니가 맡고 있어야 하는데, 그분은 어디 계시죠?
오빠는……
……
에이크티르니르의 행적을 따라 북쪽으로 갔어요. 지금은 제가 오라버니 대신 족장 역할을 하고 있죠.
당신, 대체 누구시죠?
……
고목이 주워 온 버림받은 아이이자 산탈라 나무의 딸이에요. 기억하실지 모르겠네요.
음……
죄송해요…… 고목을 떠나보낸 의식은 기억나지만, 그 고목 아래에서 지내던 나날과 떠난 이들은 가물가물하네요.
이제 그녀도 과거가 되었다.
마치 그 고목처럼.
……괜찮아요.
조금 전 호위병에게 말했던 편지는 단순한 핑계였겠군요.
네…… 죄송합니다……
당신을 탓하려는 건 아니에요. 지난 몇 년간 저희 부족은 정처 없이 떠돌아다녔고, 그 바람에 과거의 많은 것들을 잃어버렸죠.
제가 뭔가를 보여드리거나 증명하길 바란다면 시원하게 얘기해 보세요.
그녀는 상대가 과거를 떠올릴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다음은?
추방자를 기억해 낸다고 과연 무언가 달라질까?
그녀와 관련된 과거는 이제 중요하지 않게 되었기에……
아쉬움과 함께 떠나보내는 게 나을 터였다.
자작나무의 딸 알마여, 실례했습니다.
전 죽음의 한기에서 추방된 산탈라 나무의 딸 시몬이에요. 이 부족에 돌아와서는 안 되는 존재입니다, 실례를 범했네요.
하지만 떠나기 전에 부족을 위해 한 가지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당신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네요.
제 이름은 어떻게 아셨나요?
……
아…… 이제야 알겠네요.
당신은…… 부족의 일원이었군요.
음……
보시다시피 저희는 여전히 이주 중입니다. 그동안 이런저런 일이 많았지만 해결해 냈죠. 그런 일로 폐를 끼칠 일은 없어요.
하지만 저희 고향…… 그러니까 숲 지대로 이주한 후 생활했던 곳 말이에요. 그곳을 떠나기 전에 선조를 기리는 의식을 치르지 못했습니다……
북쪽의 재이 때문인가요?
네…… 일부 현상이 부족민의 터전을 덮쳐오기 직전이었거든요. 그래서 급히 떠날 수밖에 없었어요.
우리 부족에는 제사장이 없었고, 샤먼에겐 재이에 맞설 힘이 없었죠.
……
당신은 샤먼이죠?
샤먼의 소임은 다할 수 있어요.
그럼 이 일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믿음을 저버리지 않을게요.
정말 죄송합니다, 산탈라 나무의 딸이여. 이렇게 진심으로 저희를 도와주시는데도 정작 전 당신의 신분조차 모르고 있네요.
그런 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아요. 알마, 지나간 일은 지나간 대로 둬야죠.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죽음의 한기 부족의 족장님.
부디 당신과 당신의 부족이 사미의 등을 무사히 건널 수 있기를.
휴……
정말 이상한 사람이네요. 할아버지의 제자인 걸까요?
할아버지가 계셨다면, 제가 그 사람처럼 자신감과 겸손함을 가지고 부족을 이끌길 바라셨겠죠……
(몸에 지니고 있던 호박 팬던트를 꺼냈다)
이런 일과 마주했을 때, 당신은 어떻게 할 건가요?
샤먼은 옛 친구가 남긴 장신구를 멍하니 바라봤다. 이건 어릴 적 함께 놀던 견습 샤먼에게 받은 선물이었다.
샤먼은 그녀가 필라인이라는 걸 기억하고 있었다.
그 친구의 눈은 조금 전 손님과 꼭 닮아 있었다……
아. 돌아왔네, 산탈라 씨.
네.
일손은 부족하지 않으셨나요?
충분했어.
그럼 전 다른 일 좀 보고 올게요.
부족민이 그러는데, 그 당시 이미 붕괴 패러다임이 거주지까지 근접해 왔다고 하더군요. 붕괴가 더 확산된다면 곤란할 거예요.
가서 조사해 봐야 할 것 같아요.
산탈라 씨, 혼자 가려고?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
하지만 사람이 많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죠.
전 샤먼 훈련을 통해 오염을 처리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게다가 이곳에 그걸 해결할 수 있는 사람도 저뿐이고요.
괜찮을 거예요.
음……
그럼 사무소에 이 일을 보고하고 최대한 빨리 샤먼들을 보내라고 할게. 제사장이 힘을 보태주면 좋을 텐데.
그리고 티폰 씨한테 과학탐사대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그쪽으로 가서 살펴보라고 할게.
얼마 전에 출발한 과학탐사대는 어디쯤이래요?
이제 막 숲 지대를 지났을 거야. 곧 산지대를 지나 빙원에 도착했겠지.
그럼 방금 얘기한 대로 하죠. 신중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응, 이미 준비 중이야.
그럼…… 조심해, 산탈라 씨.
다른 업무 중인 분들께 대신 죄송하다 전해주세요.
걱정하지 마.
산탈라 씨는 왜 떠난 거야?
너, 산탈라 씨랑 처음 같이 일하는 거지?
우리는 사미에서 벌어지는 기묘한 일을 해결할 수 없잖아. 그러니 산탈라 씨한테 부탁하는 방법밖에 없지, 안 그래?
감염자들은 좀 어때?
꽤 협조적이야. 다들 안정된 상태라 당분간 별일 없을 거 같아.
후…… 다행이네.
그럼 날 좀 도와줘, 노먼. 차파트에 긴급 전보를 보내야 하니까.
며칠 뒤
여기구나.
신호가 잡히나?
(통신기를 조작한다)
통신이 아닐지도……
데몬인가?
대자연은 역시나 아무 대답이 없었다. 부족 나무만큼 거대한 그림자가 주변을 맴돌았다.
죽음의 한기 부족 나무의 그림자가 이제 대낮에도 움직이기 시작한 건가.
공격성은 없지만 거리가 너무 가까운데.
재이의 징조야.
컬럼비아인의 검측 방법을 사용해 보자……
1234, 1334, 4444.
1+1=4.
다음은……
(소형 계산기를 꺼낸다)
(숫자를 보지 않고 계산기의 버튼을 누른다)
결과가 전혀 다르잖아……
흐음……
오염을 제거하지 않으면 모든 게 헛수고겠지.
죽음의 한기의 선조들이시여, 부디 제 나태함을 용서해 주소서.
곧 돌아오겠습니다.
부족 나무가 없다면 이곳은 보호받지 못할 거야.
그렇다면…… 고목에게 마지막으로 자신의 부족을 보호해달라고 부탁해 보자.
산탈라는 고목이 마지막으로 남긴 나뭇가지를 품에서 꺼낸 후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 그 피를 나뭇가지와 땅에 떨어뜨렸다.
변함없는 존재여, 이곳에 오랜 평온함을 가져다주십시오.
그러자 바닥에 떨어진 산탈라의 핏방울이 맑은 물로 변했고, 그 물은 그녀의 오리지늄 아츠를 통해 서리가 되어 위쪽으로 퍼져나갔다.
깨끗한 서리가 나뭇가지를 품었다. 서리를 따라 땅에 심어진 오래된 나뭇가지가 과거의 시선을 끌어왔다.
자욱한 잿빛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지만 그와 함께 식물도 시들기 시작했다.
과거는 축복이자 저주였다.
이걸로는 부족한 걸까……
주변을 둘러보던 산탈라의 시선이 새로운 부족 나무가 심어져 있던 곳에 가닿았다.
그녀는 부족 나무에서 떨어진 나뭇가지와 잎을 주웠다. 거기까진 아직 오염되지 않았기에 사미에서 비롯된 태초의 생명력이 남아 있었다.
이렇게 하자.
부족 나무와 고목의 나뭇가지가 한데 얽혔고, 어린잎은 빻아진 후 땅에 뿌려졌다.
산탈라는 그 두 가지를 어떤 뜻이 담긴 부호로 만들었다.
아르보라, 소크나르페르드.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어 이곳에 세워지기를.
솟아 있거나 떨어진 눈이 사방을 살펴주기를.
선조의 아버지, 세상에 남은 선조, 그리고 대지를 떠도는 수많은 영혼이여.
부디 저를 바라봐주시고……
산탈라의 딸인 저 시몬의 작은 부탁을 들어주십시오.
사미가 순결을 되찾을 수 있도록 이곳의 오염을 제거해 주소서!
나뭇가지는 '교목'이 되었고, 빻아진 잎은 '순시'가 되었다.
암호판으로만 일으킬 수 있던 효과가 샤먼에 의해 대지에 나타났다.
붕괴 현상은 잦아들었고, 대자연은 평소의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숲의 한구석은 여전히 짙은 안개로 뒤덮인 채였다.
그건 자연이 정화할 수 없는 이물질이자 사미를 오염시킨 원흉이었다.
……
저건 '블랙 마크'……!
스읍…… 후……
순식간에 주변의 눈과 얼음이 날카로운 칼날로 변해 그녀를 향해 날아왔다.
무방비 상태에서 '황제의 칼날'에 맞서길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눈앞의 이 칼날은 이미 데몬에 의해 변이된 상태였다.
하아…… 하아……
이 까다로운 적은 공격하면 공격할수록 몸속에 있는 악한 기운을 사방으로 흩뿌렸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내버려 둔다면 그것은 생명을 죽이고 대륙을 오염시켜 사미 전체를 파괴할 것이다.
암호문으로 소환한 자연의 축복이 아직 효과가 있다고 해도, 산탈라는 모든 공격이 가져올 수 있는 재앙을 고려해야 했다.
이건 전투가 아니었다.
전투가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비틀대던 '블랙 마크'는 앞으로 한 걸음 내디디며 공격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그다음 순간, 그것은 공간을 넘어 산탈라의 앞에서 사라졌다.
자연의 정화 아래, 이 땅의 붕괴는 자취를 감췄다.
도망친 건가?
아니면……
제가 도울 일이 있을까요?
아직은 괜찮아. 조금 전 차파트에 있는 로도스 아일랜드 오퍼레이터와 연락이 닿았어. 방금 막 출발한 과학탐사대 대원과 조율해서 지원군을 충분히 보냈대.
얼마 전에 출발한 과학탐사대는 어디쯤인가요?
이제 막 숲 지대를 지났을 거야. 곧 산지대를 지나 빙원에 도착했겠지.
이곳은 과학탐사대가 있는 곳에서 그다지 멀지 않았다. 재이에는 규칙이 없다지만, 일부 징조에는 규칙성이 존재했다……
이를테면……
더 많은 '생명'과 '소유'를 무로 만드는 것.
당장 티폰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해.
존귀한 사미여, 제 무례함을 용서해 주십시오.
산탈라가 아츠 스태프를 높게 치켜든 후 있는 힘껏 땅에 꽂았다.
그녀의 의지대로 서리가 녹으며 문양을 그려냈다.
엔시나…… 엔시나……
사미여, 당신이 그들의 운명을 지켜보고 있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부디 이 전조를 제 친구 곁으로 전해주소서.
말이 끝나자 문양이 사라지더니 이내 건조한 땅으로 돌아갔다.
모두의 안위가 네게 달렸어, 티폰.
난 아직…… 할 일이 남았어.
산탈라는 혼비스트를 사냥하고, 과일 몇 개를 땄다.
그건 선조에게 바치는 제물이었다.
넉넉하진 않았지만 죽음의 한기 선조들을 위로하기엔 충분했다.
아버지, 어머니, 제사장 에라스 님, 그리고 선조들이시여.
전 족장님의 명에 따라 여러분께 제물을 바치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부디 저희 부족을 지켜주시고, 불안한 민심을 어루만지시어, 꿈에서 방향을 가르쳐주소서.
그리고……
모든 이가 잊힐 걱정 없이 영원히 기억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비나이다.
선조에게 바친 제물은 한 줌 불길에 의해 사라졌다.
산탈라는 밤새도록 타오르는 불길을 바라봤고, 불길이 사그라든 후에야 서서히 잠에 빠졌다.
……
어?
각 수색대에 알린다. '흑요석'에 의해 파괴된 것으로 보이는 구역을 발견했다. 인근 수색대는 즉시 구체적인 좌표를 확인하고 보고한 뒤 철수하라. 무슨 일이 있어도 피해 구역에 진입해선 안 된다.
반복한다……
'흑요석'?
'블랙 마크'는 저쪽에서 왔을 텐데.
……
우르수스인들이 또 뭔가를 숨기려 하는 거야!
산탈라는 제단과 암호문을 읽었던 장소로 눈길을 돌렸다.
제물은 이미 잿더미가 되어 있었고, 고목과 신목의 나뭇가지는 여전히 얽힌 채였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그녀가 잿더미를 한 움큼 집어 얽힌 나뭇가지의 끝에 뿌렸다.
그리고는 숲을 떠나 우르수스인이 언급한 방향으로 향했다.
그녀는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좌표 위치는 여기인데.
이미 빙원 깊은 곳까지 들어왔어. 우르수스인들은 도대체 무엇을 꾸미고 있는 거지?
이곳…… 심하게 오염되었다는 게 느껴져……
이쪽…… 인가?
거센 눈보라가 뭔가를 감추려는 듯 세차게 불어왔다.
하지만 그것들은 산탈라의 명령 아래서 서서히 사라졌다.
마침내 그 속에 감춰져 있던 진실이 드러났다.
그곳에는 국가에 뒤덮인 세 명의 근위병이 있었다.
?!
순식간에 공포가 그녀의 영혼을 뒤덮었다. 공허 속에서 고개를 돌린 무언가가 이곳을 바라보려는 듯했다.
하지만 때마침 눈보라가 불어와 그녀를 숨겨주었다.
(오염 여부와 관계없이, 조금 전 그놈들은 날 죽일 수 있었어.)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어느 정도 마음을 진정시킨 그녀는 주변의 분위기가 완전히 안정된 후에야 눈보라에서 나와 국가의 가장자리로 움직였다.
그 중앙에는 세 명의 근위병이 여전히 굳게 서 있었다.
이번에 그녀는 똑똑히 보았다.
모든 근위병의 심장이 우르수스 군용 검에 뚫려 있었다.
그것은 오리지늄 아츠일 수도, 또 아니면 주술일 수도 있었다.
그들의 시신은 바람에 쓰러지지도, 데몬에게 이용당하지도 않았다.
죽기 직전, 최후의 순간에 그들은 그 자세 그대로 국가에 삼켜진 것이었다.
산탈라는 네 사람이 등을 맞댄 듯한 자세로 생을 마감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빈 한 자리에는 우르수스 군용 검 한 자루만이 꽂혀 있었다.
'블랙 마크', 설마 여기서 나타난 건가……?
우르수스인의 위업은 그 자신들의 악행을 덮기에 부족했다.
하지만 최소한 이곳에서 영웅들이 목숨을 바친 일은, 한 사미인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사미에는 다른 뜻이 없다. 당신들이 편히 잠들 수 있도록 눈보라가 이곳을 덮었을 뿐.)
(당신들에게 경의를 표하지. 용사들이여.)
(우르수스인들도 멀지 않은 곳에 있겠지.)
(당신들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눈보라는 거둬가겠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마음 깊숙한 곳에서 고민이 떠올랐다.
(우르수스의 전쟁 병기들이 집단으로 행동했는데도 이런 결말이라니……)
(에이크티르니르, 당신은 사미의 부족을 와해시키고 절망적인 원정에 사미인과 미래를 걸었죠. 그 실패의 결과에 대해서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이 있긴 한 건지 궁금하군요.)
(사미가 당신을 허락했으니 나도 간섭하진 않겠어요.)
(하지만 저도 사미의 일부입니다.)
(저는 저만의 방법으로 남쪽 동료들과 함께 사미를 위해 더 나은 미래를 만들겠어요.)
그러니 제 결심을 지켜봐 주세요, 선조의 아버지시여.
눈보라여, 나를 따라라. 영웅들은 시종에게 남겨두어라.
다음 생이 있다면 선조의 나뭇가지와 잎 사이에서 당신들에게 좋은 술을 바치도록 하지.
우르수스의 영혼이여, 그럼 안녕히.
그녀가 눈보라 속으로 사라지자 곧 눈보라도 흩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빙원에 우르수스의 뿔피리 소리가 울려 퍼졌다.
2주 후
돌아왔습니다.
사, 산탈라 씨!
왜, 왜 그러시죠? 이렇게 허둥지둥하시고.
너무 오랫동안 안 나타났잖아! 조금만 더 늦게 돌아왔으면 임무 중에 산탈라 씨가 실종됐다고 본함에 보고할 뻔했어!
전 돌아왔는걸요……
산탈라 씨가 처리해야 할 일이 까다롭고 많다는 건 알지만, 다음부턴 내게도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줘. 정말 어느 날 갑자기 떠나버리면 우린 어떡하라고?! 다음엔 꼭 미리 말해줘.
네네, 알겠어요. 죄송해요. 제가 잘못했어요, 페이.
미안하다는 말 하나로 끝낼 생각은 아니지……?
혼비스트 구이를 만들어드릴게요, 어떤가요?
혼비스트 구이?!
이제 용서해 주시는 거죠?
흐음…… 진심이 느껴지니까 이번은 그냥 넘어갈게.
정말 고마워요, 페이. 당신은 정말 듬직한 동료이자 친구예요.
그, 그렇게 듣기 좋은 소리 해도 소용 없거든.
후훗.
참, 과학탐사대는 돌아왔나요?
아…… 그러고 보니 아직 모르겠구나.
빙원에 들어가기 전에 소동이 있었대. 우르수스 군관의 망령 같은 끔찍한 녀석과 마주쳤다는 것 같아.
다행히 티폰이 단단히 준비한 덕분에 모두가 무사히 철수할 수 있었어. 사상자라도 생겼다면 정말 곤란했을 거야.
그렇군요, 다행이네요.
남쪽으로 이주한 부족들은요?
벌써 적당한 곳을 찾아 정착했어. 감염자는 자신의 의사에 따라 부족에 남거나, 치료를 위해 로도스 아일랜드 사미 사무소로 떠났고.
음, 잘됐네요.
그럼, 제가 딱히 걱정할 만한 일도 없겠네요.
앗, 산탈라 씨. 또 어딜 가는 거야?
숙소로 돌아가서 잠을 조금 자려고요.
아아, 이제야 쉴 마음이 생긴 거야?
그리고 내일은 차파트에 가서 마젤란과 티폰을 만나볼 생각이에요.
결국 쉬는 건 아니네……
그게 모든 사미의 샤먼과…… 로도스 아일랜드 오퍼레이터의 소임이니까요. 그뿐입니다.
내가 산탈라 씨처럼 열심이었다면 한 달도 안 돼서 의료부에 실려 갔을 거야.
아무리 임무가 중요하다지만 몸도 챙겨야지.
이곳에서 잠시 쉴 수 있는 것만으로도 제겐 충분해요.
그거로는 부족하지. 우선 가서 푹 자.
내일의 일은 내일 생각하자고!
자, 어서 가서 자.
아……
그럼 이만 쉬러 가볼게요.
고마워요, 페이.
그럼 좋은 꿈 꿔, 산탈라 씨.
네, 안녕히 주무세요.